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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고단 아래 저~쪽으로 햇빛줄기가 흐르는 것을 보면
눈앞에 가득한 것이 비구름은 아닌 듯 한데
구름이 걷힐 기미는 보이질 않는다.
이대로 라면
‘섬진강 물줄기'는 인연이 없나보다.
여하튼 頂上은 찍고는 가야지.
‘해지기 前에 내려갈 수나 있을까 ?’
밀려드는 구름만큼이나 걱정이 짙다.
노고단 이다.
(518)
<노고단 안개>
頂上 안개 속에서 카메라를 메고, 들고
구름이 걷힐 때를 ‘이제나 저제나’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다.
멀리로 천왕봉과 ‘세석평전’이 보인다는 전망대
‘안내 설명판’ 만 이라도 ‘한 컷’을 부탁하였다.
(519)
돌아서는 길에도 구름은 비켜줄 것 같지가 않다.
아쉬운 마음에 또 뒤돌아 본다.
(525)
‘해지기 前’ 화엄사 民泊村에 닿아야 한다.
오후 네 時가 바쁘게 닥아 온다.
내려갈 때는 올라 올 때와 달리 ‘산책로’ 길을 잡았다.
둘러가는 길이라 조금은 멀다하여도
'돌너덜-길'보다는 속도를 내고 걸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노고단산책로>
구름이 지나는 듯
언듯 스치는 바람에 雨氣(우기)가 꽉 스민다.
벌써 어스름이 내린다.
저~ 앞 모퉁길을 돌아가는 젊은 연인이 부럽다.
가야할 길이 아득하니
저녁어스름에 돌아가는 젊음이 더욱 부럽다.
步幅(보폭)을 길게 하고 양팔을 크게 흔들며 내려가는 속도를 더 한다.
오늘은
화엄사 인근에 있다는 어느 ‘게스트 하우스’에서 一泊을 하고
내일은
‘鼇山 四聖庵(오산 사성암)’을 찾을 계획이다.
이번 길을 준비하며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게스트 하우스’ 라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오늘, 화엄사 부근에 있다는 곳을 찾아가 볼 요량이다.
걸음을 재촉하며
화엄사 계곡을 向하는 ‘코재 (무넹기 기점)’에 닿으니
네 時가 훨씬 지났던 것 같다.
안내 팻말은 ‘화엄사까지 5.5 Km’를 가르치고
화살방향은 산책로 옆, 오솔길을 내려 가라한다.
‘개구멍’으로 빠져 들어가는 기분으로 오솔길에 들어선다.
내려가는 ‘傾斜(경사)’가 현기증을 일으킨다.
‘인터넷 見聞(견문)’에서
‘화엄사 계곡’ 길이 ‘急한 돌계단-길’이라는 ‘지리산 마니아’들의 글은 읽었지만
막상, 오솔길을 쏟아지는 듯 내려서니
돌계단은 ‘언제 쌓았더냐 ?’ 할 정도로 허물어져 있다.
큼직큼직한 ‘막돌’들이 아래로 흘러내려 저절로 자리를 잡은 ‘돌너덜-길’ 이다.
<계곡 돌길>
쏟아지는 듯, 急한 傾斜길에는 아예 ‘네발걸음’으로 내려가도
발걸음이 제대로 닿지 않는 곳도 있었다.
‘내가 犯接(범접)할 수 없는 곳을 無謀(무모)하게 걸음 하였구나’
생각하였을 때에는 이미 되돌릴 수 없는 상태 !
‘지리산 登攀記(등반기)’에 따르면
‘눈썹바위’를 지나면 길은 조금 수월해진다고 하였다.
조심조심하여 걸음을 재촉한다.
週末이라선지, 완전裝備(장비)를 갖춘 등산팀 들이
옆을 스치며 올라간다.
모두들 ‘윗 노고단대피소’에 예약을 해 놓았다 한다.
내려가는 사람들이 보이질 않는다.
다른 山에서 오후 이때쯤 이면 발 빠른 이들이 스치며 내려가곤 하였는데
‘거리표시 팻말’도 아직 만나지 못했다.
내 '걸음 實力'으로는 險한 길을 뛰어내려 갈 수가 없다.
돌너덜-길을 한 발짝씩 찍 듯이 내려가야 하니 ‘下山 길’ 이 줄어들지를 않는다.
‘거리’가 줄어들지 않았으니 ‘거리표시 팻말’은 나타날 수가 없다.
