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삶과 술/ 칼럼/ 2016. 3월 10일 작성/ 권녕하
생맥주가 있는 저녁
어느 정치인이 말했다. “저녁이 있는~” 이 말은 씹으면 씹을수록 더 쫄깃쫄깃해지고 구수한 육질이 배어나온다. 평소에 값이 비싸서 혹은 이가 나빠서 못 먹거나 한 소 곱창보다 더 씹을수록 맛이 있는 말이다. 퇴근시간이 일정하면 퇴근 후 개인적 취미생활이 가능해지고 일찍 귀가 하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이 늘어나겠다. 저녁식사도 함께하고 때로는 사랑하는 아내와 생맥주 한 잔, 혹은 아이들도 동행하여 치맥 잔치. 이렇게 매일~ 저녁이 있는 대한민국이면 정말 좋겠다.
필자는 생맥주를 즐겨 마신다. 병맥주도 더러 마시지만 “쏘맥”을 할 때뿐이다. 생맥주로는 절대 쏘맥을 하지 않는다. 이유는 맛이 다르기 때문이다. 맛의 기준은 개인적이고 매우 간사(?)하기에 병맥주에 비해 생맥주가 더 좋다는 식의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 취향에 따라 병맥주가 더 부드럽고 좋다는 사람도 많다. 그래서 “나는 생맥주를 즐겨 마신다”는 표현이 바른 표현이다. 이렇게 생맥주를 좋아해도, 아무리 단골 생맥주집에서도 여지껏 단 한 컵도 공짜로 받아 본적이 없다. 왜일까? 500cc를 됫박처럼(?) 냉정하게(?) 계량해서 담아내야 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생맥주가 아주 “속 시원하게” 좋다.
좋기로 따지면~ 쨍그랑, 건배하기에 좋다. 챙겨주되, 안 따라줘도 된다. 컵에 입술 자국이 없어서 위생적이다. 퇴근 길, 길거리 카페에 적격이다. 노가리, 황태 안주값이 저렴하다. 포만감에 배가 불러서 좋다. 개방적이고 여유롭다. 취하기보다 분위기 중심이다. 여기에서 정말 중요한 점! 생맥주집은 절대! 책상다리 술집이 아니다. 그래서~ 생맥주가 있는 도시의 초저녁을 참 즐긴다.
지방 소도시로 출장을 갔다. 일 다 보고 저녁이 됐다. 서울 갈 직행버스도 끊어졌다. 그만큼 오래 전 일이다. 거래처 사장 영감님이 초저녁부터 여관방 하나 잡아주고는 휑뎅그레 가버렸다. 오도가도 못 하고 관리대상(?)이 돼버린 것이다. 웬 팔자람? 소도시의 다운타운이 궁금해졌다. 밤바람 쐬러 나갔다. 그런데~ 식당에 술집에 양주집에 통닭집에 나이트클럽까지 다 있는데, 소도시를 한 바퀴 다 돌아봐도 생맥주집만 없었다. 에구~ 여관방에서, 썰렁한 땅콩접시 쟁반에 받쳐 들고, 열(?) 받은 병맥주 방바닥에 내려놓더니, 얼룩덜룩 지문 찍힌 컵에 맥주 거품 잔뜩 따르며, “한 잔 같이 하세요” 하던 여관 종업원. 누가, 같이 하자고 했나? 팔자소관이다.
서울에서, 공인된 길거리 카페가 을지로 3가에 있다. 매일 저녁, 여러 집이 성업 중이다. 그곳에 가면, 몇십년전 초창기에 “곰”을 상표로 쓰던 간판을 끈질기게 달고 있는 생맥주집이 아직도 있다. 그 당시, 이 동네 일대의 생맥주집을 통틀어 “꼬추장집”으로 불렀다. 안주로 나오는 황태를 그 매운 꼬추장에 찍어 먹고는, 후줄근하게 땀 흘리던 기억이 새롭다. 매운 꼬추장 맛 본다는 구실로 삼삼오오 찾아가던 풍류(?)가, 세대만 바뀌었지 지금도 살아있다. 도시마다, 지방의 소도시에도 생맥주처럼, 살아있는 저녁풍경이 조성된다면 정말 좋겠다. 지역경제도 살고지고, 『삶과 술』신문도 덩달아 살고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