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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而作是言 佛昔於波羅奈 初轉法輪 今乃復轉無上最大法輪
이작시언 불석어바라나 초전법륜 금내부전무상최대법륜
而作是言하사대 佛昔於波羅奈에 初轉法輪하시고
꽃을 이제 비 내리듯이 내리면서 이러한 말을 하대. 부처님이 옛날에 바라나에서, 이건 석가모니부처님입니다. 諸天子가 이제 말하기를, 부처님이 옛날‘설법(說法) 바라나(波羅奈), 성도(成道) 마갈타(摩竭陀), 입멸(入滅) 구시라(拘尸那)’이렇게 이제 우리 공양할 때 외우는 겁니다. 공양할 때 꼭 그거 부처님의 일생을 기억하면서 공양을 하라고 해가지고 그 공양할 때 우리 스님들이 공양할 때 외우는 게 그런게 있어요.
그 여기보면 바라나, 설법 바라나, 베나레스 요즘 말하면 베나레스인데 거기에서 이제 처음에 이제 설법을 하셨잖습니까? 初轉法輪 옛날에 부처님이 그 성도하시고 성도 마갈타, 마갈타에서 성도를 하시고 베나레스, 바라나에 와가지고 이제 初轉法輪이야. 법륜을 굴리시고, 오비구를 앉혀놓고 법문을 해잖습니까?
이게 지금은, 옛날이라는 그 석(昔)자하고 지금 금(今)자에 우리가 관심을 많이 좀 쏟아야 돼요. 昔於波羅奈하는 옛 석자
今乃復轉無上最大法輪이로소이다
요게 이제 아주 짧은 글이지만은 참 중요한 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이 성도해서 옛날에 바라나시에서 처음에 이제 법문을 했는데 그건‘고집멸도(苦集滅道)’사제법문을 했죠. 그 이제 성문들을 위해서 사제법문을 설하고 연각을 위해서 십이인연법문을 설하고 그 다음에 보살들을 위해서 육바라밀법문을 설했다. 요게 이제 공식이에요. 아주 불교의 공식입니다. 성문들을 위해서 사제법문 苦集滅道 사제법문을 설하고 그 다음에 한 차원 높여가지고 연각들을 위해서 십이인연, 인연의 도리를 깨달은 사람이니까 그래서 십이인연을 설하고 그 다음에 보살들은 보살행이 이제 중요하니까 육바라밀, 보살행을 보살들을 위해서 설했다.
그런데 이『법화경』자리는 뭐냐? 그 다음에 今 해놨잖아요. 無上最大法輪을 굴렸다. 이렇게하는데, 지금 무상 최고높은 최대의 법륜을 굴린 거. 이게 뭐냐? 그건 이제 부처의 삶. 성문, 연각, 보살의 길이 아니고 부처의 삶으로 귀결시키는, 부처의 삶으로 회향하는 그런 법문을 설했다. 그러니까‘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이런 이야기를 이『법화경』에서 하게 되었다 하는 그런 내용이 요 짧은 글귀속에 숨어있습니다.
처음에 바라나시에서 처음에 법륜을 굴려가지고 차츰차츰차츰 수준을 높이다가 이『법화경』열반에 들때, 죽음에 당도해가지고서 이제 더 이상 나아갈 때 없고 부처님도 더 이상 세상에 살 수가 없어. 나이도 많고 죽을때가 다다랐으니까 그러니까 최상의 법문을 설할 수 밖에 없다. 그 최상의 법문은 뭐냐? 일불승(一佛乘) 도리다.『법화경』도리다. 그것은 곧‘사람이 부처님이다.’라고 하는 그 사실을 깊이 깨우치게 하고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으로 받들어 섬길 줄 아는 그런 그 보살행으로 회향해야 된다라고 하는, 그게 이제 결국은 이제 이『법화경』가르침이죠.
39 爾時諸天子 欲重宣此義 而說偈言
이시제천자 욕중선차의 이설게언
爾時諸天子가 欲重宣此義하야 而說偈言하니라
이 시에 諸天子들이 이 뜻을 거듭펴려고 게송으로써 이야기합니다. 게송이 좀더 자세히 됐어요.
40 昔於波羅奈 轉四諦法輪 分別說諸法 五衆之生滅 今復轉最妙
석어바라나 전사제법륜 분별설제법 오중지생멸 금부전최묘
無上大法輪 是法甚深奧 少有能信者
무상대법륜 시법심심오 소유능신자
昔於波羅奈에
옛날 바라나에서, 베나레스 많이 가보셨죠? 거기 가면 이제 그 부처님 처음 법륜을 굴린데 이제 初轉法輪 기념하기 위해서 탑도 이제 높이 쌓아놓고 옛날에 큰~ 절이 있었던 터가 있고 그래요. 거기에는 의례히 또 간지스강, 恒河강. 항하강 이제 배타고 그 저기 저 화장하고 뭐 거기서 성수에 목욕하고 하는 걸 그걸 보는 코스가 딱 정해져 있지 않습니까? 그런것들 보고하는 바라나, 베나레스입니다.