‘화엄사 4.0 Km' 팻말을 지날 때 時刻(시각)이 벌써 6時다.
두 時間 동안에 1.5 Km를 내려온 셈인데
‘돌너덜 길’은 그 險惡(험악)한 威勢(위세)가 여전하다.
돌 계단 상태에따라 한걸음에 뛰어 내려도 본다.
무릎에 충격이 오고 온 몸이 떨리고, 흔들리며 균형이 잘 잡히질 않는다.
균형을 잡지 못해 뒤로 넘어지기를 서너 번 하였다.
다행히 ‘배낭 Cushion 덕’에 머리는 찍히지 않았지만
팔다리에 충격은 얼얼하다.
허벅지에는 痙攣(경련)까지 온다.
조급해지는 心思(심사)는 어쩔 수가 없었다.
山을 내려올수록 하늘은 맑아
좌편 멀~리 산마루에는 아직도 햇빛이 하얗게 비친다.
‘화엄사 3.5 Km’ 팻말을 지난다.
‘너덜 돌 사이’로 겨우 ‘흙’기운이 비쳐지며 내려가는 걸음이 조금은 수월해 진다.
‘눈썹바위’는 언제 지났는지,
어둑어둑해지는 山길에서
그런 것을 챙길 餘力(여력)조차 없다.
‘한 고비’를 넘겼다 싶으니 시장끼가 밀려든다.
마침 길옆 바위위에 배낭을 풀어 얹고 間食 통을 끄집어낸다.
그냥 선체로 ‘육포와 포도 알’을 달게 씹는다.
굵직한 ‘포도 알’과 ‘방울토마토’를 하나씩 씻어 담아준
아내의 정성에 ‘허기와 피로’가 조금, 많이 풀린다.
그때에 윗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중늙은이 서넛이 내려가며 짧은 인사를 건넨다.
서둘러 내려가는 뒷모습에 나도 서둘러 배낭을 걸머진다.
돌너덜-길, 돌사이로 흙기운이 비춰 다행이다 싶었는데
또다시 ‘돌-길’이 險해진다.
저편 산마루에 걸려있던 흰빛 햇살도 자라진 듯 어둠살이 짙어 온다.
‘화엄사 3.0 Km’ 팻말을 지날 때 나는 ‘손전등’을 키려고 배낭을 벗었다.
‘폰’을 열어보니 일곱時 半 이다.
집에서 전화가 와 있었다.
집으로 전화를 걸어
지금 막 目的地에 도착, 민박집을 찾아 드는 중이라고
安心을 傳(전)한다.
휴대-폰을 닫으니
폰 電光빛이 사라지면서 漆黑(칠흑)같은 어둠이 덮쳐온다.
배낭에서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더 큰 ‘LED-손전등'을 꺼내서 불을 킨다.
전등 빛이 아주 밝다.
옛날, 우리 어릴 때의 ‘손전등’과는 이름만 같을 뿐 완전 別個(별개)의 빛이다.
고속도로에서 夜間運轉(야간운전)시 ‘하이-빔’을 켰을 때와 같은 기분이다.
여유분 건전지도 준비되어 있다.
한결 마음이 우선해 진다.
불빛을 흔들며 다박다박 걷는 것도 神秘(신비)롭다.
한참을 더 걸어
‘화엄사 2.5 Km’ 팻말을 만난다.
팻말 아래로 ‘참샘’이란 글씨가 보인다.
이제는 다와 가는구나 마음이 조금은 놓인다.
큼지막한 바위 밑에서 ‘샘물’이 쏟아 나고 있다.
며칠 前, 이곳에는 비가 많이 왔다고 하더니만
‘샘’에서 많은 물이 쏫아 내려 어두운 ‘너덜길’에 넘쳐흐른다.
'적막하든 밤길'에 '물솟는 소리'가 요란하다.
여닛 ‘옹달샘’과 같이 ‘쪽박’도 옆 바위에 두어개 붙어있다.
목도 마르고,
물병도 채울 겸 ‘샘’에 다가서려니
물이 넘쳐 ‘도랑’ 수준으로 물길이 콸콸 흐른다.
먼저 사람들이 놓아둔 ‘징검돌’을 밞고 다가선다.
그때 불빛을 번쩍이며 내려오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손전등을 들고도 머리에 ‘헤드-라이트’를 얹고 있었다.
“할아버지 아직도 못 내려 가셨네요 ?”하며 놀란다.
올라갈 때 나를 보았다 한다.
