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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보마르셰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 또는 황당한 하루>
대본 로렌초 다 폰테
초연 1786년 빈 궁정 극장
배경 17세기 중엽 스페인 세비야 교외 알마비바 백작의 저택
<2006 라 스칼라 극장 공연 / 187분 / 한글자막>
라 스칼라 오케스트라 & 합창단 연주 / 게라르드 코르스텐 지휘 / 조르조 스트렐레르 연출
피가로...............백작의 하인...................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베이스 혹은 베이스바리톤)
수잔나...............백작부인의 하녀.............디아나 담라우(레제로 소프라노)
알마비바 백작........................................피에트로 스파뇰리(바리톤 혹은 베이스바리톤)
백작 부인...........로지나..........................마르첼라 오르사티 탈라만카(리릭 소프라노)
케루비노............백작의 시동...................모니카 바첼리(메조소프라노)
마르첼리나.........백작 저택의 하녀장.........지네테 피셔(소프라노)
바르톨로............세비야의 의사................마우리치오 무라로(베이스 바리톤)
돈 바질리오........음악 선생......................그레고리 본파티(레제로 테너)
돈 쿠르지오........치안 판사......................니콜라 파미오(레제로 테너)
바르바리나.........하녀. 안토니오의 딸........오리아나 쿠르테시(소프라노)
안토니오............정원사. 수잔나의 숙부.....마테오 페이로네(베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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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줄거리 === <오페라 에센스 55, 박종호> 32쪽
<피가로의 결혼>은 보마르셰 3부작 중 로시니에 의해 오페라로 만들어져서 유명한 제1부 <세비야의 이발사>에 이어지는 스토리다. 그러므로 이야기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세비야의 이발사>를 이해해야 한다.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처녀 로지나는 의사 바르톨로와 강제로 결혼할 처지였다. 그러나 젊은 백작 알마비바는 로지나에게 반한다. 결국 백작과 로지나는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으로 결혼하는 데 성공한다. 제2부인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백작의 결혼에 큰 공을 세운 피가로가 백작의 저택에 들어와 하인이 되어 있다. 피가로는 백작 부인이 된 로지나의 하녀인 수잔나와 사귀고, 둘은 결혼하려고 한다. 그러나 수잔나를 탐내는 백작은 둘의 결혼을 탐탁지 않게 여긴다. 이것이 바로 <피가로의 결혼>의 전반부 내용이다.
막이 오르면 오늘이 피가로와 수잔나가 결혼식을 올리는 당일 아침이다. 피가로는 백작이 특별한 호의로 내준 신방을 둘러보면서 침대를 들여놓을 궁리로 신이 난다. 그런데 그런 피가로를 보는 수잔나는 기분이 좋지 않다. 그녀는 백작의 방 가까이에 자신들의 방을 준 것은 백작의 엉큼한 속셈이라고 이른다. 이에 화가 난 피가로는 백작과의 일전을 준비한다. 두 사람의 결혼을 찬성하는 수잔나와 피가로, 백작 부인이 한편이라면, 반대편에는 결혼을 막으려는 백작과 돈 바르톨로, 마르첼리나, 돈 바질리오 등이 포진하여 궁전의 11명 식구들이 얽히고설기는 소동을 이끌어 간다.
=== 프로덕션 노트 ===
작고한 연출가 조르조 스트렐레르(1921-97)는 20세기 후반 이탈리아 오페라계를 대표하던 최정상급 오페라 연출가였다. 그는 밀라노의 피콜로 테아트로를 통해 브레히트와 셰익스피어 연출가로 명성을 얻었고, 오페라 무대에서도 라스칼라를 비롯한 정상급 오페라하우스들을 오가며 유럽 최고의 오페라연출가로 한 시대를 풍미했었다. 그의 오페라연출들 중에서 대표적인 것들을 꼽으라면 1971년의 전설적인 '시몬 보카네그라', 1975년의 '맥베스', 본 영상에 리바이벌된 1980년의 '피가로의 결혼' 등이 특히 널리 알려져 있다.
피가로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 1969년 이탈리아 반도 중동부의 해안도시인 페스카라에서 태어난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는 1989년과 1991년에 토티 달 몬테 콩쿠르에서 연거푸 입상하면서 이탈리아 성악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다. '코지 판 투테'로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이래, 라스칼라, 빈 슈타츠오퍼, 로얄 오페라 코벤트가든, 바스티유 국립오페라, 메트 등의 최정상급 오페라 무대들에서 아바도, 아르농쿠르, 가디너, 정명훈, 샤이, 무티, 게르기에프 등의 최고 거장들과 호흡을 맞춰왔다. 그의 열연을 담은 오페라 영상물들 중에서 2006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의 '돈 조반니'와 '피가로의 결혼', 네트렙코, 가란차와 호흡을 맞춘 도니제티의 '안나 볼레나' 등이 특히 큰 호평을 받았다.
=== 작품 해설 === <2006 로열 오페라하우스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피가로의 결혼
11명의 인간 군상이 드러내는 인간 본성의 진열장
일전에 어떤 자리에서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지휘자 한 분 그리고 또 연출가 한 분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무심코 던지는 말로 "무슨 오페라가 최고라고 생각하느냐?"라고 물었다. 사실 그 많은 오페라들 중에서 특정한 이름이 나오리라고는 기대를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두 사람은 동시에 <피가로의 결혼>이라고 대답하였다.
적잖이 놀라면서 그 이유를 물었다. 지휘자는 "좋잖아요? 아름답고 재미있고 그리고..." 그는 사실 제대로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평생 음악을 한 그는 이 작품이 최고라는 것을 몸으로 가슴으로 느꼈던 것이다. 반면 연출가는 무척이나 논리적으로 예리하게 대답하였다. "<피가로의 결혼>은 그때까지 오페라가 이룬 모든 요소들을 그 안에 담고 있고, 또한 그 이후의 오페라가 나아갈 길을 모두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두 대답이 모두 정답이다. 두 사람의 말을 합치는 것이야말로 이 놀라운 명작의 가장 정확한 설명이 되는 것이다.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1756~1791)에게 새삼 천재란 표현을 쓰는 것이 이제는 정말 진부한 것이 되었지만, 그는 음악의 모든 장르에서 참으로 천재다운 업적들을 이루었다. 그런데 그 천재성은 오페라 분야에서도 예외가 되지는 않았으니, 그가 남긴 오페라들은 작품성은 물론이고 인기 면에서도 모두 당대 최고의 위치에 있는 것이다.
오페라에서도 최고 작곡가의 한 사람인 모차르트의 작품들은 가장 인기가 높은 낭만주의 오페라 작곡가들 즉 베르디, 바그너, 푸치니 등이 나타난 이후에도 이들의 작품들과 인기 면과 공연 횟수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유일한 고전시대의 오페라들로 남아 있다.
오페라에서 위대한 모차르트의 큰 특징은 모든 종류의 오페라에서 뛰어났었다는 점이다. 모차르트는 오페라 세리아, 오페라 부파, 징슈필의 대표적인 세 장르를 골고루 다 다루었으며, 그 소재와 대본에 따라서 세 가지의 작품(作風)을 마음대로 구사하였다. 그리고 물론 세 장르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들을 여럿 남기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인기 작품은 역시 오페라 부파 장르에서 나왔으며, 그중에서도 그것은 <피가로의 결혼>이 아닐까?
모차르트는 빈의 궁정에서 살리에리의 소개로, 당시 살리에리와 함께 작품 활동을 하던 이탈리아 출신의 대본작가 로렌초 다 폰테(1749~1838)를 만난다. 천재가 천재를 알아보듯이, 두 사람은 한 눈에 서로의 재능을 알아보게 된다. 두 사람은 7살의 나이 차이가 있지만, 그후 오페라 사상 최고의 명콤비로서 예술적 동반자의 관계를 유지하게 된다.
두 사람은 특히 오페라 부파 분야에서 예술적 향취가 높으면서도 해학성이 뛰어난 최고의 작품들을 만들었다. 불과 4년 사이에 만든 <피가로의 결혼>(1786년), <돈 조반니>(1878년), <코지 판 투테>(1790년)의 세 작품은 그들의 만남의 결실인데, 이 세 걸작을 대본가의 이름을 따서 '다 폰테 3부작'이라고 흔히 부른다.
