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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시어 : 4개 문장 중 하나로 시작하기
(153)
* 작문이 추구하는 3가지 기준들 중 2가지 이상이 상급이어서 인상적으로 읽히는 작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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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문이 추구하는 3가지 기준들 중 한 가지가 상급이거나 중상급이고, 다른 한 가지는 중급이거나 중상급으로 평가될 수 있는 글입니다. 조금 더 인상적인 중심맥락을 확보하거나 조금 더 인상적이고 주목도 높게 써서 임팩트를 높이는 방향으로 공부해야 합니다.
☞ 7, 31, 32, 33, 39, 40, 42, 44,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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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13 (두 등급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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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문이 추구하는 3가지 기준들 중 한 가지가 중상급 정도이고 다른 한 가지가 중급 정도인 작문입니다. 메인으로 추구하는 기준이 높아질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해야 합니다.
☞ 1, 2, 3, 9, 10, 14, 18, 23, 25, 26, 27, 28, 30, 34, 35, 37, 41, 43, 46, 47, 48, 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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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6, 11, 15, 16, 17, 19, 20, 22, 24, 52 (두 등급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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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가지 기준 모두 평범한 수준이라고 평가할 수 있는 글들입니다. 또 어떤 글들은 중심맥락이 모호해서 자신이 전달하려는 바가 무엇인지가 불분명한 글도 있고, 자신이 추구하는 바가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효과가 나지 않고 어색해진 글도 있습니다. 자신이 추구하는 기준이 뚜렷해지고 강력해지도록 연습을 꾸준히 해야 합니다.
☞ 4, 8, 21, 29, 36, 38, 49, 50
제시어 : 4개 문장 중 하나로 시작하기
# 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제 어쩌...’ 첫 줄을 읽자 전화벨이 울려댄다.
“야! 전화 오잖아 안 들려?” 김 교수가 신경질적인 목소리를 낸다. 나는 몰래 읽던 책을 덮고 전화를 받았다.
“교수님 본부에서 부서별 처장회의 잡혔다고 해서 지금 바로 오셔야 한다고...”
“에이씨. 뭔 놈의 회의를 자꾸 해. 갔다 올 동안 이거나 채점해놔. 상대평가니깐 니가 알아서 잘 조절해.”
“네? 근데 교수님...”
김 교수는 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나가버렸다. 역시 듣던 대로 김 교수는 치외법권에 산다. 논문도 짜깁기, 학생 상담도 안 해, 이제는 대리채점까지. 그래도 안 짤린다. 줄 잘 타서 처장까지 하고 팔자 좋다. 나는 김 교수의 책상에서 150장의 시험지를 들고 왔다. 회의는 4시에 끝나니깐 김 교수가 돌아오려면 2시간이 남았다. 시간 안에 못 끝내면 또 얼마나 쪼아댈지 눈에 훤하다. 일단 맨 위 시험지부터 읽어 내려 가볼까. “하암-” 학생들의 열정 빽빽한 글자를 계속 읽으니 하품이 난다. 커피라도 마시면서 하면 좀 나을 것 같아 지갑을 들고 근처 카페로 발걸음을 향한다.
아메리카노 한 잔을 들고 연구실 문 앞에 도착했다. 그런데 이상한 냄새가 풍겨온다. 들어가 보니 시험지가 불타고 있다. 이럴 수가. 전기난로를 안 끄고 나갔었다. 불은 삽시간에 퍼져 의자와 책상 전체를 활활 태우고 있다. 나는 재빨리 문 옆에 비치된 소화기를 가져와 불을 껐다. 연구실 천장과 벽이 검게 그을려 지독한 냄새와 연기로 가득 찼다. 학생들의 시험지는 검은 재로 변해있었다. 나는 눈앞이 컴컴해졌다. 불같이 화낼 김 교수의 얼굴, 점수가 사라져 버린 학생들, “개인 난로 절대 금지, 화재 시 형사처벌”이라던 공문이 머릿속을 떠다닌다. 징계로 끝나지 않을 게 분명했다. 어쩌면 소송 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겁이나 뒷일은 생각도 안 하고 도망쳤다.
이틀 뒤 핸드폰 전원을 조심히 켰다. 에계? 달랑 문자 한 통만 와있다. “김ㅇㅇ 교수님: 출근해.” 딱 세 글자만 보냈다. 의외로 덤덤해 보이는 김 교수의 문자에 일단 나가보기로 했다. 두리번거리며 교문을 지나 연구실 앞에 멈췄다. 창문 너머로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김 교수가 보인다. 내 자리를 보니 책상과 의자가 새 걸로 바뀌어있다.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죄송합니다.”
“됐고, 애들 성적이나 시스템에 입력해.”
“교수님, 근데...”
“내가 알아서 처리했으니깐 점수나 입력해. 시험지가 탔네, 어쩠네, 그딴 소리 입도 뻥긋하지 마.”
그렇구나. 김 교수는 내가 대리채점에 대해 얘기할까봐 어지간히 불안했던 거다. 이틀 동안 화재사건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있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나는 김 교수가 시키는 대로 시스템에 아무렇게나 알파벳을 적어 전송했다. 몇 시간 뒤 한 학생이 문을 두들겼다.
“교수님 안녕하세요. 저 성적 때문에 궁금한 게 있어서 찾아왔어요.”
“내가 수업 첫 시간에 성적 정정 문의는 안 받는다고 하지 않았었나? 신입생도 아니라 잘 알텐데? 교수님은 꼼꼼한 사람이야. 아무리 바빠도 제대로 채점하니깐 다음에 더 열심히 해봐.”
그 학생은 죄송하다고 하고 돌아갔다. 안타까운 마음에 쫓아가 커피라도 사주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음을 곧 깨달았다. 아무렇게나 알파벳을 입력한 사람이 바로 나다. 점수를 전송한 그 순간 나도 공범이 되어있었다. 차라리 방화범일 때가 마음 편했다. 학교 재무처장이라는 김 교수의 권력은 나를 방화범에서 구해주었다. 그러나 이제 내 양심은 검게 타버려 재가 되고 말았다.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흥미롭게 전개되고, 긴박감도 있어서 잘 읽힙니다. 주목도 높은 글입니다. 권력을 가진 사람이 그 권력을 어떻게 쓰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고, 그 권력에 순응해 공범이 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존재에 관한 스토리입니다. 새로운 시각이나 관점, 접근법, 사고법을 주느냐, 는 기준으로 보면 통찰의 차별성 면에서 임팩트가 그렇게 강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 2.
오늘 엄마가 죽었다. 오늘 나는 태어났다.
그 년이 자식복이 없어도 얼마나 없는 거냐며. 자식놈이 잘못 태어나서 엄마를 잡아먹었다는 얘기를 살면서 수없이 들었다. 이모들은 나를 불쌍히 여겨 먹을 거라도 챙겨줬지만 외할머니는 유독 나를 미워했다. 엄마는 할머니가 아끼던 큰딸이었다. 할머니는 줄줄이 딸만 낳고 아들을 못낳았다. 아들 못낳는다는 구박에 서러웠지만 큰딸에 의지하며 살았단다. 엄마는 외할머니에게 가장 소중한 딸이었다.
엄마는 부족한 형편에 농사꾼 집안에 일찍 시집보내 품에 더 두지 못해 가여운 딸이었다. 그래도 자식복 보고 잘 살라고 했더니만 딸자식한테 잡아먹혔다는 얘기를 할머니는 거리낌없이 내 앞에서 했다. 아들 없는 외할머니를 아버지가 모시겠다고 했다. 맏사위의 도리라고 했다. 엄마의 기일이 다가올수록 할머니의 구박은 심해졌다. 내 생일날은 할머니의 한탄과 구박이 두려워 종일 밥을 못 먹고 부들부들 떨곤 했다. 생일에 생일상 받는 애들이 있겠냐마는 엄마의 제사상 차리는 애들은 없을 거다. 나는 얼굴도 본 적 없는 어머니 제사음식을 요리하고 나르며 할머니 눈치를 봤다. 불쌍해하는 이모들 덕에 몰래몰래 앉아 쉬었다.
아버지가 밭에 일하러 나가시면 하루 종일 할머니의 미움을 견디며 살았다. 대놓고 호통치진 않으시지만 당신 성에 차지 않는 행동에 혀를 끌끌 차셨다. 그 아니꼬운 눈초리가 더 무서웠다. “빨래를 이렇게 해오면 어떡하니. 밥이 너무 질다. 반찬에 더운 기가 다 가셨네. 에휴 꼴보기 싫은 년...” 아버지는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오 년 정도 지나 재혼을 하셨다. 주변 사람들이 부추긴 재혼이었다. 동생들이 태어나자 동생들을 돌봤다. 할머니의 구박도 여전했다.
오늘은 엄마의 기일이다. 매년 엄마의 기일은 돌아온다. 할머니의 구박은 나날이 심해졌다. 사위의 재혼이 못내 맘에 들지 않았던 할머니는 그 꼬장을 나에게 더 풀었다. 이젠 나도 견딜 수 없다. 요즘은 빨리 나를 시집보내버리라는 호통도 더해졌다. 아버지도 나를 불러다 몸가짐 단정히 하고 다니라며 한 마디 하시곤 한다. 새어머니의 눈치도 안 볼 수가 없으실 테니. 이제 시집갈 때가 됐다는 말이란 걸 누가 모를까. 하필 날 보내겠다는 집 사내도 맘에 들지 않는다.
간밤을 새웠다. 오늘 제사 시작 전에, 할머니가 깨기 전에 도망치려면 그냥 밤을 지새는 편이 나았다. 짐 쌀 것도 많지 않다. 동생들 자는 새에 옷가지 몇 벌 챙겨 겹쳐 입고 해뜨기 전에 서둘러 집을 나섰다. 제발 나를 찾지 마라. 아니, 나를 좀 애타게 찾아봐라.
“치매 노인을 찾습니다. 나이 90세. 키는 140cm. ㅇㅇㅇ동 거주. 오늘 오전 4시 집을 나서는 모습이 인근 CCTV에 촬영되어…”
진부한 이야기처럼 읽히다가 막판 반전의 요소에서 임팩트가 큰 점이 장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주목도 면에서 평균보다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글입니다. 주목도 이외의 요소를 보면, 통찰의 요소보다는 공감/감동의 요소가 강력하면 좋겠는데 그런 효과가 잘 나지는 않는 편입니다. 반전 이전의 전개과정에서 이것이 치매노인의 과거 기억 속 장면이라는 점이 ‘복선’으로 읽힐 수 있도록 하는 장치들이 포함되면 좋겠습니다.
# 3.
#1.
오늘 엄마가 죽었다. 고로 나도 죽는다. 나는 깜깜한 이곳에서 자라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나를 찾아오는 이는 없을 것이므로 나는 죽지 않고 이곳을 벗어날 수 없다. 나는 늘 이 자리에서 엄마와 함께였다. 삶은 부드럽고 따스한 살색일 것이라고 늘 그려왔다. 이제 나는 숨 쉴 희망을 잃었다. 먼저 떠난 이들이 눈에 검붉게 아른거린다. 오늘따라 유난히 이곳이 어둡다.
#1-1.
“우리 그냥 둘이서 사는 건 어떨까?” 입술만 움찔대며 망설이던 남편이 입을 열었다. 정적. 말 그대로 정적이었다. 학자금 대출, 전세 대출, 신혼 자금에 생활비까지. 썼지만 내지 못한 돈에 막막한 미래를 그리고 있던 참이었다. 단란한 가정. 남편과 나는 단란한 가정을 꿈꿨다. 한쪽이 깨진 독과 같은 우리 형편은 채워도 채워지지가 않았다. 아이와 가정을 모두 책임지기 어려운 형편을 직시한 남편이 한마디를 꺼낸 것이다. “우리가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을 선택한 거야.” 남편이 말한다. 그렇게 포장한다. “나중에, 나중에 형편이 되면 갖기로 하자. 그게 우리를 위해서도, 아이를 위해서도 좋은 거야.”
#1-2
눈을 뜨니 방이 아직 어둡다. 아마도 아침이 오기 전에 잠깐 깼나보다. 남편이 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침대에서 일어난다. 발을 내딛으니 바닥이 차갑다. 창문 쪽 작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끌어안았다. 동이 트기 전. 밖은 아직 어둡다. 유리 창문에 차가운 기운이 감돈다. 창문에 얼굴을 가져다 대니 차가운 냄새가 나는 듯하다. 겨울 냄새를 맡으며 어제 남편과 나눈 대화를 회상한다. 결국 남편과 나는 부모의 길을 돌아가기로 했다. 우리는 빈 독을 채울 때까지 길을 돌 것이다. 우리 독은 깨져서 채울 수 없는 걸 알면서도. 언제 독이 차기 시작할지 알 수 없다. 이제 엄마인 나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와 함께하는 단란한 가정을 꿈꾸던 나는 없다. 엄마로서의 내 삶은 죽었다. 배 한쪽이 살살 아파온다. 벌써 한 달이 지났나.
#2.
오늘 엄마가 떠났다. 그래도 나는 살 것이다. 나는 답답한 이곳에서 나가 새로운 삶을 맞이할 것이다. 곧 나를 찾아오는 이가 있을 것이므로 나는 잠시 머문 이곳을 금방 벗어날 수 있다. 이곳에서 나는 엄마와 헤어졌다. 삶은 늘 엄마와 함께일 것이라고 그려왔다. 이제 나는 홀로 삶을 감당해야 한다. 엄마의 따스한 손결이 느껴진다. 오늘 처음 온 이곳은 유난히 밝다.
#2-1.
작은 아이를 한 팔에 안았다. 찬 바람에 아이가 떨지 않도록 담요를 매만진다. 남은 팔로 문을 연다. 끼익. 문을 열던 그녀는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놀란 듯 잠시 멈추었다 다시 문을 연다. 아이는 곤히 잠들었다. 아이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작은 천 위에 눕힌다. 겉옷 주머니에 손을 넣어 작은 쪽지를 꺼낸다. 이름과 출생일, 그리고 짧은 메모가 두 줄 적혀있다. 미세하게 떨리는 손을 다시 주머니에 넣는다. 아직 약한 온기가 남아있는 핫팩을 꺼내 한 구석에 놓는다. 아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는 이내 문을 닫고 주머니에서 떨리는 손을 꺼내 벨을 누른다. 다음은 행동을 살피기도 전에 겹겹이 주차된 차들 사이로 사라진다.