옛날에 베나레스에서
轉四諦法輪하사 分別說諸法의 五衆之生滅이러니
사제법륜을 굴리고, 사제법륜이에요. 여기에, 苦集滅道 사제법륜을 굴려서 분별해서 諸法의 五衆의 생명 오온(五蘊). 오중이라고 하는 것은 오온이 생멸하는 것을 분별해서 설하시니, 고집멸도입니다. 그것을 설하시니
今復轉最妙인 無上大法輪하시니
지금에는 다시 가장 미묘한, 가장 미묘한 無上大法輪을 굴리시니.『법화경』을 굴리시니 이 말이여.『법화경』법문을 하시니
是法甚深奧하야 少有能信者니다
이 법이 매우 깊고 깊어서 능히 믿는 사람이 없습니다. 少자는 아주 조그마하다 이 말입니다. 능히 믿을 줄 아는 사람이 너무 적습니다.
그래요. 그러니까 저 앞에서 5000명이 자리에서 일어났죠. 아무리 귀에 못이 박히도록‘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다.’어떻게하더라도‘사람이 본래로 갖추고 있는 그 오묘불가사의한 그 본성에 눈을 뜨라. 그 본성은 정말 부처님으로서 조금도 손색이 없는 것이다.’라고 이걸 내가 수억만 번을 내가 이야기해도, 나도 사실은 이게 확 다가서지 않습니다. 솔직하게, 조금도 만분의 일의 어떤 그 여지도 없이 탁 믿어진다. 이건 사실은 그 잘 안돼요. 요게 그런 표현 아닙니까? 少有能信者 능히 믿는 사람이 적다.
자꾸 이야기를 하다 보니까 조금씩 젖어 들어요. 젖어 들고 자다 일어나서도“아 그건 틀림없다.”라고 이렇게 주장은 하고 그렇게 믿고 그래서 사람들을 또 이제 우리가 무시하지 못하고 사람들을 자꾸 이제 그런 입장에서 받들고 어떻게 하더라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어떤 사람도, 어떤 사람도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받드는 그런 그 마음이 차츰차츰 생겨요.
그리고 이제 근래에 내가 또 참 소중한 선지식을 만났는데, 그 분이 그야말로 늘 몇 번 전해드렸지만은 어떻습니까?‘이 세상에 내가 사랑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이런 정말 팔만대장경에도 없는 그런 그 말을 마음으로부터, 자기의 어떤 온 몸으로부터 우러나는 그런 표현을 한 스님 증엄스님. 참 훌륭한 선지식, 보살이에요.
그 분 내가 이야기를 이『법화경』끝날때까지 계속할 건데 부처님이나 관세음보살님이나 지장보살님이나 육조스님이나 임제, 황벽 그런 못지않는 내 어떤 그 불교적 사상에 큰 영향을 준 스님이거든요. 정말 그 분의 자비는 숨이 막힐 정도입니다. 교회가 없어서 기독교인들이 예배를 못보고 있는 교인들을 위해서 교회를 지어준 사람이에요. 숨 막히는 자비 아닙니까? 스님이 기독교인들을 위해서 교회를 지어준 사람이라니까. 불교의 어떤 그 궁극적 목표는 말하자면 거기입니다. 사실, 우리 모두가 그 정도돼야 돼요. 우리 모두가, 우리 모두가 그런 마음을 쓸 줄 알아야 돼요. 결국은, 대단하잖아요.
경전에 관세음보살이 그런 일 했다는 소리 못 들었어요. 근데 이 시대에는 그런 스님이 있어. 참 대단하잖아요. 기독교인들 예배보라고 교회를 지어줘. 참 숨막히는 자비죠. 그건, 그러니까 이 세상에 온 천하에 내가 믿지 못할 사람은 없다. 온 천하에 내가 용서하지 못할 사람은 없다. 그가 무엇을 하던지 무엇을 했던지 나는 다 감싸주고 용서한다 하는 거죠.
그 이제 사람사람이 부처 뭐 기독교를 믿든지 불교를 믿든지 거기에 아무 상관없이 그의 본성은 부처님이다. 기독교를 믿든지 유교를 믿든지 뭐 흰두교를 믿든지 회교를 믿든지 그의 본성은 부처님이다 라고 하는 이걸 발견한거야. 그걸 발견했으니까 그가 겉으로야 뭘 하든지간에 그 속에 정말 무궁무진한 가격의 다이야몬드가 반짝이고 있는 것을 그 스님은 보니까 그냥 그 분이 좋도록 해주는 거야. 그 분이 좋게. 그 사람들이 좋도록 해주는거요.
