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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아름다운 영혼
홍 성 암(한국소설가협회 최고위원)
제 1 부: 귀향(1)
1.
제과점을 경영하는 필녀가 보살님이라고 불리는 연화 무당에게 들려 신수점을 보는데, 무당이 상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
“재물이 많으면 뭘하누? 이웃에게 좀 베풀고 그래라. 내년엔 이미 죽은 목숨이여.”
필녀가 화들짝 놀라 물었다.
“보살님요. 무슨 말을 그렇게 하요. 내년이란 게 이제 두어 달 밖에 더 남았는기요?”
그런 필녀의 항의에 무당은 한 술 더 떴다.
“그야 낸들 그렇게 말하고 싶것나마는. 점괘가 그리 나오는 게야. 그러니께 재물 불리는 일에 더 이상 악착 떨 일도 아닌기라.”
연화무당의 말에 필녀는 정신이 아득했다. 그녀가 재산을 모으느라 악착을 떤 것은 사실이었다. 남편이 교회의 전도사라 벌어들이는 수입이 없었다. 목사가 될 가망도 별로 없는데 남편은 오로지 교회에 봉사하는 것만으로 보람을 삼았다. 피붙이라고는 딸년 하나뿐인데, 어려서 소아마비를 앓은 후유증을 아직도 겪고 있어서 중학교도 못 마치고 집에서 빈둥대는 처지였다. 그러니 그녀 자신이라도 악착을 떨어야 입에 밥이 들어갈 형편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제과점이 제법 잘 되었다. 빵맛이 좋다고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아주 붐비었다. 그래서 시내의 요지에다 지점을 두 군데나 내었는데, 제과점 세 군데가 모두 잘 되었다. 배운 것 없는 필녀가 사장님 소리를 들으며 얼굴 쳐들고 살만한 것도 그 덕택이었다.
그리하여 경제적인 궁핍은 면할 수 있었지만 세 군데의 제과점을 돌아보아야 하기 때문에 잠시도 쉴 틈이 없었다. 몸뚱이를 셋으로 쪼갤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과로가 겹친 것인지 안 아픈 곳이 없었다. 머리가 아프고, 어깨가 결리고, 여기저기 뼈마디가 쑤셨다. 혹이나 몹쓸 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던 중에 뜻밖의 말을 듣게 된 것이다.
연화 무당은 관상이나, 사주, 그리고 손금도 제법 보았고, 운수점도 수준급이어서 부녀자들이 자주 찾았다. 집안에 재액이 있거나 사업이 잘 안되거나 할 때는 연화 무당이 만들어주는 부적의 효험을 기대하기도 했다. 가슴이 답답하고 막힌 심정일 때 무당의 말은 의사의 처방만큼이나 위안이 되었다.
그러나 이번처럼 뜻밖의 말을 듣고 보니 눈앞이 아득했다. 당황하고 황망해서 다른 것을 더 물어 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 두어 달 후에 죽을 목숨이라니. 이런 일이 또 어디에 있을까? 필녀는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왔다. 어떻게 돌아왔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그만큼 큰 충격을 받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집으로 돌아와 생각하니 자신이 너무 경솔했다는 것을 깨닫지 않을 수 없었다. 기왕에 그런 말을 들었으니 자세한 것을 더 물어 보았어야 할 일이었다. 점괘가 그리 나왔다면 그 액을 피할 방법도 있을 터였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재앙도 예방법은 모두 있기 마련이다. 그러니 무당이 굿을 하고, 신도들이 깊은 산속 기도처를 찾아가 기도를 하고, 치성을 드리는 것이 아닌가? 막힌 운명을 틔우지 못한다면 무당이 무슨 필요가 있겠고, 경을 읽거나, 치성을 드리는 것이 무슨 필요가 있을까? 절에 가서 정성을 드려 불공을 드리고, 하느님께 기도를 드리는 것도 다 다가오는 액운을 피해보자는 것이다.
살다 보면 운세가 매년 좋을 수만은 없을 것이다. 살이 낀 해도 있고, 마가 들어 신통치 못한 해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을 극복할 수 있는 약방문도 늘 있어 왔다. 돈이 없으면 모를까? 공들여서 안 될 일이 어디 있는가? 필녀는 자신의 돈을 내세워서 그렇게 자신을 위로하기도 했다.
필녀는 연화 무당을 다시 만나 자세히 물어 보아야겠다고 별렀다. 어떤 운세가 어떻게 막힌 것인지. 막힌 운세를 비켜갈 방법엔 또 어떤 것들이 있는지. 물어야 할 일은 많았다. 돈 몇 푼이 왔다갔다하는 문제가 아니라 목숨이 왔다갔다하는 문제였다.
그렇게 마음으로 벼르기만 하면서 선뜻 시간을 내지 못하던 중에 갑자기 감기가 왔는지 몸이 오슬오슬 떨리더니 본격적으로 열이 오르고 온 몸이 쑤시기 시작했다. 보일러의 온도를 잔뜩 높이고 이불을 뒤집어써도 온몸이 떨리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아프니 더욱 연화 무당의 말이 떠오르고 이러다 죽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되었다.
더 늦기 전에 무당을 만나야겠다는 생각이 더욱 간절했다. 아무래도 자세한 말을 더 들어야 했다. 돈이 있어도 죽으면 무슨 소용인가? 돈이든 재물이든 필요한 만큼 내놓을 용의가 있었다. 평소에도 적지 않은 복채를 내놓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죽을 운세라니. 잠시라도 시간이 없다고 뜸들이고 기다릴 일이 아니었다.
필녀는 마음을 단단히 먹고 다시 연화 무당을 찾기로 했다. 연화 무당네가 봉은사 뒤곁이어서 간 김에 절간에 들려 부처님께도 빌어볼 생각이었다. 무당 보다는 부처님이 한결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그런데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그날따라 굿당에는 온통 사람들로 붐비었다. 어느 돈 있는 집안의 가장이 죽어서 천도제를 지내게 되었다는 것이다. 연화 무당이 천도제를 주관하는 터여서 그녀와 이야기를 나눌 틈이 없었다. 필녀는 무당과 단 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어 보고자 했지만 가망이 없었다. 답답한 심정으로 무당의 주위로 빙빙 도는데 어느 순간 필녀와 눈이 마주친 무당이 깜짝 놀라는 시늉을 했다.
“저런 변이 있나. 이미 죽은 줄 알았는데, 허깨비가 되어 나타난 것도 아니 것고.”
그 말을 듣는 순간 필녀의 등줄기로 쭈빗 소름이 돋았다. 온 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너무나 황망하여 혼백이 허공에 붕- 뜨는 느낌이었다. 필녀는 더 이상 다른 말을 들을 엄두도 내지 못했다. 무당의 말이 너무나 범상했기 때문이다. 강아지를 보고, 저런 배가 홀쭉했네, 밥을 주어야 할 때로군. 하고 말할 때의 말투와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 필녀는 절간을 찾을 계획마저 다 잊어 버리고 허둥지둥 집으로 돌아왔다.
필녀는 그 길로 몸져눕고 말았다. 몸뚱이가 물먹은 솜처럼 무거웠다. 아니 무쇠덩이 같았다. 몸이 자꾸만 땅바닥으로 꺼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다. 연화 무당이 그녀를 아예 저승 사람 보듯 하던 모습이 눈에 선했다. 그동안 아등바등 발버둥치며 살아 온 것이 더 없이 허망했다. 눈을 뜨던 감던, 온통 죽은 사람 보듯하던 연화 무당의 말과 표정만이 생생했다.
