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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사상 스크랩 성경은 점을 지지하는가
정규훈 추천 0 조회 574 14.08.30 10:53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 장희빈을 비롯하여 최근 안방극장을 강타하고 있는 텔레비전 프로들을 보면, 그 동안 냉대를 받아오던 점술이 새로운 예언으로 부각되고 있으며, 사회의 변두리에서 맴돌고 있던 점쟁이들이 이제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점술을 통한 예언서들까지 쏟아져 나와, 민심을 흔들고 있다.

○ [격암유록]이란 작자 미상의 책은 임진왜란부터 5.16까지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알아 맞혔다고 하며, 어느 무당이 쓴 「신이 선택한 여자」는 김일성의 사망뿐 아니라 올해와 내년의 대선구도와 정계 개편까지 정확하게 예언한다고 떠들고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책들이 불티나게 읽혀지고 있으며, 그 여파로 사람들은 음력 윤달 8월이라고 결혼도 하지 않고, 이사도 하지 않는다고 한다.

○ 마치 김동리의 「무녀도」에서 자신의 샤머니즘적 재래신앙을 지키기 위해 물에 빠져 죽을 때까지 굿판을 벌리며 죽었던 '모화'가 정보화·세계화 시대에 부활하여 드디어 자기 세계를 만난 것 같다.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점술의 마력에 신자들도 함께 휩쓸려 가고 있는 현상을 보면서, 점술에 대한 성경적 입장과 대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 이방인 세계관 속에서 점술과 주술의 위치
○ 한 사회 속에서 점술가와 주술가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아래와 같은 네 가지 전제조건이 필요하다.

○ 첫째로, 영계에 초자연적인 힘과 세력이 실존하고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초자연적인 세력을 형성하고 있는 영계는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일상적인 세계와는 다른, 또다른 세상이므로, 이 둘 사이에는 '간격'이 있다. 이 간격을 메워주는 자는 바로 그 세계를 잘 아는 영매자가 된다.

○ 둘째로, 초자연적인 세계의 힘은 인생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한다. 이 영향력은 구체적으로 영매자들의 주술과 점술을 통해 이 세상에 미치게 된다.

○ 셋째로, 영매자들은 아무리 배우지 못했고, 그들의 행동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다 하더라도, 그들의 활동을 사회적으로 인정하거나 허용해주어야 하는 무언의 합의가 필요하다. 사회적인 지지와 후원이 없이는 영매자들이 존재 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 넷째로, 영매자들은 질병과 파산과 정신적인 어려움 가운데 있는 사람이나 사회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 위에 제시된 전제조건을 살펴볼 때 점쟁이나 무당은 주술적이고 신화적인 세계관 속에서만 존재할 수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자면, 점술이나 주술은 단순히 심리적 기술이 아니라, 그 배후에 어떤 신념과 신앙을 깔고 있다. 점술과 주술이 가장 발달했던 고대 근동아시아의 세계를 보면, 점술과 주술은 그들의 세계관과 신화와 현실정치와 맞물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반게메렌이 아주 잘 설명하였다.(Van GeMeren, 김의원 역 1993:30)

○ 점술은 단지 한 개인의 미래를 미리 알아보거나, 액땜을 할 수 있는 독립적인 기술로 존재하지 않는다. 점술이 현실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예언으로서 살아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주술적 세계관에 근거하고 있다. 즉, 점술을 하는 사람과 받는 사람의 밑바닥 속에는 공통적인 세계관이 있다. 세계관이란 이 세계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어떻게 현재의 질서로 이루어졌으며, 현세가 초자연적인 세계와 어떻게 이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방인들의 세계관은 그들의 신화에 담겨 있다. 즉, 신화를 통하여 가장 기본적인 세계관을 설명해준다. 이 신화 속에는 어떤 신이 가장 힘센 신이며, 신들의 목적과 의도가 어디에 있으며, 그의 주술적인 능력 안에서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 기본적인 설명이 담겨져 있다. 점술과 주술은 초자연적인 세계와 현실세계를 구체적으로 이어주며, 신들의 세계의 힘을 빌려 자신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힘을 제공해준다.

○ 고대 근동아시아의 점술과 주술
○ 구약 성경의 배경을 이루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에서도 세계관과 신화와 주술 사이에는 밀접한 연관성이 있음을 볼 수 있다. 성경의 선지자들은 이런 종교적 배경 속에서 이방인들의 점술과 주술을 비판하고 있으며, 이것들이 어떻게 거짓 선지자들을 통해 교묘하게 선민 사회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지 경고한다.

