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에서 만난 아이들
이른 아침 6시, 델리로 가기 위해에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향하였다. 오랫동안 차례를 기다린 끝에 짐 검사를 받았는데 휴대품 조사를 심하게 했다. 남편은 작은 배낭을 메고 있었고 나는 손가방을 가지고 있었는데 유독 남편의 짐을 가지고 까다롭게 굴었다. 일일이 풀어헤치고 하는 통에 짜증이 났다.
탑승객은 약간의 인도인과 거의 서양인 여행자였고 동양인 여행자는 우리 부부뿐이었다. 이곳 레는 라닥과 ‘캐시미르’의 분쟁지역이어서 경계가 삼엄하다지만 외국인 여행자인 우리에게까지 까다롭게 굴건 뭐란 말인가. 대단히 화가 났지만 영어에 대한 어휘력이 짧아 ‘아이 헤브 낫싱!’(I have nothing!)이라는 말밖에 못했다.
휴대품 검사를 세 번씩이나 되풀이했다. 한 과정을 통과하니까 똑같은 과정이 기다리고 있었고 탑승 전에 한 번 더 그런 검사가 있었다. 국제선보다 몇 배나 더 까다롭게 굴었다. 남편의 얼굴이 검은 편이어서 외국인 여행자로 변장한 라닥키로 보였나? 아무튼 상당히 불쾌한 걸 참아야 했다.
델리로 돌아오니 다시 무더위가 기승을 부렸다. 호텔에 짐을 풀고 아그라로 가는 기차를 예약했다. 대부분의 기차가 몇 시간 연착은 예사로 한다. 게다가 빨리 도착한 기차가 빨리 떠나는 경우도 있어서 출발시간 두 시간 전에 역에 나가는 것이 주의사항일 정도로 제멋대로이다. 그럼에도 건방지게 꼭 예약제여서 역까지 두 번 걸음 하느라 짜증난다.
하지만 기차여행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표가 없을 때는 무임승차도 가능하다. 개찰구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표 없이도 그냥 승강장에 들어갈 수 있다. 그리고 무조건 기차에 올라타고 적당한 곳에 앉아 있다가 역무원이 돌아다닐 때 표를 끊어도 아무 말 안한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 안 되는 일이지만 이곳에서는 가능하다. 그러나 그럴 경우 지정 좌석이 없어 힘들어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예약을 하는 게 좋다.
다음날은 아그라로 향하였다. 기차를 타고 한참을 가고 있는데 검표원이 와서 표를 보더니 다음 칸으로 가라고 일러준다. 다음 칸에 있는 좌석을 찾아가니 뜻밖에 한국의 젊은이 셋이 앉아 있었다. 아마 기차표를 예매할 때 같은 동족끼리 가도록 배려한 것 같았다. 우리는 서로 몹시 반가웠다. 타국에서 만난 고국사람은 친지처럼 반갑기 마련이다.
세 젊은이는 H대 학생들로서 남학생은 25세, 여학생은 각각 23세, 22세였다. 다른 젊은이들이 그러하듯 그들 역시 몇 번씩 경유해야 하는 싼 할인항공권을 구입하고 1루피라도 아끼며 여행을 하는 중이었다.
여학생의 말이 인상 깊다. ‘저 사람들 1루피와 우리들 1루피의 돈 가치가 같아요. 한 달 예정에 비행기값 말고 1인당 미화 300불을 준비했걸랑요.’
그렇게 적은 돈으로 다니려니 그들의 고생은 안 봐도 뻔했다. 가장 싼 기차와 버스로 다닐테고 아마 숙소도 세면실과 화장실을 공동으로 쓰는 도미토리같은 곳으로 정할 것이다. 세계를 누비며 여행하는 한국의 젊은이들이 자랑스럽고 대견하다. 게다가 오종종하고 작은 현지인에 비해 한국의 젊은이들은 어쩌면 그렇게 체격도 좋고 키도 크고 인물도 잘나 보이는지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우리 어릴 때에 하늘같이 커보였던 서양인들 못지않게 키도 체격도 훤칠하다. 그들과 이런저런 수다를 즐겼는데 그중에는 영어 못하는 얘기도 화제에 올랐다.
여학생 하나가 ‘아줌마, 오빠가 어땠는지 아세요? 터무니없이 바가지 씌우는 현지인과 싸움이 붙었는데 ’아이 엠 엥그리(나는 화가 났다. I am angry)해야 하는 걸 아이 엠 항그리(I am hungry 나는 배고파)이러지 않았겠어요? 어찌나 우스운지 혼났어요.’
감정이 복받치면 영어도 잘 안 나온다. 영어 생각하느라 감정 전달이 제대로 될 턱이 없다. 더구나 어휘력이 빈약해서 표현도 제대로 못한다. 역시 모국어로 화를 내야 제격이다. 차라리 우리말로 개새끼야! 하고 외치는 편이 훨씬 전달이 잘된다.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있다. 일본에서 공부하는 아이가 했던 말인데 아이의 일본인 선생은 한국어를 꽤 잘한다. 한국에서 일본어 교사를 한 경험도 있지만 한국을 드나들다가 한국남자와 연애하여 결혼까지 한 탓에 한국말이 제법 능숙하다. 그런데도 화를 낼 때 한국어로 하면 하나도 안 무섭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이 한국말로 화내면 속으로 킥킥 웃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어로 하면 느낌이 훨씬 달라서 긴장을 하게 된다고 한다. 모국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나도 그들의 실수에 맞서 내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레에서 묵을 때였다. ‘나는 내일 아침 6시에 떠날 것이다.’(I will leave at six o'clock in the morning)라고 말하는 걸 그만 씩스틴(sixteen)이라고 해버렸다. 아침에 떠나겠다는 사람이 16시라니? 상대는 이상한지 홧(뭐라고?)하고 물어온다. 그제야 아차 싶어서 노! 노! 하고 나서는 six(6)라고 해야 하는 걸 다시 sixty(60)라고 해버린 것이다. 상대는 나의 실수를 알아차리고는 웃고 만다.
영어에 관한 실수가 어디 이뿐인가. 늘 더듬대야 하는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대
부분의 현지인들은 내가 하는 영어를 알아듣느라 느리게 달싹거리는 내 입을 유심히 지켜보고는 했다. 우리 일행은 동병상련의 심정이 되어 같이 하하, 호호 떠들었다.
첫댓글 잘 읽었습니다. 다른 나라에가서 영어좀 못하면 어떻습니까...챙피라고 생각할 필요 없습니다.
우리 모국어로 하면됩니다. ㅎㅎ
고생도 되지만 정말 재미 있었겠네요 좋은 추억입니다..
네 감사합니다. 이글을 다시 읽으니 지난 여행의 추억이 새롭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