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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향기
곤지암 열미계곡을 아름답게 가꾸는 사람, 석천산방지기 오두환 씨
연초록 5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김동하 월간아미 취재부장
막다른 그 계곡
깊은 곳에
또 다른 설악이 있으니
이십 리길 굽어 도는
계곡의 숨소리마저
너무나 적막하여
천둥으로 화하는
열미로 가라. -석천-
싱그런 초록 잎사귀를 수줍게 밀어내는 나뭇가지처럼 사람의 마음에도 그리움과 인정이 한껏 물오르는 5월. 이즈음이면 한집에 살면서도 서로 바빠 소원하던 가족들이, 전화만 주고받던 옛 친구들이, 일에 치어 속내를 나누지 못한 직장 동료들이 모처럼 의기투합, ‘한번 뭉치자!’ 구호와 함께 1박2일쯤 가벼운 여행을 계획한다.
하지만 다들 한 번쯤은 경험했을 터. 여행이란 게 까딱 잘못하면 길에다 돈만 줄줄 뿌리고, 몸은 몸대로 고생하고 후회만 잔뜩 안고 돌아오기 십상이잖은가. 웬만한 펜션 하나 하룻밤 빌리는 데 기십만 원은 기본이요, 내가 좋다 찾아가는 곳은 남도 좋다 찾아오니 주말의 교통 혼잡은 피할 길이 없잖은가.
그런데 서울 근교에 독자들이 쏙 빠져들 멋들어진 공간이 있다. 매스컴에 요란스레 오르지도 않았지만 사람들 사이에 입소문으로 전해지며 경기 곤지암의 ‘숨은 명소’로 자리 잡은 석천산방(石川山房, 경기 광주시 실촌읍 열미리). 그리고 그곳에 한 남자가 산방지기로 살아간다. 얼굴 가득 활짝 핀 목련꽃 웃음을 머금고 첫 만남에서부터 산방을 떠나는 순간까지 정성을 다하는 산방 주인장 오두환 씨(54세). 그이는 금전적 이익보다는 산방 방문객들의 만족도로 자체 ‘경영평가’를 한다. 그러다 보니 손님으로 처음 찾아온 이들이 다음번엔 친구가 되고 시나브로 가족이 되어 인정(人情)의 동심원은 널리 널리 번져만 간다.
“보고 싶은 마음만 간절한 뿐, 오래 못 보고 지내온 친구들과 처음으로 1박2일 약속을 맞췄습니다. 이왕이면 서울에서도 가깝고, 아늑하고 운치 있는 곳에서 함께하면 좋겠다 싶어 욕심껏 여기저기 수소문하다가 마침 이곳을 발견했지요.~~ 저렴하고 경치 좋고 무엇보다도 산방지기님의 친절한 미소가 ‘킹왕짱’인 곳! 지금도 석천산방에서의 아름다운 추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
“생일은 그냥 넘어가도 결혼기념일은 꼭 챙겨 여행을 하는 우리 가족, 32주년 결혼기념일인 2010년엔 더 뜻 깊고 적은 비용으로 석천산방에서 보냈어요. 인심 좋으신 사장님께선 예사로운 분이 아니신 듯….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산방지기를 만나기 전 살짝 들러본 석천산방 온라인카페(cafe.daum.net/cssanbang)에는 우연히 이곳을 알게 된 후, 석천산방과 주인장의 매력에 빠져들어 해마다, 철마다 찾는다는 방문후기들이 줄줄이 매달려 있었다.
독자 여러분, 놀라지 마시라! 석천산방에서는 저녁밥과 황토방 숙박(宿泊), 다음날 아침식사까지 푸짐하게 즐기고도 1인당 2만 원이면 열미계곡의 맑은 물소리 바람소리까지 덤으로 누릴 수 있다. 오두환 씨가 11년 전 산방을 열던 그 시절, 그 가격 그대로다.
“오래 전 우연한 기회에 이 계곡에 천렵을 즐기러 들어왔다가 설악산 같은 아름다움에 빠져들어 아예 자리를 잡게 되었지요. 사람이란 어디에 잠시 머물다 가더라도 흔적이 남는 법이지요. 저는 이곳에 속세의 ‘펜션’이나 ‘러브호텔’ 같은 그런 건물을 지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 산방에 오시는 분들이 가족 혹은 지인들과 정을 나누며 편히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을 목표로 한 땀 한 땀 지은 것이 지금의 석천산방 본동인 통나무 카페입니다.”
