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고향은 경남 합천입니다. 71년도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던 제가 방학 때 고향에 내려오면 저희 집 안방은 그야말로 동네
어르신들의 안방극장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텔레비전이 귀하던 시절이라 이른 저녁을 먹고 나면 온 동네 사람들이 모두 저희 집으로 모이곤
했었습니다.
마당 한
귀퉁이에는 높이 십 여 미터나 될 듯한 높은 안테나가 서 있었구요. 선은 안테나 끝에서 부터 길게 안방 티비 상자까지 연결되어
있었는데, 티비는 일제
내셔날 14인치였었으며 화면 앞에 대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이 대문을 열어야 화면이 보였었지요. 여름이면 안방 바로 앞에 티비를 놓아
큰 대청마루에서 어르신들이 시청 했었구요. 겨울이면 안방 벽장 속에 티비를 놓아 방 안에서 보곤 했었는데
그 인원이 적을 때는 20여 명, 많을 때는 자그마치 30여 명쯤 되었을 겁니다. 축담 밑에 벗어 논 신발은 또
어떻구요. 돌아 갈 때는 자기 신발을 얼른 못찾아 정말 난장판이었습니다.
참고로
저희 집은 일제 시대에 요정을 하던 일본식 집이라 방이 7개, 부엌이 크게 하나, 큰 마루가 하나, 큰 마루와 길게 연결되는 디귿자 골마루가 있었구요. 골마루
중간에 현관 출입문이 또 있었고, 골마루 중간 중간 작은 방으로 연결되어 있었으며, 디귿자로 꺽어지면 안방과는
제법 거리가 있어 저는 여기서 혼자 기타도 치고 책도 보고 했었지요.
대문
지붕이 따로 있었고 대문을 들어서면 왼쪽 귀퉁이에 화장실이 두 개, 마당, 아니 정원 한 가운데는 동그랗게 정원석으로 쌓여 있고 그 안에 큰 모과나무 한
그루와 석류 등이 있었지요. 정원 옆에 우물이 있었고 오른쪽으로는 길게 집으로 들어오는 정원석 길이 있었으며,
길옆으로는 이쁜 돌들로 쌓여진 담장 밑 화단이 있었습니다. 화단엔 대추나무가 몇 그루 있었구요. 정원석 사이사이로
철쭉, 사철나무 등이 심겨져 여름이면 푸르름을 더했고, 커다란 은행나무가 집 양쪽에 각 한 그루씩 있었는데 한
그루는 큰 형님이 교사 시절 학교로 옮겨 가 버려 한 그루만 남아 있었지요.
동네
사람들이 우리 집을 부를 때 ‘별장집’이라고 불렀었습니다.
이 집은 제가 서울로 가고 난 다음 집안 형편이 좋아져
이사한 집이라 제가 처음 이 집을 찾아 왔을 때는 남의 집 같았습니다. 처음 집에 온 날, 친구들과 술 먹고 만취하여 집
근처까지는 왔는데 술 취한 것이 부담되어 담을 넘어 내 방으로 들어간다는 것이 이웃집 담을 넘어 남의
방으로 들어 가 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당시 인기
프로그램은 KBS에서 방영하던 ‘여로’였었지요. 남자 주인공인 바보 영구와 여주인공 태현실(?)이 울고 웃으면 어르신들도 따라 웃고 울었으며, 동네
애들은 바보 영구의 말투와 행동을 흉내 내며 놀기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곤란한 일은 모두 어르신들이라 빨리 돌아가시라는
소리를 못한다는 겁니다. 어떤 분들은 애국가가 나와야 자기 집으로 돌아가곤 했었으니까요. 아니 어쩌면 부모님들이
더 고통스러웠지도 모릅니다. 우리 형제들은 그저 자기 방에 들어 가 자 버리면
되었으니까요.
막내딸이 6학년 때인가 봅니다. 어느 날 집에 오더니
자기도 티비를 좀 봐야겠다는 겁니다.
