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란 말은, 사전적 의미와 같이 현대적인 (동시대의, 그 당시의) 그리스도인의 음악이라 할 수 있다.(혹은 기독교 음악) Contemporary Christian Music이라는 말이 처음 등장한 때는 가스펠 음악이 대략 세가지로 구분되던 시기였다. 그 첫째가 성스러운 가스펠(Sacred Gospel), 둘째로 Inspirational, 세째로 contemporary Gospel이었다. Sacred Gospel은 교회에서 불리우던 음악이었고 Inspirational은 오늘날의 이지리스닝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컨템퍼러리로 분류된 것은 그 당시 남부 가스펠에서 가장 흔했던 4중창단의 노래를 지칭한 것이었다. 그 당시에는 남성 4중창 스타일이 가장 유행하던 대중적 가스펠이었기 때문에 컨템퍼러리로 구분되어진 것은 남부 가스펠이었다. 이때부터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이라는 말은 동시대적인, 대중적인 기독교음악이란 의미로 쓰여지기 시작했다.
CCM의 역사를 올라가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음악은 각 나라와 지역의 특성과 그 문화의 특성에 따라 만들어지고 불리워 왔다. 또, 지역마다 고유의 악기를 사용해서 그 음악을 연주해 왔다. 그래서 그 내용은 같으나 그 스타일은 독특한 형태로 발전해 오기도 했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오면서 전자악기가 출현하고 그 악기를 사용한 음악이 전세계에 일반화됨에 따라 이제는 음악과 사운드의 예술적, 기술적 차이와 한계가 거의 없어지게 되었다. 그에 따라 교회안에서 머물러 왔던 크리스쳔 음악도 새로운 옷을 입고 밖으로 나오게 되었다. 물론 새옷을 입은 크리스쳔 음악은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큰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지속적인 발전을 거듭해 왔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이 오늘날의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음악(Contemporary Christian Music, 편의상 CCM으로 부름)으로 변화된 첫번째 시도는 1964년 미국의 레이랩(Ray Repp)이라는 사람이 카톨릭 교회에 포크(Folk)미사를 선보인 것이었다. 파이프 오르간의 장엄하고 웅장한 미사곡만을 연상하던 사람들에게 포크음악 미사는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이듬해인 1965년 랄프 카마이클은 빌리그래함 목사의 선교영화 (The Restless Ones; 쉼이 없는 사람들)에 음악을 삽입하면서 싱코페이션(박자의 강약을 바꾸거나 전환하는 것)이 가미된 음악을 사용했다. 전통적인 교회음악에서 사용치 않던 방법을 시도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같은 해 유명한 팝아티스트인 배리 맥가이어(Barry McGuire)가 록 음악계의 반항적 물결을 떠나는 신호처럼 라는 앨범을 녹음했다. 이 앨범은 당시 유행하던 팝 음악 스타일에 기독교적인 내용을 담은 것이다.
1967년 미국은 베트남전을 반대하는 그 운동이 정점에 달했다. 기성세대에 반발하는 젊은세대들 간에 반항의 물결이 크게 일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내의 젊은이들은 그만큼 과격하진 않았다. 그즈음 랄프 카마이클과 커트카이저는 '가서 그대로 전하라'(Tell it Like it is, Natural High) 같은 청소년 뮤지칼로 크리스쳔 음악을 거칠게나마 현대화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그러한 히피운동에 반대하는 대항문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반문화 히피운동이 내세운 자유와 사랑에의 약속이 이루어지지 않고 그 안에서의 진정한 자기실현이 불가능함을 깨달은 환멸에 빠진 세대들 가운데 상당수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과 참 평안을 발견했다. 참된 존재가치를 발견한 젊은이들은 그들 세대가 가진 문화의 언어로 새로운 스타일의 기독교문화를 만들기 시작했다. 1969년 래리노먼(Larry Norman)이라는 젊은 아티스트가 캐피탈 레코오드에서 이라는 앨범을 냈다. 이 앨범은 정통 Rock음악에 신앙의 내용을 실은 것이었다. Larry Norman의 앨범은 크리스쳔록의 선구적 신호탄과 같았다. 이 해에 첫 CCM 앨범이라 할 수 있는 마일런 르페브르와 홀리스모크의 , 래리노먼의 , 존 피셔의 이 나왔다.