그러니까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참 드물죠. 少有能信者라는 말이 그 말입니다. 深奧 甚深奧 이 법은 매우 심오해서, 매우 심오해서 능히 믿는 사람은 참 드물다. 아주 적다. 사실 그렇거든요. 그러니까 제대로 그런 그 인간의 소중한 가치를 본 사람은 그런 행동이 나옵니다.
41 我等從昔來 數聞世尊說 未曾聞如是 深妙之上法 世尊說是法
아등종석래 삭문세존설 미증문여시 심묘지상법 세존설시법
我等皆隋喜 大智舍利弗 今得受尊記 我等亦如是 必當得作佛
아등개수희 대지사리불 금득수존기 아등역여시 필당득작불
於一切世間 最尊無有上
어일체세간 최존무유상
我等從昔來로 數聞世尊說이나 未曾聞如是 深妙之上法이니다
우리들이 옛날부터 자주자주 세존이 하시는 말씀을 듣기는 들었으나 이와같은, 이『법화경』과 같은 깊고 오묘한 최상의 법은 아직 듣지 못했습니다. 그랬어요.
그 동안 부처님에게 70년세월을 그러니까 부처님이 성도하시고 49년설법이라면은 40년동안, 40년동안 뭐 무수히 많은 설법을 들었지만은 이『법화경』의 가르침같은 이런 설법은 못 들었다. 이런 말입니다. 이『법화경』설법이라는게 한 마디로 요약하면은, 사람의 소중한 가치 거기에 눈뜨고 그 다음에 관세음보살과 같은 저「보문품」에 나오는 관세음보살과 같은 그런 자비행으로 회향하는 그런 가르침은 미처 듣지 못했습니다.
世尊說是法하시니 我等皆隋喜니다
세존께서 이러한 법을 설하시니 우리들은 다 따라서 기뻐합니다.
大智舍利弗이 今得受尊記하시니
큰~ 지혜를 가지신 사리불께서 지금 수기를 尊記를 받고, 얻어서 받고. 존기라고 하는게 佛記죠. 부처님이 된다고 하는 그런 높은 수기를 받으시니
我等亦如是하야 必當得作佛하와
우리도, 아 사리불이 받는데 우리도 반드시 받을 것 아닙니까? 이런 말입니다. 我等亦如是 우리들도 또한 이와 같아서 반드시 마땅히 부처를 지을 것입니다. 뭐 사리불이 되는데 우리라고 못할 까닭이 뭐 있습니까? 탁 믿는거요.‘아 사리불도 수기 받는 거 보니까 우리들도 충분히 받겠구나. 사리불보다 못한 게 뭐 있나? 항상 같은 입장인데’이렇게 생각해. 그게 참 잘 생각한 거거든요.
그래서 결국은 요렇게 요렇게 자꾸 사람들의 마음을 이렇게 열게 접근하도록 이렇게 이야기를 해가서 그야말로 마음이 열리고 열려가지고‘아~ 정말 뭐 사람이 그대로 부처님이구나!’하는 그런 것을 확실히 믿을 수 있도록 저기 상불경보살까지 가면은 그렇게 이야기가 되지요. 제바달다까지도 결국은 부처님이라고 인가를 하니까 보통 사람들이야 더 말할나위 있겠나 이렇게 발전해갑니다.
於一切世間에 最尊無有上이니다
세간에 있어서 가장 높고 이 보다 더 높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법화경』의 가르침이야말로 정말 뭐 이 세상에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그런 그 최상의 가르침이다.
42 佛道叵思議 方便隨宜說 我所有福業 今世若過世 及見佛功德
불도파사의 방편수의설 아소유복업 금세약과세 급견불공덕
盡廻向佛道
진회향불도
佛道叵思議라 方便隨宜說이시니
부처님의 도라고 하는 것은, 불가라고 하는 파(叵)자입니다. 불가 파자에요. 불가사의라. 佛道는 不可思議라. 그래서 방편으로 편의를 따라서 설했다. 그래가지고 온갖 이야기가 많아가지고 이게 뭐 가닥을 잡을 길이 없는거죠.
왜냐하면 근기에 맞춰서, 고 작은 근기를 깨우쳐가지고 조금 끌어올리고 조금 끌어올리고 이렇게 하다보니까 별의별 이야기가 많은 거야. 거짓말도 있고 없는 말도 있고 내 이야기도 있고 남의 이야기도 있고 지어낸 이야기도 있고 뭐 거의가 지어낸 이야기죠. 그래가지고 어떻게하더라도 눈을 열어줄려고, 그게 이제 부처님의 자비죠. 그것도, 그런 이치를 가르쳐주기위해서 그런 자비한 방편으로써 그렇게 합니다.
