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역 히말라야 지역으로 24팀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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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년도 히말라야 지역으로 진출한 한국대는 모두 23팀(천산 지역 2팀 포함)으로 전년도 21팀보다 늘어났으나 다른 지역의 증가 추세에는 훨씬 못미쳤다. 이것은 그동안 히말라야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획득한 한국산악인들이 새로운 지역에 대한 관심도를 높이고 있는 추세에서 비롯된 것이다.
천산산맥을 포함해서 크게 5개 지역으로 나뉘어진 히말라야 원정은 인도 지역 7팀, 파키스탄 6팀, 네팔 5팀, 그리고 중국으로 3팀, 구소련에 2팀순으로 원정대가 몰렸다. 특이한 것은 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원정대 수에서 1위 자리를 지키던 네팔 지역이 인도와 파키스탄 지역보다 적은 수를 보인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네팔 지역의 입산료 인상과 6천~7천미터급 산의 고난도 루트를 찾는 한국산악인들의 의식 변화가 반영된 것이다.
95년에는 전년도보다 등반대의 등정률이 약간 상승했으나 평균 등정률에는 못미치는 43퍼센트를 기록했다. 천산 지역을 제외한 4개 지역만 보더라도 경남연맹의 남서벽 등정과 엄홍길의 마칼루, 로체, 브로드피크 등정, 그리고 고려대와 전주개척산악회의 초모랑마 등정, 단국대의 쉬블링 등정, 경기북부연맹의 티리치미르 등정 등 9개 팀이 등정에 성공했으나 인도 지역의 등정률은 특히 저조한 기록을 보였다.
95년의 첫등정은 봄시즌에 네팔히말라야의 마칼루(8,463m)에서 이루어졌다. 한-스페인합동대(대장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39)의 엄홍길대원이 5월 8일 스페인대원 3명과 함께 7,800미터의 4캠프를 떠나 북동릉으로 정상을 밟았다. 엄대원과 스페인 바스크대원 4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는 4월 26일 4캠프를 설치하고 27일과 5월 3일 두 차례에 걸친 정상공격이 강풍과 혹한으로 실패하고 세 번째 공격에서 정상에 올랐다.
국내산악인으로서는 최초로 서양산악인과의 합동대를 꾸린 이 등반에서 정상에 오름으로써 허영호, 김창선에 이어 4좌의 8천미터급 산을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엄홍길의 등정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어져 여름과 가을시즌에 계속해서 8천미터급 봉우리에 올라 국내 최초로 1년에 3개봉을 등정하는 기록을 세웠다.
네팔에서 잠시 귀국했다가 파키스탄으로 떠난 엄홍길은 한국산악계의 마지막 8천미터급 산인 브로드피크(8,047m)에 도전했다. 이번에도 스페인 바스크팀의 원정대에 단신으로 합류한 엄대원은 7월 12일 새벽 4시 후아니토 오이아르자발대장 등 3명과 함께 7,500미터의 4캠프를 출발, 10시간 후인 오후 2시경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이들이 6월 27일 베이스캠프를 건설한 지 16일 만의 빠른 등정이었다. 엄대원이 등정한 직후 광주전남합동대의 세 대원이 정상을 밟아 이 봉에 국내산악인 4명의 등정자가 한꺼번에 배출되었다. 브로드피크는 88년 악우회가 전봉에 등정하는 데 그치고 92년 경남연맹, 93년 경희대, 94년 중앙대에게 계속적으로 실패를 안겨주며 8천미터급 14좌 중에서 유일하게 한국 미등으로 남아 있던 산이었다.
마칼루와 브로드피크를 오른 엄홍길은 9월에 다시 스페인팀에 합류해 세계 4위의 로체(8,516m)봉에 도전했다. 이미 고소적응이 되어 있던 엄대원은 9월 21일부터 등반을 개시 10월 2일 새벽 4시 스페인대원 2명과 함께 7,500미터의 제3캠프를 떠나 11시간을 등반한 끝에 오후 3시 20분경 정상에 올랐다. 이 등정으로 엄대원은 국내 최초로 연간 3개봉 연속 등정기록과 통산 6좌의 8천미터급 봉우리를 등정하는 위업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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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에 한국 6팀 진출, 3팀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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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에 4개 팀이 활동했던 파키스탄에 95년도에는 6개 팀이 진출했다. 엄홍길의 한국-스페인합동대와 광주전남합동대가 브로드피크(8,047m)에 출사표를 던졌고, 서울시산악연맹 구조대팀이 가셔브룸 1봉(8,068m), 한국산악회가 가셔브룸 4봉(7,925m), 전주 파이오니어스산악회가 루프가르사르 동봉(7,200m)에 도전장을 냈다. 그리고 경기북부연맹팀은 국내 최초로 힌두쿠시산맥으로 진출, 티리치미르(7,708m)를 등반했다.
