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4회 산행일지 : 라인이 아름다운 산
(전남 고흥군 천관산)
일시 : 2007년 2월 24(토)
날씨 : 맑음
곳곳에서 더워진 지구에 대한 걱정들이 크지만 이번 겨울은 이리도 따뜻하게 넘어가는가 보다. 주말인 금요일과 토요일에 황사가 예보되어 날을 잡아놓고도 걱정이 있었는데 다행이도 황사는 오지 않았다. 며칠 전에도 비가 온다는 잘못 예보를 낸 기상청이 질타를 받았는데 이번에도 언론은 가만두지를 않는다. 어느 신문의 만평에는 화가 잔뜩 난 얼굴로 애꿎은 컴퓨터를 발로 차는 기상 예보관의 그림이 실렸다.
갈 길이 멀다고 새벽시간인 6시40분 총무가 와서 나와 김이돌을 태우고, 김효동은 자기 차로 7시 좀 넘어 화원 IC에 도착하니 금도현이 이미 기다리고 있다. 오늘은 김효동 산타페로 정남진 장흥의 천관산을 향한다.
금도현 회원이 설에 형님으로부터 선물로 받았다는 네비를 옮겨 붙이고 천관산을 입력하니 277km 거리로 도착예정시간까지 표시된다. 네비에 타짜를 다운받아 왔으나 화면이 끊겨서 보기를 포기하고 한 시간 후인 8시 10분 문산휴게소에 들러 김이돌이 준비한 김밥과 된장찌개와 육개장을 하나씩 시켜서 넷이서 아침을 들고 커피까지 한잔한다. 광양 나들목을 나와 24번 고속국도와 같은 국도를 달리며 천관산이 가까운지라 천관녀 예기가 자연스레 나왔다. 천관녀는 신라 진평왕 때의 기녀로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신라 김유신 장군이 화랑시절에 사랑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으며 결국 잠든 자신도 모르게 천관녀의 집을 향하던 애마를 단칼로 베어 죽인 사건의 배경이 된 여인이다. 사모했던 남자를 잃고 집을 떠난 천관녀가 이곳 천관산에 왔다는 예기는 단지 그 이름이 같아서 기인된 추측이나 실제 하늘에 관을 씌운 산인 천관(天冠)산 혹은 天冠사의 한문이름은 天官女의 그것과는 다르다. 몇몇 역사학자들은 천관이 단순한 기녀가 아니라 천관의 이름에서 당시 시대의 사조인 불교신앙에 대한 토속신앙을 의미하며 결국 김유신이 토속신앙에 손을 내밀었다가 불교세력에 의해 제지되는 그런 의미가 있다고도 한다. 더 이상은 너무 어려운 예기이고.. 암튼 천관산이 다가와 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지 않고 직진하여 장천재 방향으로 차를 몰아 10시 40분 장천재 관광농원 앞에 주차하니 너른 주차장이 한가하다.
오늘의 등반은 체육공원-금강굴-환희대-헬기장-연대봉-양근암-주차장의 원점회기형으로 약 8km의 거리로 점심시간을 포함 4시간을 예정하였다. 입구에는 ‘호남제일 支提雲山’이 세겨진 선돌이 위엄있게 있고 공원처럼 깨끗하게 단장되어 있다. 천관산은 지리산, 원출산, 내장산, 변산과 함께 호남의 5대 명산으로 기암괴석, 억새, 다도해 풍경이 아름다운 산으로 여러 입간판에 안내되어 있었다. 편백나무, 소나무, 동백나무 등으로 이루어진 숲길을 오르며 금도현은 아토피가 있는 세정이를 위해서 푸른 탱자 다린 물을 바르면 아토피와 여드름에 효과가 좋다고 일러준다.
아직은 봄은 아니지만 유난히 따뜻했던 겨울인지라 나뭇가지에는 겨울눈이 잔뜩 부풀었고 더러는 연녹색 새싹을 이미 틔우고 있다. 아직 일렀는데도 수령 600년을 자랑하는 소나무 주위의 키 큰 동백들은 군데군데 만개하여 동박새 무리들과 함께 열창이다. 체육공원에서 우측의 금강굴 방향 오르막을 잠시 오르니 능선을 만나고 키 작은 소나무들이 잘 정비된 편안한 오솔길을 만난다. 5분여 진행하다가 계곡을 하나 건너면 환희대, 금강굴 이정표를 만나고 오르막이 시작된다. 10여분 오르다 휴식을 취하며 이번엔 맛이 괜챦은 사과를 나누며 뒤를 내려다보니 잔잔한 바다, 푸른 보리밭이 싱그럽다. 조금 더 오르니 좌측 금수골 방향의 바위능선이 아름답다. 다시 20여분을 올라 12시 경에 이르니 다양한 형상과 크기의 바위가 이루는, 하늘에 소박한 백제의 금관을 씌운 듯 아름다운 정상 스카이라인이 눈에 들어온다.
연대봉 이래에 샘터가 있어 년 중 식수확보가 가능하지만 식사시간이 가까운지라 종봉 아래 바위 속 샘터에서 식수를 준비한다. 노승봉을 지나 부드러운 정상 능선, 형형의 바위들로 이루어진 스카이라인 보이며 뒤로는 연두빛 들과 푸른 빛 바다가 함께 보이는 곳에서 점심을 준비한다. 좌측 금수골 능성과 정상능선의 산행객들이 선명하게 보이길래 야전교범에서는 이동 시 능선 길은 택하면 안됨을 하사관 출신인 총무야 알겠지만 단기사병은 아느냐고 농을 걸었더니 김이돌은 “내 위치가 최전선이다”라는 명언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다. 김효동과 총무가 도시락을 준비해와 오늘은 식은 밥이 두덩이가 되었다.