저희 집은 그 때까지만 해도 티비는 뉴스, 축구, 야구 등
특별한 프로그램이 있던지 아님 아주 가끔씩만 봐 왔었거던요. 연속극이나 오락 프로는 아예 상대를 하지 않았었습니다.
왜
그러냐니까 친구들과 대화가 안 된다는 겁니다. 막내딸의 얘기 주제는 책 제목과 내용, 그 글을 쓴 작가, 출판사 등이었었는데 친구들은 그런 건 모르고 ‘소시’가
모두 몇 명이냐?‘, '소시 노래가 뭔지 아느냐?’고 물으니 막내딸이 미치는 겁니다. 또 무슨 걸 그룹 얘기를 했는데
그건 지금도 무슨 얘긴지 누구 얘긴지 저도 모릅니다.
하긴
저희집 애들이 모두 책 읽기를 좀 좋아하긴해요. 사실 그 해 방학 때도 막내딸은 샬록 홈즈, 괴도 루팡, 아가사 크리스티 등의 탐정 소설에 푹 빠져 있었거던요.
그것도 모두 전집을 사다 놓고 밤새워 읽었으니까요.
이튿날
학교 갈 부담이 없는 방학
때면 하루 저녁에 두 세권은 끄떡없습니다. 저희들은 책 구해다 주기 바빴지요. 동네 시립도서관, 동 사무소 도서 대여, 헌책 방 등 안 다닌 데가
없습니다. 어떨 땐 저랑 둘이서 서적백화점 헌책 코너 구석에 쪼구려 앉아 그 추운 겨울에도 서너 시간씩 공짜 책을
읽기도 했었습니다. 읽을 꺼리가 없으면 책좀 구해달라며 짜증을 내곤 하는데 저는 마눌보고 또 안 구해 놨다고 짜증을 내지요.
마눌은 마눌대로 지쳐서 짜증내고....하루에 서 너권, 부피가 작은 책은 대 여섯권은 읽어 버리니 감당이 불감당이었지요.
방학만 지나면 운동도 안하고 집에서 책만 보고 뒹구니 모두
돼지들이 됩니다.
그러면서
저보고 소시 멤버에 대해 물어 보는데 물론 저도 몰랐지요. 가수나 유행가, 개그맨들의 우스개 소리 등은 남의 나라 얘기입니다. 그러니 친구들과의 대화를
위해 티비를 봐야겠다는 겁니다. 할 말이 없었지요.
그 후
어떻게 됐냐구요?
요즘은
마눌도 빠져서 아예 위성방송을 연결하더군요. 마눌 얘긴즉슨, ‘시도 때도 없이 보고 싶은 걸 볼 수 있다‘ 라는 겁니다. 마눌은 주로 내셔널 지오그래픽같은 외국
풍경이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막내딸은 걸그룹과 개콘 등을 주로 보더군요. 저는 컴만지고요. 또 휴일 저녁
한가한 시간에는 막내딸도 마눌과 나란히 누워 ‘일밤’ ‘개콘’ 등을 보면서 내가 집에 들어오든지 나가든지 신경도 안 쓰고,
눈은 티비에 고정된 채로 입만 ‘아빠 왔어?’ ‘ 잘 다녀 와’하고는 또 낄낄댑니다. 어떨 땐 불러도 모릅니다.
또 한
가지 변한 건 막내딸이 요즘 티비를 누비는 유행가 배우는 일에 온 정신을 다 팔아 버린다는거지요. 새로 나온 유행가를 휴대폰에 저장하여 시도 때도 없이
듣고 외웁니다. ‘공부를
그렇게 했으면 천재가 되었겠다’라는 저의 질책에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티비는
휴식이다’라고 말씀하시고 저도 어느 정도 공감은 하지만 과연 티비는 ‘바보 상자’가 맞습니다. 무식한 바부탱이 상자.
첫댓글 이건 올리긴 최근에 올렸으나 오래 전에 쓴 글인 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