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명의 햇살로 출렁이는 새벽 바다는 참으로 아름다웠다. 하느님이 해를 밤새도록 바다에 담가 우려낸 색소가 푸른 바다와 어우르니 형언하기 어려울 만큼 환상적이다. 새벽이 밤의 꼬리를 아직 붙잡고 있어 검은 빛이 남아있는 데에다 여명의 붉은 빛살을 섞었으니, 바닷물에 풀어진 이 물빛의 신비스런 조화를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으리.
나는 그 유혹에 이끌려 자고 있는 남편을 깨워 해변으로 나갔다. 백사장에는 나보다 더 부지런한 사람들이 먼저 나와 해뜨기 전의 희뿌연한 해변과 친하고 있었다.
바닷물은 밤새 혼자서 모래톱 위를 들락날락 하며 놀다가 그만 새벽잠이 들었는지 잠잠하게 누워있다. 이 큰 바다가 그야말로 명경지수다. 우리는 맨발로 백사장을 걸으면서 발바닥에 닿는 모래의 보드라운 감촉을 즐기며, 밤 내내 모래톱 위에 밀어 올려진 조개껍질을 줍기도 하고 이따금 잠든 바다에게 가벼운 발길질을 해 그를 깨워보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꼬리만 남은 밤이 도마뱀처럼 꼬리를 자르고 달아나자 바다는 얼른 태양을 목욕시켜 하늘로 밀어올리고 있다. 하늘을 향해 쑥쑥 키대기를 하며 자라는 해는 서서히 뜨거운 사랑을 방사선으로 세상에 골고루 쏟아 붓는다.
터키의 작은 마을, 에게해 아이발릭 해변의 호텔을 등뒤로 하고 서서 손을 이마에 얹어 빛을 가리고 바라보는 수평선은 공처럼 둥글다. 언제나 바다를 보면 느끼는 일이지만 하늘과 바다는 한 형제 같다는 생각이 든다. 큰 바다는 같은 피부색을 가진 하늘과 늘 맞대고 있으니 말이다.
깊게 심호흡을 해 오존을 실컷 마셔본다. 그리고 이번 여행을 함께 한 일행 몇몇과 모래 위에 주저앉아 상쾌한 기분으로 이런저런 이야기를 재미있게 나누다가 일어서려는데, 그때 마침 작은 고깃배 한 척이 우리 앞으로 미끄러지듯 조용히 들어와 닻을 내린다. 잡아 온 생선이 무엇일까 궁금해 배 안을 기웃거리자, 우리가 하는 양을 지켜보고 있던 노 어부가 웃으면서 갑오징어 새끼 두 마리를 손바닥에 올려놓고서 보여준다. 회를 좋아하는 남편이 노인한테 그걸 달라고 해 받아들고 칼을 찾는다.
70세쯤 되었을까. 그 노인은 칼이 없다며 대산 주머니칼을 꺼내 준다. 남편은 갑오징어의 등뼈를 빼고 바닷물에 먹물을 씻어 칼로 썬 다음, 언제 담아 왔는지 기내에서 챙겨 담은 샘플 고추장을 꺼내 찍어 먹으면서 연신 맛있다고 입맛을 다신다. 나도 흥미 있는 일이라 거들어 한 점 먹어본다. 맛있다. 싱싱하기도 하려니와 에게해 해변에서의 갑오징어라니, 그것만으로도 이미 맛은 일품인 것이다.
더 먹고 싶어도 노인이 잡아온 수확은 그것이 전부였다. 우리의 하는 양을 노인은 빙긋이 웃으며 지켜보고 나서 주머니칼을 챙겨 담는다. 그의 얼굴에는 별 욕심 없이 살아온 듯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일할 수 있는 건강을 주신 것만으로도 알라신에게 감사할 것같은 이웃집 맘 좋은 할아버지의 그런 편안함이었다.
남편은 고기값에 비해 후하다 할 만큼 한 액수를 노인의 손에 쥐어 줬지만 노인은 한사코 손을 뿌리치며 거절했다. 몇 번의 실랑이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웃으며 손을 흔들고 뱃머리를 돌려 미끄러지듯 다시 바다로 서서히 빠져나갔다. 우린 그 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지켜보고 서 있었다.
겨우 한 둘이 앉을까 말까한 작은 배에 그물이래야 고작 냇가에서 금방 던졌다가 건져 올리는 천렵이나 할 만큼 작은 것이었는데, 그것도 터진 걸 이내 손질하자마자 다시 나가는 것이 아닌가. 처음 본 이방인에게 자기의 아침 노동을 털어 준 노인이 한없이 고맙고 미안했다. 우린 막상 에게해의 낭만을 즐겼겠지만 그 노인에겐 그게 수입원의 전부가 아니었는지.
노인과 주고받은 정담은 비록 없었지만 사람 사는 동네의 모습은 다 똑같았다. 노인은 별 것 아닌 그까짓 조그만 오징어 두 마리를 주고 무슨 돈이냐 싶어 오히려 쑥스러워 얼른 자리를 비켰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생전 처음 만난 이방인에게 자기의 후한 마음을 나눠주었고 우리는 노인이 거저 준 사랑을 맛본 것이다.
그 옛날, 바다의 신 포세이돈은 이 에게해의 깊은 바닷물 속에서 영원히 무너지지 않는 으리으리한 황금궁전을 짓고 살았다. 그리고, 일이 생길 때마다 청동바퀴를 단 으리으리한 황금마차를 끌고 궁전을 나와 물위로 내몰았다. 그는 황금갑옷을 입고, 황금빛 갈기털의 말이 이끄는 마차에 앉아 넓은 바다 위로 내달으면, 깊은 물 속의 모든 괴물들이 솟아올라 즐겁게 뛰놀았으며 바다는 흥겨워 길을 터 주었다. 그리고 마차는 마치 공중을 날 듯 가볍게 물
살 위를 달렸다.
그렇다. 바로 여기가 포세이돈이 살면서 그가 지배하던 그 바다 에게해가 아니던가. 나는, 운(運)을 나누어 주는 여신 라케시스가 포세이돈에게 부탁해, 이 노인의 남은 여생 동안 그가 그물을 끌어올릴 때마다 한 배 가득 만선의 기쁨이 채워지게 하도록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리고, 밤새도록 애썼지만 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한 시몬의 두 배에 그물이 찢어질 만큼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해준 예수님의 겐네사렛 호수에서의 기적이 이 노인에게도 일어나기를 내가 믿는 하느님께도 기도했다.
이제 막 늦잠에서 깨어나 철썩대는 에게해의 바다와 나는 하직 인사를 하고, 헤밍웨이의 소설 <노인과 바다>를 떠올리며 호텔을 향해 발길을 돌렸다.
조한금 기행수필집 <눈으로 가고 발로 보고>(2000, 도서출판 나라)중에서
작가소개
조한금 전남 완도에서 태어났으며, 숭실대학교 중소기업대학원 여성경영자과정을 수료했다. 1984년 한국 천주교회 200주년 기념 카톨릭 신앙 문예작품공모 신앙수기 부문에 우수작으로 당선되었으며, 1993년 '로키標 얼음물(氷水)'이 계간지 <창작수필> 신인상에 당선,문단에 나왔다.
현재 (주)엔두(n.Do)의 대표이사와 한국경제인 협회 인천지회 이사로 경제활동에 동분서주하면서, 한국카톨릭 문인회, 한국문인협회 회원, 창작수필문인회의 회장으로, 창작활동에도 전념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