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국의 수도, 과거 영광이 남은 ‘크라쿠프’
14~16세기 말까지 폴란드 왕국의 수도로 번영을 누린 크라쿠프(Krakow)는 신성로마 제국의 일부였던 보헤미아의 프라하, 오스트리아의 빈과 함께 중앙 유럽 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폴란드 대부분의 도시가 2차 세계대전으로 파괴됐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독일군 사령부가 이곳에 설치되어 전쟁의 피해를 벗어날 수 있었다고 한다. 덕분에 1978년 도시 전체가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받았다.
현대적인 바르샤바와는 다르게 고즈넉한 중세 시대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 크라쿠프는 폴란드의 과거 영광이 그대로 남아 있는 곳이다. 중앙시장 광장에서 눈에 띄는 크림색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인 ‘직물회관(중세 시대 직물을 거래하던 교역 장소)’을 중심으로 카페와 상점들이 늘어서 있다.
광장에는 갖가지 행위예술가들이 다양한 분장과 의상으로 지나가는 사람들의 눈길을 끌며 다채로운 이벤트와 공연을 펼치는 활기찬 모습이었다. 크라쿠프 구시가지에서 으뜸인 문화유산은 폴란드 왕의 주거지인 ‘바벨 성’이다. 비스와 강가 언덕 위에 자리한 성 안에는 황금으로 된 둥근 지붕이 인상적인 대성당과 폴란드 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왕들의 주거지였던 왕궁이 위용을 갖추고 서 있다. 폴란드인들의 과거 화려했던 왕국의 모습들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현장
크라쿠프 바벨 성 남동쪽에 위치한 카지미에슈 지구는 영화 ‘쉰들러 리스트’의 무대인 유대인 게토가 있었던 곳이다. 이 영화는 유대인을 주제로 한 어떠한 영화보다도 강렬해서 영화를 본 사람들이라면 그 비극적인 아픔의 역사에 눈물을 흘리고 또 흘렸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전 폴란드에는 유럽 최대의 유대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 33만 명 중 20%에 해당하는 6만 명이 크라쿠프에 살았다. 독일 나치에 의해 전쟁 중 이곳에 유대인 게토가 만들어져 15000명이 남겨졌고 나머지 유대인들은 수용소로 보내졌다고 한다.
오스카 쉰들러(Oskar Schindler, 1908~1974)는 처음엔 열성적인 나치 당원으로 유대인의 그릇 공장을 인수하여 사업을 확장하였지만 유대인 학살 소식을 접하면서 양심의 가책을 느껴 그들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지금 쉰들러 공장은 유대인 학살에 대한 기록을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바뀌었고, 스필버그 감독이 유대인 게토 지구에서 영화 촬영을 하기에 이르렀다. 쉰들러 공장 입구에 살아남은 유대인의 인물 사진이 빽빽이 전시되어 있다. 수많은 사람이 수용소로 끌려가 죽음을 맞이했으나 이 사진 속을 인물들은 정말 극적으로 살아남은 이들이다.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4km 떨어져 있는 아우슈비츠(Auschwitz)는 폴란드어로 오시비엥침이라 불리는 곳이다. 이곳은 유럽 최대의 유대인 수용소로 28 민족, 150만 명이 넘는 숫자가 죽임을 당한 곳으로 유명하다. 수용소 입구에 쓰여 진 ‘노동하면 자유로워진다’라는 독일어 문구는 너무나도 역설적인 표현이다. 자유라는 말이 이렇게 불행한 상황에 쓰여 질 수 있는 것인지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다. 짐짝처럼 기차에 실려 온 유대인들은 이곳 넓은 공터에서 여자, 남자로 구분되어 비좁은 수용소로 이동해 가혹한 노동과 굶주림, 고문에 허덕이다 독가스 실험대상이 되어 죽어갔던 것이다. 그들의 참상은 차마 눈으로 보기가 어려울 정도다.
