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새 농민 연수를 다녀와서 ***
일본 농민들의 검소와 친절. 가슴속 깊이 남아
1996.01.01 글 / 이윤현 회원
이 대형건물이 어디한곳 꼬집을 데 없이 정교히 건축된 것을 보면서 다시 한 번 일본사람들을
쳐다보게 되었다. 건축물의 안전을 판단하는 데는 엘리베이터가 얼마나 조용히 오르내리느냐로 판단한다.
엘리베이터가 사뿐히 뜨는 것 같더니 도착하고. 오르내리는 기분을 못 느낄 정도다. 어떠한 충격도
없이 대형백화점이 형체도 없이 내려않은 우리나라의 건축기술과 부정부패의 고리. 건축업자의 기본양심.
일본과 우리나라의 모든 기술을 비교하여 보면서 호텔내부를 두루두루 살펴보았다.
7월 5일 도착한곳은 가와고에시의 기와고 꽃 경매장. 계속해서 비가 와서 인지 꽃 경매광경을
지켜보았으나 그리 활기찬 경매는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았다. 역시 꽃 포장도 한발 앞서가고 있었다.
꽃 경매견학을 마치고 정미소로 향하였다. 정미소시설도 오래되어 별 흥미를 끌지 못해 보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일행과 이루마도우부 농협에 도착하여 농협에서 준비하여준 도시락을 먹으면서
이루마도우부 농협현황을 설명 듣고 다시 가비후쿠오카시 시장을 방문하러 떠났다.
일본 사람들은 무엇 한 가지라도 할러면 절차와 행사가 까다롭다고 할 수 있다.
환영행사를 마치고 간단한 선물을 받고는 다시 이루마도우부농협에 도착하여 채소시설재배 농가를
견학하였다. 어느 대형 중국음식점에서 연수생일행과 일본농가와 석식을 겸한 상견예겸 저녁만찬이
이루어졌다. 우리 연수생들이 기거한 일본농가 가족들이 다 왔으나 기대하고 기다리던 내가 기거할
일본농가 가족은 도착하지 않아 궁금 중만 더해 가고 있었다.
얼마간의 만찬과 여흥이 지났을까? 스포츠머리에 슬리퍼를 신고 와이셔츠차림의 사람이 나타났다.
내가 기거할 농가의 요시다상이었다. 통역관의 통역으로 상견례를 하고 간단히 음식을 먹으면서
물어보니 목장을 한다고 하였다. 내가 한국을 떠나면서 기대하던 과수농가는 아니었다.
털털하면서 처음 만나서부터 농담을 좋아하여 큰 부담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만찬의 아쉬움이라 며는 일본사람들도 우리나라 노래가 나오니 같이 부르려 애를 쓰나
음악(테이프)이 준비가 안 되어 징검다리 뛰어넘는 노래를 하곤 하였다.
연회가 끝나고 도착한 숙소는 가와고에시의 프린스호텔. 오늘의 견학과 연회를 잠시 연상하여 보면서
무언가 아쉬움을 느끼게 하였다. 7월 6일. 다시 이루마도우부농협에 도착하여 내가 기거할 농가
요시다상과 만나 표고버섯재배농가와 과수재배 농가를 견학하고 주도적 경지정리 지구의
자동급배수시설을 견학하였다. 요시다상이 오후 4시부터 착유를 하여야 한다기에 시간에 맞추어
요시다상집에 도착해보니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계셔서 농협에서 준비하여준 선물을 드리고 부인과
같이 우리나라의 전통 예절인 큰절로 인사드리니 내 자식이 찾아와서 인사하는 것보다 더 반갑게
대하여 주시고 기뻐하는 것 같았다.
우리의 통역을 맡은 사람은 우리나라 전라도 정읍에서 살다가 일본으로 시집간 여자 분이었다.
일본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데는 어찌나 통역을 잘하는지 불편한곳은 하나도 없었다.
