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세군의 종소리와 스님의 목탁소리
지난 해 세미나에 참석 차 서울에 갔습니다.
광화문 근처 어느 빌딩이었는데 회의 도중 나는 슬그머니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여독 때문인지 골치가 아파 오더군요.
주머니를 뒤져 커피를 뽑았습니다.
습관처럼 창밖을 내다보았지요.
정오를 넘어서고 있는 거리에는 자선냄비가 놓여져 있고 구세군의 종소리는 하얀 눈발들 사이를 시나브로 날고 있었습니다.
그때였습니다.
잿빛 옷의 스님 한 분이 나타나더니 몇 미터쯤 떨어진 곳에 자리를 깔고 바리때를 올려 놓았습니다. 그러더니 목탁을 꺼내어 염불을 시작하는 게 아니겠어요.
구세군의 종소리와 스님의 목탁 소리. 사람들은 스스로도 그다지 조화롭지 못하면서도
타인의 부조화엔 어김없이 질타를 보내곤 하죠.
조금 전까지만 해도 방관자이던 걸음들까지 그 앞을 머뭇거리며 구경을 했습니다.
다가가 보지 않아도 그들이 흘리는 야릇한 미소가 보였습니다.
땅거미가 어둑할 무렵 세미나는 끝이 났고 모처럼의 해후인지라 삼삼오오 짝을 지어 가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그러다가 눈길이 창밖으로 갔습니다.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여전히 사랑을 호소하고 있었으나 스님은 자리를 거두어 귀가 채비를 하던 참이었습니다.
나는 우리나라 종교 인구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많을까를 생각하며 속으로 자선냄비와 바리때의 무게를 저울질해 보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자리 정돈을 마친 스님이 성큼성큼 자선냄비로 다가가더니 바리때의 돈을 하나도 남김없이 부어 주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보았습니다.
총총히 돌아서는 젊은 스님의 뒷모습에서 우리들의 희망을 본 것입니다.
위 글은 월간잡지인 {좋은 생각}이라는 책자에 소개되어 2002년도 추운 겨울을 보내면서 방송매체와 인터넷을 통해 우리들의 마음을 아주 훈훈하게 해주었고 당시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살 맛 나게 해준 하나의 행복 바이러스였습니다.
더불어 다종교사회인 대한민국에서 불우이웃돕기와 자선모금행사라는 공동선에 대표적인 종교가 고정관념을 깨고 하나로 만나는 것에 더욱 더 큰 희망과 기쁨이 함께 했던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성탄절을 맞이하여 어렵고 힘들고 가난하고 소외되며, 추위에 떨고 굶주림에 목말라 하는 우리의 이웃은 없는가를 살펴봅시다.
그리고 혹여나 소외된 이웃이 있다면 그들에게도 예수님의 사랑과 자비의 광명이 함께 하여 온누리에 웃음과 평화가 넘쳐나는 낙원세상이 되고, 서로 간에 배척과 질시의 장막을 걷어버리고 정의가 건네고 소통을 이루며 하나로 통합하는 행복하고 아름다운 성탄절이 되길 염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