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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의 천국
줄거리
이 작품은 소록도 병원장인 조백헌의 이야기다. 모두 3부로 나누어져 있다.
제1부는, 현역 대령인 조백헌이 소록도 병원장으로 취임하여 그 곳 환자들에게 새로운 천국을 만들어 주기 위해 득량만 매립 공사에 착수하는 데서부터 그 공사가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21개월 동안, 나환자와의 싸움을 그리고 있다.
제2부는, 매립 공사를 둘러싼 9개월 간의 병원장의 정신적 방황을 그리고 있다.
제3부는, 소설의 대단원을 이루는 부분으로서 조 원장이 섬을 떠난 지 5년이 지난 후, 3월 달에 한 사람의 시민으로 소록도에 돌아오게 되고, 2년 후, 4월 달에 두 사람의 결혼식 주례를 맡게 되는 것을 그리고 있다.
표면적인 구조만으로 볼 때, 당신들의 천국은 조백헌이라는 야심 많고 정열적인 한 인물의 무용담처럼 보인다. 그러나 작가의 진정한 의도는 그 조백헌의 단순한 제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인물에 대한 복합적인 비판에 있다. 그 비판을 가능케 하는 인물이 이상욱과 이정태이다.
제1,2부의 기술은 조백헌에 관한 이상욱의 시선에 의지해 있다. 그의 시선은 조백헌이 자신의 동상을 세우려는 인물이 아닐까 하는 의구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즉, 소록도에 천국을 세운다는 미명 하에 조백헌이 실제로 하고 싶은 것은 자신의 명예욕이나 과시욕을 충족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하고 그를 감시의 눈으로 지켜보게 되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소록도의 과거 때문이다.
― 소록도에서는 일제시대의 병원장이었던 주정수가 나병 환자들의 낙원을 건설한다는 미명 하에 개인의 명예를 얻는 데만 열중하고 환자들은 강제로 노역시키고 임금까지 착취했다. 학대의 방법도 교묘하고 극한에 달하여 심지어 단종(斷種) 수술까지 자행되었다. 표면적 성과에 의해 공로자가 된 주정수는 그를 기념하는 동상 앞에서 환자들에 의해 살해되었다.
이러한 처참한 과거가 있었기에 소록도에는 바깥 사람들을 믿지 못하는 불신의 뿌리가 깊이 내려져 있었다. 조백헌 원장은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투철한 의지와 인내로 나환자들을 회유하고 결실을 위해 모든 희생을 감수했다. 이러한 조백헌 원장의 사랑 정신에 결국에는 이상욱도 감동하게 된다.
작가는 또 이정태 기자의 눈을 통해 복지 사회의 건설은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협력과 사랑에 의해서만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다.
소록도병원에 새 원장 조백헌이 부임해 온 날 밤, 두 원생이 섬을 탈출한다. 조백헌은 부임 인사도 하지 않고 탈출 사고의 경위를 조사한다. 병원의 보건과장 이상욱을 통해 일본인 주정수 원장의 역사와 피살이라는 과거사가 알려진다. 주정수는 소록도를 버림받은 나환자들의 낙토로 꾸미려고 대규모의 역사를 일으켰었다.
처음에 그 역사는 원생들의 자발적 참여를 얻어 순조로이 진행되었으나, 차츰 낙토 건설이라는 명분의 배후에 주정수의 동상 욕심이 자리잡고 있음이 드러나면서 원생들은 고통과 배반의 늪으로 끌어들인다. 그래서 마침내 주정수는 원생에게 피살되었다.
낙토 건설이란, 원장의 입장에서는 원생을 위한 것이며 치자의 피치자에 대한 사람의 베풂에 다름 아닌 것으로 보이지만 원생의 입장에서 보면 원장의 동상욕을 위한 것이며 치자의 피치자에 대한 강요와 억압의 구실에 지나지 않는다.
이런 과거사를 알 게 된 조백헌은 털끝만큼의 회의도 없이 동상욕을 부정하고 사랑의 행위라는 확신 아래 낙토 건설 사업을 일으키기로 결심한다. 미감아 출신으로 치자와 피치자 사이에서 비판적 지식인의 역할을 하는 보건과장 이상욱은 그런 조백헌에 대해 계속 회의한다. 낙토가 건설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환자의 낙토이지 이난의 낙토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그는 괴로워한다.
드디어 낙토 건설 사업은 시작되는데, 조백헌은 숱한 우여곡절을 겪는다. 오마도 간척 사업의 추진 과정에서 육지 사람들의 방해, 행정 관청의 비협조, 자연의 횡포, 원생들의 배반, 그리고 마침내는 상부의 일방적인 전근 발령으로 조백헌은 거의 절망의 수렁에 빠져든다. 그러나 반드시 일을 완성시키겠다고 조백헌은 의지를 굳건히 하는데, 이는 무의식 중에 동상욕에 대한 미련에 사로잡혀 있는 것일 따름이다.