#2-2.
오늘도 여느 때와 같이 지하철을 타고 있다. 모든 것이 평범하다. 누구도 내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이렇게 살아가면 된다. 나는 다시 이전의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다. “문이 닫힙니다.” 임신부 뱃지를 단 여자가 분홍색 의자에 앉는다. 저 사람은 분홍색과 참 잘 어울리는 밝은 표정이다. 어제 밤 아이를 베이비박스에 두고 왔다. 지난 1년, 매 순간을 품어온 아이였다. 미혼모시설에 들어가 도움을 받았다. 시간이 흐르며 해낼 수 있다는 다짐은 증발했다. 더 이상 내일이 오지 않기만을 기다렸다. 내게는 아이를 키울 능력이 없다. 일이 없고 일을 구할 여건도 되지 않는다. 나는 국가 지원을 받을 수도, 어떤 미래를 기대할 수도 없었다. 내 모성애는 남들과 달리 얄팍한 것일까. 죄책감과 우울함, 절망감, 버거운 시선들에 숨이 막혔다. 정말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떨리는 손을 주머니 속에 감춘다. 분홍색 의자에 앉은 저 여자를 보니 숨이 막힌다. 아직 네 역을 더 가야하지만 내려야겠다. 속으로 다시 읊조린다. 나는 엄마였던 적이 없다.
낙태와 베이비박스가 소재이고 출산과 육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주는 글입니다. 새로운 통찰은 아니지만, 주목도가 일정 수준 이상인 점이 장점입니다. 공감/감동 요소는 그렇게 높게 읽히지는 않습니다. 이야기의 내용상 읽는 사람의 마음과 정서를 건드리는 측면이 강하다면 좋겠지만, 그렇게 임팩트가 강하지는 못합니다. 메인으로 추구하는 작문 요소가 강한 효과를 낼 수 있도록 하는 연습을 더 하면 좋겠습니다.
# 4.
오늘 엄마가 죽었다. 봄에 와서 겨울로 떠난 우리 엄마. 한 평생 봄 보다는 겨울에서 산 우리 엄마. 오늘 우리 엄마가 그렇게 떠났다. 강제 징집을 피해 가난하고 아픈 우리 아버지와 결혼해서 한 평생 땅을 밟으시면서 사셨던 당신의 모습을 잊지 못해. 당신은 생명을 심을 때 꽃 대신 고추를 심었지. 그래서 자식들이 독립하고 나서는 집 앞에 작은 화단을 가꾸신 걸 거야. 꽃을 좋아했던 당신의 마음을 어릴 적 알게 돼서 꼭 성공하고 싶었어. 당신께서 더 이상 우리를 위해 당신의 마음을 희생하지 않기를 바랐어.
당신의 마음이 내 마음에 펴서 강해질 수 있었어. 엄마, 세상은 겨울이더라. 겨울 속에서 봄은 가족 밖에 없더라고. 봄을 위해 겨울을 견디고, 나아가려고 했어. 결국 그리했고. 엄마, 난 아직도 나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던 당신의 모습을 잊지 못해. 족히 100년은 넘은 듯한 우리 집. 새벽이면 쥐가 놀고, 비가 오면 어딘가 새서 우리 책을 적셨지. 그 집을 내가 부수고 새로 집을 지어줬을 때, 당신의 봄 같은 미소로 나를 바라보았지. 그렇게 당신이 행복해 하는 모습을 보니 내 마음에도 봄이 오는 듯 했어.
그렇게 나는 성공해서 당신을 기쁘게 하는데, 동생이라는 놈은 그걸 보고 기회라고 생각하더라. 그 놈이 이기적인 놈이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렇게 양아치 같은 놈일 줄은 누가 알았겠어? 내가 성공해서 스스로 살 수 있다는 이유로 당신의 재산을 팔아 본인에게 달라고 하다니. 난 그것도 모르고 그날 당신이 먹고 싶다던 소고기를 들고 집으로 가고 있었지. 난 싫었어. 어릴 때부터 당신의 겨울을 더 춥게 만들고, 한 평생 당신에게서 봄을 몰아내던 이유 중 하나니까. 그 놈이 나를 배신해서 내가 상처를 입으면서, 당신의 마음에도 상처가 생겼잖아. 그런 놈을 당신은 엄마라는 이유로 감쌌지. 이해해 엄마. 하지만 그런 놈에게 당신이 재산을 팔아 사업 밑바탕을 대준 게, 난 솔직히 속상했어.
그 이후로 그 놈을 볼 이유가 없었지만, 아버지가 돌아가신 날 보게 됐지. 갑자기 친근하게 구는 자식, 가증스러워서 토가 나오더라. 하지만 당신의 마지막 소원이 우리의 화합이라 나는 참았어. 그렇게 상을 치르고 같이 재사에서 몇 번 보면서 미안하다고 하더라. 뭐가 미안하냐고 물으니 말을 못해. 그냥 아무 생각이 없는 거지. 하지만 참고, 알겠다고 했어. 당신이 조금이라도 행복하기를 바랐기 때문에. 그 해 추석, 그렇게 아버지 없는 온 가족이 모였지. 당신은 형제의 화합에 신이 나신 듯 음식을 장만했고, 늦게까지 장만한 음식과 술을 마시며 시간을 보냈지. 당신이 기뻐하는 게 좋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어요, 엄마.
하지만 나중에 본색을 드러내더라, 그 자식이. 자기 사업을 도와달라더라. 당신 마지막 소원이래. 참, 웃기기도 하지. 내가 당신이라면 꼼작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렇게 접근했나봐. 솔직히 싫었어. 하지만 추석날 당신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들리더라고. 그래서 도와줬어. 대신 조건을 걸었지. 엄마의 재산을 되찾는데 협조하라고. 나 덕분에 그 놈은 사업에 성공했어. 차도 바꾸고 그러더라. 그 이후로 엄마한테 잘하더라고. 보기 좋았어. 하지만 나랑 한 약속은 차일피일 미루기 시작하더니, 어떤 이유로 안 될 것 같다고 하더라고. 역시 이 놈은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어. 어떻게 당신을 팔아 본인의 삶을 영위할까. 죽이고 싶더라. 하지만 참았어. 대신 두 번 다시 내게 뭔가를 바라지 말라고 했어.
엄마. 아니 어머니. 난 당신이 행복하기를 바랬어요. 최선을 다 해봤지만, 설령 가족이라 하더라도 돈 앞에서 그렇게 되더라고요. 사실 그게 그 놈 만의 잘못인지도 이제는 모르겠어요. 주변에서 그런 얘기를 숱하게 듣거든요. 돈 때문에 가족이 의가 상하고, 서로 싸우고, 죽이고 등 우리 집보다 더했으면 더했지 덜 하는 집은 없는 것 같아요. 설령 그 놈만의 잘못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난, 더 이상 그 놈을 용서 못하겠습니다. 엄마가 바란 마지막 소원을 못 이뤄드려서 미안해요. 하지만 나도 조금은 내 행복을 위해서 이기적으로 굴어야 할 것 같아요. 추운 날 우리 어머니 마지막 가는 길도 추워서 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잘 가요 어머니. 아니 엄마.
전반적으로 개연성과 핍진성이 부족하게 읽히는 글입니다. 픽션 스토리를 쓸 때 그 이야기에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빠져들어가기 위한 조건으로 개연성과 핍진성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두 가지 요소가 높은 이야기를 쓰는 연습을 더 해야 합니다. 이 글은 내용도 지나치게 전형적이고 분위기나 톤, 말투 같은 것도 어색한 편이어서 읽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빠져들기가 어렵습니다.
# 5.
오늘 엄마가 죽었다. 사실 우리는 모두가 죽는다. 그것은 운명이기에 받아드리려고 했다. 그러나 엄마가 죽는 장면을 직접 보고나니 난 죽는 게 더 두려워졌다. 엄마는 비명 한 번 못 지르고 팔과 다리가 잘려나갔다. 그러더니 그 사람들은 엄마의 몸통을 통째로 들어 싣고 가버렸다. 난 “엄마” 라고 불러보지도 못한 채 엄마를 떠나보냈다. 도대체 엄마를 어디로 데려 간 걸까? 며칠 째 돌아오지 않는 엄마. 그리고 며칠 후 옆 집 아저씨의 말. “너희 엄마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 거야..” 그렇게 난 엄마가 죽은 것을 실감했다.
엄마가 죽고 나니 어릴 적 엄마와 함께 했던 추억이 아름아름 떠오른다. 우리 집은 강 근처 넓은 들판에 있다. 지금은 다 떠나고 없지만, 어릴 때만해도 주변에 또래 친구들이 많았다. 친구들와 함께 수다를 떨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곤 했다. 그런데 아무래도 주변 환경 열악한 시골이다 다들 어느새 하나 둘 떠나갔다. 듣기로는 도시로 간다고 했는데.. 그래서 그 후로 많은 동물들과 어울려 놀았다. 엄마는 그럴 때 마다 “주변 동물들과 친하게 지내렴, 다 너를 보살펴 주는 친구들이란다” 라며 덕담을 해주셨다.
그리고 난 비를 유독 싫어했다. 비가 내릴 때 마다 치는 천둥과 번개는 마치 나를 집어 삼킬 것만 같았다. 내가 아주 어릴 때 내 친구네 집에 번개가 쳐서 집이 몽땅 불탄 적이 있다. 그것을 봐서 그런가? 난 비가 내리면 자연스레 움츠려들었다. 이때도 엄마는 내 옆을 지켜주셨다. “아들, 비를 무서워하지 말렴. 비는 너를 헤치지 않는단다.” 엄마의 이 한마디가 ‘비공포증’을 고쳐주진 못했지만, 항상 옆에 있던 엄마의 손길은 그 무서움을 가시게 했다. 그리고 자라면서 어느새 비는 더 이상 무섭지 않은 존재가 됐다.
그런데 이제, 내 주변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어릴 때 같이 놀던 친구들도, 동물들도, 그리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비조차 내리지 않는다. 행복했던 우리 집은 황량하고 무서운 공간이 되었다. 그리고 나는 이제 죽음을 직감한다. 손이 벌벌 떨린다. 저기 앞에 엄마를 죽였던 그 사람들이 오고 있다. 그리고 내 앞에 서서 나를 한참 보더니 말한다.
“이 놈은 좀 크네, 얼른 시작하자고. 이것만 베면 다음 주부터 바로 공사 시작이야”
나무가 화자가 된 점이 눈길을 끄는 글인데 실제 나무가 화자가 되어 하는 말의 내용이라고 하기에 어색한 편입니다. 개연성과 핍진성의 기준으로 볼 때 무난한 글이거나 약간 어색한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마지막에 나무라는 점을 알 수 있도록 되어 있는 점이 긴장감을 놓치지 않게 하는 면이 일부 있습니다. 어쨌든 생명이 다하는 이야기라서 슬픈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마음이 그렇게 작동되지 않는 걸로 미뤄볼 때 표현력이나 구성력을 더 키워야 합니다.
# 6.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3시에 잠들어 결국 7시에 깼다. 그렇게 무한도전 마지막회 본방 사수를 놓치고 말았다. 허무했다. 10년 넘게 토요일 안방을 밝혀주던 그들, 무한도전은 내게 남다른 의미를 가진다. 우울증에 빠져 허덕일 때 그들은 유일하게 나를 웃게 만들어주는 존재였다. 밥 먹으면서도, 대중교통 안에서도, 그들은 항상 내 곁에 있었다. 눈물이 났다. 본방사수를 못 해서가 아니라, 이제 정말 그들과 끝이라는 생각에서이다. 그 녀석과 그 전 녀석이 하차할 때도 아쉬움을 함께했고, 광희가 새로 투입될 때 멤버들과 같은 마음으로 환영해줬다. 그렇게 무한도전이 다시 시작되길 몇 년동안 빌고 빌었다. 제발 그들을 내 곁으로 돌려놔달라고, 종교도 없는데 하느님, 알라, 예수님, 부처 다 찾아봤다. 하지만 역시 소용없었다. 그렇게 무한도전은 역사 속으로 사라진 것이다.
몇년 후, 아는 형님을 보기 시작했다. 무한도전과 사뭇 다른 포맷의 프로그램이였지만 고정 팬층도 많고 새로운 게스트들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하지만 전에 무한도전을 보던 것과 다르게 묘한 불편함이 있었다. 그들은 출연자의 이혼 경력을 개그소재로 활용하고, 키가 작은 출연자의 콤플렉스는 비웃음의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다 문득 나의 초등학생 시절이 떠올랐다. 뚱뚱하다고 놀림받고, 못생겼다고 손가락질 받던 시절. 그로 인해 난 대인기피증을 얻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아이들도 모두 미디어에 나타난 행태를 학습하고 그대로 따라한 것이였다.
무한도전도 아는 형님과 다를 바 없었다. 뻐드렁니, 탈모, 얼굴 크기, 대머리, 비만 모든 출연자의 신체적 특징이 개그소재이고 비웃음거리 였다. 그땐 왜 몰랐고, 지금은 깨달았을까. 그땐 그저 이런 놀림을 받는 것이 모두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뚱뚱해서, 내가 못생겨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이라고 여겼다. 하지만 아니였다. 나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이것을 비웃고 놀리는 그들의 잘못이였다. 그것을 깨닫는 데 꽤나 긴 시간이 걸렸다. 한 정신과 의사는 말했다. “정작 정신과에 와야 할 사람들은 안 오고, 그들에게 피해를 입은 사람들이 정신과에 방문해요.”
나이를 먹었지만, 아직 그 상처는 나에겐 외모에 집착하는 흉터로 남아있다. 아마 날 놀리던 친구들도 티비에서 당연하게 다른 사람의 단점들을 조롱거리로 삼는 모습을 보며 “아 남의 약점을 갖고 놀면 재미지구나, 나도 해봐야겠다.”라는 인식이 무의식 중에 그들 속을 파고들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런 행태를 고치지 않는 미디어에 있다.
