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길 ㅡ 중국조선족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직능도시로서 중등도시지만 중국의
도시분류법에 따르면 《종합도시》쯤이면 비슷하고 외국의 일부 나라 도시분류법에 따르면 《지방중심도시》라면 가까운
편이다. 《보라니깐, 연길은 말이여, 인젠 도시꼴이 꽉 잡혔어.》
《그래, 조선사람이면 연길 와서 살아야 돼.》 무릇 진짜로 도시향수현상을 알고 여유있게 만끽하는
연길시민이면 꺼리낌없이 이렇게 말한다. 청년호텔회전빌딩에서 밖을 내다보라.하남다리우에 꼬리에 꼬리를 따른
택시들,일보사로타리를 끝도 시작도 없이 도는 자전거군, 물결쳐가는 인파, 백산호텔상공에 떠있는 도시 특유의 암회색 연무… 연길의 한쪼각
풍경이지만 연길의 빛깔과 화폭은 여기에서도 볼수 있다. 《도시로 가자, 연길에 가서 살자!》농촌에서
도시로 향하 진군이 시작된지도 이슥하다. 발달한 나라에서는 《공업교외화》,《교외도시화》로 나가는 추세지만
연길은 《도시중심인구포화》(거개의 중국도시가 그러하듯)되면서부터 주택난에 부딪쳤다. 《집, 집을
주오!》 제2도시인들은 비원에 가까운 소망으로 아우성 쳤지만 돈이 없어
방황했다. 《서울로,바다로, 돈벌이 가자.》 변계문화지대의
우월성을 민감하게 깨친것이다. 하지만 일종 문화모식에서 다른 문화모식과의 첩촉에서 어쩔수 없이
특수문화모식이 생겼다.말하자면 부동한 사회군체지간, 부동한 지구, 공간과의 마찰속에서 저도 모르게 문화진동을 배태시킨것이다. 더욱이 한민족,
한겨례라는 점에서 문화진동은 빠르고 세차게 만연되였다. 연길은 집미(集美)중심이여서 깨끗하고 동경이 가는
도시였지만 또한 추한 것, 악한것, 투기,협잡, 시기… 등 온갖 비리가 살판치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란
외곽을 벗기고보면 종래로 이런것이다. 실화라 해야 비슷한 이 글은 도합 세부로 소설중의
하나이다.
하숙집 ㅡ 일정한 보수를 내고 비교적 오랫동안 남의 집에
머물러있으면서 먹고 자는 집 대개 이런 정도로 풀이된다. 오늘 나와 강민식(30살)은 A대학 법률학부
연수생으로 연길에와서 하숙생이 되였다. 《따르릉》하숙집에 금방 행장을 풀자 탁상우에서 귀맛이 부드러운
전화벨소리가 울렸다.내가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안녕하세요 ㅡ 오? 김향숙녀사님 댁이
맞아요?》 왠 녀성의 간드러진 목소리다. 《…》나는 잠시 대답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여지껏 대개 첫마디에 례절이 무시된 건방진《와이 ㅡ 》부름에 습관되여 그런지 애교스러운 목소리에 귀가
간질거렸다. 《여기가 ㅡ 한국 서울인 ㅡ 데 ㅡ 요. 향숙 녀사님을
찾아요.》 내가 말이 없자 그쪽에서 다그쳐 말했다.거리가 먼 국외전화인데도 증폭전류의 흐름소리도없이
간드러진 서울말씨가 거침없이 들려왔다. 《잠간, 저는 이 댁의 爛纛琯?주인분에게 전화
바꿔드립니다.》 《누구세요?》 벽 하나를 사이데 둔 침실에 있떤
녀주인이 어느결에 객실로 들어서며 전화 받을 준비를했다. 《한국에서 오는 전화 같은데 향숙녀사님을
찾는답니다.》 《오, 그래요?제 전화가 옳아요.》녀주인은 바삐 전화기를
넘겨받았다. 《여보세요, 제자 향숙인데요.누구세요?네?어머 정녀사님이시군요.정말 잊으시지 않고 전화주셔서
대단히 고마워요.》 녀주인의 말투는 손색없는 서울말씨였다.길게 운을 남기는 《요》가 억양에 묘한
재롱이담겼다. 《녜, 그래요. 참으로 감사해요. 동생이여서 자랑하는 건 아니구요,
진짜(중문학부)졸업생이여서 대국어(한어)가 참으로 우수해요,녜. 특강이 얼마든지 될수 있을거얘요. 녜,
녜,그래요…》 녀주인의 전화는 얼마동안 계속되였다. 어느때부터인지
연길사람들의 입에서는 어렵지 않은 서울말씨가 류행되였는데 거개가 한국나들이를 한 《특권》으로 알고 있는 모양이다. 《문화진동》을
보여주는 일례다.비록 여기에는 선과 악의 구별이 없지만 부동한 효과가 생기는것만은 의심할바가 없다.
