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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는 있는가 ?
많은 믿음의 동역자들이 알고있는 지식은 "있다"로 답이 정해질 것이다.
그렇다면 그곳에 갈 수 있읍니까라고 묻는다면 물론 즉흥적인 대답은 회피한 채 미소를 짖든가 아니면 화를 낼 수도 있을 것이며 정확하게 답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갈 수 있다고"
과연 "있다" "갈 수 있다" 이토록 정확하게 답을 할 수 있는 믿음을 선포하는 목사님들과 믿음의 증표인양 직분의 완장을 차신 분들은 꼭 한번 참고하실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2011년 현재
그의 아버지는 교회에서 직분이 장로이며 어머니는 권사이다.
나이는 아버지는 64세, 어머니는 55세이며 재산의 정도는 농촌에서는 물질로는 걱정을 하지 않을 정도의 재산이 있다. 현금은 약 3억정도 농지와 야산이 약 7억, 집이 건축비만 1억, 차량이 승용차, 화물차, 트렉터, 한우 10여마리 그리고 아버지가 공무원을 하였기에 연금이 매월 200만원 이상이 나온다.
그의 누나는 서울의 유수한 대학과 대학원을 나와 외국학생들의 언어를 가르치는 어학당에서 교수를 하다가 결혼하였고 동생은 서울에서 병원의 방사선 기사로 취직하여 생활하고 있다.
믿음으로도 물질로도 부족함이 없는 가정임을 소개하다보니 너무 자세하게 설명을 한 것 같다.
그는 이 가정에 외아들이었다.
이 아들은 2011년 2월 15일 31세로 죽음을 당하였다.
2002년 서울에서 대학 1학년을 마치고 군대를 갔다.
훈련소에서 전투경찰대에 차출이 되어 제주도에서 복무를 하던 중에 손목에 상처가 났다.
손목의 상처가 아물지 않아 국군 통합병원에 갔다.
치료를 하고 조직검사를 맞긴 후 병원을 나왔는데 며칠 후 의가사 제대를 하고 원자력 병원에 입원을 의뢰받고 원자력 병원에서 나온 병명은 "상피 육종암"이라는 진단을 받았다.
젊은 23세의 청년이 암환자가 되어 병원에 입원하여 3개월여를 치료 받는 동안 치료에 대한 희망을 가졌어야 하는데 불치의 질환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방사선 요법 등 힘든 항암치료를 하면서 더욱 죄절을 겪었다.
병원생활과 함께 의사들도 생존의 시한을 제시하면서 그 부모들에게도 그에게도 희망을 주지 못하였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믿음을 통하여 질병을 치유하겠다는 일념이 앞서기 시작하였다.
병원생활에 대한 희망이 사라졌다는 마음속의 무너짐이었다.
그 후 그는 병원을 나와서 하나님 앞에 매달리는 시간을 갖는다.
병원에서 퇴원을 하자마자 광주에 있는 교회로 내려와 어머니, 이모들과 함께 40일 금식기도를 시작하여 매일 성경을 읽으면서 물만 먹고 모든 음식을 거부한 채 40일 금식을 하였다.
40일이 끝난 후 새로운 음식을 먹으면서 젊은 나이라 그랬는지 건강이 호전되는 것 같았고 이후 다시 대학에 복학을 하여 2학년을 마쳤다. 학교를 다니는 동안 음식을 주의하여야 하는데 음식과 함께 건강하지 못한 몸으로 학업을 따라가느라 힘들었는지 건강이 약해지기 시작하여 휴학을 하였다.
또 다시 40일 금식기도를 광주의 교회에서 시작하였다.
처음 금식기도를 할 때는 많은 형제, 친척들의 도움이 있었지만 모두들 생활이 바쁘다는 이유로 많은 도움을 주었던 처음의 관심은 많이 사라졌다.
그의 어머니만 자신의 잘못인양 하나님의 은총을 의지하면서 매달릴 뿐이었다.
