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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성백제, 500년전 빛과 소리를 미리 만나다. |
한성백제문화제 9.22~23 개최, 다양한 축제 열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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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올해로 12회를 맞는 한성백제문화제는 축제의 막을 여는 혼불채화식과 개막식을 시작으로, 백제융성기의 화려했던 영광과 번영을 기리고 후대에 계승하는 축제의 하이라이트인 역사문화거리행렬, 5가지 테마(백제를 기리다‧배우다‧만나다‧즐기다‧느끼다)로 구성될 백제문화체험 등 다양한 행사가 준비되어 있다. 특히 한성백제 역사와 유물을 재미있게 배우는 디지털체험관, 퀴즈로 풀어보는 한성백제, 백제 군영 체험 등 더욱 풍성해진 프로그램과 이벤트를 마련하여 사람들의 발걸음을 축제의 현장으로 불러모을 것이다. 연계행사로는 백남준 탄생 80주년 기념 ‘광:선_백남준 스펙트럼’(9.17~23)-소마미술관, 몽촌해자(올림픽공원 내), 동명제(9.21)-서울 석촌동 고분군, 한성백제문화제 학술세미나(9.21)-한성백제박물관, 업사이클링 전시회(9.22~23) 등이 있다.
○ 한성백제문화제 공식 홈페이지 : http://hanseong.songpa.go.kr/
○ 한성백제박물관: http://baekjemuseum.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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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여·체험행사 백제체험마을, 역사문화거리행렬, 혼불채화식, 전통놀이 및 문화체험코너, 백제고분제, 도전! 한성백제박사(OX퀴즈), 돌발퍼포먼스, 전통 및 국제먹거리장터
공연행사 개∙폐막식 및 축하공연, 불꽃놀이, 칠지도 제막식, 한성백제! 청소년 음악동아리 축제, 거리행렬 환영공연, 한성백제 캐릭터쇼, 마술공연, 백제와 비보이
전시행사 자매도시 및 중소기업 홍보관, 재활용 명품 대축제
부대행사 한성백제 학술세미나, 자치회관 한마음 어울마당, 개막전야 「좋은영화」 상영, 백남준 탄생 특별전
먹거리장터
전통먹거리: 국밥,잔치국수,모듬전,육계장,자장면,장터국밥,바베큐,추어탕,명태회냉면
국제먹거리: 소시지/탄두리치킨/다꼬야끼/와플/코코넛,케밥/샤슬릭
시간 | 행사명 |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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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0~18:00 | 한성백제 국제학술세미나 | 한성백제박물관 |
14:00~18:00 | 제9회 한마음 어울마당 | 올림픽공원 주무대 |
15:00~16:30 | 제17회 백제고분제 | 서울 석촌동 고분군 |
19:00~21:00 | 개막전야 「좋은 영화」 상영 | 올림픽공원 주무대 |
시간 | 행사명 |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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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11:30 | 혼불채화식 및 봉송식 | 경당공원 → 올림픽공원 |
11:30~12:00 | 칠지도 제막식 | 올림픽공원 주무대 |
14:00~15:00 | 도전! 한성백제박사(1) | 올림픽공원 주무대 |
15:00~18:00 | 한성백제 청소년 음악동아리 축제 | 올림픽공원 주무대 |
19:00~21:00 | 개막식 및 축하공연 (김덕수 사물놀이패, 선화예고, 비트써클, 2AM) |
올림픽공원 주무대 |
시간 | 행사명 |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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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12:00 | 도전! 한성백제박사(2) | 올림픽공원 주무대 |
14:00~15:00 | 문화공연(바람노리) | 올림픽공원 |
16:00~17:30 | 역사문화 거리행렬 | 위례성대로 |
17:30~18:00 | 거리행렬 환영공연(일본-하나코리아) | 올림픽공원 주무대 |
19:00~21:00 | 폐막식 및 축하공연, 불꽃놀이 (플라워, 컬투, 태권무, 윤수일 밴드) |
올림픽공원 주무대 |
시간 | 행사명 | 장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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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0~12:00 | 백제체험마을 운영 | 올림픽공원 주무대 옆 |
전통놀이 및 문화체험부스 운영 | 올림픽공원 주출입구 | |
한성백제 캐릭터쇼, 백제 와 비보이, 마술공연 등 | 올림픽공원 백제마을 | |
돌발 퍼포먼스 (백제왕과 왕비, 군사순찰 퍼포먼스) |
올림픽공원 백제마을 | |
전통 및 국제 먹거리장터 | 올림픽공원 남4문 | |
중소기업홍보관 / 자매도시홍보관 | 올림픽공원 남4문 | |
백남준 탄생 특별전 | 올림픽공원 몽촌해자 | |
재활용 명품 대축제 | 올림픽공원 주출입구 |
백제어는 전기, 중기, 후기로 나누어 설명할 수 있다. 백제 전기어는 고이왕 때(AD 260년)까지의 언어를 가리키는데, 아직 부족국의 형태를 벗어나지 못한 시기라서 언어 또한 이전 상태가 지속된 것으로 추정된다. 전기 백제어의 특징은 하나의 부족국가에 의하여 부여계어가 사용된 단일 언어사회였던 것으로 이해된다.