《한국갔다온 모양입니다》 녀주인의 전화가 끝나자 쏘파에 앉아 땀을 들이던 강민식이 녀주인에게 넌지시 말을
걸었다.서른에 때이르게 몸이 덜컥 난 민식이는 약간만 움직여도 땀을 철철 흘렀다. 금방 자질구레한 짐을 올리느라 5층으로 두어번 오르내리고는
숨까지 헐떡거렸다. 《녜. 올봄에 돌아왔는데 한국 가서 이태나 있었어요. 지금도 남편은 한국에
눌러있지요. 금방 온 전호는 제가 한국 가서 사귄 친구한테서 왔는데요. 저의 동생 초청장을 띄운다는
소식이예요.》 《허허, 이태라면 그동안 돈 많이 챙겼겠습니다.》
《뭘요.와서 일백사십짜리(140평방) 아빠트 하나 사구 두루 따젤들을 갖추고보니 손에는 얼마 없어요.》
연길에서 140평방짜리 아빠트소유자라면 그래도 괜찮은 셈평이 아닌가. 거부는 몰라도《귀족》쯤으로 보아도 과장은
아닐것이다. 《이제 남편이 돌아오면 좋은 택시 하나 갖출 예산이예요. 자가용으로도 쓰고…서울 가서 보니
자가용이 참으로 편리할때가 많았어요.》 《그쯤이면 편히 앉아 움직이지 않아도 무탈이겠습니다.》 나도
한마디 끼여들었다. 《호호, 글쎄요. 지금 돈이 모자라는 정도는 아니지요,. 자가용을 제하고는 요구되는
것이 없으니깐요. 그렇지만 집에서 뭘하겠어요. 한국 갔다오느라 일자리를 떼웠는데…좋은 일자리였지만 아쉬운 것은 없어요,. 그런데 할 일 없이
시간보내자니 견딜수가 없어요. 이제 기회가 오면 저도 일자리 하나 찾아야 겠어요.호호, 그럼 로독이 나시겠는데 잠간이라도 쉬세요. 전 좀
실례해야겠어요.》 말을 깍듯하게 마치고 객실을 나갔던 녀주인이 잠시후에 다시 객실에 사뿐
들어섰다. 《호호. 먼저 분명히 말해둘 필요가 있을 것 같얘요. 지금은요 남새 쌀값이 비싸 돈 값이
없지요. 안그래요?800원이라도 많은 축은 아니지요. 그러니 화식표준이 높지 못하더라도 좀 극복해야겠어요. 듣자니 연수생들은 정규적학생들과 달리
가정이 있다보니 집에 가는 차수가 많다는데 그 기간 화숙비는 따로 떼여내지 말구요. 남겼다가 화식표준을 높이면 좋지
않을가요?》 《그런 건 아주머니 생각대로 하십시오. 우린 옴니암니 캐는 일은
모르니깐.》 강민식이 시원스레 말했다. 《우린 하숙생에 있든
없든간에 일전 한푼 차나지 않게 약속대로 돈을 드리겠으니 그다음 일은 아주머니가 어떻게 해도 간섭하지
않을겁니다.》 나도 내키는대로 말했다. 《호호, 두분 모두가
시원시원해서 좋군요. 시내 와선 마음씨가 너무 고와도 안돼요. 따질때는 따져야 해요.》녀주인이 흔쾌한 기색이 되여 객실을
나섰다. 하숙생과 녀주인의 생활은 이로서 막을 열었는가보다. 하지만 나는 녀주인과의 거리감(?)을은연중
직감했다. 대체 어디에서일가.녀주인에게서 맡았던 이름모를 향수내?아니면 교태스러운 서울말씨?세련된
미소?무엇일가?