곤줄박이가 날아들고 올챙이가 촐랑대는 산방풍경
곤지암 사거리에서 양평 방향(98번국도)으로 좌회전한 후 다시 2Km쯤 차를 달리니 우측에 ‘상열미’라는 이정표가 나온다. 작은 다리를 건너면서부터 열미계곡 입구가 시작된다. 여기서부터 계곡 물소리를 따라 꼬불꼬불 외길로 4Km를 더 들어가면 너른 품을 펼쳐 길손을 기다리고 있는 통나무집, 석천산방을 만나게 된다.
깊어가는 봄날의 고즈넉한 오후 시간. 산방을 찾은 중년의 나들이객 몇몇이 차(茶)를 나누는 풍경 사이, 산방지기 오두환 씨가 달려 나와 기자 일행을 반겨준다. 50대 중반의 나이는 숫자에 불과한 듯, 그이 얼굴이 산바람처럼 해맑다.
“오는 길이 좁은데 잘 찾아오셨네요. 산방 오시는 분들은 더러 마주 오는 차량을 만나면 한 쪽이 지나갈 만 한 곳에서 기다려줘야 합니다. 사람 입장에서 보면 길을 넓히면 나들기 편하겠지만 그러려면 계곡이 줄어들고 산에 사는 생명들이 삶의 터전을 잃게 되겠지요.”
산방 찾아오는 길이 좁아서 혹 불평하는 경우는 없냐는 기자의 질문에 오씨는 이곳에서는 모든 판단의 우선순위가 자연이고 그다음이 인간이라는 말로 답한다. 아니나 다를까, 오씨를 따라 산방 앞으로 흐르는 맑은 계곡을 둘러보니 금강모치, 버들치, 구구리 등 1급수 민물고기들이 한가로이 노닐고 있다. 바위틈엔 가재들의 천국이라며 활짝 웃던 오씨가 “휘익~ 휘익~” 휘파람을 부는가 싶더니 이내 어디선가 곤줄박이 한 마리가 그의 손바닥으로 날아든다.
산방 주변은 자연산림이 우거져 있어 곤줄박이, 직박구리, 동고비, 박새 등 야생 산새들이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친구로 살아간다. 오씨는 가족과 함께 산방을 찾은 아이들이 산새들과 즐겁게 노는 것을 바라보며, 사람만 마음을 비우면 자연은 늘 우리 곁에 친구로 함께한다는 진실을 새삼 깨닫는다고 한다.
더불어 사는 즐거움 하나 더, 산방에 살면서도 심심하지 않게 늘 ‘사고’ 칠 궁리를 한다는 오두환 씨는 벌써 수년 째 ‘올챙이 아빠’로 사는 재미를 맛보고 있다. 사연인 즉 매년 경칩을 앞뒤로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들이 아무 곳에나 산란하는 것이 안타까워(요즘엔 논에 물을 대지 않는데다가 자연연못이 사라져서) 7년 전 산방 근처에 산란장을 만들어준 것이다.
마침 기자가 산방을 찾았을 때 알에서 깨어난 수 만 마리 올챙이들이 촐랑대는 모습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알 상태로 말라버렸을 자신들을 거둬준 이에게 감사하듯 촐랑촐랑 귀여운 군무(群舞)를 펼치는 올챙이 떼가 보기에 제법 그럴싸하다.
“처음엔 보호종인 산개구리들이 걱정되어 시작한 일인데 이젠 매년 봄마다 제게 행복을 주는 녀석들입니다. 머잖아 뒷다리가 쑥, 앞다리가 쑥 나오면 산으로 계곡으로 통통 튀어들 가겠지요.”
나의 꿈은 좋은 아버지, 좋은 이웃으로 사는 것
결 고운 인상만큼이나 인생여정 또한 평탄했을 듯싶지만, 그이에게도 어둡고 긴 터널 같은 날들이 있었다. 대기업 기획실에서 처음 사회를 배운 오씨는 성실함과 열정을 밑천으로 독립, 한때 의류업계에서 발군의 능력을 발휘하며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 앞에 거래 업체들이 줄줄이 부도나면서 혼자 힘으론 도무지 어찌해볼 방도가 없게 되었다. 그의 이름으로 된 모든 것을 털어 부채를 정리하고 나니 더 이상 남은 것도, 남은 힘도 없었다.