○ 먼저 고대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세계관을 살펴보면, 두 가지 점이 두드러진다.

○ 첫째로 인생의 모든 일들과 국면들은 독자적으로 떨어져 존재하지 않고, 영계와 현세를 포함한 이 세상 전체와 철저히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 세상은 거대한 인과관계로 이어져 있고, 또한 인생사의 일들은 운명론적으로 결정되어 있다고 믿고 있었다. 따라서 우리가 볼 때에는 자연스러운 현상도 그들에게는 총체적인 세계 속에서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일로 비쳤다. 예로서, 여우 한 마리가 동네 광장에 나타난 후, 그 다음날 그 도시가 적군에 의해 파괴되었다면, 거기에는 어떤 인과관계가 있으며, 이 현상은 이제 확립된 징조가 되어 후대의 동일한 사건을 해석하는 법칙이 된다.

○ 둘째로,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은 자연과 초자연 세계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신들은 인생사에 직접 개입할 뿐 아니라, 아주 밀접하게 개입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모든 역사적인 사건이나, 자연에서 일어나는 사건 배후에는 신들의 뜻이 작용하고 있다고 보았다. 따라서 신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결정들을 파악하기 위해 아주 전문적인 술사들과 점쟁이들을 궁궐에서 지원하며 돌보게 되었다.

○ 메소포타미아 사람들의 운명론적인 세계관과 주술적인 세계관은 그들의 창조신화에도 잘 반영되어 있다. 바벨론의 창조신화를 보면, 바벨론의 주신인 에아와 마르둑은 주술의 천재로 나타나고 있다. 에아는 젊은 세대를 멸하려는 압수의 계교를 눈치채고 마술을 걸어 그를 멸하고 있음을 창조신화가 찬양하고 있다. "모든 것을 다 아는 에아(Ea)는 그들의 계교를 꿰뚫어 보았다. 그는 마술의 원으로 그것을 감싸버렸다. 그는 위압적인, 거룩한 주문을 능숙하게 짰다. 그는 그것을 낭송하며, 그것으로 물위에 있게 하였다. 그가 그에게 잠을 퍼붓자 그는 조용히 잠들었다."(에누마 엘리쉬, 제1토판 60∼65절). 압수로 잠들게 한 후, 에아는 자신의 군대장관을 통해 압수를 죽이게 한다. 바벨론의 창조신화를 보면, 신들은 주로 마술과 주술로써 상대방을 묶고 죽이며, 권력다툼을 하고, 이 세상을 만들며 유지해간다.

○ 이런 세계관 속에 바벨론 사람들은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수많은 점술기술을 만들었다. 이들의 점술기술은 반 게메렌이 다음의 도표에서 잘 설명해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점술과 주술에 대한 성경의 태도를 살필 때, 고대 근동아시아이 전체적인 세계관과 신화와 점술의 배경 속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성경 저자들이 그들의 점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지를 중심적으로 살피고자 한다.

○ 신명기 18장에 나타난 가나안
○ 선지자들의 유형과 점술들
○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고 있던 시대에 어떤 유형의 점쟁이들과 술법들이 있었는지 가장 종합적으로 명쾌하게 말해주는 본문은 신명기 18장이다. 이 본문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 모압 동편에서 마지막으로 율법을 강해하면서, 앞으로 가나안 땅에서 부딪힐 영적인 혼란에 대해 말하고 있다.

○ 넓은 문맥을 보면, 주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이 새로운 환경 속에서 바르게 살도록 그들에게 '왕의 규례'(신17:14)와 '제사장의 규례'(신18:1∼8)와 '선지자의 규례'(18:9∼22)를 주신다. 마지막 규례에는 가나안 토착 점쟁이들과 그 점술의 유형 및 특징이 제시되고 있다(신18:9∼14).

○ 이방 예언의 유형과 그 영성을 다루는 이 단락은 "네가 그 땅에 들어가거든 너는 그 민족들의 가증한 행위를 본받지 말 것이니라"로 시작되며(9절),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니라"(14절)로 마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갈 때, 이미 그 땅에 토착화된 가나안 종교와 그 영매들의 영향을 받을 것이다. 따라서 이 본문은 미리 경고하는 형식을 띠고 있다.

