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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da교회 교과분이지만 발췌한 것입니다
개신교인들을 위해 여러가지로 다양하게 이런것도 발췌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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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제2기 소그룹 교재
다니엘서에 숨겨진 복음
김재호 목사(광주 운암교회 담임)
머리말
다니엘서는 재림운동의 진원(震源)입니다. 윌리엄 밀러가 이 잡듯이 성경을 연구하며 전진하다가 머물러 선 유서 깊은 말씀의 터전입니다. 이 작은 책은 예언을 연구하던 재림교회의 선조들이 감동에 떨리며 환호했던 감미로운 말씀입니다. 이와 함께 재림운동권에 대실망을 초래하며 낭패와 당혹감으로 쓰디쓴 경험을 안겨주었던 책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수천 년이 지나도록 옛 모습 그대로였습니다. 다만 사람들의 생각이 시대를 달리하며 변화무쌍(變化無雙)했을 뿐입니다. 어찌 수천 년을 묵묵히 그 자리에 그대로 변함이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탓할 수 있겠습니까? 이 봉인되었다가 펼쳐진 책을 두고 사람들이 벌이는 논란은 지금도 현재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순도를 흐리는 또 다른 인간의 손때가 묻지 않도록 극히 조심하면서 성령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이 역사적인 책을 다루게 되었습니다.
다니엘서는 구약 성경의 중요한 예언서입니다. 특히 신약 성경의 요한 계시록과 쌍벽을 이루면서 말세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확실한 길잡이가 되는 등불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성경은 예수님 이야기입니다(요 5:39). 소소하게는 금속 신상이나 크게는 돌나라이며, 조무래기 짐승들이 출몰하는 세상이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영원한 나라를 소개하는 복음입니다. 가장 긴 기간을 포괄하는 예언인 2300주야와 그 끝이 1844년일지라도 그 진리의 중심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이 곧 길(道)이고 진리(眞理)이시고 생명(生命)이시기 때문입니다.
지난 기에는 창세기를 통해서 예수님을 만났으며 이번 기에는 다니엘서 속에 숨겨진 예수님을 뵈려고 합니다. 자칫 형상화된 이미지 속에 그리고 난해한 숫자 속에 가려질 수 있는 주님을 만나려고 합니다. 교재자체에 성경 내용 이외의 특별한 내용이 가미되지 않았습니다. 이미 다 아는 내용이기에 흥미로운 예화도 없습니다. 그저 매 주제를 붙들고 오늘 우리에게 주어지는 기별들을 반추하며 우리들의 생활 속에 치열하게 적용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은 마지막 때에 다니엘서를 유심(留心)하도록 가리켜주셨습니다(마 24:15). 감사합니다.
* 이 소그룹 교재는 안식일학교 홈페이지(www.sspm.or.kr)에 파일로 제공되고 있습니다.
(안식일학교 홈페이지 로그인 -> 안교활동반 -> 소그룹 교재)
목 차
제1과 하나님의 징계와 섭리
제2과 하나님의 청년 전사들
제3과 인간의 궁지와 하나님의 기회
제4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제5과 하나님의 나라
제6과 신들의 아들
제7과 거룩한 신들의 영
제8과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제9과 네 하나님 나의 하나님
제10과 인자 같은 이
제11과 가브리엘에게 내린 명령
제12과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제13과 봉함하라는 말씀
제1과 하나님의 징계와 섭리
⃞ 오늘의 본문 - (단 1:1-2) 유다 왕 여호야김이 위에 있은 지 삼 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그것을 에워쌌더니 주께서 유다 왕 여호야김과 하나님의 전 기구 얼마를 그의 손에 붙이시매 그가 그것을 가지고 시날 땅 자기 신의 묘에 이르러 그 신의 보고에 두었더라”
⃞ 주제 설정 - 징계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 말씀 나누기
1. 유다의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함락된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입니까? (신 28:1,2; 52,53)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느냐의 여부에 달려있다. 이러한 원칙은 에덴동산에서부터 시작된 법(法) 정신이다(창 2:16-17). 모세가 가나안 변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유언처럼 경고한 것도 동일하였다(신 28:1-2).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데 번번이 실패하였다. 북방 이스라엘 약 209년간 20명의 왕들이 한결같이 모두 악하였다. 남방 유다는 345년 동안 20여명의 왕들이 지나갔으나 그들도 패역과 불순종에서 헤어나지 못하였다. 이따금 선한 왕들이 등장하기는 했으나 기울어지는 국가의 운명을 바로 세우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은 다윗 이후로 배도와 위기의 때에 하나님의 나라를 발전시키기 위하여 가장 힘 있게 일한 왕이었다(선지자와 왕, 340). 그는 즉위하자마자 성전을 개축하여 신앙을 개혁(왕하 18:3-6)하고, 거국적으로 유월절을 지켰다(대하 29:1-31:21). 군사적으로는 예루살렘이 포위될 것을 예상하여 실로암 터널을 만들어 비상시 급수로를 확보하였다(대하 32:4, 30; 왕하 20:20). 블레셋을 제압하였고(왕하 18:8), 앗시리아의 위협 앞에 풍전등화와 같은 예루살렘을 하룻밤 사이에 구원해 내시는 하나님의 개입을 목도하기도 하였다(왕하 19:9-36).
2. 유다 왕 히스기야는 어떤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였습니까? (사 39:1-8)
항상 교만(驕慢)은 패망의 선봉장이다(잠 16:18). 히스기야왕은 그의 통치 황금기에 병들어 죽게 되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에게 “네가 죽고 살지 못하리라”(사 38:1)는 하나님의 기별을 전달하였다. 그러나 히스기야는 눈물로 기도하여 15년이나 생명을 연장 받았다. 천문학을 연구하던 바벨론 박사들은 해시계의 그림자가 십도 뒤로 물러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의 왕 므로닥발라단은 이 이적(異蹟)이 하나님께서 유다 왕 히스기야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표라는 사실을 알고 예루살렘으로 사신(使臣)을 보냈다. 바벨론 왕은 유다 왕의 회복을 축하하고 그와 같이 큰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구원의 하나님에 대하여 배워오도록 하였다(선지자와 왕, 344).
이제 히스기야는 이방나라 사신들에게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도할 절호의 기회가 주어졌다. 모든 희망이 사라졌을 때에 그가 어떻게 기도했는지 말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으로 자기의 죽을병이 치유되었다는 사실을 간증할 수 있었다(왕하 20:4-6). 그러나 히스기야는 교만과 허영심으로 하나님을 드러내는 일을 잊어버리고 자기 자신을 높이는 일에 열중하였다. 그는 바벨론 사신들에게 “궁중 보물 곧 은 금 향료와 보배로운 기름과 모든 무기고와 보물고에 있는 것”(사 39:2)을 다 보여주었다. 그것뿐만 아니라 전국에 있는 모든 소유물까지 다 구경시켜 주었다. 이로 인하여 강대국으로 성장하는 바벨론의 탐욕을 자극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다. 그의 치명적인 실수는 유다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이사야는 히스기야 왕에게 하나님께서 선고하신 말씀을 전달하였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네 집에 있는 모든 소유와 네 열조가 오늘까지 쌓아둔 것이 모두 바벨론으로 옮긴바 되고 남을 것이 없으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또 네게서 날 자손 중에서 몇이 사로잡혀 바벨론 왕궁의 환관이 되리라 하셨나이다.”(사 39:6-7).
3. 바벨론 포로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은 무엇이었습니까? (히 12:6; 계 3:19)
다니엘서는 두 도시의 이야기다.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과 사단의 본거지 바벨론 사이의 대결이다. 하나님의 성소와 바벨론 주신(主神) 마르둑의 복합신전 ‘에사길라’(Esagila)를 두고 벌이는 선악간의 쟁투였다. 하나님께서는 악의 세력인 바벨론에 하나님의 성전이 유린되도록 허용하셨다. 히스기야 왕 이후 유다의 마지막 등불처럼 등장한 요시야(639-608 BC) 왕의 대대적인 신앙부흥과 종교개혁, 예레미야를 비롯한 여러 선지자들의 눈물어린 호소와 경고도 보람 없이 예루살렘은 605년 BC에 느브갓네살 장군에 의해 무너지고 말았다.
하나님께서는 왜 당신의 성전이 유린되도록 하셨을까? 그 성소의 기구들을 왜 바벨론 신전으로 옮겨지는 치욕을 허락하셨을까?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악을 고치고 타락의 길에서 돌이키기 위한 사랑의 징계가 그 목적이었다(레 26:14-46). 이와 함께 우상숭배로 멸망해 가는 바벨론을 치료하기 위한 하나님의 장기적인 섭리가 있었다(렘 51:9). 하나님께서는 유대인이나 바벨론인이나 어떤 종족적인 차별 없이 온 세상 만민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구속의 계획을 추진하고 계신다(요 3:16; 롬 1:16).
⃞ 은혜 나누기
1. 자녀교육에 있어서 순종은 왜 그렇게 중요한 가치입니까?
2. 우리 집에 찾아오는 방문객들에게 무엇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가장 소중한 것들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신앙을 간증하는 일은 어떻습니까?
3. 우리의 생애에 있어서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징계를 받은 경험이 있으면 함께 나누어 봅시다. 징계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특별한 애정 표시임을 기억하면서.