90년부터 ~ 92년까지 일본과 배인 공수뿐 기술교류 하던 이치가와시 시청직원 쯔쯔다상에게
연수차 일본에 왔다고 전화나해서 목소리나 듣고 싶었는데 쯔쯔다상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하여
당황하지 않을 수 가 없었다.
우리나라로 보면 은 이치기와 카미후쿠오카시의 거리는 서울과 대전정도로 될 것이다. 반가워서
만나러 오겠다니 말라고 할 수도 없어 그냥 있었다. 처음 가는 집에 그것도 우리나라도 아니고
일본인데 요시다상 집에서는 손님의 손님을 치러야 하니 더 부담을 주게 되어 죄송하고 미안할
다름이라 통역관과 의논하여 선물을 준비하러 슈퍼를 가겠다고 하니 74세 되신 할아버지가 내가
내차로 데리고 갈 테니 조금만 기다리라고 하시지 않는가. 차는 우리나라의 다마스 정도인데
할아버지의 낚시 전용차다.
모든 낚시도구를 내려놓으시고 할아버지와 함께 도착한곳은 슈퍼가 아니라 하이퍼마켓정도의
대형슈퍼였다. 비가 많이 와서 우산을 사느라 연수생일행과 잠시 들렀던 곳 이 대형슈퍼마켓이
할아버지의 둘째 아들네 것이라는데 더 놀랐다. 쯔쯔다상에게 줄 선물을 준비하고 할아버지에게
무엇 꼭 잡수시고 싶으냐고 여쭈어보니 없다고 하시며 그래도 내 부모나 다름없는 할아버지시기에
부인과 의논하여 포도를 사드리고 요시다상집에 돌아와 우리나라를 떠날 적에 준비하여온 작업복으로
갈아입고 요시다상과 목장으로 가서 일을 시작하였다.
요시다상 집을 소개하면 양친부모와 요시다상부부 그리고 다른5식구. 홀스타인 젖소50두 중 20.
두 착유 초지 4만5천 평. 자동차가 여섯 대다. 젊은 청년 한명이 일을 하고 있어서 물어보니 한국서
새 농민이 온다고 하여 착유하는 것을 지원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지원 나온 그 내막을 알고 보면
한국 농민의 행동과 근황을 파악하러 온 것이다. 일하는 과정을 그 젊은이는 5~6회 정도 사진촬영을
하였다. 한국농민들의 정보를 입수 하러 온 것이 사실인 것 같았다.
일을 마치고 저녁식사를 막 하려고 하는데 쯔쯔다상과 우사미상노인이 함께 오셨다. 우시미상은
우리 집 농장 방문 시 배 저장방법과 재배기술을 좀 알려드렸다. 내가 알려준 기술로 배 재배를 하여
두 배의 수확을 하게 되어 고마워서 찾아왔다고 하셨다. 그 먼 곳에서 말도 안 통하는데 나를 만나러
왔으니 얼마나 반가운지 글로 표현하기가 어렸다. 지난날의 안부를 묻고 이야기의 꽃을 피우다 보니
밤 9시30분 쯔쯔디상이 이치가와시로 가야되기에 즉석 기념촬영을 하고 우리는 아쉬운 작별을 하게
되었다. 열 번. 아니 스무 번의 작별인사를 하면서 쯔쯔다는 대절택시에 몸을 싣고 떠났다.
이 부자 집에서 왜 딸 한명밖에 안 두었냐고 물으니 일본의 풍습은 데릴사위를 많이 한다고 한다.
데릴사위를 하여 살 며는 딸과 평생을 함께 살수도 있고 또한 남자가 고분고분 말을 잘 듣고 말썽을
안 피운다고 한다. 또한 술좌석에서는 우리나라는 술잔을 다 비워야 술을 따라 주나 일본은 그렇지가 않다.
술을 조금 비우면 술을 따라주고. 조금 비우면 다시 따라 채우고 계속 첨잔을 하는 것이
이 사람들의 술 예의이다.