자비방편으로써 편의를 따라서 설하시니
그게 이제 참 예를 들어서 무슨 부처님 앞에서 인등키면은, 인등키면은 지혜가 나고 머리가 좋아진다. 그것도 뭐 좋은 방편이죠. 또 그런 그물에 걸릴 중생들도 많으니까 어쨌든 그걸로 인해서 차츰차츰 정말 불교의 진실에, 정법에 눈을 뜨는 하나의 사다리 역할만 해준다면 그건 좋은 방편이다. 이렇게 이제 보는 거죠.
我所有福業과 今世若過世에 及見佛功德을 盡廻向佛道하노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福業과 지금 세상이나 또는 과거 세상에, 옛날 부처님을 친견한 그 공덕을 모두 불도에다가 회향합니다.
佛道 부처의 길. 불도라는 게 뭡니까? 부처의 길, 부처의 삶의 길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전부 이게 뭡니까? 내가 가지고 있는 복 福業하고 금세에 닦은 거나 과거세에 닦은 거나 그 부처님을 또 불교를 만난 그 공덕, 부처님을 본 그 공덕을 모두 불도에 회향합니다. 이렇게 했어요. 이게 이제 무슨 뜻인고 하면은?
우리가 불교하고 인연맺은 것이 얼마나 여러 종류입니까? 뭐 부모가 돌아가셔서 49재를 지내기위해서 부처님하고 인연이 됐고 아이들이 학교가는데 혹시라도 뭐 시험이라도 더 잘칠까해서 기도를 한 번 했던게 인연이 됐고 선망부모를 천도한다고 천도하면 뭐 사업도 잘되고 뭐 후손도 좋단다 하는 그 말 듣고서 이제 천도하는데 예를 들어서 한 번 인연을 걸었고 등등 얼마나 여러 가지요. 아니면 뭐 옛날에 그런 이야기도 있었어요. 보면은,
그 저기 군에 가면은 그때는 또 잘 사고도 많이 나고, 전쟁도 한참하던 때 기피자가 많았어요. 6.25직후에, 분위기가 아직 전쟁분위기일때 그때 기피하기위해서 절에 들어왔다. 그런 말 많이 들었어요. 스님들 또 그런 사람들도 있었고 솔직하게, 어쨌든 그러한 인연으로 들어왔던간에 부처님하고 인연이 된, 아니면 뭐 절에 뭐 가져갈게 없을까? 하는 그런 엉큼한 마음으로 부처님하고 인연이 되었든, 아니면은 뭐 부처님한테 초키는 초공양에 무슨 종업원으로 일을 했든, 아니면 목탁깎는데 나무를 베주는 사람이 되었든, 어떤 작은 인연이 되었더라도 결국은 盡廻向佛道 이게 중요한 거요. 전부 불도로 회향한다.
불도로 회향하는 길로 전부 이렇게 그야말로 많고 많은 강물이 전부 바다를 향해서 모여들듯이 우리들이 부처님하고 작은 인연, 큰 인연, 좋은 인연, 나쁜 인연 뭐 무슨 인연이 되었든지간에 그런 그 인연들로해서 전부 결국은 부처의 삶으로 회향합니다. 이렇게 됐지않습니까?
참 내용이 아주 훌륭한 게송입니다. 이게 이제 석제환인과 제천자들이 게송을 설한 것으로 그렇게 돼있죠.‘諸天子 欲重宣此義하사’천자들이 한 게송인데, 요 그 게송이 모든 우리 불자들의 마음이죠. 그대로, 불자들의 마음을 대신해서 이제 표현을 했고 또 부처님이 처음 성도해서 바라나에서 법륜굴리고 뭐 그러다가 결국은 이렇게『법화경』까지 이르러서 이런 훌륭한 법문을 하게 됐는데, 참 이걸 정말 믿고 받아 들이는 사람은 너무너무 적습니다. 워낙 법이 크니까.
그래서 저 앞에서 5000명이나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는 그런 예도 있었다. 그러면서 결국은 우리가 이러한 모든 작은 인연들도 전부 부처의 삶으로 모두 회향한다 하는 이런 내용이 요 게송 전체속에 압축돼있습니다.
43 爾時舍利弗 白佛言 世尊 我今無復疑悔 親於佛前 得受
이시사리불 백불언 세존 아금무부의회 친어불전 득수
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
아뇩다라삼먁삼보리기
爾時舍利弗이 白佛言하사대
그때 사리불이 부처님께 고해 말하대
世尊이시여 我今無復疑悔호니
세존이시여 내가 지금 다시는 더 이상 의심하고 뉘우침이 없으니, 없습니다.