2
필녀가 연화 무당의 말에 충격을 받고 몸져눕자 당장 급하게 된 것은 그녀의 남편 영태였다. 교회의 전도사란 직업은 보수는 별로 없으면서 해야 할 일은 너무나 많았다. 아침마다 새벽기도에 참여해야 하고, 주일마다 주일학교 교사 노릇을 해야 했다. 토요일엔 교회임원 모임에 참여해야 했고, 수요일엔 청소년들에게 성경공부를 시켜야 했다. 거기에다 정기적으로 신도의 집을 심방해야 하고 수시로 아픈 교우를 위해 병원으로 병문안도 해야 했다. 일주일 내내 쉴 틈이 없는 게 전도사의 직업이다.
그런 터에 필녀가 덜컥 누워 버리니 아내가 꾸리던 가정사가 고스란히 영태의 몫으로 돌아왔다. 우선 세 군데나 되는 제과점을 관리해야 했다. 살람집과 잇대어 있는 천호동의 제과점은 그런대로 관리가 수월하지만 강남의 번화가인 압구정과 강북의 요충지인 노원역 부근은 사람의 발길도 많고 매상액도 커서 관리가 쉽지 않았다. 제빵 기술자나 종업원들이 수시로 바뀌는 터여서 항상 세심한 주의가 필요했다.
우선 하루의 영업이 끝나면 수금 실적을 확인해야 하고, 원료의 공급이나 빵의 상품적 가치 등을 살펴야 한다. 종업원 관리에서부터 매달 지불되는 제과점의 가게 월세, 물세, 전기세, 은행 빚이자 같은 것들도 챙겨야 했다. 그뿐인가 가게 일 말고도 그들이 살고 있는 아파트 관리비나 매일의 생활비도 감당해야 했다. 주부 한 명의 일이 이처럼 많다는 것을 전엔 상상도 못했던 일이었다.
영태가 집안 일로 교회에 소홀해 지자 답답해 진 것은 교회를 이끌고 있는 황목사였다. 그는 개척교회 때부터 영태와 함께 일했다. 황목사는 교회의 중요한 일은 모두 영태에게 맡겼다. 그만큼 그는 교회 일에 충직했던 것이다. 그런데 근래에 눈에 띄게 교회 일에 등한히 하는 듯 싶어서 황목사는 영태를 따로 불러 근황을 묻게 되었다.
“아내가 몸져누워서요.”
영태는 아내가 몸져눕게 된 내력을 소상히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
“허, 마귀가 들었군.”
황목사는 단정적으로 말했다.
“어떻게 했으면 좋겠습니까?”
“마귀를 쫓아야지.”
황목사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는 영태가 필녀와 결혼하는 것을 탐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자가 매우 억세어 보였던 것이다. 그런 여자는 대체로 팔자가 드센 법이다. 거기에다 관상학적으로 보아서도 단명할 상이었다. 황목사는 사주나 관상 분야에 제법 조예가 깊었다.
“더구나 성격이 문젠데, 자네하고는 잘 맞지 않아.”
황목사는 영태의 결혼을 여러 말로 말렸다. 그러나 한창 그녀에게 열을 올리고 있던 터라 아버지 같은 황목사의 조언도 듣지 않았다. 영태는 결혼과 더불어 곧 황목사의 조언을 듣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황목사의 예측대로 성격 맞추기가 너무 어려웠다. 매사가 반대였다. 영태는 새벽잠이 없는데, 필녀는 저녁잠이 없었다. 영태는 더위에 약한데, 필녀는 추위를 견디지 못했다. 음식도 짜고 매운 것이 질색인 영태지만 필녀는 그 반대였다. 그러다 보니 매사에 티격태격인데 그 중에서도 십일조 문제는 심각했다. 제과점을 경영해서 수입이 느는 것만큼 십일조에 대한 갈등은 더욱 커졌다.
“십일조란 먹고 남는 것의 십분의 일을 말하는 것이 아닐세. 수입이 천만 원이면 백만 원을 내야 제대로 된 십일조란 말이지.”
“그런 식으로 십일조를 내고 나면 우린 뭘 먹고살지요. 가게세며, 종업원 인건비며, 그리고 각종 세금은 누가 대신 내주나요?“
“하느님께서 다 갚아주시네.”
“글쎄요. 하느님이 남의 빚 대신 갚아준다는 말은 금시초문이네요.”
필녀는 그렇게 빈정거렸다. 그러던 필녀는 급기야는 교회에 나가는 것마저도 거부했다. 그리고 선언하는 것이었다.
“당신은 당신이 번 돈으로 십일조를 내세요. 나는 처녀 때부터 다니던 절간에 가서 내 능력껏 공양 할 테니까요.”
영태가 전도사로 버는 수입이란 자신의 용돈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다. 신도들은 영태가 제과점을 세 군데나 경영하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십일조를 자신의 수입에 맞추어 낼 수만도 없었다. 그러다 보니 십일조를 내야 하는 첫 주일은 언제나 티격태격이었다. 그게 원인이 되어서 부부사이의 냉전도 점점 증폭되었다. 거기에다 하나뿐인 딸아이마저 소아마비의 후유증으로 중학교도 못 마칠 정도로 부실하니 이래저래 가정에는 찬바람만이 불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죽어가는 아내를 살리는 게 급선무였다.
“목사님께서 안수기도를 해 주십시오. 마귀를 쫓아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영태는 무당집 드나들기를 좋아하는 아내라 마귀가 들릴 만도 하다고 생각했다.
“그야. 자네가 청하는 일인데. 하지만 본인이 문제네. 믿는 마음이 있어야 구원도 가능하지 않던가?”
“워낙 심각한 정도라서 요. 본인도 기뻐할 것입니다.”
영태는 그렇게 간절히 청하여 마침내 날을 받았다. 영태의 귀띰을 듣고 필녀도 수굿했다. 평소 같으면 그런 것 필요 없다고 딱 잡아뗄 위인이지만 병에는 장사가 없는 모양이다. 필녀는 한 술 더 떠서 그동안 등한히 한 십일조를 제대로 챙겼는지를 염려하기까지 했다.
“그런 걱정은 나중에 하고, 우선 몸부터 추스려야지.”
영태는 그렇게 아내를 위로하고 황목사와 약속한 시간에 그녀를 데리러 올 것이니 준비나 잘 하라고 일렀다.
필녀로서는 이것저것 다 해 보고 싶은 심정이었다. 아직 젊은 나이에 죽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황목사의 안수기도 능력은 교회에 널리 알려진 터였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분이라고 소문이 나 있었다. 필녀 자신이야 교회에 등한해서 면목이 없지만 남편은 단 한 번도 새벽기도에 빠진 적이 없고, 주일날 안식일도 철저히 지키는 분이라 그렇게 지극 정성으로 하느님을 섬겼으니 남편 덕을 볼 수도 있겠다 싶은 일말의 기대도 가져 보는 것이다.
필녀는 안수기도를 받자면 우선 자신의 몸부터 깨끗이 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예부터 목욕재계란 말이 있다. 몸을 깨끗이 해서 몸에 쌓인 악귀를 떨쳐낸다는 뜻이다. 필녀는 욕실에 들어가 물을 틀었다. 몇 날을 누워만 있던 터이라 몸에서 악취가 풍겼다. 뜨거운 물에 오래 몸을 담그고 피로를 푼 다음에 몸을 씻고 또 씻었다. 한결 기운이 돌아왔다.
