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선은 불안하다 / 나태주]
직선은 불안하다
구부러질까 봐
불안하다
곡선은 편안하다
더 구부러져 보았자 여전히
곡선이기에 그렇다.
마음껏 못해도 된다는 것
스물한 살 때,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을 모두 대금 배우는 데에 쏟아부었다. 대금을 잘 불지는 못했지만 재미있었고 그래서 계속 배웠다.
내가 다닌 국악원의 선생님은 아주 무서운 분이었다. 어릴 때부터 '대금 신동'이라는 말을 듣고 자랄 정도로 줄곧 잘하기만 해서인지 대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하고 많이 혼내셨다. 대금 연주에서는 호흡을 길게 하는 게 꽤 중요했다. 내 대금은 길이가 약 80센티미터였는데, 저 끝에서 나는 음들을 내기 위해서는 80센티미터만큼 호흡을 불어넣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호흡이 짧아서 때때로 소리가 명료하게 나지 않았다. 선생님께서는 그게 답답하셨는지 "너는 폐가 하나니?"라고 말하시며 화를 냈다. 손가락이 짧고 얇아 넷째 손가락 운지를 이상하게 해야만 했던 내게 장난식으로 "손가락에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니? 이 구멍이 왜 넷째 손가락 마디로 안 가려져? 너는 그냥 취미로만 해라."라고 말씀하시기도 했다.
타고난 신체적 조건도, 능력도 갖추지 못했지만, 나는 오히려 내가 못하는 학생의 입장인 게 좋았다. 과외를 하거나 학원 강사로 일할 때의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어서였다. 아무리 전공을 했다고 해도 나 역시 영어를 제2언어로 배운 사람이다. 또 영어는 언어이기 때문에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모든 걸 알 수가 없다. 우리가 한국인이지만 여전히 모르는 단어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그런데도 나는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심지어 지문에 나오는 의학 용어까지 모르는 게 없어야 했고 틀리는 게 없어야 했다. 대금은 나를 그런 의무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해주었다. 어차피 못하니까 남들이 내게 기대도 안하고, 마음껏 못해도 되는, 그런 자유가 좋았다.
나태주 시인의 시를 읽으며 청춘의 일기를 쓰다
김예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