이 세 오페라는 음악과 대본 두 분야에서 모두 최고의 경지에 있는 뛰어난 작품들이다. 모차르트는 다른 대본가의 대본으로는 오페라 부파를 쓰지 않았다. 다 폰테는 당시 최고급의 이탈리아어를 구사할 수 있는 대본가였다. 다 폰테는 모차르트의 사후를 포함하여 자신의 생전에 모두 36개나 되는 오페라 대본을 썼지만, 모차르트와 함께 한 세 작품만한 성과를 다시는 이루어내지 못했다. 그런 만큼 다 폰테 3부작은 재능있는 두 천재가 만나서 서로를 고무시키면서 만든 공동의 업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세 작품의 소재가 모두 '성(性)'이란 것인데, 세 작품은 모두 성을 둘러싸고 전개되는, 어떤 점에서는 상당히 에로틱한 이야기들이다. 또한 세 작품은 모두 당시 유럽 귀족들의 진실하지 못한 성 모럴을 공격하고 있는 것으로, 계급비판 내지는 사회비판적인 성격이 짙다.
다 폰테가 모차르트와의 작업에서 처음으로 선택한 것이 프랑스의 작가 보마르셰의 3부작 연극이었다. <피가로의 결혼>은 '보마르셰 3부작' 중 제2부에 해당하는 것이다. 이것은 연극으로서도 유럽 전체를 통틀어 공전의 화제작이었는데, 특히 파리에서는 큰 물의를 일으켰다. 비록 연극의 무대가 피레네 산맥 너머 스페인의 세비야였지만, 파리의 귀족들은 그것이 바로 자신들을 비꼬는 이야기란 것을 못 알아듣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므로 보마르셰의 희곡이 처음 나왔을 때는 궁정에 의해 출판이 금지되었으며, 무대에 올라가기까지는 6년이나 기다려야 했다. 이런 현상은 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작품을 고른 만큼 다 폰테와 모차르트는 사회에 끼칠 엄청난 파문을 이미 각오하고 있었던 것이며, 마찬가지로 성공 또한 이미 예견되었었다. "프랑스 혁명은 이미 보마르셰에서 시작되었다"는 나폴레옹의 말은 이 작품의 놀라운 사회성과 그 파문을 한 마디로 대변한다.
보마르셰 3부작의 제2부가 <피가로의 결혼>으로, 로시니에 의해 오페라화되어서 유명한 제1부 <세비야의 이발사>에 이어 계속되는 스토리다. 물론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는 <피가로의 결혼>보다도 나중에 쓰여진 작품이지만, 당시에는 이미 파이지엘로가 쓴 또 다른 <세비야의 이발사>가 나와 있을 때이므로 모차르트는 순서대로 그 다음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든 것이다. 그러므로 스토리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우선 <세비야의 이발사>의 내용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는 후견인인 의사 바르톨로에 의해 강제로 결혼하게 될 처지였다. 그러나 로지나는 젊은 백작 알마비바와 서로 사랑한다. 이에 두 사람은 이발사 피가로의 도움으로 결혼하는데 성공한다. 여기까지가 <세비야의 이발사>다.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이제 피가로는 백작의 결혼에 대한 공로로 백작 성에 들어와서 하인이 되어 있다. 피가로는 백작부인이 된 로지나의 하녀인 수잔나를 좋아하게 되고, 두 남녀는 결혼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 결혼을 둘러싸고 수잔나를 탐내는 백작 등 많은 난관이 있으니, 이것이 바로 <피가로의 결혼>을 꾸미는 이야기들이다.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에도 나오는 같은 배역들도 그 성부(聲部)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주의가 필요하다.
<피가로의 결혼>의 여러 특징 중 가장 눈에 뜨이는 것은 무려 11명에 달하는 솔리스트들이다. 이것은 이 오페라의 특성을 받쳐주는 중요한 기간(基幹)이기도 한데, 복잡한 인간관계와 많은 복선들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또한 11명의 배역들은 서로 쉬지 않고 입장과 퇴장을 되풀이하며 짧은 노래들을 수없이 불러서, 미리 내용에 익숙해있지 않은 관객들에게는 혼란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또한 많은 배역들의 잦은 입퇴장과 많은 노래들로 연주 시간도 긴 편이고, 레치차티보 세코도 많고 속도도 빨라서 더욱 어렵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복잡한 내용이 일단 잘 숙지되면 참으로 부파의 묘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작품이 <피가로의 결혼>이기도 하다. 11명의 배역 중 비교적 비중이 높은 피가로, 백작, 수잔나, 백작부인, 케루비노는 두 개씩의 아리아를 가지고 있고, 다른 배역들은 각기 하나의 아리아를 부른다. 다만 돈 쿠르치오와 안토니오는 아리아가 없다.
이 오페라에서 아리아와 중창들 사이는 건반 악기에 의해 단순하게 반주되는 레치타티보 세코가 맡고 있다. 그러나 후반부로 가면서 몇몇 레치타티보들은 관현악 반주를 동반하는 레치타티보 아콤파냐토로 대치된다. 이런 경우 보다 극적인 느낌이 더해져, 나중에 바그너 오페라의 원류처럼 여겨지는 대목마저도 들린다. 특히 1막의 3중창 <수잔나, 나오너라> 부분과 2막의 후반부부터 마지막 피날레까지는 아주 현대적이며, 음악적으로 단순하게 번호가 매겨진 오페라 부파의 개념을 완전히 뛰어넘어 이미 여기서 바그너 악극의 여명(黎明)마저 보이고 있는 실정이다.
<피가로의 결혼>은 앙상블 오페라라서 배역간의 긴밀한 호흡이 아주 중요하고, 아리아뿐 아니라 많은 중창들이 이 작품의 큰 매력이기도 하다. 굳이 주역을 꼽으라면 네 명으로 압축할 수 있는데, 두 사람의 소프라노(수잔나와 백작부인)와 두 사람의 베이스바리톤(피가로와 백작)이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두 소프라노는 서로 다른 성질(聲質)과 캐릭터로 상호 조화를 이루게 되는데, 수잔나는 소프라노 레제로가 맡고 백작부인은 소프라노 리리코가 부르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남성 주역의 경우 피가로와 백작이 둘 다 베이스바리톤에 어울리는 배역이지만, 피가로는 보다 명랑하고 가벼운 소리가, 백작에게는 보다 귀족적이고 무거운 소리가 어울린다. 즉 <돈 조반니>의 경우와 비교하자면, 피가로는 레포렐로에, 백작은 돈 조반니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같은 독일 바리톤들이지만 헤르만 프라이는 피가로에,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는 백작에 훨씬 더 잘 어울리는 것이다.
2006년 모차르트의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에서는 새롭게 아름답고 현대적인 오페라하우스를 개관하였으니 이름을 '모차르트를 위한 집(Haus fu:r Mozart)'로 붙였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위한 그 역사적인 건물에서 공연된 첫 작품은 당연히 <피가로의 결혼>이었다. 니콜라스 아르농쿠르가 지휘하였으며 안나 네트렙코, 크리스틴 쉐퍼, 도로테아 뢰수먄, 마리 맥롤린, 보 스코푸스,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등 21세기의 젊은 모차르트 가수들이 총동원되었다.
내 옆에는 우연히 진지한 오스트리아의 오페라 팬이 앉았다. 공연이 끝나자 그는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나를 돌아보며 말하였다. "이건 여태까지 내가 본 모든 <피가로의 결혼>에서 가장 완벽한 무대였소." <피가로의 결혼>은 220년이 지난 지금도 60대에게도 흥분을 주는 작품이었던 것이다.
=== 인물 분석 === <2006 로열 오페라하우스 영상물 내지 해설 / 박종호>
백작부인 우아함과 고귀함이라는 덕목에 그녀가 부르는 아리아의 스타일로 보아 프리마 돈나라 할 만하다.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보여주던 재기발랄하고 적극적인 성격은 결혼하면서, 이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온데간데 없다. 대신 그녀는 남편을 기다리는 인고의 세월을 의지로 버틴다. 그저 수잔나와 피가로의 재치 있는 계략에 수동적으로 응할 뿐, 남편 대신 자신을 쫓아다니는 케루비노가 작은 위안인 것은 차라리 슬픔이다.
