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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온유함
민수기 12:1-3(16)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을 매우 크게 높여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모세가 무엇을 어떻게 했기에 이처럼 하나님께서도 모세의 온유함을 인정하셨고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7)고 하셨는가를 알아보고자 합니다.
사실 본문은 난구절입니다. 해석하기가 어려워서 난구절이 아니라 상식적으로 어긋나는 이야기 같기 때문입니다.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으므로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하였습니다. 누나와 형이 동생을 비방할 정도로 잘못하였음에도 하나님은 나무라시지 않으시고 모세의 편을 드셨습니다. 그리고 모세를 비방한 미리암과 아론을 크게 책망하시고 미리암에겐 나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는 깊은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의인이 아닙니다. 선한 사람도 못됩니다. 윤리 규범으로 볼 때에 완전한 사람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의 생애에는 실수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세를 쓰셨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한 사람을 쓰지 않으시고 문제가 많은 사람을 쓰십니다. 만약 완전한 사람을 찾아 쓰신다고 하면 아무도 쓰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부족하고 허물 많은 사람을 불러 쓰셨습니다. 그런데 허물 많고 부족해도 어느 한 부분이 마음에 드시면 부족한 다른 부분은 다 덮어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하나님이 봐 주신다는 말입니다.
사랑의 매력이란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는 것입니다. 좋지 않은 것이 보이면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좋지 않은 것은 없고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좋지 않은 것이 많아도 좋은 것이 크게 보이면 좋지 않은 것은 보이지 않게 됩니다. 그럴 때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식어지면 그때부터는 좋은 점은 보이지 않고 좋지 않은 것만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랑하실 때 그 중심에 귀한 것이 하나 있으면 그것을 크게 사랑하시고 다른 것은 다 용서하시고 용납하시고 덮어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를 들면 아브라함은 완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야말로 비실비실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창17:1)는 말씀을 듣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불완전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이였지만 아브라함에게 좋은 점 하나 ‘믿음’을 보셨습니다. ‘믿음’을 보시고 모든 부족한 것도, 실수도 다 덮어주신 것입니다.
다윗 역시 실수가 많은 사람입니다. 결정적인 실수가 있는 사람입니다. 구제 불능한 정도의 죄를 지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내 종 다윗처럼”, “내 종 다윗”이라고 들추시며 사랑하시고 좋아하셨습니다. 다윗에게는 ‘겸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겸손을 보시고 다른 잘못은 다 용서하시고 덮어 주셨습니다.
모세의 실수가 무엇입니까? ‘구스 여자를 취했다’(1)는 것입니다. 이때 모세의 나이는 무려 백세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이에 아내를 취한 것입니다. 그것도 이방 여자, 피부색도 검은 종을 아내로 취한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구스 여자를 아내로 맞이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 수 없지만 지도자로서 외로움을 달래 줄 위로자가 필요했든지 아무튼 얼굴이 검은 종의 신분이라 할지라도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아내로 맞아들인 것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형으로서, 누나로서 이것을 별로 좋게 여긴 것이 아니였습니다. 어떻게 보면 형으로서 누나로서 비방할 만한 일이요, 비방한 것은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모세 같은 위대한 사람도 별수 없는 인간입니다. 당시 풍습으로는 일부다처제주의라 사회적으로는 별로 문제 될 것은 아니지만 문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라는 거룩한 하나님의 종으로서 덕이 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론과 미리암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2)는 말로 비방을 한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으로서, 미리암은 누나로서 모세를 위해 협력하였을 뿐 아니라 미리암은 모세를 위해 목숨을 건 모험을 한 사람입니다. 어린 모세가 나일 강변의 갈대 사이에 버려졌을 때에 미리암은 숨어 지켜보다가 바로의 딸인 공주가 목욕하러 왔다가 갈대 상자 속의 이런 동생을 발견하고 측은히 여기는 것을 보고 히브리 사람 중에서 유모를 불러다가 이 아이에게 젖을 먹이게 할까요(출2:7)라며 곧장 어머니를 데리고 간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면 모세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도와 준 사람입니다.
