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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 嘲地官 조지관
風水先生本是虛 指南指北舌飜空 풍수선생본시허 지남지북설번공
靑山若有公侯地 何不當年葬爾翁 청산약유공후지 하불당년장이옹
지관을 놀리다
풍수 선생은 본래 허망 된 말만 하는 사람이라,
남이다 북이다 가리키며 부질없이 혀를 놀리네.
청산 속에 만약 명당자리가 있다면,
어찌 네 아비를 파묻지 않았나.
39. 嘲地師 조지사
可笑龍山林處士 暮年何學李淳風 가소용산임처사 모년하학이순풍
雙眸能貫千峰脈 兩足徒行萬壑空 쌍모능관천봉맥 양족도행만학공
顯顯天文猶未達 漠漠地理豈能通 현현천문유미달 막막지리기능통
不如歸飮重陽酒 醉抱瘦妻明月中 불여귀음중양주 취포수처명월중
지사를 조롱함
가소롭구나 용산에 사는 임처사여,
늘그막에 어찌하여 이순풍을 배웠나.
두 눈으로 산줄기를 꿰뚫어 본다면서,
두 다리로 헛되이 골짜기를 헤매네.
환하게 드러난 천문도 오히려 모르면서,
보이지 않는 땅 속 일을 어찌 통달했으랴.
차라리 집에 돌아가 중양절 술이나 마시고,
달빛 속에서 취하여 여윈 아내나 안아 주시게.
*이순풍(李淳風)은 당나라 사람으로 역산(曆算)에 밝았고 혼천의(渾天儀)를 만들었다.
*천체의 형상도 모르면서 땅의 이치를 안답시고 명당이라는 곳을 찾기 위해 수많은 산봉우리와 골짜기를 누비고 다녔으나 모두 헛수고를 한 것이니 그만 두고 집으로 돌아가라고 조롱을 했다.
40. 溺缸 요항
賴渠深夜不煩扉 令作團隣臥處圍 뢰거심야부번비 영작단린와처위
醉客持來端膽膝 態娥挾坐惜衣收 취객지래단담슬 태아협좌석의수
堅剛做體銅山局 灑落傳聲練瀑飛 견강주체동산국 쇄락전성연폭비
最是功多風雨曉 偸閑養性使人肥 최시공다풍우효 투한양성사인비
요강
네가 있어 깊은 밤에도 사립문 번거롭게 여닫지 않아,
사람과 이웃하여 잠자리 벗이 되었구나.
술 취한 사내는 너를 가져다 무릎 꿇고,
아름다운 여인네는 널 끼고 앉아 살며시 옷자락을 걷네.
단단한 그 모습은 구리산 형국이고,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소리는 비단폭포를 연상케 하네.
비바람 치는 새벽에 가장 공이 많으니,
한가한 성품 기르며 사람을 살찌게 하네.
*오줌이 거름이 되고 또 비바람 치는 새벽에도 문밖에 나가지 않고 편안히 일을 보게 하므로 사람을 살찌게 한다. 그때까지 어느 누구도 다루지 않았던 생활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택하여 자유자재로 표현했다.
41. 博 박
酒老詩豪意氣同 戰場方設一堂中 주로시호의기동 전장방설일당중
飛包越處軍威壯 猛象준前陳勢雄 비포월처군위장 맹상준전진세웅
直走輕車先犯卒 橫行駿馬每窺宮 직주경차선범졸 횡행준마매규궁
殘兵散盡連呼將 二士難存一局空 잔병산진연호장 이사난존일국공
장기
술친구나 글친구들이 뜻이 맞으면,
마루에 마주 앉아서 한바탕 싸움판을 벌이네.
포가 날아오면 군세가 장해지고,
사나운 상이 웅크리고 앉으면 진세가 굳어지네.
치달리는 차가 졸을 먼저 따먹자,
옆으로 달리는 날쌘 말이 궁을 엿보네.
병졸들이 거의 다 없어지고 잇달아 장군을 부르자,
두 사가 견디다 못해 장기판을 쓸어버리네.
*주객(酒客)과 시우(詩友)가 대청 마루에서 장기를 두고 있는 모습을 읊었다. 포(包), 상(象), 차(車), 마(馬)의 활약이 잘 묘사되어 있다.
42. 棋 기
縱橫黑白陳如圍 勝敗專由取舍機 종횡흑백진여위 승패전유취사기
四皓閑秤忘世坐 三淸仙局爛柯歸 사호한칭망세좌 삼청선국난가귀
詭謨偶獲擡頭點 誤着還收擧手揮 궤모우획대두점 오착환수거수휘
半日輪영更挑戰 丁丁然響到斜輝 반일윤영갱도전 정정연향도사휘
바둑
흑백이 종횡으로 에워싼 것처럼 진을 치니,
승패는 오로지 때를 잡고 못 잡음에 달렸네.
사호가 은거하여 바둑으로 시국을 잊었고,
삼청 신선들 대국에 도끼자루 다 썩더라.
뜻밖의 속임수로 세력 뻗을 점도 얻고,
잘못 두고 물러 달라 손 휘두르기도 하는구나.
한나절 승부를 걸고 다시금 도전하니,
바둑알 치는 소리에 석양이 빛나네.
*사호(四皓)는 진시황 때 난을 피해 상산(商山)에 숨은 네 은사(隱士). 동원공(東園公), 기리계(綺里季), 하황공(夏黃公), 녹리선생(녹里先生).
*삼청(三淸)은 옥청(玉淸), 상청(上淸), 태청(太淸)으로 신선들이 산다는 궁의 이름이다.
