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 5월 17일은 고 구익균 선배단우님의 묘비제막식을 거행하는 날이다. 지난 1주기(一周忌)때에는 친한 선후배님들과
간소하게 치루었지만, 오늘은 대전지부에서 월례회 겸 선배단우 34위 독립유공 추모제를 함께 하는 날이기도 하다.
아침 일찍 일어나 설레는 가슴을 진정하며 일행들은 25인승 버스를 타고 대전현충원에 도착했다.
양무석 지부장과 임원진, 여영환 사무처장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었다.
이어서 대전흥사단 월례회를 마치고, 독립유공 선배단우 34위에 대한 추모제(追慕祭)가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식순에 따라 제문을 낭독하고 초헌(初獻)과 아헌(亞獻) 그리고 종헌(終獻)의 예에 따라 정성스레 차린 음식과 술잔을
올리고 엄숙하게 제사를 봉행하였다.
참석자 모두가 애국지사 묘역으로 옮겨와서 고 구익균 애국지사 묘비제막식에 참석했다.
고 구익균 애국지사의 약력과 경과보고를 이창걸 도산안창호혁명사상연구원장이 하였으며,
묘비제막식에 즈음하여 송주방 흥사단 원로 단우와 양무석 대전흥사단 지부장의 인사말이 있었다.
모두가 고 구익균 애국지사의 인품과 기개를 그리워하며, 여러 가지 어려움 끝에 이곳 대전현충원에 안장되신
고 구익균 선배 단우님의 내외분께 명복을 빌었다.
지난 1년을 돌이켜보면, 참으로 기나긴 고통과 암흑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떠오르는 5월 아침의 태양처럼 애국지사묘역 517호 주위를 환하게 밝혀 주고 있었다.
작년 4월 8일 노환으로 106세의 삶을 마감한 노 애국지사인 구익균 선배님은 국가보훈처의 잘못된 판단과 결정으로
이곳 현충원에 안장이 거부되었다.
이에 유가족과 제자들은 중앙행정심판의원회에 행정심판을 제소했으며,
전국의 흥사단 단우와 국민을 상대로 ‘구익균 애국지사 현충원 안장을 위한 서명운동’을 벌인 결과 약 5천여 명의 서명을 받았다.
일곱 번의 보충 변론서를 서면으로 제출하는 등 최선의 노력을 한 결과, 마침내 2013년 11월 26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서
구익균 애국지사의 현충원 안장 승인을 결정했다.
12월 20일 도산 안창호 기념관에서 추모식을 마치고 대전현충원에 부인 노수경 여사와 함께 이곳에 안장되셨다.
다행히도 한국의 최고 서예가이신 해정 김세호(金世豪) 선생께서 구익균 선배님의 좌우명과 묘비명을 써주셨다.
아마도 이 모든 일들이 고 구익균 선배님의 인품과 덕망의 결과로 보고 싶다.
안창호 선생님을 모시고 흥사단 활동과 독립운동에 전념했으며, 광복이 되고 나서 상해 교민단장으로서
70만불의 거금을 희사(喜捨)하여 3천여 명의 중국교포들을 한국으로 귀국시킨 일과
새로운 민주복지국가 수립을 위해 젊은 정치가들에게 몰래 숱한 정치자금을 제공한 일,
독립운동가와 그 자녀들에게 생활비와 학자금을 지원했었던 선행들이 마침내 아름다운 경사를 만들어 낸 것이다.
이처럼 고 구익균 애국지사의 대전현충원 안장과 묘비제막식을 주관하고 나서 느끼는 소감을 한 마디로 표현하기는 쉽지 않다.
굳이 하자면 두 개의 글귀로 피력하려고 한다.
하나는 묘비에 적혀있는 내용대로, “구익균 선배님처럼, 이익과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왔다 갔다 하지 않은
지도자가 많이 배출되어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착한 일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 :周易)”고 한 옛 선인들의 말씀을 실감하게 되었다.
이번 묘비제막식에 물심양면으로 협조해주신 많은 단우님, 흥사단 본부, 흥사단 대전지부 임원진과 단우님께 감사드린다.
특히 송주방, 임채승, 김태석, 박용란 선후배 단우를 비롯하여 김전승 사무총장, 박성극, 곽경현, 유종상, 권오철, 정남호 단우와
강종일 영세중립화통일협의회장, 김태순 통일민주협의회 상임부회장, 김낙중 통일운동가, 박재국 통일교육위원, 김동규,
유각균, 이건선 통일민주협의회 임원, 이연숙 용인불교문화원장, 대전흥사단 양무석 지부장과 지부 임원진,
여영환 사무처장 외 100여 명이 함께 추모제와 묘지제막식에 참석하여 자리를 빛내 주심에 깊은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 글 : 흥사단청소년재단 이사, 도산안창호혁명사상연구원장 이창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