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위의 글에서, 민족주의가 밥맛이 없으며
<민족주의>는 <국가주의>와 다름이 아니라고 말했다.
물론 해창만님이 언급한 것처럼
자기 민족의 현실엔 무한히 관대하고
타민족의 현실엔, 자기가 제국주의에 당한 것 이상으로
억압적인 <민족주의>는 말할 것도 없이 나쁘다.
이것은, <민족주의>를 신봉하는 나라가 힘을 가졌을 때
곧바로 <패권주의>와 <제국주의>로 직결된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두 말할 나위도 없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나라의 <민족주의>는
<패권적> 민족주의가 아니라, 오랜 제국의 침략과
식민 통치의 역사를 살아왔다는 경험 속에서
<저항적 민족주의>였다고, 그러므로 그렇게 비판해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현세의 만화 <남벌>과
이인화의 소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읽어보라
이 베스트셀러 만화와 소설에 흥분하는 사람들은
물론 그 배경은 역사 전체를 통틀어 언제나
침략과 수탈만 당했던 우리 국민의 현실에 대한
저항감일 것이나, 그 만화와 소설에서 보여주고 있는
<강한 나라 만들기>란 과연 일본이나 독일의 민족주의에서
출발한 패권주의와 무엇이 다른가.
하지만, 요즘 나는 우리의 민족주의가 <배타적>이라는 점보다
오히려, 그것이 곧장 <국가주의>로 귀결된다는 점에 더욱 주목한다.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정희를 기억해보라.
그가 내세운 조국 근대화의 기치는
<민족 중흥의 사명>을 띠고 이땅에 태어났다는
민족주의로부터 출발했다.
그것은 그가 국시로 내세운 <반공주의>를 합리화하기 위해
내세운 <민족주의>였고, 세계에서 몇 안되는 단일민족인
우리 온 국민이 일치단결해서 조국 근대화를 이뤄야한다는
미명아래 저질러진, 민주주의의 압살이었다.
해창만님은 종군위안부 문제에, 민족주의로써
우리나라 사람들이 흥분한다고 말하지만.....
다시 한 번 과거를 냉정히 더듬어보라.
우리 국민들이 종군위안부 문제에 흥분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몇 년이 되지 않은 일이다.
오히려, 이 나라 정부는 <종군 위안부>문제가
<민족>의 치욕이고 수치이기 때문에, 국민들은 물론
해외에 알려지기조차 꺼려했고, 공식적으로 일본 정부에
그 문제를 제기하지 못했다. 그 논리가 바로 <민족주의>였다.
종군위안부들을 50년동안이나 침묵시킨
억압의 구조가 바로 다름아닌 전쟁 중의 <성폭력>이
<개인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민족적 치욕>이라고 여기는,
(강간당한 피해 여성이 가해자보다 수치스러워야 마땅하다는
이 어처구니없는 현실!!!) 남성중심의 가부장제 권력의 논리가
바로 그 잘난 <민족주의>였단 말이다.
종군위안부 문제조차, 민족주의적 입장에서가 아니라
여성주의적 입장에서 봐야만 하는 이유가 바로 이 점이다.
이 시점에서 나는 내게 큰 감동을 주었던, 종군위안부 문제를
알리는 다큐멘터리 영화에 한 청춘을 바친 적이 있었던 감독,
변영주의 유명한 말을 다시 상기한다. 분명히, 어떤 문제에 대해
싸우고 있으면서도, 한켠 그 안의 또다른 문제를 명확히 분리해내고
그것과도 싸워야한다고 말하는 예민함이 없이, 우리는 늘
뭉뚱그려진 문제들 속에서 허우적거리게 될 것이란 생각에 말이다.
"언제였던가, 한 청년단체에서 수요시위를 지원하기 위해 왔다.
한 똑똑해 보이는 젊은 남성이 이렇게 이야기했다.
'단지 교수님께서 몇번 장난을 친 것으로도 우조교는 삼천만원의
배상을 받았는데, 심지어 일본인에게 폭력을 당한 할머니들이
배상을 받지 못하다니요!' 아, 나는 그 친구와 같은 전선에 서있는
그 순간이 너무도 부끄러웠고, 이제는 적과 아군을 정확히 구분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 정확히 말하자.
나는 민족주의자가 아니다. 아니 민족주의자를 경멸한다.
민족주의는 좌파적인 색채를 띤 파시스트일 뿐이다.
제대로 말하자. '위안부' 문제에 대해 민족주의자들과 난
같은 전선에 있는 듯 보이지만 우린 적이다. 결론적으로
내 주위에 내 편은 별로 없는 것 같다."
얘기가 삼천포로 좀 샜다. 다시 방향을 잡자.