43. 眼鏡 안경
江湖白首老如鷗 鶴膝烏精價易牛 강호백수노여구 학슬오정가역우
環若張飛준蜀虎 瞳成項羽沐荊후 환약장비준촉호 동성항우목형후
삽疑濯濯穿籬鹿 快讀關關在渚鳩 삽의탁탁천리록 쾌독관관재저구
少年多事懸風眼 春陌堂堂倒紫류 소년다사현풍안 춘맥당당도자류
안경
강호에 사람이 늙어 갈매기처럼 희어졌는데,
검은 알에 흰 테 안경을 쓰니 소 한 마리 값일세.
고리눈은 장비와 같아 촉나라 범이 웅크려 앉았고,
겹눈동자는 항우와 같아 목욕한 초나라 원숭이일세.
얼핏 보면 알이 번쩍여 울타리를 빠져 나가는 사슴 같은데,
노인이 시경 관저편을 신나게 읽고 있네.
소년은 일도 없이 멋으로 안경 걸치고,
봄 언덕으로 당나귀 거꾸로 타고 당당히 다니네.
*각 행의 끝나는 글자들이 모두 동물 이름이다. 갈매기 구(鷗), 소 우(牛), 범 호(虎), 원숭이 후(후), 사슴 록(鹿), 비둘기 구(鳩), 눈 안(眼), 당나귀 류(류)
*접을 수 있는 안경다리가 두루미 무릎을 닮았다고 해서 학슬(鶴膝)이라 불렀다. *오정(烏精)은 거무스럼한 안경알을 가리킨다.
44. 磨石 마석
誰能山骨作圓圓 天以順還地自安 수능산골작원원 천이순환지자안
隱隱雷聲隨手去 四方飛雪落殘殘 은은뇌성수수거 사방비설낙잔잔
맷돌
누가 산 속의 바윗돌을 둥글게 만들었나,
하늘만 돌고 땅은 그대로 있네.
은은한 천둥소리가 손 가는 대로 나더니,
사방으로 눈싸라기 날리다 잔잔히 떨어지네.
*돌로 만든 무생물체도 그가 노래하면 살아 움직이는 생명체로 태어났다.
45. 錢 전
周遊天下皆歡迎 興國興家勢不輕 주유천하개환영 흥국흥가세불경
去復還來來復去 生能死捨死能生 거복환래래복거 생능사사사능생
돈
천하를 두루 돌아 다니며 어디서나 환영받으니,
나라와 집안을 흥성케 하여 그 세력이 가볍지 않네.
갔다가 다시 오고 왔다가는 또 가니,
살리고 죽이는 것도 마음대로 하네.
*죽어가는 사람도 살리고 산 사람도 죽게 만드는 것이 돈이니 당시에도 그 위력이 대단했던 모양이다.
46. 落花吟 낙화음
曉起飜驚滿山紅 開落都歸細雨中 효기번경만산홍 개락도귀세우중
無端作意移粘石 不忍辭枝倒上風 무단작의이점석 불인사지도상풍
鵑月靑山啼忽罷 燕泥香逕蹴全空 견월청산제홀파 연니향경축전공
繁華一度春如夢 坐嘆城南頭白翁 번화일도춘여몽 좌탄성남두백옹
떨어진 꽃
새벽에 일어나 온 산이 붉은 걸 보고 놀랐네,
가랑비 속에 피었다 가랑비 속에 지네.
끝없이 살고 싶어 바위 위에도 달라붙고,
가지를 차마 떠나지 못해 바람 타고 오르기도 하네.
두견새는 푸른 산에서 슬피 울다가 그치고,
제비는 진흙에 붙은 꽃잎을 차다가 그저 올라가네.
번화한 봄날이 한차례 꿈같이 지나가자,
머리 흰 성남의 늙은이가 앉아서 탄식하네.
*초목과 꽃이 풍성한 봄이 지나감을 아쉬워하여 읊은 작품이다.
47. 雪中寒梅 설중한매
雪中寒梅酒傷妓 風前槁柳誦經僧 설중한매주상기 풍전고류송경승
栗花落花尨尾短 榴花初生鼠耳凸 율화낙화방미단 유화초생서이철
눈 속의 차가운 매화
눈 속에 핀 차가운 매화는 술에 취한 기생 같고,
바람 앞에 마른 버들은 불경을 외는 중 같구나.
떨어지는 밤꽃은 삽살개의 짧은 꼬리 같고,
갓 피어나는 석류꽃은 뾰족한 쥐의 귀 같구나.
48. 雪日 설일
雪日常多晴日或 前山旣白後山亦 설일상다청일혹 전산기백후산역
推窓四面琉璃壁 分咐寺童故掃莫 추창사면유리벽 분부사동고소막
눈 오는 날
늘 눈이 내리더니 어쩌다 개어,
앞산이 희어지고 뒷산도 희구나.
창문을 밀쳐 보니 사면이 유리벽이라,
아이에게 시켜서 쓸지 말라고 하네.
*김삿갓이 어느 절에 가서 하룻밤 재워 달라고 청하자 중이 거절했다. 김삿갓이 절을 나가려 하자 혹시 김삿갓이 아닌가 생각하고 시를 짓게 했다. 혹(或), 역(亦), 벽(壁), 막(莫) 같은 어려운 운을 불러 괴롭혔지만 이 시를 짓고 잠을 자게 되었다.
49. 雪 설
天皇崩乎人皇崩 萬樹靑山皆被服 천황붕호인황붕 만수청산개피복
明日若使陽來弔 家家첨前淚滴滴 명일약사양내조 가가첨전누적적
눈
천황씨가 죽었나 인황씨가 죽었나,
나무와 청산이 모두 상복을 입었네.