필녀는 습기로 뿌옇게 흐려진 거울을 들여다보며 화장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걱정했다. 여자가 외출을 하는데 화장이 필수가 아니겠느냐는 생각과 병객이 안수기도를 받으러 가면서 얼굴에 분칠까지 하는 게 가당한 일이겠느냐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던 것이다. 그렇긴 하지만 외출하면서 화장하지 않은 얼굴이란 아무래도 흉할 것만 같았다.
필녀는 뿌옇게 흐린 욕실의 거울만으로는 자신의 얼굴을 자세히 확인할 수 없어서 이번에는 거실까지 나가 체경 속의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보았다. 누렇게 뜬 얼굴이 아무래도 한심했다. 필녀는 욕실로 다시 돌아와 머리를 마저 감았다.
속으로, 화장을 조금은 해야지 하면서 목욕을 거의 끝냈을 때였다. 거실의 전화벨이 요란하게 울렸다. 대뜸 남편 영태의 전화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안수기도 시간이 임박해 오니 데리러 오겠다는 전화일 것이다.
필녀는 목욕수건도 두르지 못하고 급히 거실로 나왔다. 서둘러 전화를 받을 생각에서였다. 그녀가 전화기 쪽으로 급히 다가가는데, 햇살 속에 흥건히 고인 물기가 보였다. 체경에 얼굴을 비추어 보느라 잠시 나왔을 때 몸에서 흘러내린 물기인 모양이었다. 언젠가 거실바닥 물기에 미끌어져 혼이 난 적이 있는 터라 조심해야지 싶었다. 그런 생각에 멈칫하는 순간 그녀는 꽈당 하고 넘어지고 말았다. 그녀는 햇살에 드러난 물기만 보았지 그늘 속에 숨겨진 물기를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캄캄해졌다. 꽈당 넘어지면서 거실바닥에 머리를 세차게 부딪친 때문이었다. 정신이 혼몽해졌다. 그 와중에서도 어서 수화기를 잡아야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남편을 향하여 살려달라고 소리쳐야겠다고 생각했다. 벌거숭이 채 널부러진 거실의 그녀를 구해 줄 사람은 수화기 저쪽의 남편밖에 없었다. 가물가물해지는 의식 속에서도 그녀는 수화기를 향해서 손을 내밀었다. 그러나 수화기는 그녀의 손끝보다는 한참 떨어진 곳에 있어서 손이 미치기에는 어림도 없었다. 아 하느님. 저절로 하느님을 간절히 찾게 되었다. 그리고 어떻게든 수화기를 잡아보려고 안간힘을 다하여 손끝에 힘을 주었다.
3
영태가 불길한 예감을 느끼고 집으로 달려 왔을 때 순녀는 이미 의식을 잃고 있었다. 불야불야 119에 전화를 해서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달려갔다. 뇌진탕이었다. 필녀는 급히 뇌수술을 받아야 했다.
“허, 당신 살았네. 무당이 말한 액땜을 했네.”
필녀의 의식이 돌아오자 영태는 그런 말로 아내를 위로했다. 듣고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했다. 죽을 운수라면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미끌어져 죽을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흔히들 재수가 없으면 접시물에도 코를 박고 죽는다지 않던가? 하필 목욕 중에 온 전화며, 그리고 거실의 물끼를 보고 충분히 조심한다고 했는데도 꽈당 미끌어졌으니 말이다.
“하필 황목사님 안수기도 전화에 변을 당했으니…. 매우 독한 마귀인가 보네.”
말하자면 안수기도를 받지 못하게 하려고 마귀가 선수를 쳤다는 것이다. 영태는 그런 말로 생색을 내지만 마귀가 미리 손쓰는 것도 알지 못한 하느님은 또 뭔가. 다른 전화도 아니고 안수기도 가자는 전화를 받으려다 당한 변이니 하느님의 능력도 미지수가 아닐 수 없었다.
병원에 입원한지 한 달이 넘어서야 퇴원을 했지만 필녀의 몸은 개운치 않았다. 뇌진탕의 후유증인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지곤 했다. 무엇보다 견딜 수 없는 것은 불면증이었다. 밤새도록 잠을 자지 못한 터라 한낮 동안도 머릿속이 흐리멍텅했다. 그러니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거기에다 걸핏하면 가위에 눌리곤 했다. 가위에 눌린다는 말을 일반인들은 잘 알지 못한다. 꿈인지 생시인지 도무지 구분이 안 되는 그런 상태에서 이상한 일을 겪게 되는 것이다.
필녀의 경우는 어떤 이상한 사내의 내방이다. 사내는 필녀의 몸에 겹쳐 눕곤 했다. 필녀의 알몸에 사내의 알몸이 겹쳐지면 이상하게 온몸에 냉기가 돌았다. 아니 뼛속까지 시렸다. 살이 없는 사내의 뼈마디마디가 살갗에 감촉되었다. 사내는 그렇게 필녀를 짓눌렀는데 그럴 때는 숨이 컥컥 막혔다. 그렇게 밤새도록 시달리다가 창문이 희부연히 밝아지면 사내는 그림자처럼 묽어지고 사라지는 것이다.
“공연한 환상이지. 악몽이란 말이네.”
“악몽이라면 꿈인데. 이건 꿈이 아니란 말이요.”
꿈이라면 매번 똑 같은 체험을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가위눌리기 직전 필녀는 이미 사내가 다가오는 낌새를 느낄 수 있었다. 냉기와 더불어 사내는 다가와 필녀의 몸에 실리는 것이다. 때로는 속삭이기도 했다.
“내가 올 것을 알고 있었지?”
필녀는 머리를 끄덕이지 않을 수 없었다.
“기다리고 있었던가?”
필녀는 단호하게 머리를 저었다.
“흠. 물론 환영받지 못한다는 것은 알고 있지. 내가 누군지는 아는가?”
필녀는 머리를 저었다.
“잘 생각해 보라구. 내가 누군지.”
사내는 뼈마디가 느껴지는 몸으로 필녀를 짓누르며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내가 누군지 생각해 보라고. 필녀는 치를 떨며 그가 누군지를 생각해 보려고 했다. 언뜻 기억날 것도 같은 느낌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이이가 누굴까? 그런 생각에 골몰하며 사내의 몸에서 내뿜는 얼음짱에 하얗게 얼어야 했다. 냉동실의 생선처럼 서리가 허옇게 쌓이며 꽁꽁 얼었다.
그렇게 사내가 다녀가는 횟수가 거듭될수록 필녀는 점점 말라갔다. 몸에 물끼가 빠지고 피가 말랐다. 몇 달 되지 않아서 순녀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거기에다 뼈가 시리고 아팠다. 허리뼈가 쑤시고 무릎뼈가 쑤셨다. 안 아픈 곳이 없었다. 거실바닥에 넘어져 뇌진탕을 일으킨 것만으로도 액땜이 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액땜은커녕 그게 겨우 시작일 뿐이라는 듯이 필녀의 병은 더욱 깊어만 갔다. 어둠 깊숙이 숨어 있던 좀벌레들이 눈에 띄지 않게 필녀의 생명을 갉아먹었다. 뼈를 갉아먹고 피를 갉아먹고 살을 갉아먹었다.
“아무래도 안되겠는 걸. 황목사님께 안수 기도를 다시 부탁해 보자고.”
영태는 필녀가 하루가 다르게 파리해지는 모습을 보며 그렇게 말했다. 그러나 필녀는 머리를 저었다. 왠지 이미 기회를 놓진 것만 같았다. 안수 기도를 받겠다고 목욕재계하고 들떠 있던 예전의 마음 상태가 돌아오지 않았다. 안수기도로 병이 나을 것이라는 확신을 지니지 못한 마음으로 안수를 받는 일은 일종의 속임수다. 하느님을 속이는 일이다. 무엇보다 자신을 속이는 일이다. 그런 속임수로 어떻게 병이 나을까?
