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가 내리고 어둠까지 깔리면서 가을날의 매서운 추위가 몰려오자 이 대산 지구의 시가지에는 이미 가을날의 활기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특히 향공소일대는 더욱 그랬다. 뒤로는 대산을 등지고 앞에는 또 물살이 세찬 강줄기가 놓여 있는 외진 곳이라서 평일에는 향공소의 대문이 닫히고 나면 사람의 그림자도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러나 평소에는 운동장으로, 장날이면 소상인들이 난전을 쭉 차려 놓아 장터가 되는 그곳에서 한두 식경 전만 해도 정말 한바탕 야단이 났었다. 왜냐하면 상당히 특이한 조리돌림이 있었는데, 그들이 자신들을 대신해서 이 적막하고 즐거움 없는 생활에 향료를 뿌려 주길 바라면서 시 전체에서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만일 날씨가 급작스럽게 변하지만 않았다면 그들은 아마 흩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이곳에는 갈대로 얼키설키 엮어 놓은 초라하기 짝이 없는 움막 몇 채와 장날에 곱창이나 선지를 삶는 데 쓰이는 임시 화덕, 그리고 들개 한두 마리만이 남아 있을 뿐이었다. 그 나머지는 바람 소리, 물 소리, 그리고 수인의 한기였다.
그래도 사람을 꼭 찾아내고 말겠다면 그것도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다. 조금 전에 사람들에게 조리돌림을 당한 그 떠돌이 창녀가 있으니 말이다. 그녀의 이름은 샤오꾸이훤이다. 그녀가 오늘 오후 마을에 막 도착했을 때는 운수가 좋았다. 하지만 지금 그녀에게 있어 고통스러운 것은 이미 조금 전에 당한 그 뜻밖의 상황만은 아니었다. 그저 편안히 누워서 노작지근해진 온몸의 뼈마디를 좀 쉬고 싶을 뿐이었다. 하지만 재수 없게도, 땅바닥은 벌써 비 때문에 진흙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벌써 몇 시간 동안이나 줄곧 똑바로 앉아 있었기에 옷보따리와 바지가 일찌감치 젖어 들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아침나절에 50리 길을 달려오느라 아무것도 먹은 것이 없었다는 점이다.
그녀가 마을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다. 그녀는 마을 어귀 강가에서 머리를 매만지고, 싸구려 분을 발랐다. 그리고 꽃이 새겨진 주단 치파오 한 벌과 빨강 바탕에 흰 꽃이 수놓아진 베로 만든 신발로 단장을 하고는 일부러 남의 눈길을 끌면서 여관을 찾아다녔다. 하지만 그로부터 바로 얼마 후에 단단히 임자를 만나게 되었다. 이런 일은 두 해 동안 유랑 생활을하면서 여태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경우였다. 매맞고 욕먹은 것은 말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중에는 조리돌림까지 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고집만 세우지 않았던들 발틀(두 개의 큰 나무토막을 엮어서 만든 것으로, 범인이 도망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형구의 일종)까지는 차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고, 이렇게 축축한 땅바닥에서 찬바람을 맞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그녀와 같은 운명을 받아들인 다른 여인들이 이틀 전에
당했던 것처럼 그냥 이 땅에서 쫓겨나기만 하면 그만이었다. 등뒤에 기댈 만한 담벼락 하나만 있어도 좋으련만, 재수 없게도 사방은 모두 공기뿐이었다 그녀는 몇 번이나 그대로 누워 버리려고 마음먹었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왜냐하면 그녀에게 옷이라곤 지금 입고 있는 이 한 벌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이제 그녀는 몹시 상심해서 엉엉 소리내어 울기 시작했다.
"내가 죄라도 지었나?"
그녀는 혼자말을 하듯 울다가 말하다가 했다.
"물건을 훔치지도 않았고, 사람을 죽인 적도 없는데..."
게다가 자신의 가련한 신세를 이토록 뚜렷하게 느낀 것은 처음이라 더 서러워서 울었다. 한
끼의 밥을 해결하기 위해 사방으로 뛰어다니고 수많은 사람을 만나면서도 갖가지 모욕을 다 참아 왔는데! 지금은 죄인보다도 더 못한 꼴이었다. 그녀는 여태껏 죄인이라도 지금의 자신처럼 이 깊은 밤에 발틀을 차고 바깥에 나와 있는 경우를 본 적이 없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울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입을 다물고 두려움에 떨며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캄캄한 어둠을 둘러보았다.
