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행개요
- 산행일시 : 2010년 9월 5일 12:15~18:00
- 산행시간 : 5시간 45분
- 산행코스 : 청북중학교-2.55km-39번도로-1.53km-117봉-3.0km-39번도로/안중성당-2.1km-50.3봉-3.07km-46봉-4.58km-39번국도-3.07km-계두(왕좌)봉-0.43km-평택호
- 산행거리 : 20.3km(도상거리)
○ 기록들
이번 주 마라톤클럽 물당번 순번이 돌아와서 이래저래 서봉지맥의 나머지 구간 답사는 일요일 오후에나 가능하겠다. 내 입장만을 고려한다면 물당번 순번이 되었음에도 모른 체 한다거나 다른 핑계를 대고 건너 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동호회가 건강한 모임으로 발전하려면 함께 운동하지는 못하더라도, 순차적으로 돌아가면서 서비스하는 물당번은 꼭 참여해야 하겠기에 오전 시간을 비워 두었다.
정오가 가까워 올수록 햇볕이 강하게 내리 쬐었다.
그늘막조차 없는 서정리역 갈평육교 정류장에서 66번 마을버스가 오기를 30분가까이 기다렸다. 매시 50분에 도착한다고 했지만, 버스는 12시가 다 되어서야 도착했다. 도시에서 얼마 벗어나지 않았음에도 시골냄새가 물씬하다. 버스기사에게도 여유로움(?)이 묻어난다.
12시 15분, 청북중학교에서 평택호까지 남은 서봉지맥 여정에 들어갔다. 버스가 왔던 길을 따라 평택시노인요양원에서 우측으로 돌아 나와 길을 건넌 다음 현곡산업단지안으로 진입했다. 보도를 따라 현곡산업단지와 평택오성산업단지를 지나, 단지가 끝나는 지점에서 마을 안쪽 길을 따라 들어가자 이내 39번국도와 오뚜기식품 공장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마루금, 오뚜기식품이 공장이 보인다>
오뚜기 식품정문에서 오른쪽 후문으로 진행하여야 하겠기에 공장 정문을 바라보며 옹벽을 조심스럽게 내려선 다음, 길을 건너 후문쪽으로 올라가자 펜스를 따라 산으로 올라 갈 수 있었다. 태풍 곤파스는 가뜩이나 희미한 산줄기를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았다. 여기저기 잡목이 쓰러져 등로를 덮고 있었고, 쓰러진 가시덤불과 맹감나무가 등로 여기저기에 어지럽게 널브러져 있었다.
88봉 산불감시탑에서 내리막을 걸어가려는 순간 천지가 어두워지며 천둥소리와 함께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나뭇잎만을 적시는 상황이기 때문에 비옷을 입지는 않았다. 임도를 건너 오르막에서 왼쪽길로 접어들자 그나마 등로의 사람흔적이 뚜렷해졌다. 묘 1기를 두고 시계반대 방향으로 빙그르 돌아가는 동안 빗줄기가 굵어지며 폭우로 변했다.
비옷을 걸쳐 입었지만, 등로 여기저기에 가로막혀 있는 가시덤불과 잡목 때문에 비옷은 금세 누더기처럼 변해 버렸다. 숫제 입으나 입지 않으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밭을 개간하다만 마루금이 있는 공터는 잡풀로 뒤덮여 있었고, 정상에 가까이 갈 수록 칡넝쿨이 진행을 방해했다. 갑작스런 폭우로 밭일을 하던 농부가 부리나케 뒷수습을 하는 모습도 보였다.
<태풍 곤파스가 만들어 낸 지맥마루금>
갑자기 누군가 야구방망이로 후려친 것 같이 뒷통수가 아파왔다. 벌집을 건드렸는지 벌이 내 뒤통수를 쏜 것이었다. 순간 쓰러질 듯 현기증이 나고 찌릿한 통증이 느껴졌다. 무리를 지어 달려들어 쏠 것 같아 현장을 빨리 벗어나고 싶지만 칡넝쿨에 갇혀 그게 쉽지 않았다. 다행히 벌들은 그 한방으로 나를 사면해 주었고,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은 조금씩 진정이 되었다.
빗속에 트렉터를 가지고 묘지 입구를 정리하던 전주이씨 후손들 3~4명이 칡넝쿨 속에서 나오는 나를 보고 매우 놀라워 했다. 도로를 따라 갈 수도 있었지만, 최대한 산길로 진행하기 위해 들어섰는데, 벌에 쏘이고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말았다.
임도를 건너 다시 숲길로 들어서자 마루금은 뚜렷해졌다. 뚜렷한 마루금 덕분에 예상시간보다 훨씬 일찍 약사사에 내려설 수 있었다. 폭포처럼 쏟아지던 비도 잠시 주춤거렸다. 약사사에 들러 부처님전에 합장배례하고 아스팔트 포장도로 따라 고갯마루까지 진행한 다음 왼쪽의 임도로 들어섰다.
<약사사>
최근에 축사를 하다 그만 뒀는지 빈 축사에는 황량함만 감돌았고, 그 오른쪽으로 안중공설 묘지에는 비가 내리고 있음에도 간간히 성묘하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무심코 삼거리에서 도로를 따라 가다 나침반을 보니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집중하지 않으면 나도 모르게 엉뚱한 방향으로 빠지게 되는 경우도 많이 있었고, 이번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발길을 돌려 반대방향의 고갯마루로 올라가자 건너편에 에스오일 LPG 안중충전소가 있고, 길가에는 사상의학과 반룡한의원의 건물이 보였다. 다행히 한의원 마당에는 낡은 정자가 자리해 있었다. 천둥․벼락이 내리치고 다시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여 정자 안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폭우가 진정되기를 기다리기로 했다.