밝은 날에 해가 찾아와 조문한다면,
집집마다 처마 끝에서 눈물 뚝뚝 흘리겠네.
*천황씨와 인황씨는 고대 중국 전설에 나오는 임금이다. 눈이 녹아 흐르는 물을 임금의 죽음을 슬퍼하여 흘리는 눈물에 비유하였다.
50. 蚤 조
貌似棗仁勇絶倫 半風爲友蝎爲隣 모사조인용절륜 반풍위우갈위린
朝從席隙藏身密 暮向衾中犯脚親 조종석극장신밀 모향금중범각친
尖嘴嚼時心動索 赤身躍處夢驚頻 첨취작시심동색 적신약처몽경빈
平明點檢肌膚上 剩得桃花萬片春 평명점검기부상 잉득도화만편춘
벼룩
모습은 대추씨 같지만 용기가 뛰어나,
이와는 친구 삼고 전갈과는 이웃일세.
아침에는 자리 틈에 몸을 숨겨 찾을 수 없고,
저녁에는 이불 속에 다리 물려고 가까이 오네.
뾰족한 주둥이에 물릴 때마다 찾아볼 마음이 생기고,
알몸으로 튈 때마다 단꿈이 자주 깨네.
밝은 아침에 일어나 살갗을 살펴보면,
복사꽃 만발한 봄날 경치를 보는 것 같네.
*벼룩의 모양과 습성을 묘사하고 벼룩에 물린 사람의 피부를 복숭아꽃이 만발한 봄 경치에 비유하였다.
51. 猫 묘
乘夜橫行路北南 中於狐狸傑爲三 승야횡행로북남 중어호리걸위삼
毛分黑白渾成繡 目狹靑黃半染藍 모분흑백혼성수 자협청황반염람
貴客床前偸美饌 老人懷裡傍溫衫 귀객상전투미찬 노인회리방온삼
那邊雀鼠能驕慢 出獵雄聲若大膽 나변작서능교만 출렵웅성약대담
고양이
밤에는 남북 길을 제멋대로 다니며,
여우와 삵괭이 사이에 끼어 삼걸이 되었네.
털은 흑백이 뒤섞여 수를 놓고,
눈은 청황색에다 남색까지 물들었네.
귀한 손님 밥상에선 맛있는 음식을 훔쳐 먹고,
늙은이 품속에서 따뜻한 옷에 덮여 자니.
쥐가 어디에 있나 찾아 나설 땐 교만 떨다가,
야옹소리 크게 지를 땐 간담이 크기도 해라.
*예민한 관찰과 기발한 착상으로 고양이의 생김새와 습성을 표현하였다.
52. 老牛 노우
瘦骨稜稜滿禿毛 傍隨老馬兩分槽 수골릉릉만독모 방수노마양분조
役車荒野前功遠 牧竪靑山舊夢高 역거황야전공원 목수청산구몽고
健우常疎閑臥圃 苦鞭長閱倦登皐 건우상소한와포 고편장열권등고
可憐明月深深夜 回憶平生만積勞 가련명월심심야 회억평생만적노
늙은 소
파리한 뼈는 앙상하고 털마저 빠졌는데,
늙은 말 따라서 마굿간을 같이 쓰네.
거친 들판에서 짐수레 끌던 옛 공은 멀어지고,
목동 따라 푸른 들에서 놀던 그 시절 꿈같아라.
힘차게 끌던 쟁기도 텃밭에 한가히 놓였는데,
채찍 맞으며 언덕길 오르던 그 시절 괴로웠었지.
가련해라 밝은 달밤은 깊어만 가는데,
한평생 부질없이 쌓인 고생을 돌이켜보네.
*세월의 무상함은 인간에게서만 느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늙은 소를 보고서도 세월이 앗아간 전날의 혈기 넘쳤던 때를 생각할 수 있다.
53. 松餠 송병
手裡廻廻成鳥卵 指頭個個合蚌脣 수리회회성조란 지두개개합방순
金盤削立峰千疊 玉箸懸燈月半輪 금반삭립봉천첩 옥저현등월반륜
송편
손에 넣고 뱅뱅 돌리면 새알이 만들어지고,
손가락 끝으로 낱낱이 파서 조개 같은 입술을 맞추네.
금 쟁반에 천봉우리를 첩첩이 쌓아 올리고,
등불을 매달고 옥 젓가락으로 반달 같은 송편을 집어 먹네.
*새알을 만들고 조개 같은 입술을 맞추고 반달 같은 송편을 먹는 묘사에서 시인의 관찰력과 재치를 볼 수 있다.
54. 白鷗時 백구시
沙白鷗白兩白白 不辨白沙與白鷗 사백구백양백백 불변백사여백구
漁歌一聲忽飛去 然後沙沙復鷗鷗 어가일성홀비거 연후사사부구구
갈매기
모래도 희고 갈매기도 희니,
모래와 갈매기를 분간할 수 없구나.
어부가(漁夫歌) 한 곡조에 홀연히 날아 오르니,
그제야 모래는 모래, 갈매기는 갈매기로 구별되누나.
55. 入金剛 입금강
緣靑碧路入雲中 樓使能詩客住공 연청벽로입운중 누사능시객주공
龍造化含飛雪瀑 劒精神削揷天峰 용조화함비설폭 검정신삭삽천봉
仙禽白幾千年鶴 澗樹靑三百丈松 선금백기수년학 간수청삼백장송
僧不知吾春睡腦 忽無心打日邊鐘 승부지오춘수뇌 홀무심타일변종
금강산에 들어가다
푸른 길 따라서 구름 속으로 들어가니,
누각이 시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네.