사람을 웃긴다는 건 꽤나 어려운 일이다. 까다로운 설계와 작업을 거쳐야 한다. 꽁트를 해도 슬랩스틱을 해도 모두 철저한 계산이 포함되어있다. 그러나 유일하게 아무 생각 없이 모두가 웃을 수 있는 방법이 있다. 각자를 조롱거리로 만들어 희생하는 것이다. 출연자들은 자신들의 신체 콤플렉스를 웃음거리로 삼았다. 그들에겐 그럴 명분이 있었다. 그 희생으로 인해 출연료와 시청률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매체 속성을 그대로 답습한 일반인들에겐 고통만이 남았을 뿐이다. 세상에 파급력이 있는 프로그램의 출연자와 제작진으로서, 그들은 건강한 콘텐츠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 자신들의 개그와 설정이 일반인과 이 사회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이를 고민하지 않고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이들에겐 전파를 탈 자격을 주어선 안 될 것이다.
통찰 면에서 중심맥락의 내용이 한 번 생각해볼 만한 것이기는 하지만, 새로운 시각/관점/접근법/사고법을 많이 준다고 하기는 어려워보입니다. 중심맥락을 더 깊게 파고 들어가서 전개하면 통찰의 차별성이 더 높아질 것입니다. 주목도 면에서는 문장들이 더 인상적이고 함축적이면 좋겠습니다. 주목도가 더 높은 사례를 골라서 글에 포함하는 연습도 더 해보면 좋겠습니다.
# 7.
‘오늘 엄마가 죽었다.’
교도소 수감자에게 이 문장은 “모친의 생물학적 사망”과는 다른 의미를 가질 때가 있다. 그들에게 ‘엄마’는 수감 생활 중 믿고 따랐던 선임을 의미한다. ‘죽었다’는 ‘출소 후 다시 범죄를 저질러 재입소한다’는 의미다. ‘교도소 수감자의 언어사용실태’ 연구에 참여했을 때, 나는 이러한 ‘현장의 언어’를 많이 접할 수 있었다. 현장의 언어는 구성원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어렵지만 그 집단 고유의 속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현장의 언어는 교도소 밖에도 있다. ‘이빠이’는 일본어 ‘いっぱい’에서 온 외래어로 보통 ‘가득’, ‘많이’란 의미로 쓰인다. 이와 달리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이빠이는 ‘주유소’다. 입국 후 변변한 일자리를 얻기 어려운 그들은 주로 주유소에서 첫 직장을 얻는다. 손님이 올 때마다 주유소 사장이 ‘기름 이빠이!(가득 채워!)’라고 하니까 이빠이하면 주유소를 연상하게 된 것이다. ‘이빠이’는 그들에게 현장의 언어다. 공사장 일꾼들이 주로 쓰는 망치인 ‘오함마’도 영화 <타짜> 덕에 많이 알려져서 그렇지 공사장 막일 경험이 없다면 낯선 단어다. 이 역시 현장의 언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연구소나 정부기관에서 현장으로 언어실태조사를 나가는 이유는 간명하다. 잘못된 언어사용습관을 순화하고 교정하는 것이 목표다. 이른바 ‘언어 경찰’이다. 수감자, 방글라데시 노동자, 공사장 일꾼들의 ‘현장의 언어’는 그들에겐 표준어를 교란시키는 이질적 언어이며 교정 대상일 뿐이다. 현장의 언어는 보통 속어, 비속어, 은어, 외래어와 같은 비(非)표준어로 분류된다.
하지만 의문이 든다. 과연 오늘날 언어 연구자들이 ‘현장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 진지하게 탐구해본 적이 있던가. 현장에 방문하더라도 연구자들은 늘 ‘관람객’이었다. 우리의 ‘엄마’와 다른 ‘엄마’지만, 그 단어가 어떤 맥락에서 어떻게 이해되며 사회의 어떤 측면을 드러내는지 고민해본 적은 많지 않다. ‘엄마가 죽었다’는 문장은 출소 이후 마땅한 일자리를 구하기 어려워 출소자가 생계형 범죄를 반복한다는 의미다. ‘이빠이’라는 단어는 불안정한 일자리로 내몰리는 방글라데시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을 상징한다. 표준어 분류에 급급한 기존의 언어 연구로는 현장의 언어 속에 숨겨진 사회적 맥락을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어렵다.
우리나라 언어 정책은 종종 ‘블랙홀(black hole)’에 비유된다. ‘표준어’라는 블랙홀을 기준으로 삼아 비속어, 은어, 방언, 외래어를 순화시켜 흡수하는 식이다. 이는 ‘표준어가 본질적으로 우월한 언어’라는 인식에 기반한다. 하지만 우월한 언어란 없다. 비속어로 치부됐던 많은 ‘현장의 언어’ 역시 그 나름대로 치열하게 땀 흘려 성취한 맥락과 배경이 있다. 뒷전으로 밀려나 있던 비표준어를 언어 연구의 본류로 다시 끌어와야 한다. 그렇다면 우린 ‘오늘 엄마가 죽었다’는 문장을 다르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통찰의 차별성을 갖춘 글입니다. 잘 쓴 글입니다. 문제의식이 눈길을 끌고 사례들도 주목도가 있는 편이이서 주목도도 평범한 것보다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쓰지 않을 법한 소재나 흐름으로 글을 구성한 점도 차별성에 해당하겠습니다.
# 8.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오후 2시에 알람을 맞춰놓았지만 눈을 떠보니 오후 3시다. 헐레벌떡 공항에 도착하니 이미 비행기는 떠났다. 허탈한 마음으로 대기석에 앉았다. 20분 쯤 지났나, 정신이 들었다. 공항에 들어서면 이상한 감정이 생긴다. 차가운 공간을 데우는 은은한 불빛, 향긋한 음료의 향기, 사람 좋은 웃음소리 섞인 통화 내용들. 내가 타지 않아도 되는 비행기의 시간표들… 허탈함을 뒤로 한 채 조용히 공항이라는 공간을 느꼈다. 공항에는 엄청난 온도에 터져버릴 것 같은 감정이 흐르고 있었다.
내가 이날 목격했던 공항의 명장면은 한 남녀가 아프게 헤어지는 장면이었다. 두 사람은 마침내 헤어질 시간에 이른다. 남자는 게이트 안으로 들어가야 하고 여자는 홀로 남아야 한다. 둘은 길지도 짧지도 않은 포옹을 하면서 서로를 감사 안았던 팔을 푼다. 자, 남자가 떠난다. 그리고 여자가 남겨진다.
그것이 끝인 줄로만 알았다. 이미 꽤 많은 걸음을 뗀 남자가 갑자기 여자의 이름을 부르더니 오던 길로 뛰쳐나갔다. 남자가 두 개의 문을 지나, 그 문을 지키고 있던 여러 공항 직원들을 지나 여자를 향해 달려갔고 마침내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았다. 그리고 둘은 사람들의 시선과 상관없이 눈물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미처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은 사이 같았다. 사랑하는데 사랑한다고 말하면 안 되는 사이 같았다. 그도 아니면 헤어질 때가 되어서, 멀어지고 보니, 그것이 사랑인 줄 알게 된 사람들 같았다.
내 이별은 어땠을까. 차마 이별하기에 그 길엔 사람이 너무 많았던가. 그 길은 너무 밝지 않았던가. 비 온 뒤라 길이 질척이지는 않았던가. 어려운 길이었던가. 잊지 못할 길이었는가. 내가 먼저 발걸음을 뗀 길이었는가. 당신이 그 길 위에 서서 오래 내 뒷모습을 바라보고 섰던 길이었던가. 정녕 안녕이라고 말한 길이었던가. 왠지 잊어야 할 사람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왠지 잊어야 할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나를 찾아올 것만 같았다.
세상 어딘가에 사랑이 있어 전속력으로 갔다가 사랑을 거두고 다시 세상의 끝으로 돌아오느라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은 상태. 우리는 그것을 이별이라고 말하지만, 그렇게 하나에 모든 힘을 다 소진했을 때 그것을 또한 사랑이라고 부른다. 자신이 채워진 사람인지 아닌지를 알려면 공항에 가보면 된다. 공항에 앉아 미소 지을 일들이 떠오르거나 괜히 힘이 차오르는 사람이 있고, 한 없이 자신이 초라해 보이거나 마음이 어두워지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공항에 가지 않는 나에게 세상은 아무것도 보여줄 게 없다.
언젠가 다시 가야 할 곳이 있어서 다행이다. 여행은 직진하는 것도 아니고, 백 미터 달리기처럼 백 미터를 다 왔다고 멈춰 서는 것도 아니라서 다음을 기약할 수도 있으니 다행이다. 그때까지 내게 아무도 생기지 않을지도 모른다. 괜찮다. 오래 그리워했던 것을 찾아 나서기에는 언제나처럼 혼자여도 좋겠다. 다만 가을이면 좋겠다.
중심맥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가 다소간 모호하게 읽힙니다. 작문이 추구하는 요소 중에서 어떤 점에 치중해서 글을 구상했는지도 불분명하게 읽히는 편이어서 글을 쓰기 전에 어떤 점을 전달하려는지, 어떤 요소에 임팩트를 주려고 하는지 등을 정교하게 계산하고 계획한 뒤에 쓰는 연습을 더 해야 합니다.
# 9.
오늘 엄마가 죽었다. 늘 그랬듯이 아침에 일어나 커피를 한 잔 내렸다. 그리고 꺼놓았던 휴대폰을 켰다. 언니와 아빠에게서 20통이 넘는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일어나면 바로 연락달라는 언니의 카톡도. 무슨 일이지? 평소 연락도 잘 안하는데. 나는 불안한 마음에 차마 바로 다이얼을 누르지 못하고 애먼 화면만 껐다 켰다를 반복했다. 그러기를 5분쯤, 나는 마음을 굳게 먹고 다이얼을 눌렀다. 카카오톡의 보이스톡 소리가 채 울리기도 전에 언니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전화를 받았다. “엄마 돌아가셨어… 최대한 빨리 한국 와.” “엄마가 왜... 엄마 크게 아픈 데도 없었잖아.” “…외로우셨단다. 외로워서.” 목이 한껏 잠긴 언니의 목소리가 웅웅거리며 귓가에 맴돌았다.
나는 이해가 안 됐다. 엄마가 왜? 외로워서? 외로운 게 왜? 나는 엄마의 외로움이 항상 부담스러웠다. 왜 엄마는 혼자서 못 살지? 중학교 때 유학이 가고 싶다며 아빠 엄마를 1년동안 조르다시피 해 혼자 미국으로 와 거의 20년. 하루하루가 즐겁기만 했다면 거짓말이지만 내 인생에서 스스로 한 첫 결정이었기에 자랑스러웠다. 하지만 엄마에겐 아니었다. 사업으로 늘 바쁜 아빠와 나와 터울이 커 진작에 가정을 꾸린 언니. 그 사이에서 엄마는 매번 너 언제 한국 와? 라며 내가 돌아오기만을 졸라댔다. 그럴 때마다 나는 고등학교까지만, 대학만 졸업하고라며 핑계만 댔고 결국엔 박사 막바지인 지금까지도 돌아가겠단 대답을 한 적이 없었다.
“너 박사 끝나고 나면 한국 들어오면 안 되니? 박사 끝나고 한국에서 교수하면 되잖아.” “엄마도 참, 그것도 자리가 있어야 하는 거지. 내가 저 교수하겠습니다~ 한다고 교수를 시켜줘? 그리고 일하긴 한국보다 여기가 훨씬 나아. 다니엘 일은 또 어쩌구? 그게 나 혼자 결정할 수 있는 일이야?” “다서방도 여기와서 일하면 되지. 여기도 사람사는 덴데 일자리 없으려고?” “그 사람 거기 가서 일하려면 연봉을 얼마나 깎아야 되는지 알아? 그리고 평생 여기 산 사람이 어떻게 한국 가서 살아. 만약에 내가 가서 교수한다고 쳐. 엄마랑 놀러다닐 시간이 어딨어? 엄마도 아빠랑 같이 골프나 쳐. 아님 동네 아줌마들이랑 산이라도 다니든지 집에서 난을 치든지.” “난 골프 그거 재미도 없고 손목만 아프더라. 다른 집 딸들은 엄마랑 쇼핑도 다니고 목욕도 다니고 깨가 쏟아지는데 너는 일이년에 얼굴 한 번 비출까말까 한 애가 엄마한테 빈말도 못해줘?” “그럼 그 집 딸 데리고 살면 되겠네.
엄마 나 지금 바빠 죽겠거든? 엄마랑 농담 따먹고 있을 시간 없으니까 나중에 통화해.” 엄마와의 얼마 전 통화를 떠올렸다. 그렇게까지 외로웠던 걸까.
엄마는 이역만리에서 혼자 사는 딸이 한국에서 만큼은 한시라도 외로우면 안 된다며 어릴 때부터 늘 공항에 마중나와 있었다. 내가 나오기가 무섭게 손으로도 모자라 양팔을 흔들어대며 달려와 날 맞이했다. 그런 엄마에게 나는 부끄러우니 그만하라 다그치며 그냥 손 대충 몇 번 흔들어주는 게 다였다. 인천공항에 도착해 찾을 짐도 없이 맨몸으로 공항 입국장에 들어서며 습관적으로 나도 모르게 손을 흔들었다. 그런데 둘러봐도 낯익은 얼굴이 없다. 아 맞다… 이 넓은 공항에 나 혼자라는 사실이 갑자기 못 견딜 정도로 외로워졌다. 멍하니 손을 내리지도 못한 채 주위를 응시하는데 공항 시계가 눈에 띄었다. 오후 6시. 하루가 지났다. 어제 엄마가 죽었다.
마음이 움직이는 요소가 일정 정도 있는데 그렇게 강한 효과가 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감동을 주기 위해서는 개별 사례가 지니고 있는 감동의 보편적 코드를 잘 찾아서 살려줘야 합니다. 자식과 부모의 관계, 딸과 엄마의 관계, 타인의 외로움에 대한 진정한 이해의 결핍 등은 보편적 코드로 살려 쓰기에 적당한 주제와 소재라고 할 수 있으므로 조금 더 효과적으로 다시써보기 바랍니다. 보통 감동의 코드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정한 물건, 공통의 기억 등을 등장시켜서 그 지점에서 읽는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에 소구하는 방법이 좋습니다.