이중 국내 8천미터급 미등봉 브로드피크에 도전한 엄홍길과 광주전남의 빛고을원정대, 그리고 경기북부연맹팀이 성공을 거두었다.
엄홍길대원이 스페인대와 합동으로 브로드피크를 오른 7월 12일에 또다른 한국산악인들이 같은 봉우리에 올랐다. 광주전남 지역에서 합동으로 꾸린 95빛고을 브로드피크원정대의 박신영등반대장과 박현재, 이정현대원이 엄대원보다 1시간가량 뒤인 오후 2시 55분에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위계룡단장(42)과 박찬기대장(36), 박신영등반대장(34)의 지휘아래 강성완(31), 김성헌(30), 권영택(28), 박현재(27), 정명호(27), 이정현(24), 정후식대원(32) 등 모두 10명으로 구성된 빛고을원정대는 6월 25일부터 등반을 개시해 7월 7일 제4캠프(7,570m) 설치를 마쳤다. 12일 새벽 4시 정상공격조는 마지막 캠프를 떠나 11시간을 등반한 끝에 오후 2시 55분 박대장이 먼저 정상에 도착했고 박, 이 두 대원은 스페인대원 2명과 함께 오후 4시에 등정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커다란 불행이 기다리고 있었다. 정상에 늦게 도착한 이들이 하산 도중 날이 어두워졌고 각자 내려가던 세 대원 중에서 박현재대원이 추락사하는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93년도에 에베레스트를 오른 바 있는 박대원의 사망 소식은 빛고을 산악인들에게 커다란 슬픔을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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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셔브룸 1봉, 4봉팀 연속 후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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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연맹 가셔브룸 1봉원정대
5년 전인 90년 9월 충남합동대에 의해 등정된 바 있는 가셔브룸 1봉(8,068m)에 대산련 서울시연맹 구조대원들이 주축이 되어 도전장을 냈다. 장봉완대장(43·구조대장)을 중심으로, 최철호부대장(40), 이금주(35), 박수현(32), 이동석(30), 박희영(27), 방정일(25), 권덕균대원(40) 등 8명은 6월 21일 베이스캠프(5,050m)를 설치한 후 24일부터 등반을 시작했다. 한국대는 빙하의 왼쪽으로 등반루트를 잡고 5,600미터 지점에 전진캠프를 설치하고 6,000미터에 제1캠프를 구축한 다음 북북서벽 아래에 2캠프(6,4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7월 8일에는 북북서벽 위에 마지막 캠프인 3캠프(7,300m)를 설치하는 데 성공했다.
이제 정상공격만을 남겨두었으나 가셔브룸은 이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았다. 박수현, 박희영대원이 등정 기회를 노렸지만 계속되는 악천후로 결국 후퇴를 결정하고 말았다.
가셔브룸 산군에 진출한 또다른 한국팀은 사단법인 한국산악회가 파견한 가셔브룸 4봉(7,925m) 원정대였다. 한국산악회 창립 50주년 기념사업으로 결성된 이 원정대는 조성대대장(41)의 지휘아래 김영복부대장(40), 유학재등반대장(34), 신상만(29), 황영순(27), 이태순(27), 차석우(27), 이성빈(27), 조영주(27), 김택수(27), 하찬수(27), 이동윤(27), 장남택(27), 송영만(26), 김용호대원(24) 등 15명으로 구성되었다.
가셔브룸 4봉은 58년 이탈리아팀(대장 리카르도 캐신)의 보나티 일행에 의해 북동릉으로 초등정된 산으로 등반하기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실제로 초등정된 이후 여러 원정대가 재등을 시도했으나 무산되었고 85년에 폴란드의 보이첵 쿠르티카가 서벽을 알파인스타일로 등정해 세계산악계를 놀라게 했다. 그는 서벽으로 북봉(7,900m)을 등정하고 하산해 정상에 연연하지 않는 등로주의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후 86년에 호주의 그랙 차일드팀이 북서릉으로 재등한 이후 한국대가 도전한 95년까지 등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5월 31일 서쪽 가셔브룸빙하 상부에 베이스캠프(5,400m)를 건설한 한국대는 본래 이 산의 서벽을 시도할 예정이었으나 역부족이라고 판단, 북서릉으로 루트를 변경해 등반을 개시했다. 6월 5일 제1캠프(5,400m), 8일 2캠프(6,400m)를 설치하고 30일에는 3캠프(6,800m)까지 진출했다.
