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동학예술제 백일장>
중등부 산문부문
<최우수상>
태극기
임효진 (근화여중 1-4)
와아!
경기장의 들뜬 분위기가 해설자의 입을 통해 생생하게 전해져 왔다.
숙적 일본과 맞붙은 한 치의 양보도 없는 WBC 한.일 결승전.
우리는 공부따윈 잊고 경기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 흥분 앞에서 우리 반은 새학기에 어울리는 서먹함은 잊고 손을 맞잡고 폴짝폴짝 뛰며 소리 높여 대한민국을 외쳤다.
연장전을 하는 내내 우리는 소리 높여 우리 선수들의 이름을 외치며 응원하고, 일본타자가 칠 때는 야유도 한 마디씩 하면서 경기를 보다가 한숨을 푹 쉬고 말았다.
아쉬운 준우승.
잔뜩 긴장하고 있던 내 마음은 물에 젖은 휴지처럼 풀어졌다.
하지만 관중석 여기저기서 위로와 격려의 의미로 흔들리는 태극기를 보니 풀어진 마음에 가슴 속에서 뜨거운 뭔가가 치솟아 올랐다.
우린 그 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괜챦아를 외쳤다.
갖은 고생을 한 선수들을 위해, 그리고 우리의 마음에 용기와 열정을 안겨준 태극기를 위해.
생각해 보면 태극기는 참 많은 이의 가슴을 울렸다.
언젠가 봤던 박영효의 태극기는 지금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렇지만 태극기의 그 고유한 울림은 변한 것이 없다.
언젠가 국어시간에 백범일지를 배우며 태극기에 대해 열변을 토하시던 선생님.
박영효는 이 태극기를 만들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 남으려 악착같이 발버둥치는 조국.
그 조국을 위해 국기를 만드는 그 마음이 얼마나 애틋하고 간절했을지 상상할 수 있다.
태극기의 감동을 가슴에 깊이 묻고 일주일이 지나 김연아가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피겨여왕으로 등극했다.
시상대에 올라선 김연아는 태극기가 올라가고, 애국가가 울려퍼지자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너무나 아름다운 광경이었다.
그날 저녁, 인터뷰에서 김연아는 태극기는 나태해지고 지칠 때면 어김없이 위로와 격려, 채찍질을 해 주는 존재나 시상대에 선 순간 터지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단다.
지금도 태극기는 봄바람에 몸을 맡기고 춤을 춘다.
먼 훗날 나도 외교관으로서 태극기를 가슴에 달고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사람으로서 활약하며, 감동을 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
<우수상>
태극기
최소정 (경주여중 2-1)
태극기는 언제나 우리 곁에 있었다.
어릴 때부터 대회를 많이 다녔다.
어머니께서는 경험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고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다.
대회장소가 어디든 언제나 우리 곁에 있는 것이 있다.
그건 바로 태극기이다.
나는 태극기 앞에서 조상님께 이렇게 부탁한다.
오늘은 꼭 좋은 글 쓰게 해 주세요.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태극기를 바라보며 가슴에 손을 올리면서도 계속 웃어대고 우리가 이야기하는 소리는 점점 커져간다.
이런 모습은 태극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볼 수 있다.
나는 이런 행동을 안하게된 것은 캠프 때 부터였다.
수원 보훈청에서 하는 캠프였는데 거기 또한 강당에서 태극기가 펄럭이고 있었고 거기에서 또한 국민의례를 하였다.
첫 날은 그렇게 모두 장난기가 가득했다.
변하기 시작한 건 그 때 부터였다.
독립기념관에서 이야기를 듣고 박물관을 관람한 것 부터였다.
박물관에서는 이야기와 듣는 것과 달리 찡한 마음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많은 저항사진을 보며 친구에게 말 한 마디 못거는 나에 대해 부끄러움도 느끼고 그 정신에 감동도 받았다.
그리고 3.1운동을 모형화한 게 있었다.
그걸 보니 동학농민운동이 갑자기 떠올랐다.
왜냐하면 3.1운동은 동학농민운동에서 계승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 운동은 그 시대 사람에게 의지할 수 있는 것이 되었고 한 나라의 사람으로서 권리를 주장할 수 있었다.
비록 실패했지만 그 시대의 꿈과 희망이었고, 일본의 간섭에서 벗어나게 되는 정말 희망이 된것이 아닌가?