# 10.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그것도 회사에서 말이다.
일어났더니 분위기가 싸한 게 공기가 서늘했다. 슬쩍 눈치를 보는데 동기 한 명은 웃음을 참는 건지 울음을 참는 건지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보는 건가. 김 부장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멍 때리는 모습으로 들어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아침에 부장님한테 혼났다고 뚱하게 있긴 또 싫어서 멋쩍은 미소를 짓고 바로 모니터로 시선을 돌렸다. 메시지가 많이 와있었다. 하나하나 읽다 마지막으로 동기가 보낸 메시지를 보고 먹던 커피를 도로 뱉었다.
‘희진아 너 잠꼬대로 부장 욕한 거 알아…? 김 부장이 그거 다 들었어…’
어렸을 적부터 내 별명은 둘코락스였다. 잘 나가는 변비약 이름이다. 참지 않고 모든 걸 입으로 싼다고 친구들이 지어줬다. 주저하지 않고 내뱉을 때마다 친구들은 ‘오늘도 둘코락스가 둘코락스 짓 했다’라고 말하곤 했다. 드디어 나의 둘코락스 짓은 의식의 경계를 넘어버렸다. 상사에게 대놓고 ‘앞 담’ 까는 신입 사원이라니. 점심도 거르고 혼자 사무실에서 엎드려 있다 깜빡 잠이 들어버렸는데 그 사이에 사고를 쳐버린 거다. 그것도 모르고 부장 보고 멋쩍은 미소를 짓다니 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런데 더 황당한 건 그 뒤로 부장이 ‘정상적’ 이어졌다는 사실이다. 남성 직원에게만 지원했던 유류비를 여성 직원에게도 지원해주기로 결정했다. 갑작스러운 야근도 회식도 점점 줄었다. 뭐 잘 못 먹었나 싶었다. 말도 신경 써서 조심조심 하는 게 딱 표가 났다. 죽는 건 아닐까 걱정까지 됐다.
부장을 보고 고등학교 때 학생주임이 떠올랐다. 고등학교 때 많이 위에 외투를 입게 해달라고 학생주임 선생님께 요구한 적이 있었다. 자기네들은 꽁꽁 싸매고 있으면서 추운 겨울에 외투를 못 입게 하는 건 18살 학생에게도 비상식적이었다. 30년 교단생활에 처음 듣는 이 요구는 반항처럼 들렸을까. 학생주임은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대학생 때 총장 직선제를 요구하면 시위를 벌일 때도, 대통령 하야를 외칠 때도 교직원들과 대통령의 얼굴은 부장의 표정과 똑같았다. 어쨌든 나의 둘코락스 짓은 ㅇㅇ 고의 학생들에게 따뜻한 겨울을 선물해줬다. 총장 직선제를 만들어냈고 대통령을 탄핵시켰다. 옳은 것을 요구할 때마다 보이는 어른들의 표정. 그 표정은 세상이 바뀌고 있다는 신호였다.
낮잠을 잔 건 실수가 아니었다. 나의 둘코락스 짓은 회사를 바꿨다. 이제 어떤 걸 말해볼까.
경쾌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편입니다. 주목도 있다는 점 이외에도 통찰의 측면도 일정 수준 이상 있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화를 추동하는 진정한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더 드러나고 전개되면 통찰 면에서의 차별성이 더 높아질 수 있습니다.
# 11.
“‘오늘 엄마가 죽었다’? 이건 뭐야, 너무 선정적이고 어두워. 굳이 죽을 필요까지야 있어? ‘세상의 모든 엄마들을 위해서’? 이것도 좀 별로고… 뭐 괜찮은 아이디어 없나? 오, ‘엄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잖아요’. 이건 좀 괜찮네. 맞는 말이야. 이걸로 가자. 김승우 대리 아이디어지? 시안 뽑을 준비 하고 있어봐. 일단 이걸로 컨펌 받아볼게.”
P전자 마케팅 팀 회의 시간이었다. 이번에 새로 나온 가정용 식기세척기 광고를 위한 콘티를 정하는 시간이었고, 모처럼 내가 낸 아이디어가 채택되어 기분이 좋았다.
사실 ‘엄마도 행복해질 권리가 있잖아요’는, 내 진심이 담겨 있는 말이기도 했다. 1남 3녀 중 막둥이로 태어났던 나는, 어렸을 때부터 나를 키우시느라 너무나도 고생하신 어머니의 모습을 바라보며 성장해왔다. 나는 항상 늦잠을 자기 일쑤였고, 어머니는 그런 나를 깨우고 아침을 먹여 학교까지 직접 보내셨다. 그렇게 학교에 다녀오신 어머니는 밀린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셨다. 몹시도 가난했던 우리 집은 당시에 세탁기도 없어서, 어머니는 항상 좁은 공간에 쪼그려 앉으셔서 맨손에 찬물로 우리들의 빨랫감들을 주무르셨다. 그렇게 다 된 빨래를 볕에 널어놓고 나서는 부업을 하셨다. 어머니께서는 손재주가 좋으셔서, 짬짬이 하시던 부업의 수입이 가계에 큰 도움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하교하는 나를 마중 나오시고, 다시 집에 들어와 가족을 위한 식사를 차리는 것이 어머니의 고된 일상이었다.
어머니의 삶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은 중학교에 막 입학할 무렵이었다. 중학교 입학을 위해서는 생활기록부에 장래희망을 적어야 했고, 나는 처음으로 어머니와 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어머니는 배구선수가 되고 싶으셨지만, 이런저런 사정으로 지금은 아버지와 결혼해 가정주부가 되셨다고 했다. 너는 꼭 원하는 일을 하라고, 후회 없이 살라고 말씀하시는 어머니의 눈가에는 눈물 같은 것이 보였다. 그 날의 강렬한 기억 때문에, 나는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고된 가사노동을 도와줄 수 있는 여러 전자제품을 생산하는 지금의 P전자에 입사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내가 제안한 콘티는 윗선의 승낙을 받았고, 나는 시안 작성을 위해 모든 팀원들과 회의실에 모여 회의를 이어갔다. 마케팅 팀은 부장님을 포함해 모두 남자들 밖에 없었지만, 다들 어머니의 가사노동이 고되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었다. 우리는 광고에서 어머니들을 ‘도와줄’ 수 있는 여러 기능들의 홍보에 집중했고, 우리의 노력은 세상에 나올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첫 광고가 TV에서 송출됐다. 나는 누나에게 전화 한 통을 받게 됐다. “어머니들을 ‘도와 준다’고? 이게 제정신으로 만든 광고니? 너네처럼 생각하는 사람들 때문에, 세상 어머니들이, 아니 여자들이 진정으로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거야. 애초에 생각부터 잘못됐어.”
무슨 이런 말 같지도, 대수롭지도 않은 비판을… 어이가 없다. 나도 어머니 생각 많이 하고, 여성들 처우도 개선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자들도 당연히 취직 하고 돈 벌 수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도 당연히 결혼은 집안 일 잘하고 요리 잘하는 여자랑 할 거다. 혹시 모르지 않나? 아내가 내조를 잘 하면 내가 설거지 정도는 도와줄지도. 아니, 식기세척기 하나 들이자고 말을 꺼낼지도.
통찰과 주목도로 평가할 수 있는 글입니다. 통찰 면에서 보면, 중심맥락의 내용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생각해보지 못했던 점을 생각하도록 하는 측면이 일부 있지만, 그렇게 강한 정도는 아닙니다. 중심맥락의 내용이 최신의 것이 아니고 조금 철이 지나보이는 내용이라는 점에서 많이 들어봤던 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도 면에서도 중간 정도의 평가를 할 수 있습니다. 통찰과 주목도 두 측면에서 모두 보완이 필요합니다.
# 12.
오늘 엄마가 죽었다. 사실은 어제도 죽었다. 내일도 죽을 것이다. 엄마의 가르침대로 나도 어제 죽었다. 내일도 잊지 않고 죽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특히 꼭 죽어야겠다. 친구가 술값 3만원을 주지 않아 너무 화가 나기 때문이다. 그깟 술값 때문에 친구에게 분노를 느끼는 째째한(쩨쩨한) 나를 용납할 수가 없다. 집에 오자마자 내 방으로 들어갔다. 방불을 끄고 커튼을 쳤다. 잊지 않고 문을 잠궜다. 죽으려는 순간에 아빠라도 들어온다면 내 계획은 망하고 만다. 어둡고 고요한 방안, 내 폭신한 흰 침대에 고이 누웠다. 후, 죽기 전에 심호흡을 한다. 스치듯이 오늘 하루가 지나간다.
오늘 낮에는 꽃단장을 하느라 정신없이 보냈다. 성악과와 미팅을 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새내기가 아닌 고학번 22살에 들어오는 미팅은 흔치 않다. 그래서 미팅에 함께 나가기로 한 지우와 미리 만났다. 입고 갈 원피스를 함께 고르기 위해서다. 추운 날씨였지만 우리는 원피스에 코트까지 구매를 했다. 그리고 들뜬 마음으로 건대입구의 룸 술집으로 향했다. 남자 두 명은 미리 와서 앉아있었다. 자기소개를 하고 자연스럽게 술을 한, 두 잔 나누어 마셨다. 오늘은 웬만한 남자보다 술을 잘 먹는 지우가 내 옆에 있으니 맘놓고 마셔도 되겠다고 생각했다.
웃음이 실실 나오는 분위기에 술이 술술 들어갔다. 한 잔, 두 잔, 세 병, 네 병 마시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밤 10시였다. 부모님의 불호령을 생각하니 알딸딸하던 술이 금새 깼다. 통금 안에 집에 가려면 지금 출발해야 한다. 허둥지둥 짐을 챙겨 나왔다. 코트도 하나도 제대로 입지 못하고 우당탕탕 계산대 앞에 도착했다. 정신없이 지갑을 찾는 와중에 지우가 자기 것까지 계산하라고 했다. 잔고에 4만원 뿐이던 나는 급한 마음에 비상시에만 쓰라고 받은 엄마 카드로 6만원을 긁었다. 그리고 미리 잡은 택시에 몸을 실었다.
택시에 타자마자 급하게 카톡을 보냈다. “지우야, 나 엄마카드 쓴 거라 3만원좀 지금 보내주라.” 그런데 웬일인지 “무슨 소리야. 내 꺼는 내가 결제했어.”라고 답이 왔다. 얘가 착각을 한 건가? 전화를 걸어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내 꺼 내가 냈다니까?” 영문을 알 수 없는 친구의 발뺌이다. 의문스러워 술이 확 깬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엄마의 폰을 확인했다. 역시나, 10시 5분 6만원이 결제되어있다. 정말 지우는 거짓말을 했다. 내가 술에 취해 기억을 못하는 줄 알고, 3만원을 아끼기 위해서. 당혹스러움과 함께 미움이 차오른다. 3만원과 맞교환한 우정이 용서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오늘 죽었다. 밤 11시, 푹신한 흰색 침대위에서 꼭 걸어 잠근 내 방문을 뒤로하고 죽었다. 엄마는 오랫동안 방에 나오지 않는 내가 궁금해 문을 노크한다. 똑똑, 기척이 없다. 방문을 살짝 열어본다. 내가 미동도 없이 누워있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얼음장처럼 차갑다. 엄마는 힘이 풀려 쓰러진다. 연락을 받은 아빠는 공허해진 눈으로 숨을 몰아쉬며 회사에서 집으로 달려온다. 나와 가깝던 친구들은 소식을 듣고 안타까움에 눈물을 흘린다.
난 사랑하는 이들을 볼 수 없다. 엄마아빠와 저녁마다 함께 보던 텔레비전, 친구와 도란도란 나누던 이야기들, PD가 되기 위해 설렘으로 노력하던 시간들 모두 사라졌다. 공허하다. 삶에 대한 갈망이 더 간절해진다. 사랑을 나누고 행복하고 싶다. 3만원 때문에 소중한 친구를 용서하지 못한 자신이 어이가 없다. 그때 나는 눈을 뜬다. 죽었지만 다시 태어났다. 죽기 전보다 넓은 아량과 사랑 가득한 마음으로 태어났다. 죽음으로 나 전체를 뒤흔들던 고민은 좁쌀처럼 작아졌다. 현재의 행복에 집중하게 됐다. 엄마는, 나는 매일 죽는다.
통찰의 차별성이 있고, 주목도도 보통 이상으로 높은 글입니다. 죽는다는 말의 의미를 자기 식대로 소화해서 새로운 정의를 내리고 그 재정의된 뜻으로 썼는데 어색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글이 잘 전개된다는 점도 장점입니다.
# 13.
오늘 엄마가 죽었다. 오랜 꿈이 드디어 이루어진 날이었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내가 죽이지 못했다는 것이다. 엄마는 종종 내게 손금을 보여주며 말했다. 손목에 닿기 전에 툭 끊어져버린 생명선의 끝을 다른 손가락으로 짚으면서 말이다. “난 단명할 거야.” 어릴 때는 그런가보다 했다. 나이가 들면서는 계속 종종 그 말을 떠올렸다. 지금 죽어도 그렇게 단명은 아닌데 도대체 언제쯤 죽을 생각이지? 다행히 약간은 단명이라고 쳐줄 수 있을 만한 예순의 나이에 그녀는 죽었다. 자연사와 병사와 사고사의 합작품이라고 봐야할까. 교통사고를 당해서 쇠약해진 몸에 독감이 걸렸고 늙은 몸은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고 입원한 채로 며칠간 끙끙대다 갑자기 숨을 거둔 것이다.