7월 7일 날이 밝아 자고난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집안을 두루두루 살피면서 또 한 가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새로 집을 지은 지 2년이 되었다고 하는 집이라 건축에 관심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어느 한곳 꼬집을 곳 없이 정교하게 건축이 되었다. 표현이 잘못 될 런지 모르나 아마
우리나라 같으면 목수들이 심 짜가 나서라도 나무 어느 곳인가 망치자국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망치자국이라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정밀하였다. 우리나라 목수들을 일본에 보내
실습을 시켰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아침식사를 하고 요시다상 가족과 기념촬영을 하고 하루 밤이지만 아쉬움을 간직하면서
한국 여행기회가 있으면 꼭 연락하라는 말을 하면서 따뜻하고 포근하게 대해 준 요시다상 가족에게
다시 한 번 감사를 하면서 이루마도우부 농협으로 향하는데 요시다상이 길옆우체국에 차를 멈춘 후
우체국에 들어가 얼마 후 나오더니 일본돈 기념우표라면서 선물로 주었다. 요시다상이 나를 귀한
손님 대우를 해서인지 얼마동안 오다가 또 한집으로 들어가기에 물어보니 요시다상 동생집이라면
나와 부인을 소개하고 기념촬영까지 하였다.
시간에 쫒기여 부지런히 농협에 도착 하였으나. 또 스타가 되고 말았다. 3일간의 아쉬운 석별의
송별식이 끝나고 “석별의 정”노래의 메아리 속에 모든 행사는 끝이 나고 헤어지기 아쉬워 하루
밤이지만 같이 지냈다. 한국과 일본이 가까우면서도 언어의 장벽. 풍습 등 모든 생활이 너무나
달랐지만 몇 년을 같이 살아온 이웃집 식구 같았다. 버스가 멀리 안보일 때까지 손을 흔들면서
자리를 안 뜨는 일본농민들. 한국과 일본의 외교치고는 최고의 민간 외교가 아닌가 한다.
다섯 번이나 일본을 관광. 견학. 연수를 하였지만 일본사람들의 풍습. 생활을 알기에는 이번 기회가
매우 유익했다. 데릴사위를 많은 가정이 맞이하여 산다는 것. 한국 사람은 헤어지려면 열 번은 인사를
하지만 일본사람들은 만나서부터 헤어질 때까지 백번은 더 하는 것 같다. 또한 술을 권할 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잔을 비워야 술을 따라 주면서 권하나. 일본사람들은 조금마시고 나면 술잔을 채워놓고
계속 잔을 채워 놓는다는 것.
귀한손님이 왔다 가며는 여자는 현관앞문 마루에 무릎 꿇고 앉아 계속하여 인사를 한다.
잘살면서도 근면 성실한 농민들. 정부에서도 농민들에게 농기계 및 농자재 구입보조금이 50%
이상해 준다. 요시다상과 1박3일의 생활을 연상하면서 도착한곳은 사이타마현의 원예시험장 주로
뿌리식물을 연구하는 곳이고 시설이라든가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그러나 직원이 설명을 성의껏
열심히 해주었다. 시험장 견학을 마치고 도착한 곳은 가누가와 온천.
7월 8일 가누가와 온천을 출발하여 닛꼬의 국립공원을 관광하고 주룩주룩 퍼붓는 비를 맞으며
동경 일본 천황궁 황거를 관광하고 다시 신주꾸의 힐튼호텔에 숙박하였다.
7월 9일 5박 6일간의 일본연수 견학 관광을 마치고 나리타공항에서 조동환 과장님과 한정근 대리의
송별을 받으면서 공항검사대를 빠져나와 6박 6일간의 생활을 스케치하며 아쉬움과 농협중앙회에
감사의 마음을 간직하면서 비행기에 탑승한지 두 시간에 김포공항에 도착하여 50기 연수가족은
7일간의 아쉬운 악수를 나누며 11월 달에 다시 만날 것을 약속하고 집으로 향하였다.
언제나 항시 그렇지만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뛰어 목표에 닿을 때까지 더 열심히
일하리라. 마음속깊이 다짐하면서 두서없는 일본 연수 글을 맺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1995년 9월 17일 / 이 윤 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