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봉사는 어느 경우, 어느 때나 환영받는 게 아니다. 어떤 분야나 일에선 자원봉사자를 배치하거나 그들에게 새로운 수준의 책임을 맡기려 할 때 직원 중에서 경계를 하고 저항하고 배척하는 경우가 있다. 그 저항은 많은 경우 전문직들에서 온다. 즉 일의 중요성과 전문성을 내세워 자원봉사자를 거부하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이 그럴 때도 있지만 때로는 전문직에 대한 자원봉사자들의 도전을 경계하기 때문일 때도 있다.
자원봉사자에 대한 경계는 직원들뿐 아니라 시설 기관장들에게서도 온다. 우리 나라의 사회복지시설과 같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어렵게 살림을 꾸려나갈 경우 부득이 법에 저촉되는 일을 해야 할 때가 많다. 예를 들어 부족한 의료비를 부식비를 전용해 메우거나 직원 월급을 후원금으로 올리는 등, 정부가 정한 원칙을 제대로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물론 잘못된 비리도 상당수 존재하고 있지만 대다수의 시설, 기관장들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고군분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같은 상황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고 시설에서 자원봉사를 하다 눈에 잘못된 운영사례가 띄었다고 해서 풍파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양로원을 찾아간다 할 때 노인들은 흔히 자원봉사자들을 붙들고 이런 저런 예기를 하면서 그중 많은 예기를 시설운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는 데 쏟는다. 자원봉사자와 친해졌다 싶으면 그 불만은 더 노골적이고 구체적인 사례를 인용할 때가 많다. 이때 자원봉사자는 그 불만을 그대로 믿고 무책임한 정의감에서 시설 장을 향해 단죄를 하려 든다. 이 같은 사례가 한국의 사회복지시설들이 자원봉사자를 꺼려하는 이유이다.
기관과 자원봉사자 사이의 이 같은 갈등은 중·고생 자원봉사자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청소년들의 경우 시설, 기관 측의 경계가 일반 성인들에게서보다는 적겠지만 오히려 사리판단의 부족으로 자칫 풍파를 일으킬 수도 있어 경계하기는 마찬가지이다.
자원봉사자는 결코 그 분수를 넘어서는 안 된다. 물론 시설원생들의 불만이나 예기를 듣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그들의 말을 경청하되 그에 대해 100% 신뢰를 보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그렇다고 나하고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무책임한 태도를 보여서도 안 된다. 원생과 시설 사이에 긴장관계가 있을 때 우선은 시설 기관장의 입장을 이해하는 자세에서 원생들의 불만에 지혜롭게 대처하는 슬기를 가져야 한다는 뜻이다.
자원봉사는 때때로 이처럼 쉬운 일이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도 아니다. 그러기에 훌륭한 자원봉사가 되기 위해서는 많은 훈련을 받아야 하고 따라서 최근에는 '전문 자원봉사자(professional volumteers)'라는 단어까지 생겨나고 있다. 학생 자원봉사자라고 예외는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