“아마 겪어보지 않은 분들은 상상을 못 하실 겁니다.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나를 인정해 주고 믿어주던 주변 분들에게 나의 비참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설거지를 하면서 문득 깨우침이 있었어요. 체면을 버리니 해탈하더라는 것인데요, 사람에게서 ‘체면’이라는 허울을 벗어버리니까 비록 내가 하는 일이 설거지라 해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더라고요. 또 하나 가족 특히 아내에 대한 사랑이 깊어진 것은 저에게 큰 행복이었습니다. 그게 그 어려운 터널을 남들보다 빨리 빠져나올 수 있게 한 원천이 되었으니까요. 아마 제 기억으로 아내와 손을 맞잡고 길을 걷기 시작한 게 그때쯤부터였던 것 같습니다. 지금도 그 시절의 피해를 모두 극복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지수가 훨씬 더 높아진 것만은 확실합니다.”
어린아이들을 좋아하는 그는 지금 같은 산방자리에 동심(童心) 가득한 어린이집을 짓고 싶었으나, 사업 실패 후 그 꿈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어려울 때일수록 ‘가정은 행복의 충전소요 가족은 행복의 조미료’임을 그는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래서 방향을 잡은 것이 저렴한 가격으로 가족들이 함께할 수 있는 산방을 준비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비슷한 시기에 ‘좋은 아버지가 되려는 사람들의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더 배우고 덜 배우고, 돈이 많고 없음을 떠나 오직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자녀를 올바로 키우고 사랑하자고 뭉친 모임에서 오씨는 초대운영위원을 맡아 사회봉사도 많이 하고, 덕분에 아내 및 세 아이들과도 참 좋은 시간을 가졌다. 그는 모임에 참석하면서 ‘내 자녀를 사회의 자녀로 기르자’는 목표를 세웠다고 한다. 내 자식 귀하다 하여 애지중지하다보면 사회성이 부족해져서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에 사랑이 빠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이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세 아이에게 잘 전해졌는지, 다들 정말 자신의 꿈을 잘 펼쳐가고 있다 한다. 큰딸(보람)은 사회복지학 석사를 마치고 박사과정 준비를 하고 있고, 둘째(보아)는 초등학교 때부터 쿠키 굽는 것에 취미를 붙이더니 대학마저 요리를 전공하고 지금은 호주에서 워킹홀리데이를 이용하여 영어와 요리를 동시에 공부하고 있다. 아마 사막에 던져놔도 모래로 요리를 할 아이란다. 그리고 막내(세민)는 지금 중국 북경에서 열심히 중국어와 씨름하고 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잠시 떨어져 있지만 아버지와 세 자녀는 날마다 인터넷으로 소통하며 나중에 ‘지금 이야기’들을 엮어 책을 한권 내보자고 작당(?)을 하고 있다.
“제가 가장 힘든 시기에 아버지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고, 다행히 아이들이 훌륭하게 커준 것이 보람이고 자산이지요. 저는 사회를 개혁한다거나 하는 큰 뜻은 없지만, 세상을 살면서 법을 지키고 환경도 보호하고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살려고 노력합니다. 어쩌면 제가 살고 있는 열미계곡을 잘 지키고 아름답게 보호해서 이곳을 찾는 이웃들에게 즐거움을 드리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회봉사가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곳을 못 잊어 다시 찾는 이들을 위해
석천산방이 11년째 고집스럽게 지켜가는 원칙이 둘 있다. 하나는 방이 텅 비어 있어도 이곳을 ‘러브호텔’인양 생각하는 커플은 손님으로 받지 않는다는 것이고, 또 하나는 숨이 턱에 찰 때까지 요금을 올리지 않겠다는 것이다.
“처음 시작할 땐 불안하기도 했지만 마이너스통장 만들어놓고 돈보다는 손님맞이에 정성을 다하자 다짐하곤 했어요. 근데 아직 망하지 않은 것을 보면 그렇게 저렴하게 운영해도 조금은 남았나 봐요.(웃음) 저는 지금도 이런 생각을 해요. 내가 손님 입장이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살고 있다면 가족들과 놀러갈 때 무엇을 가장 먼저 생각할까? 답은 간단하지요. 바로 예산(경비)일 겁니다. 덜 남기고 제가 더 움직여서 찾아오시는 분들 부담을 덜어드리는 게 산방지기의 역할 아니겠습니까. 이따금 삶의 원칙이나 철학이 뭔지 물어보는 분들도 계신데 그런 거 없습니다. 그냥 한번 놀러온 분들이 ‘그 집 괜찮더라’고 다른 분에게 소개해 줄 정도면 성공한 것이라 믿고 살아갑니다.”