수잔나 대본상의 프리마 돈나는 오히려 수잔나다. 그녀는 비록 하녀지만 백작도 백작부인도 마음대로 조종하다시피 한다. 그녀의 눈치와 재치는 <세비야의 이발사>의 로지나와 <코지 판 투테>의 데스피나를 합쳐놓은 정도다. 피가로에 대한 일편단심은 흔들리는 법이 없고, 피가로가 수년 동안 갚지 못했던 빚을 갚을 돈을 몇 분 만에 변통해오는 능력도 있는 지혜롭고 귀여운 처녀다.
백작 귀족의 명예나 체면 같은 것은 보이지 않는다. 오직 저택에 있는 하녀들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니는 호색한으로 그려진다. 그런 점에서 돈 조반니와 일맥상통하는데, 성악적으로도 유사하다. 그러면서도 부인에 대해서는 질투하고 쉽게 분노하는 유아적인 기질마저 있으며,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보이던 한 여성을 향한 낭만 같은 것은 찾아볼 수도 없는, 당시 귀족들의 나쁜 점만을 모아놓은 결점덩어리다.
피가로 <세비야의 이발사>에 나오는 피가로와 거의 비슷하다. 대신 그의 재치와 기지는 애인 수잔나와 양분하므로 기민함이 떨어진다. 음악적으로는 <세비야의 이발사>의 피가로와 <돈 조반니>의 레포렐로와 같다.
케루비노 위 네 명의 주역 다음으로 중요하며, 캐릭터로는 가장 흥미로운 인물이다. 어떤 귀족의 자제로 10대 중반의 사춘기 소년이다. 귀족 훈련을 받기 위해서 이 저택에 시동으로 들어와 있다. 그러나 백작에게 배우는 것이라고는 여자 치마를 뒤따라다니는 것뿐이다. 그는 백작부인을 사모하면서도 이 하녀, 저 하녀에 대한 춘정을 자제하지 못한다.
바르톨로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로지나를 백작에게 빼앗긴 의사지만, 여기서는 백작부인이 된 로지나에 대한 미련이나 백작에 대한 원망은 보이지 않는다. 중간에 일을 도운 피가로에게 복수하기를 원할 뿐이다. 마르첼리나와 내연 관계로 낳은 아이가 피가로다.
마르첼리나 하녀장으로서 일견 <세비야의 이발사>의 베르타를 연상시키는 늙은 독신녀지만, 그 에너지와 역할의 비중은 상대가 안 될 정도로 크다. 도리어 그녀는 피가로를 두고 수잔나와 겨룬다. 결국 피가로가 자기 아들로 밝혀지지만 대신 바르톨로와 결혼함으로써 남편과 아들과 며느리를 다 얻어 이 오페라에서 가장 높은 수확을 올린다.
돈 바질리오 백작의 음악 교사로서 <세비야의 이발사>의 음악 교사(거기서는 바르톨로의 음악 교사지만)와 이름이 같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른 캐릭터이다. 훨씬 꾀가 많고 눈치가 빠른데, 그런 점에서 이전의 베이스보다는 레제로 테너가 잘 어울린다.
안토니오 정원사이고 바르바리나의 아버지다. 전체 드라마와는 상관없이 오직 화단과 화분에만 관심을 두는 역할이니, 어쨌든 단순하고 성실한 일꾼이다.
바르바리나 수잔나와는 사촌 사이인 또 다른 하녀로, 케루비노는 그녀도 쫓아다닌다. 편지를 전달하다가 바늘을 잃어버려 부르는 단 한 곡의 아리아에 그녀의 존재가치가 있다. 이 점에서 <세비야의 이발사>의 베르타와 비슷한 비중이지만, 훨씬 젊고 예쁜 처녀다.
돈 쿠르지오 판사로서 재판을 위해 오는데, 그런 점에서 판단은 백작의 예상 범위를 넘어설 수 없다. 귀족에게 종속된 법률가의 모습을 보여준다. 초연 당시 바질리오를 불렀던 가수가 1인 2역을 했기 때문에 한 장면 이후에는 사라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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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09년 11월 11일 네이버캐스트 / 이용숙 글>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18세기 이탈리오 코믹 오페라 양식의 대표적인 작품
1786년에 작곡되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잘츠부르크에서 일자리를 잃고 방황하다 빈에 자리잡은 모차르트가 대본작가 로렌초 다 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를 만난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습니다. “오페라의 성공은 무엇보다도 대본에 달려 있다”고 호언했던 다 폰테. 그의 탁월한 언어감각과 ‘본능에 가까운’ 흥행 감각이 없었더라면 음악이 아무리 천재적이라 해도 그만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으리라는 사실을 모차르트 자신도 알고 있었으니까요. 모차르트 최고의 걸작 오페라로 꼽히는 [피가로의 결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 세 편의 대본은 모두 다 폰테의 손끝에서 나왔답니다.
예술가 경력으로 따지자면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함께 전 유럽을 돌며 연주여행을 했던 모차르트의 출발이 훨씬 빨랐지만, 당시 빈에서 모차르트가 아직 충분한 권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을 때, 다 폰테는 이미 살리에리 같은 최고 궁정 음악가의 오페라 대본을 쓰는 명사였지요. 그러나 젊은 시절에 칸트, 루소, 볼테르 등의 영향을 받아 뚜렷한 계몽주의 성향을 지녔던 다 폰테는 모차르트와 쉽게 의기투합할 수 있었습니다.
[피가로의 결혼]은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한 오페라
1782년에 작곡가 파이지엘로가 발표한 [세비야의 이발사](파이지엘로의 작품보다 훨씬 유명한 로시니의 [세비야의 이발사](1816)는 훗날의 리메이크 작품입니다)가 장기 흥행에 성공하자 모차르트는 그 인기에 힘입어 성공해 볼 계획으로 '이발사' 원작자인 보마르셰의 속편 [피가로의 결혼 Le nozze di Figaro]을 오페라로 만들자고 다 폰테를 설득합니다.
사실 이 작품이 연극으로 파리에서 초연될 무렵 당시 루이 16세는 불같이 화를 내며 이 작품의 상연을 전면 금지했었습니다. “참을 수 없이 끔찍한 작품이군. 절대로 상연하면 안 돼!” 국왕 뿐만 아니라 귀족들 대부분이 치를 떨며 분개했지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신분제도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이 작품의 정치성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보마르셰의 이 문학적 저항은 몇 년 후 결국 프랑스 대혁명으로 현실화됩니다.
[피가로의 결혼]은 이중의 장치를 지닌 작품입니다. 그 외피(外皮)만을 본다면 TV 연속극과 비슷한 ‘부부싸움의 오페라’라고 할 수 있지요. 전편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그처럼 난리법석을 떨며 갖은 난관을 뚫고 결혼에 성공했던 알마비바 백작과 로지나 커플이 그 속편인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마주치기만 하면 서로에게 눈썹을 치뜨는 전투적인 부부로 등장합니다. 이들과 대조를 이루는 커플은 결혼을 앞둔 피가로(전편에서는 이발사, 속편에서는 백작의 하인. 백작의 결혼을 성사시킨 공로로 하인이 되었습니다)와 백작부인의 하녀 수잔나입니다. 바람둥이 행각으로 아내 로지나를 수없이 좌절시켜온 백작은 이제 수잔나에게까지 흑심을 품지요. 이런 사실을 알게 된 피가로는 수잔나 및 백작부인과 연대해 희극적인 계략을 써서 백작을 무릎 꿇게 만들고, 백작부인은 사과를 받아들여 남편을 용서합니다.
거짓말 릴레이, 성적 긴장과 정치적 긴장의 긴박한 줄다리기
그러나 [피가로의 결혼]은 부부관계 또는 남녀관계의 줄다리기를 보여주는 통속극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로 속고 속이는 ‘거짓말 릴레이’ 안에 시퍼렇게 날이 선 계급의식이 숨어있으니까요. 작품의 외피를 타고 흐르는 ‘성적(性的) 긴장’은 그 내면에서 뿜어져 나오는 ‘정치적 긴장’과 결국 하나로 연결됩니다. 보마르셰의 원작 연극 제5막에서 백작을 겨냥한 피가로의 독백은 신분사회의 뿌리를 뒤흔드는 새로운 시민계급의 분노를 집약하고 있습니다.