제2과 하나님의 청년 전사들
⃞ 오늘의 본문 - (단 1:8-9)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자기를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하고 자기를 더럽히지 않게 하기를 환관장에게 구하니 하나님이 다니엘로 환관장에게 은혜와 긍휼을 얻게 하신지라”
⃞ 주제 설정 - 시련 중에 청년 전사들을 통해 펼치시는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 말씀 나누기
1. 패망한 유다에 무슨 희망이 있었습니까? (시 110:3; 단 1:6)
청년은 그 시대의 희망이다. 패망한 예루살렘은 남은 것이 별로 없었다. 나라는 망하여 왕과 귀족들은 이방나라 바벨론의 포로로 잡혀갔다. 예루살렘 성은 허물어지고 성문들은 불에 타버렸으며 그 후로 포로 신세를 면한 자들도 큰 환란을 겪고 있었다(느 1:3). 심지어 유다 종교의 중심인 여호와의 성전이 침략자들의 손에 유린되었다.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데 사용되는 거룩한 기명(器皿)들이 바벨론 신들의 전각(殿閣)으로 옮겨지는 수모를 당했다. 그리하여 국가와 함께 부패한 종교도 무너지고 말았다. 육신적으로 아무런 희망이 없어 보이는 대목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부패하고 무능한 기성세대보다 영적으로 잘 훈련된 일단의 청년들에게 기대를 거셨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시려는 계획을 가지고 계셨다. 그들은 전쟁에 패망한 나라의 청년들이었지만 영적으로는 살아있는 전사(戰士)들이었다. 그들 중에 다니엘은 여호와를 섬기는 신실한 왕족 출신의 준수한 청년이었다. 그는 가장 비참하고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믿음의 용사였다. 하나님께서는 그 신앙의 전사들을 바벨론 중심부로 투하시켰다.
2. 바벨론 당국이 유다 청년들을 신민화(臣民化)하기 위하여 어떠한 정책들을 펼쳤습니까? (단 1:4-7)
전쟁에서 승리한 나라는 패망국의 주요 인사들을 사로잡아 가고 귀중한 보물들을 약탈해 간다. 예루살렘 패망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니엘과 세 친구들도 그러한 경우이다. 그들은 매우 총명하고 신앙심이 투철한 애국 청년들이었다. 바벨론 당국자들도 이 청년들의 가치를 알고 있었다. 그들은 이 청년들을 교육시켜 바벨론 국정에 기용하고 동시에 속국 유다를 효과적으로 지배하기 위한 인질로 삼고자 하였다. 그래서 갈대아 학문과 방언을 가르치고, 왕이 먹는 진미와 포도주를 주어 3년을 기르게 하였다. 그리고 그들의 이름을 고쳤다. 신앙적 소원과 믿음이 표현되어 있는 이름이 우상 신들과 관련된 이름으로 개명되었다. 마치 일본이 한반도를 강점하여 식민지화 했을 때의 정책과 똑 같다. 그들은 우리 민족에게 한국어 대신 일본어를 사용하게 했고, 그들의 역사를 가르쳤으며, 신사참배를 강요하고, 이름을 고치는 행위(創氏改名)를 자행하였다. 일제는 한민족을 말살하고 일본인화 하는 소위 황국신민화(皇國臣民化) 정책을 펼치므로 오래 전에 바벨론이 행한 일을 하였다.
다니엘에게 결정적인 품성의 시험은 왕의 식탁에서 나오는 음식과 술이었다. 왕의 진미는 우상숭배에 바쳤던 것이다. 이것을 먹는 사람은 바벨론 신들에게 충성을 표하는 것으로 생각되었다. 여호와께 대한 충성심이 강한 다니엘과 그 동무들은 그 같은 충성을 표하는데 가담하지 않기로 결심하였다(선지자와 왕, 481).
3. 바벨론화 하려는 동화(同化)정책에 대한 다니엘의 전략은 무엇이었습니까? (단 1:8-9)
다니엘과 세 동무들을 바벨론화하려는 동화정책은 전방위적이었다. 이에 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무엇보다도 우상숭배와 관련된 음식을 먹어 자기를 더럽히지 않기로 작정하였다. 그는 용기를 내서 책임자에게 청원하였다. “다니엘은 주저하지 아니하였다. 그에게는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군주의 총애를 받는 것보다 더욱 귀중했고 생명 그 자체보다 소중했다. 그는 결과야 어찌되든지 그의 성실에 굳게 서기로 결심하였다”(선지자와 왕, 482). 다니엘은 “올바른 육체적 습관은 우수한 정신을 향상시킨다”(청년, 242)는 원칙을 알고 있었다. 먹고 마시는 정책을 차별화함으로 모든 동화정책을 뛰어넘기로 전략을 세운 것이다. 다니엘은 바벨론의 왕궁에서 호의호식하며 안락을 누릴 수 있었지만 조국은 망하고 성전도 허물어졌고, 자신은 포로로 잡혀 온 처지를 단 한시도 잊지 않았다. 이러한 영적 식별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먹고 마시는 일에 존절히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위장이 막히면 두뇌도 막힌다”(음식, 46)는 정신으로 자기를 지키기로 한 것이다. 드디어 “다니엘과 그의 동료들은 세상 열국 앞에 참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선지자와 왕, 427). 이 상황은 이스라엘 민족과 선한 왕 히스기야가 결정적으로 실수한 바로 그 지점이다. 우상의 소굴 바벨론 구중심처에서 하나님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였다. 어쩌면 히브리 민족의 운명이 이 청년들의 신앙의 어깨에 달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채식과 순수한 물을 먹고 마심으로 왕의 진미와 포도주를 섭취한 다른 청년들보다 훨씬 더 건강하였다. 국가와 민족적으로 실패한 지점에서 소수의 믿음 있는 청년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통쾌하게 드러내었다. 사단은 나라를 멸망시키고, 성전을 무너뜨리고, 그 청년들의 이름을 고치고, 언어를 빼앗았지만 결코 그들의 순결한 믿음을 정복하지는 못했다.
⃞ 은혜 나누기
1. 오늘날 재림교회의 희망을 어디서 발견할 수 있습니까?
2. 사단의 세속화 전략에 맞서는 우리들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3. 우리의 순결하고 절제된 신앙정신이 혼탁한 세상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까요?
⃞ 명상할 말씀
“히브리 청년들이 보여 준 절제 원칙에 대한 충실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의 청년들에게 말씀하시고 계신다. 다니엘처럼 담대히 바른 주장을 이행할 사람들이 필요하다. 순결한 마음, 강한 손, 두려움을 모르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는 악과 선 사이의 투쟁에는 끊임없는 경계가 요구되는 까닭이다”(선지자와 왕, 488).
제3과 인간의 궁지와 하나님의 기회
⃞ 오늘의 본문 - (단 2:11-13)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라 육체와 함께 거하지 아니하는 신들 외에는 왕 앞에 그것을 보일 자가 없나이다 한지라 왕이 이로 인하여 진노하고 통분하여 바벨론 모든 박사를 다 멸하라 명하니라 왕의 명령이 내리매 박사들은 죽게 되었고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 주제 설정 - 인간의 궁지는 하나님께서 일하실 기회
⃞ 말씀 나누기
1. 느부갓네살의 숨겨진 꿈을 활용하려는 사단의 음모는 무엇이었습니까? (단 2:13)
누구나 꿈을 꾼다. 그리고 나름대로 그 꿈을 해몽한다. 그러나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원천적으로 해몽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꾼 꿈을 통째로 잊어버렸기 때문이다. 분명히 희한한 꿈을 꾸었는데 도무지 그 내용이 생각나지 않았던 것이다. 살면서 이런 경험을 한두 번 한다. 그러나 제왕으로서 매우 특이한 꿈이기에 국사(國事)와 관련하여 더욱 궁금증이 컸을 것이다. 그래서 왕은 초조했으며 박사들을 협박해 가며 꿈 내용을 알아내라는 무리한 요구를 하였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의 꿈 이야기는 흥미진진하다.
사단은 이일을 가지고 다니엘과 세 동무들을 죽일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예루살렘과 하나님의 성전을 허문 사단은 의기양양했으나 지난 1장에서 음식물 문제로 실패하였고 2장에서 다시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꿈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하신 것은 하나님이셨다. 이 사건을 가지고 선악 간에 쟁투가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전국 방방곡곡에 방을 붙여 박사들을 소집하여 자기가 꾼 꿈과 그 해석을 보이라고 다그쳤다. 박사들은 한결같이 꿈을 알려주어야 해석하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럴수록 왕은 화가 났고 바벨론 모든 박사들을 죽이라는 명령이 선포되었다. 그러나 사단의 관심은 오로지 히브리 특전사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2. 멸망의 위기 앞에서 다니엘이 대처한 믿음의 전략은 무엇입니까? (단 2:17-18)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청년 다니엘은 용감하였다. 무시무시한 사형명령이 내려지고 박사들을 체포하러 나서는 포도대장 아리옥을 붙들고 왕의 명령이 어찌 그리 급한지를 물었다. “아리옥은 그 놀라운 꿈에 대한 왕의 고민과 이제까지 그가 완전히 신뢰하던 사람들에게서 도움을 얻지 못한 이야기를 다니엘에게 해주었다. 이 말을 들은 다니엘은 목숨을 내걸고 감히 어전에 나아가 하나님께서 꿈과 그 해석을 자기에게 보여 주시도록 그분께 탄원할 수 있는 시간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하였다”(선지자와 왕, 493). 기한을 늦추어 준다면 자기가 그 해석을 보여주겠다고 하였다(2:16). 왕과 모든 박사들에게는 복음이었지만 다니엘에게는 대단한 모험이자 믿음이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며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이다(히 11:1). 다니엘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졌다.
그는 자기 집으로 돌아와서 세 동무들과 함께 기도를 하였다. 그날 밤 기도회가 얼마나 심각했을지 상상해 보라! 바벨론 박사들과 함께 자기들이 죽임을 당하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드렸다. 인간의 극단적인 궁지였다. 이제는 하나님이 일하실 시간이었고 기회였다. 그 밤에 은밀한 꿈의 내용이 이상 중에 나타나 다니엘에게 보였다. “주의 성령이 그들에게 임하였고 다니엘에게는 '밤의 이상으로' 왕의 꿈과 그 뜻을 나타내셨다”(선지, 494). 하나님의 친절하신 응답이었다. 사단은 다니엘과 세 친구들을 죽이려 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음모를 분쇄하시고 오히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증거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만드셨다.