눈발 흩날리며 걸린 폭포는 용의 조화가 분명하고,
하늘 찌르며 솟은 봉우리는 칼로 신통하게 깎았네.
속세 떠난 흰 학은 몇 천 년이나 살았는지,
시냇가 푸른 소나무도 삼백 길이나 되어 보이네.
스님은 내가 봄잠 즐기는 것도 알지 못하고,
무심하게 낮 종을 치고 있구나.
*봄날 금강산으로 들어가면서 주위에 펼쳐진 경치의 아름다움을 읊었다.
56. 答僧金剛山詩 답승금강산시
百尺丹岩桂樹下 柴門久不向人開 백척단암계수하 시문구불향인개
今朝忽遇詩仙過 喚鶴看庵乞句來 -僧 금조홀우시선과 환학간암걸구래 -승
矗矗尖尖怪怪奇 人仙神佛共堪凝 촉촉첨첨괴괴기 인선신불공감응
平生詩爲金剛惜 詩到金剛不敢詩 -笠 평생시위금강석 시도금강불감시 -립
스님에게 금강산 시를 답하다
백 척 붉은 바위 계수나무 아래 암자가 있어,
사립문을 오랫동안 사람에게 열지 않았소.
오늘 아침 우연히 시선께서 지나는 것을 보고,
학 불러 암자를 보이게 하고 시 한 수를 청하오. - 스님
우뚝우뚝 뾰족뾰족 기기괴괴한 가운데,
인선(人仙)과 신불(神佛)이 함께 엉겼소.
평생 금강산 위해 시를 아껴 왔지만,
금강산에 이르고 보니 감히 시를 지을 수가 없소. -삿갓
*한 승려의 청으로 금강산을 읊으려 하나 너무나 장엄하고 기이한 산세에 압도되어 시를 짓지 못하겠다는 내용이다.
57. 妙香山詩 묘향산시
平生所欲者何求 每擬妙香山一遊 평생소욕자하구 매의묘향산일유
山疊疊千峰萬인 路層層十步九休 산첩첩천봉만인 노층층십보구휴
묘향산
평생소원이 무엇이었던가, 묘향산에 한번 노니는 것이었지.
산 첩첩 천 봉 만 길에, 길 층층 열 걸음에 아홉 번은 쉬네.
*평소에 한번 와 보고 싶었던 묘향산의 겹겹이 둘러싸인 산세와 산봉우리의 빼어남을 노래하였다.
58. 九月山峰 구월산봉
昨年九月過九月 今年九月過九月 작년구월과구월 금년구월과구월
年年九月過九月 九月山光長九月 연연구월과구월 구월산광장구월
구월산
지난해 구월에 구월산을 지났는데, 올해 구월에도 구월산을 지나네.
해마다 구월에 구월산을 지나니. 구월산 풍경은 늘 구월일세.
59. 金剛山 금강산
松松栢栢岩岩廻 水水山山處處奇 송송백백암암회 수수산산처처기
금강산
소나무와 소나무, 잣나무와 잣나무, 바위와 바위를 도니,
물과 물, 산과 산이 곳곳마다 기묘하구나.
*운의 반복으로 시각적, 청각적 효과를 높혔다.
60. 賞景 상경
一步二步三步立 山靑石白間間花 일보이보삼보립 산청석백간간화
若使畵工模此景 其於林下鳥聲何 약사화공모차경 기어림하조성하
경치를 즐기다
한 걸음 두 걸음 세 걸음 가다가 서니,
산 푸르고 바윗돌 흰데 틈틈히 꽃이 피었네.
화공으로 하여금 이 경치를 그리게 한다면,
숲 속의 새소리는 어떻게 하려나.
*그에게 있어 자연은 단순히 보고 즐기는 대상이 아니었다. 방랑의 동반자요 거처가 되었으니 발길 닿은 산천경개는 모두 그의 노래가 되었다. 화가가 아름다운 봄의 경치는 그릴 수 있겠지만 숲에서 지저귀는 새들의 울음소리는 어떻게 그려낼 수 있겠는가.
61. 嶺南述懷 영남술회
超超獨倚望鄕臺 强壓覇愁快眼開 초초독의망향대 강압기수쾌안개
與月經營觀海去 乘花消息入山來 여월경영관해거 승화소식입산래
長遊宇宙餘雙履 盡數英雄又一杯 장유우주여쌍극 진수영웅우일배
南國風光非我土 不如歸對漢濱梅 남국풍광비아토 불여귀대한빈매
영남 술회
높다란 망향대에 나 홀로 기대서서,
나그네 시름을 억누르고 사방을 둘러보았네.
달을 따라 드나드는 바다도 둘러보고,
꽃소식 알고 싶어 산 속으로 들어왔네.
오랫동안 세상 떠돌다 보니 나막신 한 짝만 남았는데,
영웅들을 헤아리며 술 한 잔을 다시 드네.
남국의 자연이 아름다워도 내 고장 아니니,
한강으로 돌아가 매화꽃이나 보는 게 낫겠네.
*아무리 남쪽 지방의 경치가 좋다한들 집으로 돌아가 물가에 핀 매화 보는 것만 못하니 망향대에 올라 고향을 떠난 자신의 기구한 팔자를 읊고 있다.
62. 淮陽過次 회양과차
山中處子大如孃 緩著粉紅短布裳 산중처자대여양 완저분홍단포상
赤脚낭창羞過客 松籬深院弄花香 적각낭창수과객 송리심원농화향
회양을 지나다가
산 속 처녀가 어머니만큼 커졌는데,
짧은 분홍 베치마를 느슨하게 입었네.