○ 먼저 이들의 행위는 '가증한' 것(to' abot)으로 묘사된다. 신명기 7장 26절에서는 "너는 가증한 것을 네 집에 들이지 말라 너도 그와 같이 진멸 당할 것이 될까하노라 너는 그것을 극히 꺼리며 심히 미워하라 그것은 진멸 당할 것임이니라"고 말한다. '극히 꺼리다'는 '가증한 것으로 여기다'는 뜻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한 것은 곧 진멸당할 것이다. 가나안 백성들이 현재 살고 있는 곳에서 진멸되고 쫓겨 나가는 이유는 그들의 가증한 종교적 행위 때문이었다. 북쪽 이스라엘 백성들도 후에 바로 가나안의 이 가증한 행위를 따랐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서 쫓겨나 앗시리아로 포로로 잡혀간다(왕하17장). 이후에 남쪽 유다도 열국의 가증한 행위를 따랐다는 이유 때문에 약속의 땅을 잃고 바베론으로 붙들려 간다.(왕하 21장)

○ 이어 모세는 가나안 종교의 가증한 종교행위들과 그 전문 종교 기술자들을 소개하고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비록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모세를 통해 직접적으로 받았지만,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죄성과 부패성 때문에, 거짓 신을 따르고 하나님의 뜻을 왜곡할 수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실 참된 말씀과 인간이 만들어 낼 말을 비교하며 대조한다. 여기에 가나안 종교에 있어서 아홉 가지 유형의 가증한 행위가 소개된다. 이 단락의 구조는 다음과 같다.

  ① 가장 가증한 점술 :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함(10절)
  ② 현상학적 관찰에 의한 점술자의 세 유형 : 복술자, 길흉말하는 자, 요술사(10절)
  ③ 주문을 사용하는 마술사의 두 유형 : 무당, 진언자(10∼11상)
  ④ 귀신과 접한 자 세 유형 : 신접자, 박수, 초혼자(11절)

○   1) 가장 가증한 점술,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함(10절).
○ '그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의식은 가나안 족속의 종교 행위 중 가장 가증한 행위로 소개된다. 이 의식의 정확한 성격은 자식을 몰렉신에게 불태워 제물로 바치는 것인지(신12:31), 혹은 '신탁을 받기 위해' 자식을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는' 의식이었는지 분명치 않으나, 여기에서는 후자로 보인다. 왜냐하면, 아래에 나오는 가나안의 모든 가증한 행위들은 제사와 연관되지 않고 점술과 연관돼어 있기 때문이다. 에스겔 20장 31절에 따르면, '너희 아들로 화제를 삼아 예물로 드리는 것'과 "너희가 내게 묻기를 용납하겠느냐"가 평행을 이루고 있다.

○   2) 현상학적 관찰에 의한 점술자의 세 유형 : 복술자, 길흉 말하는자, 요술사(10절). 이어서 구체적으로 가나안 선지자들이 점치는 방법 세가지가 세 명의 점술가로 제시된다.

○ 첫째로, 복술자는 '점 치는 자' 혹은 '신탁을 받은 자'라는 뜻이다. 그들은 주로 제비를 뽑아 점을 쳐서 신의 뜻을 분별한다고 하는 자들이다. 이리하여 이 단어는 구약에서 점술에 대한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 이 술법에 대한 가장 좋은 예가 에스겔 21장 21절에 나타난다.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침공하면서, 갈랫길에서 점을 친다. 그는 "살들을 흔들어 우상에게 묻고 희생의 간을 살펴서 오른손에 예루살렘으로 갈 점괘를 얻었다." 아마 점술사가 흔드는 화살이 예루살렘 쪽을 가리킨 것 같다. 이것은 고대 근동아시아에서 아주 익숙한 점술이었다. 이점을 치는 선지자는 바루(baru) 선지자라고 하며, 그는 전문적인 점쟁이요, 제사장이요, 또한 점성술사였다. 그는 기름과 연기와 물을 사용하여 신탁을 얻으며, 양과 소의 간을 해부하여 인간과 도시와 궁궐의 미래를 보았다. 왜냐하면, 이 속에 소 우주가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 또한 민수기 23장 23절에 따르면, 이 단어는 발람의 저주와 연관하여 나타난다. 그는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라고 말한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선지자를 통하여 주신 말씀에 순종하면, 그들을 향한 어떤 마법도 통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다.

○ 둘째로, '길흉을 말하는 자'는 앞 일에 대해 말하는 자이다.
(레19:14; 삿9:37; 왕하21:6; 사2:6; 미5:11; 렘27:9; 사57:3). 아마 이 단어는 '구름을 보다'에서 나왔든지, 혹은 '대답하다'에서 나와, 미래에 대해 예언하는 것으로 사용된 듯하다. 이들은 하늘의 징조를 관찰하며, 인간과 도시의 운명에 대해 길흉을 예언하였다. 이 점성술은 앗시리아와 바벨론에서 아주 발달되었다. 앗시리아인들은 식굿과 기윤(암 5:26)을, 바벨론인들은 하늘의 여신 이쉬타르를 경배하였으며, 별들의 위치를 통해 운세를 예언하는 점술을 발달시켰다.