이상욱은 그 점을 지적하지만 조백헌이 받아들이지 않자 그는 섬을 탈출한다. 황장로와의 대화를 통해 그 점을 깨달은 조백헌은 화려하지 않게 조용히 섬을 떠난다.
그리고 7년이라는 긴 시간이 흐른다. 이제 조백헌은 원장의 신분이 아닌 하나의 사인(사인)으로서 섬에 들어와 섬의 주민이 되어 있다. 그는 그 7년 동안 황장로의 사랑의 계시를 자체적으로 소화해냈고, 그리하여 자기 각성에 도달해 있다.
그 자기 각성의 내용은 신문기자 이정태와의 대화를 통해 밝혀진다. 다스리는 자의 사랑 속에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자유가 깃들고, 다스림을 받는 자의 자유 속에 다스리는 자의 사랑이 깃들어서 결국은 양자가 한 길로 화해스런 조화를 이룩해 나가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이 획득되어야 한다. 또 믿음이 획득되기 위해서는 다스리는 자와 다스림을 받는 자가 하나의 운명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 그러나 자기 각성과 함께 섬으로 돌아와 섬의 주민이 되어 공동운명을 수락하고 믿음으로 매개된 진정한 사랑을 성취한 조백헌에 새로운 문제가 대두된다.
자유와 사랑을 행함에 절대적으로 전제되어야 할 힘을 어떻게 자생적 운명의 일부분으로 선택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조백헌은 눈에 띄지 않는 일에서부터 차례차례 확실한 것을 한 가지씩 행해 나가기로 마음먹는다. 그리고 조백헌은, 물에서 온 여교사 서미연과 병력이 있고 뒤틀린 반생명적 자세를 보여 오던 윤해원의 결혼을 주선한다. 두 남녀의 상징적 결합이 이루어지는 날, 날씨는 화창했고 사람들의 표정 역시 그 봄날 날씨처럼 맑고 너그러웠다.
■ 이해와 감상
지금까지 장편 소설에 대한 재래의 독법은 우선 수많은 등장 인물, 엇갈리는 숱한 사건들에 의해 진행되는 것을 최대의 특징으로 삼아 왔다. 뿐만 아니라, 등장 인물이나 사건은 독자와 더불어 성장한다. 말하자면, 인물의 성격이나 사건의 상황에 대한 작가의 설명이나 암시가 미리 주어지지 않고 무심한 현실의 한 단면을 제시하듯 그대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므로 인물과 사건은 시간의 진행에 따라서 차츰 변모와 발전, 소멸을 거듭하면서 이윽고 어떤 파국, 혹은 어떤 절정에 이른다. 따라서, 지금까지의 장편 소설들의 기본적 전개 방식은 귀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청준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은 전개 방식에 있어 일종의 연역적 방법을 택하고 있으며, 장편소설로서는 드물게도 몇 안 되는 등장 인물만을 갖고 있다. 또한, 이 소설은 길이의 문제만을 제외하면 사건과 효과의 단일성 등 재래의 장편 소설 조건에 부응하지 않는 체계를 갖고 있다. 즉, 이 소설의 세계는 작가가 선택한 어떤 보편적 원리의 추적 과정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할 작품 구조에 의해 형성되어 있다.
또한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하여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 사이의 역학 관계와 대립 관계를 드러내 보인 후, 이 대립을 해소하는 길은 '사랑'임을 강조하고 있다.
<당신들의 천국>은 소재, 주제, 그리고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작가의 능력과 깨끗하고 지적인 문체 등으로 해방 이후 한국 문단이 거둔 최대의 수확 가운데 하나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청준의 소설은 관념적 소설이라고 일컬어진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생각해 보면, 그는 우선 일상적 생활 양식을 사실적으로 재현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관념화된 양식으로 나타나게 되는데, 이는 행위의 세련을 가져오는 요소가 된다. 그러나 이러한 행위는 단순화 또는 축소화되어 있는데, 이는 개인의 뇌리 속에서 또는 사회 의식 속에서 서로 충돌 화합 타협 대립하는 관념들의 양상을 집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청준은 이러한 관념의 의식을 파고드는 독특한 방법을 통하여 독자에게 인식시키는 작업에 능한 작가라고 할 수 있다.
핵심 정리
▶갈래 : 장편 소설.
▶시점 :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
▶배경 : 소록도.
▶인물 : 조백헌 - 소록도 병원장. 나환자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는 긍정적 인물.
이상욱 - 조백헌 원장과 갈등 관계였으나 원장의 사랑 정신에 감동하는 인물.
이정태 - 기자. 소록도를 취재함.
▶주제 : 인간의 진정한 삶과 사랑의 실천을 통한 이상주의적 세계 추구.