온 가족이 그녀의 임종의 순간을 운 좋게 지켰다. 동생은 천지가 떠나가게 울었고, 아버지는 멍해보였고, 나는 덤덤했다. 오랜 시간 기다려왔는데 그 시기가 너무 늦게와서인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가 바라던 대로 이루어지긴 했다. 아버지보다 일찍, 그리고 동생이 대학간 이후에. 너무나 시의적절한 죽음이었다. 동생은 교통사고를 낸 트럭 운전사를 원망했지만 나는 그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하느님이 내려주신 정의의 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싸이코패스가 아니다. 오히려 정이 너무 많아 탈인 편이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것, 죽이고 싶을 만큼 미워하는 것도 내겐 흔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녀만큼은 반드시 언젠가 내가 죽일 거라고 생각해왔다. 내가 그녀에게 갖는 이 복잡한 감정을 한 가지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죽일 만큼 증오하게 된 이유는 명확했다. 배신감. 나를 사랑하는 척 해놓고, 사랑하지 않았다는 걸 들켰을 때 내가 갖게 된 마음이었다. 알 수 없는 이유로 일주일 넘게 말도 걸지 않고 노려보는 눈빛 밑에서 투명인간 취급을 당할 때도, 약간 거슬리게 한 말투 때문에 무릎 꿇고 뺨을 맞을 때도, 못생겼다는 얘기를 돌려서 할 때도 늘 그저 날 사랑해서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사랑이라는 대전제 하에서 행해진 훈육. 결국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되기를 바라는 교육의 일환일 거라는 믿음.
언젠가 중학생 때 쯤 함께 소파에 누워 막장드라마를 보고 있었다. 예전에 버렸던 친딸을 데려오고자 양아들과 결혼시키는 내용이었다. 내가 뭐라고 물었는지 질문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대답만큼은 분명히 기억나는데 “당연히 친딸을 더 사랑하지. 남의 자식과는 다르지.” 였다. 아마 내가 조금만 더 똑똑하거나 믿음이 약했다면 곧바로 그게 나를 향해 쏘아붙인 말이라는 걸 알아들을 수 있었을텐데. 나는 그녀에게 결코 친딸이 될 수 없다는 사실, 그걸 조금 더 일찍 알았더라면 조금 더 현명하게 굴 수 있었을텐데. 얻지 못할 사랑을 어떻게든 얻고자 최대한의 아양을 떨었던 시간들이 그대로 치욕으로 남았다.
백도가 넘으면 물이 끓듯이, 학대가 점점 심해지자 아무리 멍청한 나라도 ‘이건 사랑일 수 없다’는 깨달음이 전광석화처럼 내려왔다. 그 즉시 기숙사 학교를 알아보고 전학을 갔다. 대학에 간 이후로는 쭉 독립해서 살았으며 다시는 연락하지 않겠다는 마음가짐으로 전화번호도 바꾸었다. 친척들 결혼식이나 장례식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마주쳐야 할 일이 몇 년에 한 번씩 있었다. 근데 그때마다 왜 화를 내는 대신 눈물이 뚝뚝 떨어졌는지 모르겠다. 그녀를 마주치자마자 울어버렸다는 사실이 또 다른 치욕으로 남았다. 그 눈물 때문에 얕잡아 보였을 것이라는 사실에는 더욱 화가 났다.
어쨌거나 그녀는 지금 저기 누워있다. 죽은 채로. 입은 살짝 벌렸지만 눈은 감겨있다. 그러고보니 왜, 대체 왜 그랬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도 듣지 못했다. 들어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러고보니 복수라기엔 너무 초라했다. 내가 직접 한 건 아무것도 없는데 이걸 복수라고 할 수 있나. 내가 바랐던 일이 드디어 일어났는데, 성취감도 행복도 없다. 그녀는 내게 무력해진 지 오래인데 이제 와서 죽는다고 뭐. 뭐가 달라지는 걸까? 이 여자가 죽는다고 슬퍼할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내가 상주가 되는 게 맞는 건지 어느 상조에 연락을 해야 하는지 그런 생각들을 하다보니 영안실 시계의 초침소리가 갑자기 유독 크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개연성과 핍진성이 높은 글입니다. 자연스럽게 잘 읽히고 이 이야기에 몰입하고 집중하게 하는 힘도 좋습니다. 주목도 이외의 다른 요소들 중 임팩트가 강한 요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공감/감동의 요소가 강하면 좋을 것 같은데 그런 효과가 크게 나지는 않아서 그 점이 아쉬운 점입니다.
# 14.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어제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아 아예 밤을 샜다. 그리고 하루를 통째로 뜬눈으로 보내려 했다. 실패해버렸다. 그래도 다시 밤이 되자 꾸역꾸역 침대에 누웠다. 이불을 머리 끝까지 덮어도 봤다. 몸을 왼쪽으로 뉘였다가 오른쪽으로 돌려본다. 베개를 하나 더 받쳐 추켜세워도 보고 아예 빼어 내기도 했다. 호흡을 조절한다. 두 번 들이마시고 한 번 내뱉고. 숨을 참았다가 다시 크게 한숨 들이 마신다. 이걸 5번 정도 반복한다. 미군들이 전쟁통에도 자려고 쉬이 쓰는 방법이란다. 소용없다. 머리 속에서 쓸데없는 생각들이 영화처럼 재생된다. 담배라도 피고 와야 하나. 내 잡념이 정리될 순 있어도, 이 추운 날씨에 나가면 오던 잠도 같이 달아날 게 뻔하다. 고민 끝에 나갔다 오기로 결심했다. 그래, 어차피 잠도 안 올 거 잠깐인데 뭘. 아직 새벽 2시다. 4시까지는 으레 이렇다.
두꺼운 점퍼 하나를 걸치고, 잠옷차림으로 밖에 나갔더니 눈이 온다. 나오길 잘했다. 이 불면증의 원인이 무얼까 했다. 이 생각이 들 때마다 내리는 결론은 하나였다. 두려움. 고등학생 때부터 달고 다니던 잠 못 드는 밤이다. 그땐 내가 공부가 부족한 게 두려워 잠을 자고 싶지 않았다. 대학생부턴 설렘도 두려움의 일종이니, 그랬다. 지금 내 두려움은 어디서 날 찾아왔을까.
크리스마스였다. 나는 군인이었으며, 아침에 교회를 갔다. 그때도 지나가며 얼굴을 봤다. 잠 덜 깬 표정.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깨끗한 얼굴이다. 교회 갈래? 물었다. 친구가 불자라는 건 알고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하곤 나는 내 갈 길 갔다. 그리고 그 날 밤, 영내 숙소에서 동기들과 술 한잔 하고 있었다. 한 명은 휴가를 나갔고, 한 명은 아직 숙소로 오지 않았었다. 오겠지. 했는데, 전화는 꺼져 있었다. 동기 하나는 그 친구가 감악산을 간다고 했다. 불안함이 엄습했다. 과장에게 전화가 와 부대로 오라고 했다. 나와보니 겨울 바람이 차가웠다. 눈물은 식지 않았다.
우리 연대에서만 벌써 세 번째 자살이었다. 왜 다들 이 불쌍한 삶을, 여린 몸을 내던졌을까. 그렇게 아까운 청춘들이 왜 져버렸을까. 왜 우리를 저버렸을까. 셋에게 단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단기복무도, 장기복무도 아니었다. 복무연장이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군이 붙잡아 두고 있었다. 젊음을 희생시키는 대가로 너희를 장기를 시켜줄지 말지 볼 게. 잔인했다. 단기는 2년, 나가도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다. 장기는 장기대로 군 생활이 적어도 10년 이상은 할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 복무연장은? 6년. 그 시간동안 장기가 돼야만 한다. 여기서 나가면 나이 서른이 넘어 사회에서 써주지 않으리라. 그래서 내 윗사람의 부당한 명령에 눈 감고, 아래에서 치고 올라온 후배들이 장기가 되는 모습을 보며. 감내하고, 참고, 견뎌야 했다.
두려움이다. 두려웠을 거다. 앞으로 자신의 미래가. 내 눈앞에 그려지지 않는 내 미래 모습이. 그리고 다음 날 내게 올 질책들이. 계속해서 엄습해오는 불안감이 있었을 거다. 나도, 모든 사람들도 매일 지고 살아가는 두려움이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버텨내야 하는 두려움도 있다. 목표는 있지만 그 목표를 달성한다고 해서 지금 내 상태에서 더이상 나아질 것도 바뀔 것도 없는 그런 상태. 죽음에 대한 두려움보다 삶의 고통이 더 큰 상태가 내가 본 세상에 셋이나 있었다. 눈이 그쳐간다. 다시 들어가 잠을 청해야겠지만, 내 불면증은 다시 시작이다.
통찰과 주목도 두 측면에서 모두 중간보다 더 나은 수준으로 읽히는 글입니다. 통찰의 측면에서는 그런 식의 ‘희망고문’ 같은 현상이 어디에서 비롯하는지에 대한 생각이 더 뻗어나가서 추가할 수 있는 맥락이 있다면 좋겠습니다. 주목도 면에서는 글을 읽은 뒤에도 기억에 남을 만한 인상적인 표현이 두 세 군데 있으면 좋겠습니다.
# 15.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말곤 없었다. 아무도 깨워주지 않았다는 황당함보다 상사에게 혼날 걱정이 앞섰다. ‘오늘은 주문이 많이 들어올텐데..’ 시계를 보며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 오늘은 15개의 운하가 떨어지는 날. 많은 사람들이 떨어지는 운하를 보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나는 그 소원을 전달받아 상급 본부에 전달할지, 혹은 보류할지 결정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아직 시끄럽지 않은 걸로 봐선, 운하가 떨어지기 전인 것 같다. 상사 몰래 내 자리를 찾아 모니터를 켰다. 우리들 앞에 보이는 대형 스크린은 운하가 지구에 지나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 화면을 보며 우리는 소원이 언제 들어올 지 예측할 수 있다. 화면에 보이는 별똥별이 이제 사람들에게 보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마냥 물밀 듯이 들어올 소원들에 벌써부터 온몸이 뻐근했다. 딩동, 딩동. 각 화면에 소원들이 전달되기 시작했다.
‘주님, 올해는 여자친구를 사귀게 해주세요.’ ‘주님, 제 소원은 건물주입니다.’ 등등 각양각색의 소원들이 들어왔다. 약 1초간의 시간동안 날라오는 수억개의 소원들. 현실적으로 가능한 소원인지, 그 사람의 평판은 어떠한지, 앞으로 갱생가능한지 등의 여부를 따져 소원을 들어줄지 정해야 한다. 승낙, 승낙, 보류, 승낙, 보류,,, 마치 게임을 하듯 소원들을 화면에서 넘겨버리면, 곧 업무가 끝날 시간이 된다. 이제 마지막 소원만이 남았다.
‘주님, 저는 후천적 청각장애인입니다. 당신에 대한 원망은 많이도 했지만, 이제는 겸허히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래도 불편한 건 사실입니다. 사람에게 기본적인 것은 언어와 의사소통인데, 수화를 하는 사람이 제 주변엔 없습니다. 저로 인해 불편함을 감수하는 것만 같고 짐이 된 듯한 기분이 듭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되는 새로운 지식을 배워야 하는 게 저에겐 차별로 느껴지더군요. 주님, 제 소원은 수화를 필수 과목으로 지정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의사소통을 서로 할 수 있도록, 불편함이 차별이 되지 않도록 해주세요.’
인간은 보통 자신에게 부족한 것을 바란다. 돈이 풍족하지 않은 사람은 일획천금의 기회를 바라고, 모태솔로인 사람은 애인이 똑 떨어지길 바라듯이 지금 가장 자신에게 절실한 것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때는 소원을 빌면 된다. 그런데 이 남성은 자신의 권리를 바라고 있다. 기본적인 권리가 충족되지 않는 자신의 상황을 보며 얼마나 한탄스러웠을지. ‘차별을 하지 않기 위해선, 차이를 극소화시키는 방법도 있는 법이지‘ 나는 마지막 소원을 승낙했다.
통찰과 주목도로 평가할 수 있는 글인데, 통찰의 면에서 생각해볼 만한 여지가 일정 수준으로 있는 편인데 그렇게 강하다고 하기는 어려울 듯합니다. 주목도 역시 평범한 수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16.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일어나보니 어느새 해가 중천에 떠있었다. 친구들을 불러모아 문구점에 갔다. 우리의 목적은 500원짜리 동전을 넣으면 장난감이 나오는 신기한 기계. “야! 오늘은 내가 뽑아본다!” 500원짜리 동전을 조심스레 넣고 손을 덜덜 떨며 뽑기 버튼을 누른다. ‘땡그랑’ 장난감이 나왔다. 기대를 가득 품고 뚜껑을 연 순간 우리는 모두 실망했다. 오랫동안 뽑히길 기대했던 장난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휴, 내일 또 뽑아보자”. 우리는 어깨가 축 쳐진 채 집으로 돌아갔다.
다음 날 아침 학교에 간 나는 깜짝 놀랐다. 우리가 그렇게 뽑으려 해도 안 뽑히던 희귀한 장난감을 옆자리 짝꿍 태현이가 태연하게 갖고 놀고 있었던 것이다. “헐 이거 완전 뽑기 힘든 건데 너 이거 어떻게 뽑았어?” 태현이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아아 이거 문구점 아저씨가 그냥 줬어”라고 말했다. 화가 났다. 나와 친구들이 그 자판기에 쏟아 부은 돈과 노력이 얼만데. 우리는 학교가 끝나자마자 문구점으로 달려가 아저씨에게 분노의 목소리를 쏟아냈다. “아저씨 태현이는 왜 그냥 장난감 줬어요?” 아저씨는 웃으며 말했다. “태현이는 멀리 지방에서 전학 왔잖니. 너희들이 좀 배려해주렴” 화가 났지만 아저씨의 마음을 이해하기로 하고 장난감을 뽑았다. 또 꽝이었다.
우울한 마음을 달래고자 놀이터로 달려간 우리는 또 다시 그 장난감을 마주쳤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아이에게 다가가 어디서 장난감을 구했는지 물어봤다. 역시 문구점 아저씨가 그냥 줬다고 했다. “또!” 이번엔 정말 봐줄 수가 없었다. 곧바로 문구점으로 달려가 따졌다. 돌아온 아저씨의 답변은 이랬다. “그 친구는 얼마 전에 크게 다쳐서 몸이 좋지 않대. 너희들이 좀 배려해주렴”. 화가 많이 났지만 이해하기로 했다. 스트레스를 풀 겸 다시 자판기에서 장난감을 뽑았다. 또 꽝이었다.
