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질문은, "한 가지는 찬양 할 때 손들고 찬양하는 성경적인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 혹자는 내가 이 찬양에 헌신의 의미로 쓰는 사람 있거나 내 손을 높이 들어 영광을 돌린다는 사람도 있고......"라고 하였습니다.
두 번째 질문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 성경적인 의미를 알고싶습니다. 음악 예배를 언약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이라고 하는데, 보통 집회 같은 데 가면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싶시오 깊이 체험하십시오 하는데..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님이여!, 그러면 질문에 하나씩 차례로 답변해 나가겠습니다.
첫 번째로, 찬양에 대한 답변입니다. 님은 찬양 할 때 손들고 찬양하는 성경적인 의미를 알고 싶어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의 성경적인 의미를 알고자 한다면, 먼저 찬양 그 자체의 정의와 성경적인 의미부터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찬양이라는 말과 함께 같은 의미로 쓰여지고 있는 말로서는 "찬송", "찬미"가 있습니다. 이 모든 말은 "하나님이 행하신 위대한 덕을 칭송한다"는 것인데, 이를 노래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찬양은 이런 것이기에 여기에 담고 있는 가사는 하나님의 영광과 그 권능을 높여 세상에 선양(宣揚)하는 노래 말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찬양은 단지 노래하는 것으로서에 그 역할과 기능이 있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찬양은 구약 경륜하에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제사가 의미하고 있는 정신"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교회의 성도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할 때는 "노래한다"는 분위기와 그 기분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구약 이스라엘의 제사 제도가 지닌 "하나님과의 언약적 관계"에 의한 속죄의 은혜와 경배 및 헌신의 이해에 의해서 행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까닭에 찬양은 "예배의 요소"의 성격을 띠고 있으며, 따라서 예배에서 찬양이 불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찬양은 이것이 갖는 위치에서 하나님께 예(禮)를 다하여서 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결코 가볍게 다루어져 불려질 수 없으며 찬양하는 자세 또한 이것이 우리의 주[왕]이신 하나님께 갖는 것인 만큼 천박하게 가져서는 안 됩니다. 이에 찬양하는 곡의 가사는 참으로 신중하게 작사되어야 하며, 작곡도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합당한 찬양이 되어야 합니다(그렇지만 불행히도 현재 우리네 교회가 예배 찬양으로 사용하는 찬송가는 558곡이란 많은 곡을 수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100장 전후의 곡 외에는 대부분이 예배 곡으로서는 합당하지 않은 곡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사실은 대부분이 복음송의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찬양에는 예배의 요소로서의 곡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성도간에 갖는 복음의 교제 안에서도 찬양은 불려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곡은 분명 예배에서 부르는 찬양하고는 그 성격을 달리하는 것이기에 예배의 찬양과는 구분하여서 불러야 합니다. 그러나 이 찬양도 "신령한 노래"로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신 구원을 선양하는 성격을 분명히 갖습니다. 그렇지만 상당히 포괄적인 성격을 띱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며, 또한 그분께 가진 우리의 신앙고백적인 성격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노래하면서 이에 대한 감사와 충성과 헌신 등 다양한 내용을 담습니다. 그리고 이 신령한 노래는 믿음의 공동체 안에서 언제 어느 때에서든지 불려집니다. 물론 한 개인의 노래이기도 합니다. 그러기에 이 노래는 성도에게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자신의 삶의 노래이며 생활의 노래입니다.
이 신령한 노래를 "복음송"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만, 이 노래를 만들고 또한 부르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하나는, 전도 집회에 사용하기 위해서 지은 전도용 복음송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성도들의 교제에서 사용하기 위해서 지은 복음송이 있습니다.