7월 11일 공격조로 선발된 유학재, 신상만대원이 3캠프를 떠나 직벽의 록밴드 구간과 급한 설사면을 넘어 두 번의 비박을 감행하면서 등정을 노렸지만 7,800미터를 최고 도달지점으로 후퇴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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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프가르사르 동봉에서 두 번째 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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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 파이오니어스산악회 루프가르사르 동봉원정대
92년 7월 카라코룸 히스파산맥의 처녀봉 루프가르사르 동봉(7,200m)에 도전했다가 눈사태로 두 대원을 잃고 후퇴한 바 있는 전주 파이오니어스알파인클럽이 3년 만에 또다시 원정대를 파견했다. 92년에도 팀을 이끌었던 김호영대장(39)을 비롯, 김귀용등반대장(31), 장상종(28), 홍동식대원(27) 등 4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아직 미답으로 남아 있는 루프가르사르 동봉을 초등정하기 위해 북벽을 등반루트로 잡았다. 그러나 이들이 6,800미터에 이르렀을 때부터 악천후가 닥쳐 더이상 전진을 못하고 후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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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힌두쿠시 원정대의 등정과 조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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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북부연맹 티리치미르원정대
95년 파키스탄으로 진출한 한국대 6개 팀 가운데 유일하게 카라코룸이 아닌 곳을 대상지로 삼은 팀은 대한산악연맹 경기북부연맹팀이었다. 이들은 국내 최초로 힌두쿠시산맥으로 진출하는 기록을 남기면서 그곳의 최고봉인 티리치미르(7,708m)를 등정목표로 삼았다.
티리치미르는 동부 힌두쿠시 치트랄 지방에 위치한 산으로 주봉과 서봉, 동봉, 북봉 등 4개 연봉으로 이루어진 산이다. 주봉은 50년 7월 노르웨이팀이 주봉의 남봉릉을 따라 초등정했고 67년 체코대와 일본대가 북면으로 각각 제2, 3등을 기록한 이래 여러 팀이 등정에 성공했다.
7월 7일 티리치미르빙하에 베이스캠프(4,700m)를 구축한 한국팀은 이해봉대장(39)의 지휘아래 신송균등반대장(38), 유병택부대장(36), 황의창(36), 이의현(34), 김경훈(34), 김재표(29), 조준용대원(28) 등 모두 8명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원정대는 다음날인 8일에 제1캠프(5,100m), 14일에 2캠프(6,200m), 15일에 3캠프(6,800m), 17일에 4캠프(7,300m)를 설치하며 등정 준비를 마쳤다.
23일에는 김재표, 조준용대원이 정상공격을 위해 4캠프로 올라왔다. 그러나 다음날 갑자기 날씨가 나빠지자 대장은 일단 철수할 것을 명령했다. 그런데 두 대원은 전날 제4캠프 위에 데포해 둔 장비를 찾으러 올라갔다가 그길로 정상공격을 단행했고 오후 7시에는 정상에 올랐다는 교신을 보내왔다. 그러나 그것이 그들과의 마지막 연락이 되었고 두 대원은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원정대는 헬기로 두 대원을 찾아보았으나 그들의 모습은 티리치미르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
95년도는 한국의 히말라야 원정사상 가장 많은 팀이 인도히말라야로 몰린 해로 기록되었다. 4개 팀이 집중된 쉬블링(6,543m)을 비롯해서 차우캄바 2봉(7,068m), 탈레이사가르(6,904m), 바기라티 2봉(6,512m) 등 가르왈 지역에서 7개팀이 등반활동을 펼쳤다.