갑자기 급한 일로 혼자 되돌아가는 중이라 하며
조금만 더 내려가면 된다고 한다.
나는 ‘물병’도 채워야 하고, 내 걸음이 워낙 느릿하여서
급한 사람에께 弊(폐)가 될 것 같아 먼저 내려가시라 하였다.
느긋하게 ‘샘물’을 떠 마시고, 물병도 채우고 하며
한 쉼을 더 돌린 후 걸음을 시작했다.
寂寞한 밤,
쏟아지는 물소리를 만나 가슴속까지 후련은 하였지만
‘후련’이 지나쳤든가 보다.
‘참샘’에서 솟아 흐르는 물이 온 ‘너덜길’에 ‘도랑물’을 퍼붓고 있어
'물길'인지 '산길'인지 어둑한 분위기에
내려가는 ‘돌너덜-길’ 方向을 어둠속에 놓치고
엉뚱하게 ‘도랑-물길’을 따라 내려가기 시작하였던 모양이다.
제법 큼직한 바위가 앞길을 막는다.
미련하게 바위를 타 넘고
두 번째 바위까지 타 넘고 내려서니
‘앗차 ! 아니었구나.’ 싶었다.
얼른 感(감)이 잡혔다. 되돌아가야만 하는데
어렵게 타고 내려온 두 ‘바위고개’를
다시 타고 올라갈 엄두가 나지를 않는다.
그래도 ‘피다골라스’를 배웠다고
바위덩이를 피해 直角으로 ‘길’을 찾아 올라간다.
어깨높이의 숲풀 속을 헤쳐 나간다.
언 듯 ‘조릿대’나 ‘山竹’ 숲인 듯하다.
그래도 ‘가시덤불’은 아니니 천만다행 이었다.
한쪽에 전등, 한쪽에 지팡이, 움퍽질퍽 그리며 오른다.
중간 중간에 큰 나무들이 넘어져도 있고
나무덩굴이 발에 걸려 자빠지게도 한다.
등산화는 벌써 半쯤은 물에 젖었다.
그래도 손전등 불빛이 밝아 위쪽으로
윗쪽으로 숲속을 밀고 올라간다.
곧 나타나려니 하였던 등산로가 좀체 나타나질 않는다.
멈추고 서서 자세히 주변을 관찰하니
‘산죽’이 한 방향으로 쏠려있다.
‘사람들이 지나간 흔적이다 ! ’ 반기며 한참을 갔는데
어느새 그 흔적이 없어져 버렸다.
처음으로 荒唐(황당)함을 느낀다.
전등불을 끄고 沈호흡을 하며 주위를 살핀다.
칠흑같은 어둠속, 저 아래쪽에서 夜光빛이 반짝거린다.
등산로를 따라 要所(요소)에 박아둔 ‘非常 조난신고 말뚝’인가 ?
‘내가 너무 올라왔나 ?’
전등불을 키고 ‘야광빛 發光體(발광체)’를 찾는다.
짙은 숲속에서 조그마한 夜光말뚝이 쉬이 볼일 리가 없다.
손전등을 ‘켰다 끄기’를 몇 번인가 하다가
아래쪽이라 좀은 미심쩍 하지만
아래쪽으로 그'발광체'를 찾아서 내려간다.
내려가 보니
계곡물 소리만 점점 더 요란해 올뿐
'발광체'도 '등산로'도 보일 기미가 없다.
‘아니다.’ 싶어 뒤돌아 올라온다.
문득 옛 생각이 떠오른다.
아주 어릴 적 이야기다.
전쟁이 막 끝난 그 虛虛(허허)하든 낙동강, 江가 마을.
비가 뿌리던 깊은 밤이 였나
우리 집, 집 앞에서
진흙을 덮어쓴 軍服(군복)의 사내가 엉~엉 울고 있었다.
事緣인 즉,
除隊(제대)를 하고 歸鄕(귀향)길에
버스, 찻길이 일찍 끊어져
대구 驛에서 고향 쪽 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두워지고
어두운 밤길에서
먼~곳 불빛을 잘못 찾아 들어 길을 헤매게 되었는데
한두 번 불빛에 속고 나니 '헛 도깨비 불'까지 나타나
滿身瘡痍(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였다.
그 시절에는 매우 흔한 이야기였다.
나그네도 많았고, 求乞客(구걸객)도 많았든 시절이었다.
옛 생각을 접고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가다듬는다.