대세봉을 못 미쳐서 이젠 우측으로도 바위능선이 보이며 골짜기 아래쪽으로는 이정표로는 1.8km 지점이라는 천관사도 눈에 들어온다. 우측의 능선은 검지 손가락을 편 주먹, 태평양의 이스트 섬에서 옮겨 온 듯한 거대한 석상 등 다양한 모양의 바위들이 줄을 잇고 있어 도시의 스카이라인을 보는 듯 하다면 정상인 연대봉 쪽 왼편으로 펼쳐지는 아름다운 곡선 라인은 결코 글래머가 아닌, 날씬한 S라인도 아닌 소박한 여인의 젓가슴을 닮은 듯 아주 부드럽고 편안하다. 천주(天柱)를 깍아 기둥으로 구름 속에 세워둔 것 같다는 천주봉을 지나 환희대에 이르면 앞으로 뻗은 구룡봉과 산아래의 문학공원 그리고 산 너머의 마을들과 바다의 풍광도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부터 1km지점인 연대봉까지는 억새밭과 편안한 능선길이다. 바다가 양옆, 그리고 앞쪽까지 펼쳐진 반도 정상의 억새밭, 더러는 사납기도 하지만 온화한 봄기운을 머금은 바닷바람을 맨 먼저 마주하며 자리를 지켜온 억새들만이 정상을 가득 지키고 있다. 몇 개의 헬기장을 지나면 주능선에서 100m 정도 아래에 감로천이 있다. 큰 나무도 없고, 정상 바로 아래인데도 주변 땅은 습지처럼 촉촉하고 샘에는 물이 비교적 풍부하다. 이 샘의 물은 일 년 내내 마를 날이 잘 없다고 한다. 샘의 모습은 명성산에서 본 궁예의 눈물과 닮았다.
천관산 정상(723m), 연대봉의 옛날이름은 옥정봉이며 고려 의종왕(1160년대) 설치하였다는 사각의 잘 다듬어진, 비교적 웅장한 규모의 봉수대가 있다. 봉수대 안으로 올라서 사방을 조망하니 가지런한 들판, 바다목장들이 주는 시야는 정말 시원하다. 지리산 그리고 동쪽의 팔영산, 서쪽방향으로는 해남의 두륜산과 영암 월출산이 보이며 앞으로는 완도를 비롯한 여러 남해의 섬들이 한눈에 들어온다는 뛰어난 조망이다. 그러나 봉수대 안 인근 지도를 확대하여 세워놓은 관광안내도가 불만이다. 남쪽 바다를 향해 서있는 그것은 사람의 가슴높이만 하여 오히려 조망을 방해하고 있었다. 특히나 금도현의 불만이 크다. 천관산 바로 아래는 회진이라는 포구가 있는데 서편제로 알려진 원로 소설가 이청준, 녹두장군의 송기숙의 장흥고교 후배인 소설가 한승원의 집이 이 포구 좌우로 있다.
직선과 곡선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 스카이라인, 시원한 조망, 따스한 봄볕 등 모든 것이 만족스러워 내려서기가 모두들 서운하지만 이제 하산하여야 한다. 편안한 능선길이 당분간 길게 이어진다. 중도에 앉아 김이돌이 들려주는 섣달 그믐날 큰장에 장보러 나간 아저씨 예기를 들으며 라인이 아름다운 능선과 헤어짐을 달래고 나니 이제는 내리막 길이다. 하산 길에서도 군데군데 멋진 여러 모양의 바위가 있으며 잘생긴 바위가 이고 있는 쪽빛 하늘과 함께 훌륭한 그림을 이룬다.
연대봉에서부터 1.2km 지점의 하산길 가에는 양근암이 있다. 측면에서 보면 각진 모습이 별로 닮지 않아 보이나 아래에서 보면 15척 높이의 웅장한 그 모습, 아래의 바위들, 주변의 작은 나무들까지 조화롭게 딱 거시기를 닮았다. 건너편 능선의 여성을 닮은 금수굴과 마주하고 있다는 친절한 설명이 붙어 있다. 여기서 주차장까지는 약 1.5km, 부지런히 내려서자 새소리가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다. 동박새인가 보다. 오랜만에 탁족을 하려고 발을 담그자 물의 찬 기운이 뼈 속까지 고통으로 밀려온다. 금도현과 김생곤은 물속에 널린 다슬기를 잡느라 다리를 걷고 들어가는데 난 보고만 있어도 춥고 아프다. 돌아오는 길에는 산 너머의 문학공원이라도 다녀왔어야 했는데 주차장에서 커피와 군밤을 사먹고는 곧바로 순천으로와 주유소에서 가스를 넣으며 추천받은 객주(061-721-0284)에서 식사를 했다. 들어서는 분위기는 선술집같아 내심 다른 곳으로 옮겼으면 하는 마음이 여럿 있었으나 생태찌개 맛이 일품이었고 12가지에 달하는 밑반찬들도 모두 맛있었고 굴젓 등은 몇 번 더 담겨져 나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