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한 해—2023년-
2023년 1월22일 음력으로 정월초하루 설날
안식월을 맞아 귀국한 셋째 내외까지 13식구가 모두 모였다.
떠들썩한 떡국 상을 물리고 거실에서 사진을 찍었다.
설빔차림의 두 내외가 자식들의 절을 받았다.
2월5일은 하나뿐인 동생 현진의 생일이다.
모처럼 귀국한 셋째와 또 큰애가 회갑이 된 것을 알고 이모가
근사한 중식당 “왕스덕”에서 멋진 회식을 베풀었다.
2월 17일은 큰애 생일이다. 지금은 61세면 청년이다. 사진 속의 61세 아들도 청년 같다. 장소는 압구정동의 삼원가든. 외출이 힘든 아버지도 기쁜 마음으로 참석했다.
3월2일 오세훈 서울시장의 초대로 시청을 방문, 점심대접을 받았다.
초청 이유가 황당했다. 남편의 병수발을 들면서 간병기가 책으로 엮여져 나왔는데 그 책이 선한 영향력을 끼쳤다는 것이다. 맙소사, 앓는 배우자를 시설에 보내지 않고 돌보는 일이 미담이 되는 세상이 된 것이다. 오시장은 젠틀했다.
4월3일, 고등학교 동기동창 총회날이다. 43회 졸업생이라 해마다 4월3일에
총회를 연다. 나는 총회의 사회자다. 이 날 사회자로서 마이크를 잡았다.
외출한 아내를 남편이 성경책을 읽으면서 기다리고 있다. “어르신이 잘 계셔요”라고 요양사가 사진을 찍어 보내주었다.
4월 18일, 사촌동생들이 논현동의 취영루에 동생과 나를 초대하여 코스요리를 대접했다. 유씨 자매들과의 즐거운 만남.
이 날을 끝으로 나의 2023년의 그나마 견딜만했던 일상은 재앙을 맞게 된다.
5월 2일 남편의 요양병원, 입원. 4월 19일 저녁때 침대에서 떨어졌다.
설거지를 하고 방으로 오니 바닥에 엎어져 있다. 이후 온몸을 꼼짝 못한다.
침대로 올라가지 못하고, 겨우 기대 앉혀 놓고 밥을 떠먹였다. 대소변 처리는
악몽이 따로 없다. 구급차를 불러 촬영을 하니 골절은 안되었으나, 인대와 근육이 손상되었다고 한다. 치료를 위해 요양병원에 입원한 것이다.
면회는 일주일에 한번 20분간 허용, 입원 3개월에 12회 다녀왔다.
남편의 입원 3개월은 8년만에 내게 일시적 외출이 허용된 시기다.
입원해 있는 동안에 친구도 만났다.
문우들의 초대가 이어지고
교회에서 하는 경로나들이도 참석했다.
무엇보다 청주의 부모님 묘소 참배를 동생, 조카들과 다 같이 다녀온 일은 정말 신이 베푸신 선물이었다.
남편이 입원한 요양병원은 재활전문 병원이다. 재활과정을 영상으로 보내준다.
보행기를 잡고 서서 걷는 다리에 힘이 있어 보였다.
병원용침대를 임대해 놓고, 이동 변기와 보행기도 장만해 놓고 7월 29일, 모두가 반대하는 퇴원을 감행하여 3개월만에 집으로 모시고 왔다.
8월1일. 환자를 목욕시키려고 옷을 벗기다가 나는 기함을 하고 만다.
왼쪽 둔부 전체가 검붉게 썩어 있다. 환자를 토탈케어하는 쎈터에 전화해서 의사왕진을 요청했다. 욕창은 아니라고 하며. 약을 처방해 주고 갔는데 점점 퍼진다. 시뉘의 사위가 의사다. 와서 보고 사진을 찍어 피부과 의사에게 보냈다.
곰팡이 균이 퍼져나간 것이라고 하며 조카사위가 약을 받아왔다. 이십여일만에
구덕구덕 아물어 갔다.
퇴원후 나의 일과는 소변과의 전쟁이다. 병원에서는 싫다는 사람에게 강제로 기저귀를 채웠다. 낙상환자이니 또 낙상이 된다면 병원책임이다. 침대를 막아 놓고 조금만 움직이려해도 휠체어에 태운다. 기저귀에 배뇨를 하니 3개월에 요의를 느끼는 감각을 잊어버렸다. 그러면서도 절대 기저귀착용을 거부한다. 집에 와서는 기저귀를 빼고 소변통에 소변을 받아냈다. 소변 본 시간을 적어서 화장실 입구에 붙여 놓고 2시간마다 소변을 보게 했다.
9월을 지나고 10월에 들어서면서 점차 모든 기능이 회복되어 갔다. 하루 3시간 요양사 대신 하루 1시간 재활간호사가 와서 다리에 힘을 키우는 운동을 시킨다. 나는 환자의 식생활을 우선으로 한다. 병들고 나서 8년 동안 나는 오로지 밥하는 일에 전심을 다했다. 동생이 “밥상으로 성인되기”라는 글을 써서 올리기도 할 정도로 매끼 열심히 밥을 차렸다. 살아가는 목적이 되었다.
한 동안 낙상 사고로 침대에 올라가지 못해서, 바닥에 식판을 놓고 떠먹였다.
아버지가 출입을 못하자
아들들을 집으로 불러서 주일마다 또는격주로 점심초대를 한다.
10월. 외출은 못하지만 집안에서는 지팡이에 의지하거나 보행기를 밀며
화장실 출입을 하고 양치질하고 배변 후 뒷물도 스스로 한다. 그러나 또 넘어질까봐 잠시도 눈을 뗄 수가 없다. 한 사람은 앓느라고 또 한사람은 아픈 사람 지키느라고 샴쌍둥이처럼 붙어 살면서 함께 초췌해지고 늙어간다.
이렇게 2023년을 보냈다.
첫댓글 내가 보낸 한 해를 구경하듯이 보니 마치 다른 이의 한해를 보는 것 같다.
연민도 느껴지고 서글픔도 인다.
그러나 그보다는 감사가 먼저다.
내가 일년 365일 감기 한번 배탈 한번 나지 않아서 병수발을 들 수 있었던 것.
3개월 남편이 병원에 있는 동안 만나야할 사람들을 만났던 일들
그보다 사랑하는 조카들 모두와 청주의 부모님, 큰오라버니 묘소 참배를 할 수 있었던 것.
그리고 남들이 다 말리는 퇴원을 감행하여 남편의 건강을 회복시킬 수 있었던 일.
모든 것이 은총이었다.
이렇게 지난 일년을 엮어준 내 동생 아가다.
고맙고 고맙다. 사랑해.
누구의 삶이나 다 위대하고 인간극장의 주인공입니다.
내년에도 화이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