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박목월
내가 만일 너라면 따분하게시리
책만 읽고 있을 줄 알아
도마뱀을 따라 꽃밭으로 가 보고
잠자리처럼 연못에서 까불대고
물 위에 뱅글뱅글 글씨를 쓰고
그렇지, 진자 시(詩)를 쓰지
아침나절에는 이슬처럼 눈을 뜨고
풀밭에서 낮잠을 자고
나무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매미가 되어 숲으로 가지
내가 만일 너라면 따분하게시리
책상 앞에 붙었을 줄 알아
책에 씌인 것은 벽돌 같은 것 차돌 같은 것
그렇지, 살아서 반짝반짝 눈이 빛나는
그런 것이라곤 한 가지도 없지
내가 만일 너라면
조잘대는 냇물과 얘기를 하고
풀잎배를 타고항구로 나가고
무지개가 뿌리 박은 골짜기로 찾아가 보련만
이제 나는 도리가 없다.
너무 자라버린 사람이기에
어른은 어른은
참 따분하다
그렇지, 내가 만일 어린 소년이라면
나는 따분하게시리
책만 읽고 있을 줄 알아
▼ 신영희명창'제비노정기'대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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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제비노정기 제비가 다리부러져 흥부가 구해줘서 만리강남가다가 일어난 재미난 이야기로 엮어서 소리를 이어가는 한대목 마다 기가 막히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