그렇게 또 소중한 시간들이 지나갔다.
40일 금식기도를 마치고 다시 서울로 갔고 시간이 1년 쯤 흐른 후 그의 어머니가 그를 낳을 때 하나님께 드리고 싶다고 하여 하나님이 선택한 종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이름을 정하였다는 고백을 들었다.
그러면 광신대학교에 3학년으로 편입하여 신학을 하라고 조언을 하였고 그도 받아들여 광신대학교 3학년에 편입을 하였다. 4학년까지 건강에 별 무리 없이 졸업을 하였고 총신대 신학대학원에 합격하여 1년을 마칠 수가 있었다.
그리고 2010년 1월 그를 만났다.
점심을 먹으면서 학교를 휴학한 이유와 건강의 상태를 꼼꼼히 물으면서 병원에 가볼 것을 권유하였다.
8년이라는 긴 시간이 지났고 의학도 많이 발전을 하였으니 병원을 찾아서 암의 상태를 확인 하고 또 나을 수 없는 것이라는 진단을 하면 더욱 하나님 앞에 매달리면 되지 않겠는냐고 많은 증거와 하나님 의 말씀으로 권면을 하였다. 그에게서 들려오는 대답은 2002년의 상황이나 다름이 없었고 방사선 치료의 고통, 머리가 빠지고 먹은 것이 모두 다시 토할 수 밖에 없는 그 상황으로 다시 가라고 하느냐고 거절을 하였다.
그리고 그에게서 나온 한 마디는 나의 인생을 책임질 수 있느냐는 물음이었다.
하나님께서 책임지실 것이라는 믿음의 다짐이 어느덧 누군가를 향한 원망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알기에 광주에 있는 동안 교회에 나올 것을 요청하였고 허락을 받았는데 2주는 나오고 1주는 집에 갔다 와야 한다고 하면서 이후 두 달 합하여 6번 교회에 나왔다. 주일 마다 구원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설교를 준비하였고 변화시키는 노력을 하였음에도 막혀버린 그를 변화시키지 못하였다.
2010년 3월 1일 첫 월요일 급하게 그에게서 전화가 왔다.
상처부위에서 붉은 피가 나는데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다는 그의 다급한 외침 이었다.
3월 2일 아침 일찍 그를 데리고 평소 가깝게 지내는 목사님 이시면서 의사이신 원장님의 외과엘 데리고 갔다.
원장님은 상처를 보시고 소독과 처치를 하신 후 질병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하셨다.
이러한 질환은 지금은 불치병이 아니라고 그에게 환자들을 대기실에 가득 채운 것도 무시한 채 설명을 하였고 꼭 전문병원에 가 보라고 하면서 진료비도 받지 않으셨다.
이후 그는 교회를 찾지 않았다.
이유는 시골에 가서 주일이면 기도원에 간다고 하였다.
그리고 15일이 지난 3월 17일 저녁 10시에 전화가 왔다.
상처에서 피가 계속 났고 어지러워서 친구와 함께 전대병원 응급실로 왔는데 친구는 약속이 있다고 갔고 혼자 있기 힘들어서 전화를 했다고 하였다. 침대가 없어서 의자에 앉아서 있는데 마음이 몹시 아팠다. 그의 이모는 저녁을 먹지 못하였다는 말을 듣고 나가서 죽을 사왔고 죽을 먹인 후 집에 갔다.
밤새 혈액을 맞았다.
헤모글로빈 수치가 정상이 12인데 지금은 4이고 팩을 하나 맞을 때마다 1,5정도씩 수치가 올라가는데 1일 3팩 이상을 처방 할 수 없다고 하였다. 또한 혈액을 맞는 동안 계속해서 열이 올랐고 열이 오르면 얼음 수건으로 열을 내려야 했다.
수혈의 시간이 계속 연장되었다.