3.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다니엘이 취한 태도는 무엇이었습니까? (단 2:23)
다니엘은 왕이 그토록 알기를 소원했던 은밀한 꿈을 알려 주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찬송하였다(2:19). “영원 무궁히 하나님의 이름을 찬송할 것은 지혜와 권능이 그에게 있음이로다. 그는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왕들을 폐하시고 왕들을 세우시며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는 도다. 그는 깊고 은밀한 일을 나타내시고 어두운 데 있는 것을 아시며 또 빛이 그와 함께 있도다. 나의 열조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내게 이제 지혜와 능력을 주시고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셨사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고 주를 찬양하나이다. 곧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2:23).
그는 말로만 감사하고 입술로만 찬송한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실천해야 하였다. 이 위대한 계시가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증거해야 하였다. 우상의 소굴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는 것이 다니엘과 세 청년들의 거룩한 사명이자 임무였다.
⃞ 은혜 나누기
1. 신앙생활을 하면서 치명적인 위기를 당면한 적이 있습니까?
2. 인간의 한계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구원해 주신 경험이 있습니까?
3. 중요한 기도가 응답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송합니까?
⃞ 명상할 말씀
“어떤 방면의 사업에서든지 참된 성공은 기회나 우연이나 운명의 결과가 아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완성하는 일이요, 신앙과 분별력의 보상이요, 덕행과 인내의 보상이다. 우수한 지적 바탕과 높은 도덕적 경향은 우연한 결과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기회들을 주시며 성공은 기회를 이용하는 데 달려 있다.”(선지자와 왕, 486)
제4과 하늘에 계신 하나님
⃞ 오늘의 본문 - (단 2:25-28) 이에 아리옥이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가서 고하되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아시게 하리이다. 왕이 대답하여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다니엘에게 이르되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왕의 꿈 곧 왕이 침상에서 뇌 속으로 받은 이상은 이러하니이다”
⃞ 주제 설정 -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선포된 하늘에 계신 하나님
⃞ 말씀 나누기
1. 시위대장 아리옥은 어떻게 자기를 과시하였습니까? (단 2:25)
사람들은 누구나 생색내기를 좋아한다. 꿈을 알아 낸 다니엘은 제일 먼저 아리옥에게로 갔다. 그가 사형집행관이었기 때문에 바벨론 박사들을 죽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한 배려였다. 그리고 자기를 빨리 왕 앞으로 인도하라고 하였다. 아리옥은 다니엘을 데리고 급히 왕의 앞에 들어갔다. 그는 왕에게 다니엘을 소개하면서 자기 자신의 공로를 과시하였다. “내가 사로잡혀 온 유다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얻었나이다. 그가 그 해석을 왕께 아시게 하리이다”( 2:25). 왕의 가장 큰 관심사항이자 바벨론 박사들의 생명이 걸려있는 중대한 문제를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을 자기의 노력에 의해 얻었다면 큰 공로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아니었다. 순전히 다니엘과 그 친구들이 믿음으로 기도하여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선물에 아리옥의 공로가 들어갈 틈이 없었다. 사람들은 자기가 노력하지 않은 열매를 취하기를 좋아한다. 그러나 그것은 욕심이고 이기심이다.
2. 꿈을 알아 낸 다니엘에게 한 왕의 질문에 무슨 함정이 있었습니까? (단 2:26)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다. '말속에 뼈가 들어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은혜로 "꿈과 그 해석"을 알아 낸 다니엘에게 왕은 물었다.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2:26). 바벨론 박사들에게 저승사자와 같은 "꿈과 그 해석"이 다니엘에게는 더 이상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그보다 더 무서운 시험이 왕의 질문 속에 도사리고 있었다. 이 엄청난 문제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던 다니엘이 흥분하여 왕 앞에서 실수를 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매우 큰 성공 앞에서 서로 자기의 공을 드러내려고 한다. 어쩌면 인지상정(人之常情)인지 모른다. 그러나 지금 다니엘은 그럴 상황이 아니었다. 이 순간 다니엘은 이스라엘 민족을 대표하여 영적인 대쟁투의 중요한 정점(頂點)에 서 있었다. 과연 다니엘이 무엇이라고 왕에게 대답할 것인가? 하늘 천사들도 가슴을 조였을 것이다.
3. 다니엘은 최대의 위기이자 기회를 어떻게 사용하였습니까? (단 2:27-28)
다니엘은 참으로 위대한 대답을 하였다. 바벨론의 유능한 박사들의 생사여부가 다니엘에게 달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사실상 온 바벨론이 다니엘의 얼굴과 그 입에서 나오는 말씀을 주시하고 있을 때에 그는 과감하게 "하늘의 하나님"을 가리켰다. “다니엘이 왕 앞에 대답하여 가로되 왕의 물으신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2:27-28). 자기는 티끌에 묻고 하나님을 높이 드러냈다. 다니엘의 욕심이 끼어들 여지가 충분하였지만 그는 그 무서운 시험을 극복하고 승리하였다. 우상숭배의 아성인 바벨론 만천하에 진정한 신(神)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유감없이 증거하였다. 이처럼 통쾌한 대답은 요셉이 바로에게 행한 뒤로 없었던 명답 중에 명답이었다. 이스라엘과 유다 열왕과 히스기야가 이루지 못한 대업(大業)을 청년 다니엘과 그 동무들이 해낸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토록 오랫동안 듣고 싶었던 시원한 대답을 다니엘로부터 듣게 되었다.
⃞ 은혜 나누기
1. 다른 사람이 이루어 낸 성공을 나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은근히 나를 나타내고 생색을 낸 적이 있습니까? 품성의 온전한 변화와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2. 하나님께 돌려야 할 영광을 인간이 취함으로 어려움을 겪은 성경의 인물들 중에 어떤 사람들이 있습니까?
3. 오늘 나와 우리가정이 잘되고 복 받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증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있습니까?
⃞ 명상할 말씀
“세계에서 가장 강대한 제국의 군주 앞에 선 조용하고 침착한 유다 포로를 보라. 그는 첫 말로 영광을 자신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 높였다. '내가 얻은 꿈과 그 해석을 네가 능히 내게 알게 하겠느냐'는 왕의 갈망하는 질문에 다니엘은 대답하였다. '왕의 물으신 바 은밀한 것은 박사나 술객이나 박수나 점장이가 능히 왕께 보일 수 없으되 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선지자와 왕, 494-497)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용사는 그 용맹을 자랑치 말라 부자는 그 부함을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인애와 공평과 정직을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이니라”(렘 9:23, 24).”
제5과 하나님의 나라
⃞ 오늘의 본문 - (단 2:44-45) “열왕의 때에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리니 이것은 영원히 망하지도 아니할 것이요 그 국권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아니할 것이요 도리어 이 모든 나라를 쳐서 멸하고 영원히 설 것이라 왕이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이 철과 놋과 진흙과 은과 금을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이 꿈이 참되고 이 해석이 확실하니이다”
⃞ 주제 설정 -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
⃞ 말씀 나누기
1. 사람들이 세운 불안정한 나라에서 우리는 어떤 나라를 소망하고 있습니까? (단 2:44)
세상 나라들이 소란하고 뒤숭숭하다.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금속으로 된 우상은 비중이 무거운 것이 상부구조에 있고 기초가 흙과 금속으로 섞이지 않은 상태로 서 있다. 불안한 세상 제국들을 잘 나타내고 있다. 우리나라 근대사만을 보더라도 그렇다. 전후 1960년대는 반공을 국시로 삼았던 혁명정부가 있었다. 1970년대에는 민간정부로 이양하는 과정에서 유신시대를 맞았고 1980년대는 민주화 과정에서 살상(殺傷)과 큰 혼란을 겪어야 했다. 1990년대의 문민정부 시대를 거쳐 2000년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가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에도 나라는 평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은 "경제를 살리겠다"는 슬로건을 가지고 태어난 정부가 들어서 있다. 그러나 갈수록 경제는 불안하다. 지난해는 촛불사태로 나라가 어수선하더니 올해는 용산참사에 이어 미디어법 등으로 국회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고 있다. 어느 시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서 사람이 세운 나라에는 진정한 평화가 없다. 주님이 오실 때까지 죄와 전쟁은 끝이 없기 때문이다. 다니엘은 신비한 꿈을 해석하면서 "하늘의 하나님이 한 나라를 세우시"겠다고 하였다. 이것은 참으로 복음(福音)이다. 그 나라는 영원히 망하지 않고 그 국가 권력이 다른 백성에게로 돌아가지도 않는다고 하였다. 인간의 갈등과 불화가 없어진 세상을 말하고 있다. 이 얼마나 새 희망에 가슴 벅차고 새 나라에 대한 설레는 말씀인가!
2.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전파하신 첫 번째 복음은 무엇입니까? (마 4:17, 23)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에도 "불화와 분쟁"은 여전하였다. 그런 와중(渦中)에서 광야로부터 한 음성이 들려왔다. 침례 요한의 음성이었다. 그는 희망이 가득 찬 하늘나라(天國)의 기별을 외쳤다. 나라 전체가 뒤끓었고 많은 무리가 광야로 모여들었다(시대의 소망, 104). 그는 죄인들에게 하늘나라(天國)를 전도하시기 위해 오신 예수님의 사명을 미리 전파하였다(마 3:2). 예수님은 대중을 위한 봉사를 시작하자마자 천국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말씀하셨다(마 4:17). 이는 실로 각 시대가 갈망하던 복음이었다. 특히 예수님이 세상에 계시던 당시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던 때였다. 나라를 빼앗긴 시절 "영원한 나라"는 유대민족의 꿈과 소원이었다. 그런 배경에서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마 4:23)신 것은 민중들의 소망을 고무시켰다. 예수님은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셨다. 그분이 지나가시는 마을에는 병자가 사라졌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는 곳이면 그 어디든지 천국이 건설되었다. 병든 자가 낫고 불구자가 치유되며 죽은 자가 살아났다. 예수님은 바로 이러한 모습이 "하늘나라"라고 증거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면 그곳이 천국인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지상에서의 당신의 사명은 세상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나라를 세우는 것임을 말씀하셨다(시대의 소망, 173).