한국대의 인도 지역 진출은 83년 포항 향로산악회의 눈(7,135m) 원정으로 시작되었으나 6년 동안 한 팀도 없다가 89년에 1팀, 92년 1팀 등 저조한 활동이 이어졌었다. 그에 반해 네팔히말라야에 집중되어 온 한국 히말라야원정대의 양태를 개척정신의 부재로 분석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93년도부터 대학산악부를 중심으로 인도 가르왈의 벽등반지로 등반대가 몰리기 시작했다. 93년도 3개 팀에서 94년도에는 6개 팀으로 늘어났고 95년도에는 7개 팀으로 그 추세가 이어져 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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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블링에 4개 팀 러시, 단국대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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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마터호른’이라 불리는 힌두 성봉 쉬블링에 전년도 충주예성산악회와 광운대팀의 패퇴에 이어 95년에는 한국대 4개 팀이 한꺼번에 몰렸다. 이들은 단국대산악회와 청화산악회, 진주초모롱마산악회, 보이스카웃 충북연맹팀으로 이 험봉의 한국 초등을 노리고 각축전을 벌였다.
4개 팀 중에서 가장 먼저 베이스캠프에 도착한 팀은 청화산악회였다. 김병태대장(34)과 정동익(31), 최복환(31), 김영록대원(30) 등 4명으로 구성된 청화산악회팀은 8월 22일 베이스캠프에 도착해 24일부터 서릉을 향해 등반을 개시했다. 그러나 며칠 뒤부터 날씨가 나빠지면서 눈과 비가 번갈아 내리자 등반이 지체되었다. 29일 전진베이스캠프(4,950m)를 설치하고 31일에는 어렵게 제1캠프(5,250m)를 설치했다. 그리고 급경사의 벽을 올라 두 번째와 세 번째 봉우리 사이 안부에 2캠프(5,550m)를 설치한 것이 9월 2일, 다음날에는 3캠프 지점인 6,900미터까지 올랐으나 날씨가 나빠 1캠프로 일단 후퇴했다. 그러나 이들이 며칠 뒤 다시 등반을 속개했을 때는 눈이 너무 많이 내려 체력 소모가 컸다. 결국 이들은 등반포기를 선언했다.
한편 북벽 체코팀 초등루트를 노린 초모랑마산악회팀은 8월 23일 베이스캠프(4,300m)를 설치하고 등반을 개시했다. 그리고 25일 전진베이스캠프(4,800m)를 설치하고 등반에 나섰다.
네 팀 중에서 유일하게 북벽루트로 등반을 시도한 진주 초모롱마산악회팀도 눈과 비가 계속 내리는 악천후 속에서 고초를 겪다가 결국 단념하고 말았다. 이 팀의 대원은 문영록대장(42)을 위시해서 강종문(31), 강병희(26), 탁갑록(25), 강연룡(24), 하재성(23), 조정운(54), 최강철대원(45) 등 8명이었다.
한국 보이스카우트 충북연맹이 주최한 95충북쉬블링원정대는 이종영대장(27)의 지휘아래 이대호(24), 반성훈(25), 황석연(24), 정대훈(24)대원 등 충북619산악대원 5명으로 구성되었다. 이 원정대는 단국대팀보다 빠른 9월 3일 베이스캠프를 설치하고 등반을 개시 8일에 전진베이스캠프, 10일에 제1캠프(5,250m), 14일에 2캠프(5,800m)를 설치했다. 그리고 15일에는 정상쪽 리지의 루트공작에 나섰다. 이날 이들이 5,900미터 지점까지 올랐으나 악화된 날씨가 호전될 기미가 없자 등반을 포기했다.
쉬블링에 몰린 한국대 네 팀 중에서 등정에 성공한 팀은 서릉 노멀루트로 도전한 단국대팀뿐이었다. 단국대산악회는 개교 50주년을 맞아 산악부로서는 첫 히말라야 등반에서 한국 초등이란 개가를 올린 것이다.
정정훈대장(39)의 지휘아래 최정용(32), 고운철(31), 김대호(23), 남병근(24), 남현삼대원(20) 등 6명으로 구성된 단국대팀은 9월 11일 타포만에 베이스캠프(4,463m)를 설치하고 13일부터 등반에 들어갔다. 이미 와 있던 충북팀과 청화산악회팀들이 기상이변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당일로 전진베이스캠프(4,805m)를 구축한 단국대 원정대는 등반일정에 쫓겨 속전속결 전략을 택했다. 15일에 제1캠프(5,160m), 18일 2캠프(5,680m), 20일에는 3캠프(5,810m) 설치를 마쳤다. 다행히도 전팀들이 등반할 때보다는 날씨가 좋은 편이었다.