○ 셋째로, '요술하는 자'(menahesh)라는 번역은 문제가 있다. 어쩌면 '점술사'로 번역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 원래는 징조를 관찰하는 자이다(창30:27; 왕상20:33). 옛 점술사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점을 쳤다. 때로는 물로 점을 친다. 요셉의 잔은 점술과 연관하여 나타난다(창 44:15). 물론 요셉이 이것으로 점을 쳤는지에 대해서 본문은 말하고 있지 않다. 때로는 뱀과 독사의 움직임으로 점을 친 경우도 있었고(시 58:4,5), 혹은 새의 움직임과 구름의 움직임을 보면서 점을 치기도 하였다.

○   3) 주문을 사용하는 마술사의 두 유형 : 무당, 진언자(10-11상)
이어서 주문을 사용하는 자들이 '무당'(마법사)와 '진언자'로 나타난다. 고대 근동 아시아에서 마법은 비전을 통해 전수되어왔으며, 언어의 힘을 통해 사람을 통제하는 형식으로 사용되었다. 이미 바벨론의 창조 신화에도 신들이 마술을 통해 세상을 다스려가는 모습이 등장한다. 특히 애굽에서는 마술이 성행하였다. 이들은 마술과 주문을 통해, 액땜을 하게 할뿐 아니라, 남에게 해를 미치게도 하였다.

○ 첫째로, '무당'은 약과 약초와 주문으로 마법을 행하는 자이므로 '마법사'로 번역하는 것이 좋아 보인다(미5:11; 출7:11; 22:17). 마법사는 주문을 통해 "초자연적인 방법을 사용하여 사건이나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려고 하는 자"이다.
  둘째로, '진언자'는 주문으로써 사람을 묶고 푸는 자이므로, 그도 마법을 쓰는 자이다. 물론 여기에서 무당(즉, 마법사)과 진언자 사이에 명백한 구별을 하는 것이 어려우나, 둘 다 주문을 통해 소위 초자연적인 힘을 쓰는 자로 알려진 자들이다. 고대 세계에서 주문은 무서운 주술적 힘을 지닌 것으로 믿어졌다.

○   4) 귀신과 접한 자 세 유형: 신접자, 박수, 초혼자(11절)
마지막 세 종류의 사람들은 단순히 자연 속에서의 관찰과 통계로 예언하는 자들이 아니고, 귀신과 접해진 자들이다. 이들은 영계와 접촉하여, 미래를 알고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려고 하였다. 이들 역시 여러 종류의 매체를 사용하였다.

○ 먼저 '신접자'는 엔돌의 여인처럼 어떤 특정한 귀신을 불러내며, 그에게 묻는 자이다. 엔돌의 여인이 선지자 사무엘을 불러낸 기사는 크게 세 가지로 해석된다.

○ 첫째, 초혼술은 악하지만 불가능한 것이 아니므로, 사무엘이 엔돌의 여인에  의해 일어난 것이다. 따라서 그 여인이 알아보았다. 둘째, 하나님은 이때 사무엘을 보내셔서 말씀하게 하셨다. 따라서 여인이 소스라치게 놀랐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예언이 그대로   이루어 졌기 때문이다.  셋째, 죽은 자가 다시 일어날 수 없기 때문에, 신접한 여인 술법으로 말한 것이다. 즉 , 성경적인 관점에서 엄격하게 보자면 엔돌 여인이 술법은 사기였다. 나는 세 번째 입장을 따른다.

○ 고대의 신접자들은 자신이 불러내는 신들을 알아본 것처럼 말했다. 레위기 20장 27절에 보면,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말한다. 원문에 따르면, "남자나 여자가, 그들 안에 신접자나 박수가 있으면"이라고 말한다. 즉, 이들은 자기 몸에 귀신이 있는 자로 선언하는 자들이다. 따라서 자기 속에 있는 귀신의 음성을 내는 체한다. 이사야서에 보면, 신접자 속에 있는 신이 뒤틀리는 소리를 내어, 마치 땅에서 말이 올라오는 듯한 모습이 나온다. "네가 낮아져서 땅에서 말하며 네 말소리가 나직히 티끌에서 날 것이라. 네 목소리가 신접한 자의 목소리 같이 땅에서 나며 네 말소리가 티끌에서 지껄거리리라"(사29:4). 따라서 여기의 '신'은 우리말로 '귀신'(ghost)으로 보여진다.  

