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목의 까치둥지
이즈음 마루나무의 까치둥지를 볼 때마다 나는 공허, 죽음, 멍에, 절망 같은 잿빛 단어들이 떠오른다. 가지마다 절망하도록 훑어내 이파리 한 점 없는데다, 빈 둥지가 줄초상처럼 겹쳐 있어 그 쓸쓸함이 오죽 찬란해서다. 하늘도 그 혹독한 허무를 내려다볼 수 없어 한겨울에는 눈꽃을 피우기도 하였다.
봄의 초입에서 바라보는 까치둥지는 흑점처럼 선명하다. 허허로운 벌판에서 죽은 듯 서 있는 미루나무의 까치둥지는 선명한 만큼 시리고 아프다. 흔들리는 사유(思惟)를 깡그리 잃어버린 나목, 푸른 이파리도 까치도 영원히 떠나버린 듯한 그 정조(情調)가 이 계절 바로 내 가슴앓이다.
해일처럼 덮쳐 올 푸른 이파리들을 뒤로한 채 형은 오늘인 양 세상을 떠났다. 나이 지천명을 훌쩍 넘어도 수굿할 아우인 나를 미안하게 남겨둔 채 그리 떠났다. 나목의 시커먼 까치둥지가 나는 그때부터 뇌종양처럼 아팠던 것이다.
‘가슴이 죽어버렸으면 해.’라고, 어느 가수가 노래를 한다. 섬뜩하면서도 애절한 이 가사는 사랑의 비원을 호소하는 내용이다. 사랑이 머물거나 살 수 없도록 그리고 더는 찾을 수 없도록 가슴이 죽어버렸으면 한단다. 사랑하는 이를 잃어도 가슴이 죽어버리면, 그래서 물고기처럼 압점(壓点)과 통점(痛点)이 사라져버리면 뜨거운 피가 뚝뚝 흘러도 통증이 없을 터이니 살아갈 만하겠다. 하지만 죽지 못해 사는 가슴이다. 동백꽃 같은 선분홍 유혹이 있다 한들 열리지 못할 가슴, 열리지 못할 바엔 차라리 백치였으면 한다.
골목길을 나서서 햇살 새살거리는 담벼락에 기대어 섰다. 성에 낀 솔잎처럼 차가운 바람이 여린 햇살을 짓밟아도 담벼락 목련은 터질 듯 부풀어 봄이 넝쿨째로 흐른다. 개나리는 벌써 노랗게 미쳤다. 또한 바람과 숲과 새들 그리고 아스팔트의 겨울잠 깨는 소리마저 들리는데 오직 한 곳, 봄이 시큰둥한 나목의 까치집에서는 여전히 가슴이 죽어 간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두 번의 여행을 갔었다. 2주 동안 강릉을 시작으로 위로는 속초와 고성, 아래로는 동해와 삼척을 오갔으니 난생처음 동해안을 돌아본 셈이다. 일 때문이라 진정한 여행이 아니었다 해도, 바다를 실컷 바라볼 수 있다는 설렘과 그로 말미암아 닫힌 가슴이 열릴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이 컸었다.
동해안 도착 후 첫날 아침, 송림을 길게 두른 속초 해수욕장으로 산책하러 나갔다. 폭설의 숫눈을 걷어오듯 파도를 발아래 뿌려대며 아침 바다에서 붉은 풍란꽃을 피우던 동해안이, 바람 든 무처럼 구멍이 숭숭 뚫린 가슴 사이로 아무런 소용없이 흘렀다. 무표정한 바위, 눈을 감은 조도(섬), 근심처럼 흔들리는 배…. 수억 년 파도로 씻긴 정한(情恨)을 마신다 한들 동해를 품을 수 있을까, 나는 이내 숙소로 돌아오고 말았다. 속초를 떠나 동해시에 머물렀을 때도 나의 중정(中情)은 같았다. 추암동의 촛대바위와 태고의 신초(神草)같은 푸른 이끼, 모래사장에서 말리던 오징어들, 귀경길에 들렀던 정동진의 드라마틱한 정경 모두 처음 대면한 정취였으나, 가슴이 이를 외면하면서 동해가 지닌 깊은 수심도 허무하였다. 거대한 동해 어디에도 마음 한 귀 풀 곳이 없었다.
머잖아 푸른 이파리들이 우우 몰려올 이즈음, 푸른 이파리도 까치도 돌아오지 못할 내 미루나무만 벌벌 떨고 있다. 길을 나서면 그가 집에 돌아왔을 거 같아 다시 돌아가고, 집에 있으면 그를 찾아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이 안절부절못한 가슴을 어찌할 줄 모르는 계절. 그리움이 아지랑이처럼 미쳐 날뛰는 나목의 까치둥지만 오롯한 이 계절, 나는 사랑하여 절망하였다. 아마 나도 세상을 떠나야할 날이 온다면 이즈음이리라. (2003.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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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계절이 바뀔 즈음이면 서럽도록 가슴앓이를 하던 시절, 해만 설핏해도 오는 황혼우울증. 그래도 앓을때가 좋더이다.황홀하더이다. 꼭 한다는 소리마다 노모님 애 말리는 소리!! (큰 누나)
이 글은 제가 등단 다음해에 썼던 글입니다. 당시 활동하던 문예지 홈페이지에 올렸는데 발행인이 혹독한 비판을 하더군요.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죠. 그리고 저는 조목조목 반박하는 글을 올렸습니다. 발행인이 어이가 없던지 대꾸를 안 하더군요. 솔직히 저도 갓 등단을 하였을 때는 이처럼 건방이 하늘을 찔렀습니다. 등단 다음해부터 간단한 작품해설을 쓰기 시작하였지요. 주변 지인의 작품을 해설하다가 처음으로 형식을 갖춘 것이 2003년 임병식 선생님 작품해설이었습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부끄럽습니다.
이 나목의 까치둥지, 이제야 다시 꺼내 이리 자르고 저리 잘라내니 이만큼 남았습니다. ^^
좋은글 잘 읽엇습니다. 이승훈님 수준 높으신 글입니다
과찬이십니다, 김세명 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