22일 오후 고운철대원이 현지인 2명과 함께 3캠프를 떠나 6,055미터의 안부에서 비박을 했다. 다음날 새벽 세 사람은 비박지를 떠나 설벽을 오르는 데 2시간이 걸리고 아이스폴을 통과한 끝에 오후 3시 40분 마침내 정상에 도달했다. 이들이 2년간 그리던 험봉 쉬블링의 정상이 바로 발 밑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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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우캄바 2봉서 두 번째 좌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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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차우캄바 2봉 부천원정대
94년 청주대산악회가 세계초등정을 노리고 도전했다가 6,058미터 지점에서 단념한 처녀봉 차우캄바 2봉(7,068m)에 이번에는 부천산악회에서 도전장을 냈다. 히말라야와 천산 등지에서 다양한 등반경력을 가지고 있는 전재영대장(36)의 지휘아래 이봉재부대장(33), 서현수(37), 이상헌(36), 오준영(27), 최오순(여·26), 김동호(27), 홍성하(23), 김원유대원(27) 등 9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는 9월 2일 베이스캠프(4,400m)를 건설하고 등반에 들어갔다.
북동릉으로 등반루트를 잡은 원정대는 10일 제1캠프(4,700m), 11일 2캠프(5,000m)에 이어 14일 3캠프(5,200m), 그리고 70도가 넘는 급경사의 암벽지대를 돌파 22일 4캠프(6,4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23일 전재영, 이봉재, 김동호, 최오순대원과 셀파 2명이 정상공격에 나섰으나 크레바스 지대를 만나 시간을 낭비하고 모두가 지쳐서 후퇴했다. 다음날 이봉재, 김동호대원이 셀파 2명과 함께 재도전에 나섰으나 6,800미터에 있는 커니스와 그 위의 암벽구간을 돌파할 수는 없었다. 이로써 한국의 두 번째 차우캄바 2봉 도전도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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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레이사가르 북벽에서 네 번째 패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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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전문대 탈레이사가르원정대
한편 93년 대구합동대에게 최초로 실패를 안겨주고 94년에는 우정원정대와 연세산악회팀에게 연속적으로 고배를 마시게 한 험봉 탈레이사가르 북벽에 한국의 네 번째 원정대가 출사표를 던졌다.
목포전문대 개교 20주년 및 산악부 창립 15주년 기념으로 꾸려진 이 원정대는 최호대장(27)의 지휘아래 박근구등반대장(25), 김인철(25), 김대중(26), 임찬수(24), 김은주대원(여·23) 등 6명으로 구성되었다. 강고트리를 거쳐 5월 4일 베이스캠프를 건설한 원정대는 다음날부터 곧바로 등반을 개시, 7일 제1캠프(5,200m), 10일에 2캠프(5,600m) 설치를 마쳤다. 이어서 본격적인 벽등반에 나선 이들은 11일 설동(5,800m)을 구축하고 포타렛지를 사용해 가며 고정로프 설치작업을 계속해 6,500미터 지점까지 진출했다. 드디어 1차 공격에 나서 19일에는 6,600미터 지점까지 도달했고 이어서 2, 3차 공격을 시도했으나 그 이상의 고도를 따내지 못하고 후퇴하고 말았다. 이들이 도달한 고도는 그간의 어떤 한국대들보다도 높은 지점이었다. 어쨌든 한국대로서는 네 번째인 이들의 패퇴로 탈레이사가르 북벽은 한국산악계에 여전히 과제로 남았다.
가르왈히말라야 강고트리 지역에 있는 또하나의 험봉 바기라티 산군에서 6년 만에 한국대가 등반을 재개했다. 89년 광운대산악회가 이 산군의 3봉(6,454m)을 등정하여 이 지역 벽등반의 포문을 열었었다. 95년에는 코오롱등산학교 동창들의 모임인 하이얀산악회가 2봉(6,512m)의 바리에이션 루트인 북서벽으로 루트를 잡고 등반대를 파견했다.
바기라티 2봉은 38년 독일-오스트리아합동대가 북동면으로 초등정을 이룩한 뒤 80년 일본대, 81년 인도대가 같은 루트로 등정했고, 같은해 9월 아일랜드팀이 북벽에 신루트를 뚫으며 등정한 산으로 어렵기로 정평이 나 있었다.