뒤에서 웃으며 지켜보던 아저씨는 “얘들아 너희들이 갖고 싶은 그 장난감은 딱 두 개 들어있었는데 다 나갔어. 대신 아저씨가 맛있는 거 줄게”라고 말했다. 충격적인 발언을 듣고 그 장난감을 더 이상 가질 수 없다는 생각에 우리는 울음을 터뜨렸다. 아저씨가 달래보려 했지만 방법이 없었다. 나는 대성통곡을 하며 집에 들어갔다. 엄마에게 하소연을 하고 싶었지만 들려오는 큰소리에 발걸음을 멈췄다. “장난하는 것도 아니고. 이러면 일반인은 취업을 하지 말라는 거야 뭐야! 이건 배려가 아니라 역차별이지!” 취업을 준비하는 형이 방에서 친구와 통화를 하는 소리였다. 형이 이렇게 화가 난 모습은 처음 봤다. 형이 보고 있는 컴퓨터 화면에 웬 표가 하나 있었다.
[공기업 채용 공고]
지방인재 전형 : 총원의 30%
고졸자 전형 : 총원의 20%
장애인 전형 : 총원의 10%
일반 전형 : 총원의 40%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서 슬며시 지나쳤다. 나는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 뉴스가 나온다. “여당 대표는 공기업 채용 시 지방대생 의무 채용 인원을 총원의 50%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습니다.” 무슨 내용인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아까 컴퓨터에서 본 단어들이 떠올랐다. 형이 화를 낼까봐 서둘러 채널을 돌렸다.
통찰과 주목도로 평가할 수 있는 글입니다. 중심맥락이 전달하려는 바는 비교적 뚜렷하게 읽히는데 왜 그런 생각에 이르렀는지와 관련해서는 픽션 스토리의 플롯이나 흐름을 조금 더 정교하게 설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글의 플롯과 구성은 비교적 간단하고 평면직입니다. 배려인가, 역차별인가를 판단할 때 현실에서는 매우 복잡하고 중층적인 조건과 환경인데 글에서는 그 점을 배제하고 너무 간단한 플롯을 설계함으로써 이 문제가 가지고 있는 입체적인 면을 간과한 측면이 있습니다. 다시쓰기를 할 때는 언급한 내용에 대한 보완을 해보기 바랍니다.
# 17.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1시 반이 넘도록 잠이 오질 않았다. 열두시 정도에 누웠으니, 벌써 한 시간 반째 핸드폰만 붙들고 시간을 축낸 셈이다. 반딧불이처럼 밝은 핸드폰 화면을 바라보며 의미 없이 내 또래들의 생활을 염탐했다. 다들 애인 혹은 배우자와의 행복한 생활을 부각하기에 바빴다. 문득 옆구리가 시려왔다. 나는 보던 SNS 어플을 끄고, 자주 이용하는 파일 공유 사이트를 켰다. 이 곳에서는 세계의 온갖 미녀의 알몸이 뒤엉퀴는 광경을 맘껏 볼 수 있었다. 그것도 한 편당 1000원도 채 되지 않는 돈으로 말이다. 실제로는 내 연봉을 오롯이 투자해야 겨우 하룻밤을 보낼 수 있을 그녀들을 말이다. 더 큰 화면으로 보기 위해 가로로 돌리려다 하마터면 떨어트릴 뻔한 핸드폰을 가까스로 잡았다. 핸드폰을 다시 들어 올린 순간, 내가 실수로 한 링크를 클릭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 링크는, 파일 공유 사이트 아래에 항상 광고되던 채팅방이었다. 미모의 여성이 반라의 차림으로 자극적인 포즈를 취하며 ‘실시간’ 채팅임을 강조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겁이 나서 눌러보지 못하던 곳이었다. 뒤로 가기를 눌러 보고 있던 영상으로 돌아가려던 나에게 채팅방이 팝업창으로 제안을 건넸다. ‘채팅에 참여하는 것은 무료’라며. 여타 개인 정보를 요구하지 않아 큰 부담이 없다고 생각하여 채팅방에 들어간 나는, 즉시 하나의 채팅방으로 연결이 됐다. 채팅방 안에서는 수많은 이들이 나를 ‘새로운 회원’으로 칭하며 열렬히 반겨줬다. 그 누구 한 명 나를 살갑게 반겨주지 않는 실제 삶과 대비되며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뽀얀 살결을 드러내는 화면 속 여성도 애교가 가득한 목소리로 나를 불렀다. 그렇게 나는, 잠이 오지 않을 때마다 채팅방을 찾아 들어가기 시작했다.
채팅 속 여성들과 영상 속 여성들의 가장 큰 차이는, 생동감이었다. 영상 속 여성들도 살아 숨 쉬는 생명체였지만 나의 부름에 따라 반응하지는 못하였다. 채팅 속 여성들은 자신의 얼굴을 가리기 위해 마스크를 끼고 있었지만, 영상 속 여성 못지 않게 미인이며 순종적이었다. 내가 영상을 구입하는 것과 비슷한 돈을 지불하고 채팅을 남기면 채팅 속 여성들은 무조건적으로 반응을 해 주었다. 나의 요구는 처음엔 인사로 시작하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그 강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내 발언의 수위가 높아질수록 함께 채팅을 보는 전우들의 호응도 열렬했다. ‘열혈팬’이라 불리던 나의 호칭은 점차 ‘이사’, ‘부회장’으로 높아져 급기야 ‘회장님’의 호칭을 달았다. 내가 등장해서 돈을 쓰면 구름떼처럼 관객이 몰렸고, 채팅방의 여성은 내 요구에 따라 쉽게 다리를 벌렸다.
‘회장’의 직위를 단 이후, 내가 채팅방에서 사용하는 씀씀이는 내 월급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들과 실제로 보내는 하룻밤보다 싸다는 생각을 하며, ‘가성비’가 높다고 여겼다. 더욱이 많은 군단을 둔 ‘회장님’으로서의 직위를 떨칠 수가 없었다. 그 무렵 이웃방의 행위가 이슈화되기 시작했다. 나의 군단들의 출석률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을 보였다. 다들 ‘무섭다’는 말을 남기며 자신의 흔적을 채팅 사이트에서 지워나갔다. 남은 이들은 ‘우린 그렇게 가학적인 건 하지 않는데’라고 말하며, 이제 마스크를 벗긴 여성에게 복종적인 행동을 취할 것을 강요했다. 개인 정보를 공유하지 않고 운영되는 이 공간은, ‘회장’인 나의 지휘 하에 굳건한 성벽을 드리우고 있는 난공불락의 요새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주인공이 점점 변해가는 상황을 피상적으로 묘사(인정을 받는 모습, 반복적으로 소비하는 모습 등)하는 것을 넘어서 입체적으로, 현실적으로 묘사하면 다른 효과가 날 수도 있을 듯합니다. 주인공 캐릭터의 심리와 생각의 변화까지를 구체적으로 잘 정리한다면 개연성과 핍진성이 더 높아질 수 있고, 읽는 사람이 생각하도록 하는 요소도 더 강하게 느낄 수 있을 듯합니다.
# 18.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 아니, 정확히 집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예전 낡은 호텔을 개조해서 만든 이 곳은 쉐어 하우스다. 화장실 2개, 거실과 주방공용, 각자의 개인방이 존재한다. 이사 온지 한 달째 나는 같이 사는 하우스 메이트 얼굴들을 본적이 없다. 급하게 쫓기든 이사를 온 탓이라 같이 사는 분들 성향은 중요하지 않았다. 골목길을 지나서 집에 도착해야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CCTV가 곳곳마다 있고, 회사와 멀지 않은 거리, 중심가치고는 싼 월세의 나는 바로 계약을 하고 이곳에 왔다. “이사 온 뒤 계속되는 야근에 10시, 11시에 퇴근을 해서 그런가... 드라마처럼 친하게 지내고 같이 야식 먹고 그런 분위기는 아니구나...” 못내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다음날 출근을 위해 바로 잠이 들었다.
“이곳은 지나갈 때마다 무섭네” 나는 종종걸음을 하며 골목길을 지나고 있었다. 쉐어하우스를 가기 위해서는 큰길로 우회해서 가는 길도 있었지만 15분은 더 걸어서 가야한다. 매일같이 늦게 퇴근하는데 15분을 위해 더 걷자니 빠른 걸음으로 골목길을 지나는 편을 선택했다. CCTV도 있는데 큰일이야 나겠냐는 마음이었다. “뚜벅뚜벅...뚜벅뚜벅” 내 구두 소리 말고 다른 발자국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살짝 고개를 돌려보니 젊은 남성 같았다. 잠시 지난일이 생각나며 나는 더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걸어갔다. 방에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열었지만 아무도 없었다. “그냥 동네 주민인가...” 그 일이 있은 후 나는 예민해져있었다.
한 달 전 나는 회사에 휴가를 내고 본가에 내려가 쉬고 있었다. 자취를 계속했던 나는 부모님께 잠시 쉬고 싶다며 내려 왔다고 둘러댔지만 사실 다른 이유가 있었다. 2주전 1년 정도 사귄 남자친구와 작은 말다툼이 큰 말다툼으로 번졌다. 화를 주체하지 못한 남자친구는 자신의 차키를 던지며 욕을 하기 시작했다. 1년 동안 한 번도 폭력성을 보인 적이 없는 남자친구였다. 작은 행동이었지만 데이트폭력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 같았다. 그 날 바로 헤어진 뒤 평소처럼 집으로 퇴근을 하고 있었는데 누군가 따라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음날, 또 그 다음날, 내가 예민해서 느낀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나를 따라오는 소리였다. 얼마 전 집으로 혼자 들어가던 여성을 따라가 집까지 들어가려했던 사건이 머릿속을 스쳐 지났다. 나는 집으로 들어가지 않고 다시 큰길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탁’ 누군가 내손을 잡았다. “너 왜 집으로 안 들어가?” 내 손을 잡은 사람은 전 남자친구였다. 스토킹이라는 이유로 전 남자친구를 신고했다. 그러나 동네에 CCTV는 모두 작동하지 않았고 결국 나를 따라다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전 남자친구는 풀려났다. 이사 말고는 다른 해결방법이 없었다. 결국 휴가를 내고 본가로 내려와 새로운 집을 찾고 있었다.
다음날 퇴근길 골목길과 큰길 중 어느 쪽으로 걸어갈지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다. 전 남자친구가 새로운 집을 알아낸 걸까? 집까지 이사했는데 여기까지 알아낸 거면 정말 무슨 짓을 하지 않을까? 수많은 걱정을 하며 결국 큰길로 가기를 선택했다. 큰길로 가는 건 처음인데 시간이 늦어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없었다. 종종걸음을 하며 집으로 가고 있는데 어제와 같은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뚜벅뚜벅...뚜벅뚜벅” 공포감에 휩싸이며 더 빠른 걸음을 재촉하다가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여기는 작동이 된다는 것도 확인했고 큰길이니깐 소리지르면 사람들이 도와줄 거야“ 이번 기회에 전 남자친구 스토킹 사실을 밝힐 증거를 잡을 수 있었다. 뒤를 돌아 나는 소리쳤다. ”야 너 새로 이사 온 집은 어떻게 알아냈어?“ 나는 손이 덜덜 떨렸지만 목소리만은 강하게 외쳤다. ”네? 저...○○하우스 사시는 분 아닌가요? 저 3호방 사는 여은수라고 합니다.“ 뒤를 돌아 자세히 보니 짧은 머리를 하고 펑퍼짐한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은 바로 내 옆방에 사는 여자였다.” 처음에는 저도 몰랐는데 집으로 들어가시는 거 봤어요. 인사를 드리려고 해도 걸음이 너무 빠르시고 집에 들어가도 바로 방에 불이 꺼지는 것 같아서...“
그날 이후 나는 은수씨와 함께 퇴근길을 같이했다. 혼자 걸어가던 골목길은 더 이상 어둡지 않았다. 가로등마저 따뜻해 보였다. 고요하던 골목길에는 환한 웃음소리로 공기가 채워지고 있었다.
통찰과 주목도, 공감/감동의 측면이 조금씩 있는 글인데 어느 쪽으로든 임팩트가 강한 요소로 느낄 수 있는 부분이 더 있으면 좋겠습니다. 후반부 얘기는 뻔한 결말로 이어지지 않아서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고 있고, 통찰의 면에서도 생각할 요소를 지니고 있습니다.
# 19.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 땅거미가 지상에 내려앉을 무렵, 집 근처 포장마차에서 잔을 기울이고 있을 때 영일이 내게 처음 꺼낸 말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안주로 나온 매운 닭똥집을 집어 먹으며 물었다. 영일은 투명한 소주잔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힘겹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내 아내의 이야기야.” 하고 영일은 운을 띄웠다.
“내 아내가 다른 남자와 몸을 섞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건 2달 전쯤이었어. 당시 나는 아내에게 이혼을 통보할까도 생각해봤지만, 그녀와 떨어져 산다는 건 도무지 생각해본 적이 없어서 선뜻 말하지 못하고 참고만 있었어.” 영일은 씁쓸한 웃음과 함께 소주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러다, 어느 날 그녀에게 내가 그녀의 외도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해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렇게 한다면 그녀가 더는 바람을 피지 않을 것 같았어. 그리고 아내가 내가 변한 건 그날부터였어.” 영일은 한숨을 길게 내쉬며 자신의 잔에 소주를 가득 따랐다. 그러고는 말을 이었다.
영일의 이야기에 따르면 영일이 그녀의 외도 사실을 안다고 말하자 그녀는 처음에 미친 듯이 웃다가, 화내다가, 울다가, 넋 놓다가, 공포에 질려 했다는 것이다. 영일은 그런 그녀에게 더는 바람을 피우지 않을 것을 약속해달라고 요구했고 그녀는 수락했다고 했다. 그녀가 이상하게 변한 것은 그 이후부터였다고 영일은 설명했다. 그 이후로 그녀는 영일을 볼 때면 미친 듯이 웃다가, 버럭 화내다가, 서럽게 울다가, 넋 나간 듯 멍을 때리다가. 영일을 두려워했다는 것이다. 영일은 처음에 그녀가 연기하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녀를 진정시키기 위해 말을 꺼낼 때마다 그녀는 자신이 방금 어떤 표정과 행동을 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영일은 그녀를 정신병원에도 데려가 보았지만 뚜렷한 치료 방법이 없어 영일은 고통스럽다며 내게 털어놓았다.