그러면 이제 님의 질문의 취지에 좀더 가까이 나아가 찬양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는 찬양할 때 손을 들고서 찬양할 수 있습니까? 또한 이런 찬양에서 언제나 보게 되는 것인데 과연 박수를 치면서 찬양을 할 수 있습니까? "예배"(禮拜)란 말의 정의는 "하나님께 예를 갖추고서 예를 다하여 절을 함"입니다. 이 예배란 말과 같은 의미가 바로 "경배"(敬拜)입니다. 경배란 "공경하여 공손히 절함"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을 공경(恭敬)하는 마음의 상태에서(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나아오고 하나님을 공경하는 마음을 표하는 상태에서) 몸가짐을 공손히 하고 존경을 표하는 절을 하는 것"이 경배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예배하는 행위를 하는 찬양에서는 손을 들어 흔든다든지 박수를 친다든지 춤을 춘다든지 하는 행위는 감히 생각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기에 심지어 개혁교회에서는 악기를 사용하는 금한 교회가 있기까지 하였습니다. 혹자들은 성경에서 다윗이 춤을 추었다든지 여러 악기를 거론하며 찬양한다는 글을 들어서 손을 들어 흔들고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며 찬양하는 것이 마치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기뻐하시는 것인양 성도를 꼬드기고 있지만, 이는 그 내용들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한 데 따른 것입니다.
만일 손을 들어 흔들며 찬양한다든지 박수를 치고 몸을 움직이면서 찬양을 한다고 하면, 정말 꼭 그래야 한다고 하면, 이 찬양은 그렇게 함으로써 교회에 덕을 세우고 유익을 가져다 주는 것이어야 할 것인데, 이는 공예배 찬양으로서는 있을 수가 없으며 단지 복음송에 국한 되는 것으로 성도간에 갖는 교제의 필요성에 한해서만 고려할 수 있는 지극히 제한적인 것입니다. 사실 복음송이라고 할지라도 과연 손을 들어 흔들며 부른다든지 박수를 치며 부를 수 있는 곡도 제한적입니다. 복음송이라고 해서 모든 곡을 다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송일지라도 각기 그 곡들을 만들게 된 의도와 목적이 있습니다. 그러니 거기에 맞는 마음과 몸의 자세에서 불려져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나 주님의 인격과 사역을 기억하고 또한 이를 전하는 찬양을 하는 복음송에서는 어떻게 그렇게 부를 수 있겠습니까? 주님께 감사를 표하고 충성을 표하고 헌신을 표하는 신앙고백을 담은 진지한 찬양에서 과연 그렇게 부를 수 있는 곡들이 얼마나 될 수 있겠습니까? 그럼에도 복음송을 만든 분들이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면서 부를 수 있는 분위기의 노래로 작사하고 작곡을 하였습니다. 흥으로 부를 수 있게 하고 감정을 최고조로 높여서 부를 수 있도록 곡을 만들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찬양을 인도하는 리더자가 의도적으로 성도들을 손을 들어 흔들게 하고 박수를 치게 하고 춤을 추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 안으로 끌고 들어감에 따라서 이런 분위기에 익숙해 있는 성도로서는 그렇게 불렀던 곡만 나오면 자연히 몸에 익숙해 있는 대로 불러야만 찬양하는 기분을 갖습니다. 물론 몸으로 표현하면서 부를 수 있는 참으로 기쁘고 즐거운 복음송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몸으로 표현하는 것이 자신이 가진 신앙고백적인 삶을 충실히 드러내는데 참으로 잘 맞는 가사와 곡으로서의 복음송이 만들어졌어야 할 것인데 이는 아마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누리는 행복의 기쁨과 즐거움을 표하며 이로써 갖는 성도의 교제의 내용에서 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기쁨과 즐거움의 표현은 결코 찬양을 감성적으로 자극하여 부른다거나 기교를 써 가면서 부르는 것과는 분명 다른 것이며 또한 의도적으로 감성과 기교를 이끌어 내서 부르는 것과도 분명 다른 것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의 우리네 교회에서 부르는 찬양은 이런 양상을 띠고 있기 때문에 우려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손을 들어서 찬양하고 박수를 치면서 찬양하고 춤을 추면서 찬양하는 것이 마치 찬양이란 그렇게 불러야 하는 것처럼 찬양의 한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기까지 하기에 더더욱 우려가 됩니다.