나그네에게 붉은 다리를 보이기 부끄러워,
소나무 울타리 깊은 곳으로 달려가 꽃잎만 매만지네.
*'낭'은 足(족)부에 良, '창'은 足(족)부에 倉.
*김삿갓이 물을 얻어먹기 위해 어느 집 사립문을 들어 가다가 울타리 밑에 핀 꽃을 바라보고 있는 산골 처녀를 발견했다. 처녀는 나그네가 있는 줄도 모르고 꽃을 감상하고 있다가 인기척을 느끼고는 짧은 치마 아래 드러난 다리를 감추려는 듯 울타리 뒤에 숨었다.
63. 過寶林寺 과보림사
窮達在天豈易求 從吾所好任悠悠 궁달재천개이구 종오소호임유유
家鄕北望雲千里 身勢南遊海一구 가향북망운천리 신세남유해일구
掃去愁城盃作추 釣來詩句月爲鉤 소거수성배작추 조래시구월위구
寶林看盡龍泉又 物外閑跡共比丘 보림간진용천우 물외한적공비구
보림사를 지나며
빈궁과 영달은 하늘에 달렸으니 어찌 쉽게 구하랴,
내가 좋아하는 대로 유유히 지내리라.
북쪽 고향 바라보니 구름 천 리 아득한데,
남쪽에 떠도는 내 신세는 바다의 물거품일세.
술잔을 빗자루 삼아 시름을 쓸어버리고,
달을 낚시 삼아 시를 낚아 올리네.
보림사를 다 보고나서 용천사에 찾아오니,
속세 떠나 한가한 발길이 비구승과 한가지일세.
*보림사는 전남 장흥 가지산에 있는 절, 용천사는 전남 함평 무악산에 있는 절이다.
64. 寒食日登北樓吟 한식일등북루음
十里平沙岸上莎 素衣靑女哭如歌 십리평사안상사 소의청녀곡여가
可憐今日墳前酒 釀得阿郞手種禾 가련금일분전주 양득아랑수종화
한식날 북루에 올라 읊다
십 리 모래 언덕에 사초꽃이 피었는데,
소복 입은 젊은 여인이 노래처럼 곡하네.
가련해라 지금 무덤 앞에 부은 술은,
남편이 심었던 벼로 빚었을 테지.
*김삿갓이 원산에 이르러 명사십리(明沙十里)를 지나다가 정자에 올라 쉬고 있는데 근처에서 어린 과부가 남편 무덤 앞에 술잔을 올리며 내는 곡소리가 슬픈 노래처럼 들려 왔다.
65. 泛舟醉吟 범주취음
江非赤壁泛舟客 地近新豊沽酒人 강비적벽범주객 지근신풍고주인
今世英雄錢項羽 當時辯士酒蘇秦 금세영웅전항우 당시변사주소진
배를 띄우고 취해서 읊다
강은 적벽강이 아니지만 배를 띄웠지,
땅은 신풍에 가까워 술을 살 수 있네.
지금 세상에 영웅이 따로 있으랴, 돈이 바로 항우이고,
변사가 따로 있으랴, 술이 바로 소진이지.
*신풍(新豊)은 한대(漢代)의 현(縣) 이름으로 신풍미주(新豊美酒)라 하여 좋은 술이 나왔다고 함. *항우(項羽)는 초(楚)나라를 세워 한나라 유방과 함께 진나라를 멸망시킨 영웅. *소진(蘇秦)은 중국 전국시대에 말 잘하던 유세객(遊設客)이다. *지금 김삿갓이 놀고 있는 강은 소동파가 적벽부(赤壁賦)를 읊었던 그 적벽강은 아니지만 땅은 맛있는 술이 나왔던 신풍과 닮았다. 오늘날의 세상은 돈만 있으면 항우 같은 힘을 낼 수도 있고 술에 취하면 말 잘하는 소진도 될 수 있다.
66. 吉州明川 길주명천
吉州吉州不吉州 許可許可不許可 길주길주불길주 허가허가불허가
明川明川人不明 漁佃漁佃食無漁 명천명천인불명 어전어전식무어
길주 명천
길주 길주 하지만 길하지 않은 고장,
허가 허가 하지만 허가하는 것은 없네.
명천 명천 하지만 사람은 밝지 못하고,
어전 어전 하지만 밥상에는 고기 없네.
*어전은 함경도 명천군 기남면 어전리이다.
*길주는 나그네를 재워주지 않는 풍속이 있어 허가가 많이 살지만 잠자도록 허가해 주지 않고, 어전(漁佃)은 물고기 잡고 짐승을 사냥한다는 뜻인데 이 동네 밥상에는 고기가 오르지 않음을 풍자한 시이다.
67. 看山 간산
倦馬看山好 執鞭故不加 권마간산호 집편고불가
岩間재一路 煙處或三家 암간재일로 연처혹삼가
花色春來矣 溪聲雨過耶 화색춘래의 계성우과야
渾忘吾歸去 奴曰夕陽斜 혼망오귀거 노왈석양사
산을 구경하다
게으른 말을 타야 산 구경하기가 좋아서,
채찍질 멈추고 천천히 가네.
바위 사이로 겨우 길 하나 있고,
연기 나는 곳에 두세 집이 보이네.
꽃 색깔 고우니 봄이 왔음을 알겠고,
시냇물 소리 크게 들리니 비가 왔나 보네.