○ 둘째로, '박수'(one who inquires familiar spirit)는 어근 '안다'가 말하는 것처럼, 귀신과 친숙한 자이며, 구체적으로 '귀신에게 친숙한 신을 부리는 자이다.' 따라서 우리말에서는 '부리는 영'이라고 말한다. 이 귀신은 자기를 부르는 자의 말을 듣고 움직이는 자이다(행16:16). 그리고 박수에게 특별한 지식을 주는 자이다. 앞의 신접자와 여기의 박수는 므낫세가 지은 대표적인 죄와 연관되어 있다. 그는 "신접한 자와 박수를 신임하여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많이 행하고 그 진노를 격발하였다"(왕하21:6).

○ 셋째로, '초혼자'는 죽은 사람을 불러내는 자로서, 기본적으로 강신술사이다. 그는 죽은 자와 교통하여 예언하는 자이다. 사울의 범죄는 초혼술과 연관된다(대상10:13). 이런 초혼술에 대해 이사야 선지자가 명확하게 말한다. "혹은 너희에게 고하기를 지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 하거든 백성이 자기 하나님께 구할 것이 아니라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 하라. 마땅이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라(사8:19)

○ 정리하자면, 가나안 종교를 비롯한 이방종교는 그 영성을 기본적으로 점술과 마술과 강령술에 두고 있다. 이 세 가지 형태의 술법이 아홉 가지 유형으로 나타난다. 이들을 소개한 후, 모세는 신학적인 정리를 해준다(12-14).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도 "무릇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느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인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고 말한다(12절).  이스라엘이 장차 포로로 잡혀간다면, 바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데 있어서  이교적인 방법을 택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가나안 사람들을 그들의 땅에서 내어쫓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또한 가나안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이스라엘은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하라"는 말씀을 따라 살아야 했다(13절). 이 '온전함'은 도덕적·윤리적·종교적 차원을 다 포함하고 있다(시19:7-14).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족속들과는 달리,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높은 윤리적 수준을 추구하며 살도록 부름받았다. 주님은 명백히 말씀하신다.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복술자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지 아니하시느니라(14절)

○    거짓 선지자들의 주술과 점술
○ 이방세계의 주술사들과 점쟁이들의 영향력은 너무나 넓고 깊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사회에는 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등장하였다. 사실 참 선지자들은 주로 재앙과 경고의 말씀을 전했기 때문에, 평안과 형통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 훨씬 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  1) 수수께끼 선지자 발람의 점술(민22-24장).
발람은 고대의 유명한 술사였다. 그가 축복하고 저주하는 데 따라 한 나라가 복을 받기도 하며 저주를 받기도 하는 강력한 주술자였다. 초대교회로부터 발람은 다양하게 해석되어왔다.

○ 첫째로 발람은 마법사요 거짓 선지자다(필로, 암브로우스, 어기스틴). 그는 우상숭배자요, 참된 경건이 없는 자이다. 그는 이스라엘을 저주하고 싶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강권하셔서 저주 대신 축복을 하게 되었다. 둘째로 발람은 참된 선지자이나 탐욕과 야심에 빠진 자이다(터툴리안, 제롬). 셋째로 발람은 한때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이방의 주술사요 점쟁이다. 나는 세번째로 본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그는 결코 선지자나 선견자로 불려지지 않았고, 항상 '술사'로 불려지기 때문이다(수13:22). 이 칭호는 참 선지자에게는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점술'은 금지된 것이며(신18:10), 무서운 죄로 여겨졌고(삼상15:23; 겔13:23; 왕하17:17), 거짓 선지자의 표식으로 나타난다(겔13:9; 22:28; 렘14:14; 사3:2 에서는 복술사-코셈, 선지자-나비- 가 나란히 있다. 그러나 이어서 '능란한 요술자'가 나온다).

○ 또한 발람은 이방 술사들과 같이 계시를 얻기 위해 점술을 사용하고 있다(24:1; 23:3,5). 그는 이런 점술형태를 주로 사용했던 것 같다. 이스라엘의 참 선지자 중에 이런 방법을 사용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신이 그에게 임함으로써, 비록 참 선지자는 아니지만 참 예언을 할 수 있었다.  그는 물론 여호와 하나님을 알았고 그의 뜻을 구했으며 따랐고, 하나님이 허락하기 전에는 발락의 요청에 응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하나님의 신은 그에게 임하였다. 그가 이스라엘을 축복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심을 알고, 그는 더 이상 점술을 사용하지 않았다(24:1).