“허, 이 사람. 생명이란 소중한 것이야. 무슨 수든 다 써 봐야지. 속임수든, 공갈, 협박이든. 살고 봐야지.”
영태는 자신이 신앙심 깊은 전도사란 것도 잊고 그렇게 필녀를 달래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한 번 돌아 선 마음을 돌이킬 수가 없었다.
이제 필녀는 대꼬챙이처럼 마른 몸으로 죽을 날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니 그 이상한 내방자와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날이 우중충한 저녁이면 이미 흉흉한 기운이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필녀는 이제 그 기운에 대항할 힘마저 잃고 있었다. 체념한 채 마침내 사내의 몸이 자신에게 실리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뼈가 시리고 피가 마르지만 어느 새 그 사내에게 길들여지고 익숙해져서 사내와의 대화에 더욱 깊이 빠져들었다.
“당신이 누구라 했지요.”
“그런 건 묻는 게 아니야. 스스로 깨달아야지.”
“깨달아지지 않으니까 그렇지요.”
“이만큼 친근해졌으면 어떤 느낌이라도 있어야지.”
“글쎄요. 뭔가 짚이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러면서도 도무지 알 수 없네요.”
“하긴 그런 게 사람살이인지도 모르지.”
사내는 그렇게 지껄이며 그녀의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일을 계속했다. 뼛속 속속들이 밀려 오는 냉기와 뼈저림. 물끼를 짜내듯 입술이 타고 피가 말랐다. 물끼를 잃어버린 고사목의 체험을 하고 있는 느낌이기도 했다.
“이봐요. 내께 무슨 원한이라도 있는 거요.”
어떨 때 필녀는 짜증스럽게 으르렁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사내는 빙긋 웃으며 이빨에서 썩는 냄새를 풍겼다. 죽음의 냄새가 이런 것 아니겠느냐는 표정이기도 했다. 그렇게 화를 낸다고 두려워 할 내가 아니지. 찾아오지 않을 내가 아니지. 이미 우리는 한 몸으로 붙어 있어서 서로 분리해 낼 방법이 없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가? 사내는 그렇게 음흉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웃는 것이다.
영태는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다. 필녀가 병원도 마다하고, 안수기도도 마다하고 마냥 누워만 있으니 말이다. 더구나 근래에는 거의 매일이다 싶이 가위에 눌리고 있었다. 그러니 뼈만 앙상하다는 이상한 사내와 밤마다 동거생활을 하고 있는 셈이다. 죽음의 목전에 이르면 대부분 그런 이상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일까? 영태는 새벽마다 교회에 나가 아내를 살려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이런 경우 하느님께 매달리는 외에 더 이상의 방법이 없었다.
주여. 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영태는 그렇게 외치며 흐느끼기도 했다.
4
영태는 아내의 죽음이 이제 목전에 이르렀다고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하니 지금껏 아내를 위해서 잘 해 준 일이 아무 것도 없었다. 우선 전도사란 직업은 경제적으로 무능력했다. 하느님 사업이란 게 돈과는 거리가 멀었다. 그러니 필녀는 결혼 초부터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가난과 결혼을 한 셈이다. 거기에다 매일 바빴다. 그게 하느님 사업이다. 외국 여행이 유행처럼 번지는데도 그들은 외국은커녕 국내여행 한 번도 하지 못했다.
가정생활도 그랬다. 큰 희망이던 딸애가 소아마비 불구자가 되자 필녀는 아이를 가질 엄두도 내지 못했다. 거기에다 영태는 날이 밝기도 전에 새벽기도에 나가고는 그 길로 교회 일에 전념하는 지라 아내와 밥상을 함께 할 겨를도 없었다. 필녀는 필녀대로 제과점이 세 개나 되니 자신의 시간을 따로 챙겨야 했다. 그러니 부부생활인들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그런 저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근래에 들어 제과점이 번창해서 여생이 좀 편하려나 하고 기대했던 것인데 그만 덜컥 병으로 눕고 만 것이다. 병으로 누워도 간병해 줄 친정붙이도 없었다. 강원도 어느 바닷가가 고향이라는 말을 언뜻 하긴 했지만 필녀는 한번도 고향타령을 한 적이 없다. 고향에 대한 온갖 나쁜 기억들을 깡그리 잊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그녀에게 과거사를 물을라치면, 어려서부터 양친이 돌아가시고 홀로 고아가 되어 떠돌다가 서울까지 오게 되었고, 식순이 공순이 안 해 본 것이 없다는 정도의 설명이 고작이었다. 그러다 우연히 교회에 나오게 되고 그게 기회가 되어 영태를 만났다는 것이다.
사람이 태어나서 한번쯤 호강해 볼 기회도 있어야지 평생을 지지리 고생만 하다 죽는다는 것은 너무나 억울한 일이다. 그리고 그런 고생을 하도록 원인을 제공한 것이 남편인 영태 자신이란 생각이 들었다. 돈도 못 버는 주제에 십일조 문제로 아내를 구박하고, 병신자식 둔 것도 아내 탓으로 돌리고, 하느님 일에 바쁘다는 핑계로 남들같이 살가운 정을 드러내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저렇게 덜컥 죽게 되면 이 노릇을 어찌할 꺼냐?
영태는 아내를 살려달라고 하나님께 밤샘기도를 거듭했다. 그러다 조금 정신이 흩어지는 때가 되면 아내에 대한 연민의 정이 폭포수처럼 밀려왔다. 그래서 아내에 대한 온갖 잡념에 잠기는 것이다. 그렇게 기도하고 잡념속에 헤매기를 거듭하는 중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깊은 잠의 나락으로 빠져들었다.
비몽사몽이라던가. 그런 꿈속에 어디선가 목탁소리와 더불어 독경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영태는 놀라서 주위를 들러 보았다. 흰 구름이 산봉우리에 떠돌고 있는 첩첩 산중이었다. 개울 옆 작은 암자에 나이 든 비구니 하나가 부처님 앞에 불공을 드리고 있었다.
허무하다. 허무하다. 딱따구리가 나무 둥치를 쪼듯 목탁소리는 자꾸만 그렇게 탄식했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말이야 노상 듣는 말이지만 목탁소리 리듬에 실린 그 말이 어찌나 구슬픈지 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 영태는 저도 몰래 통곡하기 시작했다. 울음을 주체할 수 없었다.
영태는 퍼뜩 혼몽함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아직도 흐느끼는 자신을 발견했다. 꿈을 깨서도 찢어질 것 같은 가슴의 통증은 조금도 가시지 않았다. 이상도 하지. 영태는 그렇게 생각했다. 이렇게 찢어지는 듯한 가슴의 통증은 처음이었다. 지금 이 시각 아내가 죽기라도 한 것일까? 그런 두려움이 밀려왔다. 하느님을 모시는 성스런 예배당에서 절간 꿈은 무엇이며, 목탁소리는 무엇이란 말인가? 어서 아내에게 가 보아야지. 생각은 그렇게 하면서 다시 까무룩 정신이 나갔다.
영태는 열심히 절간 길을 찾고 있었다. 방금 전에 꿈꾸었던 절간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첩첩 산중, 구름 걸린 봉우리는 저만치 보이는데 길의 입구를 찾을 수 없었다. 목탁소리가 들리는 방향으로 헤매다 보니 그만 바위 벼랑길에 올라서고 있었다. 험한 바위 벼랑 저 밑으로는 검푸른 파도가 사납게 휘돌이치고 있었다. 고해의 바다. 그 사나운 파도가 바위 벼랑을 때리고 하얗게 흩날리는 포말이 영태의 옷깃을 적셨다.