멍하니 서서 돌아갈 생각도 잊었는데,
해가 진다고 하인이 말하네.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 했으니 산을 구경하기에는 빨리 달리는 말보다 게으른 말이 좋다는 것이다.
68. 還甲宴 환갑연
彼坐老人不似人 疑是天上降眞仙 피좌노인불사인 의시천상강진선
其中七子皆爲盜 偸得碧桃獻壽筵 기중칠자개위도 투득벽도헌수연
환갑 잔치
저기 앉은 저 노인은 사람 같지 않으니,
아마도 하늘 위에서 내려온 신선일 테지.
여기 있는 일곱 아들은 모두 도둑놈이니,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를 훔쳐다 환갑 잔치에 바쳤네.
*환갑 잔치집에 들린 김삿갓이 첫 구절을 읊자 자식들이 모두 화를 내다가 둘째 구절을 읊자 모두들 좋아하였다. 셋째 구절을 읊자 다시 화를 냈는데 넷째 구절을 읊자 역시 모두들 좋아하였다. *서왕모의 선도 복숭아는 천 년에 한번 열리는 복숭아로 이것을 먹으면 장수하였다.
69. 元生員 원생원
日出猿生原 猫過鼠盡死 일출원생원(元生員) 묘과서진사(徐進士)
黃昏蚊첨至 夜出蚤席射 황혼문첨지(文僉知) 야출조석사(趙碩士)
원생원
해 뜨자 원숭이가 언덕에 나타나고,
고양이 지나가자 쥐가 다 죽네.
황혼이 되자 모기가 처마에 이르고,
밤 되자 벼룩이 자리에서 쏘아대네.
*김삿갓이 북도지방의 어느 집에 갔다가 그곳에 모여 있던 마을 유지들을 놀리며 지은 시이다. 구절마다 끝의 세 글자는 원 생원(元生員), 서 진사(徐進士), 문 첨지(文僉知), 조 석사(趙碩士)의 음을 빌려 쓴 것이다.
70. 難避花 난피화
靑春抱妓千金開 白日當樽萬事空 청춘포기천금개 백일당준만사공
鴻飛遠天易隨水 蝶過靑山難避花 홍비원천이수수 접과청산난피화
피하기 어려운 꽃
청춘에 기생을 안으니 천금이 초개같고,
대낮에 술잔을 대하니 만사가 부질없네.
먼 하늘 날아가는 기러기는 물 따라 날기 쉽고,
청산을 지나가는 나비는 꽃을 피하기 어렵네.
*김삿갓이 어느 마을을 지나가는데 청년들이 기생들과 놀고 있었다. 김삿갓이 부러워하여 한자리에 끼어 술을 얻어 마신 뒤 이 시를 지어 주었다.
71. 妓生合作 기생합작
金笠. 平壤妓生何所能 김립. 평양기생하소능
妓生. 能歌能舞又詩能 기생. 능가능무우시능
金笠. 能能其中別無能 김립. 능능기중별무능
妓生. 月夜三更呼夫能 기생. 월야삼경호부능
기생과 함께 짓다
평양 기생은 무엇에 능한가. -김삿갓
노래와 춤 다 능한 데다 시까지도 능하다오.-기생
능하고 능하다지만 별로 능한 것 없네. -김삿갓
달 밝은 한밤중에 지아비 부르는 소리에 더 능하다오. -기생
*평양감사가 잔치를 벌이면서 능할 능(能)자 운을 부르자 김삿갓이 먼저 한 구절을 짓고 기생이 이에 화답하였다.
72. 沃溝金進士 옥구김진사
沃溝金進士 與我二分錢 옥구김진사 여아이분전
一死都無事 平生恨有身 일사도무사 평생한유신
옥구 김 진사
옥구 김 진사가,
내게 돈 두 푼을 주었네.
한번 죽어 없어지면 이런 꼴 없으련만.
육신이 살아 있어 평생에 한이 되네.
*김삿갓이 옥구 김 진사 집을 찾아가 하룻밤 묵기를 청하자 돈 두 푼을 주며 내쫓았다. 김삿갓이 이 시를 지어 대문에 붙이니 김 진사가 이 시를 보고 자기 집에다 재우고 친교를 맺었다.
73. 窓 창
十字相連口字橫 間間棧道峽如巴 십자상연구자횡 간간잔도협여파
隣翁順熟低首入 稚子難開擧手爬 인옹순숙저수입 치자난개거수파
창
십(十)자가 서로 이어지고 구(口)자가 빗겼는데,
사이사이 험난한 길이 있어 파촉(巴蜀)가는 골짜기 같네.
이웃집 늙은이는 순하게 고개를 숙이고 들어오지만,
어린 아이는 열기 어렵다고 손가락으로 긁어대네.
*눈 오는 날 김삿갓이 친구의 집을 찾아가자 친구가 일부러 문을 열어주지 않고 창(窓)이라는 제목을 내며 파촉 파(巴)와 긁을 파(爬)를 운으로 불렀다.
74. 兩班論 양반론
彼兩班此兩班 班不知班何班 피양반차양반 반부지반하반
朝鮮三姓其中班 駕洛一邦在上班 조선삼성기중반 가락일방재상반
來千里此月客班 好八字今時富班 내천리차월객반 호팔자금시부반
觀其爾班厭眞班 客班可知主人班 관기이반염진반 객반가지주인반
양반
네가 양반이면 나도 양반이다,
양반이 양반을 몰라보니 양반은 무슨 놈의 양반.
조선에서 세 가지 성만이 그중 양반인데,
김해 김씨가 한 나라에서도 으뜸 양반이지.
천 리를 찾아왔으니 이 달 손님 양반이고,
팔자가 좋으니 금시 부자 양반이지만.
