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의 이발소는 아늑했었다. 쉬잇 쉬잇 주전자에서 물끓는 소리 사이로 재각 재각 이발 가위 소리가 들렸다. 간혹 이발소 주인이 나직한 목소리로 손님과 한담을 나누는 소리도 들렸다. 조수가 물푸는 소리, 세발하는 소리도 들렸다. 귓전에선 사각 사각 귀둘레의 머리카락을 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오수(午睡)에 빠진 정원을 다듬는 정원사의 정전 가위 소리처럼 적요한 소리였다.
이발소의 의자는 편했다. 편하고 견고했다. 뒤로 젖히면 편한 침대처럼 되었다. 남자 손님들 중엔 젖혀진 의자에서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고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면 주인은 큰 타월로 그 손님의 가슴을 덮어주었다. 이발소 의자는 회전도 되고 발로 어딘가를 누르면 키도 높아졌다. 덩그러니 높아진 꼬마 손님에게 흰 이발 가운이 입혀졌다. 곧 흰 가운 위로 바리깡과 가위로 잘린 머리카락이 수북히 쌓였다. 그 머리카락들은 다시 바닥으로 떨어졌고 다른 사람들의 머리카락과 섞여서 뭉텅이 뭉텅이 빗자루에 쓸려 어딘가로 사라졌다.
어린 손님에게는 이발소 주인은 대단히 권위 있는 사람처럼 비쳐졌다. 대체로 날을 다루는 사람들이 그러하듯 약간 신경질적이었으며 마음대로 움직이는걸 대단히 싫어했다. 손님은 이발사의 지시대로 고개를 전후좌우로 꺾인 채로 꼼짝도 할 수 없었다. 어딘가가 가려우면 가운 밑에서 조심스럽게 긁곤 했다. 그러나 콧날개 옆에 떨어진 머리카락 부스러기는 가려움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다. 겨우 이발사 몰래 아래에서 위로 입김을 불어보기도 하지만 좀 채 떨어지지 않았다. 조발이 다 끝나면 이발사가 크고 부드러운 솔을 가져와 얼굴을 털어주었다. 그래도 그 코 옆의 머리카락은 떨어지지 않고 늘어 붙어 있었다. 그때야 가운 밖으로 손을 내밀어 간신히 그 머리카락을 떼어 낼 수 있었다.
겨울이면 이발소 중앙의 연탄 난로 위에 물 데우는 양동이가 하나 놓여 있었다. 머리를 감길 때면 한 조리의 물을 푸고 한 조리의 찬물을 담기 때문에 항상 미지근했다. 난로의 연통은 철사줄로 고정돼 있었고 그 철사줄에는 젖은 수건이 걸려 있었다. 이따금 면도사는 비누 거품이 묻은 면도솔을 그 연통에 문지르곤 했는데 그 때마다 지지직 소리가 나며 비누 냄새가 풍겼다.
이발소 한 귀퉁이에 바둑판 무늬의 흰색 타일이 발라진 세면대가 있었다. 어린 손님은 그 세면대 위로 목을 길게 내밀어야 했었다. 세면대 앞에는 집에서 빨래할 때 쓰는 비누와 둥근 플라스틱 브러쉬가 놓여 있었다. 조수는 조리로 물을 뿌리며 머리를 감겨 주었다. 어린 손님은 머릿속의 땀띠 부스러기와 눈속으로 파고들 비눗물 때문에 사실은 여간 걱정스러운게 아니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그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하는 것이다. 조수는 일차는 손가락으로 북북 문지르고 다시 비누칠을 하고는 이차는 브러쉬로 빡빡 문지른다. 처음엔 미지근한 물로 감기지만 두 번째는 브러쉬질로 얼얼해진 머리통 위에 찬물을 사정없이 내리 붓는다. 눈속으로 콧속으로 찬물이 스며들고 귓속은 웅웅거려 거의 제 정신이 아닐 무렵 물 붇는 소리가 그치며 왁살스런 손가락이 머릿속을 파고들며 물기를 훑는다. 마지막으로 고개가 쳐들리며 조수의 손가락에서 마지막 물기가 빠지는 소리가 뽀도독 들린다. 어린 손님은 그제서야 깊은 숨을 몰아쉬며 두 눈을 뜬다. 물 속에서 허우적대다 나올 때처럼 세상은 순간 샛노란 색으로 물들어 보인다.