영태는 더 이상 목탁소리를 좇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오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미 벼랑의 높이를 깨달은 후라서 그런 걸까. 현깃증이 일어 어느 쪽으로도 발을 내딛을 수 없었다. 이런 땐 정말 날개라도 있어서 훌훌 나는 수밖에 없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데. 그렇게 애를 태우다가 그만 벼랑 밑으로 곤두박질치고 말았다.
아찔한 순간을 지나 정신을 차려보니 그는 암벽 동굴 바닥에 누워 있었다. 파도가 그를 휩쓸어서 그리로 패대기친 모양이었다. 동굴의 어둠 저쪽으로 작은 구멍이 보였다. 그리로 햇살이 스며들었다. 영태는 그 햇살을 향해서 걷기 시작했다.
동굴은 좁고 길었다. 그가 휩쓸려 온 쪽의 입구로는 파도소리가 요란했다. 사나운 파도가 이빨을 갈며 으르렁대는 소리가 공명이 되어 굴 전체를 부르르 떨게 했다. 파도가 검은 손의 갈퀴를 내밀어 금방이라도 그의 목덜미를 휘어잡을 것 만 같았다. 그는 파도의 무서운 이빨에서 놓여 날 요량으로 허둥지둥 달렸다. 얼마를 달렸을까. 동굴의 어둠이 끝나는 순간 문득 앞을 막아서는 절간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고 보니 비구니가 목탁을 두들기던 절간은 바다로 통하는 통로의 다른 끝에 있었던 것이다.
방금 전의 비구니가 여전한 모습으로 목탁을 두들기고 있었다. 허무하다. 허무하다. 가슴이 찢어질 것 같은 슬픈 탄식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이봐요. 뭐가 그리 허무하요?”
영태는 이 비구니와 단단히 따져 보아야겠다고 결심했다. 비구니가 슬픈 눈으로 영태를 바라보았다. 어쩌면 필녀를 퍽이나 닮아 있었다. 나이가 훨씬 더 들어서 필녀의 미래를 보는 것 같았다.
“댁이 그처럼 청승을 떨어서 내 아내가 아픈 거요. 당장 집어쳐요.”
비구니는 영태의 닦달에는 아랑곳도 않고 ‘이 한심한 인간아’. 그런 표정을 지었다.
“한심하던 아니던 이건 내 몫이요. 당신이 간여할 일이 아니란 말이요.”
영태가 비구니의 목탁을 거칠게 잡아채는 순간 갑자기 꿈이 묽어지며 그는 현실로 돌아왔다. 그러자 오싹 소름이 돋았다. 틀림없이 아내에게 무슨 변고가 생긴 모양이었다. 영태는 새벽기도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차를 몰아 자신의 집으로 달려갔다.
5.
“그래요? 그런 꿈을 꾸었다고요?”
필녀가 사실여부를 확인하듯 몇 번이고 되풀이해서 물었다.
“그렇다니까. 비몽사몽간이라지 않아. 꿈같지도 않아. 여북하면 기도도 다 못 끝내고 달려 왔을까.”
영태의 말에 필녀는 깊은 사색에 잠기는 표정이더니 마침내 결심이라도 선 듯 말했다.
“나를 좀 일으켜줘요.”
영태의 부축을 받고 간신히 일어난 필녀는 화장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뼈만 남은 자신의 몰골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눈구멍이 푹 파이고, 누렇게 뜬 피부가 해골 그대로였다. 필녀는 루즈를 찾아서 자신의 입술에 문질렀다. 해골에다 루즈를 덧칠한 것 같아서 그 몰골이 더욱 사나웠다. 그렇거나 말거나 필녀는 분첩을 찾아서 분가루를 뒤집어쓰기 시작했다.
“이 사람. 갑작스레 웬 화장인가?”
영태의 말에는 개의치도 않고 얼굴 화장을 계속하던 필녀가 이번에는 옷장에서 옷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이것저것 몸에 걸쳐 보더니 그 중 마음에 드는 옷으로 갈아입었다.
“이 사람 제정신인가? 그 몸으로 어디를 가겠다는 거야. 병원이라면 몰라도.”
“당신이 꿈에 보았다는 그 곳 요. 내 고향 요.”
필녀의 말에 영태의 가슴이 다시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아. 죽음의 시간이 임박해 오는구나. 평소에 고향이란 말을 한 번도 입에 담지 않았던 필녀였다. 그녀에게 지긋지긋한 가난과 시련의 추억만을 남겨 주었던 고향. 그래서 그녀는 고향이란 말을 특별한 금기의 언어로 여겼던 것이다. 그러던 그녀가 이제 고향으로 가겠단다. 평소 전혀 기동을 못하던 그녀가 화장까지 하고서 몸을 움직인 것이다.
죽음에 임박해서 반짝 살아나는 영혼. 대개 임종 직전에 그렇게 반짝 살아난다지 않는가. 하늘이 기회를 주는 것이다. 자신의 마지막을 정리할 기회를 말이다. 어떤 종류의 코끼리나 거북은 자신의 죽음 장소를 정확히 찾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 속 어떤 곳은 코끼리 상아의 무덤이 산같이 쌓이고. 어느 곳의 바다, 바위 굴속에는 거북의 죽은 시체가 산더미를 이룬다지.
영태는 더 이상 만류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필녀의 뜻대로 차를 몰기 시작했다.
“대관령을 넘는다고 했던가?”
“그래요.”
필녀는 집을 떠날 때의 기세와는 전혀 다르게 가쁜 숨을 몰아쉬며 짧게 대답했다.
“뭘 좀 먹어야 되지 않겠어.”
“됐어요. 물이면 돼요.”
필녀는 준비해 간 물병의 물로 말라가는 입술을 축일 뿐 음식을 전혀 들지 못했다. 차의 시트에 몸을 눕히듯 하고 가쁜 숨만을 몰아쉬었다. 눈까지 감고 있어서 죽은 시체의 모습과 흡사했다. 백밀러로 아내의 모습을 흘끔거리며 영태는 조심스럽게 차를 몰았다. 차가 대관령을 넘고 작은 도시를 관통하자 바다가 나왔다. 강원도의 동해바다였다. 영태는 필녀가 시키는 대로 바닷마을로 이어지고 있는 해안도로를 타고 북 쪽으로 차를 몰았다. 얼마를 달렸을까. 마침내 필녀가 고향이라고 말하는 작은 포구가 나왔다.
필녀의 고향인 어촌 마을은 동해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그런 풍경이었다. 북쪽으로 작은 산의 구릉이 병풍처럼 둘러섰고 남쪽으로는 굽이치는 시냇물 따라 훤히 트인 들판이 펼쳐졌다. 바다에 면한 부두에는 출항하지 않은 서너 척의 배가 일렁이고 있었다. 그 옆으로 아직 공사중인 방파제가 이어지고 있었는데 방파제 끝에는 간이 등대가 서 있었다.
필녀는 부두 옆의 작은 구멍가게 앞에 차를 세우게 했다. 차의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자 세찬 바닷바람이 그녀의 몸을 감쌌다. 영태가 놀라서 그녀를 부축했다.
“뭐가 필요한데?”
필녀는 영태의 물음에 대꾸도 없이 구멍가게 안을 휘둘러보았다. 몇 번을 돌아보다가 구멍가게 노파를 향하여 힘없이 묻는다.
