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여주군 흥천면과 이천군 백사면의 원적산(圓寂山) 기슭 일대에는 대대손손 부귀연화를 누릴 수 있는 금반형지(金盤形地) 집터 명당이 있다고 한다. 이곳을 찾아 집을 짓고 살면 36명의 대장군과 정승이 날것이고, 또한 36성씨가 살만한 땅이라 하여 조선시대부터 이 금반형지를 찾고자 경상, 충청, 전라, 서울 등지의 명문가들이 대거 몰려와 마을을 형성하였다. 그런데 아직도 이곳을 찾지 못했다는 사람과 안동 김씨로 세도가였던 김좌근의 99칸 집이 바로 금반형지라고 하는 사람이 있으며, 약 25년 전 충청도 진천 사람이 당시 황무지였던 이곳을 헐값에 구매하여 집을 지어 살고 있는 곳이 금반형지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있다.
비결에 의하면 원적족립 앵무삼라(圓寂簇立 鸚鵡森羅) 풍변찰거래 택리관향배(風邊察去來 澤裡觀向背) 이 글귀를 해득하면 금반형지를 찾을 수 있다고 하여 예로부터 한학자들 사이에서 널리 화제가 되었다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중국 당나라 시인 두보(杜甫)가 우리 나라를 유람하였는데 지금의 여주군과 경계를 이루는 부발면 고백리 고개에서 맞은 편에 있는 원적산 기슭의 금반형지를 발견하고 매우 기뻐서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고 하여 이곳을 두무(杜舞)재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 이여송의 지리 참모였던 두사충(杜史沖)이 그랬다는 사람도 있다. 그리고 두무재에서는 금반형지가 보이지만 원적산 기슭에 가서 찾으면 못 찾는다고 한다. 이곳이 얼마나 유명한지 조선 숙종 때 이중환의 택리지(擇里志)에서도 살만한 복거지(卜居地)로 소개하고 있다.
84. 서애 유성룡 출생과 조상 묘 이야기
안동 김씨 문중의 딸이 유씨 문중으로 시집을 갔는데 어느 해 같은 날 친정 아버지와 시아버지 초상을 같이 당하게 되었다. 양가에서는 모두 좋은 묘 자리를 찾게 되었는데 친정 김씨 집은 부자라서 전국의 유명한 풍수를 다 불러와 좋은 자리를 택하게 되었지만 가난한 시집 유씨네는 그럴 형편이 못 되었다. 그러던 중 유씨 며느리가 친정아버지 상 때문에 집에 들렸는데 사랑방에서 지관과 오빠들이 하는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지관이 오라버니들에게 하는 말이 좋은 혈처를 찾아 묘 자리를 파놓았는데 만일 내일 정오에 가서 물이 나있지 않으면 훗날 반드시 3대 정승이 날 자리다라고 하였다. 그녀는 밤중에 아무도 모르게 그 자리에 가서 물을 퍼부어 놓고 돌아왔다. 그 이튿날 김씨가 그 곳에 가보니 물이 나 있으므로 그 자리를 버리고 다른 곳에 새로운 자리를 정하였다. 유씨 며느리는 친정 집에 간청하여 시아버지를 그곳에 안장하였다. 그후로 김씨 가문은 점점 쇠퇴하고 유시 가문은 번성하게 되었는데 그 가문에서 정승이 된 유성룡이 났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