민족주의의 폐해를 지적하라면 날을 샐 수도
있을 것같지만, 몇 가지 예를 더 짚어본다.
IMF의 원흉은 과연 누구였다고 생각하는가?
그러나, 이 나라는, 그 책임을 고스란히 국민에게
떠넘겨서, 곧장 다시 <민족주의>를 부추기면서
금모으기 운동을 전개했다.
<나라>를 살리고, <민족>을 살리자는데, 외국에서도
애국가만 들리면, 가슴이 내려앉는다는 우리의 순진한
국민들은, IMF의 원흉을 규명해내고, 그 진범들을
처벌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는 일은 뒷전인 채
자신들의 장농과 서랍을 털어, 결혼반지까지 내놓았다.
그러는 동안 이미 실직당하고, 집을 잃고
거리를 떠돌며, 노숙자 신세가 된 수십만명의
노동자들은 자살을 꿈꾸었고, 셀 수 없는 사업장들에서
고용안정 투쟁을 벌일 때는, 어떤 공안 정국 못지않은
테러가 감행되었으며, 여중생 둘이 끔찍하게 죽었다.
바로 그때, 우리 국민들은 또다시
그 놈의 <민족주의> 선전에 속아
반칙 판정으로 실격당한 스케이트 선수의
명예만 회복되면, 민족의 자긍심이 살아나기라도
할 것처럼, 거기에 흥분했으며, 월드컵 경기에
이기고 지는 것이 나라의 운명을 뒤바꿀 것처럼 흥분했다.
두 여중생이 미군 장갑차에 의해 살해당했다.
그리고, 그 살해범들이 법정에서 무죄판결을 받았다.
이 문제는...두 여중생이 한민족이 아니라고 해도
마땅히 분노할 문제이고, 온당한 처벌을 주장할 일이며
그 온당한 처벌을 위해...불평등한 소파협정을 개정해야할 일이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는 모든 문제들과 사안들에
대해서, 사실 우리는, <우리 민족의 일이기 때문에>가
아니라, 그 문제들이 <올바르지 않기 때문에> 또는
<우리 삶에 끔찍한 영향을 주고 있기 때문에> 싸워야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있어 정작 필요한 것은
월드컵때는 스포츠 경기 하나에 운명을 걸고
소파개정 문제에는 국가적 평등을 위해 운명을 걸고
외국인 노동자 문제에는 <인종차별주의>로 귀결되는...
코에 걸면, 코걸이이고 귀에 걸면 귀걸이인
<민족주의>가 아니라......개인적 성찰과 결의를 토대로
언제든, 우리 사회의 모든 문제들에 있어, 함께 연대할 수
있는 <근대적 시민정신>이 아닌가?
결국 민족주의란, 우리가 어떤 것에 저항할 때보다는
우리의 정당한 인권을 유린당할 때, 우리를
바보로 만들기 위한 도구로써 사용되어왔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 쉽게 잊는 것은 아닌가?
우리의 아이들이, <민족주의>라는 똑같은 잣대로
죽일듯이 스포츠 경기 하나에 목숨을 걸고
또, 퍼킹유에스에이라는 노래에 흥분하며
여중생 문제에 흥분할 때,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해주어야할 것은, 그 아이들의 <민족주의>를 다듬어주는
일이 아니라, 그 아이들이 갖고 있는 그릇된 <민족주의>를
어떻게 <근대적 시민정신>으로 키워줄 것이냐의 문제가 아닌가?
여중생 사건에 흥분해서 저항하는 것처럼 보이는 바로 그 사람들이
미국에 아부하지 않겠다는 후보들보다도, 오히려
자기가 당선되어야만, 경제고 나라고 강해질 수 있다는
이회창의 연설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단 말이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이는 미국에 반대하면서 계란으로 바위치기를
할 것이 아니라 이회창처럼 강한 인물에 투표하여,
또다시 자신의 인권을 포기하더라도, 나라를 강하게 만들어야한다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의 논리에 승복하고 있단 말이다.
물론 그 사람들 모두가 그렇다는 뜻은 아니다.
하지만, 여중생 사건에 저항하고자 하는 사람들의 내부 논리가
바로 그 <민족주의>이기 때문에, 우리는 그런 모순들을 어쩔 수
없이 봐야하고, 어쩔 수 없이 승인해야한다는 현실은,
너무나 끔찍하고 놀랍지 않은가?
나는 사실, <민족>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이 글을 쓰면서 나는 물론, 그런 원론적인 언급까지는 피하고 있지만
좀 더 고민해보실 분들을 위하여, 좋은글 나누기 방에 시기적으로
좀 된 글이긴 하지만, 남의 글 하나를 퍼다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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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변화시키는 인터넷①』
(≫≪) 미군 희생 여중생들의 죽음을 애도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