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리야드공소생활을 하면서
불의의 사고로 남편과큰딸을 잃은 루시아자매님의 20여년만에 만난 공소회장님과 몇몇분을
2009년3월11일에 만난후 소감문을 적은 글입니다.
첨부된 jpg.파일글의 실제인물인.(20년간 둘째딸과 어렵게 함께 살아왔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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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저녁엔 반가운 만남이 있었다.
그 옛날 20여년 전, 사우디에서 함께 알고지냈던 분들..
회교국가인 사우디에서 타종교 활동을 한다는게 쉽지않았기에
사제 없이 신자들끼리 공소예절이란 것으로 간략하게..
우리의 일요일에 해당하는 금욜에
건설현장의 막사를 빌려 성당으로 이용했었지.
이역만리에 나와있는 사람들의 결속은 역시 종교였던게
지금와 실감되더라구..
어제의 만남을 보더라도...
3년을 약정하고 나갔던 낯선 곳, 1년만에 사고로 행선지를 달리해야했지만
신자들과의 공동체가 있었기에 짧았지만 긴 우정과 사랑을 나눴던 시간..
굵고 짧게 한 획을 그었던 우리였던지
오랜만에 보는 분들이 기억을 해주고
흐른 세월에 비해 모습이 안 변했다면서,
아니 오히려 더 이뻐져서 혹시 성형한것 아니냐는 농담으로
늦게 나타난 내게 부담없이 가볍고 유쾌하게 시작을 하게했지.
그중 회장님이란 분(회계사)이 옛날 일을 회고하시며
어찌나 분위기를 띄워주시던지, 마치 애아빠가 옆에있는듯한 착각을...
구형제(애아빠)혼자 나와 있을 때, 그 공동체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켰다는 새론 사실..
원래 분위기메이커이긴 하지만 너스레와 구성진 노래(삼태기 메들리로 99곡을 뽑아댔다고)로
분위기를 압도하더니 성당전례에 대해선 해박한 지식으로 새로운 신화를 써나가던 중,
부창부수라고, 올겐반주자로 나타난 와이프까지 한세트로 묶어
그야말로 굵고 짧게 신화를 남겼다는군..
회장님이 서울에 나가있을 때, 사고소식을 듣고 급출국
우리게 애정을 가졌던 싱글족들은 몇날 며칠을 통곡을 하셨다는데
그 말을 듣고있던 당사자 눈엔 이슬이...
그분을 주축으로 '가족후원회'를 결성하자는 얘기도 나왔단 얘기에
짧았던 1년이었지만 가고없는 사람의 삶이 헛되진 않았단 생각에
사느라 잠시 잊었던 상념에 다시 젖을 수 있는 시간이었지.
가족없이 혼자 나와계신(주로 건설회사)남자분들의 기도모임(레지오)을
우리 집에서 매주 하면서 다과를 대접하고
명절때면 떡국이라도 끓여 대접,
그 당시 함께했던 분들은 잊지못할 고마운 추억이라며
지금까지도 자주 연락, 내게 큰 힘을 실어주시는 분이기도 하지.
남자들만의 모임이지만 보고싶어 하는 사람이 있어
회장 사모님을 불렀다며 한 시간 후에 나타난 분과 반갑게 해후를..
그분 딸(26세)이 혜령일 무척 이뻐했기에 서로 갖고있는 사진을 보이며
조만간 함께 만나자는 얘길 하고있는데 마침 전화가 걸려와 통화까지..
'후원회'까지 거론했던 그분들께 비춰진 내 모습은 어땠을까..
'잘 이겨냈구나, 잘 살아냈구나, 과연 루시아답다'며 끄덕이는 그분들의 용태를 보며
'우아하게 나이들어간다'는 보너스칭찬까지 들었으니
나 자신에게 대견하다 마구마구 칭찬하고 싶더라구..
'경희야, 넌 참 잘 살아냈어.
하느님빽만 믿고 앞만보구 달려왔기에 지금의 이 자리가 있는거겠지.
근데 결코 너 혼자 이뤘냈다 생각하면 곤란해.
니를 있게한 모든 은인들, 니를 키워준 많은 고난의 시간들, 그것을 이기게 한
보이지않는 응원들..
꼬~옥 잊지말구 힘들때마다 꺼내보며 또 넘어가는거야'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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