우리가 하숙을 정한 아빠트는 녀주인의 친정집이였다. 얼핏 따져보면 60여평방되는
아빠트였지만 공간리용률이 높은 아빠트였다. 위생실과 주방, 침실 두개에 객실, 현관이 알맞게 배치되고 게다가 앞뒤로 베란다까지 두개 곁달리여
습관상에서 불편하 점이 없었다. 녀주인의 부모는 모두 A대학 교직원이였는데 (녀주인의 어머니는 이미
퇴직했음)지금 가만히 한국으로 간 모양이였다. 학교측에 북경행차라고 리유를 댔지만 몇천명의 교직원을 가진 A대학이라 도서관이란 이름없는
후방부쯤에 출근하면 아마 그런 일례가 생길듯도 싶었다. 녀주인은 자기의 아빠트를 한 회사에 고가로 세를 주고 중학교 1학년생 딸애를 데리고
잠시 친정집을 지켜주면서 우리에게 하숙을 마련해준것이였다. 녀주인은 40살전으로 보였는데 제일 마지막
패의 하향지식청년출신으로서 지금의 남편은그때 사귄 모양이다. 한국 가기전에 공상은행의 직원이였다 한다.
보통키에 호리호리한 몸매라고 하기에는 손색이 가는 약한 부한 몸집을 가진 녀인이였는데눈과 눈썹은 정형수술덕으로 아름답게 보였지만 전체적으로는 썩
아름다운편이 아니였다. 하지만 입가에 자주 담고 있는 세련된 《호호》웃음의 도움이였는지 아니면 교태스러운 서울말씨 덕이였는지 그래도 매력적으로
보아야 비슷할 녀인이다. 《한국은요 민주사회 법제시회라지만 그만큼 인심은 야박해요.얼떠름하면 소해보는
곳이지요. 전 이태동안 별의별 일을 다 겪었어요. 서울 가서 처음으로 한 사인사회에서 일했는데 그 회사 사장놈이 글쎄 석달동안이나 저의 봉급을
질질 끌면서 지불해주지 않았어요. 교포라고 업신여기는 판이였지요.그래서 법놀음을 했댔어요. 그동안 그 사장놈의 위협과 공갈을 많이 받았어요.
법놀음에서 이기지 못하면 그 사장놈의 집에 가서 자결한 마음까지 가지고보니 겁나는게 없었어요. 마지막에 사법부장관까지 만나보았어요. 그래서 그
사장놈을 회령사기죄로 영창에 처넣고 그 돈을 끝내 받았댔어요.인민페로 환산하면 2만원쯤이나 되는 돈이여서 한국에서 보면 큰돈이 아니지요.
그렇지만 억울해서 어디 견딜수가 있어야지요. 돈이 많을수록 야비하게 노는 것이 한국사람들이지요.》 《한국
가서 진짜로 그랬다면 정말 만만치가 않은데…》 저녁식사후 강민식이 가만히
말했다. 《하긴 그만한 정도라면 그런 이악이 생겨날테지…》 나도
넌지시 공감했다. 하지만 낮에 처음으로 직감했던 거리감이 저녁에는 긍정으로 느껴지기
시작했다. 감정교류에서의 거리감이란 대등하지않은 차원에서 생겨나는것이다. 무척 조심해야 할
녀자다. 《따르릉》전화벨소리가 울렸다. 얼핏 시계를 보니 열시가 넘었다. 한밤중에 웬놈의
전화인가. 《손님입니까?제가 녀주인의 동생인데 수고스러운대로 언니에게 전활 바꿔줄수
없습니까?》 송수화기를 들자마자 우리쪽의 사정을 잘 알고 있는 녀성의 목소리가 울렸다.녀주인의 동생이라면
《중문학부》졸업생이 틀림없다. 《그렇게 합시다.》 나는 송화기를
내려놓았다. 《이것참. 전화기를 옮겨야겠어요.편히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해요.》 녀주인이 어느결에 객실에 들어섰다. 《괜찮습니다.