"날 꼭 이렇게 밤중에 내놓을 필요는 없잖아! 여보세요!"
생각지도 못하게 큰 소리가 튀어나오자 불쑥 용기가 생겨났다. 그녀는 더 이상 울지 않았지만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그럴수록 분노도 더욱 커졌다. 어떻게 해서든지 이렇게 밤을 지샐 수는 없다는 생각이 갑자기 들었던 것이다.
그녀가 한창 소리를 지르고 있는데 향공소 문이 삐걱 하고 열리며 소사가 나왔다.
"당신 지금 억울허다고 하소연하는 것이여?"
말투는 결코 거칠지 않았다.
"당연히 억울하죠!"
샤오꾸이훤이 대답했다. 그녀의 목적은 곤경에서 벗어나는 것이었다.
"당신도 좀 보세요. 춥고 배고프고 허리도 다 내려앉았다구요! 난 도둑질도 안 했고, 사람을
죽이지도 않았는데..."
"안됐지만서도 발틀을 채운 건 나가 아녀!"
소사는 억울하다는 듯이 말하는 도중에 끼여들었다.
"내가 지금 발틀 채운 게 누군가를 따지나요! 죄인이라도 바람 피할 장소와 풀 몇 포기는 있는 법인데..."
순간 그녀는 대들 기운조차 다 빠져 버려 오열을 터뜨렸다. 소사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꼭 나가 저 여잘 묶어 놓은 것 같네!"
잠시 후에 그는 자신을 변명하듯이 혼자말로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다시 한숨을 내쉬고 그 시커먼 대문 안으로 사라져 버렸다. 그의 이름은 셰카이타이이고, 별명은 애늙은이였다. 그는 정이 많고 행동이 좀 굼뜨며, 체격은 작지만 튼실한 농민으로, 몇 년 동안 소사를 하면서도 끝까지 촌티를 벗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느릿느릿 몸을 돌려 대문을 밀려고 막 팔을 뻗었다가 다시 느릿느릿 물러났다.
그는 반장 처야오뚱이 외치는 소리를 듣고는 한숨을 쉬며 그를 기다리고 서 있었다.
"워메 귀찮아 죽겠는거!"
그는 화가 나서 투덜거렸다.
"꼭 도둑고양이가 변해뿐진 것 같네이."
반장은 서른 살 정도 된 젊은인데, 키가 크고 손 전체에 옴이 나 있었다. 그는 소농의 외아들로 홍빠오탄즈나 카드놀이 말고는 무엇 하나 재미있는 게 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언제나 열에 아홉은 잃었다. 그는 복역한 지 아직 1년이 채 안 됐는데, 징병을 피해서 도망온 것이다. 무료함 때문에 그의 머릿속에는 일찌감치 야오꾸이훤을 욕보이려는 나쁜 마음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런 생각으로 괴로워서 떠와즈네 술집에 가서 술을 마시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반장은 교활하게 웃으면서 소사와 얼굴을 맞대고 멈춰 섰다.
"자넨 이제 자러 가지."
그는 목소리를 질질 끌며 말하고는 수줍은 듯 웃어 보였다.
"자여? 이런 복이 어딨으까!"
"이런, 사람도!"
반장은 계속해서 말했다.
"오늘밤은 자네 대신 내가 경비를 보겠다고 아까 말했잖은가!"
소사 셰카이타이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주판알을 놓아 보았다.
"오늘은 도박판에 밤샘하러 안 갔는감?"
그는 미심쩍은 듯이 물었다.
"갔다 왔지! 술도 한잔 마시고 왔는데 뭐. 자네는 이제 가 봐!"
반장은 두 손으로 제복 주머니를 툭툭 치며 변명을 했다.
소사는 눈을 치켜 뜨고 그를 바라보며 머리를 갸우뚱거리더니 그냥 자러 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하지만 그는 바로 몸을 움직이지 않고, 밖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이더니 한숨을 내쉬었다.
"꼭 나가 저 여자를 묶어 놓은 것 같네이!"
샤오꾸이훤이 아직도 게양대 옆에서 엉엉 울고 있는 소리가 어둠을 뚫고 들려 왔기 때문에 그는 마음속으로 원망하듯 혼자말을 했다.
