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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베이징 평양카페 전경. [아래 왼쪽] 평양카페에서 파는 전통 옥류관 냉면. 칼칼한 맛이 나며 면이 쫄깃하다. [아래 오른쪽]평양카페의 메뉴. 테이블 위에 깔아준 코팅된 임페리얼 광고판이 눈길을 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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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오마이뉴스 장윤선 |
| "아유∼ 고조, 추태 부리는 남자들 많습네다. 그래도 우린 끝까지 리해하고, 잘 달래 보냅니다. 남자들이라는 게 술을 한두 잔 마시다보면 힘이 더 세진다 말입니다. 그럴 때 같이 대서면 여자들이 위험합니다. 그럼요, 조심해야 합네다. 호호"
베이징 시내에 북한이 처음으로 주류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술집 영업을 시작했다. 북경시 조양구 왕징 서원3구에 위치한 평양카페(평양대성산관)가 그것이다.
평양카페는 지난해 10월 문을 열었다. 입소문을 듣고 찾아오는 한국인들이 90%. 더러 조선족도 있다. 아직 본격적인 영업채비를 갖추지 못해 정식 광고도 못하고 그냥 영업을 하고 있지만 수익은 쏠쏠하다.
한국 돈으로는 얼마 안 되지만, 중국 돈으로는 제법 비싼 술집이기 때문이다. 한 복무원은 "추석 이후 평양에서 복무원들이 5명 정도 더 오게 된다"며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영업을 하게 되며, 홀에서 무대공연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베이징 시내에 북한이 운영하는 식당은 총 40여개. 가장 유명한 곳이 옥류관, 평양관, 해당화 등이다. 해당화는 분점도 꽤 된다. 북한이 밥을 주로 파는 식당이 아닌 술을 주로 파는 카페로 눈을 돌린 까닭은 뭘까? 그것도 한국인을 겨냥해서 말이다.
지극히 자본주의적 사고방식으로 생각하면 밥보다는 술이 훨씬 돈이 된다는 생각을 한 것 같고, 아니면 북한도 중국처럼 차츰 개방의 수위를 높여 친자본주의 실험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다. 철저히 돈을 벌겠다는 생각으로 문을 연 것일 수도 있다.
나란히 선 평양카페와 호프광장...어디로 갈까
평양카페가 있는 왕징은 한국인들의 아파트촌이 밀집된 지역이다. 한국 도심에 우후죽순 들어선 주상복합건물 스타일의 고층 아파트들이 이 곳에도 몰려 있다. 추석을 앞두고 둥근 달이 왕징 시내를 훤히 비추던 지난 14일 밤, 택시를 잡아타고 평양카페로 갔다.
평양카페는 한인상점이 밀집된 건물 2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붉은 색 네온 간판에 궁서체로 쓰인 평양카페는 건물 밖에서 그냥 쳐다만 봐도 언뜻 술집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촌스러운 궁서체로 간판을 달아 '노땅' 분위기로 끌어내렸을까. 그것조차도 '우리식 사회주의'라면 할 말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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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카페 옆 호프광장. 조선족이 운영하는 술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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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오마이뉴스 장윤선 | 묘하게도 평양카페 옆에는 호프광장이라는 한국식 호프집이 있다. 2층 계단을 밟고 올라서면 평양카페 복무원들과 호프광장 여 종업원이 나란히 서서 호객행위를 한다.
"어서 오십시오. 이리 들어오십시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깔끔한 유니폼을 입은 20대의 젊은 복무원들은 입구복도에 나란히 서서 안쪽으로 손짓하며 손님을 끌었다. 호프광장 여 종업원은 옆이 길게 터진 긴 검정 스커트에 흰색 셔츠, 스팡글이 달린 반짝이 조끼를 입고 살짝 웃었다. 호프광장 분위기가 훨씬 낫다는 눈짓도 이어졌다.
한국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계단 위에서 잠깐 멈칫 하게 된다. '어디로 갈 것인가….'
베이징에 산 지 5년째 되는 조진영씨는 "여기는 잘 오는 동네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지만 주로 호프광장으로 많이 가요"라며 "평양카페는 40대 분위기가 나고, 호프광장은 젊은 사람들이 맥주 한 잔 하기 좋은 분위기라서…"라고 말끝을 흐렸다.
한 복무원은 "호프광장은 한국사람이 운영하는 게 아닙네다"라며 "조선족이 운영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손님 요구대로 저짝 단골들은 저짝으로 갑네다. 여기에도 오시는 분들은 계속 오십네다. 한번 온 손님들이 소문을 내서 또 오고, 또 오고 하십네다."
선의의 경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었다. 나름대로 신사협정이 있는 지는 모르겠지만 천박한 싸움은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들렸다.
평양카페에도 룸은 있지만 서울하고는 천지 차이
겉에서 보기에 호프광장은 홍대 앞 '바' 분위기였다. 조명이 매우 어둡고, 바텐더가 있는 바가 있으며 음악도 팝이나 재즈 등이 흘러나온다. 평양카페는 서울 대학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호프집 분위기였다. 환한 조명에 네모 반듯한 사각테이블이 꼭 닮았다.
벽걸이TV에서 흘러나오는 북한노래를 제외하면, 평범하기 짝이 없는 호프집 말이다. 최대한 젖가슴이 크게 보이도록 찍은 수영복 차림의 여성이 실린 달력 대신 조선민화가 걸려 있는 것도 특징이었다.