그런 입장에서 볼 때 모세가 이제 와서 구스 여자를 아내로 취하는 것을 보자 참을 수가 없어서 비방 한 것입니다. 성직자로서 더구나 이방 여자를 취한 것을 비방한 것입니다. 형으로서, 누나로서 마땅한 비방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오히려 모세의 편을 드시고 미리암에게 나병에 걸리게 하셨습니다. 2절에 위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미리암이 비방하는 말을 다 들으셨습니다. 그런데 3절에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의 온유함을 보셨던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온유함을 인정받았습니다. 온유함 때문에 다른 잘못된 것은 다 덮어주신 것입니다.
‘온유’란 ‘굽힌다’는 뜻으로 마음을 굽힌다, 굴복한다, 절한다, 낮아진다, 혹은 비천해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좋은 의미에서 ‘겸손’과 ‘경건’이라는 말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겸손’과 ‘경건’은 어디까지나 사람에게만 불리워지는 덕성입니다. ‘겸손한 사람’, ‘경건한 사람’이라고 하지, 하나님을 ‘겸손한 하나님’, ‘경건한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온유’는 사람에게 뿐만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쓰여집니다. “주의 온유함이 나를 크게 하셨나이다”(삼하22:3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11:29)고 말씀하셨습니다.
‘온유함’이란 강하면서도 스스로 약해지는 것이요, 높으면서도 스스로 낮아지는 것이며 알면서도 스스로 모르는 것이요, 능력이 있으면서도 능력이 없는 자로 허리를 굽히는 것입니다. 온유란 약한 것이 아닙니다. 진정 온전한 강함이 여기에 있습니다. 여기에 지도력이 주어지고, 능력이 주어지며, 승리가 주어집니다.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할 것이라”(시37:11)고 하셨고 예수님은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5: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모세의 온유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생각해 봅시다. 모세가 어떠했기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들보다 더하다고 하셨습니까? 모세는 아론과 미리암의 비방의 말을 듣고서도 침묵하고 잘 참았다는 것입니다. 결코 변명이나 방어를 하지 않았습니다. 비방하는 아론과 미리암을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여기서 모세의 온유함을 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힘입은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직접 대면하여 말씀을 들은 사람입니다. 모세는 권능의 사람이요 기적의 지도자였습니다. 누가 보아도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큰소리 칠만도 하고, 대중을 무시할 만도 합니다. 그럼에도 비방의 말을 듣고서도 참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보신 것입니다. 비방을 듣고 참았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에 대한 비방의 말을 듣고 가만히 있지를 못합니다. 먼저 변명을 합니다. 그리고 비방하는 사람의 잘못을 찾아 공격을 합니다. 이럴 때 본심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비방하는 사람에게 ‘나는 너를 위해 이렇게 했는데 너는 나에게 그래서 되느냐?’는 식으로 공격을 합니다.
대부분이 변명을 하고나면 공격을 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 내가 실수했다고 하자 너는 실수한 일이 없느냐?’. 아론을 보고 ‘내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대면하고 있을 때 금붙이로 송아지를 만들어 백성들 앞에 우상을 섬기도록 한 괴수가 아니냐?’라고 하며 천하에 용서받지 못할 죄인으로 공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자신을 변명하지도 않았습니다. 비방하는 아론을 공격도 하지 않았습니다. 원망하지도 않았고 미워하지도 않았습니다.
모세의 이 모습을 하나님이 보신 것입니다. 자신을 비방하는 말을 듣고서도 깨끗이 참는 모세를 보신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온유함이 세상 모든 사람들보다 더 하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신비스러운 진리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온유함입니다.
