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반동의 분위기가 지배적이던 프로이센에서 학계에 자리 잡을 가능성이 희박해진 마르크스는 1842년 쾰른의 <라인신문> 주필로 일했지만 이듬해 정간 조치를 당했다. 파리로 이주하여 <독일-프랑스 연보>를 발간했지만 창간호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파리에서 마르크스는 평생의 동지 프리드리히 엥겔스를 만났다. 1845년 프로이센 당국의 책동으로 파리에서 추방당한 마르크스는 브뤼셀로 이주해 엥겔스와 함께 <독일 이데올로기>(1845-46)를 출간하고 <철학의 빈곤>(1847)을 간행했으며, 공산주의자동맹의 의뢰로 <공산당 선언>(1848)을 집필했다.
“하나의 유령이 지금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공산주의라는 유령이. 교황과 짜르, 메테르니히와 기조, 프랑스 급진파와 독일의 첩보경찰 등 구유럽의 모든 열강은 이 유령을 몰아내기 위해 신성동맹을 맺었다. 집권당으로부터 공산당이라는 비난을 받아보지 않은 반대당이 있는가? (……)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사회의 역사는 계급투쟁의 역사다. 자유민과 노예, 귀족과 평민, 영주와 농노, 길드 장인과 직인, 한 마디로 억압자와 피억압자는 항상 서로 대립하면서 때로는 숨겨진, 때로는 공공연한 싸움을 벌였다. (……) 모든 지배계급을 공산주의 혁명 앞에 떨게 하라.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없으며 얻을 것은 온 세상이다. 전 세계 노동자여, 단결하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