“백작, 당신은 절대로 수잔나를 얻을 수 없어! 귀족의 신분, 부, 높은 지위, 품위... 그런 것들을 다 지녔다고 우쭐대지. 하지만 그처럼 다양한 특권을 얻기 위해 당신이 스스로 한 일이 대체 뭐가 있지? 세상에 태어나는 수고 말고는 아무것도 한 일이 없잖아!”
이 전복적인 발언에 왕실과 귀족들은 놀라 경기를 일으켰습니다. 오스트리아에서도 보마르셰의 [피가로의 결혼]은 상연이 금지된 작품이었기 때문에 대본작가 다 폰테는 검열을 피하기 위해 이 5막의 독백을 애초부터 빼버렸지요. 그러나 이미 1막에서 유명한 아리아 ‘나비는 이제 날지 못하리 Non piu andrai’를 부르는 피가로는 표면상으로는 백작의 방자한 시동(侍童)인 케루비노를 조롱하지만, 실제로는 백작을 비롯한 귀족계급 전체에 날카로운 분노의 화살을 겨누고 있습니다. 백작부인인 로지나 역시 원래 귀족이 아닌 시민계급 출신이기 때문에, 오페라의 4막 ‘정원의 밀회’ 장면에서 백작부인이 하녀 수잔나와 옷을 바꿔 입고 수잔나 대신 밀회 장소에 나가 백작을 골탕먹이는 것은 무엇이든 멋대로 하는 귀족계급의 전횡에 대한 시민계급의 통쾌한 보복으로 해석할 수 있지요.
거의 모든 배역이 주옥 같은 멜로디의 아리아를 부른다
‘나비는 이제 날지 못하리', '여러분은 사랑을 아시겠지요’, ‘아름다운 시절은 다 어디로 가고’ 등 주옥같은 멜로디의 유명 아리아가 유난히 많은 이 작품에서는 거의 모든 배역이 솔로 아리아를 부릅니다. 그러나 작품의 상황과 캐릭터의 진실을 더 잘 보여주는 건 오히려 솔로 아리아보다 중창과 레치타티보 쪽입니다. 마르첼리나와 수잔나의 충돌, 목적을 위해 거짓으로 백작을 유혹하는 수잔나, 남편을 정원으로 불러내는 편지를 수잔나에게 받아쓰게 하는 백작부인(편지의 이중창), 사람들 앞에서 백작의 비리를 들추며 그를 망신시키는 바르바리나, 백작에게 정면으로 대드는 피가로 등, 수많은 중창 장면이 참으로 설득력 있게 만들어졌습니다.
작업을 하루라도 빨리 완성하기 위해, 다 폰테가 대본을 쓰는 동안 그 대본을 따라가며 동시에 작곡을 하다시피 했던 모차르트의 음악은 매끄럽고 유연하고 힘이 넘칩니다. 모차르트는 파이지엘로의 로지나가 불렀던 1막의 E장조 카바티나를 모방해 [피가로의 결혼]에서 로지나의 2막 아리아 ‘사랑의 신이여, 위로해주소서 Porgi, amor’를 같은 조성과 같은 템포(라르게토)로 설정하고, 파이지엘로와 마찬가지로 클라리넷과 파곳으로 반주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피가로의 결혼]이 1786년 빈에서 초연되었을 때, 몇 해 전 파이지엘로에게 그토록 열광했던 빈 청중의 반응은 냉담하거나 미적지근할 뿐이었지요. 그나마 가장 인기가 있었던 건 케루비노가 창문에서 뛰어내리기 직전에 수잔나와 부르는 듀엣이어서, 초연 때 케루비노는 어쩔 수 없이 연달아 두 번 창문에서 뛰어내려야 했답니다. 다행히도 이듬해 모차르트를 초청한 프라하의 청중은 [피가로의 결혼]의 절묘한 희극적 오케스트레이션에 감탄할 수 있는 음악적 안목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씹을수록 맛이 깊어지는 이 음악을 놀랍게도 그들은 한눈에 알아보았던 것입니다.
간략한 줄거리와 추천 음반 & DVD
알마비바 백작의 하인 피가로와 백작부인의 하녀 수잔나는 서로 사랑해 결혼하려고 합니다. 수잔나는 자신을 좋아하는 백작이 ‘초야권(신부의 결혼 첫날밤을 소유하는 영주의 권리)’을 부활시키려 한다고 피가로에게 귀띔하고, 분개한 피가로는 백작부인, 수잔나와 함께 계략을 꾸며 백작을 혼내주기로 합니다. 수잔나는 백작에게 밤에 정원에서 몰래 만나자는 편지를 보내고, 그 밀회 장소에는 수잔나로 변장한 백작부인이 나타납니다. 백작의 열렬한 사랑의 고백을 듣고 반지까지 선물로 받은 백작부인은 하인들이 다 지켜보는 가운데 진실을 폭로하고, 골탕을 먹은 백작은 아내에게 무릎 꿇고 사죄합니다.
1. [음반] 로렌초 레가초, 베로니크 장, 파트리차 초피, 사이먼 킨리사이드 등, 콘체르토 쾰른 및 콜레기움 보칼레 겐트, 르네 야콥스 지휘, 2006년 녹음
2. [음반] 체자레 시에피, 리자 델라 카사, 힐데 귀덴, 알프레트 포엘 등, 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및 빈 국립오페라합창단,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 1955년 녹음
3. [DVD] 어윈 슈로트, 도로테아 뢰쉬만, 미아 페르손, 제랄드 핀리 등, 런던 코벤트가든 로열오페라하우스 오케스트라 및 합창단, 안토니오 파파노 지휘, 데이비드 맥비커 연출, 2006년 공연 실황(한글자막)
4. [DVD] 일데브란도 다르칸젤로, 도로테아 뢰쉬만, 안나 네트렙코, 보 스코프후스 등, 빈 필하모니와 빈 국립오페라합창단, 니콜라우스 아르농쿠르 지휘, 클라우스 구트 연출,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실황, 2006년(한글자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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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0년 4월 29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더 이상 날지 못하리, 나비야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황제의 압력으로 고쳐 쓴 내용
불란서의 작가 보마르쉐가 쓴 [세빌리아의 이발사(Le Barbier de Sévill, 세비야의 이발사)], [휘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피가로의 결혼)], [죄 많은 어머니]으로 된 3부작의 제2화를, 모짜르트(Mozart, 모차르트)의 대본작가로 이름 높은 다 폰테가 전4막의 오페라를 썼다. 그러나 원작 속의 귀족에 대한 풍자가 심한 부분은 황제의 압력으로 삭제되어 표면상으로는 백작부인의 애정이 주제가 되어 있다. 이 오페라의 특색은 2막과 4막의 끝을 장식하는 그랜드 휘날레(finale, 피날레)이며 솔로나 중창(重唱)으로 서서히 고양(高揚)된 음악이 마지막에는 하나의 분류(奔流)가 되어 귀결로 몰아가는 모양은 마치 교향곡의 마지막 악장을 듣는 것 같아 기분이 상쾌해진다.
백작이 하녀 수잔나의 첫날밤을 차지하려다 휘가로의 재치로 실패한 이야기
로씨니(G. Rossini, 로시니)의 [세빌리아의 이발사]보다 뒷이야기인데 모짜르트가 먼저 쓴 오페라이다. 알마비바 백작이 휘가로의 도움으로 로지나와 무사히 결혼했고 그 후 휘가로는 백작의 궁전에 시종으로 들어 왔다. 그 휘가로가 백작부인의 시녀로 있는 수잔나와 내일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 이야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당시 습관으로 궁전 주인에게는 하인의 결혼 때, 소휘 “초야권(初夜權)이라는 나쁜 습관이 있었으나 극심한 사랑을 불태운 끝에 간신히 반 강제로 아내를 삼은 부인(로지나)이 사랑스럽고 기뻤으며 또 그때 큰 힘이 되어준 휘가로를 생각하여, 백작은 관대하게도 그 권리를 포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권태기가 오고 보니 좀 억울해졌다. 그래서 주변의 눈치를 살피며 수잔나에게 수작을 걸며 치근덕거린다. 그 사실을 목격하고 불안해진 휘가로가 타고난 기지(機智를)를 발휘하여 그런 백작에게 골탕을 먹이겠다는 계획을 짠다. 동이 트는 새벽 정원에서 수잔나로 가장한 백작부인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 줄 알 리 없는 백작이 살금살금 다가간다. 정체를 알고는 놀라 어쩔 줄 모르는 백작. 마지막에는 자기의 바람기를 절대 고치겠다는 백작에게 부인이 용서하여 일동은 모두 즐거워하는 속에 막이 내린다.