親於佛前에 得受阿縟多羅三藐三菩提記니다
친히 부처님 앞에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 수기를 받았습니다.
44 是諸千二百心自在者 昔住學地 佛常敎化 言我法 能離生老病死
시제천이백심자재자 석주학지 불상교화 언아법 능리생로병사
究竟涅槃
구경열반
是諸千二百心自在者는
여기에 있는 이, 1255인이잖아요? 보통『금강경』에 1250인으로 더불어 이렇게했는데, 늘 부처님을 항상 따라다니는 사람들입니다. 그게 기본 부처님 제자들이에요. 그 사람들, 마음이 자재한 사람들은
昔住學地에 佛常敎化하사
옛날에 學地에 있을때, 學地 한참 배우고 있을때 이 말입니다. 부처님이 항상 우리를 가르치사
言我法은 能離生老病死하고 究竟涅槃이라하시거늘
말씀하사대 내 법은 능히 生老病死의 그런 고통을 떠나고 究竟에 열반한다 라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거여.
이 사리불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사리불이 부처님 옛날에 늘 그랬지 않습니까? 생노병사를 떠나고 구경열반에 이른다. 구경열반에 이른다라고 이렇게 했거든요.
45 是學無學人 亦各自已離我見 及有無見等 謂得涅槃 而今於世尊前
시학무학인 역각자이리아견 급우무견등 위득열반 이금어세존전
聞所未聞 皆墮疑惑
문소미문 개타의혹
是學無學人도
그래서 學無學인들도, 갓 배우는 사람 無學人 다 배운 사람 그런 말입니다. 學과 無學의 사람들도
亦各自已離我見과 及有無見等으로
또한 각각 스스로 그래서 나라고 하는 고집 그리고 有無見 있다 없다 나는 남자다 여자다 뭐 선이다 악이다 하는 그런 그 소견을 다 떠났으니라. 이미 떠났으니라.
謂得涅槃이러니
그래서 말하기를 열반을 얻었다 라고 하더니, 열반을 얻다라고 하더니
而今於世尊前에 聞所未聞하고 皆墮疑惑이니다
지금의 세존앞에서, 옛날에는 우리가 그런 수준이었는데 지금 세존앞에서 미처 듣지 못했던 가르침을 듣고 다 의혹에 떨어졌었습니다. 이런 말이죠.
이게 무슨 말인고 하면은?『법화경』이전 불교하고『법화경』불교하고 그 차이점을 이야기하는데『법화경』이전 불교는, 그러니까 보통불교는 생노병사의 고통을 떠나서 涅槃 아무 번뇌도 없고 고통도 없고 편안한 그런 자리. 그래서 有餘涅槃하면 번뇌가 없는 그 자리라고 이야기를 하고 無餘涅槃은 죽어버린 상태를 무여열반이라고 그래요. 그래 완전히 편안할려면 죽어야 편안하지. 안 그렇겠어요. 그래서 무여열반이라는 말은 죽음을 뜻합니다. 아무것도 남는게 없는 열반. 그 아무리 도를 통했다하더라도 이 몸뚱이 가지고 있으니까 열반의 입장에서 보면은 그게 온전한 열반이 아니에요. 그래서 有餘涅槃 아직도 남아있는, 몸뚱이가 남아있는 열반이다 이거여. 도인도 계속 배고프고 뭐 춥고 그렇죠. 이 몸 거둬줘야되니까 그 아직도 문제가 있잖아요. 그래서 무여열반하면 죽어버린 뒤를 무여열반이라고
소승교리에서는 그런 말들이 많아요. 그런 이야기가 있는데, 그게 완전한 가르침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뭐 있다 없다 하는 고런 그 나의 그 소견에 집착해있다가 그것만 떠나버려. 상대적인 그것만 떠나버리면은 그런대로 편안하다 이거여. 그런대로 열반을 얻었다. 謂得涅槃 열반을 얻은 것이다 라고 그렇게 우리가 알고 살았다 이 겁니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지금와서는 지금와서는 그게 문제가 아니고 네 한 사람 편안하게 사는 거, 있다 없다라고 하는 소견 떠나는 거, 너다 나다하는 그런 그 집착 떠나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야. 그거 그대로 둬. 내가 있고 네가 있는데 그대로 두고 살자 이거지. 그대로 두고 본래로 우리는 부처님이라고 하는 이 사실에 눈을 떠라 이겁니다. 차원이 다르죠.‘
그래 그 전에는『법화경』이전에는 너다 나다 하는 그런 그 분별집착을 떠나는 것을 위주로 해서, 너다 나다 하는 분별이 없으면 편안할 거 아닙니까? 편안하죠. 선도 악도 떠나버리면 편안하죠. 열반이지 그야말로. 그런데 그건 아주 소극적인 불교라. 소극적인 불교 그러니까 보다 더 적극적인 불교는 여기『법화경』에서 말하는 너다 나다 있다 없다 그거 그대로 둬. 현재 눈에 보이는 거 그냥 두고 모든 사람을, 모든 사람을 부처님으로 보는 그런 차원으로 살자 이겁니다. 그게 이제 聞所未聞이야. 듣지 못했던 것을 듣고
이상하다 이거여. 번뇌망상이 있는 그대로 부처님으로 본다. 그 의문이 있죠? 온갖 탐진치 삼독과 번뇌망상이 있는 그대로 부처님으로 본다라고 하니까 이게 아주 그 정말 못 듣던 소리고 정말 궁금한 이야기야. 뭐가 어떻게 된 심판인지 모르겠는거야. 번뇌가 떠나고 선하기만 하고 악한 것은 전혀 없고 이래야 정말 성인의 길인줄 알았는데,『법화경』에 와선 그게 아니거든요. 부처의 삶을 여기선 숭상하는 것이지. 뭐 너다 나다 있다 없다 이런 데 떠나는 거 그거 문제삼지 마라 이겁니다.