“됫병 소주는 없나요?”
“요즈음 그런 게 어디 있남.”
“예전엔 있었잖아요?”
“예전엔 있었지. 요즈음은 4홉 소주가 그 중 큰놈이여.”
노파는 선반에 진열된 4홉 소주를 가리켜 보였다. 모두 다섯 병이었다.
“저것 모두 주세요.”
노파의 눈이 둥그래진다.
“다섯 병이나? 요즈음은 모두 2홉 소주만 찾는데.”
그러면서 진열장에 놓인 4홉 소주병을 비닐봉지에 옮겨 담았다.
“다른 것은?”
구멍가게 노파의 말을 받아 영태도 물었다.
“더 필요한 것 없어?”
“그거면 됐어요.”
필녀는 그렇게 말했다. 다른 무엇이 더 필요하랴! 필녀의 아버지 박영만은 그야말로 술꾼이었다. 호주가였다. 술만 있으면 만사형통이다. 가출한지 20여 년 만에 문득 돌아온 딸이 아버지에게 무슨 말로 변명하랴. 그런 딸에게 아버지는 또 무어라 할 것인가? “아빠. 술 가져왔어요. 술 드세요” 딸은 그 한마디 밖에 할 말이 없었다. 그러면 아버지는 아마도 “웬 술이냐? 이렇게 많이” 그렇게 말하시며 겸연쩍은 웃음으로 얼버무릴 것이다. 술 없이는 한 번도 자신의 의견을 말해 보지 못한 아버지였다. 술병만 보면 저절로 입이 벌어지는 아버지였다. 그런 아버지를 위해서 예전의 됫병 술이 없어서 4홉 소주 5병을 산 것이다.
필녀는 그러면서도 어머니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무얼 좋아하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어머니는 한 번도 당신이 무얼 좋아한다는 내색을 하지 않았다. 어쩌면 할 수가 없었는지 모른다. 어머니는 말 못하는 벙어리였다. 그래서 통 말이 없었다. 집안의 한 구석에 우두커니 서 있는 기둥처럼, 주춧돌처럼 있어야 할 자리에 그냥 있을 뿐이었다.
아버지도 성한 사람은 아니다. 어려서부터 절룸발이었다. 한 쪽 다리가 매우 가늘고 짧았다. 그래도 손힘만은 무섭게 세었다. 아버지는 아무나 보고 팔씨름하자고 대들었다. 멋모르고 팔씨름 상대가 되었다가 손목뼈가 불어진 사람까지 있었다.
“병신 고운데 없다고, 팔심만 세면 다냐?”
손목뼈가 불어진 사람이 걸핏하면 싸움을 걸어왔다.
“아무거나 잘하면 됐지.”
“병신 주제에. 절룸발이 주제에.”
그렇게 싸움이 붙으면 아버지는 그자의 멱살을 잡으려고 달려들고 그 자는 붙잡히지 않을만한 거리에서 빙빙 돌며 약을 올렸다. 그럴 때 아버지의 다리는 더욱 절룸거려서 금방이라도 땅바닥에 나뒹굴 것만 같았다. 그런 병신 아버지가 싫어서, 병신 어머니가 싫어서 필녀는 중학교를 마치자 졸업하는 날로 가출을 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아무도 그녀의 내력을 알지 못하는 먼 곳 서울로 도망을 친 것이다.
6.
구멍가게에서 나온 필녀는 다시 차에 올랐다. 그때 구멍가게 노파가 서둘러 다가와 말을 붙였다.
“보레이. 바우재 절뚝이네, 아니 버버리네 딸 필녀 아니가?”
필녀가 대꾸를 않자 노파가 머리를 절래절래 흔들었다.
“지 에미를 쏙 빼닮은 걸. 아니라면 모를까? 네가 필녀제?”
필녀는 끝내 그녀를 외면했다. 그리고 영태를 재촉해서 차를 몰게했다. 차가 어촌 마을을 가로질러 언덕으로 오르자 서낭당 고갯길이 나왔다. 필녀는 그곳에 차를 멈추게 했다.
“여기서 기다려요.”
“나도 함께 가면 안 되나?”
“여기서 기다리래두 요.”
필녀가 짜증을 냈다. 영태는 환자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말했다.
“그런 허약한 몸으로..., 불안해서 그런 거지.”
“내가 알아서 할 테라구요.”
그러면서 필녀는 4홉들이 소주병 5개가 든 비닐봉지를 힘겹게 들고서 끙끙거리며 서낭당 고갯길을 혼자 넘어가는 것이었다. 걸으면서도 구멍가게 노파가 괘씸한 생각이 들었다. 바우재 필녀가 아니가? 했어도 좋을 일을 절뚝발이네, 버버리네 딸, 하며 약점을 들추던 것이다. 사실 어렸을 때 필녀는 그런 말을 무수히 들었다. 시골사람들은 남의 약점을 별명으로 삼아야 직성이 풀리는 모양이었다. 지지리 못 사는 가난뱅이 주제에도 남을 무시하고 얕보는 것으로 위안을 삼는지도 모를 일이다. 본인이 듣던 말던, 버버리, 절뚝발이, 얼금뱅이, 조막손이... 집집마다 그런 별명 한가지쯤은 지니고 있었다. 육신이 멀쩡해도 개똥이네, 똥술네, 돌뿔네, 코쟁이네....하는 식의 별명을 붙였다. 그런데 필녀네는 두 가지나 되는 별명이 있었으니, 시골 사람들은 그 둘을 모두 불러서 필녀네를 비하했다. 절뚝발이네, 그 버버리네 말이지.
서낭당 고갯길을 넘자 저만치 외딴 집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집이다. 다가갈수록 가슴이 울렁거렸다. 이년, 필녀 아니가? 아버지의 투박하고 험한 목소리. 버버리 어머니는 그저 눈물만 훔칠 것이고. 이년, 그래 그동안 굶지는 않았능가? 집 떠나면 고생인데, 이 싸가지 없는 년아. 그렇게 입에 담을 수 있는 욕질은 다 할 테지만, 그것이 애정인 것을, 그런 욕설을 기대하며 필녀는 휘청이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함석지붕이 보이고 흙담이 보이고 삽작문이 보이고 그렇게 점점 다가가면서 필녀는 점점 발걸음이 무거워졌다. 함석지붕의 검은 색이 벌겋게 녹슬어 있고, 돌이 듬성듬성 박힌 흙담은 무너져 구멍이 뻥 뚫린 채였으며, 삽작문은 아예 있지도 않았다. 마당으로 들어서니 뒤쪽에서는 미처 몰랐었는데 기둥 두어 개가 내려앉아서 이미 오래 전부터 사람이 살지 않은 폐가였음을 알 수 있었다.
집은 낡아 무너져내려도 늦은 봄이라 예전의 풀들이 사방에 자라고 있었다. 화단 자리에는 원추리꽃 흔적이 그냥 남아 있고, 마당 둘레로는 뽕나무 잎새가 제법 자라 있었다. 뒷켠 언덕에는 꽃술만 남은 복숭아나무들이 듬성듬성 자라고 있었다. 그 복숭아나무들을 보자 어린 시절이 갑자기 떠올랐다.
농촌은 항상 바빴다. 필녀가 잠이 깨면 이미 해는 중천에 솟아 있고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다. 어른들은 아침 먹기 전에 이미 밭일하러 들판으로 나갔다. 문을 열면 가까이 밭들이 보이고 개천이 보이고 그 너머로 논들이 보이고 그 너머에 해변의 솔숲이 보이고 그 너머에 거무스름한 바다가 보이고 수평선이 보였다.