다시 손님은 의자에 앉혀져서 머리가 말려진다. 이발사는 타월을 양손으로 팽팽히 당겨서 머리를 요령있게 탈탈 털어준다. 드라이어로 말린 다음 다시 빗질을 하고 머리카락이 삐죽삐죽 솟아있는 곳을 정성스레 다듬어준다. 그리고 이발소에는 접었다 폈다하는 긴 면도칼이 있었는데 날이 상당히 예리했다. 이발사는 면도하기 전에 언제나 나무 선반 한귀퉁에 못으로 박혀있는 혁띠에 그 면돗날을 두세번 무두질하듯이 문질렀다. 그리고 그 섬광이 이는 면돗날로 귀밑머리와 뒷목의 제비초리를 일자로 따고 뒷목의 잔털을 밀어냈다. 이발사는 그 면도칼을 굉장히 조심스럽고 솜씨있게 다뤘으며, 그 면도날이 목에 닿는 순간 섬뜩한 느낌과 함께 왠일인지 그 이발사에 대하여 알 수 없는 신뢰감과 친밀감이 들었다.
소위 앞면도라고 하는 것을 언제부터 받았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코 밑에 잔털이 거뭇거뭇해질 때부터 시작되었지 않나 싶다. 물론 학교의 구내 이발관은 아니었고 동네의 여자 면도사가 있던 이발소가 아니었나 싶다. 거품솔로 코 밑과 턱과 양 볼에 비누칠을 하면 제법 구렛나룻이 있는 거친 서부 사나이가 되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그 거품 속에 숨어있는 수염이라야 수염이라고 부르기에도 민망한 솜털에 불과했다. 집에서 아버지가 쓰시던 안전 면도기같은 게 있었으나 이발소에 갈 때까진 제법 수염을 부러 거뭇거뭇 길러가곤 했었다. 어쨌든 면도사는 내 얼굴이 원숭이처럼 털로 뒤덮인 양 몇 번씩이고 정성스럽게 면도를 해주었다. 한 번 면도하고 다시 비누칠을 하고 뜨거운 수건으로 습포를 하고 다시 손가락으로 비누칠을 하며 맨질맨질해질 때까지 면도를 했었다. 마지막으로 귀에 있는 잔털을 면도날로 미는 데, 귓바퀴 안쪽을 칼 끝으로 살짝 도려낼 때는 마치 섬세한 현을 건드리는 것처럼 사르릉 소리가 났다. 면도가 끝날 때 쯤이면 양귓볼이 홧홧하게 뜨거워졌다. 그녀가 면도하면서 귀를 잡아 늘려서인지, 아니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린 시절의 이발소는 작고 가난했다. 빗통 속의 머릿빗은 때에 절어 있었고 살은 드문드문 빠져 있었다. 금간 유리창은 창호지를 꽃모양으로 오려내어 붙여 놓았다. 이발소의 거울 위나 벽에는 몇 개의 액자가 있었는데 <료금표>도 있었고 명화의 복제 사진도 있었다. 진짜 유화도 한 장 걸려 있었는데 그 당시 미술대학을 다니던 삼촌은 이발소에 다녀올 때 마다 그 그림을 비웃었다. 깊은 삼림 사이로 거울같은 계곡물이 흐르고 멀리 기슭에 외딴 집이 있는 꿈같은 그림이었다. 전혀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는데도 놀라울 정도로 사실성이 있었다. 누군가가 그 그림에 대해서 물으면 이발소 주인은 멋쩍은 듯, 그냥 싸구려 그림이라고 웃고 말았다. 나도 그 그림이 왜 싸구려인지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 가지 의심스러웠던 것은 가난한 이발소 주인도 싸구려라고 할 정도의 그런 그림을 도대체 누가 왜 저렇게 정성스럽게 그렸느냐 하는 것이었다. 나의 그러한 의문에 대해 삼촌은 아무런 창의성도 없는 사람은 그런 임화 밖에 그릴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나는 전혀 의문이 풀리지 않았고 그 아름다운 싸구려 그림을 그리는 창의성 없는 화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평생을 이발사로 살아온 늙은 이발소 주인의 삶에 대해서까지 생각이 미치게 되었다. 그 의문은 풀리지 않은 채 잠복하였고,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다음 이제는 거의 없어진 낡은 옛날 이발소를 볼 때면 그 의문이 불현듯이 떠올랐다. 그 낡은 의자에 다시 앉아서 이제 늙어버린 내 모습을 보면서 나는 너무 이른 나이에 내 인생을 예감해 버리지는 않았나 생각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