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돈 키호테'는 스페인 작가 세르반테스의 풍자 소설이다. ‘풍자’라는 단어를 붙이기엔 어딘가 아까운 생각이 드는 이 소설은 인간 진실 된 부분을 아낌없이 표현해준다. 읽어갈수록 미소 뒤에 항상 남게 되는 적막감은 소설 '돈 키호테'가 가지는 특별한 매력이다.
소설의 본 제목은 '재기 발랄한 향사 돈키호테 라만차El ingenious hidalgo Don Quijote de La Mancha'이다. 1605년부터 1615년까지 10년의 기간을 두고 완성된 '돈키호테'는 1605년 4권 25장의 1부로 세상에 첫선을 보인뒤 1615년 속편인 2부 74장이 발표된다.
라만차에 살고 있는 늙은 노신사는 기사도를 다룬 소설을 지나치게 탐독한 뒤 정신이 돌아버린다. 그리하여 몸소 편력의 기사가 되어 세상의 부정을 바로잡고 학대받는 사람들을 돕고자 돈키호테라 자칭하고 여행을 다니면서 온갖 기행을 일으키는 이야기로 되어있다. 그는 여행을 떠나기 전에 다 죽어가는 여윈 노새에게 로시난테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소작인이었던 산초 판자를 부하로 삼아 머나먼 여정을 떠나게 된다.
2부의 마지막에서 소설 '돈키호테'는 ‘기사도 소설의 권세와 인기를 타도하기 위하여 썼다’라고 밝히고 있는 것으로 보아 '돈키호테'는 풍자 이상의 당시 세태에 대한 비판 의식도 갖추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돈키호테가 전개하는 갖가지 사건 중에는 풍차를 보고 거대한 체격을 가진 군인들이 자신을 공격한다며 말을 타고 반격작전을 펼치는 장면이 있는가하면, 여관집 식모를 보고 뛰어난 미모를 갖춘 공주로 착각해 추근거리는 장면도 있다. 또한 방목한 양 떼들을 보고 전쟁이 발발했다며 흥분하는 이야기 등등이 여간 흥미롭지가 않다. 그러나 이런 사건들이 흥미로우면서도 그 이상의 깊은 인간적 깊이를 내장하고 있는 것은 돈키호테 옆에 항상 함께 있는 산초 때문일 것이다.
산초는 돈키호테가 그에게 들려준 여러 가지 감언이설 가운데 만약 산초가 기꺼이 자기를 따라다닌다면 자신이 모험을 해서 어떤 섬이라도 얻게 되었을 때 그 섬의 영주를 시켜주겠다고 약속한다. 그리하여 산초가 돈키호테에게 말한다.
“만일 나리께서 말씀하신 데로 여러 기적 중의 하나로 제가 왕이 된다면 말입니다. 제 여편네 구띠에르테스는 적어도 왕비마마쯤은 될 것이고 자식놈들은 왕자가 된다는 말씀이지요?”
산초는 과연 스스로가 왕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을까. 그것은 산초의 돈키호테를 향한 다음 대화에서도 짐작해 볼 수 있다.
“제게 적합하고 제가 능히 해낼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주실 수 있는 훌륭한 분을 주인으로 모시고 있는 걸요.”
확실히 소설 '돈키호테'는 주인공 돈키호테보다 종자 산초가 뛰어난 연기자임에는 틀림없다.
무위자연은 노장老莊사상의 기본적 개념으로 유교의 인의나 형식주의에 대해 주장된 것으로 자연 그대로의 현실을 이상경으로 설정해 두고 있다. 무無를 천지만물의 근간이라고 하는 사상에 따른다면 무위자연은 만물의 본체다. 꽃이 피고 지는 일 그 자체는 인간의 시각으로 능히 감지되는 현실이다. 그러나 실상 그 일은 감지될 수 있었다거나 또는 없었다는 등의 현상을 두고 볼 때는 별 의미가 없다. 인간의 시각으로 감지되었던 꽃의 피고 짐은 극히 적은 시간이 지나 생각해봐도 특별한 의미부여가 필요없는 찰나적 현상에 불과한 일이기 때문이다. 겨울이 지나 봄이 되면 대지는 더운 기운이 일렁이기 시작한다. 차가운 대지 위로는 시절에 맞추어 봄풀들이 돋아나고 또 봄꽃들이 다투어 피기 시작한다. 하늘에는 시절에 맞는 새들이 날기 시작하고 얼어붙었던 대기가 수련대기 시작한다. 이즈음 봄풀들이나 봄꽃 그리고 봄을 알리는 새들의 출현은 어느 것이든 자신 혹은 상대의 이해관계로 인하여 등장하지 않는다. 그저 그때 그 시절쯤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무위자연의 허망한 무의 현상으로 잠시 나타나고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이런 무의 현실이 얼마나 인간의 심성을 부드럽게 순화시키며 또 얼마나 인간을 위무하는가. 나는 주인공 돈키호테와 산초가 연출하는 모습을 이런 무위자연의 한 현상으로 설정해 생각해 본다. 서양식 화법이 아닌 동양적 화법의 우수성이 한층 돋보임을 깨닫게 되는 일은 필연적이다.
소설 '돈키호테' 기행의 백미는 풍차를 거인으로 착각하고 전투를 벌이는 장면이다. 두 사람이 길을 가다가 3‧40개나 우뚝 우뚝 서 있는 풍차를 발견하고 돈키호테는 종자 산초에게 말한다.