최정식대장(40)과 김현대부대장(37)의 지휘아래 이대영(33), 최영환(32), 이진호(30), 한태희(28), 조성정대원(23) 등 7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9월 1일 전진캠프를 설치하고 81년 이래 아직 재등이 안된 북서벽으로 등반을 개시했다. 그러나 이틀 뒤인 9월 3일 제1캠프까지 고정로프 설치작업을 하던 최영환대원이 눈사태로 실종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벽 상단에서 얼음덩어리와 함께 쏟아져내린 눈사태가 이대영, 한태희, 최영환대원에게 덮쳐 이, 한 대원은 극적으로 탈출했으나 최대원은 눈사태와 함께 실종된 것이다. 이 사고로 이 팀은 등반을 중단하고 주변에 있던 단국대, 청화산악회팀과 함께 수색작업을 펼쳤으나 끝내 시신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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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산산맥으로 한국 2개 팀 진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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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합동 무르모르나야원정대
▲ 2캠프로 향하는 대원들
95년도 한국대의 구소련 진출은 90년 이후 거의 연례적으로 시도되던 파미르의 코뮤니즘이나 천산의 포베다, 칸텡그리 등반에서 탈피하려는 경향이 짙었다. 95년은 구소련의 카자흐스탄 천산산맥으로만 3개 팀이 진출했는데 한산 부산지부팀이 칸텡그리(7,010m)를 등반했고 한국 3팀합동대가 무르모르나야(6,400m)를 국내 최초로 시도했다.
이들 중 등정에 성공한 팀은 3팀합동대와 한산부산지부팀이었다.
3개 팀이 합동으로 참가한 무르모르나야 원정대는 5월 12일 북이닐첵빙하에 베이스캠프(3,100m)를 설치했다. ‘청풍명월원정대’라고 이름 붙여진 청주팀의 김웅식대장(30), 오경석(25), 김범준대원(23) 등 3명과, 서울 봔트클럽의 송귀봉(27), 송형기(27)대원, 그리고 전주 삼양사산악회의 이희주대장(38), 한기종(34), 허재수대원(34) 등 모두 8명으로 구성된 합동대는 국내 국제캠프사의 주선으로 카자흐스탄산악인 8명과 함께 등반에 나섰다.
중국과의 경계에 있는 무르모르나야(Mur Mornaya)는 46년에 초등된 이래 동구권에서 몇 팀만이 등반을 한 산으로 95년 최초로 외국인에게 개방되었다.
5월 13일 등반을 개시한 한국팀은 그날로 전진베이스캠프(3,500m)를 설치하고 15일에 1캠프(4,500m), 19일에 2캠프(5,100m), 21일 3캠프(5,400m), 22일 4캠프(6,000m)를 설치했다. 이어서 다음날 새벽 정상공격에 나선 김웅식, 송귀봉, 오경석, 김범준대원은 2시 30분에 정상을 밟는 데 성공했다.
한편 칸텡그리와 포베다 연속등정을 노리고 7월 24일 북이닐첵빙하의 국제캠프에 들어온 한산부산지부팀은 26일부터 노멀루트인 남서면으로 등반을 개시했다. 한산 부산지부 창립 50주년 기념으로 결성된 이 팀은 최상원단장과 신호진대장(41)을 비롯해서 이남국등반대장(38), 신동배(39), 강용근(32), 김인숙(32), 차광훈(27), 김병목(28), 공정률(27), 류보현(25), 박종화(24), 김기형대원(23) 등 11명으로 구성되었다.
이들은 우선 칸텡그리에 4개의 캠프를 설치하며 전진한 끝에 8월 8일 오후 3시 류보현, 김기형, 박종화대원이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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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베레스트 북측 세 팀, 남측 한 팀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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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오르려는 한국산악인들의 열정은 94년을 휴식기로 가진 후 다음해로 이어졌다. 95년 가을시즌에는 2년 전과 마찬가지로 4개 팀이 최고봉에 출사표를 던져 또다시 한 개봉 최다 원정대를 기록했다. 이중 3개 팀은 티베트를 통한 북측 루트를, 그리고 1개 팀이 한국산악계의 최대 숙제로 남아 있는 남서벽루트를 목표로 삼았다. 북측의 3개 팀은 북릉-북동릉 노멀루트를 택한 고려대팀과 포항제철산악회, 그리고 에베레스트 최난의 루트인 북동릉을 택한 전주개척산악회 주최 전국합동팀이었다. 그리고 남서벽에 도전한 일곱 번째 한국팀은 경남산악연맹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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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콜루트로 두 팀에서 세 명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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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초모랑마 북동릉원정대
고려대학교 초모랑마원정대
포항제철 에베레스트원정대
티베트쪽 루트로 에베레스트를 오르려고 몰려든 한국 3개 팀 중에서 가장 관심을 끈 팀은 전주 개척산악회의 북동릉원정대였다. 북동릉은 1982년 이래 외국대에게 8번이나 실패를 안겨준 루트로 이 해 봄시즌 일본대가 초등했고, 에베레스트 등반루트 중 최난으로 꼽히는 암릉이었다.
