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다. 산행할 날만 정해 놓고 전날까지 목적지를 가르쳐주지 않는 것이다. 뒤늦게 잡은 목적지는 몇 번 바뀌더니 결국 장수 장안산이 되었다. 산악회도 아닌 것이 정확한 모임 명칭도 없는 수상한 이들과의 1박2일 비박산행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토요일 아침, 터미널에서 만나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장수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배낭을 싸온 모양을 보니 비박을 즐기는 이들답게 베테랑다운 연륜이 묻어난다. 장수에서 마중 나온 이가 있으니 김동구(47)씨. 그가 대장이다. 닳은 등산복에 수염을 기른, 소탈한 분위기다. 모두 아홉 명, 대개 40~50대에 여자는 딱 한 명 박혜숙(48)씨다. 여자라 해도 70리터짜리 배낭에 꽉꽉 짐을 채웠다. 이들의 적당히 닳은 장비와 복장에서 오랜 산행의 무게감이 느껴진다. 점심을 먹고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 잠자리에 들기 전 환담을 나누며 즐기는 반디캠프 회원들. 이들은 느린 산행과 비박을 즐긴다.
들머리는 무령고개. 그러나 오른쪽 장안산 능선이 아닌 왼쪽 대간 능선으로 붙는다. 그새 목적지가 바뀌었는데 어떤 코스로 가는지는 물어도 답이 없다. 그래도 분위기는 희희낙락이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거나 심드렁한 이 없이 김 대장을 따를 뿐이다. 그렇다고 고압적인 상하관계도 아니다. 오랜 친구 같은 팀워크와 격의 없음이 곳곳에서 묻어난다. 묘한 집단이다.
개중에는 이름이 특이한 이들도 있다. 소재희(50)·필감량(40)씨로 화교다. 정명채(화교산악회 대장)씨가 만든 화교산악회원들로 오늘 처음 이들과 만났다. <월간산> 기자와의 동행취재니 화교산악회도 소개하고 교류도 할 겸해서 참가했다. 어쨌거나 이들을 따라 오르막을 치고 오른다.
무령고개에서 영취산 꼭대기는 금방이다. 그래도 산행 시작부터 비탈을 올라온 탓에 땀범벅이다. 11명의 인원이 정상에 엉덩이를 붙이니 비좁다. 그러나 한바탕 땀 흘리고 간식을 나눌 때의 마음의 거리는 훨씬 가깝다. 원래부터 목적지를 정해놓기보다는 즉흥적으로 가는 게 이들 모임의 특성이라 한다. 어떨 때는 비박산행을 준비해오라고 해서 나갔더니 바닷가로 간 적도 있단다. 조금씩 이들 모임의 스타일이 이해가 간다. 목적지를 바닷가로 바꾸어도 따를 만큼 이들의 김동구 대장에 대한 신뢰는 확고한 듯 보인다.
오늘 어디서 잘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가는 것이다. 이제부터 대간길이다. 사실 이렇듯 무책임할 정도로 즉흥적인 건 김 대장이 요 아래 논개마을에 살기 때문이다. 즉 대간 줄기지만 그의 집 뒷산이다. 영취산에서 북쪽 대간 줄기를 따라 간다. 날이 맑아 비박하기에 무리는 없어 보인다. 빙판이 조금씩 늘어나 아이젠을 신고 간다. 덕운봉에서 주변 산세를 둘러보고 길을 재촉한다. 바람이 덜 불고 적당히 평평한 비박 터를 찾는다.
일행보다 멀찌감치 앞서서 척후병 역할을 하는 이는 박병석(44)씨다. 전주에 사는 직업군인인 그는 체력이 좋아 앞장서서 비박터를 잡는다. 덕운봉에서 30분 정도 가자 전망바위다. 먼저 간 박병석씨가 저 아래 안부에 터를 잡은 게 보인다. 너른 편은 아니지만 그나마 이 근처에선 더 나은 야영터를 찾기는 어려울 듯하다. 몇 명은 텐트를 치고 몇 명은 끼니를 준비한다. 산불방지를 위해 눈을 파서 그 속에 버너를 넣어 음식을 한다.
텐트 두 동을 치고 짐을 적당히 정리하자 밥이 다 되어간다. 완전히 어둠이 내리자 헤드랜턴을 켜고 밥을 먹는다. 김치찌개에 별 반찬은 없지만 밥이 달디달다. 그리곤 반주를 나누며 남아도는 저녁 시간을 사람 사이의 얘기로 채워간다. 이런저런 얘기가 오가며 조금씩 그들을 알아간다.