부자 양반을 보니 진짜 양반을 싫어해,
손님 양반이 주인 양반을 알 만하구나.
*김삿갓이 어느 양반 집에 갔더니 양반입네 거드럼을 피우며 족보를 따져 물었다. 집안 내력을 밝힐 수 없는 삿갓으로서는 기분이 상할 수 밖에. 주인 양반이 대접을 받으려면 행실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먼 길 찾아온 손님을 박대하니 그 따위가 무슨 양반이냐고 놀리고 있다.
75. 暗夜訪紅蓮 암야방홍련
探香狂蝶半夜行 百花深處摠無情 탐향광접반야행 백화심처총무정
欲採紅蓮南浦去 洞庭秋波小舟驚 욕채홍련남포거 동정추파소주경
어두운 밤에 홍련을 찾아가다
향기 찾는 미친 나비가 한밤중에 나섰지만,
온갖 꽃은 밤이 깊어 모두들 무정하네.
홍련을 찾으려고 남포로 내려가다가,
동정호 가을 물결에 작은 배가 놀라네.
*동정(洞庭)은 두보의 '등악양루'(登岳陽樓)의 배경이 된 중국 호남성에 있는 동정호(洞庭湖)를 말한다.
*홍련을 만나려고 여러 여인들이 자는 기생방을 한밤중에 찾아갔는데 어둠 속에서 얼결에 추파라는 기생을 밟고는 깜짝 놀랐다.
76. 諺文風月 언문풍월
靑松듬성담성立이요 청송듬성담성립이요
人間여기저기有라. 인간여기저기유라.
所謂엇뚝삣뚝客이 소위엇뚝삣뚝객이
平生쓰나다나酒라. 평생쓰나다나주라.
언문풍월
푸른 소나무가 듬성듬성 섰고,
인간은 여기저기 있네.
엇득빗득 다니는 나그네가,
평생 쓰나 다나 술만 마시네.
* 서당에서 있을 유(有)자와 술 주(酒)자를 운으로 부르자 언문과 한자를 조합하여 지었다.
77. 開春詩會作 개춘시회작
데각데각 登高山하니 데각데각 등고산하니
시근뻘뜩 息氣散이라. 시근뻘뜩 식기산이라.
醉眼朦朧 굶어觀하니 취안몽롱 굶어관하니
욹읏붉읏 花爛漫이라. 욹읏붉읏 화난만이라.
봄을 시작하는 시회
데걱데걱 높은 산에 오르니,
씨근벌떡 숨결이 흩어지네.
몽롱하게 취한 눈으로 굶주리며 보니,
울긋불긋 꽃이 만발했네.
*산에서 시회가 열린 것을 보고 올라갔는데, 시를 지어야 술을 준다고 하자 이 시를 지었다. 사람들이 언문풍월도 시냐고 따지니 다시 한 수를 읊었다.
諺文眞書석거作하니 언문진서섞어작하니
是耶非耶皆吾子라. 시야비야개오자라.
언문과 진서를 섞어 지었으니, 이게 풍월이냐 아니냐 하는 놈들은 모두 내 자식이다.
78. 犢價訴題 독가소제
四兩七錢之犢을 放於靑山綠水하야 사양칠전지독을 방어청산녹수하야
養於靑山綠水러니 隣家飽太之牛가 양어청산녹수러니 인가포태지우가
用其角於此犢하니 如之何卽可乎리요. 용기각어차독하니 여지하즉가호리요.
송아지 값 고소장
넉 냥 일곱 푼짜리 송아지를, 푸른 산 푸른 물에 놓아서.
푸른 산 푸른 물로 길렀는데, 콩에 배부른 이웃집 소가.
이 송아지를 뿔로 받았으니, 어찌하면 좋으리까.
*가난한 과부네 송아지가 부잣집 황소의 뿔에 받혀 죽자 이 이야기를 들은 김삿갓이 이 시를 써서 관가에 바쳐 송아지 값을 받아 주었다.
79. 辱說某書堂 욕설모서당
書堂乃早知 房中皆尊物 서당내조지 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 先生來不謁 생도제미십 선생내불알
서당 욕설시
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와보니, 방 안에 모두 귀한 분들일세.
생도는 모두 열 명도 못 되고, 선생은 와서 뵙지도 않네.
*추운 겨울날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하며 내쫓는다. 인정없는 훈장을 욕하는 시. 소리나는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80. 破格詩 파격시
天長去無執 花老蝶不來 천장거무집 화로접불래
菊樹寒沙發 枝影半從池 국수한사발 지영반종지
江亭貧士過 大醉伏松下 강정빈사과 대취복송하
月利山影改 通市求利來 월이산영개 통시구이래
파격시
하늘은 멀어서 가도 잡을 수 없고,
꽃은 시들어 나비가 오지 않네.
국화는 찬 모래밭에 피어나고,
나뭇가지 그림자가 반이나 연못에 드리웠네.
강가 정자에 가난한 선비가 지나가다가,
크게 취해 소나무 아래 엎드렸네.
달이 기우니 산 그림자 바뀌고,
시장을 통해 이익을 얻어 오네.
*이 시는 모든 글자를 우리말 음으로 읽어야 한다.
천장에 거미(무)집 / 화로에 겻(접)불 내, 국수 한 사발 / 지렁(간장) 반 종지, 강정 빈 사과 / 대추 복숭아, 월리(워리) 사냥개 / 통시(변소) 구린내
81. 辱孔氏家 욕공씨가
臨門老尨吠孔孔 知是主人姓曰孔 임문노방폐공공 지시주인성왈공
黃昏逐客緣何事 恐失夫人脚下孔 황혼축객연하사 공실부인각하공
공씨네 집에서
문 앞에서 늙은 삽살개가 콩콩 짖으니,
주인의 성이 공가인 줄 알겠네.