그러면 이제 그게 어떻게 이제 또다른 불교가 되느냐? 그러면 뭐 나쁜짓도 하고 하는 거 이런 것들도 문제 안 삼는데, 그런것하고 상당히 우리가 납득이 안되는 그런 그 문제가 남아요. 이렇게 이해하면은 그런것이 이제 쉽게 풀립니다.‘우리 본성은 본래로 부처다. 우리 중심, 중심자리는 본래로 부처다. 그것을 우리가 예의주시하라.’
예를 들어서 어떤 도둑이, 도둑이 어떤 스님한테 돈이 있는 줄 알고 밖에 와서 서성거려. 틈만 노리는 거라. 그래서 이제 스님이 알고는 그날 들어온 佛事金 그걸 이제 알고 왔으니까, 그걸 전부 이제 문을 열고 보따리에 싸가지고 던져줬어. 도둑이 가만히보니까 보따리가 하나 툭 떨어지거든, 나는 지금 그걸 훔칠려고 지금 노리고있는데 아니 그거에다 돈을 한 보따리를 싸가지고 창문을 열더니 스님이 툭 던져주거든, 그래 열어보니까 전부 돈이라. 자기가 훔칠려고 했던 돈이 보따리에 툭 떨어졌다구요. 그래 스님 가져가라고 던져준거야. 그러니까 그 도둑이 하도 이상해가지고 그걸 들고 방에 들어왔어.
들어와가지고“이게 어떻게 된 심판이냐? 스님 어떻게 돼서 이렇게 도둑을 도둑질못하게 해야되고 도둑을 잡아서 경찰에 신고를 하던지 해야되는데 스님 어떻게 도둑질을 이렇게 쉽게 하도록 하느냐?”그래 물었어요. 그러니까“네가 도둑질하는 거 나는 못하게 안한다. 불교는 도둑질하는 거, 도둑질못하게 하는 게 아니다.”이런 이야기 처음 듣죠? 도둑질하지 말라는 소리는 많이 들었어도, 도둑질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잘 들으세요. 여기 이제『법화경』을 이해하는 하나의 열쇠라. 불교는 도둑질하는 것을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도둑질해도 괜찮고 뭘 해도 괜찮은데 도둑질하는 그 놈을 좀 주시해라. 도둑질하는 그 놈을 주시해라. 중심이거든요. 내 중심. 네가 뭘 하든지 하는 그 놈을 잘 살펴라. 그게 불교다 그랬어요. 나는 그것밖에 모른다. 도둑질하지 말라는 거 나는 불교라고 생각 안한다. 도둑질하는 그 놈을, 도둑질하라 마라 그게 아니고 도둑질하는 그 놈을 주시해라. 잘 한 번 살펴봐라. 그랬어요. 그럼 도둑질도 잘 될거라. 그랬어요. 아주 네 하는 일도 잘 될거다 그랬어.
그래서 이 도둑이 인제 돈을 좀 가지고 집으로 갔어. 가가지고 도둑질도 잘 되고 뭐 뭐든지 네 소원이 잘된다니까 가가지고는 이제 그때부터 그 생각을 하는 거야.‘내가 도둑질한다. 이제 오늘은 어느 아파트에 가가지고 어느 집을 털어야지.’하고 딱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하는 것을 내가 주시하는 거야. 계속 주시를 하는 거라. 내 행동을 계속 주시하는 거야. 중심을 주시하는 거. 그건 이제 나머지는 주변이잖아요. 내 행동은 주변이라. 행동하게 하는 그 자체는 중심이야. 내 중심이라구요. 그게 주인이야. 隨處作主할 때 주인이야. 그 주인을 이렇게 보는 거라. 우리가 하면서도 볼 수 있잖아요. 내가 하는 행동 볼 수 있잖아요. 얼마든지 볼 수 있거든요. 그러니까 계속 보니까 이게 뭐가 안되는 거야. 도둑질도 안되고 아무것도 안돼.