잠도 아직 자지 않는데…》 나는 녀주인에게 송수화기를 넘겨주었다.
《여보세요 ㅡ 오.》 귀가 따가운 녀주인의 서울 말씨다. 한국녀성으로 착각할
정도다. 이상한 일이다. 녀주인의 서울말씨를 들을때면 느닷없이 우리의 방언이 우습게 떠오른다.《갔다가
놀라옵소예 ㅡ 》앞가슴에 두손을 마주잡고 손님을 배웅할 때 하는 푸수한 농촌아낙네들의 말씨가 새삼스럽다.
《옵소예 ㅡ 》 투박해도 《잡음》이 없는 우리 말은 태평양 어느 군도에서 사는 민족의 언어가 사라지듯
자꾸 저 멀리로 밀려간다. 《언니요. 내 정숙이요.》 고요한
밤이라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챙챙했다. 《오, 너구나. 밤중에 웬 전화니?이쪽 손님들의 사정도
봐야지.》 녀주인이 동생을 나무라는체 했다. 《언니두, 지금은
초저녁이우. 모르우?연길의 밤이 지금부터라는걸. 호호, 지금 애 아버지와 함께 영화구경 갔다 오는 걸음이요. 영화가 끝나서 거리에서 양고기뀀까지
먹었소. 맛이 좋습데.》 《애두, 너 위생불결하구나 조심하거라. 요지음 상한이라두 류행병까지 돈다는데
공공장소에 좀 적게 다니려무나.》 《호호. 근심마오. 그런 병은 걸릴 사람이 따루 있지 다 걸리는줄
아오, 공짜로 얻어먹은 사람은 안걸리오. 우린 오늘 사돈한테서 돈 한푼 팔지 않고 먹었단 말이오.》
《사돈이라니?》 《언니의 그 시동생…모르오?요새 밤마다 가만히 양고기뀀을
한다우.》 《그렇게 유격전을 해서 몇푼 벌겠니?...》 《호호,
모르는 소리. 하루 저녁 수입이 백원을 넘긴다우, 참, 그런데 그 사돈이 언니를 썩 달가워하지 않은 것 같습데. 아마 집문제로
그러는가보우.》 《아니야. 며칠전에 돈을 꾸러 왔더구나.음식점을 꾸리겠는데 2만원이 수요된다구. 집도
없이 헤매는 처지에 2만원이 어디야, 긍정코 갚지 못할 돈이지…너도 알지만 나야 그만한 돈이
어디있겠니?》 《호호, 언니, 한국 갔다오더니 야박한걸 배웠구만, 이담 아저씨가 한국에서 돌아오면 어떻게
교대하겠소?》 책을 보는체했지만 나는 이들의 통화내용을 빠짐없이 엿들었다. 사인전화를 도청하는
것이교양없는 노릇이지만 어쩔수도 없는 일이였다. 《근심말아. 그들 형제간도 썩 화목치 못해. 너도
생각해보렴, 그돈이 어떻게 번 돈이야, 아무리 시동생이라두 난 꿔주지 못하겠다.》 녀주인의 목소리는
추호의 여지도 없이 단호했다. …하숙을 정한후 사흘째되는 저녁이였으니 그저께저녁이다. 초인종이 울리기에
내가 나가서문빗장을 땄다. 문밖에는 긴머리를 하고 몸집이 우둑진 서른살미만의 젊은이가 서있었다.그는 문이 열리자 망설이는 기색도 없이
집안으로들어섰다. 한마디 말도 없이 나를 훑어보는 피발선 눈에는 적의가 흘렀다. 《오, 시동생이구만.무슨
일이요?》 주방에서 설거지를 하던 녀주인이 현관에 머리를 내밀고젊은이에게 알은체했다.익숙한 사람에게는
그래도 서울말씨를 삼가하는 녀주인이다. 《하숙생들인데 A대학
연수생들이요.》 녀주인이 소개를 했지만 젊은이는 우리를 거들떠보지도 않고 녀주인의 침실로
들어가버렸다. 《저치 눈길이 우호적이 못돼.》강민식이 객실에서 나에게 가만히
말했다. 《무슨 사연이 있겠지…》 녀주인의 침실에 들어갔던