황혼에 나그네를 쫓으니 무슨 까닭인가,
아마도 부인의 아랫구멍을 잃을까 두려운거지.
*구멍 공(孔)자를 공공(개 짖는 소리), 공가(성), 구멍이라는 세 가지 뜻으로 썼다.
82. 虛言詩 허언시
靑山影裡鹿抱卵 白雲江邊蟹打尾 청산영리녹포란 백운강변해타미
夕陽歸僧계三尺 樓上織女낭一斗 석양귀승계삼척 누상직녀낭일두
허언시
푸른 산 그림자 안에서는 사슴이 알을 품었고,
흰 구름 지나가는 강변에서 게가 꼬리를 치는구나.
석양에 돌아가는 중의 상투가 석 자나 되고,
베틀에서 베를 짜는 계집의 불알이 한 말이네.
*사슴이 알을 품고 게가 꼬리를 치며, 중이 상투를 틀고 계집에게 불알이 있을 수 있으랴. 허망하고 거짓된 인간의 모습을 헛된 말 장난으로 그림으로써 당시 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표현했다.
83. 胡地花草 호지화초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胡地無花草 胡地無花草 호지무화초 호지무화초
오랑캐 땅의 화초
오랑캐 땅에 화초가 없다지만, 오랑캐 땅이라고 화초가 없으랴.
오랑캐 땅에는 화초가 없더라도, 어찌 땅에 화초가 없으랴.
*호(胡)자에 '오랑캐'라는 명사와 '어찌'라는 부사의 뜻이 있다.
84. 樂民樓 낙민루
宣化堂上宣火黨 樂民樓下落民淚 선화당상선화당 낙민루하낙민루
咸鏡道民咸驚逃 趙岐泳家兆豈永 함경도민함경도 조기영가조기영
낙민루
선정을 펴야 할 선화당에서 화적 같은 정치를 펴니,
낙민루 아래에서 백성들이 눈물 흘리네.
함경도 백성들이 다 놀라 달아나니,
조기영의 집안이 어찌 오래 가랴.
*관찰사가 집무 보는 관아를 선화당이라고 하였다. *구절마다 동음이의어를 써서 함경도 관찰사 조기영의 학정을 풍자했다.
宣化堂(선정을 베푸는 집) 宣火黨(화적 같은 도둑떼)
樂民樓(백성들이 즐거운 집) 落民淚(백성들이 눈물 흘리다)
咸鏡道(함경도) 咸驚逃(모두 놀라 달아나다)
趙岐泳(조기영) 兆豈永(어찌 오래 가겠는가)
‘천탈관이득일점 (天脫冠而得一點)에
내실매이횡일대 (乃失梅而橫一帶)라.’
하늘 천 자가 갓을 벗고 점 하나를 얻었으니 개 犬(견)자요,
이어 내 자가 지팡이를 잃고 옆으로 띠를 둘렀으니 아들 子(자)자로다. 파자(破字)로 풀어낸 두 글자를 합치면 犬子 즉, ‘개자식’이다.
◆ 生과 死
생(生)은 새싹이 돋아나는 모양을 형상화했다. 여기서 ‘나다’라는 뜻이 나왔다. 사(死)는 앙상한 뼈(歹) 앞에 사람(人)이 꿇어앉아 애도를 표하는 모습이다. 글자에 앙상한 뼈란 뜻의 알(歹)이 들어가면 죽음과 관련된 의미를 갖는다. 따라 죽을 순(殉), 재앙 앙(殃), 쇠잔할 잔(殘) 등이 다 그렇다.
옛날엔 신분에 따라 사람의 죽음을 다섯 가지로 나누어 불렀다. 임금이 죽으면 붕(崩)이요, 제후(諸侯)가 죽으면 훙(薨), 대부(大夫)는 졸(卒), 선비는 녹(祿)을 타지 않고 죽는다는 뜻에서 불록(不祿), 서민은 사(死)라고 했다.
사(死)와 망(亡)은 구별됐다. 죽었지만 아직 장례를 치르기 전에는 사(死)라고 했다. 이때는 죽은 이를 사자(死者)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람이 죽어 장례까지 다 마친 뒤에는 망(亡)이라고 했다. 이때는 죽은 이를 망자(亡者)라고 일컫는다.
장사를 지낸다는 뜻의 장(葬)은 죽은 이의 위 아래를 풀로 덮은 것이다. 과거 사람이 죽으면 들이나 숲에 갖다 놓던 장례 습속이 반영돼 있다. 이 경우 시신(屍身)이 야생 동물에 의해 훼손당할 수 있다. 이 때문에 망자와 가까운 이들이 화살을 갖고 며칠씩 시신을 지키곤 했다. 조문한다는 뜻의 글자인 조(弔)가 활(弓)과 사람(人)으로 구성돼 있는 것은 이런 풍습을 반영하는 것이다.
최근엔 조문할 조(吊)가 널리 쓰인다. 이는 조(弔)의 속자다. 조(吊)는 곡(哭)을 하는 입(口)에 조문의 등(燈)을 매다는 헝겊(巾)이 더해져 만들어졌다. 시신을 바깥에 버린 뒤 활을 들고 지켜주던 습속이 사라지고 대신 곡을 하며 등을 달아 장례를 치르는 풍습이 유행하면서 조(弔)보다는 조(吊)가 많이 쓰이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