1979년에는 포크의 대명사로 불리우던 밥딜런이 'Slow Train Coming'이라는 앨범을 내고 기독인이 되어 공연 때마다 거듭난 내용을 주로하는 노래만을 불러 세인들을 놀라게 하기도 했다. 또 1979년에는 크리스쳔 Rock을 비판해오던 Bob Lason이 그 태도를 바꾸게되는 사건이 있었다. 그는 세속 Rock음악에서 보았던 위험성이 크리스쳔 Rock에서도 존재할 위험이 있다고 해서 크리스쳔 Rock을 반대해 왔으나 CCM을 자세히 접하고 CCM아티스트들의 확고한 믿음과 그들의 삶을 보면서부터 종전의 비방하던 관점을 바꾸어 오히려 옹호하는 입장으로 달라지게 되었다. 1980년 No Compromise! 라고 뜨겁게 외치며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강렬한 선교에의 도전을 불러일으키던 Keith Green은 자신의 새 앨범을 자유가격제로 판매함을 발표, 충격을 주었다. 그는 구매자가 원하는 가격대로 자신의 앨범을 판매했다. 이같은 판매방식은 돈이 없어도 그의 음악을 누구나 들을 수 있도록 한 것이었다. 1981년 컨템퍼러리 크리스쳔 뮤직은 양적으로도 성장해서 일반 레코드사에서도 크리스쳔 뮤직을 보급하려는 움직임이 시도되었다. 그래서 크리스쳔 음악이 일반 시장에도 배급됨에 따라 일반시장에도 적합한 노래를 만드는 경향이 생겨나서 음악영역의 전환에 따르는 문제가 발생해 이른바 '크로스오버'에 대한 논쟁이 일어나기도 했다. 1982년엔 CCM계에는 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백워드 매스킹에 대한 논쟁이 크리스쳔 음악계를 들끓게 했다. 레코드를 거꾸로 돌려보면 거기에 사탄의 메세지가 들어있다는 '백워드 매스킹' 문제는 사람들에게 큰 관심거리가 되어 레코드를 호기심으로 거꾸로 돌려보는 일이 유행했다. 또 1982년 CCM계에 시대의 예언자로 불리우던 케이쓰 그린(Keith Green)이 비행기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케이쓰 그린은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 시대의 우리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였고, 많은 음악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였다. 그의 부인인 멜러디 그린은 그가 설립했던 '라스트 데이 미니스토리'를 더욱 확장시켜 수많은 선교사역자들을 길러냈다.
1990년대는 CCM이 본격적으로 일반 팝음악계로 뛰어드는 시기가 되었다. 내용이 완전히 선교적입장이 아니라 할 수 있지만 CCM의 아티스트로서는 처음으로 에미 그랜트가 1991년 팝계의 정상을 차지했다. 이어서 가장 뛰어난 CCM 사역자중의 한명인 마이클 W.스미스가 'Place in this world'라는 확실한 복음메세지가 담긴 노래로 빌보드 상위로 진입하게 되었다. 'Be Be and Ce Ce Winans'는 리듬 앤 블루스 챠트 1위를 기록했다. Take 6도 그래미상에서 여러 부문을 수상하는 등 CCM은 일반 팝계에서도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크리스쳔 음악인들이 품어왔던 "일반 pop음악계에서의 복음사역을!" 이라는 슬로건이 실현되는 시기가 온 것이다. 마지막 때에 CCM이 일반 문화속에 파고 들어가 선보다 악이 더욱 많은 일반음악계를 바꾸고 순화시키고, 궁극적 목표인 복음을 효과적으로 전파해 수많은 영혼을 구하게 될른지 아니면 CCM이 일반 pop음악이 추구하는 인기와 상업주의에 물들어 제구실을 다하지 못하고 도태되고 말것인지 1990년대에 본격적으로 전개될 CCM의 사역을 지켜보아야 할 것이다.
첫댓글 요약을 해놓지..쩝;;읽기 싫어져브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