3. 무슨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세상에 끝이 옵니까? (마 24:14)
예수님은 세상 끝에 대하여 예언하셨다. 그 종말은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마 24:14). 하늘나라의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시고 그제야 세상은 끝이 난다. 그 때에는 모든 나라가 “다 부서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2:35) 사라질 것이다. 그러나 "우상을 친 돌은 태산을 이루어 온 세계에 가득”(2:35)할 것이다. 이 돌은 “사람의 손으로 아니하고 산에서 뜨인 돌”(2:45)이다. 인간의 손으로 가공되지 않고 하나님의 손으로 채석된 돌이다. 인간의 야심이나 무력으로 건설되지 않은 이 "돌 나라"는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래서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다. 이 돌이 우리의 "보배로운 산 돌"(벧전 2:4)이시며, "요긴한 모퉁이 돌"(벧전 2:6) 되신 예수님이시다. 천국복음은 바로 이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좋은 소식"(Good News)이다.
⃞ 은혜 나누기
1. 이 세상 나라에서는 재림교인이라도 서로 다른 정치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는데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극복하여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2. 온유하고 겸손하며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이 갈 수 있는 곳이 천국입니다. 나와 우리 가족 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아직도 회개해야 할 어떤 부분이 있습니까?
3. 산에서 뜨인 돌과 천국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 명상할 말씀
“게으르고 활동하지 않는 상태에서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다.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고 무익한 생애를 산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떠돌다가 천국으로 흘러 들어가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 게으름뱅이는 그 곳에 들어갈 수 없다. 우리가 천국에 들어가기 위하여 싸우지 아니하고, 또 천국의 국법을 열심히 배우려고 애쓰지 않는다면 천국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과 협력하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하늘에서도 그분과 협력하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천국에 데려가는 것은 안전하지 않을 것이다”(실물교훈, 280).
제6과 신들의 아들
⃞ 오늘의 본문 - (단 3:22-26)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가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극렬히 타는 풀무 가운데 떨어졌더라.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가로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왕이여 옳소이다. 왕이 또 말하여 가로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느부갓네살이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불러 가로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서 나온지라”
⃞ 주제 설정 - 믿음의 길에서는 불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하나님
⃞ 말씀 나누기
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극렬히 타는 풀무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느부갓네살 왕이 금신상에 엎드리어 절하도록 한 요청을 어떠한 말로 거절하였습니까? (단 3:16-18)
어른들이 말씀하시면 대답을 잘 하는 아이들이 귀여움을 받는다. 그런데 다니엘의 친구들은 왕이 특별히 호의를 베풀어 한 제안에도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때때로 믿음의 길에서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대답할 가치가 없는 제안이나 요청이 많이 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가 다스리는 바벨론이 영원하기를 바랐다. 다니엘의 꿈 해몽은 문제를 해결하는 면에서는 기뻤으나 그 결과는 찜찜하였다. 바벨론이 망한다는 기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임에도 그는 이것을 제왕의 권력으로 변개해 보려고 하였다. 이러한 시도가 두라 평지에 세운 거대한 금신상(金神像)이다. 그리고 만백성들에게 이 신상 앞에 엎드려 절하도록 하였다. 하나님을 불순종하고 우상을 섬기는 죄로 인하여 포로로 잡혀 있는 땅 바벨론에서 선택받은 청년들에게 동일한 시험이 이르러 왔다. 그러나 이 청년들은 선조들이 범한 시행착오를 반복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에 생명을 걸었다. 그들이 왕의 명령을 어겼을 때 받아야 할 형벌이 풀무불에 던짐을 당하는 것이었지만 두려워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능히 구원해 주실 것을 믿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이 계셔서 자기들이 불타서 소멸되는 한이 있더라도 우상은 결코 숭배할 수 없다는 것이 그들의 신념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절대적인 신앙은 결과의 좋고 나쁜 양면 모두를 수용하는 것이다. 믿음은 결국 궁극적인 결말을 바라보기 때문이다.
2. 분노한 왕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평일보다 몇 배나 더 뜨겁게 한 풀무에 던졌습니까? (단 3:19)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인간의 분노는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된다. 느부갓네살 왕은 세 청년들을 매우 총애하였기에 다시 한 번 기회를 주었다. 그러나 그들은 왕의 이러한 배려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단호하게 거절하였다. 왕은 대단히 잘못하고 있었다. 이미 다니엘에게“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2:47)라고 고백한 믿음을 잊어버리고 자기의 야심을 실현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는 하나님을 의식하기에 앞서 자기의 권위가 무시된 사실에 분노하고 있었다. 그래서 풀무불의 강도를 평소보다 7배나 더 뜨겁게 하였다. 분노를 잘 다스리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왕의 명령이 급하여 형을 집행하는 관리가 타 죽고 말았다. 그런데 그 불 속에 던져진 사람들이 어찌 온전하기를 바라겠는가. 그러나 결과는 그렇게 되지 않았다. 7배나 뜨겁게 한 풀무불은 완벽한 상태의 죽음의 불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 불속에서 사람들이 살아 움직이고 있었다. 무서운 일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능력이 아니고는 이런 기적은 불가능하였다. 진실로 사람의 분노는 하나님을 찬송하는데 지나지 않는 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보여주셨다(시 76:10).
3. 풀무불에 세 청년들을 던진 왕은 무슨 광경을 보고 놀랐습니까? (단 3:24-26)
사람들은 일이 예상하는 대로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전혀 엉뚱한 결과가 나올 때는 무척 당황하고 놀란다. 느부갓네살 왕은 평일보다 7배나 뜨거운 불에서 살아남을 인생은 없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다. 그러나 타는 불 속에서 사람들이 돌아다니고 있었다. 오직 탄 것은 그들을 결박한 질긴 끈 뿐 이었다. 불 속으로 결박하여 던진 세 사람이 결박되지 않은 상태에서 다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불어나 네 사람이 되었다. 왕은 기겁하였고 그제 서야 정신을 차렸다. 자기보다 더 높은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 네 번째 사람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았다(3:25). 왕은 극렬히 타는 풀무 아구 가까이 가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3:26)고 불렀다. 그들은 몸은 고사하고 옷과 머리털도 그슬리지 않고 불탄 냄새도 나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완전한 구원을 이루었다. 그 불 속에 함께하신 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셨다. 오늘도 그 예수님은 우리와 함께하신다. 아멘!
⃞ 은혜 나누기
1. 친밀한 사람에 의해서 신앙의 원칙을 범하도록 하는 어떤 요청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까?
2. 인간의 분노는 도리어 하나님을 찬양하는 어떤 신앙경험이 있습니까?
3. 불 가운데에서 함께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우리의 시련 중에도 함께 하시는 어떤 증거가 있습니까? 우리 각자의 신앙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명상할 말씀
“느부갓네살이 말하여 가로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그가 그 사자를 보내사 자기를 의뢰하고 그 몸을 버려서 왕의 명을 거역하고 그 하나님밖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아니하며 그에게 절하지 아니한 종들을 구원하셨도다”(단 3:28)
제7과 거룩한 신들의 영
⃞ 오늘의 본문 - (단 5:11-12) “왕의 나라에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이 있으니 곧 왕의 부친 때에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라. 왕의 부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세워 박수와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의 어른을 삼으셨으니 왕이 벨드사살이라 이름한 이 다니엘의 마음이 민첩하고 지식과 총명이 있어 능히 꿈을 해석하며 은밀한 말을 밝히며 의문을 파할 수 있었음이라. 이제 다니엘을 부르소서 그리하시면 그가 그 해석을 알려 드리리이다”
⃞ 주제 설정 -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다니엘
⃞ 말씀 나누기
1. 벨사살 왕이 귀인 일천 명을 위하여 큰 잔치를 배설하고 술판을 벌였을 때 무슨 기명을 사용 하였습니까? (단 5:1-3)
인간들의 신성모독은 교만에서 비롯된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며 거만은 넘어짐의 앞잡이다(잠 16:18). 그 교만이 지나치면 하나님의 심판을 불러온다. 다니엘서 5장은 그러한 상황의 결정판이다. 벨사살은 느부갓네살의 외손자로 알려져 있다. 역사적 사실에 의하면 느부갓네살의 후궁으로 들어 온 하란 출신 수무아담카(Shumuadamqa)가 데리고 온 아들 나보니더스(Nabonidus)의 아들이다. 느부갓네살은 이 의붓아들 나보니더스에게 자기 딸 니토크리스(Nitocris)를 시집보냈고,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벨사살이다. 그는 어머니를 통해서 외할아버지 느부갓네살과 바벨론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이 베푸신 교훈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제국의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상황 속에서도 1천명의 귀인들을 모아 놓고 술판을 벌인 것이다. 메대와 페르샤 연합군이 파죽지세로 티그리스 강변 오피스(Opis)와 유프라테스 강변 시파르(Sippar)를 점령하며 바벨론 본성을 향하고 있었다. 상황이 급박해지자 부왕 나보니더스는 남쪽 보르시파(Borsippa) 성으로 도피하였다. 이 위태로운 때에 벨사살은 엄습한 불안과 공포를 달래기 위해 난공불락의 바벨론 성을 방패삼아 그 안에서 환락의 잔치를 벌인 것이다. 그는 술기운이 달아오르자 오만방자하여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고 말았다. 조부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 하나님의 성전에서 탈취해 온 금 은 기명(器皿)을 가져오게 해서 귀인들과 왕의 여자들이 그것으로 술을 부어 마시는 만행을 저지른 것이다.