‘山竹’ 숲을 헤치며 다시 올라간다.
발밑 돌뿌리에 걸려 넘어지기를 몇 번 하였다.
바윗 돌을 넘다가 미끄러지기도 몇 번을 하였다.
쓰러진 큰 나무둥치를 피하여 ‘바윗돌’을 타넘다가
발이 미끄러지면서 나무둥치 쪽에 엉덩방아를 찧고
기어이 옆으로 넘어져 박혔다.
물구덩이가 아니라 다행이다.
손전등을 놓치지 않으려다 엉덩방아를 찍었는가 보다.
팔다리를 쭉 뻗치며 온몸을 누인다.
크게 다친 데는 없는 것 같다.
갑자기 萬事가 싫어지며 쉬고만 싶다.
넘어진 체 가만히 누워서 손전등으로 하늘을 찾아본다.
울창한 나무들 사이로 검은 하늘에 별빛도 없다.
‘손전등’의 ‘밝은 LED불빛’이
‘2차 세계대전’ 전쟁영화에서 夜間攻襲(야간공습) 때
地上에서 비춰 올리든 ‘서치라이트’같이 밝아
나뭇잎을 헤아리게 끔 한다.
윗몸을 일으켜 바위에 등을 기댄다.
배낭을 벗어 옆으로 밀쳐놓고 一切點檢(일체점검)을 더듬어 한다.
아직은 異常(이상) 없다. -나무 관세음 보살-
멍하니 어둠 속을 둘러보며
새벽 꿈속에서 ‘검은 똥물이 쏟아지던 일’을 생각한다.
그래도 푸른 비닐幕(막)이 막아는 주었는데 ---
難堪(난감)하다드니 이게 바로 難堪이로구나 !
옆구리 혁대에 메여있던 전화기에 異常이 없어 千萬多幸이다.
어둠속 ‘폰-불빛’이 눈부시도록 强하다.
119에 전화를 한다.
이글을 쓰면서 ‘폰’의 통화기록을 열어보니
첫 요청시각이 8시 20분이다.
지역번호 없이 그냥 ‘119’로 전화를 하였는데
곧 바로
‘소방관서에서 긴급구조를 위해 119로 전화하신
고객님의 위치정보를 확인하였습니다.’하고 ‘文字 답’이 왔다.
그러고도 한참이 흘렀는데도 다른 연락이 없다.
혹시라도 싶어
지역번호를 넣어 ‘061-119’로 한 번 더 긴급전화를 걸어 본다.
손가락이 자꾸만 1119를 찍어 몇 번이나 다시하곤 하였다.
8시 25분에 연결이 된다.
‘폰’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神의 목소리가 달리 없었다.
‘스마트-폰’ 이냐고 묻더니 GPS 를 켜 놓아라한다.
이미 GPS는 켜져 있었다.
8시 35분
다시 전화가 오더니 “할아버지 얼굴을 좀 보여 주세요.”한다.
깜짝 놀라서
전화기를 내려다보니 소방관 제복을 입은 아저씨가 보인다.
“할아버지 상황을 모두 파악하였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30분 이내로 찾아 갈 터이니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마세요.”한다.
또 "다른 곳에 전화도 하시지 마세요." 하였다.
모든 긴장이 一瞬(일순)에 풀어진다.
이제사 집으로 전화를 한다.
아까 前에 민박집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하였으니
이제는 저녁을 먹었다고 앞뒤의 이야기를 맞춘다.
저녁인사를 하고, 내일아침에 통화하자며
별일도 없는 체도 한다.
나는 휴대전화를 갖고부터는
손목시계가 거추장스러워 따로 갖지를 않았는데
여행길에서 불편함을 요즘에야 느낀다.
아홉時가 가까워진다.
‘손전등과 휴대폰’으로 불빛을 번갈아 켜다가
아예 불을 모두 끄고
배낭 속을 더듬어 ‘간식-통’을 끄집어낸다.
빵조각을 입안에 넣어니 ‘욱~욱’하고 메스껍다.
初有의 遭難(조난)에 아니 놀랐다면 거짓말 일 것이다.
肉身의 예민한 반응을 느끼며
호흡을 가다듬고 물을 몇 모금을 삼킨다.
새삼 ‘生命줄’의 神奇함을 吟味(음미)하게 된다.
얼마 前 신문에서 읽은
‘古墳 發掘 祕事(고분발굴비사) 인터뷰기사’가 생각난다.