그 도둑이 자기 도둑질하는 것을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으니 이게 도둑질될 턱이 있나 그게. 될 턱이 있겠어요 그거. 또 하나의 자기가 도둑질하고 있는 자기를 이렇게 보고 감시하고 있는거야. 감시하고 계속 이렇게 감시하고 있으니 그 놈의 도둑질할려고 하는 내가 도둑질될 턱이 없는거야 그게. 그래가지고 3일후에 이제 와가지고“스님 그 한 번도 내 3일동안 도둑질할려고 계획세웠던 일 하나도 안 됐습니다. 이게 어떻게 된 심판입니까?”하고 왔어. 그래서 이제“그래 그거다. 바로 그거다. 그것만 네가 제대로 꿰뚫어보면은 천하가 다 네것이 될것이다. 천하가 다 네꺼될건데 이집 저집 가가지고 돈 몇 푼 털어서 뭐하겠느냐?”
그래서 이 도둑이 그때사 정말 귀가 열렸어요. 스님이 하는 말에 귀가 열리고는 정말 훌륭한 이제 수행자가 돼서 계속 이제 마음찾는 일, 마음찾는 일에 재미를 붙여가지고는 그걸 뭐 찾고나니까 아무것도 세상에 부러울 게 없는거야. 그보다 더 보물이 없고 그보다 더 훌륭한 게 없는거라. 이 세상에 제일 보물, 제일 훌륭한 것을 얻어버린거야. 이 사람이, 그 참 도둑질을 잘 했지. 이 사람이 와가지고, 그 도둑질할려과 왔다가 그런 큰 소득을 얻은거라.
여기서 우리가 눈 떠야 할 게 그겁니다. 도둑질하지 말라 하지 않는다. 그 우리가 도둑질아니다 하더라도 도둑질 비슷한 거 많잖아요. 우리하는 짓 중에, 얼마나 많습니까? 근데 그 하지말라하면 어떡해. 참 갈등많아요. 불교 잘못가르쳐놓으면은 불자들이 갈등하기 참 많은거야. 갈등할 일이 너무 많아. 무슨 뭐 살생하지 말라. 뭐 하지마라. 뭐 하지마라. 얼마나 하지말라는 거 많습니까? 그게 이제 저급한 불교에서 그러거든요. 아주 낮은, 수준낮은 불교에서는 그렇게 합니다.
그래 수준높은 불교 정말 제대로 된 불교는 우리가 行住坐臥 語黙動靜 일상생활을 살아가면서 피할 수 없는 일이 엄청 많다. 그런데 그것을 뭐 이것 저것 가리지말고 무엇을하던지 하는 그 사람을 주시하라. 도둑질하더라도 네 도둑질하는 것을 살펴봐라 이거여. 그 결국은 마음찾는 일 아닙니까? 간단하게 우리가 들어온대로 표현하면, 마음찾는 일인거여. 내 중심을 주시하는 일이죠. 내 중심을 주시해서 내 중심이 정말 손에 딱 잡히니까 그걸 견성(見性)이라 하는 거지. 정말 마음의 위대함을 알게되니까 알게되니까 더 이상 뭐 아무런 문제가 없는거지. 아무런 문제가 없어져 버리는 거야.
그땐 천하를 다 얻은거지. 굶어도 천하를 얻은 것이요. 먹어도 천하를 얻은 것이고 일체문제가 다 거의 해결되버리고 그래서 육조스님도 그 가난한, 가난한 촌백성으로 그렇게 살다가 깨닫고 나서 그런말 했잖아요. 더이상 무엇을 봐라랴.‘하기자성(何其自性) 본자구족(本自具足)’더 이상 무엇을 봐라랴. 내 마음속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거늘, 내 자신속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거늘 내가 더 이상 무엇을 봐라랴. 이렇게 그 표현했다구요. 本自具足이라고, 何其自性 本自具足 멋지잖아요? 더 이상 무엇을 봐라랴. 내 자신속에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거늘, 그렇게 느낀 것입니다. 그렇게 표현을 했는데
그 도둑도 그 도둑도 정말 그 자성 모든 것이 다 갖추어져 있는 도둑질하는 그 놈을 예의주시하라고 해 놓으니까 순진해가지고 말 그대로 들은거야. 그대로 주시해보는 거. 내가 하는 행위를 그냥 보니까 어느날 그게 뚜렷이 나타나버린 거죠. 그것도 우리는 주시하지 안하고 그냥 경계에 끌려다니는 거야. 경계 그 나와버리고, 경계 조금 앉아서 참선하면은 그때는 조금 잡힌듯 하다가 그냥 온갖 경계 일어서기도전에 앉아가지고 뭐 그냥 여기저기 조선팔도 다 돌아다니잖아요.