점심식사를 하고 과일을 먹으며 무료하게 기다려봤지만 진정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멀리에서나마 간간히 구름 걷힌 파란하늘을 보여주며 하루 종일 비를 뿌리진 않을 것을 예고했다. 1시간이 지나도 여기저기 섬광이 번득이는 낙뢰가 내려치고 폭우는 여전했다. 어차피 온몸이 젖어 버렸기 때문에 더 이상의 기다림은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행장을 단단히 수습하고 도로를 따라 나섰다.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지기 때문에 도로 우측으로 바짝 붙었다. 이제부터 상당한 시간동안 계속해서 도로를 따라 가야 해서 고속으로 주행하는 차량때문에 신경이 쓰였다.
경기도외국어교육연수원을 지나 학현사거리에 도착한 다음 38번 국도와 다시 만나 오른쪽의 서평택IC/평택항 방향으로 길을 바꿨다. GS칼텍스주유소와 웨스트호텔도 통과했다. 이처럼 길게 도로를 따라 진행하는 경우에는 이게 등산인지 여행인지 스스로 혼란스러워질 때가 많다. 갑자기 5년전 이틀 동안 비를 맞으며 한반도횡단 마라톤에 참가했던 모습이 클로즈업되면서 떠올랐다. 마치 5년전 그날로 되돌아간 느낌이었다.
<321번 지방도>
성해2리입구 삼거리 근처에 이를 무렵 길가에 고여 있는 물위를 그냥 터벅거리며 걷다가 갑자기 몸이 휘청할 정도로 꺾이며 오른쪽 발목을 접질리고 말았다. 3개월 전에 산악마라톤하다가 접질렸던 발목이 이제 겨우 완치되었는데.... 그 자리에서 끙끙 신음소리만 나왔다.
도대리입구 삼거리에서 38번 국도를 버리고 횡단보도를 건너 도대리/장수리 방향 321번 지방도로를 따라 가다보니, 어느 새 비가 개면서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뜨거운 햇볕이 내리 쬐기 시작했다.
시간을 보니 오후 6시 이전에 끝내기 어려울 것 같기도 하여 뛰어 가기로 했다. 그런데, 얼마 가지 못해 검정색 지프차가 내 길을 가로 막았다. 그리고 운전자가 나를 아는 체 했다.
차안에 승차한 사람들은 모두 회사동료였다. 대민봉사차 평택에 왔다가 나를 발견한 모양이다. 무척 당황되었다. 서봉지맥을 알 턱이 없는 동료들에게 왜 산길도 아닌, 이 도로를 따라 가고 있는지 설명하기도 난감했다.
<평택시 현덕면 도대2리>
동료들과 떨떠름한 이별을 하고, 도대2리 사거리에서 왼쪽 마을로 진입하자마자 첫 교차로에서 오른쪽으로 정면의 산을 보며 방향을 잡았다. 묘 1기가 있는 산능선으로 진입한 다음 임도를 잠시 따르다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들어가자 함평이공 가족묘 있는 곳에서 잠시 혼란을 불러 일으켰다. 도대체 사람 흔적이 보이질 않았다.
지형도상 표기되어 있는 대부금속 고물상에서 들려오는 기계소음을 따라 잡목을 헤치며 진행할 수 밖에 없었다. 겨우 임도를 만나며 대부금속 앞으로 나올 수 있었고, 이어 갈림길에서는 우측의 비포장도로를 따라 갔다. 멀리 서해대교가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서해 대교>
내가 가고 있는 이 길이 마루금인 것은 분명했다. 높진 않지만 제법 버젓하게 분수령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다시 임도로 들어서자 얼마 지나지 않아 오리사냥 식당이 있었고 차들이 고속으로 질주하는 39번 국도에 이르게 되었다. 평택호까지는 마지막 계두봉을 제외하면 이 길을 그냥 따라 가면 되었다. 차량들이 질주하는 모습에 지레 겁을 먹고,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구도로를 따르기로 했다.
현덕교차로를 지나 오른쪽으로 분기되는 포승/평택항 방면으로 내려선 다음 계두봉의 진입로를 찾아보지만 찾을 수가 없다. 어쩔 수 없이 올라가면서 찾기로 했다. 이외로 등로를 쉽게 찾았고, 봉우리가 낮아서 금세 정상에 이를 수 있었다. 정상에는 왕좌봉이란 이름으로 코팅된 종이표지가 걸려 있었다. 정상의 돌무더기가 용상과 닮아서, ‘王座’라고 했는지는 모르겠다.
<서봉지맥의 마지막 봉우리 계두봉(왕자봉)>
현충탑 앞쪽으로 내려선 다음, 18시 정각 평택호에 다다르면서 예정된 시간에 서봉지맥을 마칠 수 있었다.
몸을 씻고 버스 정류장을 찾아 우왕좌왕하다 보니 버스한대를 놓치며 40분을 기다려야 했고 평택역에서 다시 집까지 2시간 30분이 소요되었지만, 처음으로 본류가 아닌 지류 산줄기 하나를 마쳤다는 기분에 홀가분하고 행복한 느낌이다.
<평택호(아산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