백제 중기어는 고이왕 28년(AD 261)부터 개로왕 20년(AD 474)까지의 언어를 말한다. 이 시기는 이른바 부족국가의 체제가 중앙집권의 국가 체제를 갖춘 연맹체로 변모한 만큼 언어사적인 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났음을 유추할 수 있다. 이 시기는 오늘날과는 다른 수사체계를 가지고 있었다. 기본 수사 중에서 '밀(密=三)', '우츠(于次=五)', '나는(難隱=七)', '덕(德=十)' 등이 지명어 속에 그 흔적을 남기고 있다. 이 수사 체계는 고대 일본어에 수축되어 'mi(三)', 'itsu(五)', 'nana(七)', 'towo(十)'등으로 쓰였음이 확인된다.
백제 후기어는 고구려의 남침으로 북부지역을 포기하고 웅진으로 도읍을 옮긴 문주왕 초년(AD 475)부터 멸망하던 해(AD 660)까지의 언어를 말한다. 백제어사 7세기에서 이 시기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이 시기는 삼국사기의 1백40여 지명을 비롯하여 인명, 관직명 등의 언어자료를 국내외의 고문헌에 남겨 두고 있어 백제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백제시대의 의생활은 고구려나 신라와 비교해도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먼저 마한(馬韓)시기의 사정을 《後漢書》를 통해서 살펴보면 귀금속을 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화려한 구슬 장식을 하고, 상투를 틀고 베로 만든 도포와 짚신을 착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당시에 직조기술이 발달했음을 알려주는 것이며, 특히 가죽옷을 그대로 입는 원시적 복식단계는 이미 끝나고 본격적인 길쌈 활동과 함께 복식문화가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백제는 260년 고이왕(古爾王) 27년에 복식관제를 제정하여 왕과 관인을 관(冠)·의대(衣帶)·의색(衣色)으로 품계(品階)에 따른 차등을 두었다. 특히 신라에 비해 약 2세기 정도나 앞서 이러한 공복제도(公服制度)를 정비하였다는 점에서 백제문화의 선진적인 면을 엿볼 수 있다. 한편 평민에게는 대(帶)의 착용을 금지하고, 緋紫色을 평민의 복색으로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금계로 보아 관인과 평민의 차이를 두고자 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삼국사기』 백제본기 고이왕조(서기260년)에 기록된 공복(公服)에 대한 기록을 살펴보면, 백제인은 관직에 따라 옷과 띠의 색깔, 꾸미개의 재료를 구분하여 사용하였다고 한다. 왕은 소매가 큰 자주빛[紫色] 두루마기, 청색 비단바지, 가죽띠, 검은 가죽신으로 꾸몄으며, 6품 이상은 자주빛[紫色], 11품 이상은 붉은빛[緋色], 16품 이상은 푸른빛[靑色]의 옷을 입었다는 기록에서는 평민과는 다른 백제 귀족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
수서(隋書)와 북사(北史) 등의 문헌에 따르면 백제에는 고(鼓), 각(角), 완함(阮咸), 쟁(箏), 간(竿), 적(笛), 지 등의 악기가 있었다고 한다. 백제 악기들 중에는 고구려 피리인 고려적(高麗笛)과 당시 중국대륙에서 연주되기도 했던 공후(空後) 등의 악기도 있었으며, 의자왕 때에는 이러한 관악기들이 일본에 전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유추해볼 때, 백제의 악기 구성은 매우 다양하였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백제의 악사가 관제에서 8품에서 11품의 벼슬을 받기도 했다는 사실로 미루어 볼 때 당시 백제의 악사들은 뛰어난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추측해볼 수 있다.
백제시대 사람들은 투호, 악삭, 저포, 위기, 농주, 축국 등의 다양한 놀이를 즐겼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은 『삼국사기』 백제본기 등의 문헌을 통해 추정해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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