8정도의 수치이면 조금은 안정을 취할 수 있다고 하면서 서울 명동의 성모병원에 가면 최근 3년 내에 치료를 한 기록이 있으며 암환자들을 위한 의학지에 소개 되었고 논문도 계속 나오고 있으니 날이 밝으면 성모병원으로 이동을 하라고 응급실 의사들이 계속 와서 설명을 하였고 전남대 병원은 육종암을 치려하는 전문의가 없다고 하였다.
아침이 되자 그의 어머니와 아버지에게 전화를 드렸다.
오전 11시가 넘어 갈 때 쯤 그의 부모님이 오셨다. 자세한 경과를 설명을 하였다.
그의 아버지는 나을 수 있다면 가보겠다고 하였고 팔을 포기하더라도 나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하루에 걸쳐 수혈을 받고 24시간이 지나면 응급실에서 퇴원을 해야한다고 하여 일단 퇴원을 하였다.
퇴원 후 집에 가려고 고시원에서 짐을 챙기러 갔다가 다시 몸을 무리하게 움직인 결과로 어지럼증이 찾아와 전대 병원 응급실에 다시 가야했고 또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그리고 오후 9시 퇴원을 하면서 성모병원에 간다고 약속을 하고서 소견서를 받은 후 그를 태우고 출발하여 11시 30분경에 그의 어머니와 함께 집에 내려주었다.
이후 그는 성모병원을 찾지 않았다.
그의 부모님과 기도원을 다녔고 그의 집을 다니러 갈 때마다 그의 악화되어가는 모습을 보았다.
2011년 2월 설을 맞아 그를 보러 갔다.
정말 어린아이의 백옥 같은 얼굴을 볼 수 있었다.
그를 보고 나오면서 며칠 남지 않음을 읽을 수 있었고 그의 이모와 함께 눈물을 많이 훔쳤다.
목사로서 정말 강권하여 병원에 데리고 가야했고 병원에서 여전히 현대의학으로는 않된다고 하면 데리고 나와 처음 진단 받을 때 40일 금식기도를 하면서 매달리듯 매달렸더라면 이렇게 허무하게 보내는 아픔을 갖지 않았을 텐데.....
목사로서 평생을 살아가면서 이 아픔은 하나님 나라에 갈 때까지 계속 될 것이다.
그들의 부모와 형제들과는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서.....
그의 길었던 2002년부터 2011년 3월 11일 까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받은 응답이다.
처음 불치의 상피 육종암이 그에게 다가 왔음을 들었다.
그리고 기도를 하는 중에 환상 가운데 본 내용이다.
2002년
그날 새벽 꿈속에 하얀 옷을 입었는데 배를 타신 분이었다.
그분이 배의 노를 가지고 한 사람의 손을 치는데 하필이면 손목 안쪽을 후려치는 것이었다.
손목에서 피가 흐르는데 그 피가 붉은 색이 아니고 노란 색이었다.
이후 그의 아버지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그의 할아버지가 동네에 있었던 무당의 북, 장구, 징을 치면서 무당을 돕는 역할을 하였고 배가 처음 진수식을 할 때면 배 위에서 굿을 하였다고 하였다.
그리고 이틀 째 되는 날 어떤 분이 뒷 모습을 보이며 가는데 그의 아버지를 향하여 저주를 퍼붓는 꿈이었다.
그 저주의 내용은 너 잘 될 줄 아느냐 였는데 꿈의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이 그를 향하여 목사님 목사님 하였다.
그의 아버지에게 혹시 목사님을 쫒아내셨느냐고 물었고 그분을 쫒아낼 때 그분에게 도움을 주지 못하였고 침묵했느냐고 물었다.
그의 아버지 대답은 당시 교회의 목사님을 교인들이 내어 보내자고 하였고 그 목사님을 내보내기 위해 목사님 모르게 다른 목사님을 찾으러 다녔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중에 그 목사님이 많이 서운해 하셨다는 말을 들었는데 그냥 침묵하였다고 하였다.