그게 이제 주변으로 놀아난다. 이러는 거요. 주변으로 놀아난다. 중심에 있지않고 주변으로 놀아난다. 그 중심과 주변 그걸 잘 우리가 분별해서 이해를 하면은‘아 불교공부가 이런 것이구나.’하고 싶게 알 수 있습니다. 알고보면 쉬워요.
여기이제 듣지 못하던 것을 듣고서 모두 의혹에 떨어졌습니다.
46 善哉世尊 願爲四衆 說其因緣 令離疑惑
선재세존 원위사중 설기인연 영리의회
善哉世尊하 願爲四衆하사 說其因緣하사 令離疑惑케하소서
선재라 시존이시여. 훌륭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원컨대 사부대중을 위하사 그 인연을 좀 설명해서 하여금 의혹이 떠나도록, 의혹이 없도록 좀 해주십시오 라고 이렇게 이제 부탁을 합니다.
그 이제 사리불이 그동안 공부해온 것하고 지금『법화경』에서 정말 그동안 못들었던 거 이거‘모든 사람은 본래로 부처다.’라고 하는 이 사실이 도대체가 마음에 썩 다가서지 않는다. 사부대중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까 그것을 좀 더 자세하게 인연을 설해가지고서 우리들 마음속에 의혹이 없도록 좀 해주십시오.
그래 아까 이야기하고 연관시켜서 본다면은 그동안 나쁜짓하지말고 뭐 온갖것 있죠? 무슨 탐심도 내지말고 진심도 내지말고 치심도 내지말고 전부 이제 뭐 거짓말도 하지말고 살생도 하지말고 하지말란 소리 많거든요. 그게 상당히 도덕적이고 누구에게나 납득이 되는 좋은 성인의 말씀이잖아요. 그런데『법화경』에 와서는 그게 아냐. 그런거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고 하는 그 놈을 예의주시해라. 하는 그 놈의 가치. 그 자체의 무궁무진한 그런 가치.
저기 금정산 덩어리보다도 훨씬 더 큰 수억만 배 다이야몬드와 같은 그와같은 소중한 가치에 눈을 떠라. 이런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회삼귀일이죠. 일이라는게 일불승아닙니까? 모든 사람이 부처님의 그런 그 존재다고 하는 그런 내용입니다.
그래 이게 이제 아까 그 천왕의 게송에도 있었지만은 少有能信者 정말 이것을 이러한 이치를 능히 믿는 사람은 너무 적습니다. 참 드뭅니다. 이게 정말 맞는 말이에요. 그렇다고‘아이고 그렇게 드물다는 데 내가 되겠나?’이렇게 생각하지 말고 끊임없이 쓰고 읽고 쓰고 읽고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인터넷에 들어가가지고 또 듣고 또 듣고 또 읽고 쓰고 읽고 쓰고 그렇게 하면은 어느날 지혜의 눈이 활짝 열리게 돼있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거기까지에요.
그러니까 그 문제에 게을리하지만 않으면은 충분히 길이 있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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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今乃復轉無上最大法輪이로소이다..고맙습니다. _()()()_
我所有福業(아소유복업)과 今世若過世(금세약과세)에 及見佛功德(급견불공덕)을 盡廻向佛道(진회향불도)하노이다...내가 가지고 있는 복의 업과 지금 세상이나 또는 과거 세상에 옛날 부처님을 친견한 그 공덕을 모두 다 불도에 회향합니다. 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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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_()()()_
今復轉最妙인 無上大法輪하시니...[부처의 삶으로 회향하는 법문을 설하다,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다'하는 이야기를 법화경에서 說하게 되었다][一佛乘의 도리]...화풍정 님! 수고하셨습니다.._()()()_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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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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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나무묘법연화경-
감사합니다_()_
聞所未聞........
그런거 하지 말라는 소리 아니고 하는 그 놈을 예의주시해라. ...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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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잘 보았읍니다
끊임없이 쓰고 읽고 쓰고 읽고 듣고 또 듣고 또 듣고 인터넷에 들어가가지고 또 듣고 또 듣고 또 읽고 쓰고 읽고 쓰고 ... _()_
고맙습니다 _()()()_
고맙습니다 _()()()_
감사합니다.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2번째 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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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나무묘법연화경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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