나는 영일의 등을 토닥이며 말했다. “그녀와 이혼하는 게 어때? 보아하니 그녀도 안정이 필요하고 너와 같이 살다간 증세가 더 심해지고 말 거야. 그녀가 대체 왜 그렇게 변해버렸는지는 모르지만 아마 너에 대한 죄책감의 탓도 있었겠지.”
영일은 고개를 천천히 저으며 신음하듯 대답했다. “그렇지만 정말 그녀와 떨어져 사는 건 생각해 본 적이 없어. 그녀를 온전히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마치 이 세상에서 나만 그녀를 알지 못했던 것 같아.”
나는 어떤 대답도 해주지 못하고 일렁이는 잔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그렇게 10분쯤, 서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다가 영일이 문뜩 말했다. “어쩌면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것 따윈 불가능할지도 몰라, 아무리 사랑했다고 해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영일이 내게 했던 마지막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그렇다, 설령 깊이 사랑했다고 해도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하는 일 따위는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영일의 아내가 그가 이해하지 못하는 경지로 변해버린 것처럼.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 자신만 괴로워질 뿐일 것이다. 따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자기 자신의 마음을 똑바로 마주하는 것 말고는 없다.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할수록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영일의 풀죽은 뒷모습을 떠올리며 생각했다.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나 자신과 솔직하게 타협해야 한다. 나 자신과의 이해와 타협이라는 창문을 통해 타인을 들여다볼 수 있을지도 모르니까. 그것이 설령 서로 얼굴을 모를 정도로 변해버린 다섯 여자라도.
개연성과 핍진성이 더 높으면 좋겠습니다. 실제로 일어날 법한 이야기로 읽히는 면이 더 많아야 합니다. 개연성과 핍진성이 부족하기 때문에 어떤 맥락을 드러내기 위해서 가공한 이야기라는 느낌이 많이 드는 편입니다. 중심맥락 중에서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자 한다면 나 자신과 솔직하게 타협해야 한다”는 부분이 핵심에 해당하는 내용인 것 같은데 어떤 뜻인지가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편이어서 모호하게 느껴집니다.
# 20.
2021년 12월 13일.
작년, 오늘 엄마가 죽었다. 평생 오지 않길 바랐던 날이었다. 또 그날이 엄마의 기일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엄마는 나와의 약속을 끝까지 지키고 멀리 가버렸다.
2020년 12월 17일.
세상이 다시 내 얘기로 시끄럽다. ‘조두순 출소일’, ‘조두순 사건 피해자(가명 나영이) 엄마’, ‘조두순 살해’. 사정을 아는 친인척 모두가 충격에 빠졌다. 아빠는 상실의 슬픔을 제대로 느끼기도 전에 여기저기서 걸려오는 전화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없는 듯하다. 그러면서도 혹여 내가 미디어에 조금이라도 노출될까 노심초사한다. 내가 정말 억울한 건, 엄마의 마지막을 제대로 맺어주지도 못한다는 점이다. 나 때문에, 장례식도 없이 엄마를 보내주기로 했다. 진짜 살고 싶지 않은 건 난데, 왜 우리 엄마를 데려갔을까. 아마, 나는 평생을 이 고통에서 살겠지.
2021년 1월 3일.
그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던 건, 치료의 목적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리 가족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게 해주세요.’ 내가 12년간 바랬던 건 딱 하나였다. 판·검사를 꿈꾼 것도 아니고, 지금보다 더 자유롭게 살고 싶다고 한 적도 없다. 심지어 그가 아니, 그 ‘개새끼’를 죽여 달라고 진심으로 빌어본 기억도 없다. 하늘도 무심하지 이런 내 꿈이 그리도 거창했나? 그런데도 다시 펜을 잡는 이유는 끝까지 나를 지키려 했던 엄마와 나만 보고 사는 아빠를 위해서다.
지금에서야 고백하자면 연말은 내게 지옥과도 같다. 크리스마스철이라며 트리를 꾸미고 화려한 조명이 번쩍이는 게 나한테는 역겹다. 이상하게도 12월엔 항상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물론 늘 불안감을 가지고 살았지만, 특히나 이땐 불안 증세가 심해졌다. 그러다 문뜩 떠오르는 기억에 간혹 발작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12년 전 12월에 있었던 일 때문만이 아니다. 언젠가 12월에 내가 사는 세상으로 나오게 될 거란 사실이 더 끔찍했다.
그런데도 12번의 12월을 굳건히 버틸 수 있었던 건 가족 덕분이었다. 부모님은 내게 “지켜줄게”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꾸준한 심리치료와 병원치료의 효과도 봤던 거 같다. 그런데 지난 9월부터 언론이 종종 그 사람 이야기를 보도하곤 했다. 안산에 온다고 하더니, 또 산에서 카페를 하겠다고 말했다. 애써 찾아보지 않으려고 해도 강제로 들려왔다. 시청 사회복지사님도 자주 전화가 왔다, CCTV를 대거 설치하기로 했다며, 밤 9시 이후에는 나가지 못하게 할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결국엔 다 부질없었지만.
13일 나는 현관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밖에서 시끄러운 경보음이 들리길래 무슨 소리인가 궁금했었다, 그게 문제였다. 문을 열고 나가자 개새끼가 서 있었다. 그 사이렌 소리는 발목에 붙은 팔찌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순간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다시 찾아온 공황발작에 숨을 허덕일 뿐이었다. 헐떡이는 소리에 엄마가 뛰어나왔다. 그리고 주방으로 뛰어가 식칼을 꺼내왔고…. 그리곤 기억이 나질 않는다. 끝까지 나를 지켜준 건 엄마뿐이었다.
널리 알려진 유명한 사건을 쓸 때 기억해야 하는 점들이 있습니다. 그 사건에 대해서 읽는 사람들이 대부분의 정보와 지식을 가지고 있고, 언론이나 미디어가 생산해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 글은 기존의 고정관념을 다시 한 번 반복해내는 이야기로 읽힙니다. 극단적인 내용의 플롯인데 그런 극단성에 걸맞은 효과가 잘 나지 않는다는 점도 한계로 꼽을 수 있습니다.
# 21.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 우리가 서로에게 아는 것은 각기 다른 고향에서 온 같은 또래의 여자라는 것, 그뿐이다. 이 집은 좁고 긴 통로를 따라 자그마한 방이 다닥다닥 늘어서 있다. 이곳에 들어온 지도 6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아직도 이 구조가 익숙지가 않는다. 햇빛조차 들어오지 않아 컴컴한 작은 방에는 두 사람이 겨우 몸을 뉘일 만한 다다미 침상, 주전자, 찻잔 그리고 세숫대야가 있다.
어젯밤을 함께 보낸 아이는 소리도 없이 사라지고, 새로운 아이가 내 방에 들어왔다. 구석에 웅크려 앉아 온몸을 사시나무 떨 듯 벌벌 떨고 있다. 새로 온 아이의 안위 따위는 사실 내게 중요하지 않다. 그냥 귀에 거슬리는 저 훌쩍이는 소리를 멈출 요량으로 말을 건넸다. “너는 몇 살이니?” “춘천에서 온 12살 옥선이라고 해요.” 무서웠는지 타지에서 말을 건네주는 게 퍽 위안이 되었나, 묻지도 않은 말을 술술 내뱉는다. “언니, 언니라고 불러도 되죠? 언니 이름은 뭐예요?”
한 번도 내 이름을 물은 적 없었다, 적어도 이곳에선. 지옥 같은 악몽을 매일 수십 번도 반복하는 이 곳에서 서로의 이름을 묻는 것은 금기시되었다. 어차피 이 아이도, 나도 언젠가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에 처해 있다. 서로에게 정 붙이며 이름이나 부르는 것은 감각도 없이 숨만 쉬면서 연명하는 우리 생에 사치다. 대답하지 않고 아무 말 않고 잠자코 있자 아이는 실망한 표정으로 다시 고개를 자기 무릎 안으로 묻는다.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사라진 아이였다. 나이가 너무 어린 탓이었을까. 하루에 많게는 서른 명을 상대한 아이는 버티지 못하고 피다 만 꽃처럼 그 생을 마감하고 말았다. 내 이름은 이순이. 19살에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말에 속아 이곳으로 왔다. 위안소 6호 3번 방, 이곳이 내 집이다.
미디어가 그려내는 이미지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쓰는 것은 별다른 효과를 가져다주지 못한다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많이 알려진 이슈나 사건 등을 쓸 때는 더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 22.
오늘 엄마가 죽었다. 드디어. 우리 엄마는 끝내 암을 이기시지 못하셨다. 심장이 멈췄으니 이제는 내가 있는 이곳으로 오실 수 있게 되었다. 엄마는 저 죽음을 두려워하셨을까, 아니면 나를 만날 생각에 마음이 들뜨셨을까? 죽음을 두려워하는 건 누구도 그 다음에 어디로 가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나도 이 세상에 오기 전까지는 죽음이 무서웠다. 그런데 저 세상에서 죽어야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다. 죽음은 두 세상를 구분 짓는 경계선에 불과하다.
지금쯤이면 엄마를 만날 줄 알았는데 아직도 만나지 못했다. 엄마는 왜 이곳으로 오시지 않는지 생각해봤다.
육신은 동일하게 한 번씩 죽었지만 총 죽은 횟수는 다르다. 나는 한 번 죽었고, 엄마는 여러 번 죽었다. 영문학과를 수석 졸업한 학생 엄마는 유학을 가서 더 넓은 세상을 누비고 싶어하셨다. 하지만 그 기대감은 결혼과 동시에 문학작품 대신 “매일밥상", “특별한 가정식” 따위의 책을 가까이하며 빠르게 날아갔다. 엄마 안의 학생은 죽어갔다. 내가 태어나면서 학생 엄마는 완전히 죽고 ‘현모양처’인 엄마만 남았다. 그때부터 엄마에게 중요한 건 집안일, 남편, 자식으로 정해졌다. 본인을 위한 삶을 살지 못하면서, 엄마 안의 인간은 죽어가고 있었다. 나를 잃어가면서까지 타인을 위해 희생해본 적 없는 나의 육신은 한 번 죽은 것이고, '엄마'는 계속 죽고 있었다.
나는 살해당했다. 길 가면서 내 앞뒤 좌우로 누가 있는지 살피는 걸 피곤하다고 깜빡하면 안 됐다. 그랬다면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고 칼에 찔리는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그날 피곤한 게, 그때 집에 가고 있었던 내 잘못이다. 남을 위해 희생해 본 경험 없이 이 세상에 왔다. 그리고 쭉 엄마를 그리워하며 엄마가 죽을 날만 기다렸다. 내가 엄마를 그리워하는 이유는 엄마 사랑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은 과연 죽어서도 함께여야 할까? 엄마의 보살핌을 원하는 것은 나의 욕심이고 이기심이다. 엄마를 위해서가 아닌, 나를 위한 것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죽고, 마저 살아가면서까지 욕심 리는 것은 엄마를 죽고 또 죽이는 일이다. 사랑하기 때문에 엄마를 그리워한다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죽은 엄마를 또 죽이고 싶지 않다.
통찰의 면에서 보면, 평범하거나 평범한 것보다는 약간 더 나은 수준으로 평가할 수 있는 중심맥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목도 면에서 평가해보면, 표현력을 더 키워서 인상적으로 써야 할 과제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공감/감동의 요소를 강하게 할 수 있는 소재이므로 그 요소를 강하게 쓸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보는 것도 보완책의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 23.
오늘 엄마가 죽었다. 내가 엄마를 죽였다.
엄마는 치열하게 살아남은 사람이었다. 나는 아직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지만, 그녀가 멋있는 사람이라는 것은 알 수 있었다. 나는 그녀가 작업을 할 때 느껴지는 즐거운 심장박동이 좋았다. 엄마가 슬프지 말고, 지금처럼 오래오래 행복하기를.
“임신 18주째입니다.” “네?” “첫 아이는 이렇게 늦게 찾아오시는 분도 계세요. 생리 오래전에 끊기셨을 텐데…” “입덧도 없고, 생리는 원래 불규칙해서…”
‘쿵’ 심장이 떨어지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나를 인식한 엄마의 첫 감정은, 공포였다.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액체가 탯줄을 타고 들어올 때 이리저리 피하던, 그런 감정. 나는 그런 이물질 같은 걸까. 집에 돌아온 엄마는 누군가에게 화를 냈다. 내가 엄마를 화나게 했다. 몸을 잔뜩 웅크렸다.
나는 누군가가 아빠라는 것을 알았고, 엄마는 더 이상 행복하지 않았다. 나는 엄마가 길을 걸으면 울리는 또각또각 소리를 좋아했다. 바쁘게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엄마의 심장을 따라 내 심장도 팔딱거렸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빛에 서 있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있으면 엄마는 빛을 잃어야 하는 걸까. 나는 이해가 되지는 않았지만 바깥은 엄마를 그렇게 만든 것 같았다. 공연히 바깥이 미워 주먹을 꼬옥 쥐고 몸을 이리저리 굴렸다.
“너는, 왜 조용해서 나를 더 슬프게 하니.” 엄마가 나에게 처음 말을 건넸다. 그녀는 나를 미워하지 않았지만 나로 인해 슬퍼했다. 엄마의 슬픔에 나의 존재가 흐려지길 바랐던 나는, 가만히 숨죽일 뿐이었다.
사실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엄마가 나를 원하지 않았다는 것을. 나는 엄마의 양분을 야금야금 빨아들였다. 이기적인 나는 그렇게 엄마의 생명을 갉아먹고 태어났다. 엄마의 얼굴을 처음 보았다. 엄마는 살아있지만, 동시에 죽어있었다.
나를 둘러싼 커다란 사람들은 나의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만 두려워, “응애”하고 큰 울음을 울었다.