2010년 1월 11일
주일 아침 새벽기도를 가기 전 꿈을 꾸는데 갑자기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오늘 너에게 가는 아이는 꼭 네가 살려야 한다. 꼭 책임을 져야한다. 꼭 인도를 해야한다.는 음성을 들었다.
그리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하자고 마음을 먹었지만 누구인줄도 몰랐고 그가 올줄도 물론 몰랐다.
그런데 그가 처음으로 교회에 왔다.
점심을 먹으면서 콩나물 들어간 김치국이 맛있다고 한 그릇을 더 먹었다.
이 아이를 나에게 붙였나.... 계속 기도해 왔는데....
그의 이모에게 꿈 이야기를 하였더니 사명 가지고 기도하라고 하는 가 보다고 한다.
2010년 12월 10일
새벽 기도를 마친 후 교회에서 기도를 하는데 환상 중에 그에 아버지와 그의 야산에 올라가 두번 세번 올라다니면서 그의 묘를 쓸 곳을 찾았다.
교회에서 집으로 내려 가면서 집사람에게 그를 왜 매장을 한다고 하지?
젊은 사람, 결혼도 않했는데 왜 화장을 안하지?
다른 사람인가 보지하는 집사람의 말에 아니라닌까 하고 기도 노트에 적었다.
2011년 1월 21일
새벽기도를 마친 후 그의 기도를 하였다.
그러자 그가 찾아왔다.
온 들에 보리가 손으로 20센티 쯤 컷을 때 해맑은 어린 아이 같은 모습으로 찾아왔다.
그런데 그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이 모두 검은 옷을 입고 있었다.
어느 순간 묻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이숙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니 저 갈께요 하고 사라져 버린다.
그의 이모에게 이 애가 5월 쯤 되면 하나님께서 데려 가실라나...
근데 왜 검은 옷이지 검은 옷 입은 천사는 없는데 하였더니 기도 열심히 하라고 보여 주나보다고 하고 말을 막는다.
2011년 1월 30일 밤 3시 쯤 꿈을 꾸었다.
이 아이를 데리고 오신 분이 그에게 무섭게 하면서 데리고 왔다.
그러면서 6과 10의 숫자를 주셨다.
이 아이는 무슨 말을 할려고 하는데 데리고 오신 분이 무섭게 하니까 입을 열지도 못하고 끌려갔다.
그의 이모에게 아니 앞전에는 보리가 20센티쯤 이었는데 내가 잘못 알았나. 6월 10일 일까....
참 하나님 나라의 시간인데 어떻게 알겠어...
지나간 후에야 후회하고 회개하고 난리를 떨지 하면서 꼭 가봐야 하는데 하였더니 말하지 말고 기도나 하라고 한다.
2011년 2월 6일 새벽 3시경 꿈을 꾸었다.
그가 결혼식을 하는데 온통 검은 옷 천지이다.
신부의 드레스도 하얀색이어야 하는데 곧 검은색이고 8살 밖에 먹지 않은 키가 적은 어린이란다.
그런데 그가 계속 갈 수 없다고 버틴다. 신혼여행을 가야 한다는데 갈 수 없단다.
나에게 가지고 있는 하얀 수건을 달라고 그것이 있어야 검은 사람들을 떨궈낸다고 응석을 부린다.
지금은 내가 너를 만질 수 없으니 내일 줄께 하고 그를 보내려 하는데 그가 가지 않으려고 하고 그는 끌려 갔다.
꿈을 꾼 후 새벽기도를 올라오면서 그의 이모에게 결혼식은 죽는건데 오늘 그가 죽겠는데 하였다.
그리고 오전 10시경에 그가 죽음을 맞이하였고 그는 지금 병원에 산소호흡기를 차고 있다고 하였다...
아 이 땅에서의 삶이 2월 6일 까지였는데 천사가 가르쳐 주었는데 찾아가서 기도도 해 주지 못했구나.
그렇다면 병원에서 10일간 있다가 가겠구나...
그럼 호흡이 멈추는 순간은 15일 내가 그를 위하여 기도를 해 줄 수 있는 순간은 내일 밖에 없구나 내일은 꼭 가서 기도해 주어야지....