“행운의 신은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좋은 방향으로 사건을 마련해 주는구나. 산초여, 저것 좀 보아라. 그 증거로 서른이 훨씬 넘는 괘씸한 거인들이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느냐. 나는 저 놈들과 싸워서 몰살 시킨뒤 그것에서 얻은 전리품으로 거부가 되어야겠다. 이 싸움은 정의의 싸움으로, 이런 사악한 씨를 이 지구상에서 뽑아 없애는 신에 대한 커다란 봉사이기도 한 것이다.”
풍차를 보고 독설 하듯 뿜어대는 돈키호테의 우렁우렁한 음성이 들리는 것 같기도 한 이 독백은 웃음과 함께 사람들에게 부여해 주는 의미가 깊다. 우선 산초는 주인의 그러한 행동을 보고 현실을 인식시킨다.
“잠깐만 나리, 저기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아닙니다요. 풍차란 말입니다요. 팔이라고 하시는 것은 날개인데, 바람의 힘으로 돌아서 맷돌을 움직입죠.” 그러나 주인공 돈키호테는 오히려 산초를 나무란다.
“너는 정말 이런 모험을 도통 모르는 모양이구나. 저것은 틀림없는 거인들이야. 만약 겁이 나거든 여기 멀리 떨어져서 내가 저놈들을 상대로 하는 치열하고 일찍이 보지 못한 싸움을 기도나 드리면서 구경하고 있거라.”
그리하여 돈키호테는 산초가 아무리 풍차라고 설명을 하여도 들은 척도 않고 애마 로시난테에 박차를 가하여 풍차를 향해 돌진한다. 결국 만신창이가 된 돈키호테에게 산초는 말한다.
“글쎄 똑똑히 살피시고 일을 저지르시라고 제가 그토록 말했는데도 이게 무슨 꼴입니까?”
그러나 돈키호테는 고집을 꺾지 않는다.
“닥쳐라 산초, 싸움이라는 것은 언제나 변화무쌍한 것이란 말이다.”
오늘의 현실에서 우리가 이런 인간들을 만날 수 있을까. 만약 이 즈음에서 이런 위인들을 만날 수 있다면 그들의 모습은 어떨 것이며 현실적으로 사회적 위치가 어떻게 되어 있을까.
오늘날 자신이 정한 목표를 향하여 타인이야 어떻게 평가하든 끝까지 밀고나가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현실적 이해관계 혹은 수입의 대소에 따라 변화무쌍하게 목표들을 변질시키는 시절은 아닐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현실적 이익이 없음을 알면서도 혹은 그것이 주변으로부터 비난 아니면 조소를 당할 줄 알면서도 자신이 믿는 미래를 변함없이 추구하는 사람들은 있을까.
밀양 표충사 뒤쪽에 자리한 사자평을 오르는 길은 두 가지 길이 있다. 사자평을 향하여 왼쪽으로 오르는 길은 사잇길로 가파르고 좁은 길이지만 시간을 줄일 수 있다. 중년의 소나무와 잡목들이 우거진 나무 사이로 보일 듯 말 듯 나타나는 좁은 길을 따라 오르는 일은 숨이 차긴 하지만 제약산 험한 능선을 타고 가는 길 아래 펼쳐지는 깊은 산세의 맛을 즐길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오른쪽 작전로는 자동차로 능히 오를 수 있는 편한 길이지만 왼쪽 길에 비하여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한 길이다. 작전로를 오르게 되면 오른쪽으로 전개되어 나타나는 각종 관목과 어울려있는 제법 나이가 든 소나무들을 만날 수가 있다. 햇빛에 반짝거리는 각종 나뭇잎들의 초록을 만끽할 수 있는 여름도 좋지만 아무래도 사자평 등산은 늦은 가을철이 제격이다. 가을철 투명한 공간에 머물고 있는 햇빛 가운데 무더기로 떠있는 붉은 고추잠자리 떼를 만나는 것도 그만이지만, 사자평 정상에 닿아 만나게 되는 억새밭은 등정의 피곤함을 일시에 날려버린다. 마치 대양의 푸른 바다처럼 흰 갈대 바다를 보는 일은 순식간에 세사를 모두 잊어버리게 한다. 특히나 바람이 조금 있는 날 흰 억새 꽃 분말들을 보얗게 흩날리며 거대한 파도처럼 일렁이는 사자평의 억새밭은 탐욕과 욕망의 티끌들을 까맣게 잊게 해준다. 대저 인간의 비극은 탐욕에서 비롯된다. 자신이 정한 생의 방법이 이런 탐욕에 멀어져있는 삶일수록 성공된 삶일 수 있다는 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이다.
소설 '돈키호테' 제 4편의 52장에는 돈키호테가 짚더미 위에 누워 자신의 마을에 닿게 되는데 산초의 부인이 달려와 산초를 향해 말한다.
“정말 하느님의 덕분이에요. 하지만 말해줘요, 여보. 종자로 근무하여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요? 나한테 옷가지라도 사가지고 왔나요. 애들에게 신발 켤레라도 사 왔겠지요. 네?”
산초는 대답한다.
“그런건 아무 것도 가져오지 않았어.”
그리고 처음에 돈키호테가 약속한 어마 어마한 벼슬에 대하여 산초는 부인에게 한 마디 한다.
“꿀은 당나귀 입엔 맞지 않아.”
그리고 어리둥절해 하는 부인을 향해 그간 자신의 무용담을 자랑스럽게 펼친다.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하는 산초는 주인공 돈키호테를 더욱 돋보이게 함은 물론 그 외 소설의 배경 또는 온갖 인물들 모두가 하나같이 무위자연을 구성하는 순수한 자연물이 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