종교 개혁자 칼빈은 너무나도 엄격하고 철저하였기 때문에 때로는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발을 많이 받았습니다. 결국 제네바 시의회의 결의에 따라 추방을 당하였지만 칼빈은 아무 원망도 불평도 하지 않고 조용히 떠났습니다. 그러나 3년후에 아무래도 칼빈이 있어야 하겠다고 해서 다시 초청하였습니다. 칼빈은 아무 말도 없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쫓아낼 땐 언제이고 오랄 때는 언제이냐며 지난 일에 사과라도 들으려고 하겠지만 칼빈은 전혀 그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칼빈은 가라고 할 때 갔으며, 오라고 할 때 아무 말없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아무도 미워하지 않고 다시 돌아와 종교 개혁을 성공시켰고 오늘의 제네바를 만든 것입니다. 이것이 칼빈의 겸손입니다.
아론과 미리암은 모세를 비방할 때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2)라는 말로 비방을 했습니다. 이것은 성직에 대한 비방입니다. 목사로서 가장 듣기 부담되는 말이 ‘목사가 그게 뭐냐’는 성직에 대한 비방의 말입니다. 목사라고 해서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욕심도 없고 실수나 잘못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약간의 실수나 잘못한 것을 보고 ‘목사가 그러냐?’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참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러한 성직에 대한 비방의 말을 듣고서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성직에 대한 비방의 말을 들은 모세는 가만히 있는데 하나님께서 화가 나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갑자기 모세와 아론과 미리암에게 이르시되 너희 세 사람은 회막을 나아오라”고 하셨습니다(4). 그리고 아론과 미리암에게 따로 불러 “내 말을 들으라 너희 중에 선지자가 있으면 나 여호와가 환상으로 나를 그에게 알리기도 하고 꿈으로 그와 말하기도 하거니와 내 종 모세와는 그렇지 아니하니 그는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 그와는 내가 대면하여 명백히 말하고 은밀한 말로 하지 아니하며 그는 또 여호와의 형상을 보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를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6,7)고 하시며 대단한 화를 내신 것입니다. 그리고 미리암은 나병에 걸리게 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뽑아 세우셨고 특별한 일을 맡겼으며 특별하게 취급하는 사람이였습니다. 모세는 분명히 특별한 일을 하였고 하나님으로부터 특별한 대우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모세는 자신을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지 않았습니다. 만약 자신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고 행세를 했다면 비방하는 아론과 미리암에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고곡교회 전도사에게 동네 사람들이 비난의 말을 하니까 ‘내가 저주 기도하면 당장 하나님께서 저주할 것이라’는 말을 하므로 해서 더 많은 비난의 말을 듣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을 대면한 경험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 자신은 특별한 사람처럼 나타내지 않았습니다. 형과 누나로부터 비방하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는 작은 한 사람으로 더 이상이 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러한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귀중하게 보신 것입니다.
요즘 하나님으로부터 능력을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사자나 된 것처럼 스스로 높아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는 비밀도 알려주고 자신을 통해서 능력을 행하는 것처럼 행세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신에 대한 비방이나 하면 당장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하는 교만이 충만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내 온 집에 충성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7). 모세의 충성됨은 모세가 하나님의 능력을 가로채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자기가 하는 것처럼 나서는 사람이 아니란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 자신을 통해서 능력을 베푸시는 것을 겸손히 순종하는 것을 충성됨이라고 합니다.
베드로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사람을 고치자 많은 사람들이 기이히 여기고 놀라며 모여들 때에 베드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행3:12)며 자신에 대한 칭송을 강력히 부인했습니다. ‘이 일은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하신 것이요 나는 아무 것도 한 것이 없노라’는 말입니다. 나는 오직 심부름꾼이요, 사환이며 종 일 뿐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의 온유함과 충성됨은 바로 자신은 하나님의 쓰시는 일꾼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다만 감사하게 여기며 순종한 것을 충성됨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시며 온유한 자에게 능력을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하시는 일에 순종하는 것을 충성되이 여기십니다.
참기 어려운 말이나 비방의 말을 들어도 참고 맡은 일에 충성하므로 하나님이 편들어 주시는 복을 받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