2. 술을 마시고 우상 신들을 찬양할 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단 5:5)
바벨론 지도층 인사 1천명의 남녀들이 어울려 환락의 밤을 보내며 위험한 불장난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멸망의 징조가 나타났다. 오랫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고 또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다니엘과 세 청년들을 통하여 바벨론에게도 동일하게 선포된 교훈을 그들은 똑 같이 순종하지 않았다. 참된 신(神)이야말로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그토록 극적인 사건들을 통해서 실감나게 증거되었지만 그들은 끝내 불순종하였다. 도리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데 사용하는 거룩한 기명을 인간의 쾌락을 위하여 마시는 술잔으로 속화시키고 말았다. 신성모독의 죄 위에 우상을 숭배하는 죄까지 보태고 있었다. 이와 같은 현상은 멸망의 마지막 잔을 채우는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를 공공연히 멸시하고 조롱하였다. 술 취한 남녀들이 희희낙락하며 하나님의 성호를 모욕하고 있을 때에 갑자기 연회장 분벽에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 손가락은 글자를 쓰기 시작하였다. 매우 불길한 징조였다. 왕은 이 광경을 보고 기겁하였다. 왕의 즐거워하던 얼굴빛이 변하였고 그 생각이 번민하여 다리 마디가 녹는 듯하였다. 심지어 무릎이 서로 부딪히는 현상이 일어났다(단 5:6). 하나님의 심판이 이른 것이다.
3. 사람의 손가락이 나타나서 왕궁 촛대 맞은편 분벽에 쓴 글자를 읽고 해석하는데 다니엘이 추천되었습니다. 태후는 다니엘을 어떤 사람이라고 하였습니까? (단 5:11-14)
위기는 영웅을 탄생시킨다. 극도로 공포에 질린 왕은 정체불명의 손가락으로 쓴 글자를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 글자를 해석하기는커녕 읽을 수도 없었다. 이 때 “왕이 크게 소리하여 술객과 갈대아 술사와 점장이를 불러오게 하고 바벨론 박사들에게 일러 가로되 무론 누구든지 이 글자를 읽고 그 해석을 내게 보이면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로 그 목에 드리우고 그로 나라의 셋째 치리자를 삼”(5:7)겠다고 하였다. 그러나 바벨론 박사들 중에 아무도 그 글자를 읽거나 해석할 수가 없었다. 왕은 크게 번민하였고 귀인들은 놀라 어쩔 줄 몰랐다. 이 위기의 순간에 태후가 나타나서 전격적으로 다니엘을 천거하였다. 그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는 사람"(5:11)이며, 부왕 때부터 있던 자로서 "명철과 총명과 지혜가 있어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5:11)라고 소개하였다. 지금 그 다니엘을 불러서 이 난국을 타개하도록 제안하였다. 다니엘이 '신들의 영'이 있고 '신들의 지혜와 같은 자'로 소개 받은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오늘날과 같은 영적 위기의 시대에 누가 과연 성령님의 지혜와 같은 인물이 되어 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지 참으로 부끄럽고 안타깝다.
⃞ 은혜 나누기
1. 용서받지 못하는 죄는 성령님을 거역하는 것인데(마 12:32), 어떻게 하면 인간의 교만과 방자(放恣)함이 치유될 수 있을까요?
2. 오늘날 나는 무엇을 우상신(偶像神)으로 섬기고 찬양하는 습관이나 경향이 있습니까?
3. 영적으로 타락한 세상 속에서 우리교인과 우리가족들은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 명상할 말씀
“벨사살은 불경하게도 하늘의 하나님을 대적하여 자신을 높이고 자신의 힘을 의지하였다. 어느 누구도 감히 '왜 네가 이렇게 하느냐?'고 말할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였으나 이제 그는 그에게 위탁된 청지기의 직분에 대하여 계산해야 한다는 것과 그의 낭비한 기회와 도전적인 태도 때문에 변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선지자와 왕, 527)
제8과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 오늘의 본문 - (단 5:25-28) “기록한 글자는 이것이니 곧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이라 그 뜻을 해석하건대 메네는 하나님이 이미 왕의 나라의 시대를 세어서 그것을 끝나게 하셨다 함이요 데겔은 왕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뵈었다 함이요 베레스는 왕의 나라가 나뉘어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준 바 되었다 함이니이다”
⃞ 주제 설정 - 달려서 부족함이 드러난 왕과 바벨론 나라
⃞ 말씀 나누기
1. 벨사살 왕은 벽면에 쓰여 진 글을 읽고 해석해 준다면 다니엘에게 최고의 지위와 명예를 주겠다고 약속하였으나 다니엘은 무슨 말로 사양하였습니까? (단 5:17)
태후의 추천으로 84세의 노령의 다니엘은 왕 앞에 섰다. 하나님께서 택한 조국이 이민족에게 망하고, 성전은 무너지고 민족들은 흩어졌으며, 자신은 포로로 잡혀와 사는 절망의 땅에서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거장 다니엘이 그 오만방자한 벨사살 앞에 선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불안과 초조로 초췌해진 몸으로 절제로 다져진 건강한 다니엘을 맞이하고 있었다. 다니엘은 비록 육신은 늙었으나 용기와 확신으로 빛나는 얼굴과 침착한 자세로 우아하게 서 있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과 술과 부절제로 방탕하고 우상을 섬기는 사람과는 그 모습부터가 확연하게 달랐다. 왕은 다니엘에게 희망을 걸고 자주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드리워 세 번째 치리자를 삼겠다는 약조를 하였다. 그러나 그 어떤 선물이라도 이미 아무 소용이 없었다. 다니엘은 정중하게 그런 예물일랑 왕이 스스로 가지거나 다른 사람들에게나 주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선물과 상관없이 그 문제를 풀어주겠다고 대답하였다.
2. 다니엘은 글을 해석하기 전에 그 손가락이 등장하여 글을 쓰게 된 원인에 대하여 어떻게 설명하였습니까? (단 5:22-24)
다니엘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침착하고 위엄 있게 운명의 기별을 해석해 나갔다. 그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 인간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우시는 줄을"(5:21) 부왕의 일대기를 통해서 잘 알고 있으면서 왜 마음을 낮추지 않았느냐고 책망하였다. 그는 선왕의 역사에서 배우지 않고 오히려 스스로 자신을 높여서 하늘의 주재를 거역하고 그 성전의 기명을 가져다가 술을 따라 마셨다. 그것도 모자라 금속과 돌과 나무로 만든 우상을 숭배하여 호흡을 주장하시고 모든 길을 작정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벨사살의 죄가 큰 것은 외조부 느부갓네살 왕의 행적을 낱낱이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모든 진상을 다 알고도 고의적으로 하나님을 공공연하게 모독하였다. 느부갓네살은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교만했지만 벨사살은 모든 사실을 알고서도 교만했으므로 그의 죄는 더욱 무거운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무엇을 안다고 하기에 우리에게 임하는 심판은 더욱 크고 철저할 것이다. 예수님은 너희가 차라리 소경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었을 텐데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게 되었다고 하셨다(요 9:41).
3. 벽에 기록된 하나님의 기별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은 무슨 뜻입니까? (단 5:26-28)
이 글월은 바벨론의 멸망이 선고된 하나님의 통고문이다. 이미 벨사살 왕과 바벨론 제국의 심판은 끝났으며, 메대와 바사 나라가 등장할 것을 알려주었다. "메네"는 화폐 단위 '므나'(mina)를 나타내며 '무게'라는 뜻이다. "메네"는 '세다', '계산하다' 라는 아람어 동사 '메나'에서 온 명사이다. "데겔"은 '무게를 달다'(weigh)라는 뜻의 아람어 동사 '테칼'에서 나온 명사인데 화폐 단위의 '세겔'(shekel)을 말한다. "우바르신"에서 "우"는 그리고(and), '..와', '..과'라는 뜻이며, "바르신"은 화폐 '반 므나'(half-mina)를 뜻하는 '페레스'의 복수형 '파르신'을 나타낸다. 이 페레스는 아람어 동사 '페라스'에서 왔다. 이 페라스는 '둘로 쪼개다'(break in two)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페라스는 결국 아람어 '파라스' 즉 바사(Persia)의 발음을 흉내 내고 있다. 그리하여 화폐 1 므나는 60세겔이므로, 1개의 므나를 계속 달아보아도 1 세겔 밖에 안되니 그 1개의 므나를 나누어서 '1/2 므나'(half-mina) 2개로 만들겠다는 하나님의 익살(word play)이 담겨있다. 다니엘이 해석한 대로 하나님이 바벨론 시대를 계산하여 끝나게 하셨고, 벨사살 왕은 저울에 달아 보니 부족하여 이제 "메대와 바사" 사람에게 주겠다는 의미이다. 그 날 밤 벨사살 왕이 죽임을 당하면서 대제국 바벨론도 함께 영원히 사라졌다.
⃞ 은혜 나누기
1. 하룻밤만 지나고 나면 무용지물이 될 부귀와 영화를 위하여 우리는 얼마나 아등바등하며 삽니까? 아무 소망이 없는 세상 군주가 주겠다는 선물이 얼마나 유용하겠습니까?
2. 우리에게 소중하게 알려주신 교훈과 진리를 실천하지 않는 것 중에 무엇이 있습니까?
3. 오늘 우리의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쾌락적이고 안일한 삶의 분벽에 하나님의 손가락이 나타날 필요는 없습니까?