공감/감동의 요소를 더 강하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가 있다면 그런 효과가 날 수도 있는 글로 읽힙니다. 태아가 화자인데 태아가 느끼는 감정을 자연스럽게 표현해내는 점은 장점입니다. 후반부로 갈수록 글이 힘이 달리면서 급하게 마무리되므로 그 점을 다시쓰기를 할 때 보완하면 좋겠습니다. 복잡미묘한 엄마의 심리를 조금 더 섬세하게 묘사해야 ‘살아있지만, 동시에 죽어있는 엄마’라고 하는 이유가 뚜렷해질 수 있습니다.
# 24.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다섯 여자가 산다. 그리고 나는 19시 13분부터 24시까지 살아간다.
고도로 발달한 인공지능과 기계로 인간은 노동에서 벗어났다. 의료 기술은 인류를 병과 죽음으로부터 구원했다. 일하지 않고 평생 자기 마음대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모두가 유토피아가 도래했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문제점은 곧 드러났다. 인구수는 빠르게 늘어났고 노동하지 않는 인구는 권태에 빠져 끝없이 무엇인가를 소비하고 그만큼 자원과 환경이 닳아갔다. 아무리 기계가 일을 열심히 해도 이 추세가 지속된다면 곧 소비량이 생산량을 넘어 자원 전쟁이 일어나고 세상이 붕괴할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잇따랐다. 높은 사람들이 모여 오랜 논쟁과 토론을 거친 끝에 결론이 내려졌다.
“한 사람당 4시간 48분씩 하루를 다섯 명이 나눠 산다면 모든 인류가 공평하게 평생을 누릴 수 있다.”
획기적인 생각이었다. 영원이 보장된 인류의 시간에는 끝이 없는데 맛있다는 음식들과 천혜의 풍경을 가진 여행지, 꼭 봐야 한다는 작품들의 수는 끝이 분명했다. 쾌락을 좇던 사람들의 끝은 인공지능이 만든 드라마나 인터넷의 대수롭지 않은 정보들과 함께하는 권태였다. 하루하루 지루하고 의미 없는 삶이었지만 죽기는 무서웠다. 무의미한 생활을 이어가고는 싶지만 목도하고 싶지는 않은 사람들에게 4시간 48분은 적절한 시간이었다.
새로운 인류의 삶은 빠르게 구현됐다. 사람들을 다섯 명씩 묶어 무작위로 시간대를 배정했다. 0시부터 4시 48분, 4시 59분부터 9시 36분, 9시 37분부터 14시 24분, 14시 25분부터 19시 12분, 19시 13분부터 24시. 사람들은 자기 몫의 시간을 누리다가 시간이 되면 관처럼 생긴 기계에 들어가 눕는다. 기계에 눕고 일어난 시간은 즉시 기록되어 자기 몫보다 많은 시간을 쓴 사람은 지구 밖으로 추방된다.
19시 13분, 오늘도 나는 무의식에서 깨어났다. 밖에 나간 지 오래지만, 거실의 큰 창으로 계절과 날씨를 가늠할 수 있다. 일어나자마자 깜깜한 겨울과 달리 해가 느지막이 지는 여름에는 잠에서 깨고 난 뒤에도 꽤 오래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어제 보다 만 드라마를 보려 책상에 앉았는데 책상 구석에 작게 접힌 쪽지가 있었다. ‘안녕. 어느 시간을 사시나요?’ 한집에 사는 사람 중 대화를 시도한 사람은 처음이었다. 어차피 만날 일도 없는 사람인데, 무의미한 일이다. 무시할까 하다가 충동적으로 쪽지 한구석에 대답을 적었다. ‘19시 13분부터 24시.’
다음 날 짧은 쪽지는 꽤 긴 편지로 바뀌어 있었다.
‘저는 0시부터 4시 48분을 살아요. 제 시간에는 여름에도 밤에도 해가 뜨지 않아요. 인류가 기상을 관측하기 시작한 이래로 단 한 번도 날씨가 똑같은 날은 없었다는 걸 아시나요? 우리는 삶이 지루하고 권태로운 똑같은 하루하루라고 생각했지만 매일 다른 모양의 구름이 흐르고 다른 온도의 바람이 불었어요. 그걸 느끼는 우리의 마음도 매일 달랐을 거예요. 빛없는 영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변화 없는 존재가 죽음이 뭐가 다른가요? 저는 내일 4시 48분에는 잠이 들지 않을 거예요. 깨어서 태양이 새롭게 떠오르는 걸 보기 위해서요.’
또 다음 날 깨어나자 방에 기계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그깟 일출을 보려고 영원을 포기하다니. 바보 같다고 생각했다. 이 집에는 서로 얼굴을 모르는 네 여자가 산다.
눈길이 가는 발상이기는 한데, 미래 시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소간 거칠게 설계했기 때문에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집중하고 몰입하게 되는 점이 부족해졌습니다. 변화 없는 존재는 죽음과 다를 바가 없다는 맥락은 어찌보면 조금 당연한 맥락이기도 하고 하루 중 일부를 사는 것과 변화가 없는 것은 조금 결이 다른 내용이기도 해서 잘 연결되지 않기도 합니다.
# 51.
낮잠을 잔 게 실수였다. 일정이 꼬였고 친구와 다투고 말았다. 소풍은 엎어졌다. 토요일의 절반이 날아가자 기분이 꿀꿀했다. 핸드폰을 던져버렸다. 이불을 돌돌 말고 누워 있다 보니 어디선가 구수한 냄새가 스멀스멀 올라왔다. 방밖을 나서니 아버지가 된장국을 끓이고 계셨다. 간을 봐달라고 하셨다. 호로록. 맛 평가를 기다리는 아버지는 숙제 검사를 기다리는 아이의 눈빛을 하고 있었다. 구수한데? 만족스러운 답이었는지 분주하게 저녁상을 마저 차려주셨다.
아버지에게는 빛나던 시절이 있었다. 직장인 시절, 어려움 없이 승진해 임원까지 달았던 아버지였다. 그러나 경영 악화로 가장 먼저 책상정리하게 된 대상은 50대 임원이었다. 예상보다 빠르게 찾아온 실직에도 아버지는 우울을 느낄 새가 없었다. 한때는 재취업에 도전하셨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고민 끝에 결국 운전대를 잡으셨다. 퇴직금으로 개인택시 면허를 사서 10년을 꼬박 채우시곤 몇 달 전 운전대를 아주 놓으셨다. 작년부터 귀에 이상이 생긴 아버지가 손님의 말을 잘못 알아들으시고 엉뚱한 장소에 내려드린 날로 아버지는 은퇴하셨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가족의 생계유지에 충실했던 아버지의 인생에 처음으로 여유란 놈이 찾아왔다. 그간 즐기지 못했던 당신의 삶을 즐기실 줄로 알았으나, 그날 이후 아버지는 눈에 띄게 우울해보였다. 아버지는 ‘여유’에 서툴렀다. 인생의 절반 이상을 일과 돈에 쫓기고, 쉬는 날은 고작 술로 잠으로 때우는 게 전부였던 삶이다. 이제야 여유가 생긴 아버지에겐 취미도 돈도 없었다. 더욱이 30년 가까이 쌓여온 가족과의 소통의 벽은 쉬이 무너지지 않았다. 아버지의 우울은 가족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지만, 어렵다는 핑계로 그저 방치했다. 아버지 역시 속내를 털어놓는 법이 없으셨다. TV를 보시는 아버지의 뒷모습이 외롭고 쓸쓸하게 느껴졌다.
“아빠, 전 부치는 거 도와주실래요?”
작은 일손 돕기가 시작이었다. 명절엔 늘 대낮까지 주무시던 아버지가 아침 일찍부터 거실에 나와 계셨다. 멍하니 계시기에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는데, 의외로 성큼성큼 오셔선 뭐부터 하면 되냐며 자리를 잡으셨다. 웬일인지 아버지의 얼굴에 생기가 비친 듯 했다. 아주 오랜만에 온가족이 모여 긴 수다를 떨었다. 이후 아버지는 본인의 ‘쓸모’를 인정받고 싶어 하는 양 집안일을 굳이 찾아 손을 뻗치셨다. 아무도 말릴 수 없었다. 일을 하는 아버지의 눈이 반짝 빛났기에. 그 모습은 아버지라는 가면을 벗어던진 한 사람으로서, 한 남자로서 인간 그 자체였다.
최근 아버지에게 소소한 취미가 생겼다. 국끓이기다. 부엌일이 처음인 아버지의 레시피가 다양할리 만무했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꾸준하셨다. 시작은 콩나물국이었는데 이제는 된장국도 거뜬히 만드신다. 퇴근길에 한 번씩 ‘뭐 먹고 싶냐’ 이 다섯 글자의 메시지가 기다려지곤 한다. 무심해 보이는 메시지 속에서 따뜻함을 느끼며. 마주 앉은 아버지의 얼굴에 뿌듯함과 행복이 묻어났다. 따뜻한 밥상 앞에서 새삼 낮잠을 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생각이 스쳤다.
전반부 아버지에 관한 내용은 클리셰 느낌이 들어서 양을 좀 줄여도 좋을 듯합니다. 아버지라는 소재로 보통 우리가 가장 많이 시도하는 접근법이기 때문인데, 이 글에서는 후반부 내용이 새로운 것이고 그것이 글의 핵심 내용이므로 그 부분을 더 많이 쓰는 게 좋은 전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부분에서 통찰이 발생하고, 그 부분에서 공감/감동이 생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쓴 글에서는 통찰과 공감/감동 요소가 싹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제대로 숙성되지는 못했습니다.
# 52.
오늘 엄마가 죽었다. 죽기 전, 자신의 흔적들을 손수 정리해 떠날 거라던 엄마의 말은 지켜지지 못했다. 엄마가 쓰던 물건들을 하나 둘 가방에 옮겨 담는다. 그러다 발견한 노트 한 권. 일기장이다. 무심코 종이를 넘기다 눈에 박힌 문장 하나, ‘엄마가 보고싶다.’ 그렇다, 엄마는 최근 몇년 간 ‘엄마’를 그리워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외할머니를 부쩍 그리워하기 시작한 때는 엄마의 갱년기 이후다. 엄마는 이따금씩 ‘엄마가 보고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23살이었던 그는 ‘엄마’를 잃었다. 쉼 없이 농사일을 해오던 외할머니는 췌장암으로 그해 유난히도 춥던 한 겨울날, 세상을 떠났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던 날 엄마는 슬픔을 느낄 새도 없었다. 당장 그가 직면하고 있던 현실이 너무나도 벅찼기에, 엄마를 잃은 슬픔은 가슴 깊숙한 곳에 묻어둘 수밖에 없었다. 치열했던 삶의 끝자락에 닿고나서야 가슴 한 켠에 묻어뒀던 ‘엄마’의 존재가 떠오르게 된 것이다. 엄마는 ‘엄마’가 그리울 때마다 종종 나를 엄마라 부르며 ‘딸’ 역할을 자처했다. 난 거기에 장단을 맞춰, 어, 딸 왜. 배고파? 뭐 줄까? ‘응! 엄마 나 과일 깎아주세요!’. 처음엔 어쩌다 한 번이었던 역할놀이가 한 달에 한 번, 1주일에 한 번, 그리고 사흘에 한 번으로 그 간격이 줄어들었다. 엄마는 내게 더이상 엄마가 아닌, 딸아이가 되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일기장에 ‘엄마'에 대한 짙은 그리움을 적어내려간 끝에 ‘엄마’를 찾은 것 같았지만, 나는 그렇게 엄마를 잃어갔다.
덤덤하게 읽어 내려가던 일기장을 덮어 가방에 넣어 지퍼를 잠갔다. 큼지막한 가방을 방에서 들고 나오는 내 모습을 보고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던 엄마가 잔뜩 설레는 표정으로 내게 묻는다. 엄마! 오늘 우리 어디 가는 거야? 오늘 나 왜 이렇게 예쁜 옷 입혔어? 우리 놀러가? 나는 짧게, 응, 이라 답했다. 채비를 마친 엄마에게 두툼한 코트를 입히며, 이번 여행은 혼자하는 거야. 물론 나도 종종 갈 테지만. 가서 새로운 친구도 좀 사귀고. 그러자 엄마는 입술을 툭 내밀며, 혼자 여행은 싫은데… 새로운 친구도 싫어. 난 엄마만 있으면 된단 말이야. 엄마도 같이 있으면 안 돼? 마음 한구석이 아려오는 것을 무시한 채 어정쩡한 말로 엄마를 달래며 코트의 마지막 단추를 채웠다.
두 시간을 차로 달려 ‘그곳’에 도착했다. 보호사에게 엄마를 잘 부탁드린다는 말을 하고 엄마에게 건강히 계시라는 인사말을 하려는데 엄마는 내게서 떨어지지 않으려 안간힘을 썼다. ‘엄마 가지마. 엄마 가지마.’ 죄책감이라는 감정이 불쑥 솟구치려할 때 나는 과거, 엄마가 내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자식에게 절대 짐이 되고 싶지 않다던, 짐이 될 바에야 죽는 편이 낫겠다 했던 그 말. 맞아, 분명히 그랬어, 그건 엄마의 진심이었어.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눈물로 범벅된 엄마의 얼굴. 그런 그녀를 애써 외면하며 입술을 깨물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가로수길 사이를 도망치듯 달린다. 적막이 감도는 차 안. 라디오라도 틀어볼까. ‘이 시간 주요 뉴스입니다. 요양 보호사들이 치매노인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CCTV 영상이 공개 되어…’ 반사적으로 라디오를 꺼 놓칠 뻔한 운전대를 두 손으로 꽉 움켜잡았다. 그리고는 반복해서 되뇌였다. 오늘 엄마는 죽은 거라고. 엄마가 원했던 죽음이라고.
어머니를 요양원으로 보내는 이야기이므로 공감/감동을 드러내놓고 추구하는, 정면승부하는 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 효과가 난다면 성공이고, 잘 나지 않으면 실패인데 이 글에서는 그 효과가 약간만 나기 때문에 그 부분을 더 강하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생각해야 합니다. 치매 걸린 엄마가 하는 말이나 행동들 역시 미디어가 전형적으로 묘사하고 소비하는 방식이므로 조금 더 개별적이고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보통 감동의 코드를 살리기 위해서는 특정한 물건, 공통의 기억 등을 등장시켜서 그 지점에서 읽는 사람의 감정이나 정서에 소구하는 방법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