님이여!, 님의 첫 번째 질문인 "찬양 할 때 손들고 찬양하는 성경적인 의미를 알고 싶습니다."하였는데 어느 정도는 답변이 되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아울러, 이 첫 번째 질문에서 또한 "혹자는 내가 이 찬양에 헌신의 의미로 쓰는 사람 있거나 내 손을 높이 들어 영광을 돌린다는 사람도 있고......"라고 의문시되는 듯한 표현을 하였습니다. 성도가 자신을 하나님께 헌신한다거나 또는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일은 찬양으로 비로소 표현되어지고 말해지는 것일까요? 이해를 돕기 위해서 헌상(하나님께 드리는 연보[헌금] 행위)을 한번 생각해 보지요. 찬양에 대하여 말하는데 이에 대한 이해를 돕는 설명으로 헌상(獻上)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뜬구름 없는 예를 드는 것이 아닙니다. 헌상은 찬양과 같은 예배 요소이며 하나님께 대한 가지는 신앙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과 관련해서 교회에 연보에 관하여 말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연보하는 신앙 행위에 앞서 요구되고 있는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고"입니다. 연보!. 님은 매주일에 연보를 어떻게 드리고 있나요? 아마도 준비한 가운데서, 그리고 믿음의 분량껏 할 것이라고 믿고 싶습니다. 그럴 뿐만 아니라 연보를 자원과 자발적으로 힘껏 할 것입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성도는 연보를 한 것으로 자신의 믿음의 행위를 다하고 책임과 의무를 다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연보는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가지고 있는 믿음에 관한 문제인데 연보 행위를 함에 있어서 먼저 전제되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을 먼저 주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연보를 드리는 신앙 행위를 하기에 앞서서 주님께서 그에게 먼저 요구하시는 것이 있는데 다름 아닌 "먼저 자신을 주께 드렸느냐?"하는 것입니다. 즉 주님을 향한 자신의 전적인 헌신이 되어지는 그 속에서 주일에 예배에서 하나님께 연보를 드리는 헌상 행위도 비로소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냄새의 의미가 살아 있는 것입니다. 이런 신앙적인 삶의 자세가 없이 단지 주일에 예배에서 아무리 많은 연보를 하고, 별의 별 명목을 동원하여서 할지라도 하나님께 받으실만한 헌금이 되지를 못합니다. 이럴 경우 그 헌금은 그야 말로 "기부금"의 성격에 지나지 않습니다.
님이여!, 찬양 또한 그렇습니다. 찬양이라는 신앙 행위를 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이미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아왔어야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이름을 높여 세상에 알리는 삶을 살아왔어야만 합니다. 예배에서의 찬양이 아닌 일반적인 성도간에 교제에서 찬양하는 것일지라도 그렇습니다. 이 찬양에 앞서 자신은 이미 하나님과의 관계를 믿음에 의해서 가져왔는데, 그러한 자신의 신앙고백적인 행위를 찬양으로 표현하여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는 손을 들어서 찬양하는 것과 상관없이,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면서 찬양하는 것과 상관없이 말입니다. 손을 들어서 찬양하고 박수를 치고 춤을 추면서 찬양하는 것에서 헌신이 표현되어지고 표시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님이여!, 찬양함에 있어서 과연 손을 들어서 찬양하고 박수치고 춤을 추면서 찬양(기도에 대한 질문과 함께)하는 것이 성경적인가 하는 의문을 품고 이미 앞서 질문하신 분이 있었습니다. 그에 대한 답변을 개혁주의신앙공동체 게시판 "질문과 답" 3번에 올려놓았는데, 이곳에 들어가서 그 답변도 함께 읽어 보시면서 좀 더 자세히 이해를 할 수 있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제 님의 두 번째 질문에 대하여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두 번째 질문의 내용은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서 성경적인 의미를 알고싶습니다. 음악 예배를 언약에 하나님과 그의 백성의 만남이라고 하는데, 보통 집회 같은 데 가면 여러분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깊이 체험하십시오 하는데..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에 대해 알고 싶습니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하나님은 영(靈)이십니다. 여기서 사용되고 있는 "영"(靈)은 참 신(神)이신 하나님의 존재 방식을 설명하고 있는 표현적 묘사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참 신이십니다. 이 신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형상인 사람과 함께 하십니다. 사실 하나님은 온 우주와 세상에 편재(遍在) 편만(遍滿)하신 분이십니다. 또한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신 분이십니다. 이 모두를 풀어 쉽게 설명하면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와 세상에 계신 분이십니다. 