소설 '당신들의 천국' 작가 이청준-실제모델 조창원씨 대담
《이청준(李淸俊·64)씨의 장편소설 ‘당신들의 천국’(문학과지성사)이 최근 100쇄를 넘어섰다. 1976년 첫 출간된 이후 지금까지 30여 만부가 판매된 ‘당신들의…’는 나환자촌인 소록도에 부임한 현역 대령 조백헌 병원장의 고뇌와 갈등이 큰 축을 이룬다. 조백헌 원장의 실제 모델은 60, 70년대 소록도병원장으로 일했던 현 영남의료재단 복지의료센터 조창원(趙昌源·77) 원장. 소설에서 원장은 순수한 의지와 선의로 환자들의 천국을 건설하기 위해 득량만 매립 공사를 추진하지만 환자들의 불신과 외부의 도전, 내면의 번뇌와 뼈저린 싸움을 벌여야 한다. 그것은 실제 오마도(五馬島) 간척사업에 뛰어 들었던 조창원 원장의 고민이기도 했다.》
소설의 100쇄를 맞아 소설가와 작품의 모델이 최근 서울 세종로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났다.
조창원 : 이렇게 단둘이 ‘당신들의 천국’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처음이지요? 이 선생에게 늘 감사했는데 그 마음을 이제껏 표현한 적이 없네요.
이청준 : 제 소설 때문에 피해 본 것부터 말씀하셔야지요. (웃음)
조 원장은 ‘당신들의 천국’으로 인해 간척사업 등 소록도 문제가 사회적으로 관심을 받게 되면서 병원에서 쫓겨나 강원 정선에서 규폐증 환자들을 돌보게 된다. 이후 대전을 거쳐 현재 밀양에서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
조 : 오랜만에 이 선생을 만나니 1961년 9월초 소록도병원장으로 처음 부임해 가던 길이 생각나네요. 그 때 환자와 같은 배를 타지 않으려는 직원들에게서 ‘거만’을 봤습니다. 아, 소록도는 ‘죽은 섬’이구나…하는 생각이 번쩍 들더군요.
이 : 아예 배가 따로 있었잖아요. 환자들은 노 젓는 배를 써야 했지요.
조 : 그랬지요. 이들에게 인권과 자유를 찾아주면 새 삶을 시작할 줄 알았는데 집과 사회, 국가에서 버린 것은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오마도 간척사업을 구상한 것이지요.
이 : 원장님이 주도하신 간척사업은 환자들에게 고향을, ‘새 땅’을 만들어주자는 뜻을 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육지인들과 마찰을 빚고, 정치적인 문제가 얽히면서 나중에 사단이 생기고 말았지요.
조 : 소록도를 ‘죽음의 섬’으로 보지 않은 사람이 바로 이 선생이었어요. 진실하게 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릴 수 있다면 10만 나환자를 살리겠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이 : 1974년 제가 소록도를 찾았을 때, 원장님께서 저를 무섭게 시험하셨지요? 원장님께서 소설을 쓰려면 환자들과 한두 달은 같이 지내야 된다고 하셨는데, 결국 깎고 깎아서 이틀만에 나왔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하루 종일 원장님과 정종을 몇 병이나 마셨던지요.
조 : 처음 봤을 때 이 선생 인상이 참 차분했어요. 내 이야기를 잘 경청해줬지요. 이 선생이 그랬지요. ‘소설이니 사실과 허실이 있을 거다. 그러나 그 차이는 독자가 받아들여야 할 몫이다’. 소설은 100년, 1000년 갈지 모르니 사실 겁이 나더라고요.
이 : 원장님께서 당시 정치적으로 몰려 있던 상황이어서 ‘소설에서 안 좋게 그려지면 불이익이 돌아올 수도 있겠다’고 하셨지요. 그리고 보름 후에 구속이 되셨어요. ‘신동아’에 소설을 연재하는 중에 사모님과 따님의 전화도 받았습니다. 재판 등 현실적인 문제가 소설과 걸려 있어서 참 어렵게 썼던 작품이었어요. 그래서 소설 속 모델을 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 삶에 긍정적인 작용을 했으면 모르지만, 피해를 드렸다는 생각에….
조 : 허허. 나는 소설 덕분에 소록도와 인연이 끊어지지 않고 두터운 매듭을 이어 왔어요.
이 : 모델이 있는 소설은 완성되면 그것으로 끝이지요. 그러나 소록도와 원장님이 아직 살아 있고, 계속해서 일을 하고 계시잖아요. 원장님께서 소설의 2부를 삶으로 쓰고 계신 겁니다. 2부가 1부에 활력을 주는 것이지요. 소설 출간 이후 27년이 지났지만 독자들이 꾸준히 찾아 주는 것은 원장님 때문입니다.
<출처 : 동아일보 인터넷판 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