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김성욱님의 글을 퍼왔습니다. 통일부 장관 내정자인 이재정과 성공회대학교의 실체를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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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실현을 주장해 온 인물이 통일부장관에 내정됐다. 지난 1일 이종석 통일부장관 후임으로 내정된 이재정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80~90년대 소위 “기독교 사회주의”실현을 내걸고 성공회대학교를 이끌어 온 인물이다.
그는 2004년 6월16일 한겨레21 인터뷰에서 성공회교의 근본이념은 평등과 관용에 기초한 ‘기독교 사회주의’라고 설명하면서 “제가 88년 학교를 처음 맡았을 때 이 학교를 통해 신학적·교육적으로 구현하고자 한 이념은 ‘기독교 사회주의’였습니다”라고 주장했다.
또 기독교 사회주의를 실천하는 학교를 사회적 평등·南北 대화와 평화·男女 인간평등을 실천하는 곳으로 규정하면서 “성공회대의 역할은 우수한 엘리트가 아닌 역사와 세상을 보는 판단력을 갖춘 더불어 사는 평민을 길러내는 곳”이라고 설명했다.
李내정자는 성공회신학교(~93년)를 성공회신학대학(93년~94년), 성공회대학교(94년~)로 성장시키면서 88년에서 2000년까지 각각 교장, 학장, 총장으로 학교를 이끌어 왔다.
그는 이 과정에서 左派학자들을 대거 등용, 성공회대를 左派논리를 만드는 ‘판도라의 상자’로 만들었다.
성공회대는 민중(民衆)신학, 脫식민지 신학, 여성해방신학, 제3세계 신학 등을 연구하는 非주류 신학이론의 생산창고로도 기능했다.
신임교수 임용 시 학생운동이나 투옥경력은 ‘결격사유’가 아니라 ‘우대사항’이 됐다.
李내정자는 총장 재직 당시인 99년 모 월간지 인터뷰에서 “과거 청춘을 다 바쳐 사회정의를 부르짖으며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에게 대학이 응분의 보상을 해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68년 통혁당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88년 가석방된 신영복氏는 풀려난 다음 해 성공회신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특채됐다. 역시 통혁당 사건에서 15년형을 선고받고 풀려난 한명숙 총리의 남편 박성준氏는 2001년부터 성공회대 NGO대학원 교수로 재직 중이다.
통혁당은 공산혁명을 목표로 하여 중앙당(中央黨)인 조선로동당의 지휘를 받아 건설된 남한 내 지하당(地下黨)으로서, 신영복·박성준氏는 통혁당의 살아남은 최고위급 간부들이다.
또 “김일성은 참으로 많은 것을 성취한 자수성가형 민족영웅”이라고 격찬해 온 한홍구(교양학부) 교수, “한국전쟁 당시 한국군과 미군에 의한 정치적 학살이 이뤄져왔다”고 주장해 온 김동춘(사회과학부) 교수를 비롯해 조희연, 정해구, 이종구, 김진업, 박경태 교수 등 운동권 출신 좌파학자들이 대거 기용됐다.
성공회대는 교수의 3분의1 이상이 운동권 출신인 것으로 알려졌다.
<참고 : 이재정 국회의원의 행적>
이재정(李在禎) 민주평통 수석부의장은 16대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국회에서 2003년 4월18일 한총련 합법화 대책위 구성, 2003년 6월22일 對北송금수사 중단 촉구 등 활동을 벌였다. 2004년에는 ‘대선 당시 不法자금을 수수해 盧후보측에 전달한 혐의’로 대법원에서 벌금 3천만 원의 유죄판결을 받았으나, 선고 2개월 후인 같은 해 10월24일 장관급인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에 임명됐다. 그는 수석부의장 자격으로 對北지원에 앞장서는 한편 △南北정상회담 정례화 건의(2005년 12월) △국가보안법의 신속한 정비 건의(2005년 9월) △북한의 평화적 核이용권 보장 건의(2005년 9월) 등 金正日 정권에 대한 지원·강화활동을 계속했다. 지난 2월23일에는 『對北지원이 국민들의 선택이 아닌 의무』라고 주장하는가 하면, 북한 核실험 이후인 10월18일에도 『금강산관광·개성공단 및 對北지원을 중단해선 안 된다』고 강변했다. 2005년 1월6일 북한체제를 美化해 온 간첩출신 김남식이 사망하자, 장례식장에서 『김남식 선생님은 민족통일운동사의 큰 업적을 이룬 분이며 존경해 마지않던 분이다. 그 업적을 높이 치하해야 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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