○ 이런 양면성을 볼 때, 발람은 비록 예언의 영을 받았지만, 직업적인 전문 술사였음을 알 수 있다. 아마 그는 새로운 종교인 여호와 종교에도 관심을 가진 것 같다. 그렇지만, 그의 본색은 변하지 않았다. 마치 신약성경의 시몬 마구스와 같다(행8:13). 비록 그가 하나님의 감동을 체험하였지만, "바른 길을 떠나 미혹되었고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자기의 불법을 인하여 책망을 받았다"(벧후2:14,15).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옛 본색을 드러낸다. 그는 이스라엘로 방탕한 바알브올을 숭배하게 한다(민31:15). 결국 그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한다(민31:18).

○  2) 시드기야와 400여명과 선지자들이 충동받은 거짓예언(왕상22장).
구약성경에서 선지자끼리 싸우는 장면 중에서 가장 치열한 장면 중하나인, 미가야와 시드기야의 대결에서, 아합과 밀착된 선지자 400여 명과 시드기야는 높은 사회적 위치를 누리면서, 왕이 기뻐하는 신탁의 말씀을 '예' 혹은 '아니요'의 형태로 주고 있다. 이들은 신탁을 전달할 때 전통적인 선지자의 방법을 따르지 않고, 바벨론이나 가나안의 선지자처럼 쉽게 '예' 혹은 '아니요' 만으로 결정하고 있다. 그리고 그들은 왕에게 늘 길한 것만 예언하였다. 이들은 이미 사회개혁자로서의 선지자의 본분을 상실하고, 왕과 귀족이라는 특정 계층과 연관되어 예언을 하고 있다.

○ 시드기야와 거짓 선지자들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예언하였고, 그들은 상징적인 행동까지 취했으며, 나아가 시드기야는 자신이 '하나님의 신으로' 예언하고 있음을 확신하였다. 그러나 실상은 그들이 모두 미혹의 영에 속은 자들이었다(22절). 미혹의 영은 속이며, 그들은 속았다. 그러나 그들이 속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확신에 차 거짓예언을 하였다. 시드기야의 예언은 속이는 영으로부터 충동질을 받은 것이었다.

○  3) 하나냐의 평화에 대한 거짓예언.
유다의 마지막 왕들 중 시드기야가 즉위한 후 4년 5월(주전593/4)에 기브온 출신, 앗술의 아들 선지자 하나냐는 예루살렘 성전 뜰에서 구원의 말씀을 전하고 있다(2절). 또한 그는 바벨론으로 옮겨간 주님집의 모든 기구들이 '두 해가 차기 전에' 돌아올 것이 라고 말하며, 나아가 '유다왕 여고니야와 모든 포로들' 이 다시 돌아올 것이라고 예언한다. 하나냐의 예언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 동안 예언한 것과 정반대였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레미야는 하나냐가 준 구원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6절). 그러나 하나냐의 예언은 그동안 예언자들의 예언과 상당히 달랐다. '"나와 너 이전 선지자들이 자고로 여러 나라와 큰 국가들에 대하여 전쟁과 재앙과 염병을 예언하였다"(8절). 여기에서 예레미야는 하나냐를 자신과 동일한 선지자로 여기고 있음을 주목하라. 그동안 이들은 모두 참선지자의 기본표식인 심판을 전해왔다. 나아가 "평화를 예언한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9절)고 답한다. 하나냐의 예언은 선례에 비추어 볼 때, 참된 예언이 아니었다. 이전 선지자들은 심판을 예언하였다. 결코 구원의 말씀을 전하지 않았다. 물론 이사야와 호세아는 구원을 전하기도 했으나(사7:4-9; 호14:2-9), 정경선지자들은 대부분 심판을 전했다. 그들은 '값싼 낙관주의'를 팔아먹지 않았다.

○ 이때 하나냐는 예레미야의 목에 있던 멍에를 취하여 꺾어버린다(10절). 그리고 자신이 상징적 행동에 대해, 주님께서 "두 해가 차기 전에 열방의 목에서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멍에를 이같이 꺽어버리리라"고 해석해준다.(11절). 예레미야를 통해 하나냐에게 심판의 말씀을 전하게 하신다. "네가 나무멍에를 꺾었으나 그 대신 쇠멍에를 만들었느니라"(13절). 끝으로 방자히 말한 선지자는 죽을 것이라고 말한다(16절). 이 대결은 "선지자 하나냐가 그해 칠 월에 죽었더라"고 끝난다(17절).