그 모형에 있는 태극기를 보면서 한국의 얼과 피가 있다고 생각하니 지금 내 곁에 있는 태극기가 자랑스러워 보였다.
돌아오는 버스에서 이렇게 생각했다.
이제는 독도와 백두산을 지키기 위해 중국과 일본에게 치켜 들어야 할 때가 아닌가?
<우수상>
태극기
김유진 (서라벌여중 1-3)
지난 주 일요일에 외할아버지댁을 갔다.
중학생이 되어서 처음으로 뵈서 그런지 예전보다 조금 더 늙으시고 몸이 편챦아 보였다.
그래서 왠지 콧등이 찡해 왔다.
아픈 마음을 뒤로한 채 우리는 점심을 먹었다.
점심식사 후에 어머니와 외할머니께서는 함께 달래를 캐러 밭으로 가실동안 동생과 난 텔레비젼을 보았다.
너무 지겨웠던 우리는 텔레비젼을 끄고 주위를 두리번 두리번 거리다 평소에 외할아버지께서 아끼시던 보물상자를 발견했다.
우리는 외할아버지께 허락도 받지 않고 슬쩍 열어 보았다.
그 곳에는 손때가 묻어있는 태극기를 발견했다.
그 태극기를 보고 난 외할아버지의 한 손가락이 없는 손을 번갈아 보았다.
우리 외할아버지께서는 젊었을 적에 6.25전쟁에 참전하셨다가 손가락 하나를 잃고 오셨다는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은 적이 있었다.
내가 어렸을 때 외할아버지께 이렇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 전쟁때문에 손을 다쳐서 후회스럽거나 원망스럽지 않으세요?"라고 여쭈어보니 "아니, 그렇진 않단다.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지. 누가 대신 지켜주겠니? 그리고 유관순언니 아니? 그 언니께서는 독립을 위해 몸까지 바치신 애국자이시단다. 뭐. 이 손가락 하나쯤 나라에 받친 것 정도야" 라고 말씀하셨다.
그 땐 무슨 뜻이었는지 몰랐는데 오늘 태극기를 보고 있으니 이제서야 그 뜻을 알 것 같다.
나도 비록 외할아버지처럼 손가락까지는 아니지만 내 나라는 내가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수상>
태극기
김하연 (근화여중 3-2)
우리는 태극기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나는 태극기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의 노력과 결실, 자긍심을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국기라고 생각한다.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여 열심히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에게는 태극기의 의미가 더욱 남다르다.
이번 미국에서 열린 피겨스케이팅 세계 선수권 대회에서 김연아 선수가 우수한 성적을 거둬 시상대에 서게 되었다.
애국가가 흘러 나오며 태극기가 오르자 김연아 선수는 눈물을 흘렸다.
우리나라와 멀리 떨어진, 전 세계인들의 눈이 보는 가운데에서 태극기가 올라 갔던 그 때, 김연아 선수에게 있어서 태극기의 의미는 무었이었을까?
한국인의 자존심, 러시아 선수와 일본 선수들을 당당하게 꺾은 김연아 선수의 자존심, 그 날을 위해 열심히 흘린 땀의 결실이었을 것이다.
최근들어 태극기는 세계인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다.
김연아 선수를 비롯해서 WBC 야구전에서 준우승을 거둔 우리나라 야구 국가대표팀 등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들의 선전으로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민들에게 더욱 남다른 의미가 되었다.
하지만, 세계인들의 관심을 제외하고는 태극기에 대한 관리가 많이 소홀한 것 같다.
분명 자랑스러운 태극기이지만 실로 국경일이 되면 아무도 태극기를 달지 않을 뿐더러 관심조차 갖지 않는다.
지금의 우리나라 태극기가 존재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우리나라를 위해 맞서 싸웠던 조상들의 긍지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태극기를 아무렇게 방치하고 국경일에 신경도 쓰지 않는 모습은 지금 전 세계에 우리나라 태극기가 관심받고 있는 일에 대해선 아무런 의미가 없다.
앞으로 우리들이 태극기뿐만 아니라 나라에 관련된 모든 것들을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아껴줄 수 있다면 분명 지금보다 더 자랑스럽게 휘날리고 있는 태극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글을 쓰게됨으로써 여러 가지 많은 것들을 진지하게 생각할 수 있었다.
태극기란 주제에 처음은 막막했지만 태극기가 우리에게 있어 얼마나 자랑스러운 국기인지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어서 좋은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