젊은이는 담배 한대 태울참도 지나지 않아 되돌아나오는 것 같았다. 《빙빙 에돌지 말구 없다면 툭
까놓소.말하지 않은셈치기우.》 현관에서 젊은이의 격한 목소리가
터졌다. 《마음대로 생각하우. 그렇지만 없는 돈이야 어떻게
주겠소?》 녀주인의 목소리도 낮은편이아니였다. 《이제와서 보니
돈벌이하려구 나를 내쫓았구만, 이제 발길을 끊으면 신세랄것도 없지.X같이…》 젊은이의 노한 음성과 동시에
《꽝》철문을 메치는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별일이 없어요. 시동생의 성격이 원래 저러니깐, 곡해듣지
않아요.》 녀주인이 객실에 들어서며 어른스레 말했다. 《촌에 있을
때에는 저러지 않았는데 시내로 들어오면서 나쁘게 변한 것 같아요. 호구도 일자리도 없이 무턱대고 시내로 들어와서 세 식구가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겠어요, 집이 제일 큰 문제에요. 그렇다고 우리가 나서서 해결될 문제도 아니구요.》녀주인은 난감한 기색을
지었다. 《공원가의 한 세집에서 살다가 주인집아들이 장가가서 집을 내라는바람에 잠시 있을데가 마땅치 않아
다른 세집을 찾는 며칠동안 이 집에 눌러있게 했는데 글쎄 다른 세집을 찾을념을 하지 않겠지요.그래서 곁에서 보다못해 내가 뛰여다니며 얻어주니깐
내쫓았다고 하지 않아요. 우리 친정어머니는 시내에서 곱게 자란분이여서 집을 맹탕 거두는데는 질색이지요. 한국 가면서 신신당부를
했는데요.》 녀주인이 구구한 해석을 늘여놓는 한편 나의 앞에 담뱃재털이를 슬그머니 밀어놓았다.어느결에
담뱃재와 꽁초를 아무렇게나 내던지는나의 불결한 흡연습관을 지켜본 모양이였다. 《한때는
아건팅(아르헨띠나)으로 로무수출 나가겠다고 했는데 그것도 돈이 있어야지요.시동생 일을 생각하면 정말 골치가
아프군요.》 나는 은영중 녀주인의 시동생에게 깊은 련민의 정을 느꼈다. 돈이 없이는 못사는 곳이
바로도시인것이다. 하지만 어찌 상상이나 했으랴.며칠후에 우리 앞에 그 젊은이 신상보다 더 《비참》한
일이닥칠것을 … 녀주인의 일방적인 《반역》으로 우리의 하숙생활은 보름만에 말갛게 끝나버리고 말았다.너무도
짧은 하숙생활이였다. 《딩동댕동》초인종종소리가 울리자 문이
열렸다. 《어허, 어거 집을 잘못 찾은거 아닌가?》 앞에서
초인종을 눌렀던 민식이 잠시 얼떠름해서 뒤에 선 나에게 묻는듯한 시선을 보내며중얼거렸다.문빗장을 따고 우리를 맞아준 것은 녀주인이 아니라 안경을
점잖게 건 20대의 새파란 젊은이였다. 《누굴 찾으세요?》 젊은이
입에서 진짜 서울 말씨가 흘러나왔다. 《허, 모을 일인데…》
강민식이 주춤 뒤로 물러서며 집안을 기웃거렸다. 위생실문에 걸어놓은 수영복차림의 녀인상, 주홍색의 문, 미황색주단… 눈에 익은 모습이다. 우리의
하숙집이 옳았다. 《틀리지 않는다면 이 집은 우리
하숙집이였는데…》 강민식의 말은 그래도 조심스러웠다. 《녜,
맞아요. 그럼 다른 하숙집을 찾으러 갔던 선생님들이군요. 사모님이 알려주던데요…》 이건 또 무슨 놈의
사연인가. 《선생님들이 오시면 전화해달라고 사모님의 분부가 계셨는데 오후에