○  4) 에스겔 시대의 사이비 여자 예언자들의 점술(겔13:17-23)
구약성경에는 여선지자들이 공식적인 위치를 갖고 있었다. 이들은 여선지자로서 칭호가 있었다.(출15:20; 삿4:4;5:12; 사8:3; 왕하22:14; 대하34:22; 느6:14). 에스겔 13장에 등장하는 예언하는 여자들은 참선지자로 활약한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에스겔은 의도적으로 '여선지자'라는 용어를 피하고 있는 것 같다. 그 대신 아주 느슨하게 '예언하는 부녀들 '이라고 한다.

○ 이들은 먼저 '사람의 영혼을 사냥하는 자'로 소개된다(17절). 뒷절로 내려가면 좀더 구체적이다. 그들은 의인을 근심하게 하며, 악인의 손을 굳게 하여 그 악한 길에서 돌이키지 못하게 하였다(13:21-23). 이들은 자신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방석'을 모든 팔뚝에 꿰어 매고 수건을 사람들의 머리 위에 두기 위해 만든다(18절). 수건은 칫수에 따라 다양하게 만들어졌다. 여기에서 '방석'은 70인역의 해석을 따른 것이다. 그러나 최근에 와서는 '끈'(악카드어 카수)혹은 '줄'로 해석한다. 또한 두 번째 단어인 '수건' 역시 '베일' 혹은 '샤을'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다면 이들은 끈과 베일로서 '묶고 푸는' 과정을 통하여 점을 치는 자들이었다. 이런 형식의 주술은 팔레스타인과 바벨론, 앗시리아 토판에도 발견된다.

○ 게다가 이들은 돈을 바라고 예언한다. "너희가 두어 옹큼 보리와 두어 조각 떡을 위하여 나를 내 백성 가운데서 욕되게 하여 거짓말을 곧이 듣는 내 백성에게 너희가 거짓말을 지어낸다"(13:19). 여기의 보리와 떡은 주술에 사용되는 재료였던 것 같지 않다. 오히려 이들은 돈을 벌기 위해 거짓 예언을 하는 자들로 여겨진다(삼상9:7).

○ 주님은 이런 선지자들과 예언하는 여인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먼저 그들의 주술적인 띠와 베일을 찢으실 것이다. 나아가 그들 모두를 죽이실 것이라고 하신다. 미래에 이들은 "내 백성의 공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며, 이스라엘 족속의 호적에도 거록되지 못하게 될 것이다"(9절). 예레미야  애가에도 이와 유사한 심판의 선언이 있다. "네 선지자들은 네게 대하여 헛되고 어리석은 묵시를 보았으므로 네 죄악을 드러내어서 네 사로잡인 것을 돌이키지 못하였도다. 저희가 거짓 경고와 미혹케 할 것만 보았도다"(2:14). 왜냐하면 바로 이 거짓 선지자의 죄 때문에, 나라가 망했기 때문이다. 시온이 불타고 대적들이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오게 된 것은 "그 선지자들의 죄와 제사장들의 죄악을 인함이니 저희가 성읍 중에서 의인의 피를 흘렸도다"(4:13)

○    성서적인 대안. 하나님께서 보내실 선지자와 예언
○   1)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신18:18)
○ 가나안의 점쟁이요, 마술사와 주술사와 신들린 자와 '본것도 없이 방자히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 대신, 주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의 말씀을 주실 것이다. "내가 그들의 형제 중에 너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두리니 내가 그에게 명하는 것을 그가 무리에게 다 고하리라"(신18:18). 여기에 있는 '모세와 같은 선지자 하나'는 일차적으로 선지자 직분을 말한다. 하나님은 시대마다 새로운 선지자를 보내어 주실 것을 약속하셨고, 그 약속은 선지자제도를 통하여 이루어진다. 그러나 이 약속은 궁극적으로 '모세보다 더 큰 선지자'를 바라보고 있다. 예수께서 이 세상을 오셨을 때, 사람들은 '이는 참으로 오실 그 선지자라'(요6:14)고 고백한다.

