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애절한 사연을 알게 된 난파는 봉선이가 떠날 때 바이올린을 연주해 주었는데 적당한
곡이 없어서 아리랑을 연주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악상이 떠올라 연주한 것이 바로
봉선화다.
민족의처지와 봉선이의 처지가 겹쳐지면서 참을 수 없던 감정이 복받쳐울음이 터지고
말았다. 봉선이를 배웅하러 나왔던 동네 사람들도이 음악을 들으면서 흐느껴 울기 시작하더니 드디어 울음바다가되고 말았다.
그가 집에 돌아와 방금 연주한 곡을 악보에 옮겼고 그것을 자기가 제작한 연극의 막이
오르기 전에 한동안 연주하곤 했는데 김형준이 작사하면서 봉선이 때문에 생겨난 곡이라 해서 ‘봉선화’라고 이름을 붙인 것이라고 한다.
이 노래가 일제 강점기 내내 우리
예루살렘아 내 가 너 를 어 찌 잊 으랴!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에 패해 나라를 잃은 유대인들이 하루아침에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그들이 유형지의 땅 바빌로니아의 강가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며
목 놓아 부른 노래가 바로 시편137편이다.
그사향(思鄕)의 애절함이 절절히 묻어나는 노래다.
“예루살렘아, 내 너를 잊어야 한다면 차라리 내 오른손이 거문고 뜯는 솜씨도 함께
영영 잊어버리게 하여라. 예루살렘아, 내 너를 생각할 수 없다면 너를 생각하는 이 가슴
벅찬 기쁨을 잊어야만 한다면 차라리 내 혀가 입천장에 들러붙어 다시는 노래 부르지
못하게 하여라”(시편 137편 1~6절, 현대어 성경).
지금도 유대인들은 안식일(토요일)이 끝나 가는 무렵이면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하면서
“다음 안식일은 예루살렘에서”를 외친다.
그것은 더 이상 지리적으로 이스라엘의 수도를 가리키는 것이아니다.
그들의 영원한 본향, 다시는 인간의 고통과 슬픔과 죽음이 없는 낙원을 그리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그들에게 여러 차례 반복해서 보증하신 ‘약속의 땅’이다.
그 낙원에 대한 향수는 2천 년 동안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에도사무쳐 왔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브리서 11장 16절)고 기록하고 있다.
김교신 선생의 말처럼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야 같을 수 있지만사랑하는 방법은 각기 다를 수 있다. 어떤 이는 조국을 위해서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치는 사람도 있고, 정치나 외교를 통해 조국의광복을 도운 사람도 있다.
사업을 통해 독립운동 자금을 대고 나라 살림을 돕기도 하고 누군가는 교육을 통해 젊은 후배를 양성하는 사람도 있다.
어떤 사람은 신앙과 선교를 통해서 백성을 교화시키고 진정한 삶의 길을 가르치는 사람도 있다. 그중에 음악이나 예술을 통해 국위를 선양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조국에 대한그움, 조국이라는 말만 들어도 목이 메는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노래로 나라 사랑을 일깨웠던 이런 분들도 누구 못지않은 애국자들일 것이다.
난파가 몸이 아파서 한동안 입원하기도 했던 위생병원 입구에핀 봉선화를 보니 감회가
새로워 혼자 ‘울 밑에 선 봉선화’를 읊조리다 왔다.
봉선화는 언제 보아도 고향집의 뒤란 장독대에 피어 도란도란 어린 시절을 간직하고
있는 꽃이다.
권두 칼럼
전정권 editor@sijosa.com ----------------------------------------
시조사 편집국장으로 다수의 책을 낸 저술가이자 수필가이다.
희망을 담은 그의 글에는 늘 고향의 정취와 사람 사는 냄새가 배어난다.
나라 사랑하는 마음이야 같을 수 있지만
사랑하는 방법은 각기 다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