'더 이상 날지 못하리, 나비야'
* 더 이상 날지 못하리. 사랑에 들뜬 나비야
밤낮 없이 이리 저리 날지 못하리라,
여자에게 치근덕거리지는 못하겠지,
친애하는 나르시스 씨, 아도니스 도련님.
여자에게 치근덕거리지는 못하겠지,
친애하는 나르시스 씨, 아도니스 도련님.*
더 이상 달고 있지는 못 하리 깃털 장식,
이렇듯 가볍고 멋진 모자,
이렇듯 긴 머리, 번쩍이는 옷맵시,
이렇듯 계집애 같은 진홍빛 얼굴.
이렇듯 계집애 같은 진홍빛 얼굴.
더 이상 달고 있지는 못 하리 깃털 장식,
모자도, 긴 머리도, 번쩍이는 옷도
(*부분 반복)
주신(酒神) 박카스를 따라 용사들의 대열 속에,
커다란 콧수염, 딱딱한 배낭.
어깨에 소총, 허리에는 칼,
빳빳이 세운 목에 근엄한 얼굴
커다란 철모나 큼직한 터번,
명예는 잔뜩 있으나, 돈이 적어!
돈이 적어!
돈이 적어!
환당고 춤을 추는 대신에
진흙 속을 헤치고 행군곡,
산을 넘고 골짜기를 지나,
눈이건 뜨거운 해빛이건 아랑곳 않고,
나팔 총에 구포(臼砲)에
대포 까지 합해서 쿵쾅 협주곡,
포탄(砲彈)은 한꺼번에 귓가에
쿵쾅 와르르 요란한 소리를 내네.
더 이상 달고 있지는 못 하리 깃털 장식,
이렇듯 가볍고 멋진 모자도
이렇듯 긴 머리도
(*부분 반복)
케르비노는 대승리,
빛나는 무공(武功)일세.
케르비노는 대승리,
빛나는 무공일세.
빛나는 무공일세.
빛나는 무공일세!
모차르트의 재치가 번뜩이는 아리아
백작부인의 소년(실제 역은 여성이 맡음) 시종 케르비노는 수잔나에게 부탁을 하러 왔다가 백작이 나타나자 당황해서 숨는다. 백작이 케르비노를 발견하게 되고 수잔나를 꼬여보려는 중이라고 의심하게 된다. 분노한 그는 장교로 전쟁터에 가라는 명령을 내린다. 이 곡은 이때 케르비노를 비아냥거리며 제1막 휘날레에서 부르는 휘가로의 아리아이며 모짜르트 최대의 인기곡이다. ‘나비’(Farfallone)에는 ‘바람둥이’라는 뜻도 있다. 이 오페라는 음악적으로는 아리아(또는 다른 가곡)와 레치타티보가 교차로 나타나는, 전형적인 18세기 이탈리아 희가극의 형식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뛰어난 오케스트라는 연주하는 사람들까지도 도취시켰을 정도이며 유명한 제2막 끝날 무렵의 여러 노래는 인물에게도 극적인 상황에도 알맞은 멜로디를 제공하는, 모짜르트의 천재적인 솜씨를 느끼게 해준다.
추천할 만한 음반과 DVD
[CD] 에리히 클라이버 지휘, 빈 휠하모니(빈 필하모니) 관현악단/빈 가극장 합창단(1955) 시에피(Bs) DECCA
모짜르트 탄생 100주년 기념 음반이다. 오래 전의 초기 스테레오 녹음이지만 지금 들어도 음질이나 선명도가 별로 떨어지지 않는다. 빈 휠하모니의 비단결 같은 음색과 명가수들의 호화로운 노래는 일대 장관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도 지휘자 클라이버의 우아한 표현 속에 향기 높은 전통적인 빈 풍의 모짜르트를 들을 수 있다는 점이 소중하다. 시에피(Cesare Siepi)의 휘가로는 교묘하며, 싱싱한 빛깔과 풍성한 성대의 폭을 지닌 노래가 당당하고도 압도적이다. 그 밖에 힐데 귀덴, 델라 카자, 코레나 등의 앙상블은 어느 음반에서도 맛볼 수 없는 품위와 우아함 그리고 유려(流麗)함을 만끽하게 해준다. 전곡 중 한 부분도 삭제하지 않은 완전 전곡 녹음이라는 점으로도 귀중한 역사적 명반이다.
[CD] 쥴리니(Giulini, 줄리니) 지휘, 휠하모니아(필하모니아) 관현악단/합창단(1959) 쥬제뻬 타데이(Bs) EMI
슈바르츠코프, 코쏘토, 타데이(Giuseppe Taddei), 배히터(Ebehard Wächter) 같은 제1급의 가수들이 즐비한 음반이다. 각기 가수의 개성이 뚜렷하게 돋보이는 노래 솜씨로, 모짜르트의 자유로운 변화와 선명한 명암(明暗)이 그려 나가는 다채로운 음악을 들려준다. 귀공자 같은 풍모를 지닌 뵈히터와 슈바르츠코프 부인이 짝을 이룬 점이 절묘하며 순 이탈아 풍의 붓화(buffa, 부파)를 풍기는 타데이의 휘가로, 순진 가련한 면을 강조한 모포(Anna Moffo)의 수잔나 등 다른 배역도 훌륭하다. 이 음반은 제4막에 관례적인 삭제가 있다. 쥴리니는 ‘인 템포’(in tempo=정확한 박자)로 조금도 흔들림이 없는 확고한 지휘로 엮어 나가는 솜씨도 뛰어나다.
[DVD] 뵘(Karl Böhm)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합창단(1975) 헤르만 프라이(Br) 폰넬 연출 DG
지금은 오페라 영화의 고전이라고 평가된다. 잘쯔부르크(잘츠부르크) 음악제에서 크게 성공을 거둔 무대에 의거했다. 75년 12월에 빈에서 음성을 녹음, 76년 6월에는 런던에서 영상을 녹화했다. 휘가로가 악보의 표지를 찢으며 시작하는 서곡부터 휘날레까지 영화적인 수법을 교묘하게 도입한 연출은 감탄할 수밖에 없다. 젊은 날의 백작의 초상화를 써서 원작의 주제인 계급투쟁을 슬쩍 암시하는 등 소도구의 사용도 교묘하고 정성스레 만든 장치의 질감도 훌륭하다. 독백적인 노래에서는 입을 움직이지 않는 내면 표현 처리며 두 명의 휘가로가 등장하여 여성론을 펼치는 제4막의 아리아의 트릭 등은 포넬의 솜씨와 F-디스카우나 프라이을 비롯한 유능한 가수들 때문이다. 4명의 주역과 조역에 이르기까지 등장인물 전부의 의도가 충실히 살아 있다. 그리고 원숙기에 있던 뵘과 빈 휠의 격조 높은 연주에 뒷받침된 노래와 앙상블도 뛰어나다. 프라이, 디스카우, 후레니 3인에 비해 약간 연기가 경직된 테 카나와(Kiri Te Kanawa)의 백작부인은 아름다고 맑은 목소리로 충분이 결점을 보완하고 있고 또 이 역으로 크게 화제를 일으킨 미국 출신 소프라노 유잉(Maria Ewing)의 소년다운 역할은 신선하다.
