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76돌 한글날] 백성 위해 창제한 한글, 중생구제 위한 가르침...현판·주련 우리말로 장엄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남선사 도량 곳곳에는 한글로 적힌 주련과 현판이 눈길을 끈다. 한문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자애로운 세종대왕의 마음처럼 자비로운 부처님의 말씀을 누구라도 쉽게 알수 있도록 주지 도정스님은 사찰 안에 있는 모든 주련과 현판을 한글로 만들었다. 현판과 주련은 모두 도정스님이 직접 새긴 것들이다. ⓒ제주의소리
“글로 표현하고 싶지만 못했던 백성들을 위해 한글을 만들어 반포한 세종대왕의 자비로움처럼 불교 역시 한글을 활용해 모두에게 자비로운 부처님의 뜻을 전하면 좋지 않을까요.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한글의 우수성은 우리의 자랑이기도 합니다. 당연히 자랑스럽게 활용해야죠.”
대한민국 최남단 제주에서도 남쪽인 서귀포시 남원읍에는 도량 곳곳에 한글이 가득한 사찰이 있다. 절집 건물의 명칭을 써놓은 현판부터 부처님 말씀을 새겨놓은 주련 모두 한글로 새겨놓은 아주 특별한 곳이다.
한글을 창제해 세상에 펴낸 것을 기념하고 그 우수성을 기리기 위한 제576돌 한글날. 이곳 남선사는 한문을 모르는 백성을 위해 한글을 창제한 자애 깊은 세종대왕과 중생에게 세상의 이치를 깨닫게 하려는 자비로운 부처의 가르침이 맞닿아 절을 찾는 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만든다.
문자는 활용하는 사람들이 말하고 듣고 쓸 줄 알아야 의미가 생긴다. 세 가지 모두 할 수 없다면 그 의미는 퇴색되고, 결국 한낱 그림이나 선에 불과한 무언가에 지나지 않는다.
세종대왕 역시 마찬가지였다. 한문을 모르는 백성들도 문자를 활용해 소통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한글’을 만들었고 사대부들의 반발에도 끝내 반포하기에 이른다. 그 덕에 우리는 소리 나는 대로 적고 활용할 수 있는 한글로 막힘없이 소통한다.
이 같은 한글의 우수성을 살려 한글 가득한 사찰을 세운 뒤 불교 의식도 모두 한글로 한다는 서귀포시 남원읍 남선사(대한불교조계종 제24교구 선운사 말사) 주지 도정스님을 [제주의소리]가 만나봤다.
남선사 주지 도정스님은 창건 때부터 법당 현판과 주련을 한글로 만들어 달았다. 부처님 말씀과 건물의 의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이른바 ‘불교의 대중화’를 위한 뜻 때문이었다. ⓒ제주의소리
한글로 적힌 주련. 부처의 말씀을 누구나 쉽게 알아볼 수 있는 한글로 새겨놓았다. 도정스님은 한글자 한글자를 직접 자신의 손으로 새겼다. ⓒ제주의소리
2012년 서귀포시 남원읍에 자리잡고 포교를 시작한 남선사 주지 도정스님. 그는 남선사라는 작은 사찰을 창건하면서 부터 법당 현판과 주련을 한글로 만들어 달았다. 부처님 말씀과 건물의 의미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쉽게 알아야 하지 않겠냐는 이른바 ‘알기 쉬운 불교’가 되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었다.
사찰 안에 들어선 전각마다 모두 이름이 있는데 한문으로만 돼 있으니 방문객들이 그곳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고, 기둥마다 붙은 주련 역시 무슨 내용인지 모르는 현실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을 속으로 삼켜온 것.
스님은 한문을 모른다는 사실이 안타까운 것이 아니라 한글 창제 이후 600여 년이 다돼가는 지금, 변화하지 못한 불교를 안타까워했다. 어떻게 보면 한문을 잘 모르는 젊은 세대를 무시하는 행위로도 볼 수 있다고도 했다.
실제도 대부분 절에 있는 현판과 주련 등 글씨는 모두 한문으로 돼 있다. 불교에 대해 공부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공부를 했더라도 쉽게 읽기 힘든 것이 당연했다. 그러다 보니 점점 젊은 사람들에게 불교가 어려운 종교로 인식, 멀어지고 있다는 의견도 종종 제기되는 상황이다.
