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작불식(不作不食)
一日不作 一日不食 - 백장(百丈)
살아갈 수 있다. 의식주(衣食住) 문제란 그렇게 중요하다. 그러므로 아무리 종교적 수행을 목적으로 하는 수행단체라 하더라도 사람의 일인 이상 이 문제를 떠날 수는 없다.
중국의 선종은 육조혜능(慧能) 대사, 남악회양(南㗁懷讓) 스님, 그리고
여기에 소개한 이 글귀도 생활선을 뜻하는 좋은 예다. 그 후 마조 스님의 제자인 백장회해(百丈懷海, 749~814) 스님에 이르러서는 본격적인 선수행의 도량이 만들어지게 되어 생활과 선이 하나임을 몸으로 체현하게 되었다. 소위총림(叢林)제도라는 것이 그것이다. 선생활의 지침서인 『백장청규(百丈淸規)』도 이때 만들어졌다. 그 청규의 정신을 한마디로 표현한 것이 여기에 소개한
백장 스님 당시는 서당지장(西堂智藏, 738~817) 스님,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 스님 단하천연(丹霞天然, 739~824) 스님들과 같은 선의 대종장(大宗匠)들이 활동하던 시기이다. 임제의현(臨濟義玄), 흥화존장(興化存奘)으로 계승되었으니 참으로 선불교의 황금시대라 할 만한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식사하지 않는다.”라는 말은 모든 수행자는 보통 사람과 마찬가지로 의식주 문제 일체를 자급자족으로
스승 마조 스님의 생활선을 더욱 구체화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따르면 일상생활이 그대로 진리며 도다. 먹고 자고 입고 하면서 그에 필요한 자원들을 스스로 해결하면서 살아가는 일 모두 진리의 삶이다.
일일부작 일일불식(一日不作 一日不食)은 숭상(崇尙)하는 총림의 규칙이라고 할 수 없다. 오늘날의 총림규칙이나 수행규범으로는 하루 공부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一日不學 一日不食]고 바꿔서 이야기하고 싶다.옛 총림처럼 농사를 짓는 노동을 거의 하지 않는 요즈음의 강원이나 선원에서는 공부만 열심히 하면 밥값을 하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불교에서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말을 높이 숭상하여 항상 마음에 새기는 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맡은 바 임무를 다하는 것이 곧 진리의 삶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
출처: 큰 길에는 문이 없다 하네 원문보기 글쓴이: 룸비니
첫댓글 대구청방 에서 ~다시 하는 공부~
요모조모~새롭 습니다~~..감사 합니다~...헤송 님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