목조 가옥이 늘어선 ‘자코파네’
무겁고 아픈 역사 이야기를 벗어나 폴란드의 아름다운 자연 휴양지 자코파네(Zakopane)로 떠나보자. 자코파네는 폴란드의 최남단 2000m가 넘는 산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는 타트라 산지의 중심 도시이다. 여름에는 등산과 하이킹, 겨울에는 스키를 즐길 수 있는 곳으로 녹색의 아름다움이 펼쳐진다. 자코파네에 들어서면 거리 곳곳에 목조 가옥이 늘어선 풍경이 인상적이다.
상점들을 비롯해 교회, 묘지 등 모든 것이 나무로 이뤄져 있다. 특히 묘지에 세워진 비목들은 죽은 이와 연관된 나무 조각으로 세워져 있어 마치 야외 목공예 전시장을 둘러보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19세기 이곳에 살았던 스타니수와프 비트키에비치(1815~1915)에 의해 목조 건축 양식이 발달해 독특한 자코파네 양식이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가 지은 목조 가옥은 현재 박물관으로 바뀌어 자코파네를 찾는 사람들에게 나무가 주는 편안함과 자연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지혜를 알려주는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우리나라 한옥의 나무 문살무늬처럼 나무의 결을 그대로 살려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한적한 정겨움에 푹 빠져버린 나는 테라스에 앉아 햇살 아래 서 있는 푸른 나무숲을 감상했다. 나중에 은퇴하고 나서 편안히 쉬고 싶은 곳이 한 곳 더 늘어난 셈이다.
쇼팽 음악이 살아 숨 쉬는 ‘바르샤바’
바르샤바(Warsaw)는 16세기 말 폴란드 왕국이 크라쿠프에서 천도한 이후 폴란드의 수도 역할을 해온 도시이다. 바르샤바의 첫인상은 현대적인 건물들이 늘어서 있어 약간은 실망스러운 모습이었다. 왜냐하면, 2차 세계 대전으로 너무나 철저히 파괴되었기 때문에 옛 모습은 온데간데없는 듯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비스와 강을 따라 구시가지로 들어서는 순간 폴란드 사람의 재건에 대한 노력을 한눈에 느낄 수 있었다. 마치 17~18세기로 돌아간 듯한 착각이 들 정도의 옛 건물들이 늘어서 있는데 이것이 벽에 생긴 금 하나 까지도 충실하게 복원한 폴란드인의 재건 결과이다.
바르샤바에서 처음으로 들른 곳은 쇼팽(Fryderyk Franciszek Chopin 1810~1849)의 심장이 묻혀 있다는 ‘성 십자가 교회’였다. 쇼팽은 자신의 조국인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에서 활동했지만, 항상 자신의 고향을 잊지 않고 그리워했다. 이심전심 전해진 그의 마음은 폴란드인들의 쇼팽 사랑으로 발전했다. 바르샤바의 공원이나 거리의 벤치에는 그런 시민의 마음이 그대로 담겨 있다. 앉을 때 작은 버튼을 누르면 쇼팽의 음악이 흘러나온다. 피곤한 다리를 쉬게 하면서 야외에서 듣는 쇼팽의 청명한 피아노 소리는 정말 감동적이었다. 그리고 쇼팽 박물관에는 쇼팽의 일생과 그의 음악 모두를 전자 악보를 보며 감상할 수 있는 오디오 시설이 되어 있어 쇼팽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바르샤바 근교의 젤라조바볼라에 있는 쇼팽 생가에서 봄, 여름 동안 매주 일요일 쇼팽 콘서트를 연다. 한적한 마을에 있는 쇼팽 생가를 공원처럼 조성해 쇼팽 음악을 들으며 소풍 나온 가족들에게 주말의 여유로움을 선사하고 있었다. 생가 안에서 피아니스트가 쇼팽 곡을 연주하는데 창문 틈으로 새어나오는 음악 소리를 정원 나무 벤치에 자리하고 앉아 듣는 형식의 콘서트가 진행된다. 마치 쇼팽이 살아서 직접 피아노를 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데 아이디어가 참신한 것 같다. 쇼팽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는 곳이다.
첫댓글 유명한 글입니다
잘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