⃞ 명상할 말씀
“열국의 역사는 오늘날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크신 계획 속에 모든 국가와 모든 개인의 자리를 배정하셨다. 오늘날 사람들과 나라들이 그릇 행하심이 없으신 하나님의 수중에 있는 저울추(錐)에 의해 계량되고 있다. 모든 사람은 자신들의 선택으로 저희 운명을 결정하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목적을 성취하시고자 모든 사람을 지배하고 계신다.”(선지자와 왕, 536; 교육, 178)
“하나님의 천사들은 저울을 들고 서서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자들, 곧 세상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았노라고 주장하는 자들의 생각을 달고 있다. 세상과 허영과 교만 등에 대한 생각을 실은 저울의 접시는 수시로, 무게의 기복이 심하기는 할지라도 빨리 밑으로 쳐져 내려갔다. 하늘로 향한 생각과 관심을 실은 저울의 접시는 다른 쪽이 내려감에 따라 빨리 올라갔다. 아, 그것은 얼마나 가벼웠던가!”(1증언, 124-125)
제9과 네 하나님 나의 하나님
⃞ 오늘의 본문 - (단 6:19-22) “이튿날에 왕이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가서 다니엘의 든 굴에 가까이 이르러는 슬피 소리질러 다니엘에게 물어 가로되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 다니엘이 왕에게 고하되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여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 주제 설정 - 하나님과 친밀하게 동행하는 믿음의 사람들은 "나의 하나님"을 안다.
⃞ 말씀 나누기
1. 다니엘이 다른 총리와 방백들에게 고소할 틈을 보인 것은 무엇입니까? (단 6:5)
어느 사회든지 인간 세상에서는 시기와 질투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세속 권력을 추구하는 정치세계에서는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이러한 것은 고대나 현대나 마찬가지다. 바벨론이 망하고 메대 사람 다리오가 새 나라를 얻었다. 그는 120명의 방백과 3명의 총리로 나라를 다스렸다. 그 중에 다니엘은 수석 총리로 임명되었다. 당연히 알력(軋轢)이 있었다. 그는 이미 바벨론에서 총리를 지낸 구시대 인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총리들이나 방백들보다 능력과 지혜가 탁월하여 가히 군계일학(群鷄一鶴)이었다. 정치적 경쟁자들은 다니엘을 낙마시키기 위하여 국사에 대하여 고소할 틈을 얻고자 노력하였다. 그런데 아무리 무슨 흠을 찾으려 해도 그의 업무상 허물을 발견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침내 다니엘의 신앙생활 속에서 틈을 찾기로 하였다. 그들은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6:5)고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다니엘의 규칙적인 기도생활에 올무를 놓기로 음모를 꾸몄다. 다리오 왕 외에는 30일 동안 아무에게도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조서를 반포하였다. 왕에게는 아첨(阿諂)을 하면서 자기들은 최대한의 정치적 이익을 챙기려 한 전형적인 권모술수(權謀術數)였다.
2. 다니엘은 기도금지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고도 하루에 몇 번씩 기도하였습니까? (단 6:10, 13)
다니엘은 하루 세 번씩 규칙적으로 기도하였다. 생명을 위협하는 위기상황 속에서도 그는 습관적으로 늘 하는 기도를 쉬지 않았다. 그가 기도의 장소를 바꿀 수도 있었지만 지금 이러한 상황 속에서는 할 수가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살아계신 하나님을 증거해야 했다. 그래서 그는 '기도를 하지 말라'는 조서에 어인이 찍힌 것을 알면서도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6:10). 그는 자기 집의 방에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창문을 열어 놓고 기도하였다. 이방나라 국무총리로서 분주한 생활 속에서도 고국에 대한 열정은 식을 줄 몰랐다. 오늘날도 장관들은 분단위로 시간을 쪼개서 근무한다고 알려져 있다. 아무리 국사에 분망(奔忙)하더라도 그에게는 분명한 인생의 목적과 방향이 있었다. 그의 영혼은 한결같이 하나님의 임재가 약속된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고 있었다. 그는 솔로몬의 기도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대하 6:12-39). 그는 사로잡혀 간 적국(敵國)의 땅에서 온 마음과 뜻으로 주의 빼신 성과 거룩한 성전이 있는 곳을 향하여 기도하였다. 그리하면 주는 계신 곳 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시고 자기와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자기의 열조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가게 해 주시리라는 약속을 믿으면서 말이다. 그는 적국에서 최고의 정치인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한시도 잊지 않았다. 그는 나이 85세의 노인이었다. 예언 된 70년 포로생활도 그 끝에 와 있었다(BC 538년). 하나님께서는 고레스를 통해서 BC 537년 가을에 제1차 포로 석방령을 내렸다. 그는 한 생명 부지하겠다고 이처럼 중대한 시기에 기도를 중단할 수 없었다. 그가 창문을 열어 놓고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할 이유가 바로 거기 있었다.
3. 다리오는 사자굴에서 구원하신 하나님을 "네 하나님"(단 6:16), "다니엘의 하나님"(단 6:26)이라고 하였으나 다니엘은 누구라고 하였습니까? (단 6:22)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란 말이 있다. 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의무를 말한다. 다니엘의 기도는 늘 감사가 넘쳤다. 사실 그는 불행 중에도 다행한 사람이었다. 많은 동족들이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자기는 왕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투철한 도덕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히브리인으로서 부끄러워하지 않고 항상 영적으로 솔선수범하였다. 그는 타국에서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 받기를 선택했던 모세와 같은 믿음을 가졌다(히 11:25). 바벨론의 부귀영화보다도 하나님을 위하여 받는 능욕을 더 큰 영광으로 여겼을 것이다. 그는 바울이 고백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로 인하여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않고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딤후 1:12)았다고 한 것처럼 하나님을 친숙하게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사자굴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였다. 다리오는 뒤늦게 간신(奸臣)들의 모함(謀陷)을 알아차렸으나 다니엘을 사자굴에 던지는 형벌(刑罰)을 면하게 할 수는 없었다. 그는 돌아가서 밤잠을 이루지 못하고 새벽에 일어나 급히 사자굴로 갔다. 왕은 슬피 소리 질러 "사시는 하나님의 종 다니엘아!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이 사자에게서 너를 구원하시기에 능하셨느냐"(6:20)라고 물었다. 다니엘은 "왕이여 원컨대 왕은 만세수를 하옵소서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6:21-22)다고 대답하였다. 이는 다니엘의 믿음의 기도와 다리오왕의 철야 금식기도의 영광스러운 응답이자 승리이었다.
⃞ 은혜 나누기
1. 박해자들이 나에게 흠을 찾는 다면 어떤 것을 찾아낼 수 있을까요?
2. 우리는 죽음의 위협 앞에서라도 기도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을 믿음이 있습니까?
3. 나와 함께 하셔서 항상 나를 돌보시는 하나님을 얼마나 자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까? 서로 간증하는 시간을 가져 봅시다.
제10과 인자 같은 이
⃞ 오늘의 본문 - (단 7:13-14)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 주제 설정 - 심판의 중심에 나오는 "인자 같은 이" 예수 그리스도
⃞ 말씀 나누기
1. 다니엘서 7장 9-10절에 나오는 심판은 어떤 성격의 심판입니까? (단 8:14; 말 3:1)
다니엘서에 있어서 심판(審判)은 핵심적 주제이다. 다니엘이란 이름 자체가 "나의 심판자 하나님"이란 뜻이다. 책은 처음부터 심판으로 시작하여 마지막까지 심판으로 끝난다. 책의 중앙에 배치된 7장은 다니엘서의 중심이다. 히브리 문학의 독특한 구조(concentric parallels, chiastic structure)로 볼 때도 그렇다. 바로 그 중심에 나타난 주제도 심판이다. 그런데 이 심판은 최후의 심판이 아니라 재림 전(Pre-advent)에 있을 심판으로 묘사되고 있다. 7장 전반부(7:1-8) 짐승들로 표상된 세계 역사에 대한 예언은 후반부(7:15-25)에서 자체적으로 해석 되었다. 그런데 7장은 2장의 내용을 반복하면서 거기에 새로운 요소들이 추가되었다. 그것이 넷째 짐승의 열 뿔 중에서 솟아나는 작은 뿔이고, 책들을 펴 놓고 베푸는 심판이다. 이 작은 뿔과 재림 전 심판은 매우 의미심장한 상호관계를 가지고 있다. 작은 뿔 교황 로마는 538년 지상권(至上權)을 획득하면서 1260년간 하나님을 대적하고 성도들을 박해하다가 1798년을 전후해서 치명상을 입는다. 한편 7장 13절은 8장 14절 2300주야 끝의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것과 연관되며 그때로부터 재림 전 조사심판이 시작된다.
2.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영원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받는 분은 누구입니까? (단 7:13-14)
장엄한 하늘 법정을 바라본 다니엘은 곧 바로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7:13)는 것을 보았다. 여기에 등장한 "인자 같은 이"는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을 가리킨다. 이 구절을 위하여 사용된 아람어 원어는 "사람의 한 아들과 같은" 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은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 역(LXX)에도 동일하다. 예수님은 본래 하나님이셨다. 그분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빌 2:6-8)다. 사람의 아들 "인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셨는데 사람인 요셉의 한 아들처럼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잘 묘사하고 있다. 그 분이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신다고 했을 때 이 세상으로 재림하시는 광경으로 착각할 수가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땅이 아니라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 곧 하나님 앞으로 인도되었다고 하였다(7:13). 이는 2300주야 끝에 하늘 성소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하여 지성소 곧 하나님 앞에 나타나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대제사장께서는 하늘 천사들의 시위 아래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서서 인류를 위한 마지막 봉사를 하시게 된다. 곧 주님께서 이때에 조사 심판을 하시고 속죄의 은사를 입을 자격이 있는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하시게 된다”(대쟁투, 479).