그 어느 곳에서와 그 어느 것에 함께 하시지 않은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특별히 하나님께서는 언약으로 맺어진 자기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과 백성의 관계는 "통치적 개념"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스리시는 분이시오 그의 백성은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자입니다. 그리고 이 통치적 개념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는 임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는 오늘날의 우리들에게서도 동일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여 계신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성의 의미에서입니다. 그런 것이지 하나님께서 우리 몸인 살(肉) 안으로 들어와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의 주로 받아 모시고 섬기는 성도는 항상 하나님과 만남의 관계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이 하나님과의 만남의 관계는 전기 스위치에 의해서 전기 선에 전기가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식으로 여겨서 어떤 때는 하나님과 만남을 갖고 있는 데 어떤 때는 하나님과 떨어져 있는 것으로 알아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자기 백성과 함께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를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신 구속과 부활을 통해서 교회란 하나의 생명체로 그 실체를 세상에 나타내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교회의 머리로, 그리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으로 설명하여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한 몸" 곧 하나된 몸으로 말하였습니다. 머리와 몸의 관계는 서로 분리될래야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생명체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성도는 항상 만남의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그런 성도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함으로써 비로소 하나님을 만나는 기회를 갖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다스림 속에 있어온 성도가 그분의 이름을 높여 온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찬양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이때서야 하나님을 만나는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는 자신이 숨쉬는 것에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시며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과 그의 나라에 두고서 이끌어 가고 계시는 것을 체험하고 있는 것을 찬양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찬양하여서 하나님의 만남을 깊이 체험하라니요!. 이 무슨 당치 않은 말입니까? 찬양을 매사에 이런 식으로 해 나가기에 찬양 후의 성도는 하나님에 대한 아무런 인식 없이 그리고 하나님과 아무런 상관없는 자신만으로 세상을 살아나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 회집하는 때에서야 다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분주합니다.
님이여!, 진정 하나님과의 만남의 깊은 체험은 님이 겪는 모든 현실에서 하나님을 믿는 자로 살아가고 있는데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 앞에 말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 님에 대한 세상의 평가는 무엇이겠습니까? 하나님과 함께 하는 이 사람을 세상이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과 함께 하는 님 앞에서 세상을 부끄럽게 하시는 것입니다.
이 정도로 님의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답변을 마치겠습니다. 충실한 답변이 되었는지....... 부디, 님의 이해에 도움이 되고 유익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안녕하세요!. 드레스큐어님!. 닉네임이 참 독특하네요. 답변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다음에도 질문 많이 하겠다고 하였는데 어떤 질문이 올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님의 두번째 질문에서 '음 예배..'라고 되어 있기에 '음악 예배'에서 악이란 글자가 빠진 것으로 봤었답니다.^0^
첫댓글 감사합니다 너무 너무 도움이 되어 버렸습니다...........훗흣 다음에도 질문 많이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읽어 봤는데 두번째 질문에 음악 예배가 아니라...... 음악이란 단어가 빠져야하는데 붙어 있네요^^ 다시한번 질문에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드레스큐어님!. 닉네임이 참 독특하네요. 답변의 글이 도움이 되었다니 참으로 기쁩니다. 다음에도 질문 많이 하겠다고 하였는데 어떤 질문이 올지 궁금하군요. 그리고 님의 두번째 질문에서 '음 예배..'라고 되어 있기에 '음악 예배'에서 악이란 글자가 빠진 것으로 봤었답니다.^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