화려한 펜션이나 고급 콘도에 익숙한 이들에게 산방은 시설로만 보면 부족한 게 많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산방은 특급호텔도 따라올 수 없는 ‘인연’의 실타래가 큰 힘이 되어 지금껏 이어져 오고 있다. 친구로 처음 방문했다가 결혼해서 올해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간 부부도 있고, 벌써 몇 년 째 동창모임을 석천산방에서 하다 보니 지겹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오는 모임도 있다. 오두환 씨와 십년지기로 지내는 모 출판사 사장님은 몇 해 전 여름 직원들과 세미나 왔다가 산방 연못에 빠졌는데 그 후로 ‘연못이 오염되어 물고기가 살 수 없다’는 전설까지 생겨났다고….(물론 기자가 방문했을 때 산방 연못엔 금붕어 가족들이 잘 살고 있었다.)
오씨는 아름아름 입소문으로 찾아온 인연들이 한 올 한 올 엮어져서 산방이 11년이나 잘 운영될 수 있었던 원동력이 되었다 믿고 있다. 그래서 비록 부족한 것이 있더라도 정성을 더해서 한번 찾아오신 분들이 ‘이곳’을 그리워하고, 가까이 있는 소중한 이들과 서로 맞대어 함께 가는 사람임을 느끼는 장소로 오래 남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고 있다. 엄마 아빠 손잡고 함께 온 아이들이 “산방 아저씨 또 보고 싶다!”고 얘기하는 그런 산방으로 남아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할 생각이다.
“이곳에 오시는 분들에게 모두 자신의 별장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산방의 목표입니다. 가까운 산책로나 등산로를 이용하여 가벼운 산책도 하고, 뜰 앞을 흐르는 계곡에서 아이들이 물고기와 대화를 하고, 저녁 해질 무렵 작은 모닥불을 피워놓고 아빠가 야외에서 아이들에게 맛난 고기를 구이해서 함께 즐기는 그런 영화 같은 추억을 선물하고 싶습니다. 산방은 앞으로 10년, 그리고 그 이상 지금 모습 그대로 이 자리에 있을 겁니다. 다만 제가 지금보다 나이가 좀 더 들어서 사회활동이 힘에 부치면 그때에는 산방을 찾는 어린아이들에게 제 인생 경험과 지식을 조금씩이나마 전해주고 싶은 소박한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산방 2층을 다양한 책들로 꾸며놓고 마음껏 읽게 하는 것도 아이들을 위한 제 작은 마음이지요.”
♣
산방의 숙소인 황토방에서 하룻밤을 묵은 기자는 재잘대는 새들 소리에 아침을 맞았다. 지난 밤 오씨와 이런저런 담소를 나누다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었어도 봄비 맞은 청보리밭처럼 머리가 맑다. 아침상에 개운한 버섯찌게와 함께 나온 ‘오디소스 웰빙 샐러드’가 기자의 눈에 신기하다. 오씨가 지난 해 산방 근처 산속에서 딴 오디로 소스를 만들고 신선한 오색 야채를 곁들여 개발한 새 요리란다. 항상 ‘엉뚱한’ 생각을 하고, 늘 ‘사고’칠 준비가 되어 있는 그는 오늘 이 요리를 들고 ‘광주왕실도자기축제’ 개막식 이벤트의 하나인 건강요리대회에 나설 예정이다. 조미료와 인스턴트에 익숙한 도시 사람들, 특히 몸과 마음이 한창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좀 더 이롭고 자연에 가까운 요리를 만들어 주고픈 마음이기에 오씨의 웰빙 요리 개발은 앞으로도 쭉 계속될 거란다.
요리대회장에서 깔끔한 주방장 복장을 하고 사람들에게 ‘오디소스 웰빙 샐러드’ 시식을 권하는 오두환 씨 부부를 바라보며 문득 ‘오래 알고 가까이 사귄 벗’ 같다는 느낌이 드는 건 왜일까. 묵을수록 깊어가는 장맛처럼, 오래될수록 깊어지는 것이 또한 인간의 정(情)일 것이다.
첫댓글 고맙습니다.너무 예쁘게 포장해주셔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