3. 심판의 최종적인 효과는 어떻게 나타날 것입니까? (단 7:14, 27)
예수님께서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얻으시고 만백성과 나라들이 주님을 섬기게 된다. 그리하여 그분의 권세와 나라는 영원할 것이다(7:14). 하나님과 그 피조물인 백성들과의 관계가 완전히 정상화되는 것이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계 21:3-4)라. 지금 하늘에서 진행되고 있는 심판은 재림 전에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의 문제를 해결할 것이다. 그것은 곧 구원의 타당성과 합법성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온 우주 앞에 하나님의 심판이 공정하였음이 천명되고 동시에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될 것이다.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생사 간에 결정되었다. 예수님께서 성소에서 봉사하고 계시는 동안 죽은 의인들과 살아있는 의인들에 대하여 심판이 행하여졌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대속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심으로 인하여 그의 왕국을 받으셨다. 그리고 왕국에 살 거민들이 결정되었다. 어린양의 혼인이 이루어졌다. 그리하여 왕국과 온 하늘의 왕권이 예수님과 구원을 상속받은 자들에게 주어진바 되었으며, 예수님께서는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로서 다스리시게 되었다”(초기문집, 280).
⃞ 은혜 나누기
1. "재림 전 심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서로 토의해 보시겠습니까?
2. 왜 7장이 다니엘서의 중심 장이 되며, 중심주제는 무엇이며, 중심인물은 누구입니까?
3. 하나님 심판의 중요한 두 국면은 무엇이라고 이해하고 계십니까?
⃞ 명상할 말씀
“다니엘서 8장 14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대제사장으로서 성소를 정결케 하기 위하여 지성소에 들어가시는 것과 다니엘서 7장 13절에 묘사된 대로 인자 같은 이가 옛적부터 항상 계신 분 앞에 나아가시는 것과 말라기가 예언한 것처럼 주님께서 홀연히 그 전에 임하시는 것(말 3:1) 등의 세 가지는 모두 같은 사건을 묘사하고 있다. 그것은 또한 그리스도께서 마태복음 25장의 열 처녀의 비유에서 직접 말씀하신 바와 같이 신랑이 혼인 잔치에 들어가는 것과 같은 사건이다”(대쟁투, 426).
제11과 가브리엘에게 내린 명령
⃞ 오늘의 본문 - (단 9:20-23)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고 내 하나님의 거룩한 산을 위하여 내 하나님 여호와 앞에 간구할 때 곧 내가 말하여 기도할 때에 이전 이상 중에 본 그 사람 가브리엘이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내게 이르더니 내게 가르치며 내게 말하여 가로되 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 곧 네가 기도를 시작할 즈음에 명령이 내렸으므로 이제 네게 고하러 왔느니라 너는 크게 은총을 입은 자라 그런즉 너는 이 일을 생각하고 그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 주제 설정 -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절실한 필요를 아시고 그 기도를 응답하신다.
⃞ 말씀 나누기
1. 다니엘이 왜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주 하나님께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까?
(단 9:1-2)
바벨론은 기원전 539년 10월 13일 밤에 졸지에 망하고 그 뒤를 이어서 메대 왕 다리오가 새로운 군주로 등장하였다. 다니엘이 베옷을 입고 재를 무릅쓰고 하나님께 기도하던 때는 다리오 통치 원년인 BC 538년이었다. 다니엘이 2장에서 해석한 대로 금나라가 망하고 은나라가 건설된 것이다. 이러한 제국의 흥망이 교차되는 시국 속에서도 변할 수 없는 희망은 고국으로의 귀환이었다. 이 무렵 다니엘은 성경의 예언을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예레미야서를 읽고 하나님께서 정한 포로기간이 마쳐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렘 25:11; 29:14). "예루살렘의 황무함이 칠십 년 만에 마치리라"(9:2)고 하신 것이다. 이는 놀라운 사실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다면 자신이 포로로 잡혀 온 해가 BC 605년 이기 때문에 벌써 68년이 지나간 것이다. 70년이 차기 까지는 이제 불과 2년 밖에 남지 않았다. 오랫동안 기다려 온 예언이 바야흐로 성취되려고 하고 있었다. 이러한 엄숙한 때에 준비되어 있지 않는 자신의 모습과 백성들의 상태를 보고 자신의 죄와 민족의 죄악을 자복하고 회개하며 철저한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2. 다니엘의 긴 중보기도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들을 찾아보시겠습니까? (단 9:4-19)
다니엘의 기도는 어떻게 중보기도를 드리는지 그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철저히 회개하는 심령이 기초를 이루고 있다. 자신의 죄로부터 민족 전체를 아우르는 죄를 망라하고 있다. 그 는 자주 "우리"라는 말을 사용해서 그 뜻을 반영하였다. 다니엘은 반복적으로 '우리가 주께 범죄하고 악을 행하였다'고 자백하고 있다(8,11,15). 자기들의 죄로 인하여 재앙과 수욕을 받는다고 하였다. 변명이 없다. 철저한 회개이다. 인간의 사악함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을 계속해서 대비하며 용서를 간구하였다(7,14,16). 그는 기도를 마치면서 세 가지 소원을 주님께 아뢴다. 첫째로 주의 황폐한 성소에 주의 얼굴빛을 비춰주시기를, 둘째로 자기들의 황폐된 상황과 셋째로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성(城)을 봐주시라고 기도하였다. 그가 여기서 제일 먼저 기도드린 소원은 성소였다. 9장이 8장의 연속이며 8장의 설명되지 않는 부분에 대한 보충이다. 8장 13, 14절의 "2300 주야"에 대한 설명은 보류됨으로 다니엘은 충격을 받아 "혼절하여 수일을 앓다가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13년 후에 바로 그 가브리엘 천사가 날아와 가장 의미심장한 2300 주야의 이상을 깨우쳐 주었다(9:24-27).
3. 다니엘의 비상 구국기도는 얼마나 빨리 응답을 받았습니까? (단 9:21, 23)
하나님이 계시는 하늘과 인간이 사는 세상은 그렇게 멀지 않았다. 다니엘의 기도는 마치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신속하게 응답되었다. 죄의 용서를 간구하는 기도가 가장 빠르게 응답된다고 하였다. 다니엘이 지상에서 기도를 시작할 무렵에 하늘의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에게 명령을 내렸다. 가브리엘은 2300 주야의 이상을 설명해 주기 위하여 "빨리 날아서 저녁 제사를 드릴 때 즈음에" 다니엘에게 당도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사 65:24)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우리의 생각을 통촉하시며 우리의 모든 행위와 우리가 한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다(시 139:1-4)고 하였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막 11:24)는 말씀을 굳게 신뢰하여야 한다.
⃞ 은혜 나누기
1.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어느 경점에 와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금식하 며 베옷을 입고 재를 뿌릴 필요가 없습니까? 우리는 너무 편안하지 않은지요?
2. 내가 요즘 드리는 기도의 주제는 어떤 것들입니까? 나와 내 가족, 내 교회를 위한 제목에 한정되어 있지 않습니까? 국가와 민족을 위한 기도는 너무 거창한가요?
3. 아직 응답되지 않는 기도의 주제가 있습니까? 내 생애에서 가장 빠르게 응답받은 기도의 경험이 있으면 서로 이야기해 봅시다.
⃞ 명상할 말씀
“고레스의 군사가 바벨론의 성벽 앞에 나타난 것은 유대인들이 포로에서 구원될 날이 가까이 이르고 있다는 한 표징이었다. 고레스가 탄생하기 한 세기 훨씬 전에 영감의 기록은 그 이름을 언급하였고 그가 돌연히 바벨론 성읍을 취하고 포로의 자손들을 해방시킬 길을 준비하리라는 그의 실제적 사업에 대하여 기록하였다”(선지자와 왕, 551).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 듯한 때라도 우리는 그 허락을 굳게 붙잡아야 할 것이니 대개 응답의 시기가 확실히 오게 되어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되는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런즉 비록 기도가 즉시 응답되지 않을지라도 그를 의지하기를 의심하지 말 것이다.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라는 그의 확실한 허락을 믿으라.”(정로의 계단, 96)
제12과 기름 부음을 받은 자
⃞ 오늘의 본문 - (단 9:24-27)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날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그 때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장차 한 왕의 백성이 와서 그 성읍과 성소를 훼파하려니와 그의 종말은 홍수에 엄몰됨 같을 것이며 또 끝까지 전쟁이 있으리니 황폐할 것이 작정되었느니라.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한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그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또 잔포하여 미운 물건이 날개를 의지하여 설 것이며 또 이미 정한 종말까지 진노가 황폐케 하는 자에게 쏟아지리라 하였느니라”
⃞ 주제 설정 - 가장 위대한 계시 "2300주야" 이상(vision), 그 중심에 계신 그리스도님
⃞ 말씀 나누기
1. 가브리엘이 하나님의 신속한 명령을 받고 다니엘에게 와서 깨닫기를 원하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단 9: 23)
다니엘의 긴급한 중보기도가 시작되자마자 하나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파견하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명령을 내려 다니엘이 이전에 알기를 원하던 이상(vision)부터 깨닫도록 하셨다. 그 이상 속에는 총체적으로 다니엘이 바라고 원하는바 모든 것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우리가 서투르게 기도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응답을 주신다. 사실 다니엘의 소원이 곧 하나님의 관심사(關心事)였다. 그래서 우리가 바르게살기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하여금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빌 2:13)신다. 이 이상은 다니엘이 그토록 알기를 원했던 바로 "그 이상"(9:23)이다. 히브리어 원문에서는 이상 앞에 정관사 "그"(the)와 함께 전치사(in, by, with)도 붙어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이미 앞에 제시된 "이상"임을 강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다름 아닌 8장에서 해석이 보류되었던 “주야에 대한 이상”(8:26)이며 “간수하라”(8:26)고 명령을 받았던 이상이다. 이 이상이 바로 그 위대한 “이천삼백 주야”(8:14) "이상"(8:15)이다.