와봐요.》 버젓한 주인행세를 하며 문을 막고 있는 한국 젊은이다. 무언가 짐작되는 것이
있었다. 《허참, 이건 또 어떻게 하는 소린가…》 강민식이도
어슴푸레한 사연을 짐작했는지 대뜸표정이 변해버렸다. 입가에는 랭소가 어렸다. 《못들어갈 집은 아닌 것
같은데 들어가봅세.》 나와 강민식은 약속이나 한듯 무작정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래도 사정을 똑똑하게
알아야할거 아닌가… 허, 이런 변화가 어디에 있겠는가. 우리가
주숙을 정했던 객실에는 호화로운 침대가 놓여져있었고 녀주인의 침실에도 역시 커다란 침대가 놓여져있었다. 객실에는 두명의 남자외에 녀자둘이 더
있었는데 한참 수박을 먹고 있다가 우리를 불청객으로 아는 모양 시들한 눈길을 보내왔다. 등교하여 열흘이
되자 우리 반은 《로동주일》을 맞았다. 원래 로동에 참가해야 될 노릇이나 학교로 총망히 오다보니 어떤 일은 인계도 채 되지 않고 소지품도
구전하지 않아 청가계를 내고 단위로 돌와왔다. 원래는 이틀후인 월요일에 올라올 타산이였으나 길림삼성팀과 심양팀간의 축구경기가 래일 있다는 바람에
오늘 앞당겨 올라온 판이다. 그런데 닷새동안에 이런 변화가 생긴것이다. 《동무들은 이 집에 언제 하숙을
잡았소?》 내가 안경을 건 젊은이에게 물었다. 《이튿전이였는데요.
사모님이 빈집이라기에 들어왔는데요.》 《한국에서왔구만.》
《녜.서울에서 왔는데요. 중국글 배우러 왔어요.》 젊은이 말은 곰상했다. 집안에 들어서자 험악하게
변해가는 우리의 표정에서 무엇을 눈치챈모양이다. 우리들의 이불짐과 소지품은 한국학생들의 침대밑에
아무렇게나 처박혀 나뒹굴고 있었다. 《우리 하숙이 아닌데요. 이 집을 세맡았어요. 집세는 아직 정하지
않았는데요…》 학국학생은 묻지도 않은 말을 했다. 녀주인과 한국학생들지간에 사전에 은밀한 약조가 있었다는
것이 직감되였다 학국학생들이 내는 돈이 우리와 대비가 되지 않게 많은것만은 틀림없다. 때문에
녀주인은우리와 아무런 약속도 없이 우리가 없는 사이에 한국 학생들을 끌어들인 것이 아닌가.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하지만 나어린 한국학생들 앞에서 우리는 터져나오는 붙통을 용케참아냈다. 《오후 한시에 다시
오겠으니 그때 보잔다구 주인에게 전화해주오.》 우리는 하숙집을 나와버렸다.녀주인이 앞에 있었더라면 곱게
다듬은 얼굴에 주먹이라도내질러 망가버릴 심정이였다. 이런 망신과 우롱을 언제 받아보았단 말인가.
약속한 시간에 우리는 삼륜차를 불러가지고 하숙집을 찾았다. 《오늘
오셔댔어요?》 우리보다 한발 앞서 와있던 녀주인이 객실에서 우리를 맞아주었다. 녀주인의 표정에는 약간의
변화도 없어보였다. 우리가 없는 사이에 철면피한 연극을 꾸며놓고도 어쩌면 낯색 하나 변할줄 모를가. 무서운
녀자다. 객실에는 녀주인외에 《중문학부》졸업생으로 보이는 녀주인의 녀동생 그리고 시내에서 행세깨나 할
듯한 옷차림을 한 우리 나이 또래의 사내 둘이 대기하고 있었다. 사내들의 눈에는 쌀쌀한 빛이 비껴있었다. 웃을수도 울수도 없는 촌극이
벌어졌다. 녀주인의 가소로운 연출이다. 《인젠 다 알고 있으니깐.