그날 밤 순천의 한국병원엘 갔다.
죽음을 맞이하였다는 꿈을 꾸었기에 새로울 것이 없는 나에게 들리는 음성은 하나님을 잃어버린 자들의 외침이었다.
천국 구경을 하고 일주일 안에 깨어날 것이다.....
기도원 원장이 선포하였다고 한다.....
그의 어머니도 아버지도 제정신이 아니었다.
이 죄인들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2011년 2월 8일 열심히 기도를 하는 중에
그가 그의 외가집에 왔는데 그는 외가집을 들어오지 못한다.
들어오라고 하여도 문 밖에서 이상한 미소를 지으며 간다고 하면서 회관 뒤로 돌아가 건너편 산으로 올라가 버린다.
병원을 찾아갔다.
병원이 순천 성 가롤로 병원으로 옮겨져 있었다.
소변이 나오지 않아 요독증이 생겨 옮겼단다.
처음 기도를 하면서 방언으로 영접기도를 시키는데 혈압이 갑자기 140으로 올라갔다.
기도하는데 간호사들이 와서 점검을 하느라고 기도가 잠시 멈추었다.
간호사에게 기도할때 였노라고 했음에도 그들이 계속 그곳에 있어서 기도에 집중을 못하고 말았다.
손을 잡고 열심히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되지 않는다.
아 않되겠구나. 집사람을 데리고 와서 둘이서 방언기도라도 해야하는데....
둘러보아도 기도를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견하지 못하여 포기를 하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기도원 원장이라면서 발 걸음을 막는다.
적어도 목사라면 이성적 판단. 도덕적 판단, 영적 판단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병원에 데리고 가서 치료할 수 없으니 하나님 앞에 맡겨 보라고 음성을 들었냐고
당신 기도하면서 응답받은 내용이 죽은 아이를 천국에서 하나님이 돌려보낼 거라고 선포했다는데 그랬냐고
..................
마음이 너무 아프다.
나라도 그 부모들의 마음을 움직여 병원에 데리고 가서 의사들이 현대의학으로는 않된다고 하면 생명바쳐 기도했어야 하는데 기도원 원장이나 탓하고 있으니.....
2011년 2월 9일 새벽기도를 하는 중에 찾아왔다.
왜 나에게 찾아왔느냐고 호통을 쳤다.
너의 부모에게 가라고...
안 그러면 잘사는 고모, 이모들 한테 가라고 하였다. 누나에게 가라고 하였다.
누구도 마음이 열려지지 않았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영적인 눈도 없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아버지 어머니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고 한다.
왜냐고 하니까 아버지 어머니도 마음이 너무 강하다고 한다.
예수님은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한다고 하였는데 그도 마음의 문을 열지 못하여 예수님의 방문을 거절하였다고 한다.
배가 몹시 고프단다. 밥을 달라고 하여서 옛날 시골에서 돼지를 팔려고 할 때 돼지에게 통 보리와 보리쌀 조등을 섞어 밥을 주었듯이 그렇게 두 솥을 주었더니 많은 잡귀와 함께 와서 먹고 갔다.
2011년 2월 10일
그가 검은 옷과 물에 젓은 더러운 옷을 입고 찾아왔다.
물 건너 가야하는데 너무 무섭다고....
이숙 어떻게 해주세요 하고 때를 쓴다.
성경 가방을 들고 나섰다.
큰 바다를 건너갔는데 다시는 나오지 못한다고 한다.