晩年(만년)의 老 考古學者(노 고고학자) 에께
노련한 記者는 질문을 한다.
‘옛 古墳 發掘을 平生도록 다루어 오시었는데
死後世界에 남다른 의미를 가지고 계실 줄로 압니다.
死後世界를 무엇이라 생각 하십니까 ?’ 하고 묻는다.
先生의 답은 참으로 平凡하였지만 내 가슴에 와 닿았다.
“人間의 肉身은 썩어서 自然의 각 元素로 되돌아갔음을 보았소.
그러나 靈魂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를 않더군요.” 하였다.
이 순간에
그 老學者의 이야기가 가슴에 뭉클 한다.
얼마 前에
가깝던 친구가 또, 어딘지 모르는 그 곳으로 떠났다.
캄캄漆夜(칠야), 山속에서 나는 어둠에 취한다.
肉身이
自然의 제각각 元素로 되돌아가 듯
靈魂도
되돌아가 제각각 元素로 還元되는
별 딴 곳이 분명, 있지는 않을까 ?
항상 내게 ‘理財에 無能함’을 탓해주든 친구 !
훨훨 불타버린 그 肉身이 각 元素를 이 세상에 남겼 듯이
그 靈魂도 분명, 神妙한 곳에서 元素化하고 있지는 않았을까 ?
靈魂이 分解되어 ‘靈魂의 元素’로 되돌아가는 곳 !
‘인간의 超能力(초능력)’으로도 닿을 수 없는 곳.
그곳은 어딘가의 ‘또 다른 自然’ 일 것은 아닐까 ?
古來로
그 곳을 이야기하든 聖者, 先賢들이 얼마나 다녀 갔던가 ?
뭇 人生을 얼래고 설래든 ‘先知者, 豫言者’는 또 얼마 이던가 ?
모두들 가시고는, 소식조차 없지를 않든가 ?
왜 돌아오지를 못 할까 ?
옛날 中國의 道敎, 傳說에서는
神仙들이 산다는 蓬萊山(봉래산)을
‘蓬萊弱水’ 라고 하는 ‘江물’이 人間界와 사이를 막아
‘오고 감’을 못하게 하였다 한다.
그 ‘弱水’라는 江물에는 浮力(부력)이란 없어
지극히 가볍다는 ‘기러기 털’ 한 올도 뜨지를 못한다 하니
이 세상의 어느 무엇도 건널 수가 없는 ‘江’이라는 말이겠다.
‘神仙과 人間’
즉, 삶(인간)과 죽음(신선)의 境界에는 ‘오고 감’이
絶對로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 일 것이다.
生, 死의 境界를
‘이승과 저승의 別世界’가 아닌
이승의 서쪽 어딘가에 있다는 ‘蓬萊山 가는 길’의 江,
‘弱水’로 境界를 지은 그 生死觀에
나는 魅了(매료)된다.
‘生과 死’를 ‘弱水라는 江’으로
‘오고 감’이 있을 수 없다는 ‘나름의 解釋(해석)’도 되어
나는 더욱 魅惑(매혹)되기도 하였다.
‘冥福公園(명복공원)’ 화덕에서 亡者를 보낼 때마다
느끼는 기분이다.
한낱 肉身의 잿가루와는 달리
‘靈魂의 가루’는 벌써 以前에
인간이 犯接할 수 없는 ‘永劫의 곳’에서
‘다음 세상의 元素’를 준비하고 있지는 않을까 ?
傳說의 ‘弱水’ 江에서
이生과 저生이 마주치듯이
지금, 이 山中의 寂寞 속에서도
‘弱水라는 屛風(병풍)’을 사이에 두고
나와 마주보고 있지는 않을까 ?
아랫배에 힘을 주고 沈호흡을 계속한다.
8時 50分에
‘❬119 구조출동❭산악구조대에서 귀하께서 신고하신
장소로 출동을 하였습니다.’ 라는 ‘文字’ 왔다.
추석이 보름쯤은 남았던가
그믐달도 아직 이른 저녁이라
빛이라고는 없다.
풀벌레 소리도 ‘계곡물 소리’에 잠겼는지 듣기지 않는다.
아홉時가 가까워지고 있다.
初有의 遭難(조난)에 ‘욱~’하고 토할 것 같았던 ‘빈 속’이
물 몇 모금 마시고 沈호흡으로 安靜을 찾고 나니
이제는 시장끼가 엄습을 한다.
어둠 속을 더듬는 손길이 차츰 익숙해진다.
