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개봉된 성룡의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80일간의 세계일주]는 홍콩에서 겨우 200만元 정도의 흥행실적을 올리는데 그쳤다. 정형화된 역할만 자신에게 주어지는 할리우드에서의 작품 활동에 불만을 느끼던 성룡은 최근 다시 자신의 안방 홍콩으로 돌아와서 자신이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를 만들었다. 바로 [신 경찰고사](뉴 폴리스 스토리)이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영화는 성룡의 왕년의 대표작인 [폴리스 스토리] 시리즈의 연장선상에 있다. 1편은 지난 1986년에 개봉되어 2,600만元 이상을 벌어들였고 이후 갈수록 규모를 확대시켜 속편을 내놓았다. 2편(88년, 3,400만元), 3편(92년,3,200만元), 4편(96년, 5,700만元) 모두 팬들의 인기를 끌었다. 특히 러시아까지 무대를 확장시킨 주성치의 [소림축구]가 나오기 전까지 홍콩 최고 흥행작품으로 기록되었다.
[뉴 폴리스 스토리]는 98년 [성룡의 C.I.A]를 함께 한 진목승 감독 작품이다. 진목승은 한 시절 홍콩 느와르 팬들의 심금을 울렸던 [천장지구](天若有情)로 영화감독 데뷔를 한 인물이다. 유덕화와 오천련의 애틋한 사랑이 만들어내는 폭발적 정서는 아직도 많은 홍콩 영화팬들 가슴에 남아있다. 이미 불혹을 넘어 지천명의 장년이 된 성룡이 홍콩으로 돌아와 야심차게 만든 이 영화는 촬영 내내 화제를 불러모았다. 특히 완벽을 요구하며 폭발신 재촬영을 강행한 성룡은 하마터면 수십년 지기 진자강과 얼굴을 붉힐 뻔하기도 했다고 한다.
홍콩경찰 진 반장(성룡)은 온몸을 던지며 사건을 해결하는 베테랑. 어느 날 커다란 도전에 직면한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악당들이 은행 강도를 저지른 것이다. 성룡은 최단 시간 내에 이들을 일망타진하겠다고 공언하며 그들의 아지트로 진격한다. 하지만 경찰 특공대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악당들의 함정. 미로에 설치된 각종 전자장비와 컴퓨터 장치 때문에 경찰은 하나하나 잔인하게 죽는다. 동료가 죽어가는데도 성룡은 어찌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들 악당을 이끄는 리더는 오언조였다. 오언조는 어릴 때부터 경찰 고위간부인 아버지의 학대를 받았기에 경찰에게 맹목적인 증오를 퍼붓는 것이다. 성룡은 동료경찰을 다 잃은 후 술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그 앞에 나타난 맹랑한 청년 사정봉. 사정봉은 자신을 경찰이라 소개하며 성룡과 짝이 된다. 성룡은 사정봉에 의해 다시 삶의 의욕을 찾고 오언조 일당을 일망타진할 계획을 세운다. 결국 홍콩 시내를 휘저으며 액션의 강도를 높이더니 마침내 홍콩 마천루를 배경으로 폭발적인 액션 장면을 연출한다.
폭발액션신 연출에 일가견이 있는 진목승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살아있는 액션영웅 '성룡'을 캐스팅하여 화끈한 화면을 끊임없이 제공한다. 진목승의 전작 [쌍웅]에서 보여준 액션은 이 영화를 위한 워밍업이었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2층 버스가 홍콩 시내를 휩쓸고, 홍콩 컨벤션센터 건물 위를 종횡으로 누비는 성룡의 액션 장면은 그동안 점차 늙어가는 성룡의 액션 품세에 우울했던 그의 팬에게는 소중한 선물이 될 듯하다.
물론, 성룡의 나이는 그의 얼굴에서부터 속일 수 없는 세월의 강임을 실감케 한다. 대신, 성룡의 중년 액션 맨의 심적 고통을 적절히 전해준다. 동료의 죽음이 자신의 잘못이라는 자책감에 시달리며 술에 빠져 사는 성룡의 모습이나, 애인 양채니에게 눈물을 흘리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장면 등은 성룡의 또 다른 연기세계를 보여준다. 실제 성룡은 근래 들어 액션영화에 대한 부담감을 토로하며 자신도 연기파 배우로 거듭날 수 있다고 말하곤 한다. 오언조의 사악한 수에 넘어가 시한폭탄을 몸에 두르게 된 양채니 곁에서 눈물을 흘리며 "사랑해"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진정한 하이라이트이다. 성룡은 최근 이 장면에 대해 아픈 회상을 했다. 친아버지 이상의 의미였던 하관창과 호주에서 혼자 살아가던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를 떠올렸다는 것이다. 특히 모친이 사경을 헤맬 때 그는 [메달리온] 촬영에 매달리고 있었다. 모친이 죽기 이틀 전 성룡이 국제전화를 했을 때 모친은 "날 죽여줘. 내가 조금의 힘이라도 있으면 자살이라도 하고 싶어."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결국 모친은 저 멀리 호주에서 숨을 거두었고 성룡은 진자강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성룡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고 묵묵히 그날 촬영을 끝냈다고 한다. 그리곤 그날 숙소에 돌아와선 통곡을 했다고 한다. 그런 어머니를 생각하며 진한 눈물을 흘린 성룡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 영화에서 또 다른 감동은 극중 사정봉의 사연이다. 성룡이 존경하는 '오백'이 잠깐 카메오로 출연하는 장면인데 사정봉의 이후 운명과 관련하여 깊은 감동을 준다. 이 영화에서 성룡의 연기는 탁월하다. 오언조의 악역도 이젠 오진우 급이다. 깜짝 출연하는 왕걸도 홍콩 영화팬에게는 반가운 얼굴. 채탁연은 변함 없는 어리광 연기를 보여준다. 이 영화에서 성룡만큼 주목받은 배우는 아마도 오랜만에 영화계로 컴백한 양채니일 것이다. [폴리스 스토리]에서 성룡의 여자친구로 나와 크게 주목받은 장만옥과 비교하여 양채니는 처음부터 부담 가는 역할이었다. 극중 성룡의 액션과 심적 고통이 너무 거대해서인지 양채니의 연기공간은 그만큼 제한될 수밖에 없었을 듯하다. 이게 미안해서인지 이 영화의 속편이 만들어지면 양채니에게도 액션신을 줄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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