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문이 편찬한 호남인물지는 이화문화사에서 인쇄하여 호남인물지편찬위원회에서 발행한 것은 1991년 5월 15일이다. 724+81면이다.
허경 387면, 허련 425면, 허백련 425면, 허일 387면, 허전 387면, 허조 427면, 허협 110면, 허협 425면에 실렸다.
허경(許鏡): 호는 장암, 본관은 양천, 강호 淹의 아들이다. 무과에 급제하여 장연현감으로 선조조 임진왜란에 공이 있어 익사원종훈에 참여하여 경주판관을 지냈다.(승평지)
허련(許鍊): 초명은 유, 자는 마힐, 호는 소치, 본관은 양천, 상우당 종의 후손이다. 순조 9년에 진도에서 나서 삼절의 기재로서 당세에 이름을 떨쳤다. 헌종께 궁환첩을 올리니 어필로 소치묵묘라 쓰고 어호인 향천의 낙관을 찍고 음식물과 붓을 하사하고 손을 잡았다.석파 대원군(이하응), 권이재 돈인, 김추사 정희와도 교의가 깊었다. 그림으로는 모란이 더욱 유명하다. 추사가 신위당 헌에게 보낸 편지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許癡尙在那邊耶, 其人甚佳, 畵法破除東人陋習, 鴨水以東, 無此作矣(허소치가 지금 어디 있는지? 그 사람은 기특하다. 화법이 동인의 누습을 타파하여 압록강 동쪽에서 이만한 작품이 없다). 벼슬은 지추에 오르고 나이 팔십사세에 졸하였다.(완도지, 완당집)
허백련(許百鍊): 호는 의재, 소치 련의 종현손, 허미산 은의 문생이다. 진도에서 태어나 일본 명치대학을 중퇴하고 광주의 무등산록의 춘설헌에서 다를 재배하면서 남종화에 일생동안을 전력하였다. (진도지)
허전(許銓): 호는 송암, 본관은 양천, 강호 淹의 아들이다. 찰방을 지내고 선조 임진왜란에 형 경과 함께 가재를 기울여 양곡을 군납하고 여러 차례 전공을 세웠기에 첨중추로 임명되고 원종훈에 참여하였다.(순천지)
허일(許鎰): 자는 여중, 본관은 양천, 문경공 공의 후손,혼(渾)의 아들이다. 무과하여 임진왜란에 웅천현감으로 이충무공 순신을 따라 동래 부산 남해 등지에서 적정을 탐지하고 또 최충의공 경회를 따라 진주에서 순절하니 참의를 정하고 선무원종훈에 참여했다.순천의 황전면 자은리에 육효자를 모신 육충각이 있다. (여지도서, 승주지, 호남절의록)
허조(許祚): 본관은 양천, 완도의 진장이 탐학하여 민생이 도탄에 빠지매 도민이 일어나서 진장을 군외로 추방했는데 이 때문에 조는 모진 고문에도 불굴하고 죽었다. 타루비가 세워졌다.(완도군지)
허협(許鋏):본관은 양천, 충정공 종의 후손, 무과하여 첨사를 거쳐 전주중군에 이르렀다.(진도읍지)
허협(許協): 본관은 양천, 영의정 扉의 후손, 승지 艸+衡의 현손이다.임진왜란에 창의사 김천일을 따라 강화도에서 종전하고 이듬해 진도에서 싸우다가 남강에 죽었다(호남절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