이들은 서울 광화문의 소우(小雨) 카페에서 만나 의기투합한 이들이다. 1990년대 후반 카페의 단골들이 모여 산행을 해보자는 얘기가 나왔고 이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지금의 모임이 된 것이다. 공식 명칭은 없으나 인터넷 다음(daum) 까페명이 ‘반디캠프’이니, 이게 나름의 모임 명칭이라 할 수 있겠다.
얘기는 김동구씨에게서 시작된다. 서울 미아리가 고향인 그는 경북 영덕에서 자랐다. 어릴 적부터 산에 빠져 있다 20살이 되자 본격적으로 전국의 산을 쏘다녔다. 1990년대 초에 백두대간을 혼자 종주했으니 산에 미쳐 있었다고 봐도 좋다. 1990년대 후반 그는 ‘산악 노숙자’ 생활을 했다. 그냥 노숙자가 아닌 산악 노숙자였던 건, 장비를 배낭에 넣고 다니며 낮에는 광화문 길거리에서 등산장비를 팔고 밤에는 불광동 북한산 자락에서 비박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광화문 소우에 출입하게 됐다. 소우는 옛 피맛골이나 인사동의 허름한 분위기로 5평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카페다. 공간은 작지만 이곳에서 이루어진 사람 사이의 관계가 적지 않아 손님들이 돌아가며 통기타를 치며 노래하고 허심탄회한 얘기를 나누며 맥주를 마시는 그런 공간이었다. 협소한 만큼 낯선 단골들은 빠르게 가까워졌고 등산을 같이 하자고 의기투합했다. 그걸 제의하고 꼬드긴 이가 김동구씨다. 그렇게 얼마간 산행을 하다 그는 이들을 이끌고 백두대간 종주를 시작했다. 이들 말로는 “골초에 술 잘 먹고 산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의기투합했다”고 한다.
대간을 두 번 종주했던 그는 어떻게 산을 타야 재미가 있는지 알고 있었다. 1박2일 산에서 비박하며 대간을 4년에 걸쳐 종주한 것이다. 한 달에 두 번씩 대간으로 갔음에도 4년이나 걸린 건 속도에 연연하지 않고 풍경을 만끽하고 야영을 즐기는 통에 그리 된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모임이 인원이 불어 지금의 반디캠프로 100명까지 되었다. 까페 회원 중에는 소우에서 만난 이들 외에 김 대장에게 흙집 짓는 법을 배우는 사람들도 있다.
지금껏 직장생활을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김동구씨는 소우에서 지금의 부인을 만나 결혼했다. 그 후 단돈 150만 원을 쥐고 지금의 장수 논개마을에 내려와 흙집을 짓고 살았다. 그의 흙집 짓는 솜씨가 뛰어나 입소문이 퍼지면서 생활이 안정되었고 그에게 기술을 배우려는 사람들이 찾기에 이르렀다. 흙집 계통에서는 김 대장이 유명하다는 게 주변인들의 귀띔이다.
10년 이상 함께 산행을 해왔고 김동구씨가 대장 역할을 잘 소화하며 즐겁게 이끌었기에 지금의 무한 신뢰가 생긴 것이다. 더불어 쉬엄쉬엄 산행하며 야영의 낭만과 여유를 즐긴다는 데 모두 공감했기에 가능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간다는 게 이들의 원칙이지만 야영과 비박을 안 좋게 보는 등산객도 있기에 한적한 오지 산으로 많이 간단다.
▲ 산행 후 김동구씨가 직접 지은 흙집에 모인 회원들. 앞줄 오른쪽부터 시계방향으로 이성규·정명채·김동구·박병석·박혜숙·이기주·소재희·필감량씨. 맨 뒤는 이종옥씨.
사랑하는 이와 가는 산이 제일 좋은 산
▲ 1 백두대간 장수 덕운봉 줄기 안부에서 야영한다. 2 덕운봉 전망바위의 일몰. 박혜숙씨와 박병석씨. 3 영취산 정상에서 쉬는 반디캠프 회원들.
가만 보니 비박보다 텐트에 야영을 준비한 이들이 더 많다. 2007년 대간 종주를 끝낸 후로는 한겨울 비박산행을 자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이후로 산행에 얽매이지 않고 캠핑이나 여행처럼 더 큰 테두리 속에서 느리게 즐기는 데 집중하고 있다. 그래서 김 대장은 “좋은 산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누구와 같이 가느냐에 따라 좋은 산과 아닌 산이 갈린다”며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면 그 어떤 산이라도 좋게 느껴지기 마련”이라 한다.