개척산악회가 주최했지만 서울, 전남 지역 산악인들이 합류해 사실상 전국합동대였던 북동릉등반대는 고소적응을 위해 시샤팡마 등반을 먼저 시도했으나 등정에 성공하지는 못했다. 전주개척산악회 이동호대장(40)의 주도하에 동국산악회 박영석등반대장(32)과 홍성택(29), 진재창(29), 한왕룡(29), 라관주(28), 유명희(여·28), 김헌상(26), 김경숙대원(여·40) 등 9명으로 구성된 이 원정대는 9월 8일부터 북동릉 등반을 개시했다. 이들은 27일 7,800미터 지점에 4캠프를 어렵게 설치했으나 더 이상 등반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여기서 개척산악회팀은 루트를 고려대와 포철팀이 등반중인 북릉 경유 북동릉으로 변경함으로써 한국의 3개 팀이 모두 한 루트를 등반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이때까지 고려대팀과 포철팀은 대원 후송과 악천후로 일정에 차질을 빚고 있었다. 두 팀은 노스콜에 3캠프(7,010m)를 설치해 놓고 네 번째 캠프를 설치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따라서 개척산악회팀을 포함한 3개 팀은 자연스럽게 공동으로 루트공작을 하게 되었다.
개교 90주년을 기념하여 결성된 고려대팀은 강호기부단장(55)과 김종호대장(41)의 지휘아래 박동석부대장(31), 송재규(31), 유신열(28), 임영일(26), 조용일(27), 이석부대원(20), 그리고 뒤에 합류한 김상겸단장(60) 등 9명으로 구성되었고, 포항제철 원정대는 이동연대장(38)을 중심으로 김시학부대장(35), 이인등반대장(29), 오홍일(34), 권오수(29), 남영모(26), 양일남(26), 이혁재(24), 강현두(29), 이용우(27), 이홍길대원(25) 등 11명으로 구성된 대부대였다.
10월 6일, 한국의 3개 팀은 합동으로 정상공격조를 구성하고 여기에 인도팀이 합류해 11명의 대원과 3명의 대원으로 10월 6일 3캠프를 출발했다. 다음날 4캠프(7,900m) 그리고 8일에는 5캠프(8,300m)를 설치한 끝에 다음날 등정을 시도했지만 장비 부족으로 8,700미터 지점 세컨드 스텝에서 돌아서고 말았다.
다시 전력을 가다듬은 한국팀들은 10월 11일 2차 공격대를 3캠프에서 출발시켰다. 고대팀에서 조용일대원과 장부셀파가, 개척산악회 합동팀에서 한왕룡, 홍성택과 따시셀파가 참가했다. 1차 공격에서 전력을 상실한 포철팀과 인도대는 2차 공격을 포기하고 하산을 결정했다.
13일 마지막 캠프에 도착한 합동 공격조는 14일 새벽 달빛을 받아가며 1차 공격때의 러셀자국을 따라 능선에 올라붙었다. 오전 8시에는 세컨드 스텝에 도착했고 홍성택대원의 리드로 어려운 암벽지대를 돌파했다. 그리고 드디어 오후 2시 30분 홍성택, 한왕룡, 조용일대원과 두 셀파가 정상에 올라섰다. 한국의 21, 22, 23번째 에베레스트 등정자가 추가되는 순간이었다. (사진 6-8, 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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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원의 에베레스트 남서벽 마침내 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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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연맹 에베레스트 남서벽-로체원정대
▲ BC에서의 엄홍길 대원
한편, 10월 14일 북측 루트로 세 명의 한국산악인들이 정상에 오르고 하산한 바로 30분 뒤인 오후 3시 45분 또다른 한국산악인들이 지구의 용마루에 올라섰다. 그들은 한국산악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남서벽을 뚫고 올라선 경남연맹 에베레스트-로체원정대의 김영태, 박정헌대원이었다. 셀파 두 명을 포함해 4명으로 이루어진 이들 정상공격조는 이날 새벽 5시 25분 5캠프(8,300m)를 출발, 록밴드를 돌파하고 남봉을 거쳐 정상에 오르는 데 성공한 것이다. 국내 통산 27번째 에베레스트 원정에서 24, 25번째의 등정자가 숙원의 남서벽을 통해 배출되는 순간이었다.