많은 영혼들이 대기를 하고 있는데 모두가 검은 옷을 입은 마귀들이 감시를 하고 있는데 그 영혼들은 모두 푸르스름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잠시후 케이블 카 같은 박스가 도착하는데 그 곳에서 줄이 나왔다. 그리고 영혼들이 그냥 그 줄에 자석에 쇠가 븥듯이 달라 붙었다. 그도 나의 등뒤로 숨을려고 하고 내 옷을 잡을려고 발 버둥을 쳐도 소용이 없었다. 무섭다고 나의 이름을 부르는 그도 그렇게 쇠 줄을 타고 돼지나 소가 반쪽으로 잘려서 도살장에 묶여있듯 영혼과 육체가 분리되어 쇠줄에 붙어서 7층 천으로 떨어져 가는 것을 보면서 슬피우는 그에게 그곳에 있는 영혼 7명 이름을 가르쳐 주었다.
그 이름들은 나에게만 그곳을 지키는 자가 보여주는 검은 표지의 책과 그 안에는 붉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그 책에서 몇 날이 못되어 그곳에 와야할 내가 아는 사람들의 명단을 볼 수 있었다.
이제 그는 갔고 어느 순간 하얀 연기가 피어 오르더니 그 연기속으로 바다를 건너온 영혼을 줄을 세우고 있었다.
나는 그곳을 나올 때가 되었다.
하늘 위에서 금으로 생긴 벌이 한마리 다가오더니 지상세계로 나가라고 하며 엉덩이에 침을 한방 주었다.
그 침을 맞은 후 눈 앞에 하얀 창이 나타나고 내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이제 우리들에게는 그 어떤 무엇으로도 막을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온다.
6일이후 지상의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갖지 못한 그의 영혼은
10일간 병상에서 마지막으로 부모님을 비롯 육신의 형제들에게 아픔을 남길 것이다.
그리고 그는 산에 묻힐 것이다.
그의 부모는 불신자보다도 더욱 불신을 간직하였기에 많은 자신들의 문제를 형제들에게 전가 시키는 순간이 올 것이다
그는 2011년 2월 15일 병원에서 호흡을 멈추었고 화장을 하지 않았으며 야산에 묻혔다.
이제 그를 위하여 기도의 끈을 놓는다.
그의 부모님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
아들을 살리려는 노력이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게 하였다.
의지하는 분이 하나님 이어야 함에도 기도원으로 옮겨 갔고 기도원 원장이 믿음의 대상이 되었나 보다.
나에게도 기도원 원장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으니 좋지 않을 것이라 한다.
기도원 원장의 명령을 거스르면 않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죽음을 맞은 아들을 두고 기도원 원장의 기도의 응답이라면서 죽음을 당한 아들이 천국 구경을 한 후 돌아올 것이라는 철저한 믿음을 아들이 죽은 후에도 계속할 것이다.
그 아들은 천국을 가지 못하였다.
무서워 떠는 그를 지옥엘 데려다 주었다.
그리고 그 곳에서는 육체의 죽음 이후에 그 영혼은 하늘로 옮긴 다거나 돌아오지 못한다.
천국을 갖노라고 빈말이라도 해 보고싶다.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잠깐이고 천국에서 아들이 없다고 찾아 헤메는 그의 어머니를 나는 볼 수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아니 지금 부터라도 기도원으로부터 벗어나서 그의 부모님이라도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믿음을 갖길 원하기 때문이다.
그를 위하여 많은 시간을 기도하였는데 마지막 순간에 사단에게 내어 주고 말았다.
순간의 실수가 아니라 좀더 적극적으로 그를 향하여 나아가지 못했다.
그의 부모님을 그의 부모님의 형제들은 모두 무서워 한다.
큰 딸이었고 그 언니의 도움을 받으면서 살아온 시간들을 그들은 기억하기 때문이다.
형제들의 마음을 다치지 않기 위한 노력들이 그를 살릴 수 있는 시간들과 기회가 많았음에도 살리지 못하고 그의 부모님들의 생각에 모든 것을 맡겼다.
형제들이 모이면 뒤에서는 언니가 잘못한다고 말하면서도 스스로는 누구도 말하지 못하였다.
우리들 모두는 회개하여야 하고 젊은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한 죄의 고백을 하여야 한다.
언제까지나 하나님의 용서가 예수님의 보혈의 피에 이르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