도정스님은 불교가 전례대로 한문만을 활용하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바꿀 수는 없겠지만, 한글과 병행 표기한다면 시대에 맞게 변화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했다. 누구나 절에 왔을 때 한글로 적힌 말들을 보고 느끼는 바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그는 사찰에 내걸린 현판과 주련 모두 직접 작업했다. 부처의 말씀이나 좋은 글귀를 직접 나무에 새기는 ‘판각’을 통해서다. 그렇게 남선사 곳곳에 내걸린 주련만 10여 개가 넘는다.
법당 기둥에 붙은 주련을 설명하고 있는 주지 도정스님. ⓒ제주의소리
도정스님은 한글 주련뿐만 아니라 사찰 곳곳에 부처의 말을 한글로 새겨뒀다. 사진은 도정스님이 직접 쓴 시 '깨바라'다. ⓒ제주의소리
어떻게 한글로 현판과 주련을 만들 생각을 했느냐고 물으니 스님은 과거 대만에서의 연수 생활 중 느낀 일화를 소개했다. 대만의 여러 사찰을 돌아다니면서 느꼈던 경험담이다.
도정스님은 대만 사찰에 갔을 때 적힌 글자들을 보고 ‘한문을 아는 사람들은 읽을 수 있겠지만, 아닌 사람들은 전혀 모르겠구나’라는 생각을 했단다. 거기서 더 나아가 ‘한문 가득한 한국의 사찰에서도 한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의미를 모르겠구나’라고 생각하게 됐다고 했다.
우리의 글이 있음에도 사찰 내부 글들이 모두 한문으로 돼 있으니 아쉽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 만약 한글로 돼 있었다면 누군가는 그 글을 읽고 깨달음을 얻을 수도 있었겠다는 아쉬움이다.
도정스님은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고 해도 한문으로 돼 있는 내용을 알지 못한다면 그건 글도 아니고 아무것도 아니지 않겠나”라면서 “그렇다고 아름다움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한문으로만 해둬야 하는가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대만에 있을 때 그런 생각을 하면서 만약 내가 절을 짓게 된다면 모든 현판과 안내문 등을 한글로 적고 아래 조그맣게 한문으로 써두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지금도 절을 찾는 분들은 한글 주련 앞에서 곰곰이 생각하고 웃고 가시기도 한다”고 말했다.
남선사에 붙은 주련은 부처님 말씀이 담긴 법구경과 함께 그 뜻이 녹아있는 재치있는 글귀들이 새겨져 있다. ‘향하는 길이 다를지라도 문 너머의 진리는 같다’, ‘주지라고 참 승려가 아니고 하는 짓이 이뻐야 참 승려다’ 등 다양하다.
스님은 “꼭 법구경이 아니더라도 가슴에 와닿는 글귀들을 많이 새겼다. 그러니 사람들이 와서 보고 웃고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 간다”며 “이렇게 좋은 내용 들이 많은데 굳이 한문만 고집할 이유가 있는가. 누구를 위한 글인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남선사에 부처님을 모신 법당 이름은 ‘향적전’이다. 부처님이 설파하는 법의 향기가 늘 우러나오는 곳이라는 의미다. 자비로운 그 뜻처럼 한글을 활용해 절을 찾는 중생들에게 친절함을 베풀고 있는 그곳에서 한글날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금 깨닫게 된다.
도정 스님은 고창 선운사에서 태허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1987년 계를 받았다. 법주사 백양사 강원, 송광사 율원 등에서 공부를 했다. 미얀마 파욱센터 등에서 초기불교 수행을 하면서 남방계를 수지했다. 미국·스리랑카·대만·일본 등에서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선운사 초기불교불학승가대학원 설립에 힘을 보탰다. 조계종 중앙종회의원 등을 역임했고, 현재 제주도 서귀포시 남원읍 시골마을의 작은 사찰 남선사에서 주지 소임을 살고 있다.
제주 서귀포시 남원읍 남선사 입구. 절을 알리는 글 역시 한글로 돼 있다. 뿐만 아니라 말(馬)의 본향이라 불리는 남원읍 의귀리에 맞게 말 형상 조형물을 설치하기도 했다. 지역과 함께 한다는 의미다. ⓒ제주의소리
서귀포시 남원읍 남선사 향적전 전경. 이곳은 부처님이 설파하는 법의 향기가 늘 우러나오는 곳이다.
-2022.10.09 제주의소리 기사
첫댓글 멋진 행운스님, 응원합니다, 그리고 감사 드립니다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