[DVD] 가디너(John Eliot Gardiner) 지휘, 잉글리시 바로크 합주단/몬테베르디 합창단(1993) 브린 터휄(Br) 루이 타민 연출 ARCHIV
친밀하고 생동감 넘치는 파리 샤틀레 극장의 공연 무대이다. 간소한 무대 장치와 그 배경에는 푸른 하늘과 몇 그루의 나무가 듬성듬성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뿐이다. 오리지널 악기의 활달한 멜로디가 신선하기 이를 데 없다. 출연진도 충실하다. 만만치 않은 역량을 과시하는 터휄(Bryn Terfel)의 휘가로, 개성적이면서 풍부한 표정을 보이는 해글리(Alison Hagley)의 수잔나가 자신만만하게 자기 몫을 다하여 드라마를 무리 없이 이끌고 나간다. 여자들을 희롱하는 스티븐(Pamela Helen Stephen)의 케르비노의 태도가 작위적이며 호들갑스럽고, 마틴펠토(Hillevi Martinpelto)의 공작부인은 좀 더 다양한 표정과 유연한 연기를 보여 주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으나 전체적인 오페라 진행에는 전혀 지장을 주지 않는다. 지휘차 가디너의 빈틈없는 치밀한 연주는 이 노래와 드라마의 구조를 단단히 다지며 구석구석 고루 파헤쳐 번뜩이는 재치로 섬세하게 뉘앙스를 살려내어 모짜르트 오페라의 원형을 새로이 부활시켰다.
[네이버 지식백과] 더 이상 날지 못하리, 나비야 -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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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1년 1월 5일 네이버캐스트 / 고 안동림 교수 글>
내 마음의 아리아
사랑은 어떤 것일까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원작인 [휘기로의 결혼(피가로의 결혼)]은 불란서 대혁명 전후의 소란한 시대에 모험과 파란 많은 생애를 보낸 극작가 보마르쉐(피에르 드 보마르셰, Beaumarchais, 1732-99)가 혁명 전야인 1784년 빠리(파리)에서 초연하여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다고 하는 정치 풍자극이다. 파이지엘로(Giovanni Paisiello)와 로씨니(Gioacchno Rossini, 로시니)가 오페라화한 [세빌리아의 이발사]를 전편(前篇)으로 하고 혁명 뒤의 [죄 많은 어머니](케루비노의 자식을 임신한 백작부인)을 후편(後篇)으로 삼은 작품 중 중간 작품에 해당하며, 3부작 중 보마르쉐의 특성을 가장 잘 발휘하여 정점(頂点)을 이룬 오페라이다. [휘가로의 결혼]에는 18세기의 사회적인 대립이 갖가지로 반영되어 있다.
18세기의 사회적인 대립이 반영된 오페라
도대체 귀족에게는 자기 저택의 소로(小路)를 건넜다고 농부(農婦)를 능욕할 권리가 있을까? 영주(領主)는 전통적인 관습으로 자기 영지 안 주민의 딸이면 그녀가 결혼하기 전날 밤을 함께 보낼 권리를 갖고 있을까? 전설과 같은 ‘영주의 권리’ 즉 ‘첫날밤의 권리’ 말이다. 과연 그런 일이 정당하며 사람의 길을 따른 것일까? 원작에는 이 사건에 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으며 모차르트의 오페라도 마찬가지이다. 여기서의 인물 설정에는 당시 사회를 구성하고 있던 주요 계급을 여러 가지로 보여준다. 거만한 알마비바 백작은 아내에게 흥미를 잃고 있다. 그리고 골치 아픈 존재로 취급당하는 백작부인은 지난 날 남편이 보여주었던 애정을 그리워하고 있다. 한편 머리가 잘 돌아가는 시종(侍從) 휘가로가 그런 주인을 한번 본때를 보여줘야겠다고 결심하고 그의 약혼녀이며 백작부인의 시녀인 수잔나는 백작부인에게는 충실하지만 호색적(好色的)인 영주에게는 한번 따끔한 맛을 보여줘야겠다고 벼루고 있다.
그리고 또 한명, 시동(侍童)인 케루비노는 사춘기를 그대로 죄다 희생당한 어른이 채 못된 청년이다. 그는 목소리는 여자이지만 인물은 남자이다. 덴마크의 철학가 키에르게고르(키르케고르, Søren Kierkegaad, 1813-55)는 그 저서 [이것이냐, 저것이냐]에서 케루비노를 ‘소년판 돈 죠반니’라고 평가한다. 정원사의 딸 바르바리나를 만나러 온 케루비노는, 남편을 기다리는 백작부인을 보고 수잔나로 착각하고 입을 맞추려고 덤벼든다. 여기서 케루비노는 “백작이 곧 하게 될 짓을 내가 왜 못하느냐”고 노래한다. 귀족인 그는, 그렇지 못한 수잔나에게 백작과 같은 특권을 내세운다. 케루비노는 숭배의 대상으로 백작부인에게 도취하면서도 실제로 그녀 앞에서는 몸 둘 바를 몰라 쩔쩔매는 반면 수잔나에게는 이처럼 대담하게 행동할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백작과 케루비노의 관계이다. 이야기 줄거리와는 상관없는 이 인물이 주역의 한 사람으로 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유명한 아리아가 2곡이나 들어가(‘내가 나를 모르겠다’,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있어서가 아니라, 백작이 그를 라이벌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이다. 백작과 시동은 이 작품 속에서 ‘자주 만날 운명’이고 ‘백작이 언제나 괴롭힘을 당하지만’ 보마르쉐가 “작품의 도덕성을 높이기 위해서” 등장시켰다는 케루비노를, 모차르트와 다 폰테(Lorenzo da Ponte)는 결코 도덕적인 역할을 계산하고 있지 않았다. 애당초 모차르트는 도덕을 노래하는 따위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케루비노는 백작을 닮은 존재이다. 대본과 오페라의 작자들은 전체적으로는 케루비노 보다도 백작의 심리 묘사에 주력하고 있으나 수잔나가 얽히고 바르바리나가 얽혀드는 장면에서 케루비노 라는 색욕적(色慾的)인 인물을 보게 될 때, 우리는 그를 통해 백작의 내면의 움직임을 들여다 보게 된다.
'사랑이란 어떤 것일까'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당신네 부인들은 알고 있지요,
부인, 아시겠지요
내 마음이 어떤지를.
부인, 아시겠지요
내 마음이 어떤지를.
내가 맛보고 있는 것을
당신들에게 말할까요,
새로운 일이니
나는 알 수 없지만.
뭔가 감정이 움직여
그리움으로 가득한데,
금방 즐겁더니
지금은 괴로워.
얼어붙을 것 같더니
곧 영혼이 타올라,
또 어느 순간에
얼어붙을 것 같아.
나 밖에서 좋은 일을
찾아 헤매고 다녀도,
누가 그걸 갖고 있고
그게 무엇인지도 몰라.
까닭도 없이
한숨짓고 신음하고,
경험한 적도 없는 데
가슴 조이고 몸이 떨리고.
밤이나 낮이나 나는
마음 편할 틈도 없어,
그래도 역시 즐겁다
이렇듯 괴로워하는 것이.
사랑이 어떤 것인지
당신네 부인들은 알고 있지요,
부인, 아시겠지요
내 마음이 어떤지를.
부인, 아시겠지요
내 마음이 어떤지를.
부인, 아시겠지요
내 마음이 어떤지를.
군대에 나가게 된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에게 작별인사를 하려고 찾아와서 까닭 없이 자기의 온몸과 마음을 엄습해오는 사랑의 괴로움을 호소하는 칸쪼네이다. 조숙한 케루비노는 자기에게 찾아든 가눌 길 없는 모호한 성적 욕망을 성숙한 여성들인 백작부인과 수잔나에게 묻는 것이다. “당신네”(Voi)라고 복수형을 쓴 것은 어느 특정한 여성을 지목하지 않기 때문이다. 음악회에서 곧잘 애창되는 널리 알려진 아리아이다. 기타 반주로 부르는 소년다운 쾌활함과 어린애 같은 애정 표현으로 가득한 이 아름다운 선율을 모차르트도 무척 좋아하여 다른 작품에 여러 번 썼다. 케루비노 역은 소년이며 여장(女裝)하기 때문에 남장(男裝)이 어울리는 여성 가수가 노래한다.