경남연맹대의 이 남서벽 등정은 1985년 한국대가 이 벽에서 첫패배를 한 이래 여섯 차례의 실패 끝에 이루어진 것이어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산악계는 이 남서벽 등정으로 90년대 중반 등로주의에 의한 거벽 등반시대를 맞게 되었다는 평가가 뒤따랐다.
조형규대장(45)이 이끈 경남연맹팀은 이병갑부대장(48), 박희택등반대장(32), 김재수(34), 김영태(31), 송재득(31), 이영국(31), 조성수(33), 신홍국(30), 윤치원(25), 박정헌(24),이기영(58), 윤병삼(40), 김창수(36·보도), 정영상대원(39·보도) 등 16명으로 이루어진 대부대였다. 이들은 8월 27일 쿰부빙하에 베이스캠프를 건설한 이래 5개의 캠프를 전진시키는 데 45일이란 긴 시간을 소모했고 마침내 남서벽을 통해 등정한 것이다. 그러나 로체봉은 대원들이 지치고 날씨가 악화되어 7,800미터를 최고 도달지점으로 철수를 결정했다.
경남연맹원정대는 귀국후 1년 만인 96년 11월에 KBS문화사업단과 공동으로 타블로이드판 올컬러 보고서(제1권 338면, 제2권 260면)를 출간해 찬사를 받았다.
가을시즌 네팔로 진출한 한국 3개 팀 중에서 엄홍길의 합동대와 경남연맹팀이 큰성과를 올렸으나 세계초등정을 기대한 중경산악회의 파상라무원정대는 아깝게도 패퇴했다.
파쌍라무(7,351m)는 네팔 중부 쿰부히말라야의 낭파라 근처에 있는 처녀봉으로 본래 쟈상바(Jasagba), 또는 낭파이고숨(Nangpai Gosum)이란 이름을 가지고 있었는데 93년 네팔여성 최초로 에베레스트를 등정하고 사망한 파쌍라무셀파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 다시 명명되었고 94년 외국인에게 개방된 산이다.
노임준단장(42)과 손문규대장(41)의 지휘아래 김용혁부대장(27), 강희창등반대장(26), 김홍근(26), 최원섭(26), 임철희(26), 김태만(26), 정군목(25), 안미라대원(여·23) 등 대전의 중경공전 졸업생과 재학생 10명으로 구성된 원정대는 파상라무의 세계초등정을 목표로 하고 9월 24일 베이스캠프(5,900m)에 들어갔다. 다음날부터 등반을 개시한 원정대는 10월 4일에는 북서릉 6,400미터 지점에 2캠프를 설치했고 6일에 정상공격을 단행했다. 공격조 김태만, 정군목대원은 새벽 5시 30분 2캠프를 출발, 오후 3시에는 7천미터 지점까지 올랐다. 그러나 이곳부터 대원들의 체력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해 더이상 오르지 못하고 일단 후퇴를 했다. 두 사람은 하산 도중 어두워져 6,600미터 지점에서 비박을 해야 했다. 그러나 이것으로 이 팀의 등반은 끝나고 말았다. 식량과 장비 부족으로 등반을 계속할 수 없다고 판단한 손대장은 등반 종료를 선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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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2인조 동계 다울라기리서 패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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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계 다울라기리-안나푸르나원정대
가을시즌에 초모랑마 북동릉 등반을 시도했던 대원중 박영석(32), 한왕룡(29)조가 겨울시즌에 다시 원정대를 꾸렸다. 단 두 사람이 다울라기리와 안나푸르나를 연속등정하겠다는 야심찬 계획을 세운 것이다.
이들은 12월 5일 다울라기리 베이스캠프에 들어가 셀파 2명과 함께 속공으로 등반을 시도, 9일에 5,900미터 지점에 1캠프, 10일 7,100미터 지점에 2캠프를 설치하고 등정 기회를 노렸다. 계속되는 악천후로 마지막 캠프에서 3일간 머물다 결국 12월 16일 단념하고 말았다. 기력이 떨어진 두 사람은 안나푸르나 행도 포기하고 말았다. (사진 6-10, 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