내부시설을 둘러보는 사이 복무원이 주문을 받으러 왔다. 메뉴를 들고 와서 보여주는데, 안주와 술의 종류는 서울과 흡사했다. 한국에서 파는 각종 양주와 서양 맥주의 종류까지도 똑같았다. 북한 전통 술과 가자미식혜, 명태식혜, 평양랭면 등 몇 가지 이북음식을 빼면 안주류도 서울의 평범한 호프집과 똑같다.
500cc 한잔에 15위안. 청도병맥주는 25위안. 셋이서 실컷 먹어도 130위안 정도다. 우리 나라 돈으로 16900원이다. 굉장히 싼 값이다. 웬만한 서울의 술집에서 셋이 먹으면 최소한 3만원 정도는 나오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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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카페 내부 모습. 한국에서 주로 파는 3000cc 피쳐도 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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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오마이뉴스 장윤선 |
| 평양카페의 특색 중 하나는 룸이 있다는 것. 일종의 룸살롱 개념이다. 그러나 서울 도처에 깔린 룸살롱과 비슷할 것이라고 상상하면 안 된다. 서울과 평양의 룸살롱은 천지차이이다. 평양카페에서는 술과 음식, 노래를 판다.
"우리는 방에서 노래를 부르는 공연을 합네다. 그러나 복무원들이 술을 마시는 것은 금지돼 있습네다. 손님들이 요구하면 노래 단독공연도 합네다. 공연 보시겠습네까? 호호"
룸도 딱 2개만 있다. 처음에는 한 개만 있었는데, 한국 손님들의 요구가 하도 많아서 2개로 늘렸다는 것이다. 앞으로 몇 개의 룸이 더 생길 지도 모르겠다. 일단 룸에 들어가려면 1000위안을 내야 한다. 1시간당 100위안을 또 내야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비용은 더 늘어난다. 술값과 식사, 안주비는 따로 계산해야 한다.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대신 룸에 들어가면 평양의 복무원들이 기타 등의 악기를 갖고 와서 공연을 한다. '반갑습니다'를 시작으로 한국 대중가요까지 솜씨 좋게 소화한다. 홀에서도 300위안 정도 음식과 술을 먹으면 테이블 공연을 해준다. 패밀리레스토랑에서 생일을 맞이한 손님을 위해 타악기와 기타를 연주하며 노래를 불러주듯 그렇게 말이다.
기자는 이 곳에서 평양랭면을 시켜 먹어봤다. 개성의 평양냉면 맛과 금강산의 평양냉면, 평양 옥류관의 냉면이 제각각이라는 소리가 있어 맛을 비교하기 위해서다. 동행한 다른 기자는 금강산 옥류관 냉면보다는 베이징 평양카페 냉면 맛이 훨씬 감칠맛이 난다고 했다. 금강산 냉면은 밋밋한 맛이 나지만, 이곳은 약간 맵고 강한 맛이 난다는 것이다.
"국수는 옥류관 것이 1등 아닙네까? 처음에는 놋그릇도 음식재료도 모두 평양에서 직접 가져왔습네다. 지금은 그냥 현지에서 조달하지만 말입네다. 그래도 아주 맛있습네다. 나이는 젊지만 공훈요리사가 직접 만듭니다."
한 복무원은 "맛이 어떻습니까? 좋지요?"라며 냉면자랑을 했다. 베이징이지만 평양의 맛을 그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어조였다. 정성을 담느라 그랬을까. 평양냉면은 약 30분 정도 기다린 뒤에야 먹을 수 있었다.
"고향 가고싶지요. 그러나 임무를 수행해야 합네다"
평양카페 복무원들은 모두 평양 옥류관 소속 복무원들이다. 베이징 옥류관도 평양 옥류관 소속? 천만의 말씀. 베이징 옥류관은 인민봉사총국 식당 소속 복무원들이다. 같은 옥류관이라도 소속이 달라서 냉면 맛이 '동네마다' 다를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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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양카페 복무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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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오마이뉴스 장윤선 | 평양카페 복무원들의 복무기간은 3년이다. 3년이 지나야 평양으로 돌아갈 수 있다. 평양카페는 휴일도 없고, 영업시간도 정해져 있지 않다.
"손님이 계실 때까지 우리는 일을 계속 합네다. 휴식날도 없습네다. 도중에 휴가는 따로 없습네다. 그러나 전혀 힘들지 않습네다. 자체 교대로 쉬기도 하고, (급한 일이 있으면 양해를 구해) 휴가를 내고 고향에 다녀오기도 합네다."
곧 추석인데 고향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묻자, 한 복무원은 "고향은 누구나 가고 싶지요"라며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임무를 수행해야 합네다"라고 말하며 향수를 달랬다.
그날 기자는 밤늦도록 평양카페에 앉아 있었다. 복무원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던 중 기자의 개인적인 얘기도 나왔다.
"뱃속에 아기가 있습네까? 언제가 해산달입네까? 12월 31일이요? 오우∼ 조금 참으시라요. 꾹 참았다가 1월 1일에 낳으십시오. 아기가 나중에 얼마나 엄마 원통을 하겠습네까? 하루 차이로 나이 먹었다고 말입네다. 호호"
"꾹 참으라"면서 복무원들이 눈을 지긋이 감고 양손을 머리 위로 치켜든 채 손가락에 잔뜩 힘을 쥐는 모습을 보일 때는 기자도 웃음이 났다. 55년을 따로 살아 더러 다르게 쓰는 말도 있지만 정서와 문화는 똑같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흔들렸다.
택시를 다시 잡아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내내 "귀여운 아기 낳으십시오!"라고 외쳤던 젊은 처자들의 낭랑한 목소리가 잊혀지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