추천 음반 및 DVD
[CD] 후르트뱅글러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가극장 합창단(1953) 궤덴(Ms) Cetra
1953년도 잘쯔부르크 음악제 때의 실황 녹음이다. 쿤쯔(Erich Kunz), 제후리트(Irmgard Seefried), 슈바르츠코프(Elisabeth Schwarzkopf), 궤덴(Hilde Gueden), 코레나(Fernando Corena) 등 1950년대 빈의 최상급 가수가 총망라되어 있다. 연주는 지나치게 무겁거나 딱딱하지 않고 유려하며 경쾌하다. 후르트뱅글러의 템포는 자유자재로 신축하며 표현의 농담(濃淡)도 아주 짙다. 관능적이라고 할 만큼 생생한 인간감정의 여러 모습과 드라마를 재현하고 있다.
[CD] 카라얀 지휘, 빈 휠하모니 관현악단/빈 국립 오페라단 합창단(1978) 폰 슈타데(Ms) Decca
출연진이 황금의 캐스트이다. 백작부인은 토모와 신토우이며 전성기의 싱싱한 목소리가 매력적이다. 전성기란 누구를 막론하고 기대감을 품게하기 마려이다. 상대역인 배작 역에 반 담(José van Dam)도 당시 프라이와 앞을 다투는 최고의 전성기였다. 카라얀과 빈 휠하모니의, 이 작품을 너무 잘 아는, 흐르는 듯한 유연한 연주는 더 말할 것 없고 카라얀의 가장 충실했던 시기의 기록 중 하나이다.
[DVD] 아바도 지휘, 빈 국립 가극장 관현악단/합창단(1991) 시마(S) 조나단 밀러 연출 Sony
라이몬디(Ruggero Raimondi)의 아직 도련님 티가 가시지 않은 구태의연한 백작, 부인인 스튜더(Cheryl Studer)의 싱싱한 젊음의 매력, 갈로(Lucio Gallo)의 발랄하고 무엇에도 구애받지 않는 자재로운 휘가로, 그리고 여인들 사이를 잘도 헤매고 다니며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 시마(Gabriele Sima)의 케루비노 등 전체적으로 젊은 배역이 눈에 띈다. 아바도의 지휘는 유려함이 부족하나 과장이나 요설(饒舌)을 배제하고 꼼꼼하게 진행하며 하나하나의 가수들의 개성을 위축시키지 않고 발랄한 생기를 불어 넣고 있다. 일상성 속에 숨어있는 인생의 애환을 덤덤하게 표현한 밀러(Jonathan Miller)의 연출도 독특한 맛이 있다. 1789년 빈의 재연(再演)때 수잔나 역을 위해 다시 쓴 제2막의 아리에타와 마지막 제4막의 화려한 이판(異版) 아리아도 수록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사랑은 어떤 것일까 - 모차르트, [피가로의 결혼] (내 마음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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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 해설 === <2015년 9월 2일 네이버캐스트 /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김성현 글>
문학과 클래식
희곡 『피가로의 결혼』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예술이 혁명을 예고하는 순간
예술이 미래를 예견할 수 있을까. 언뜻 불가능하게만 보이는 일이 지극히 예외적인 순간에는 일어난다. 이를테면 1789년 프랑스 혁명이 발발하기 5년 전에 연극으로 초연된 피에르 보마르셰(Pierre Beaumarchais, 1732~99)의 희곡 『피가로의 결혼』이 그랬다. 여성과 하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연합해서 남성 귀족을 혼내주고, 귀족 사회의 위선과 부조리에 통렬한 야유를 보낸다는 내용만으로도 이 작품은 불온하게 보이기에 충분했다.
백작을 기득권 세력으로 놓고 보면, 계층적으로는 하인 피가로, 성별로는 백작 부인이 약자다. 하녀 수잔나는 성별과 계층에서 모두 약자가 된다. 작가 보마르셰는 “스페인의 영주는 젊은 여인을 유혹하려고 하지만, 계층이나 부유함이라는 면에서 모두 전지전능한 절대 군주의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해 영주의 부인과 하인, 하녀가 손을 잡는다”라면서 창작 의도를 숨기지 않았다.
<피가로의 결혼>은 사랑의 화살표
오늘날 TV의 ‘짝짓기 프로그램’처럼 희곡의 외양은 복잡한 ‘사랑의 화살표’로 이루어져 있다. 시동 케루비노는 백작 부인을 연모하고, 백작 부인은 여전히 백작을 그리워하지만, 변심한 백작은 하녀 수잔나를 넘보고, 수잔나는 하인 피가로와 무사히 결혼하고 싶어 하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외양은 현실 풍자라는 쓰디쓴 약을 감추기 위한 당의정에 가까웠다.
전작인 [세비야의 이발사]에서 알마비바 백작은 피가로의 도움으로 로지나와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속편에 해당하는 이 작품에서 거꾸로 백작은 피가로의 약혼자인 수잔나에게 눈독을 들인다. 백작 부인이 된 로지나는 남편의 변심에 속수무책으로 슬퍼할 뿐이다.
봉건적 질서를 과녁으로 삼다
배은망덕한 건 하인이 아니라 주인이다. 작품의 출발선부터 귀족은 이미 도덕적 권위를 잃었다. 따라서 이 희곡은 급진적이면서도 불온한 블랙코미디가 된다. “사회적 불합리함에서 출발할 때만 위대한 비장미나 심오한 도덕성, 진정한 희극성에 다다를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해왔으며, 지금도 그러하다”라는 저자의 말처럼, 이 작품의 유쾌한 웃음은 권력관계가 뒤집히는 전복적 상상력에서 나온다. “작가는 등장인물의 보호자가 아니라, 그들의 악행을 그대로 묘사하는 화가”라는 보마르셰의 관점은 철저하게 현실적이면서 참여적인 것이었다.
봉건적 질서를 과녁으로 삼았던 작가 보마르셰가 이 과녁을 맞히기 위해 꺼내든 화살이 ‘초야권(初夜權)’이다. 초야권이란 말 그대로 영지의 처녀들이 결혼하기 전에 귀족이 첫날밤의 권리를 행사한다는 의미다. 인신(人身)의 봉건적 예속을 상징하는 용어지만, 지금도 직장 상사의 성적 희롱을 뜻하는 말로 종종 사용된다. 희곡 5막에서 피가로는 장문의 독백을 통해 주인 알마비바 백작에게 사실상 선전포고를 한다.
“안 되지요, 주인님, 당신은 그녀를 가질 수 없어요. 당신이 귀족이라는 이유로 대단한 인물이라도 되는 줄 아시나 보지요! 귀족이나 부유함, 직위나 직책은 모두 사람을 오만하게 만들지요! 하지만 이걸 위해 당신은 무엇을 했나요. 당신이 했던 수고라고는 고작 태어나는 것뿐이었어요. 출생이 아니었다면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을 뿐.”
- 보마르셰, 『피가로의 결혼』
이 구절은 봉건적 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과도 같았다. 이처럼 보마르셰가 당대의 신분 사회에 대해 비판적 시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건 작가이자 시계공, 발명가이자 음악가, 외교관이자 비밀 정보원, 무기 거래상이자 혁명가로도 활동했던 복잡한 삶의 이력 덕분이다.
희곡 작가 보마르셰의 인생 역정
보마르셰는 1732년 시계공 집안에서 피에르 오귀스탱 카롱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당대 서민 집안처럼 그 역시 2년 만에 정규 교육을 마치고 아버지의 시계 공방에서 일했다. 어릴 적 곧바로 생계의 현장에 뛰어들었던 경험은 『피가로의 결혼』의 천방지축 말썽꾸러기 케루비노의 모습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보마르셰는 21세에 시계추의 제어 장치를 발명해 왕실에 제출할 만큼 기술도 빼어났다. 그는 이 발명으로 국왕 루이 15세 부부를 알현할 기회를 얻었고 궁정에 납품하는 신분으로 격상됐다.
재능 있고 야심만만했던 이 청년에게 출세의 발판이 됐던 건 결혼이었다. 1755년 보마르셰는 왕실의 검사관 겸 서기였던 프랑케를 처음 만났고, 당시 투병 중이던 그에게서 왕실 직책을 매입했다. 이듬해 프랑케가 타계하자 보마르셰는 프랑케의 부인이었던 마리 크리스틴 오베르탱과 결혼했다. 이때부터 작가는 아내의 출신 지역인 ‘마르셰 숲(le Bois Marchais)’을 따서 스스로를 보마르셰(Beaumarchais)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아내는 다음 해 세상을 떠났고, 1768년 보마르셰는 또 다른 미망인 제네비예브와 재혼했다. 하지만 제네비예브마저 3년 뒤에 세상을 떠나자 보마르셰가 두 아내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잦아들지 않았다.