햇살이 포근한 마루로 나오면 바람결에 꽃향기가 가득 묻어왔다. 코를 벌름대며 눈을 돌리면 화사하게 핀 복숭아꽃이 와르르 가슴에 무너져 내렸다. 그뿐인가? 꽃향기와 더불어 붕붕대는 꿀벌들의 속삭임을 들을 수 있었다 꿈결같은 날개짓 소리에 이끌려 언덕을 오르면 필녀도 한 마리의 꿀벌이 되고 나비가 되는 것이다. 어머니가 벙어리란 것도 알지 못했고 아버지가 절룸발이란 것도 알지 못했다. 그저 양친의 사랑을 듬뿍 받고 부족한 것 없이 살았던 유년기였다.
술 취한 아버지의 고함소리를 구별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 적 부터였을까? 아버지는 우람한 황소가 끌고 있는 우차에 앉아 채찍으로 소의 등짝을 후려치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그래 이 박영만이가 절룸발이면 어쩔테. 나만큼 황소를 잘 다루는 놈 있으면 나와보라고. 나만큼 팔 힘이 좋은 놈 있으면 나와 보란 말이여. 내 아내 순득이가 버버리면 어쩔테. 순득이만큼 일 잘하는 미인이 있으면 나와 보라고. 딸 아들 쑥쑥 잘 낳겠다. 미인이겠다. 일 잘하겠다. 언놈이 뒷말이여. 흉잡힐 일이 뭐냔 말여. 왜 남의 말을 해. 말질이냔 말여.
아마 술좌석에서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던 모양이었다. 절룸발이 주제에. 버버리 여편네와 살면서. 하고 비아냥거렸던 모양이다. 아버지는 그 말만은 절대로 참지 못했다. 그래서 죽기살기로 싸우고 홧김에 엄청 술을 마시고, 술에는 박영만이 당할 사람 없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말술을 마시고 억병으로 취해서 우차를 끌고 마치 그자가 옆에 있기라도 하듯 삿대질을 하며 고래고래 호통 치는 것이다.
농삿군들은 박영만의 성미을 잘 알아서 그런 약점을 함부로 건들지 않지만, 버릇 고약한 어부들은 일부러 약점을 건들어서 박영만이 노발대발하는 것을 큰 재미로 삼았다. 그러다 서로 엉켜서 치고받고 싸우기도 했다. 뱃사람들의 기질이야 소문나게 못 되어 먹었지만 그러다 박영만의 손아귀에 잡히고 보면 팔이 꺾이고 손목이 부러지는 사단이 생기곤 했다. 그렇게 한 번 다친 뱃사람들은 한동안 바다에 나갈 수 없는 처지가 되고 보니 당장 생계가 막막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화풀이하듯 박영만이 낀 술좌석으로 찾아와 약을 올리는 것이다. 네 아내 말이다. 그 순득이 말이여. 동네 남자들이 다 한번 씩 치마를 들춘거라. 그래도 버버리니까. 말도 못하고 그런 거여. 맨날 딸자식, 아들자식 자랑하지만 네 자식이란 증거가 없는기라.
그런 말을 듣고 그냥 참고 있을 박영만이 아니다. 예라이. 개같은 놈. 네 놈, 오늘 내 손에 죽었다. 오늘이 네 제삿날이여. 그렇게 싸움이 그치지 않고, 술 취한 고함소리가 서낭당 고갯길에 메아리치고, 그러면서 필녀는 병신 부모를 부끄럽게 여길 줄 알게 되고, 그렇게 하여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바로 가출해 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필녀는 폐가가 된 자신의 집을 몇 번이나 돌아보았다. 구멍난 돌담이며 무너진 기둥, 마당에 무성한 잡초들…. 그녀의 고향이 시체가 되어 썩고 있었다. 고향의 실체이기도 한 그녀의 집, 아무도 돌보지 않아서 그녀의 기억에다 돌을 던지듯 시체가 되어 썩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항의했다.
“모두들 떠나갔다. 그러니 난들 어쩌란 말이냐?”
모두들 어디로 떠났단 말인가? 아버지는, 어머니는, 그리고 남동생은? 필녀만 고향을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는 예전의 아버지, 예전의 어머니, 예전의 남동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그리고 필녀 자신만 변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그녀가 생각하는 예전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필녀는 남편 영태가 그녀의 등을 흔들어서야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영태는 무너진 집채를 둘러보고는 모든 사태를 짐작했다. 그래서 더 이상 묻지 않고 퇴락한 툇마루에 놓인 4홉들이 소주 5병이 든 비닐봉지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필녀를 부축하여 서낭당 언덕길을 걷기 시작했다. 가파른 언덕의 내리받잇을 걸으며 필녀는 숨을 헐떡였다. 이제 마지막 기력마저 모두 소진해 버린 듯 기진맥진한 그녀에게는 가파른 내리받잇길이 너무나 힘들었다. 몇 발자국 걷다가 멈추어 서서 뒤돌아 본 그녀의 눈에 서낭당 언덕으로 치달리는 하얀 오솔길과 그 너머에 파란 하늘이 한꺼번에 밀려 왔다.
그래 아직 변하지 않은 게 있어. 이 길, 이 하늘. 필녀는 자신을 다독거리듯 그렇게 생각했다. 이 하늘, 이 길이 남아 있는 한, 어딘가에 아버지며, 어머니며, 그리고 남동생이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 터였다. 기다리고 있을 거야. 필녀는 흔들리는 자신을 격려하듯 되풀이 생각했다.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거야. 전쟁 때도 아니고, 천지개벽 때도 아닌데, 그렇게 모두 감쪽같이 사라질 수는 없는 일이었다. 비록 그녀는 도망치듯 고향을 떠났어도, 그리고 불구자 집안의 부끄러움을 감추고 싶었어도 그녀의 마음 속 고향은 한 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 항상 생생하게 살아 있던 고향이었다. 그런데 정작 고향 찾아와서야 고향이 없어져 버렸다는 것을 깨달아야 했다. 하지만 그것을 어찌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필녀가 그렇게 절망 속에 헤매는 중에 영태는 그녀를 부축해서 차에 태웠다. 그리고 더 어째 볼 수 없지 않느냐는 듯이 오던 길로 되돌아 차를 몰았다. 서낭당 언덕길을 내려가자 작은 부두가 나왔다. 그리고 이어지는 해안도로, 방풍림으로 심은 해송들이 줄지어선 해변엔 오랜 공동묘지가 있었다. 무너진 묘지에는 조잡하게 만든 십자가며 꺼멓게 퇴색된 표석들이 기우뚱 꽂혀 있었다. 누구의 눈에도 버려진 묘지임을 느낄 수 있었다. 버려진 죽음들. 그렇다. 산 자들만이 버려지는 것이 아니다. 죽은 자들도 이렇게 버려지는 것이다.
“차를 멈춰요.”
필녀가 갑자기 소리쳤다. 영태가 어리둥절해서 쳐다보자 필녀가 다시 외쳤다.
“차를 돌리란 말예요.”
영태는 파랗게 질려 있는 필녀의 비위를 건드리지 않으려는 듯 차를 멈추었다. 차를 몇 번 후진시킨 다음 방향을 돌렸다. 그리고 어쩔 것이냐는 듯이 필녀를 돌아보았다.
“돌아가요. 그 구멍가게 수퍼로요.”