그는 반장에게 바깥에서 이슬 맞고 있는 떠돌이 창녀에 대해서 말하려 했다. 그러나 그는 하품을 한 번 하고 나서 결국 이렇게 말했을 뿐이었다.
"오늘 저녁에는 우리 두 사람밖에 없는 것이여!"
소사는 몸을 돌려 들어가고 반장은 대문 옆에 남아 있었다.
자신의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반장은 이미 적지 않게 고심을 했는데, 그 일의 관건은 셰카이타이를 떨쳐 버리는 데 있었다. 사무원은 향공소 안에 살지 못하게 되어 있고, 향장은 병원에 가려고 성에 들어간 상태였다. 방은 모두 합해야 소사가 사는 서너 개밖에 없었는데, 거의 다 살림집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속이는 건 쉬웠다. 하지만 돌아갈 집이 없는 셰카이타이
때문에 여간 골치 아픈 게 아니었다. 그는 두세 차례나 대신 당직을 서 주겠다고 제의를 했었지만 성실한 소사는 반장이 도박 중독증을 견디지 못하고 도박판으로 달려갈까 봐 시종 마음을 놓지 못했다. 반장은 셰카이타이가 가지 않겠다고 할까봐 내심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셰카이타이가 순순히 들어가 준 것이다. 하지만 반장은 샤오꾸이훤을 찾아 곧바로 게양대로 가지는 않았다. 완벽을 기하기 위해 그는 일부러 문을 반쯤 열어 놓고 천천히 들어갔다. 향공소는 원래 대신전이었는데, 그 정중앙에 있던 동악대제는 이미 다른 데로 옮겨 갔다. 그리고 가운데 대들보 위에는 너무 오래 되어서 고장이 난 램프 하나가 걸려 있으며, 그 밑에는 긴 식탁과 의자 몇 개가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양쪽 행랑에 쭉 늘어서 있는 노복류의 신상들은 아직 그대로 있었다. 그 중 뚱보 영감이라고 불리는 신상의 발 아래에는 깨진 그릇으로 만든 기름등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신좌 아래는 한 더미의 땔감이 활활 떠오르고 있었다. 반장은 불을 쬐며 신전 안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그는 셰카이타이가 하품을 하는 소리며, 털석거리며 짚신을 벗어 던지는 소리를 들었다. 이어서 나무 침대가 뿌지직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숨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래도 반장은 여전히 꼼짝 하지 않았다. 다시 따분한 기분이 그를 덮쳐 왔다. 그는 셰카이타이에게 옮았는지 하품을 참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피곤함까지 밀려왔다. 더군다나 불을 좀 쪼이고 났더니 옴이 더욱 극성맞게 그를 괴롭혔다. 만약 어느 누가 옴이 옮았다면 어떤 행복이라도 그 사람을 유혹하기는 힘들 것이다. 오히려 있는 힘껏 꼬집어 줄 때 크나큰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는 그냥 멍청하게 한 번 웃고 한숨을 내쉬고 난 후에, 마침내 결심하고 일어섰다. 그는 가만히 문을 열고 도둑처럼 어둠 속으로 미끄러져 갔다.
그 가련한 여인은 아직도 울고 있었으나 누가 그녀를 구출해 주리라는 환상은 더 이상 품지
않았다. 그녀는 소사의 출현과 그의 말을 통해 비로소 자신이 오늘 얼마나 재수 없는 일을 당했던가를 떠올릴 수 있었다. 자신을 혼내던 그 부인의 대단한 위풍은 그녀로선 여태껏 본 적이 없을 정도였다. 모두들 그 부인의 말을 인정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부인이 공격을 퍼붓고 있을 때 거리에 있던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 부인을 돕고 있었다.
그녀가 알던 사람들 중 두엇도 질투하는 마누라의 학대를 받은 적이 있었다. 어떤 이는 겨우 한 벌뿐인 옷을 찢기우고, 또 어떤 이는 기와 조각에 맞아 얼굴에 상처를 입는 바람에 오랫동안 일을 할 수 없었다. 그게 더 심한 경우지만, 그녀는 차라리 그러길 바랐다. 왜냐하면 지금 그녀는 결코 한 벌의 옷이 아깝거나 얼굴이 아쉬운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다만 먹을 것과 온기만 얻을 수 있다면, 그리고 정말 누울 수만 있으면 바랄 게 없었다. 다른 건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