구태여 변명을 하지 않겠어요. 일이 이렇게 된 이상 할수 없는 일이지요. 그저 미안해요…》 녀주인은 마치 우리에게 차실이라도 있듯 선불을
걸었다. 《미안하다는 말은 뒤에 하고 먼저 물읍시다. 저 사람들은 어째 왔습니까?우릴
위협하자는겁니까?》 내가 참지 못하고 한발 앞섰다. 나의 말은
날카로왔다. 《오해마세요. 제 녀동생 남편과 그 친구되는 분인데 오늘 여기로 록상기 가지러 왔어요.
그리고 제가 오늘저녁 사과하는 뜻으로 한턱 내겠는데 술동무들이라도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뻔뻔스러운
대답이다. 《가소롭군.우리가 그래 녀자들과 옴니암니 시비질하는 사람으로 그런 사람으로 보입니까.내 이
자리에서 똑똑하게 말해주지만 만약 우릴 위협하러 왔다면 쾌히 응하겠습니다.》 나보다 더 과격한 강민식이
두 사내에게 도전적으로 눈길을 보냈다. 《당신들도 그럴 의도가 있다면 일이 끝난 다음 아래에서
기다리우. 내 공직신분으로가 아니라 학생신분으로 겨루겠소.》 강민식의 어조는 강경했다. 특종부대출신으로
불량배들을 다스리는 일터에서 일하여 그런지강민식은 눈치가 민감했다. 방안의 분위기가 팽팽해지기 시작했다. 그래도 점심을 먹으며 처음으로 가졌던
욱기를 눅잦힌 우리였다. 필경은 법률학부 연수생들이 아닌가. 녀주인에게 따끔한 말 한마디로 그칠
타산이였는데… 《오해마십시오.법률학부 연수생들이고 우리도 선생님들의 신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깐
싸움하러 온 것이 아니지요.》 녀주인의 동생이 바삐 나섰다. 언니와는 달리 참새 같은 작은 몸매였지만
인형처럼 깜직하게 생겨먹은 녀자였다. 《정말로 록상기 가지러 왔는데 왔던김에 술친구로 사귀여도 될수 있지
않습니까?》 《돼먹지 못하게 이런 장소에서 말같지 않은 말을 하지 않은게 좋을겁니다. 우린 연길에 친구도
많으니깐 더 사귈 마음도 없습니다.》 강민식은 끝까지 어조를 굽히지
않았다. 《당신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깐 이 방에서 나가주길
바라오.》 강민식은 사내들앞에 다가섰다. 《허, 이거 우리 오늘
공연히 왔구만. 좋소. 당신들이 그렇게 생각되면 우리가 나가주지.》 두 사내는 휘파람을 휘휘 불면서
객실에서 나가버렸다. 얼빤한 눈치를 보이면 둬마디 싱거운 소리나 대게 무리한 힘으로 우리를 무작정
굴복시키려고 접어들 사내들이나 우리의 잡도리가 만만치 않고 촌학생으로 호락호락 넘겨보다가 우리 둘의 신분을 알아차렸는지 두 사내는 끝내 자리를
피하고 말았다. 《우리는 다른 말을 더하지 않을겁니다.시원히 나가줄겁니다. 그렇치만 원인 하나만은
알고싶습니다.》내가 녀주인에게 바투 들이댔다. 《다른 사연이 아니라 언니가 새로운 일자릴 찾았습니다. 이
집이 하숙으로는 마땅치도 않고… 좌우간 이러저러한 원인이 많았습니다.》 녀주인의 동생이 언니를 대신해서
말했다. 얄팍한 입술을 가진 녀인이여서 그런지 시비를꽤할 것 같았다. 《전 다른 할말은 없습니다.
