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저별은 내별 저별은 아줌마 별
김윤선
백년 암 삼천배를 하던 날 밤하늘에는 주먹 만큼 큰 별이 곧 땅이 떨어질 것 같았다.
500번 한 시간 절을 하고 땀에 젖은 옷으로 마당에 나오니 쏴~ 한 바람이 온몸으로 스며들어 땀을 식혀주었다. 마당 한가운데는 태산 같은 바위가 백년암의 주인이 되어 신도들의 기도 소리를 음미하는 듯 했다.
밤 하늘에 큰 별들을 보니 오래전 신혼 첫 살림을 살았던 여천군 삼일면 영순이 생각이 문득 났다. 첫 신혼 살림을 여천군 삼일면 상촌 마을 고구마를 쌓아놓은 창고 방에서 일 년을 살았다.
어둠에서 겨우 방을 한 칸 얻은 집에 초등학교 일학년 영순이와 삼학년 영철이가 살고 있었다. 6남매 중 내 또래 큰 딸은 작년에 시집 가서 여수에서 살고 있고 아들 둘은 순천에서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며 자치를 한다고 했다. 철야 정진 기도를 할 때 왜 당시 그들이 생각날까?
상촌마을 끝자락 집엔 닭이 집안 구석구석 난장을 쳐 놓고 방이며 마루에 똥을 싸도 아무도 보는 이가 없었다. 임신 3개월이 된 새댁은 집을 지키며 눈으로 볼 수 없는 부엌 방, 마루 마당 화장실 까지 매일 청소를 하였다.
눈만 뜨면 들에서 살아야 하는 주인집 아저씨 아주머니는 내 부모님 같이 인자하시고 따뜻한 분이셨다. 처음 이사를 올 때부터 나를 딸처럼 사랑하셨고 우리는 어느새 가족처럼 한 식구가 되었다.
밤이면 마당에 못깃 불을 피워 놓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함께 도란도란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나는 영순과 영철이와 함께 누워서 밤하늘에 별을 헤아리며 저별은 내 별 저별은 아줌마 별 저별은 오빠별이라고 노래를 불렀다. 하늘에 제일 큰 별이 영순이 별이라고 하고 다음 별은 아줌마 별이라고 하며 제일 작은 별은 오빠별이라고 했다.
영철이가 제일 큰 별은 아줌마 별이고 다음 내 별이고 제일 작은 것이 영순이 별이라고 하며 입 싸움을 했다. 영순이는 시샘이 많아서 모든 것을 큰 것이 자기 것이라고 우기던 모습이 귀에 종알종알 들려왔다.
영순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면 “아줌마 나 학교에 갔다 왔당게요.” 앞 니가 다빠진 귀염둥이에게 “그래 잘 다녀 왔니?” “예!” 마치 엄마를 보듯 반기며 좋아 했다. 때 마다 절구에 보리를 찧어 밥을 하던 주인 아주머니를 보며 풋 벼를 짛어 밥을 하던 어머니 생각이 문득 났다.
당시는 방앗간에서 보리를 찧었는데 어찌 매일 절구에 힘들게 보리를 가는지, 밥이 항상 투들 하니 영순이는 내 밥과 바꾸어 먹었다. 당시 입덧을 해서 밥을 잘 먹지 못해 가족들과 함께 영순이 밥을 바꾸어서 조금씩 먹었다,
아주머니가 묻힌 가지나물과 호박나물 된장에 비벼서 조금씩 먹곤 했다.
방학 때 큰아들 작은 아들이 와서 미꾸라지를 잡아 오면 추어탕을 맛있게 끓여 주었다. 어른들은 추어탕을 먹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추어탕을 먹어보더니 너무 맛있다고 했다. 한번 맛을 보더니 자꾸 잡아 와서 추어탕을 끓여 달라고 졸라댔다. 나는 어릴 때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추어탕이 제일 맛이 있었다. 어머니 맛에 따라 많은 재료를 넣고 맛있게 추어탕을 끓였다.
화장실 퍼는 날이면 담배를 사고 전을 부쳐 아저씨에게 술상을 차려주면 그렇게 좋아 하시던 모습이 눈앞에 선한다. 술상을 차릴 때 마다 윗집 형님네를 불러 함께 맛있게 드시던 모습을 보는 것이 행복했다. 그래서 화장실 펄 때 마다 술상을 차려 드렸다.
제일 큰 딸이 나와 한 살 아래며 작년에 시집을 가서 여수에서 살고 있다고 했다. 두 부부는 나를 딸처럼 사랑하셨고 나는 부모 형제처럼 정이 들었다.
여수 호남 발전소 공사가 한창일 때 상촌 마을에만 32쌍의 신혼 부부가 살고 있었다. 천태 만상의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방세도 주지 않고 도망가는 사람 술값 찬 값을 띠어먹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순진한 시골 사람들은 객지 놈들이라고 욕을 하며 객지 놈들은 모두 사기꾼으로 몰아 세웠다. 그러니 우리도 역시 객지 것 들이라고 처음 인정을 하였겠지 때묻지 않고 순수한 사람들은 흙과 자연처럼 너무 순박하였다.
밥을 할 때 딸처럼 곁에 앉아 온갖 이야기를 하면 주인 아주머니는 지 같은 것은 어느 곳에도 없다며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었다.
모내기를 할 때 보리 타작을 할 때 들판에 밥을 머리에 이고 함께 가면 온갖 사람들이 고맙다고 입을 모았다. 임신한 몸으로도 보리 타작 때 비가 오면 산을 한 고개 넘어 양철통에 보리를 이고 날랐다. 저 보리가 다 젖어면 썪어 버리니 애가 탔기 때문이다. 임신 5개월 때 내 몸도 무거운데 그냥 보고 있지를 못해 양철 통에 보리를 이고 날랐다.
상상할 수 없었던 신혼 첫 살림을 산골짝 모퉁이 창고 방에서 살 줄을 누가 알았겠나, 갓 시집간 새댁은 시댁의 열 네 식구가 아버님 시누이 빼놓고 모두 무직에 하루도 바람 잘 날 없이 분난이 일어 났다. 그 많은 가족들을 가마솥에 밥을 해 먹으면선 마치 지옥 같은 나날을 보냈다.
약 6개월을 채소도 캐며 시집살이를 끝내고 처음 남편을 따라간 아무것도 없는 산골에서 살았다. 모든 것이 부족하고 원시 같은 생활이었지만 그 가족들의 따뜻한 사랑은 잊을 수가 없다.
영순이와 영철이가 함께 누워서 별을 헤아리던 생각이 문득문득 떠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