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재순의 일본리포트] 일본도 놀란 대구 지하철 참사
2003-02-23 12:56
독가스테러 경험 … 자국 안전점검에 심혈
"혹시 대구에 친척이나 아는 사람 없어요?"
지난 18일 이후 만나는 일본인들마다 내게 똑같은 질문을 했다.
그 중에는 눈물을 글썽이며 말을 잇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
지난 한 주는 정말이지 괴로움의 나날이었다.
TV를 통해 비쳐진 골재만 남은 전동차의 앙상한 몰골. 그 화면 밑
으로는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피해자들의 비명과 절규가 자막으로
흐르고 있었다.
며칠 전엔 한국에도 몇 번 다녀 왔다는 한 논픽션 여성작가가 TV에
출연해 사고 이야기를 하면서, 한 여학생이 휴대폰으로 살려 달라고
애원하며 마지막으로 "엄마 사랑해"란 말을 남기고 죽어갔다는 대구
현지 리포터의 말을 듣고는 아예 얼굴을 감싸 안으며 흐느끼기도 했다.
인간의 본능과 감정은 아이덴티티에 관계없이 똑같은 것.
이번 대구 지하철 참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이 그러했다. 처음
에는 너무 놀란 나머지 '어떻게 그런 일이?'하다가 이윽고 '어떡해'란
절규로 바뀌었고, 다음에는 희생자들의 기가 막힌 가족 스토리를
듣고는 모두들 눈물을 흘리며 진심으로 안타까워했다.
이렇듯 대구에서 일어난 지하철 참사는 일본인들에게도 큰 충격
이었다. 사고 당일인 18일 오후 도쿄 거리에는 각 신문사별로 호외가
뿌려졌고, 성급한 정치 평론가는 혹시 북한의 테러범에 의한 사고가
아니냐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같은 곡해는 오래 가지 않았다. 범인이 잡히자 일본
매스컴은 약속이나 한 듯 자국의 지하철 안전상황에 대해서 따지기
시작했다. 일본이라고 해서 의도적인 방화로부터 결코 안전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수년 전, 무차별적인 지하철 사린 사건을 경험한 일본인들
로서는 의도적인 이번 대구 지하철 사고를 남의 일로 넘길 수가
없었다. 때문에 사고 이튿날에는 전철과 지하철에 평소보다 두 배가
많은 역원을 증원 배치하여 안전사고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1927년 지하철이 개통된 일본은 현재 도쿄와 오사카를 비롯한 전국
11개의 도시에서 지하철이 운행되고 있다. 하루 평균 수송 승객은
1억2500만 명, 인구의 10%에 해당하는 1300만 명이 지하철을 이용
하고 있다. 그 동안 몇 건의 사고도 발생했다.
1968년 히비야선에 화재가 발생해 11명이 심한 부상을 했고, 1972년
에는 터널에서 급행열차의 식량 차량에 불이나 30여 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있었다.
지하철 사린 사건은 옴 진리교 광신도들이 대량의 인명살상을 목적
으로 의도적으로 저지른 일종의 테러 행위이기 때문에 화재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아무튼 일본은 1972년 대형사고 이후 안전대책에 만전을 기해
지금까지 화재에 의한 사고는 일체 없었다. 우선 '환기'와 '소화'
'피난' 세 가지의 원칙을 세우고 철저하게 지켜왔기 때문이다.
외부의 공기를 빨아들이는 배기통을 적절하게 배치하여 공기가 원활
하게 환기되도록 했고, 또한 불에 연소되지 않은 단열재를 100% 사용
하여 전동차의 내부를 만들었다. 만약 연소 실험에서 합격하지 못한
재료를 사용할 경우 절대로 허가를 내주지 않도록 했다. 때문에
지하철에서 불이 나도 그 부분에만 불이 붙기 때문에 다른 곳으로
퍼질 염려는 전혀 없다.
피난도 마찬가지. 2개 이상의 피난 통로를 의무적으로 설치했기
때문에, 화재가 발생했을 경우 치명적인 인명 피해를 최소한으로
막을 수 있다.
그렇다고 일본 지하철이 화재로부터 완벽하게 안전하다고는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2년 전 개통한 오오에도선은 지하 7층에 건설
됐기 때문에, 불이 났을 경우 지상으로 올라 오는데만 2분 이상의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 따라서 이번 대구 지하철 사고처럼 누군가
의도적으로 기름을 뿌리고 방화를 했을 경우, 대구 사고처럼 대형
참사가 안되리란 보장이 없다. 그래서 일본 언론이 호들갑을 떨며
다시 한번 안전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바로 이
같은 연유에서다.
아무튼 '사고 공화국'으로 낙인 찍힐 만큼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우리나라의 대형사고와 그에 따른 수많은 희생자 때문에 나처럼 해외
에 살고 있는 한국인은 얼굴이 자주 화끈거린다.
yoo jae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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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구지하철 희생자를 추모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