변명해도 소용없으니깐요. 그저 미안한것뿐이지요.》 이악스럽던 녀주인이 시비에서 불리한 것을 알고 있어
그런지 아니면 만만치 않은 우리 잡도리에 주눅이 들어 그런지 처음보다 떳떳치 못했다. 《다른 것 어떻게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온 다음에 처리해야 할 일이 아닙니까.애들 장난입니까?우리가 없는 사이에 이게
무슨짓입니까?》 《글쎄, 좋은 일자리가 생기고 하니깐 미처…후, 이럴 때 남편이라도 곁에 있다면
의논이라도 해서, … 어떻게 …》 녀주인이 거련하게 중얼거렸다. 애들 같은
변명이다. 《녀자들이니깐 이만한 사정을 보는겁니다.알겠습니까?남편이 그렇게 처리했다면 박살이
날겁니다.》 강민식의 말은 추호의 사정도 없었다. 주먹에서
소리났다. 《참, 어떻게 말씀 드려야 좋을지…》 녀동생도 난감한
기색이 되였다.이제 와서 무슨 말을 더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인정이 박하고 돈이 살판치는 세월이라도
이러면 못씁니다. 다른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로는 분하지 않을겁니다. 이게 뭡니까?한국학생들앞에서 짐을 싸들고 쫓기워가는 우리 립장을
생각해보시오! 이래서 우리가 이렇게 격분해하는겁니다.》 나의 어조는 낮았지만 그래도 격조가 있는
셈이였다. 사실 따져보면 이 일이 제일 통분한일이였다. 그 녀자들은 그저 묵묵히 침묵을 지키고 앉아 대꾸
한마디 없었다. 할말이 이제는 없다.더욱이 녀자들과 싱갱이질하는 것도 사내 처신에 어울리는 일이 아니였다.
우리 둘은 약속이나 한듯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 이미 받았던
하숙비를 돌려드리겠어요.열흘동안의 화식비는 계산에 넣지 않고 몽땅 돌려드리지요.》녀주인이 우리 뒤를 따라나오며
말했다. 《그건 안됩니다. 시비는 시비대로 하는것이고 계산은 따로 하십시오. 우리가 그 정도로 가난하지는
않으니깐. 떼여내십시오.》 강민식이 뒤돌아보지도 않고 내뱉았다.
현관에 나서니 학국학생들이 이미 우리의 소지품을 모아놓고 있었다. 《멀리서 공부하러 왔는데 이거 추태가
되면 량해하우, 동무들과는 상관없는 일이니깐 부담갖지 말고 공불 잘하우.》 우리는 그들과 신사적으로
악수를 나누었다. 《이 짐을 빠짐없이 날라내려가주길 바랍니다. 수고 바라오.》 강민식이 백원짜리
지페를 꺼내들고 이미 대기해섰던 삼륜차 차부에게 건늬였다. 허식과 과장이 섞인 거동이나 녀주인과 한국학생들앞에서 하는 강민식의 행위는 단순한
외교행위만은 아니였다. 《이럴 필요가 없소. 나도 돈이 필요되여 이런 노릇을 하고 있지만 이런 돈에는
흥미가 없소.》 의아한 눈치를 보이던 삼륜차 차부는 뜻밖에도 쌀쌀하게
거절했다. 《한꺼번에 이 많은 짐을 옮기기엔 나혼자로는 바쁜데 내려가는 걸음에 저를 도와 이 짐을
들어주십시오.》삼륜차 차부는 짐을 둘러메고 나가버렸다.허약하게 생긴 사나이였지만 강한 인격을 갖고 있는
사내였다. 《아직 하숙집도 못잡았겠는데 서둘지마세요. 짐을 잠시 여기에다
보관해두세요.》 녀주인은 진정으로 만류하는체했지만 우리는 듣는체도 하지 않았다. 거리에 버릴지언정한시도
이 집에 짐을 둘 필요가 없는것이다. 우리는 《망류》들의 처연한 꼴이 되였다.
한국학생들과의 《경쟁》에서 우리는 어쩔수없이 패하고 쫓겨가는 꼴이
되였다. 우리는 삼륜차뒤를 따라 목적없이 걸었다. 《쌍
빌어먹을…》 나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무지한 욕이 터져나왔다.
봄을 맞는 거리는 바야흐로 춘색이 흘렀지만 나의 마음에는 봄이 없었다. 하늘에는 비행기가 우르릉거리며
날아옌다. 아, 낯선 도시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