“왜? 술병 돌려주려고? 한 번 판 걸 다시 물려주겠어? 요즈음은 시골 사람들도 여간 영악하지 않아. 공연히 망신이나 당하지.”
영태의 말에 필녀는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차가 부두 옆의 구멍가게에 멎자 필녀가 차를 내렸다. 그리고 곧장 구멍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노파가 시큰둥한 표정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할머니. 제가 바우재 절룸발이네, 버벌이네 딸 필녀가 맞아요. 우리 부모, 어디 가셨지요?”
“그러게, 내가 그 말하려고 물어 본건데. 그 집에 가야 지금은 아무도 없다고. 그런데 찬 바람만 쌩- 일구며 그냥 가는 걸 난들 어쩌누. 아무리 도회물 먹어도 그렇지. 나이든 사람이 말을 하면 듣는 시늉이라도 해야지. 나는 반가워서 물었건만 그렇게 쌩- 하면, 늙은 사람 체면이 어찌 되누.”
“할머니. 그건 제가 잘못했구요.”
필녀는 바짝 타들어가는 입술을 축이며 사과했다.
“우리 부모 어디 가셨지요?”
“그러게. 말하자면 길지. 길어.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다 고약한 세상 때문이여. 하긴 내가 아는 것도 별로 많진 않지만. 그야 자세한 것을 알려면 장실 고모한테 가면 더 잘 알 테지. 장실에 사는 고모 생각이 나남. 예전 그 자리에 그냥 살지. 주막집도 여전하고….”
필녀는 구멍가게 노파의 말을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들을 필요가 없었다. 곧장 발길을 돌린 그녀는 영태로 하여금 다시 차를 몰게 했다.
“그냥 곧장 가요”
7.
차는 곧장 앞으로 나아갔다. 읍내로 통하는 길이었다. 해안도로와 읍내의 큰길이 마주치는 십자로에 오래 된 주막집이 나왔다. 예전의 주막집도 이젠 “장실수퍼”란 간판을 달았다. 부두의 구멍가게가 “영진수퍼”기 되었듯이 간판 이름은 모두 뻥튀기 되어 그럴 듯했지만 예전의 주막집은 변한 데가 없었다. 가판대에 값싼 과자봉지 몇 개 더 놓인 것뿐이었다. 읍내 시장을 오가는 마을 사람들이 잠시 쉬어가면서 막걸리 한 잔 하는 곳이었다.
“아니 이게 누구야. 너 필녀지? 필녀 맞지? 어쩜 지 엄마를 그렇게 빼 닮았을까?”
고모는 필녀를 보자 와락 끌어안고 울음을 터뜨렸다.
“어쩌다 몸이 이꼴이고. 죽을 때 지 에미꼴 하고 어쩜 이리 닮았을까? 필녀야. 도회에 나가서 잘 산다고 들었건만 이게 무슨 꼴이고. 이 못된 년아.”
필녀를 붙들고 꺼이꺼이 우는 고모를 달래는 것이 쉽지 않았다. 한참을 울던 고모는 그제야 영태를 발견한 모양이었다.
“니 신랑이가?”
“그래요. 여보. 고모예요. 인사하세요.”
영태가 큰절을 하겠다고 거실로 올라서자 고모가 만류한다.
“큰절은 무슨. 이렇게 보면 됐지. 어서 앉게나. 원 집이 누추해서. 예전이나 지금이나 살기가 어려워서. 그저 이렇네.”
젊어서 과부가 되어 평생토록 주막집을 경영해 온 고모지만 예전 품성이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그저 조심스럽고 수줍은 것이다. 필녀는 그런 고모를 다그쳐서 남편의 큰절을 받게 했다. 그리고 곧장 물었다.
“고모, 방금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했던가요?”
필녀의 물음에 고모는 다시 울음을 터뜨렸다.
“세상에. 불쌍하다 불쌍하다 해도 너희 엄마 같은 사람 없다. 말 못하는 서러움도 하늘같거늘, 자식들 공부시켜 놓으니, 그게 쉬운 일이냐? 농부가 자식 공부시키는 게 쉬운 일이냐고? 쌀팔아 논팔아 온갖 정성 다 기울여서 공부시켜 놓으니 제 잘났다고 훌훌 떠나서는 일절 소식이 없으니. 너는 중학교 마치자 바로 떠났고, 네 동생 필수 말이다. 그 녀석은 고등학교 졸업하자 바로 떠났다. 그러니 부모심정 오죽하냐? 네 아빠는 술이라도 마시고 술주정이라도 하지만 말 못하는 네 어미는 어쩌냔 말이다. 장실 여기 바로 앞이 버스 정류장이 아니냐? 자식새끼 돌아오는가 이제나저제나 우두커니 길옆에서 기다리네. 처음에는 명절 때만 그러더니 나중에는 시도 때도 없어. 특히 비라도 내릴려고 날씨라도 궂은 날이면 밤 깊은 줄 모르고 기다리네. 그 꼴이 보기 좋겠냐? 네 아버지에게 매까지 맞았단다. 네 엄마라면 꺼북 죽는 사람이 여북하면 손찌검까지 하겠냐? 난들 올캐의 그 꼴이 보기에 좋겠냐? 그러니 내 눈도 피하고 네 아비의 눈도 피할려고 저 산모롱이까지 가서 숨어서 기다리다가, 그렇게 기다리다가.”
고모는 더 이상 말을 못 잇고 다시 꺼이꺼이 울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방바닥을 치며 통곡했다.
“어이할거나, 어이할거나 그 불쌍한 것. 말도 못하는 답답한 심정 오죽했을까? 지금 니년처럼 바짝 말라서 허깨비 같이 되어 가지고는 그래도 자식새끼 기다린다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날, 어둑어둑한 날씨에, 산모롱이 골목에 숨어 있는 여인을 보면 모두 놀래서, 운전자들이 놀래서, 장실에 귀신 나온다고 했지. 얼굴이 얼매나 곱노. 그 얼굴에 화장하고 머리 곱게 빗고, 좋은 옷 갈아입고, 자식들 찾아오면 좋은 모습 보여준다고. 제 놈들도 사람이지, 내 뱃속으로 나온 자식들인데, 불구 아비 두고 말 못하는 어미 두고 어찌 코끝도 안 비칠테냐. 언젠가는 한 번 만이라도 찾아오겠지. 그런 자식들에게 좋은 모양 보여야지. 그렇게 기다리다가. 그렇게 기다리다가….”
통곡하던 고모의 눈에 새파랗게 불똥이 일었다.
“예끼 못된 계집. 당장 나가라. 나가. 꼴 보기 싫다. 어찌 그럴 수 있냐? 네가 사람이여? 사람이냐구. 여시지? 부모 잡아먹는 여시여. 자식 키워보지 못한 내가 이렇게 분한데. 세상에 그렇게 분할 데가 어디 있냐고? 세상 사람들한테 다 물어보자. 세상에 어떤 모진 자식들이 그럴 수 있냐고? 보소 세상 사람들아. 이런 게 자식이라면 미쳤다고 자식 낳겠소.”
그렇게 노발대발하는 고모를 진정시키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필녀는 물론 영태까지 거들어서 겨우 고모를 진정시키고 들은 이야기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필녀의 어머니는 그녀에게 홀린 듯한 오트바이에 치어서 죽은 것이다. 젊은 청년인데 귀신인 줄 알았다는 것이다. 너무 놀래서 부레이크를 잡지 못하고 그냥 밀어 버린 것이다. 청년도 중태여서 끝내 죽었다는 소문이 돌긴 했지만 확인하지는 못했다는 것이다.(*)
첫댓글 작품을 발표하셨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