○  2) 선지자가 필요한 이유(신18:16-17)
○ 우리에게 선지자가 필요한 이유는 여호와 하나님의 임재와 주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신18:16). 하나님께서 호렙산에 강림하시고, 말씀을 주셨을 때, 그들은 감당할 수 없어서, "나로 다시는 나의 하나님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않게 하시고, 다시는 이 큰 불을 보지 않게 하소서 두렵건대 내가 죽을까 하나이다"라고 말했다. 우리는 하나님을 직접 만날 수 없기 때문에 중보자가 필요하다. 주님은 선지자를 중보자로 세우시고, 자신의 말씀을 주실 것이다. 모세가 죽은 이후에도 하나님의 말씀은 선지자를 통하여 계속 될 것이다. 달리 말하자면, 주님은 선지자를 통하여 자신의 뜻을 대신 전달하시며, 주님의 말씀을 받은 자는 전하지 않을 수 없다. "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사자가 부르짖은즉 누가 두려워하지 아니하겠느냐 주 여호와께서 말씀하신즉 누가 예언하지 아니하겠느냐"(암3:7-8).

○  3) 천상의 총회에 참석한 선지자들.
○ 성경에 나오는 많은 예언은 천상의 총회에 선지자들이 들어가서 직접 본 것이라고 소개한다. 미가야는 하나님의 총회에 참석하여, 하나님의 어전에서 이루어지는 회의에 참석하며, 하나님의 뜻을 바로 파악한다(왕하20:17). 거짓 선지자들은 주님의 말씀을 받은 적도 없이 '자기 마음으로 나오는 거짓 묵시'를 전하지만(렘14:14), 참 선지자는 하나님의 총회에 선 자이다(23:18,22). "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예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누가 귀를 기울여 그 말을 들었느뇨 그들이 만일 나의 회의에 참예하였더면 내 백성에게 내 말을 들려서 그들로 악한 길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게 하였으리라"(23:18,22). 거짓 선지자들이 자기 마음에서 지어낸 말을 하는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간 적이 없기 때문이다.

○ 정리하자면, 참 선지자들은 하나님의 총회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보았기 때문에 진실 된 예언을 할 수 있었다. 따라서 그들은 백성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마술사와 주술사와는 근본적으로 달리, 참 하나님의 뜻을 전하기 위해 전력을 다한다. 또한 왕의 뜻을 늘 '예' 혹은 '아니오'로 대답하는 거짓 선지자들과는 달리, 참된 왕되신 하나님의 대사와 전령과 대변자로 파송받고 일한다. 무엇보다도, 사회적인 관심이 없는 주술사와 마술사와는 달리 참 선지자들은 사회개혁자로서, 주님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여 사회의 불의를 책망하고 공평과 정의가 선민사회에서 이루어지도록 노력한다.

○ 끝으로 성경적 선지자들은 도덕적 기준에 호소하여 그들의 대적들의 말이 참 하나님의 말씀이 아님을 증거한다(렘14:14; 23:10-14; 29:21-23; 겔13:21-22; 미2:11; 마7:15-20; 딤전3:1-13; 딛1:6-9; 약3:13-18). 결국은 열매로 그 나무를 분간할 수 있을 뿐이다.

○    점, 참된 계시없이 형성된 세계관
○ 우리는 위에서 이방의 점술과 주술과 강신술이 성경의 신앙과 양립할 수 없음을 보았다. 그들의 점술과 주술은 하나님의 참된 계시 없이 형성된 세계관과 신화에 근거하며, 궁극적으로 위정자들의 현실정책을 뒷받침하며, 백성들에게는 일시적인 평안과 성공과 번영을 달콤하게 약속하는 조작임을 보았다. 또한 이들의 점술배후에는 주술적이며 운명론적인 세계관이 깊이 깔려 있음도 보았다.

○ 이방의 점쟁이들과 마술사들은 참된 영계와의 교통을 차단하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독점하기 때문에, 결국 이 세상에 더욱 큰 어두움을 가져올 수밖에 없다. 따라서 성경기자들은 종교적인 영역에서 가장 경계할 사항으로 이방의 점술과 주술과 강신술을 꼽고 있다(신18). 주님은 이런 일들을 가증한 일로 여기시며, 우리로 하여금 극히 꺼리도록 당부하신다. 겉으로 볼 때에는 점술과 주술은 자체적인 논리와 통계가 있고, 뭔가를 맞추는 것 같지만 근본적으로 그것은 헛된 것이며 우리를 미혹케 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점술과 성경의 예언을 볼 때, 거짓과 진실의 관점에서 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통하여 주신 진리의 말씀을 믿고 의지하며, 그 안에서 자유함을 얻어야 한다

출처 : 김정우 / 총신대학교 신대원 구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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