홍일점인 박혜숙씨는 소우의 주인장이다. 1990년대 소우를 인수해 지금까지 가게를 해왔고 대간을 처음 시작했을 때부터 동참해왔으며 모임에서는 총무 역할을 한다. 이종옥(42)씨는 천안의 JS전선에서 근무하며 대간을 함께 뛴 초기 멤버다.
SK스탁파트너에서 근무하며 반디캠프 까페 운영자인 이기주(45)씨는 구수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띄운다. 여행업으로 잔뼈가 굵은 정명채씨는 중국인들의 국내 관광을 가이드한 지 30년이 되었다. 중국어 중에서도 광동어와 표준어를 모두 구사하는 보기 드문 한국인이며, 한국관광공사 가이드 시험문제출제위원이기도 하다. 그래서 여행업에 종사하는 화교들과도 친해서 산 좋아하는 이들을 모아 한국화교산악회를 만들었다.
소재희·필감량씨는 산악회 회원으로 산을 제대로 배우기 위해 정씨를 따라 산에 자주 다닌다고 한다. 산행은 오래 했지만 야영은 처음이라는 이성규(55)씨는 정씨의 친구로 “새로운 경험을 하고 싶어” 산행에 동참했다.
밤이 깊어지자 얘기도 깊어간다. 술잔이 돌자 사람 사이의 거리가 좁혀진다. 그러나 찬 바람도 더 세차게 불어온다. 영하 15도, 지고 온 술이 떨어지자 더 이상 추위를 견디지 못하고 하나둘 침낭 속으로 들어간다. 비박장비가 없는 이들은 텐트에서 자고 나머지는 비박이다. 나뭇가지 사이로 별이 쏟아진다. 산의 품에 꼭 안긴 채 드르렁 곯아떨어진다.
여유로운 아침이다. 깨우는 사람도 없고 식사 당번도 없지만 알아서들 한다. 박혜숙씨는 과거와는 많이 달라졌다고 한다.
“대간 뛸 때는 산에서 5시 반에 일어났지만 지금은 놀자 산행이니까 아침에도 늦게 일어나요. 요즘은 산행에 국한되지 않고 즐기는 데 역점을 두고 있어요.”
누룽지로 아침을 삼고 텐트를 걷어 이동한다. 김동구 대장이 이끄는 대로 따른다. 그는 모임의 핵심이자 기인이다. 한 번은 양평 중원산에 오르다 날이 어두워져 비박을 하는데 술이 떨어져 아쉬워하자 온 길을 그대로 내려가 닫힌 가게 문을 두드려 술을 사온 적도 있단다. 이런 그의 즉흥성은 오랜 경험이 밑바탕이 되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게 반디캠프 회원들의 공통된 말이다.
“우리가 어디로 가는지, 어디서 자는지 안 물어보는 건 대장을 믿기 때문이에요. 오랫동안 쌓인 믿음이고 그만의 연륜과 경험을 알기에 무조건 따르는 겁니다.”
이기주씨의 이 말을 들을 때쯤 이상한 모임이라 생각했던 첫인상이 완전히 사라지고 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대간길을 따르다 안부에서 계곡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이정표가 없는 비등산로지만 경사가 완만해 내려서기에 무리가 없다. 한동안 계곡을 내려서자 딴 세상처럼 확 뚫린 너른 분지가 나온다. 볕이 잘 들어 산행의 긴장이 한순간 풀어지는 여유로운 산촌이다. 김 대장은 수 년 전 대간을 타다 이리로 하산했고 이 마을을 만났다. 그때 이곳에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아내와 함께 이곳에 터를 잡았다.
시골 특유의 텃세가 있었으나 매일 아침마다 마을을 쓸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자 마을 어르신들이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장수군에서도 그의 솜씨를 인정해 논개마을 지붕을 모두 수선했다. 관광객 유치를 위해 모두 초가지붕을 이었으나 악취와 벌레 때문에 돌기와 지붕으로 바꾼 것이다.
▲ 어두컴컴한 산에서의 비박은 사람 사이를 끈끈하게 이어주는 힘이 있다.
논개마을의 그가 직접 지은 집에서 배낭을 내려놓는다. 김동구씨가 모임에 대해 입을 연다.
“우리는 개방적입니다. 오는 사람 안 막고 가는 사람 안 잡습니다. 산행하는 걸 보면 이해가 안 될지 모르지만 우리에겐 무형식이 형식입니다. 이 부분을 모두 암묵적으로 동의하기에 지금껏 사고 한 번 없이 산행이 이어져 왔지요.”
소우(小雨)에서 만난 이들은 작은 비에 자기도 모르게 흠뻑 젖듯 산행 속에서 서로에게 젖어들었다. 느릿느릿 걸어갈 이들의 산행은 오래도록 이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