아까제 윗쪽 너덜길, 바윗돌에 기대어 허겁지겁 먹다가
못다 먹은 ‘포도 알과 방울토마토’를 마저 먹고 나니
빵맛도 되돌아온다.
육포까지 몇 점을 먹고 나니, 저녁요기도 될 것 같다.
아홉時가 지나가고 있다.
곧 ‘119 아저씨’ 들이 찾아오실 것이다.
‘間食, 패트-통’이랑 주위를 정리하고
배낭을 더듬어 채우고
옆 바위를 어깨동무하여 일어서 본다.
허벅지며 온몸 筋肉에 찌릿한 통증은 오지만
간신히 일어날 수는 있었다.
부서진 곳은 없나보다 생각하며
팔 다리를 몇 번 흔들어 보고는
다시 주저앉는다.
‘一刻이 如三秋’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하는 구나
허리춤에 붙어있던 휴대-폰은 벌써 손바닥으로 옮겨져 있다.
깜깜漆野 속으로
‘弱水 江’ 넘어 蓬萊山이라도 찾아 보이려나
온 觸覺(촉각)을 곤두세워 노려본다.
폰-소리가 울리며 '폰-빛'이 눈에 부신다.
“할아버지 ! ‘후랫시-불’로 주변에 키 큰 나무를 골라서 비춰보세요.” 한다.
곧바로
“네 ! 보았습니다.‘ 하고 답이 온다.
나도 일어서며 배낭을 멘다.
저 위쪽에서 불빛, 둘이 번쩍이더니
아저씨 두 분이 내려온다.
한 아저씨가 내 배낭을 옮겨 매주고
또 한 아저씨는 나를 어깨동무로 들어 올려 준다.
아저씨는 내 허리춤을 껴 안듯하고 山竹 속을 헤치며 올라간다.
등산화 바닥을 스치는 山竹이 바스락 바스락 휘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登山路에 올라서서야 姿勢(자세)를 바로 한다.
그제야 아저씨들 얼굴을 쳐다보며 겸연쩍은 ‘感謝 인사’를 한다.
요란하였든 계곡물 소리가 훨씬 잔잔한 것으로
등산로가 계곡에서 깨나 멀리 올라온 모양이다.
‘搜索犬(수색견)’을 앞세운 ‘산악구조대원’ 아저씨 두 분이 또 올라오신다.
‘119 구조대’와 ‘산악 구조대’가 따로이 출동 하셨다한다.
거듭 겸연쩍은 ‘感謝 인사’를 한다.
‘119 구조대’ 아저씨가 내 허리춤을 껴안고
계속되는 ‘너덜길’을 부축하며 내려간다.
지팡이가 달달거리며 그냥 따라온다.
표현할 수 없는 ‘고마움’을 느끼며 내려간다.
한참을 내려오니 등산로가 끝나며 좁다란 찻길로 내려선다.
좌측으로
희미한 불빛에 ‘절간’ 같은 건물이 어렴풋 보인다.
차량 두 대가 길옆에 세워져 있다.
<화엄사 계곡 하산길>
119 구조대 아저씨가 ‘주소와 이름’을 묻는다.
‘주민등록번호’는 아니 적는다 한다.
아저씨가 화엄사 입구, ‘관광촌’까지 태워다 주신단다.
10餘分이 넘는 거리다.
어둑 컴 컴한 숲속 찻길을 한참을 달린다.
조금 前에
‘너덜길 등산로’를 내려서면서
저쪽으로 보이든 희미한 불빛을 ‘화업사 뒷부분’이려니
‘지례짐작’ 하였던 것이 속으로 부끄럽다.
아저씨들 한데 ‘잠잘 곳, 어디든지 가까운 곳’을 부탁하며
내가 얼마나 ‘지례짐작 人生’을 살아왔는지
일순간 뉘우치는 듯하였다.
여관방에 드니 10時가 지나간다.
뜨거운 물로 샤워를 하니
팔 뒤꿈치와 무릎, 몇 군데 傷處(상처)만이 물에 닿아 따갑다.
땀이 흠뻑 절인 옷가지를 샤워-물로 씻어
벽에다 걸어두고 선풍기 바람을 쏜다.
창밖 넘어로 계곡물이 가까이 지나가는 듯
물소리가 요란하다 못해 귓전에 거슬린다.
창문을 꼭꼭 닫아도 덥지가 않다.
물컵에 소주를 기울려 잠을 청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