왕실에 입성한 보마르셰는 루이 15세의 네 딸에게 하프를 가르치는 음악 교사가 됐다. 서른 살이 되기 직전에는 왕실 고문 겸 비서 직위를 매입했다. 이때부터 그는 보마르셰라는 성을 정식으로 사용했다.
보마르셰가 작가로 재능을 드러낸 건, 35세 때인 1767년 첫 작품 『외제니』를 발표하면서였다. 1770년에는 두 번째 희곡 『두 친구』를 상연했지만, 흥행 참패를 겪었다. 하지만 1775년 그의 『피가로』 3부작 가운데 첫 작품에 해당하는 『세비야의 이발사』가 국립극장인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상연되면서 작가로서의 실력을 인정받았다. 『피가로의 결혼』이 두 번째, 『죄지은 어머니』가 세 번째 작품이다.
이 남자의 야망은 비단 문단에만 그치지 않았다. 1774년에는 왕실의 밀명을 받고 루이 16세에 대한 비방문을 거둬들이기 위해 런던과 빈, 플랑드르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영국에 맞서 독립전쟁을 벌인 미국 식민지를 지원하기 위한 비밀 외교에도 뛰어들었다. 이 과정에서 보마르셰는 빈에서 스파이라는 오해를 받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다. 당시 경험은 『피가로의 결혼』에서 백작의 심부름꾼이자 책략가, 외교관 역할을 맡은 피가로에 투영됐다.
1781년 『피가로의 결혼』은 코메디 프랑세즈의 상연 목록에 포함됐다. 하지만 작품 초연에 앞서 베르사유 궁전에서 열린 희곡 낭독회에 참석한 국왕 루이 16세는 작품에 대해 “저속한 취향”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귀족 사회에 대한 불만과 힐난이 담긴 피가로의 후반부 독백에 대해 국왕은 “혐오스럽다”라고 표현했다.
작품의 운명
이때부터 작품의 상연 여부를 두고 6차례나 검열이 진행되면서 첨예한 논쟁이 벌어졌다. 작가는 희곡 낭독회를 개최하면서 작품을 알리려 애썼고 1783년 므뉘 플레지르 극장에서 공연이 잡혔지만, 마지막 순간에 왕명으로 좌절되고 말았다.
보마르셰는 일평생 신분 상승에 대한 욕망을 감춘 적이 없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기존 질서에 대한 냉소나 풍자 역시 멈추지 않았다. 1785년 3월 법정 다툼에 휘말린 작가가 발표한 글이 루이 16세의 격분을 사는 바람에 보마르셰는 1주일간 구류를 살았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뒤 『세비야의 이발사』가 궁정에서 공연될 당시에는 왕비 마리 앙투아네트가 로지나 역할을 맡았다. 이처럼 작가와 프랑스 왕정 사이의 악연은 얄궂기만 했다. 연극 『피가로의 결혼』은 우여곡절 끝에 1784년 코메디 프랑세즈에서 초연되어 대성공을 거뒀다. 프랑스 혁명 이전까지 이 극장에서만 111차례 상연될 정도였다.
모차르트가 궁정의 위촉없이 작곡한, 첫 오페라
고향 잘츠부르크에서 빈으로 건너온 작곡가 모차르트가 새 오페라를 위한 대본을 필사적으로 찾던 것은 이 무렵이었다. 1783년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애타는 심경을 이렇게 토로했다.
“최소한 100여 편의 대본은 읽어보았지만, 단 한 편도 마음에 드는 것이 없네요. 적어도 많은 분량을 고쳐야 하고, 차라리 새로운 작품을 쓰는 편이 편할 정도에요. 결국은 새로운 것이 더 좋은 법이지요.”
이탈리아 오페라를 쓰기 위해 대본을 찾아 헤매던 모차르트는 보마르셰의 원작을 구해 읽은 뒤 빈의 궁정 작가였던 로렌초 다폰테(Lorenzo da Ponte, 1749~1838)에게 대본 작업을 의뢰했다. 다폰테는 대본을 완성한 뒤 “진정으로 새로운 작품”이라며 자신만만해했다. 모차르트에게도 이 작품은 궁정이나 귀족의 위촉 없이 자유롭게 작곡한 첫 오페라가 됐다.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여자는 다 그래)]로 이어지는 모차르트와 다폰테 콤비의 3부작이 탄생한 것이었다.
오스트리아의 황제 요제프 2세는 당초 보마르셰의 희곡에 대해 “모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라며 상연을 금지했다. 하지만 1785년 모차르트가 6주 만에 작곡을 마치자 다폰테는 황제를 알현한 자리에서 오페라 상연을 요청했다. 결국 원작의 직설적인 비판을 삭제하거나 누그러뜨리고 작곡가가 황제 앞에서 일부 장면을 발췌로 연주하는 노력 끝에 오페라 상연을 허가 받았다. 더불어 희곡의 5막도 오페라에서는 4막으로 축소됐고, 등장인물도 16명에서 11명으로 줄어들었다.
1786년 5월 1일 빈의 궁정 극장에서 오페라가 초연될 당시, 객석에는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가 앉아 있었다. 아버지 레오폴트는 아들의 성공을 믿어 의심치 않았지만 언제나 노심초사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는 오페라를 관람한 뒤 자신의 딸이자 모차르트의 누이였던 난네를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네 동생의 둘째 날 공연에서는 5곡에 대해 앙코르가 쏟아졌단다. 세 번째 공연에서는 7곡을 다시 불렀지. 그중에서 짧은 이중창은 세 번이나 불러야 했단다.”
이렇듯 앙코르 요청이 물밀듯 쏟아지자 공연 시간이 한없이 늘어날 것을 염려한 왕실에서는 “독창 이외에는 앙코르를 하지 말 것”이라는 독특한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 오페라의 이중창 가운데 하나가 영화 [쇼생크 탈출]의 감옥 장면에서 흘렀던 [편지의 이중창]이다. 백작 부인이 머릿속에 떠올린 구절들을 수잔나에게 편지지에 받아 적도록 하는 형식이다. 그렇기에 노래 역시 짧은 가사를 이어 부르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언뜻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선율이지만, 실은 알마비바 백작을 꾀어내 망신을 주기 위한 책략이 담긴 노래이기도 하다.
“오늘 저녁 포근한 산들바람이 살랑거리네. 숲 속의 소나무 아래. 나머지는 그가 알 거야.”
- [피가로의 결혼] 가운데 ‘편지의 이중창’
이 편지를 건네받고 수잔나와 밀회하기 위해 나갔던 알마비바 백작은 결국 부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잘못을 비는 처지가 되고 만다. 희극이나 오페라의 막이 내릴 때 등장인물들은 멋쩍게라도 웃을 수 있었지만, 역사의 실존 인물들은 웃을 수만은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오페라 초연 3년 뒤 프랑스 대혁명이 터진 것이었다.
보마르셰의 희곡에서 로지나 역을 연기했던 마리 앙투아네트는 프랑스 대혁명으로 자신의 목이 잘릴 것이라고 짐작했을까. 모차르트의 오페라를 허가했던 오스트리아의 요제프 2세는 프랑스 왕가로 시집 간 자신의 누이동생 앙투아네트가 형장의 이슬로 사라질 것이라고 예상할 수 있었을까.
“나는 지금의 독자를 위해 쓴 것이 아니다. 너무 익히 알려진 악행에 대한 이야기는 감동을 줄 수 없으니까. 하지만 80여 년 뒤에는 결실을 낳을 것”이라는 작가의 말은 예언처럼 그대로 적중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 역시 구체제라는 과녁을 관통한 화살이자, 프랑스 혁명이라는 뇌관을 장착한 시한폭탄이 됐다.
[네이버 지식백과] 희곡 『피가로의 결혼』과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 예술이 혁명을 예고하는 순간 (문학과 클래식)
첫댓글 187분짜리 장편물입니다...마치는 시간 감안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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