2. 2300주야 이상 해석에서 처음으로 등장하는 “칠십 이레”는 누구를 위한 기한이며 그 기한 가운데 일어날 가장 위대한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단 9:24)
가브리엘이 풀어 준 해석은 구속(救贖)의 수학(數學)이다. 성경에서 계산할 일이 많지 않지만 2300주야의 이상은 우리로 하여금 숫자를 계산하도록 한다. 숫자가 잘 파악되지 않아 산수와 수학을 싫어했다. 그래서 아이들 3명 모두 인문계 공부를 시켰다. 우리가 숫자를 좋아하든 싫어하든 2300주야는 잘 계산해야 한다. 재림교회는 이 숫자를 계산하면서 시작되었다. 우리의 선조들이 이 산수를 통해서 나타난 결과에 운명을 걸었다. 여기에 구속의 비밀이 숨겨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구속의 수학이 중요하다. 처음에 등장한 "칠십 이레"는 다니엘의 백성과 다니엘의 거룩한 성을 위하여 정해진 기한이다. 유대인과 예루살렘 성을 위하여 70주일이 배당된 것이다. 무엇보다 그 기간 중에 “죄가 끝”(9:24)난다는 기별이 선포되었다. 원어는 죄를 "봉인하다"(seal up)라는 말로 표현되었다. 하나님께서 죄를 취급하셔서 끝장을 내신다는 의미이다(BDB 사전). 이는 놀라운 복음(Good News)이 아닐 수 없다. 똑 같은 내용이 여러 가지 다양한 문장으로 표현되었다. "허물(transgression)이 마치며"(finish, complete), "죄악(iniquity)이 영속되며(to atone),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9:24)고 한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는 예수님께서 "다 이루었다"(요 19:30)라고 선포하신 십자가의 구속을 의미한다(벧전 2:24). 이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마 27:51)었다. 십자가에서 인류의 죄가 끝났음을 강력하게 선포하는 증거였다.
3. "기름 부음을 받은 자"(25, 26절)는 누구를 말씀하고 있습니까? (마 1:16, 21)
"기름을 붓는다"는 것은 히브리인들의 특별한 관습이다. 이와 같은 행위는 손님을 대접할 때(눅 7:46)나 상처를 치료할 때(막 6:13, 약 5:14), 그리고 공적 의식을 행할 때에 활용되었다. 특히 선지자나 제사장, 그리고 왕의 임명식에서 항상 사용되었다. 메시야는 히브리어 "마쉬아흐"를 음역한 것인데 "기름을 붓다"라는 동사 "마샤흐"에서 왔다. 히브리어 "메시야"를 헬라어로 표현하면 "그리스도"가 된다. 70주 기간 가운데 처음의 7주가 지나고(BC 408), 다시 62주 즉 434년이 지나면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이 일어”(9:25)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일은 예수님께서 서기 27년 가을 요단강에서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실 때에 성취되었다(마 3:16).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님에게 성령과 능력을 기름붓듯 하셨으매 저가 두루 다니시며 착한 일을 행하시고 마귀에게 눌린 모든 자를 고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음이라”(행 10:38). 그러므로 “기름 부음을 받은 자 곧 왕”(9:25)과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9:26) 분은 예수님을 나타낸다. 2300주야 이상의 중심은 예수님이시다. 그리고 그 분의 십자가이다. 주님의 생명이 끊어져 없어짐으로 우리는 영생을 얻게 되었다. 위대한 2300주야의 이상의 중심에 십자가를 세우므로 인류는 놀라운 새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9장 24절 하단에 나오는 “지극히 거룩한 자”(9:24)는 사람이라기보다 사물이라고 봄이 타당하다. 이는 히브리어 "코데쉬 카다쉼"으로서 "지극히 거룩한 곳"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자기 피로 하늘성소 봉사를 위하여 대제사장으로 직무를 수행하실 무렵 지상의 성소인 교회에 성령 충만한 은혜가 베풀어졌다(행 2:33, 히 6:20).
⃞ 은혜 나누기
1. 창조가 완전하게 완성된 것(창 2:2)처럼 구속도 완벽하게 이루어졌다(단 9:24). 죄가 한 점 남김없이 완전히 끝났다는 소식에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2. 십자가는 2300주야가 흔들릴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표지(標識)이다.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제13과 봉함하라는 말씀
⃞ 오늘의 본문 - (단 12: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 주제 설정 - 봉함된 말씀이 펼쳐지는 마지막 때
⃞ 말씀 나누기
1. 다니엘서는 언제까지 봉함되어야 하였습니까? (단 12:4)
다니엘서는 전체적으로 "마지막 때"를 알려주는 계시이다. 이 계시 속에는 하나님의 심판과 죄악이 영속되어 죄가 끝나고 영원한 나라가 등장한다. 12장은 다니엘서의 마지막 장이면서 "마지막 때"를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다니엘에게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12:4)고 하셨다. "마지막 때까지" 간수하라고 하신 것은 그 때가 되면 열린다는 말씀이다. "간수하다"라는 말은 히브리어 동사 '사탐'(shut up, keep close)이다. 굳게 닫아두고 밀폐되어 있는 형편을 말한다. "봉함하다"라는 말도 히브리어 동사 '하탐'(seal, seal up)인데 같은 의미의 다른 표현이다. 이러한 문장은 이미 하나님께서 2300주야에 대한 이상을 간수하도록 명령하신 때와 같은 표현이다(8:26). 그 이상이 "여러 날 후의 일"(8:26)이라고 하였으나 여기 12장 4절에서는 “마지막 때까지”(12:4)라는 용어를 사용하셨다. 이 말['다바르'(word)]과 글['세페르'(book)]이 다니엘서 전체를 말할 수 있으나 다니엘서 전체를 닫아두라는 말씀은 아닌 것이다. 다니엘서 대부분은 고대로부터 이미 열려져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서 간수하고 봉함하여 두라는 말씀은 마지막 때에 열려질 2300주야에 관한 예언임이 확실하다(8:26, 8:14-19). 참으로 2300주야에 관한 예언은 마지막 때로 제시된 1260년 기간이 끝나는 1798년 이후에야 이해하게 될 정해진 예언이었다.
2. 마지막 때에는 많은 사람들이 어떠한 특징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셨습니까? (단 12:4,10)
신학의 꽃은 '종말론'(終末論)이라고 한다. 성경은 시초와 종말을 알려주고 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재림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마 24:3)가 있겠느냐고 물어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즉 오래 인봉되었던 “작은 책”(계 10:2)이 펼쳐질 때에 무슨 현상이 있을지 예언하셨다. 먼저 많은 사람들이 빨리 왕래할 것이라고 하셨다. 지금은 교통과 통신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의 몸과 마음이 쌍방향으로 빠르게 교통하고 있다. 마지막 교회는 이와 함께 부지런히 복음을 전할 것이다. 교인들은 전도하기 위해 신속하게 가고 오고, 오고 갈 것이다. 두 번째는 지식이 증가하리라고 하셨다. 세상은 지금 지식이 폭증하고 있다. 특히 인터넷은 거대한 지식의 저장소이다. 무슨 문제(問題)이든지 검색창에 처넣으면 온갖 지식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래서 인터넷을 '정보의 바다"라고 일컫는다.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도 인터넷이라고 하는 문명의 이기(利器)를 통해 계속해서 증가하고 있다. 종이로 된 서책의 시대가 급속히 퇴조하고 있다. 이사야 선지자가 예언한 것처럼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를 아는 지식이 세상에 충만할 것”(사 11:9)이다. 세 번째로는 성도들은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 할 것”(12:10)이다.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계 22:14)간다고 하였다. 성도들은 변화된 품성을 소유할 것이나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고,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아무도 깨닫지 못”할 것이다. “오직 지혜 있는 자는 깨달”(12:10)아 신랑을 기다리는 슬기로운 처녀들로서 준비될 것이다.
3. 마지막 때의 절정은 어떠한 사건들이 발생됨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하였습니까?
(단 12:1-4)
다니엘서는 지리적 북방 왕이던 바벨론이 영화로운 땅 예루살렘을 패망시키고 그 백성들을 포로로 잡아가는 장면으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런데 다니엘서 마지막 장에서도 최후의 영적 북방 왕이 영화로운 산 곧 하나님의 마지막 교회와 백성들을 공격해 오는 모습으로 예언되었다(11:40,41,45). 그러나 결과는 전혀 다르다. 지상의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은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짓밟히고 사로잡혀 갔으나 마지막 영적 이스라엘 백성들은 “연단을 받아 스스로 정결케 하며 희게”(12:10)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 때에 대군(大君) 미가엘이 일어나서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를 구원하실 것이다(12:1). 그 대군은 우리의 위대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님이시다. 물론 성도들은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12:1)을 겪게 될 것이다. 그때에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특별 부활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다(12:2).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12:3). 다니엘은 별처럼 빛나는 일생을 살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잠 9:10)임을 생애로 실증하였다. 마지막 백성인 우리들도 그렇게 될 것이다.
⃞ 은혜 나누기
1. 재림교회사에서 "천사의 손에서 작은 책을 갖다 먹"(계 10:10)은 백성으로서 단맛과 쓴맛의 경험을 알고 계십니까? 감미롭게 시작하여 쓴맛을 본 나의 신앙경험은 없었습니까?
2. 우리는 지금 "많은 백성과 나라와 방언과 임금에게 다시 예언하여야 하리라”(계 10:11)는 말씀을 성취하고 계십니까? 나는 이 시대에 진정한 예언자입니까? 각자 토의해 봅시다.
⃞ 명상할 말씀
“또 내게 말하되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인봉하지 말라 때가 가까우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